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30

Daum 블로그 신은미

Daum 블로그

"영영 쓸어버리자"는 구호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취재를 마친 우리의 오후 일정은 자유 취재다. 물론 안내원과 함 께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밖에서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통제가 심하지는 않다고 외신기자들은 말한다.

한 외신기자를 안내하는 북측 안내원은 "일부 서방의 기자들이 안 좋은 장면만 촬영해 왜곡 보 도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기사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서 방의 기자들이 올려놓은, 고의적으로 편집된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북한 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역앞에 오니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미제가 덤벼든다면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리자"라고 새겨져 있다. 북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 런데 한 가지 의아했던 건, "남조선을 쓸어버리자" 같은 구호를 북한에서 본 적이 없다는 점이 다.

▲ 평양 거리에서 마주친 구호. ⓒ 신은미



지하철 안 우리 자리 맞은편에 귀여운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다. 말을 시켜도 아무 대답 없이 큰 눈망울만 깜빡거린다. 남편이 아이를 웃겨보려고 온갖 얼굴 표정을 지어 보이

2017-05-29

자유조선방송 - 원산 육아원-애육원 건설의 의미

자유조선방송 - 원산 육아원-애육원 건설의 의미

원산 육아원-애육원 건설의 의미

등록일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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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북한 조선노동당의 기관지 ‘노동신문’. 김정은 정권을 선전하는 선전도구 노동신문의 거짓과 왜곡을 사실과 대조해서 짚어보는 시간 노동신문 바로 보기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북한민주화위원회 서재평 사무국장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오늘도 노동신문에 나온 세 가지 기사 살펴볼텐데요. 첫 번째 기사는 지난 6월 2일 화요일에 나온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들어보시죠.

<첫번째 기사 : 6월 2일 화요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준공식을 앞둔 원산 육아원, 애육원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조국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일처럼 중대한 사업은 없다시며 이 땅우에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전설을 끝없이 펼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친어버이 사랑속에 부모없는 어린이들의 희한한 궁전으로 일떠선 원산 육아원, 애육원이 준공의 날을 맞이하였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국제아동절인 6월 1일 준공식을 앞둔 원산 육아원, 애육원을 현지지도하시었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원산육아원, 애육원 정면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초상화를 바라보시면서 밝고 정중하게 잘 모시었다고 기뻐하시었다.

1. 네, 원산육아원과 애육원을 새로 지었다고 북한 당국이 여러차례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일단 노동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면 이전에 북한 당국이 공개했던 어떤 교육시설보다 현대적이고 화려해 보이긴 합니다. 어떻게 보셨어요?

2. 국제아동절을 맞춰서 준공식을 했네요. 사진을 보면 김정은 표정이 정말 해맑습니다. 아주 만족한 모습인데요. 김정은이 준공식에서 어떤 말을 했습니까

3. 여기는 앞으로 어떤 아이들이 오게 되는 건가요?

4. 북한에 이전에도 이렇게 큰 애육원과 육아원이 있었습니까

5. 대형 육아원과 애육원을 강원도 원산에 지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6. 어쨌든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어쨌든 이렇게 투자를 해서 애육원과 육아원을 잘 지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7. 그런데 김정은은 이렇게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주면서도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지어서 선전하기 위한 목적도 당연히 있겠죠?

8. 그리고 나서 6월 3일에는 김정은이 원산육아원, 애육원건설에 노력적위훈을 세운 군인건설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걸다 군대가 맡아서 지은건가요?

어찌됐든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서 좋은 시설을 만든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지어주고 선전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이제 이 아이들을 어떻게 기를지 진지하게 교육문제를 고민해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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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뉴스 알아보죠. 다음 뉴스는 모내기 전투에 관한 기사인데요. 지난 6월 4일 목요일에 나온 모든 힘을 총동원, 총집중하자는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 들어보시죠.

<6월 4일 4면 “모든 힘을 총동원, 총집중하여 모내기전투를 다그쳐 끝내자”>

함경남도의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이 모내기전투를 시작한 첫날부터 매일 계획을 130%, 최고 140%이상 넘쳐 수행하며 기세좋게 나가고 있다. 포전담당책임제가 실시되는데 맞게 우물과 쫄짱, 굴포, 인수로준비를 잘해놓고 전반적인 논들에서 동시에 모내기를 들이대니 어찌 실적이 뛰여오르지 않겠는가. 물절약형 농법을 비롯한 과학농법들을 적극 받아들일데 대한 당정책을 높이 받들고 그 관철을 위해 영농공정벌에 따르는 기술 지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는 함경남도 일군들의 사업은 본받을만하다.

9. 네 모내기 전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인데요. 서 국장님도 북한에 있을 때 모내기 전투 많이 나가셨나요?

10. 모내기 전투에 동원되면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나요?

11. 최근 국민통일방송 취재 결과도 보면 강제로 동원된 농촌지원전투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건성건성하고 자기 개인 텃밭은 실적이 좋다는 건데요. 어떻게 보세요?

12. 기사를 보면 김정은이 모든 농사일을 과학기술적으로 하도록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모판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판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기 위해서 모판 관리공들이 아니라 농장원대중의 힘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건 과학적 영농과는 상환이 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13. 과학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은 노동력동원, 협동에 의한 농사를 하고 있다는 건데요. 이렇게 해서 농업 생산력이 높아질까요? 어떤게 보세요?

14. 기사에서도 물원천을 확보하는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요. 지금 북한이 가물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고 올해 농업생산량이 극히 낮을 것이다는 유엔의 관측도 나왔습니다. 가물이 심각한 문제인데요. 가물이 전국의 모든 논밭에서 이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일부 지역의 문제인가요?

15. 북한 당국이 가물 피해를 막기 위해 내놓는 대책이 있습니까?

어떤 일이든 사람의 노력이 들어가지만 농사를 인력으로만 지을 순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인민들 먹는 문제와 직결된 농사 사업에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외국 농사 기술도 들여오고 농업 기계도 보급하는 노력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다음 뉴스도 알아보죠. 다음 뉴스는 6월 1일 월요일에 나온 기사인데요. “의료상헤택이 주민들에게 더 잘 가닿게”라는 기사입니다.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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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4면 “의료상혜택이 주민들에게 더 잘 가닿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참다운 우월성을 더 높이 발양시키자면 보건사업을 개선강화하여 인민적인 보건제도를 더욱 공고 발전시키고 국가의 의료상 혜택이 인민들에게 더 잘 미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만포시 일군들은 시당위원회의 지도밑에 병원, 진료소를 비롯한 보건기관들을 발전하는 시대적 요구에 맞게 보다 훌륭히 꾸리고 치료예방상업과 의료봉사수준을 높이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15. 네, 만포시 보건 일군들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요. 여러 가지를 칭찬하고 있네요. 일단 보건 일군들이 보건기관건설과 개보수를 힘 있게 했다는 것인데요. 보건 일군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의사와 간호사들인가요?

16. 몇 해 동안 7개 보건기관이 건설되고 30여개에 달하는 보건기관이 보수됐다라고 하는데요. 보건일군들이 건설자재를 어떤 방법으로 마련하나요?

17. 보건일군들이 환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건물도 건설하고 설비도 들여놓고 강습도 하고 할 일이 참 많은데요. 게다가 시인민병원에 입원한 산모들에게는 닭알, 꿀, 미역도 공급한다고 하는데요. 모든 산모가 이런 혜택을 다 받을 수 있는 건가요?

18. 기사대로라면 북한의 의료 시설이 참 잘 돼있고 의료 혜택도 괜찮겠구나 싶은데, 실제 북한 인민들은 병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렇죠?

19. 기사처럼 보건 일꾼들이 의료상 혜택이 주민들에게 잘 닿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긍정적인 일인데요. 이 기사 어떻게 보셨나요? 사실에 근거한 기사라고 평가하시나요?

20. 북한 당국의 선전대로 모든 인민에게 무상의료혜택, 뿐만 아니라 질 높은 무상의료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네,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무상의료혜택, 단순히 무료인게 중요한게 아니라 질 높은 의료 혜택을 모든 인민이 골고루 받게 하는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진행 : 네, 오늘도 노동신문에 나타난 북한 당국의 거짓선전과 그 의도를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오늘말씀 함께 해주신 서재평 사무국장님 감사합니다.

