2018-02-20

박정미 - 영화 1987 바람이 부는 참에 나도 횡설수설.



박정미 - 영화 <1987> 바람이 부는 참에 나도 횡설수설. 그들이 옳았다고 해도 모두 다 옳았던 것은 아니다....




박정미
4 January ·



영화 <1987> 바람이 부는 참에 나도 횡설수설.

그들이 옳았다고 해도 모두 다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때 옳았다고 해도 지금 옳은 것은 아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페친이 몇 분 있다. 견해는 독자적이면서도 유연하고, 감성은 순정하고 아름다운 분들이다. 그래서 페북에 올린 글을 단 한 줄이라도 놓칠세라 생각의 궤적을 챙겨보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이 <1987>영화를 계기로 그 시절을 반추하며 써놓은 글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때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동참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거나 그 이후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회한어린 평가를 내리는 글이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댓글을 썼다가 지웠다. 나 또한 제멋대로 그분들의 삶에 평가를 내리는 우를 범할까, 두려워서이다.

가만히 나 혼자 생각하건대, 그분들이 젊은시절 얻은 도덕적 부채감의 덫에 걸려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80년대 이후 그어진 선을 넘어 시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답하지 못했다는 그 열패의 기억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순정한 젊은 시절에 찍힌 불의 화인 혹은 트라우마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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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한 정신세계를 가진 그 분들조차 그러니, 당시 도서관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학시절을 보낸 평범한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이상한 집단적 문화지체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30년 전 높이 솟아오른 시대정신의 봉우리에 올라 깃발하나 꽂아놓은 것으로 평생을 울궈먹는 86세대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과 같은 염불을 외며 떡고물을 주워먹고 사는 사람들도많다. 그 때 동세대에 널리 유포된 도덕적 부채의식이 그들의 입지를 세워주고 있지 않다면 아직도 그들이 여전히 활개 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선을 넘어 도달하지 못한 그 곳이 엄혹하고 치열하고 위험하기만한 도덕적 우위의 세계였던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만이 그 선을 넘어설 수 있었던가.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것, 오래되어 삶의 핵심기반으로 자리잡은 고전적 가치에는 반기를 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것들과의 연계성을 잘라냄으로써 뾰족하게 그 시대만의 과제를 설정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영토가 너무 넓거나, 과제적 사고가 아닌 근원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이 연계성을 끊어낸, 날서고 뾰족한 생각을 수용하기 힘들어진다. 

내가 대학시절 운동권 선후배친구들 중에 고교시절 독서량이 많은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유가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뜻 선을 넘는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가 기득권지향적이고 비겁하여 정의와 옳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고, 실천성이 거세된 관념적 성향이어서만은 아닌 것이다.

30여년전 운동권이라는 것도 다른 모든 인간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순결하고 단일한 집단은 아니었다. 어떤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사는 곳 어디에나 작용한다는 10-80-10의 법칙을 나는 분명히 이 집단에서도 보았다. 여기도 역시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선한의지의 상위 10퍼센트와 사적인 욕망충족을 위해 이를 이용하는 하위 10퍼센트, 그리고 그 중간에서 부유하는 80퍼센트로 이루어졌다.
선질 10퍼센트 중에서도 그 안 깊숙한 곳에는 전태일열사처럼 진짜 시대정신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신화적 존재가 있다. 마치 열매 전체의 꿈과 미래를 응축한 씨앗과도 같은 존재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젊음을 바친 이들이 그 주위를 꽃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지를 교묘하게 위장하여 달디단 과육만 따먹는 악질 10퍼센트도 분명 현실에 있는 것이다.
선질 10퍼센트가 부상하면 80퍼센트 중간층은 선질로 견인되어 세상은 선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악질 10퍼센트가 부상하면 중간층은 악질로 견인되어 그 세상은 악해진다는 것이다. 그 스님의 말씀을 나는 두고두고 새겨보는데, 운동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흘러왔다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지켜본 후배 중에 지금도 사랑하고 아련히 그리운 이는 그렇게 선을 넘지 못하고 경계에 서성이다가 혼자만의 세상을 일구거나 도중에 길을 잃은 친구들이다.
순정한 젊은시절 올라보지 못하고 지나친 산봉우리는 언제나 기억 속에 아쉽고 아름다울 것이다. 회한이 서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시절 그들이 옳았다고 해서 지금도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서조차 그들이 모두 다 옳았던 것도 아니다.
세월은 흘렀고, 시대정신도 이미 젊은 시절 깃들어있던 지점을 떠났다.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부채의식을 떨치고 젊은시절 자신의 역사를 어두운 죄의식으로만 색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낮의 밝은 빛으로 객관적 거리를 두고 새롭게 조명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순정한 젊은날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확인하고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시선을 뒤가 아닌 앞에 두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파랑새를 찾아 다시 꿈을 꾸는 후반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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