북한 김정은, 국제아동절 맞아 원산 고아원 시찰 |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제아동절 맞아 원산 고아원 시찰 |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제아동절 맞아 원산 고아원 시찰
송고시간 | 2015/06/02 06:36


완공된 원산 고아원 찾은 김정은(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북한의 '어린이날'인 국제아동절을 맞아 고아원인 강원도 원산 애육원, 육아원을 찾았다고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완공된 애육원과 육아원을 보고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창조물"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북한의 '어린이날'인 국제아동절을 맞아 준공식을 앞둔 강원도 원산 고아원을 찾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의 친어버이 사랑 속에서 부모 없는 어린이들의 희한한 궁전으로 일떠선 원산 육아원, 애육원이 준공의 날을 맞이했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국제아동절인 6월 1일 준공식을 앞둔 원산 육아원, 애육원을 현지지도하셨다"고 전했다.

육아원과 애육원은 각각 우리의 탁아소와 유치원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고아를 돌보는 북한의 보육시설이다.





김 제1위원장은 원산 육아원과 애육원 건설 현장을 지난 2월과 4월 등 두차례 찾아 국제아동절에 준공식을 치러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완공된 고아원을 둘러보고서 "원아들이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게 모든 요소요소를 흠잡을 데 없이 꾸려놓았다"며 특히 300석 규모의 애육원 식당이 마음에 든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완공된 원산 고아원 찾은 김정은(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북한의 '어린이날'인 국제아동절을 맞아 고아원인 강원도 원산 애육원, 육아원을 찾았다고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완공된 애육원과 육아원을 보고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창조물"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어 "볼수록 황홀한 이런 멋쟁이 아동궁전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라며 "부모 없는 아이들을 당과 국가가 전적으로 맡아 돌봐주는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창조물"이라고 강조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날 준공식과 관련 "준공 테이프를 아이들이 끊게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고아원 방문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리재일 당 제1부부장, 조용원 당 부부장이 수행했다.

NK투데이 » 북한, 도마다 육아원, 애육원 새로 건설 중

NK투데이 » 북한, 도마다 육아원, 애육원 새로 건설 중


북한, 도마다 육아원, 애육원 새로 건설 중
사회 2015-11-26

북한이 평양뿐 아니라 각 도의 주요 도시마다 육아원과 애육원(고아원)을 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난 19일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의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위성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평양과 원산에 이어 함경북도 청진시와 평안북도 사리원시 등 전국에 모두 6개의 육아원과 애육원을 같은 형태로 짓고 있다고 밝혔다.

멜빈 연구원은 북한이 각 도의 중심 도시마다 육아원과 애육원을 짓는 추세를 볼 때 앞으로 황해남도 해주와 남포시, 라선시 등에도 똑같은 육아원과 애육원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을 하면서 특히 북한의 장애인과 고아들을 많이 지원하는 국제푸른나무 신영순 공동대표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황해북도 사리원과 함경북도 청진, 황해남도 등 북한이 각 도에 고아원 건물을 다 크게 새로 짓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리원 애육원 원아들 ⓒ국제푸른나무

신영순 대표는 지난 4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원산과 사리원에서 고아들을 위해 정부에서 건물을 크게 신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육아원은 취학 전 고아 아동을 애육원은 유치원 나이의 고아 아동을 돌보는 시설이다.

북한은 지난 2014년 10월 26일 평양 육아원과 애육원을 완공했으며 2015년 6월 1일에는 강원도 원산에 있는 육아원과 애육원 준공식을 열었다.

그리고 11월 17일에는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육아원과 애육원이 완공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북한은 경제 여건이 나아지면서 고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새해 첫날 평양 애육원과 육아원을 방문하고 6월 1일 있었던 원산 육아원, 애육원 준공식을 직접 챙기는 등 틈만 나면 애육원과 육아원을 강조하고 있다.


애육원을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 ⓒ인민망

그리고 이번에 확인된 것처럼 전국적으로 육아원과 애육원을 새로 짓고 있고, 주요 명절이나 기념일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육아원과 애육원 아동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는 등 관심을 쏟고 있다.

이동훈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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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결백 강조하는 만경대고향집’ - 통일뉴스

‘청렴결백 강조하는 만경대고향집’ - 통일뉴스

청렴결백 강조하는 만경대고향집’<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 ③>
김양희 객원기자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08.10.13

본사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평화3000’은 주요 대북 협력사업 중의 하나인 장충성당에 있는 콩우유공장을 현장방문했으며, 아울러 평양시내-백두산-묘향산을 참관하였다.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면서 느낀 방북기를 일기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김 기자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일기를 작성한 적이 있기에 이번 방북기 제목은 구별을 위해 ‘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로 한다. / 편집자 주



▲ 만경대고향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평화3000' 방북단.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만경대고향집은 북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적지이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관을 해야 한다. 북측 안내원인 김철웅(프란체스코) 부회장은 참관에 앞서 “다른 조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헐~불미스러운 일이라니...궁금한 우리는 “대체 어떤 일이죠?” 물었다.

김 부회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까부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북녘은 몇 시까지 모이자는 약속에 늦거나 가지 말라는 곳을 가는 등 정말 말을 듣지 않는 남녘 사람들을 보고 “남측 사람들 열 명 줄 세우기보다 참새 10마리 줄 세우기가 쉽다”고 했었다. 이제는 돌출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참새 5마리 줄 세우는 것 정도로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자유분방한(?) 남녘 사람들을 몇 사람의 안내원으로는 영 감당하기 어려운가 보다.

‘만 가지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는 만경대



▲ 만경대고향집 해설강사 김희영 씨.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만경대고향집에서 김희영 해설강사는 설명을 시작한다.

김일성 주석이 탄생한 고향인 만경대는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이름난 곳이었다. 고향집 앞에 있는 산이 바로 남산인데 남산에 오르면 ‘만 가지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고 해 그 일대를 만경대라고 이름 짓고 남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만경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워낙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인지라 지주들은 산을 경쟁적으로 사 조상묘를 만들었고 때문에 이를 지키는 산당지기들이 많았단다.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집도 지주의 산당집으로 김 주석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 씨가 1862년 평양지주의 땅을 봐주기로 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와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1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은 이곳에서 태어나 8살까지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혁명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떠났다. 12살 때는 ‘조선에 태어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혼자서 천리 길을 걸어 조국으로 나오고 이후 2년간 창덕학교에서 공부를 했단다.

14살 때는 아버지가 일본놈들에게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혁명의 길에 나섰고 20년 만에야 나라를 찾고 고향에 돌아왔다고 한다.

▲ 만경대고향집은 북측인민들도 참관을 자주 오는 곳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해설강사는 숨도 한번 내쉬지 않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수령님의 일가는 4대 100여 년 동안 만경대에서 살면서 모두 나라를 찾는 혁명의 길에 나서 한생을 바치셨다”고 덧붙였다.

만경대고향집에는 일가가 쓰던 물레, 베틀, 작두, 멍석, 책상 등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멍석은 광복 후 김 주석이 집에 돌아와 잠을 잘 때 이부자리가 모자라 멍석을 깔고 거적을 덮고 잔 것이라고 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 어머니가 사용한 물동이는 원래 검은색이었으나 하도 기우고 때워서 흰동이처럼 보일정도다. 특히 이곳에는 134년이 된 몹시 일그러진 독이 있는데 이것은 김 주석의 증조할머니가 형편이 어려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독을 사온 것이라고 한다.

증조할머니는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 “내가 이 독을 사올 때 남들은 비웃었지만 독 모양이 흉하다고 장맛이야 변하겠냐”며 “앞으로 이 독 옆에 보기 좋은 독을 옆에 나란히 세워둘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올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방 후 김일성 주석이 이곳을 찾았을 때 수행원들이 “참 생활이 어려우셨다”고 하자 김 주석은 “해방 전에는 모두 어려웠었다”며 “이 독을 만년 이상 지키라”고 했단다.

안채의 벽면 액자에는 김일성 주석과 그의 가족들의 사진, 해방 후 이곳을 찾은 김 주석이 할머니와 상봉하며 찍은 사진이 있다.

김 주석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방투쟁 중에 중국에서 죽었는데 김 주석의 할머니는 손자의 품에 안겨 “아버지 어머니는 어쩌고 너만 돌아왔냐”며 울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도 김일성 주석의 일가는 다른 농민들과 똑같이 농토를 부여 받고 농사를 지었고 이곳에서 계속 살았다고 한다.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이곳을 방문한 김구 선생은 고향집에 들어오기 전, 김일성 주석의 할아버지가 비단옷에 기와집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농민복에 밭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김 주석의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한 나라의 국가수반인데 왜 이리 험한 농사를 짓느냐”물었고 이에 김 주석의 할아버지는 “손주는 수령이지만 나는 농민이다”며 “예로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기 때문에 내가 농사를 열심히 잘 지어야 손주의 정치도 잘 될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김구 선생은 “김일성 수령이 탄생한 가정은 가장 애국적, 혁명적이며 가장 인민적”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올해 초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가 청탁과 함께 30억원을 수수해 구속된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김옥희 씨는 대통령 부인의 친언니 행세를 하며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에 공천되도록 도와주겠다며 돈을 받았고, 이는 현직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로 워낙 대형사건이어서 이슈가 됐었다. 김윤옥 씨 외에도 대통령의 셋째 사위 조현범 씨의 주가 조작 연루 의혹 사건,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국방부 납품 청탁비리 등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선 끊임없이 친인척, 측근 비리가 터져 나왔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만 하면 정말 눈이 확 도는 건지, 주변 사람들이 가만 놔두질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 외에도 이전에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김 주석의 할아버지가 그때 정말 그렇게 말을 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해설강사의 말을 그대로 듣자면 우리 정치인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도 꼭 만경대고향집에 방문해 이런 면은 꼭 좀 배웠으면 한다.

만경대혁명사적관

▲ 만경대혁명사적관.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만경대혁명사적관은 김일성 주석의 혁명업적과 일가들의 항일 투쟁업적을 전하기 위해 1970년에 만들어진 사적관이다. 고향집에서 150m 거리에 있는 이곳은 6개의 방으로 나뉘어 각 시기별로 정리가 되어 있다.

만경대혁명사적관 입구에는 각국 국가수반들의 기념식수들이 가득하다. 만경대고향집은 물론 사적관에도 자녀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은 가족들은 물론 직장, 학교 등 단위별로 찾은 단체참관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이들은 남측 참관단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쑥스러워 하면서도 표정이 밝다.

▲ 만경대혁명사적관 입구에는 각국 국가수반들의 기념식수들이 가득하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만경대혁명사적관을 향해 가면서 일행 중의 하나가 “금강산과 묘향산 중 어느 산이 더 아름답냐?”고 묻자 김철웅 부회장은 “금강산은 미끈한 미남의 성격으로 남성미가 뛰어나고 묘향산은 묘하게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산으로 여성미가 뛰어나다”고 답했다.

이에 내가 “아! 그럼 여자는 금강산을 좋아하고 남자는 묘향산을 좋아하나요?”하며 농담을 던지자 김 부회장은 정색을 하며 나를 빤히 보더니 “개인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고 한다. (김 부회장님! 저 그때 그냥 농담 던진 거예요. 너무 정색하셔서 좀 부끄러웠어요.^^)

사적관에 도착한 해설강사는 “수령님은 1912년 4월 15일에 태어나셨는데 이때는 모두가 알다시피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암흑의 시기였다”며 “수령님의 탄생이 있었기에 주체조선이 있고 새 시대를 열은 것이라 이곳을 우리 인민들은 태양을 받드는 혁명의 성지로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첫 번째 방에는 김 주석의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내용이 있다. 증조할아버지는 제너럴셔먼호를 격침시키는 투쟁에 앞장섰다 하고 아버지는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 일제에 의해 두 차례나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증조할머니는 물론 어머니 역시 남편은 물론 자식까지 모두 혁명의 길에 내몰며 애국의 가풍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역사에도 유래 없는 혁명적인 가정이라고 해설강사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랑을 한다.

지금으로 치면 소위 ‘엄친아’였던 김 주석

▲ 만경대고향집 근처를 북측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유년 시기의 자료들을 모아둔 방에서 해설강사는 “세상 사람들이 수령님을 가르며 하늘이 내린 전설적인 위인이라고 칭송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김 주석의 이름은 ‘성주’로 김 주석의 아버지가 나라의 기둥이 되어달라는 뜻으로 이룰 ‘성(成)’, 기둥 ‘주(柱)’라는 이름을 썼으나 후에 함께 혁명에 나선 이들이 조선의 태양이 되길 바라며 ‘일성(日成)’이라는 이름을 바쳤고 그 이름을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어려서 글을 가르쳐주자 김 주석은 자음과 모음의 결합원리를 알고 스스로 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성주는 배우지 않고도 글을 아는 인물”이라 칭송을 했단다. 어머니가 그동안 배운 것을 써보라 했더니 김 주석은 4살에 ‘조선독립’이라고 썼단다.

나이가 어렸으나 조선의 가장 절박함을 심장으로부터 알았던 것이라고 해설강사는 강조했다.

관찰력 또한 높아 명절을 맞아 아버지가 이웃에서 빌려온 축음기를 보고 사람들은 작은 사람이나 강아지가 그 속에 들어가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했으나 어른들이 없는 틈에 모두 분해를 해 기계적 원리로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비범함과 장군예지를 가진 김 주석은 놀이를 즐겨도 머리를 쓰는 씨름이나 군사놀이를 즐겼으며 아이들의 대장을 맡곤 했단다.

그러면서도 자신들도 어려웠으나 발 벗은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짚신을 벗어주곤 해 후에 동무들이 만경봉 일대에서 김 주석의 짚신을 신어보지 않은 아이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회상할 정도의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김 주석 5살에 아버지가 일제군사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았고 6살에는 철창에 갇힌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원한을 느꼈고 7살에는 ‘3.1인민봉기’에 30리가 넘는 거리를 걸어 나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단다.

이때 김 주석은 사람을 죽고 죽이는 모습을 처음 봤고 죽으면서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큰 뜻을 품었다고 한다.

7살에는 아버지와 함께 길을 떠나며 일제가 횡포를 부리지 않는 곳을 찾았으나 우리 땅 끝까지 일본이 자신의 땅인 양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 전체가 하나의 감옥 같다”며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겠지만 가장 슬픈 것은 나라를 잃은 슬픔이다”고 말했다 한다.

망국의 설움을 갖고 중국에 건너가 공부를 한 김 주석은 늘 1등을 도맡아 하곤 해 교사와 학부모들은 “김성주 학생처럼만 해라”라고 했단다.

지금으로 치면 김 주석은 소위 ‘엄친아’(엄마친구 아들이라는 뜻으로 엄마들이 “내 친구 아들은 1등만 하는 우등생이며 또 어찌나 착한지 성품도 뛰어나고 돈도 잘 벌고...한단다. 너는 뭐니?”하는 것을 빗대 모든 것에 뛰어난 사람을 지칭함)였던 셈이다.

공부도 잘하고 용맹하고 게다가 따뜻한 마음까지 갖고 어려서부터 남달랐다니 엄친아 중에서도 1등 엄친아가 아닌가, 어렸을 때 만경대와 중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무들이 김 주석 때문에 부모님께 많이 혼났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수령님의 고향은 곧 나의 고향입니다”

▲ 휴식시간에 해설강사(맨 우측)가 사향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또 다른 방에서는 김 주석이 20년 만에 나라를 찾고 고향에 돌아온 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46년 1월 1일 이곳에 처음 와 “수령님의 고향은 곧 나의 고향입니다”며 “백두산이 내가 나서 자란 혁명의 요람이라면 만경대는 내가 직접 수령님의 어린 시절을 따라 배운 일가 분들의 고향과 영향을 받으며 학업의 뜻을 키운 유서 깊은 곳입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길고 긴 해설이 끝나고 사적관에서 나오자 해설강사는 일행들이 일부 화장실에 간 사이 ‘사향가’를 애절하게 불렀다. 사향가는 김일성 주석이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하면서 고향을 그리며 만든 노래라고 한다.

만경대-《조선의 오늘》

만경대-《조선의 오늘》

만경대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에 위치하고있는 만경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을 보내신 유서깊은 곳이다.
주체1(1912)년 4월 15일과 함께 암흑에 짓눌리고 원한이 서리였던 조국강산에 려명이 밝았고 우리 인민은 력사의 새시대를 맞이하게 되였다.
만경대는 예로부터 평양8경과 함께 명승지로 이름높은 고장이다. 만경대의 대동강기슭에 있는 해발높이 45m의 산봉우리를 만경봉이라 부른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일만경치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다고 하여 그 이름을 《만경봉》이라 지었고 그 기슭에 아늑히 들어앉은 마을도 만경대라고 불러왔다.
봉우리의 남서쪽기슭에는 만경대고향집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고향집은 안채와 바깥채로 되여있는데 안채는 부엌과 세개의 방으로 되여있으며 바깥채는 자그마한 세개의 헛간으로 되여있다. 
고향집에는 모진 고난속에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대를 이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싸워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일가분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적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만경대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할아버님과 할머님, 아버님과 어머님의 묘가 안치되여있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어린시절사적이 깃들어있는 우물, 들메나무, 무지개잡이소나무, 쎌매바위, 군함바위, 샘물터, 그네터, 씨름터, 학습터, 낚시터 등이 있다. 
만경대혁명사적구역에는 또한 만경대혁명사적관, 조국개선나루터 등이 있다. 
이와 함께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는 백양나무, 순화학교, 동림선창, 선생님께서 주체7(1918)년에 지으신 시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새겨넣어 세운 기념비, 강반석녀사의 투쟁업적을 전하는 밤나무골사적지, 미제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키는 싸움의 앞장에 서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의 투쟁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세워진 곤유섬혁명사적기념비 《만경대봄빛속에 애국의 뜻 길이 빛나리》가 있다. 
  만경대지구에는 만경대혁명학원만경대학생소년궁전이 있으며 만경대유희장만경대물놀이장만경대천석식당 등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하는 문화휴식터들도 있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따라배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이곳을 찾고있다.

                    
 
 세계의 진보적인민들도 만경대를 그칠새없이 찾아오고있다. 만경대를 찾는 외국의 벗들은 한결같이 《만경대는 위대한 태양이 솟아오른 곳》, 《만경대는 사람들을 참다운 혁명가, 불굴의 투사로 키우는 혁명의 학교》라고 높이 칭송하고있다.  

제30차 송도원국제소년야영에 참가한 여러 나라 야영단들 만경대 방문, 여러곳 참관-《조선의 오늘》

제30차 송도원국제소년야영에 참가한 여러 나라 야영단들 만경대 방문, 여러곳 참관-《조선의 오늘》


주체104(2015)년 8월 7일

제30차 송도원국제소년야영에 참가한 여러 나라 야영단들이 6일 만경대를 방문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을 보내시며 혁명의 큰뜻을 키우신 만경대고향집을 찾은 야영단성원들은 소중히 보존되여있는 사적물들을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그들은 만경대옛집방문을 기념하여 사진을 찍은 다음 만경봉의 혁명사적들을 참관하였다.





로씨야야영단(1조) 단장 아르쬼 쌈쏘노브는 만경대고향집은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유서깊은 곳이라고 하면서 그이는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일떠세우신 위대한분이시라고 말하였다.

여러 나라 야영단들은 이밖에 문수물놀이장, 릉라곱등어관, 평양학생소년궁전 등을 참관하였다.

NK투데이 » [CJ Kang 방북기14]만경대 고향집에서(2)

NK투데이 » [CJ Kang 방북기14]만경대 고향집에서(2)

고향집에서 한참 동안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나오니 밖엔 남녀 인민군인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북부조국을 고향으로 둔 저 인민군인들이 고향집에서 김 주석을 느끼는 마음은 과연 어떨까? 김 주석의 태어나고 자란 곳을 찾는 그 마음을 내가 과연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남한에서 내가 교육을 받을 때 당시 고등학교 교과서에선 북의 김일성 주석은 가짜라고 했다. 항일무장독립항쟁을 한 김일성 장군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어야 하는데 막상 평양의 군중대회에 나타난 김일성은 나이 서른셋의 젊은이여서 군중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김일성 장군은 따로 있었다고 교과서에 실렸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그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밝혀진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후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 거짓에 우리들은 세뇌되었던 것이다. 그런 거짓을 꾸며서 온 나라와 민중을 세뇌한 자는 누구인가?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남한의 세대들이 북한을 바로 알고 바로 볼 수는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머릿속을 세뇌당하고 나면 살아가면서 어떤 일로 인하여 큰 충격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없는 이상 평생을 진실과는 동떨어진 거짓을 진실로 믿고 그럭저럭 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란 것이 스스로의 유지를 위해서 교육과 매스컴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들로 대부분의 우리들의 생각은 이뤄져있다. 그런 연유로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새로운 것을 들으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내 생각과 다른 소리를 듣는 것에는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 북의 인민과 남의 민중이 서로 생각하고 믿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래 먼저 진실을 바로 알고, 그 차이를 좁혀나가며, 서로 이해하는 것이 통일운동의 시작이 아닐까? 나의 방문기가 그렇게 진실을 바로 알게 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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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서 한참 동안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나오니 밖엔 남녀 인민군인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북부조국을 고향으로 둔 저 인민군인들이 고향집에서 김 주석을 느끼는 마음은 과연 어떨까? 김 주석의 태어나고 자란 곳을 찾는 그 마음을 내가 과연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남한에서 내가 교육을 받을 때 당시 고등학교 교과서에선 북의 김일성 주석은 가짜라고 했다. 항일무장독립항쟁을 한 김일성 장군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어야 하는데 막상 평양의 군중대회에 나타난 김일성은 나이 서른셋의 젊은이여서 군중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김일성 장군은 따로 있었다고 교과서에 실렸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그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밝혀진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후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 거짓에 우리들은 세뇌되었던 것이다. 그런 거짓을 꾸며서 온 나라와 민중을 세뇌한 자는 누구인가?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남한의 세대들이 북한을 바로 알고 바로 볼 수는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머릿속을 세뇌당하고 나면 살아가면서 어떤 일로 인하여 큰 충격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없는 이상 평생을 진실과는 동떨어진 거짓을 진실로 믿고 그럭저럭 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란 것이 스스로의 유지를 위해서 교육과 매스컴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들로 대부분의 우리들의 생각은 이뤄져있다. 그런 연유로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새로운 것을 들으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내 생각과 다른 소리를 듣는 것에는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 북의 인민과 남의 민중이 서로 생각하고 믿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래 먼저 진실을 바로 알고, 그 차이를 좁혀나가며, 서로 이해하는 것이 통일운동의 시작이 아닐까? 나의 방문기가 그렇게 진실을 바로 알게 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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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서 한참 동안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나오니 밖엔 남녀 인민군인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북부조국을 고향으로 둔 저 인민군인들이 고향집에서 김 주석을 느끼는 마음은 과연 어떨까? 김 주석의 태어나고 자란 곳을 찾는 그 마음을 내가 과연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남한에서 내가 교육을 받을 때 당시 고등학교 교과서에선 북의 김일성 주석은 가짜라고 했다. 항일무장독립항쟁을 한 김일성 장군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어야 하는데 막상 평양의 군중대회에 나타난 김일성은 나이 서른셋의 젊은이여서 군중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김일성 장군은 따로 있었다고 교과서에 실렸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그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밝혀진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후에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 거짓에 우리들은 세뇌되었던 것이다. 그런 거짓을 꾸며서 온 나라와 민중을 세뇌한 자는 누구인가?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남한의 세대들이 북한을 바로 알고 바로 볼 수는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머릿속을 세뇌당하고 나면 살아가면서 어떤 일로 인하여 큰 충격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없는 이상 평생을 진실과는 동떨어진 거짓을 진실로 믿고 그럭저럭 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란 것이 스스로의 유지를 위해서 교육과 매스컴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들로 대부분의 우리들의 생각은 이뤄져있다. 그런 연유로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새로운 것을 들으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내 생각과 다른 소리를 듣는 것에는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 북의 인민과 남의 민중이 서로 생각하고 믿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래 먼저 진실을 바로 알고, 그 차이를 좁혀나가며, 서로 이해하는 것이 통일운동의 시작이 아닐까? 나의 방문기가 그렇게 진실을 바로 알게 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만경대고향집

만경대고향집


다함없는 흠모의 마음들이 끝없이 찾아드는 만경대고향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시여 혁명의 큰뜻을 키우시며 어린시절을 보내신 고향집.

이 고향집은 아름다운 만경봉의 한기슭에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고향집은 1860년대에 평양에 살던 지주가 제놈의 산과 묘지를 지키는 사람을 두기 위하여 지은 산당집이였다. 이때 평양 중성리에서 살고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생활이 너무 가난하여 이런 초가 한칸마저 마련할수없는 형편이였으므로 지주놈의 산과 묘지를 보아주기로 하고 이 집을 얻어 만경대로 이사하시였다.

만경대고향집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일가가 대대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고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시며 살아오신 혁명의 집이며 조선의 새 기원이 밝아오고 주체의 위대한 태양이 솟아오른 혁명의 집이다.

열렬한 애국자이신 증조할아버님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이 집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으시고 농사일을 하시면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의 선두에서 위훈을 떨치시였다.

열렬한 애국자들이신 할아버님 김보현선생님과 할머님 리보익녀사께서도 아드님과 손자분들을 모두 나라를 찾기 위한 성스러운 혁명투쟁의 길에 내세우시고 이 집에서 그분들의 투쟁을 뒤받침해 주시였으며 모진 가난과 일제의 박해에도 굴함없이 싸우시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아버님 김형직선생님께서도 이 집에서 탄생하시여 일찍부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혁명투쟁과 후대교육사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시였으며 조선의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께서도 이 집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낳아 키우시였으며 조국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모든것을 바치시였다.

이 집에서 탄생하신 삼촌이신 김형권동지와 동생이신 김철주동지 그리고 4촌동생이신 김원주동지도 열렬한 혁명투사로 성장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불굴의 혁명투쟁을 전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애국주의교양을 받으시면서 혁명의 큰뜻을 키우시였고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시려는 큰뜻을 안으시고 고향집을 떠나시여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심으로써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으며 스무해만에 고향집을 다시 찾으시여 조부모님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였다. 조부모님께서는 손자분이 나라의 장군, 민족의 수령이시였지만 제손으로 농사를 지으시면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이 집에서 소박하게 지내시였다.

고향집에는 지난날 암담하던 세월의 모진 고난속에서 가난하게 사시면서도 대를 이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싸워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일가분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적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고향집은 안채와 바깥채로 되여있는데 안채는 부엌과 세개의 방으로 되여있으며 바깥채는 자그마한 세개의 헛간으로 되여있다.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의 빛나는 귀감으로 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일가분들의 귀중한 사적물들이 보존되여있는 만경대고향집은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영생불멸의 혁명업적과 함께 온 누리에 찬연히 빛나고있다.

북한미술

북한미술

김정일 주체미술론과 북한의 미술



월간미술. 2001. 6월호



1. 북한의 주체미학과 김정일 미술론의 대두



해방이후 북한의 미술사상은 실로 엄청난 형태로 변화를 거쳐왔다. 이는 물론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 Realism에 입각한 유물론적 사고가 중심이 되어 철저한 이념적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 저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소련이나 중국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는 지도자들의 교시에 의한 의식의 변화로 해석되지만 북한의 경우는 어떠한 사회주의 국가보다도 지도자의 교시에 의한 미학적인 구축과 미술경향의 변화가 막대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50여 년간 그들 미술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뒷받침이 되어온 이와같은 사상의 근원은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항일혁명미술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화와 선전화, 판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주체적 문예사상연구모임」과 같은 계기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사상적인 바탕을 구축해왔다.

여기서 주체미학의 근거는 물론 거슬러 올라가 보면 주체사상의 대두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데 김일성이 주체를 논한 것은 1955년의 일이며, 사상에서의 주체라는 용어는 1963년으로 기록되어진다. 이후 김일성과 관계가 소원하던 황장엽이 1970년에 본격적으로 사람과 인민대중을 모든 세계관의 중심이라고 보는 주체철학을 완성하였던 것이 점차 북한식 김일성 유일 통치사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 바로 주체사상의 과정이다.1)

주체미학은 바로 이같은 과정에서 연동적으로 이루어진 사상체계이며, 김일성이 창시한 것처럼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황장엽이 주체사상을 확립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던 바와 같이 핵심적인 이론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북한의 미술철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주도적인 사상적 무장에 있어서 과거에 보여주었던 김일성의 상징적인 위치와는 달리 김정일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북한의 실제로도 1인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깊이 빠진 그의 영화에 대한 광적인 취미에서 나타나듯이 문화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 의하여 많은 미술의 흐름이 실질적으로 주도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은 배경으로 북한은 1972년 4월 만수대기념비, 1975년 10월 왕재산기념비, 1979년 5월 삼지연기념비를 차례로 제작하였으며, 개선문과 단군릉 등을 계속적으로 완성해갔다. 그 중 1970년대에 이루어진 활기있는 작품들의 제작기간은 이른바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역사적인 사업을 달성하는 시기로서 기념비와 조선화를 필두로 무대미술을 비롯, 공예미술, 집단체조배경대미술 등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져서 주체미학의 전성기로 규정하고 있는가 하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체미학」이라는 용어가 본격화된다. 한편 1990년대에는 나름대로 심도있는 이론서가 발간되는 등 조선화와 조각 등에서 구체화되는 내용과 형식의 합리화로 이어지면서 북한식 사회주의미술의 전형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1991년 12월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고 이듬해 4월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원수로 추대되는 등 김정일의 위상이 강화되는 때와 시기를 맞추어2) 발간된 《김정일 미술론》과 《김정일 건축론》등의 연구서들과 함께 대다수의 주체미술사상이 주로 김정일이 중심이 되는 과정으로 나타나게되는 현상을 보이게 되며, 여기서 「김정일 미술론」이라는 용어가 공식화되어진다.

이때부터는 물론 천리마동상과 같은 상징적인 주체조형을 구축한 기존의 김일성교시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3) 상당부분이 김정일의 교시로 대체되어지고 그에 의거한 구체적인 좌표가 제시되고 작품 경향과 주제들이 설정되어지게 된다.

공연에서는 김일성의 교시를 이어받아 김정일의 구체적인 지도로 이루어진「피바다」식의 무대미술을 대표적인 모형으로 하는 혁명기념미술양식의 전성기를 이루게된다.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각본을 썼다고 알려진 이 가극에서4) 김정일은 음악에서도 광적인 취미를 발휘하였는데, 2000곡의 음악을 작곡시킨 다음 직접 수 십 곡을 골라 연습시켰을 정도였으며, 그가 직접관리하는 영화문헌 창고에는 세계 각국의 영화가 1만 5천 편이나 소장되어있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이다.5)

이와같은 형태로 대두되어진 주체예술에서의 김정일이 갖는 영향력이나 그의 사상적인 체계는 미술분야 이외에도 예술전반에 걸쳐 상당한 지도체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60년대 말부터 사상적인 영향력을 형성하다가 1992년 《김정일미술론》이 발간되는 것을 기점으로 김일성이 사망하는 1993년 이후에는 회화나 건축, 공예 등 전 분야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지침으로 작용하여왔다.



2. 김정일미술론의 미학적 관점



1) 북한식 사회주의미술사상의 근원

사회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미술이론은 물론 유물론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며, 유심적 관념론적미학의 대립적인 내용으로서 19세기에 접어들어 양 갈래로 나뉘는 한 주류를 이룬다. 이는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의 기본적인 해석을 계급주의에 기조한 사상적인 근원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더하여 사회주의 미술의 핵심은 막스 레닌주의의 본질이면서 18세기 이전의 봉건적인 사회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중심이 되는 사상적인 전환을 유도하는 혁명적인 사고가 바탕이 된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 중국을 모태로 하는 사회주의미술을 주창하게 되는데, 이를 위하여 김일성은 이미 1950년대부터 미술분야에 있어서도 여러 차례의 교시를 내린다.

《김일성저작집》에서 그는



우리의 미술은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는 참다운 인민적인 미술로 되어야 하며 당과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혁명적인 미술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의 미술이 철저하게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6)



라고 한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당성, 노동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에 기초한 미술사상의 시작은 사회주의의 전형적인 내용으로 당과 혁명에 기여하는 민족적인 형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인민대중을 위한 노동계급을 위한 미술의 성격은 종교적인 미학관이나 자연관, 인간본질에 대한 사유체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근대 이전의 왕권제도나 신권제도의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는 김정일의 교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정치적인 식견과 예술적인 기량이 높은 미술가는 사물현상을 혁명적 관점에서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며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한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7) 이와같은 사회, 역사적인 제한성은 자본주의 미술이 현실에 기조하지 못한 미학관으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객관성을 부인하였다는 점에서 형식주의적인 사상으로 규정되고, 이른바 제국주의 미학관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김일성이 주창한 사상적인 주체적 미학관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 이르러서 급기야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자주시대를 대표는 20세기 대 부흥시대」라는 구호 하에 피바다식의 무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가면서 미술분야에서도 이념적인 주제와 기법의 새장을 열어가게 된다.

결국 이는 미술분야의 주체사상적 대표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조선화」의 형성이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강조되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국제적으로 지극히 폐쇄적인 자주이면서 북한 내부에서는 과거의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서방세계의 이질적인 외세를 극복하며, 민족적인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의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구사되었다.

이같은 예로서는 고대 희랍과 로마시대의 흉상과 인물들을 석고로 제작하여 입시의 필수과목처럼 하고 있는 우리와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이미 오래 전에 이를 폐기 시켰다는 평양예술대학의 경우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평가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부분이지만 모든 명칭과 기법을 나름대로는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으로 바꾸어갔다. 서예에 있어서 청봉체, 천리마체, 붉은기체 등은 대표적인 예로서 그들만의 자주적인 것을 구축해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 인간과 현실중심의 미적 기준

주체미학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황장엽이 김일성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에서도 가장 우선이지만 사람과 인민대중의 중요성이다. 즉,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 형식주의, 복고주의, 수정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향은 철저히 비판되어야 하며, 모든 미적인 기준이 인간과 인민대중에게 집중되어야한다는 주체사상에서의 이론을 미술분야에서도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미적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크게 사람, 사회, 자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8)



주체의 미학관은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미의 기준으로 새롭게 제기하였다.9)



라고 말한 김정일의 말에서 주체미학의 기초가 바로 인간의 현실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점은 자연주의의 유심론적인 사고나 예술지상주의적인 사고에 정반대되는 내용이며, 인민을 위한 인민의 미학적 사고를 결정지우는 것으로서 모든 사물이 인간의 삶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으로 유물사관으로서 인간과 사물의 객관세계의 사물현상을 중시하면서 사물현상의 아름다움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상대적인 규정성을 강조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미의 판단이 된다고 보고 있으며, 이때 자주적인 인간의 요구와 부합하는 미적 요소로 인하여 미의 가치를 발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주성을 가진 존재, 자주적인 사회적 존재입니다. 자주성은 세계와 자 기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인간의 속성입니다. 자주성으로 하여 사람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사회의 온갖 예속을 반대하며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갑니다.10)



김정일의 이같은 교시는 바로 인간이 자주적인 사회적 존재임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자연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말로 해석되어지는 내용이며, 물질적인 대상에 대한 표상으로 체험되며 사회와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조직과 환경, 구체적인 인간과 그의 생활의 현상으로 체험되어진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생활은 새롭고 진보적이며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속에 있 다. 투쟁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은 가장 고상하고 아름답다. 온갖 낡고 보수적이며 반동적인 것을 쓸어버리고 새롭고 진보적인 것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은 그 지향에 있어서 고상할 뿐아니라 그 과정이 전투적이고 랑만적이며 아름다운 것이다.11)



김정일의 현실적인 투쟁이란 다름 아닌 노동과 반체재에 대한 수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만 모든 세계관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개념에는 현실적인 사회의식을 내포하는 사상이 바탕이 되어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더불어서 이는 곧 그의 역사성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이론과 종자론 즉 생활의 사상적인 알맹이인 소재와 주제를 포함한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인 핵심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된다.12)

이로 인하여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삼대 사회적 존재의 개념이 뒷받침되며, 유일한 지배자, 개조자로서 인간의 이익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사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복무하여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아름다움을 인간들의 계급적인 처지와 역사적인 환경에서 고찰해가야 한다는 김정일미학의 요체인 것이다.



3) 예술미와 숭고미

북한에서는 미의 관점에 대한 시각 역시 명료한 사상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모택동식의 노동현장과 건설현장을 비롯하여 해방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인민군의 전투과정과 혁명투쟁을 중심으로 하여 기여하는 주제와 선동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어지면서 순수나 우아보다는 숭고한 비장의 미감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의 사상이 미술전반에 강조되고 있다.

이 역시 주체미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미의 본질을 인간위주로 설정하고 유물론적인 사고를 구축하면서 사회현실에 적합한 예술적인 표현을 요구하게되는데, 유미적인 미적 판단이나 감응이 비판되며, 현실의 아름다움을 반영해야한다는 이론으로 연결하여 예술미의 원천이 바로 인민대중이며 사회 그 자체라는 핵심적인 사고를 진전시킨다.13)

이와같은 사고에 의하여 작가는 언제나 계급적인 입장과 사상적 관점을 가져야하며, 사상이 담기지 않은 작품은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미학의 한 관점을 형성함으로서 사회주의미학의 한 전형을 세우게된다. 한편 이는 미의 평가가 계급적, 민족적, 역사적인 성을 지닌다는 이론으로 귀결되어지며, 여기서 모든 사물과 자연까지도 인간을 위하여는 개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1211고지는 자연적인 속성에 있어서 다른 자연과 큰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이 고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뜨거운 미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군대의 영웅적인 기상이 스며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혁명의 시대에 사는 인민대중과 같이 숨쉬고 그들과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는 작품을 요구하게 되며.14) 결국 미적 범주를 장엄한 투쟁과 영웅적인 위훈, 숭고한 사상감정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미적 범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까운 것으로 숭고미를 들고 있다.

그 한 예로서 백두산은 혁명의 산으로서 항일혁명의 삶과 투쟁의 영광을 느낄 수 있는 숭고함이 서려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숭고함은 영웅적인 것과 직결되며, 더 나아가 영웅적인 투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진실로 사실주의적이고 혁명적인 문학과 예술은 인간생활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15)



라고 한 김정일의 사상에서나 “계급적 립장”“사상관점”등의 표현으로 말하고 있듯이, 현실적인 반영이나 투쟁을 소재로 한 숭고한 표현이야말로 모든 미적 범주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라는 객관적인 사고를 뒷받침하는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미학체계를 나타낸다.



4) 내용과 형식의 조화

북한에서는 사실주의적인 미술을 강조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성을 강조한다. 이는 종교화나 자본주의적인 미술이 형식에 치우친 경향이라고 비판하면서 신비주의와 종교적 설교를 중심으로 허황 될 뿐, 인민대중의 사상성을 내포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이에 관해서도 김정일은



내용은 형식을 통해 표현되면서 형식을 규정하므로 예술의 형식은 언제나 내용 의 형식으로 된다. 16)



라는 말을 간결하게 남기고 있는데 이는 곧 김재홍의 해석대로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서 규정적이며 결정적인 것은 내용이며, 형식은 내용이 요구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고를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다.17)

그 성공적인 예로 천리마 동상을 말하고 있다. 이 동상은 심오한 사상성과 예술적 형식이 결합을 이루는 작품으로서 숭고한 혁명적인 의지와 약동하는 기상, 열렬한 찬양, 정신적인 풍모, 웅장한 조형적인 형식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참다운 조형미는 언제나 내용의 아름다움, 즉 사상성을 전제로 하며, 아름다운 내용에 의하여 밑받침된다는 이론을 전개하게 되는데,18)이는 곧 그들이 말하는 종자론에 귀결되어지는 절대적인 미학적 관점을 형성하게 된다.

2017-05-28

시사저널 - ‘주체’ 한계 드러낸 북한 미술

시사저널 - ‘주체’ 한계 드러낸 북한 미술



‘주체’ 한계 드러낸 북한 미술

서울서 처음 열린 대규모 미술전…창조성 약하고 조선화만 변화 징후

그림해설 이구열 (미술평론가) ㅣ 승인 1992.06.11(목)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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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필연은 새로운 흐름의 연속이자 귀착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염원의 개선과 실현으로 이어지는 결실의 진행이기도 하다.

지난 5월23일 서울의 국가적 문화기구인 예술의 전당에서는 남한에서 처음 종합적인 북한 미술전이 열려, 미술계는 무론 관심있는 일반 시민,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둔 연령층의 발길이 붐볐다. 지난해 북한과의 직거래 구상무역 때 들어왔다는 갖가지 미수작품과 공예품 약 2만점 중에서 적절히 고른 1백40여점이었다. 곧 조선화(남한의 전통적 한국화 성격)를 비롯하여 유화 판화 조각 수예(자수) 옥석공예 및 각종 도자기들이다.

이 전시는 정상적이고 조직적인 남북 미술교류로 실현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북한 미술전이 서울의 하늘 밑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연전의 전통음악 연주 교류등 남북관계 변화추세와 연관된 또 하나의 단계적 실현이라는 획기적 의미를 지닌다.

이 북한미술 전시장에서 관람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시각으로 반응했으리라 생각된다. 일반 관람자들은 무엇보다도 북한체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일변도와, 그를 인민들의 미감과 정서에 합치되는 민족적 ‘주체미술’로 강변하고 있는 실태의 일단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전까지의 여러 가지 궁금증과 호기심을 어느 정도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가와 관계 전문가 및 안목인들은 ‘예상했던 수준’으로 평가절하하거나, 혹은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이 미술에도 그대로 작용하는 실상에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사실 남한의 자유롭고 다양한 현대미술동향의 가치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시각으로 본다면 오로지 김일성 교시와 당의 문예정책으로 철저히 통제돼있는 이른 바 ‘주체미술’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내용을 고수하는 형태는 참된 예술적 창작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많다. 그러나 남북미술 비교에서 그러한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는 북한 체제의 통제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현실을 그것대로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북한 미술전에 가장 많이 전시돼 조선화와 그밖의 유화?판화는 수입상사의 사전 고려가 있었던 듯, 정치적 주제가 사실상 나타나 있지 않은 순수한 현실미의 자연풍경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북한에서 말하는 ‘명승지풍경화’로서 사계절의 변호미가 선명하게 강조된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동해바다, 대동강과 평양 일원의 풍정미가 사실적으로 나타난 작품들이었다.

특히 조선화의 경우 과거에는 서양화법의 유화. 수채화에서나 볼 수 있던 다채로운 사실적 색채기법과 명확한 묘사력을 효과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말하는 성과의 실상을 충분히 보게 된다. 그러나 몇몇 작품에서는 작가가 매우 자유롭게 구사한 수묵 필치와 담채의 분위기 존중 등 개성적 의도가 드러나 있기도 하여 다소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미 말했듯이 이번 서울에서의 북한미술전에는 회화·조각에서 저쪽의 체제적 본질인 인민성과 혁명성에 충실하게 대대적으로 제작하는, 김일성 수령 形象化(사실은 우상화) 주제‘와 ’항일 무장투쟁 주제‘, 그밖의 ’사회주의 건설의 인민투쟁 형상화‘같은 작품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보기좋게만 그려진 풍경화에 대해서도 북한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가치간으로 색칠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당중앙(김정일)의 현명한 영도 밑에 천지개벽한 조국의 거창한 자연미와 수려한 금수강산을 노래하며, 관중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키워주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이는 북한 《조선예술》(1986)에 게재된 한 미술평론가의 논평이었다)

북한의 미술



현대미술관연구 제 2 집



북한의 미술

유준상

머릿글 1) 주체사상과 주체미술
2)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문화어」 맺는 말

1) 주체사상과 주체미술

북한미술의 전체성(全體性)의 성격은 견고한 콘크리트구조물을 연상 시킬만큼 확고하고 분명하다. 남한의 경우처럼 유파(流派)라던가 양식 또는 이념등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미술형식이 공존하고, 따라서 이것을 이해하기위해 개별적인 차이를 판독해야 되는 번 거로움이, 북한미술의 경우 전혀 필요 없는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의 사회구조의 구조적 특성 때문으로 생각되며, 북한의 미술가도 다른 사회적분업과 일체를 형성하는 기반구조의 단위(單位)에 불과 하다는걸 말해준다고 하겠다. 북한미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제산하는 미술가의 개별적인 관심으로부터 유발되는게 아니라, 일의적 필연으로 연역 (演縡)된 교시(敎示)에 따라 북한체제 그것을 특징지우는 법칙을 지키는데서만 미술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가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북한사회를 구성하는 구조 적단위로서의 「개체」를 뜻하는게 된다. 여기서의 개체는 남한의 미술가처럼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예술적 개성으로서의 개인을 뜻하는게 아니라, 북한사회의 「주체적」인 전체성을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개체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한 사회의 전체성은 여러 요소들로 구성되지만 그 요소의 하나 하나는 그 사회의 체제를 특징 지우는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미술가는 개별의 자율과 일회성을 실험하는데서 미술을 발휘 하는건 아니며, 사회의 체계가 요구하는 전체성을 충실히 이행하는데서 미 술을 발휘한다고 하겠다. 이것이「주체미술」이다.



주체철학은 처음으로 자주성과 창의성, 의식성이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 적특성을 이룬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인간에 대한 완벽한 해명을 주었으며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올바른 해명을 주었습니다....
(김정일 : "주체철학의 이해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람」은 앞에서 비유했던 자율적이고 일회적인 개성은 아니다. 다르게 말해서 (귀족처럼 사색(思索))하는 사람도 아니며 (사대부처럼 감수(感受))하는 사람도 아니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사람」은 자기생산적이고 능동적인 태세로서의 「주체」를 뜻한다.

김정일은 마르퐈스레 닌주의적 입장에 기초해서 자신의 주체사상을 발전시켰다고 밝히고 있듯이 여기서 우리는 「주체사상」의 실체가 「노동계급」이라는걸 알게 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수령 (김일성=필자주)의 혁명사상을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 구현하기 위한 역사적 위업이다. 때문에 근로인민대중을 수령의 위대성과 불멸의 업적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앞에 나선 가장 중대한 기본과업으로 된다.
(조인규 . "조선예술" M85. 8월호)

미술가들이 우리 당이 걸어온 간고하고 줄기찬 혁명의 길과 우리 인민의 영 웅적 투쟁 모습들을 미술작품에서 훌륭히 형상해낸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미 술작품의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표현수법과 기교에서도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 졌습니다.
(김일성 : "사회주의문학예술론" 432p)위에 인용한 조인규의「노동계급」과 김일성의「미술가들」은 사회적분업(社會的分業)의 직종(職種)으로 유별되는 호칭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또는 신분위계의 칭호로 생각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유세계의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통념(通念) 으로서의 지식관이라고 하겠다.

상대적으로 말해서「예술」은 하나의「직업」(메티에)인 가.. 의 문제가 여기서 말하는 미술가의「주체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는 뜻이며, 그 자물쇠는 북한인「공화국」의 사회체제(다른 공산국가에 있어서도 얼마전 까지는 획일적 으로 적용되었던....)속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북한의 미술가는「미술가동맹」에 가입함으로서「미술가」가 되며, 미술을 제산(製産) 하는「주체」가 된다. 자유진영의 경우처럼 자율직업의 직종(?)은 아니며 결코 개별적인 선택 또는 가치관 혹은 관심으로 유발되는건 아니다.

예술의 기원을 노동설로 보건 제기설로 보건간에 그 감성적 유발원은 유회(에퍼큐로스) 였다는게 전체주의 사회체제가 갖는 공퉁적인 견해이다. 멀리는 그리스의 「공화룩」에서 예술가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겼으며, 가깝게는 1930년대의 나찌독일인「민족사회주의」 체제가 예술박멸운동(반달리즘)을 야기했던게 그 실례이다.

이러한 거부반응은 예술에 관한 「가치관」의 대립되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근세에 대두된 사회학파의 입장에선 (미적 능력의 이상한 발달은, 도덕적인 견지에서는, 하나의 중대한 병적증세이다)(듀르겜) 로 비치기까지 한다. 예술이 사회적분업과 일체를 형성하는 직업으로 나타나는건 16세기의 「누가」조합(이태리 북구지방)과 화란의「길드」협동조합이다. 한반도에서도 조선조의 태 조원년에 도화서(&#23452;畵暑)라는게 창설되어 한일합병시까지 그런데로 유지되지만, 이것은 사회적 분업도 직종도 아니었다. 사회 그자체가 .미분화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민족예술이라고 자랑하는 고려청자, 조선조의 백자와 목기등을 제산(푸토덕 티브)한 당사자인 「예술가」들은 무명(無名)의 천민(雌民)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이점 남북의 문화행정당국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고유하고 훌륭한 미술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구태여 남의 것을 본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선화를 업수히 여기고 서양화만 내세우려는 것은 민족허 무주의이며 사대주의적 경향입니다. 지금 서방제국주의의 나라들과 자본주의 나 라들에서는 그림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 상화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사상조류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밀려들어오지 못하도륵 강하게 투쟁해야 하겠습니다.
(「사회과학외 의무에 대해서」)위에 인용한 글 가운데의「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상화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사상조류가..」의 「썩어 빠진」「추상화」는 바로 작품을 가리킨다기보다.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주체성」을 뜻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겠다.

그러니까 「썩어라진」주체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상화」밖에 나타날리 없다는 거며, 예술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으로서의 미 술가는 「미술」을 「노동」의 과정을 통해, 즉 (예술적작업)(워크 오브·아트)과 (기능적 작업)(워크 오브 오퍼레이션)의 종합단계에서 실천(푸락시스)될 때 물(物)적인 제작 (포이에시스)이 되는거며 따라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사회적 분업의 입 장에서 보면 물제작적 능(skeuopoetique)과 어렵고 쓰라린 시상(詩想)에 관한 카테고리와 원리의 총체를 일컷는 다고 프랑스의 미학자 E 스리오는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다음의 의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노동계급」 으로서의 「미술가」는 무작정 시키는데로 미술의 일을 해야만 하는가....이다. 결과에 대한 예측(컨텐푸레이션)도 없고 개별로서의 관심과 평가도 없이 다만 기계처럼, 전혀 습관 적으로 어제의 일을 끝없는 미래로 되풀이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고 하겠다. 이것은 「정신위생학」의 기본과제이기도 하다.공산주의는 인간의「자기소외」(괄호: 필자)로서의 사유재산을 적극적으로「지 양」(止場=괄호: 펼자)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성을 진정한 의미로서 획득하는 것이 다.

따라서 공산주의란 사회적인 인간적 존재로 되돌아가는 일이며.... ... 그리고 존재(存在)와 본질(本質)과의 대상화(對象化)와 자기확인과의, 자유와 필연과의, 개(個)와 유(類)의 관계사이의 투쟁의 진정한 해결이기도 하다. 이것은 역사의 불가사이의 해결인 거며, 또한 이것이 해결로 이르는건 자명하다고 하겠다.
(칼·마르크스「경제학·철학노트」)

미술을 창작한다는건 칠한다든가 그린다든가 하는 작업(일)을 거쳐서 실천된다. 제 아무리 고원한 이상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그것은 감각적 확실성으로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제작된 작품은 하나의 결과로서 작가를 떠나, 「자기소외」로서의 물질적존 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자기를 떠나버린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얼마큼 표현할 수 있는지를 반성하게 되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된다. 가령 조각을 예를들면, 자연의 돌에 인간의 정신과 노동이 합쳐서 그것을 조각작품으로 만들 었다고 했을 때, 그 제작과정에선 인간과 돌이 하나로 어우러져 분리될 수 없었으나 일단 작품이 완성되면, 작품은 작가로부터 떨어져나간다.

이경우 조각작품은 인간화(人間化)된 물질(物質)이며,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조각」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인간은 물질을 퉁한 자기생산의 과정을 작업(노동)함으로서 경험하게 된다는 거며, 일단 제작된 작품은 그속에 작가를「자기소외」(自己疏外)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작된 작품은 그 작가의 작업의 역량을 측정하고 반성하게 하는 대상물로 대립된다. 그래서 작가는 더욱 훌륭한 작품을 제작해야 하겠다는 자기 생산의 충동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대상화의「지양」(고칠 것은 고치고 배제할 것은 버려서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 종합시킨다는 뜻.

이 말은 원래 변증법의 개념으로서 (비교적 빈약한 추상적인 상태로부터, 보다 풍족하고 구체적인 상태로 이행시키는 발전을 뜻한다. 정립은 반정립을 낳고 반정립은 정립의 모순을 극복하는 단계에서 종합으로 발전한다는게 그것이다)의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낙원을 건설하자는게 마르크스의「정신위생학」이었다.

그리고 1917년 10월 러시아가 이러한 낙원건설의 선두주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63년을 전후해서 소비에트에서 제기되었던 이른바 (예술논쟁)은 마르크스의「개(個)와 유(類)의 관계사이의 투쟁의 진정한 해결.1을 전혀 「자명」하지 않은 것으로 변질시킨바 있었다.

당시의 수상 후루시쵸프는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는 평화공존 정책을 계속하지만 문학, 예술의 세계는 이데오르기의 세계이기 때문에 국내문제로 제한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을 당성으로서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소비에트는 추 상미술, 전위미술의 경향들이 시도되는 시기였으며, 파스테르나코, 솔제니친, 에프토첸 코등이 소비에트관료제 비판을 일삼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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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술

유준상

머릿글 1) 주체사상과 주체미술
2)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문화어」 맺는 말

2)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문화어」

앞에서도 말했듯이 필자의 북한미술연구는「읽는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필자가 느껴야 했던건, 북한의 미술관계 글은 일종의 규격적인 문장체(文章&#30108;)라는 것이었다. 필자들의 개별성하고는 상관없이 한사람이 기계적으로 쓴게 아닌가고 생각될만큼 글의 구성이 동일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옛날에 (문체는 인품 그것이다)고 배운적이 있는데, (문체는 국가)이다로 연상될만큼 어떤 강제의 면이 있다는걸 느꺽야만 했다. 먼저 북한의「문화어」에 대해서 알아본다.

우리 말을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터를 잘 닦아야 함니다. 우리는 우리 혁명의 참모부가 있고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방면에 걸치는 우리 혁명의 전반적 전략과 전술이 세워지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도록 하여야 하겠 습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룻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과 있는 우리가 혁명의 수도인 평양말을 기 준으로 하여 발전시킨 우리말을 표준어라고 하는 것보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문화어」란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쳐 쓰는 것이 낫습니다.
(김일성「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 데 대하여」1966. 5. 14)

「문화어」는 혁명적으로 세련되고 문화적으로 다듬어진 우리 민족어의 최고형 태이다.

오늘의 평양말은 그 어떤 제한된 사회층에 의하여 이루어진 말도 아니며 또한 그 어떤 한 지방의 방언을 모체로 하여 이루어진 말도 아니다. 다시말하여 평양말은 사회적인 또는 지역적인 폐쇄성을 철저히 극복하고 사회전체 성원들의 말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요소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이와같이 오늘의 평양말은 자본 주의 사회의 수도의 말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언어적 특성을 가진다. (최정후 :「조선어학개론」)이상에서 인용한데로 북한의「문화어」는 남한의 표준어에 해당된다. 한편 인간관계의 여러 사건에 있어서 의견의 일치와 찬성에 도달할 때는 항상 언어적 과정에 의하여 달성되며 ,그렇지 않으면 달성되지 않는다고 할 때, 언어의 역할에 대해서 같은「한글」을 사응하는 동족사이에 정치적으로 배려된 언어현격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그러고보니「사상(思灌.)의 본체는 언어(言語)이다」를 일꺼기 간파했던건 』쇼타린이었다. 말이 안되는 사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푸로파간다. 슬로우건, 아지테이션등은 모두 언어로서 전달된다. 언어학자는 문체(文體)와 문장(文韋)을 구별한다.

전자는 싹이 트는 것같은 생명현상으로서의 언어를 뜻하지만, 후자의 경우 그것을 개념(槪念)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판단(判斷)으로서 사용할 때 그 숫법은 강압의 수단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가치(價値)와 결탁할 때, 조직(組織), 이데올르기, 당파의 언어가 된다고 한다. 더욱 나쁜건 이러한 가치로서의 문장체(ecriture)는 모든 말을 각기 하나의 특수한 의미(意味)속에 가두어버린다는 것이다. 이경우 언어는 보이지 않는 테러리스트 일수도 있다.

북한미술을 말하면서「언어」의 이야기를 하는건 그런데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북한미술의 유형은 (그림으로 그린 문학)으로 비유되는 사실주의 미술이며, 이것을 조형적인 위상학의 범주에서 말하는건 거의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선문학예 술총연맹」의 예술이념인「사회주의적 내용이란 무엇인가」를 인응하면서 이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한다.

사회주의적 내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혁명적인 내용, 계급적인 내용을 말 합니다. 다시말하면 낡은 것은 없애고 새것은 창조하는 내용. 근로인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내용, 모든 사람들을 다 잘 살게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민족적 형식은 무엇이겠습니까? 민족적 형식은 조선사람이 좋아하고 조선사람의 구미에 맞는 그러한 형식이다.이상의「내용」을 사실주의「형식」의 기법으로 묘사한게 미술작품에 있어서의 사회주 의적 사실주의이다. 따라서 「형식」은 16세기에 개발된 사실적 특색으로서의 표현양식과 별로 구별되지 않지만「내용」은 어디까지나 북한사회의 현실과제를 담고 있다는게 된다.

「사실주의」는 원래 문학과 연관해서 당시의 사회현실을 시각적으로 기록했던 미술 운동이며 G 쿠르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그린다. 천사는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그리지 않는다)가 이것의 존재이유를 요약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조형운동은 아니며 부르조아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반동의 테마로서 사회현실을 고발한다는 일종의 고발미술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주의를 「사회적 사실주의」와 흔동해서는 안된다. 소련 및 공산당이 공식의 당예술로 표방했던 것도「사회적사실주의」였다. 그것은 당의 지도급인사라던가 노동자, 농민등인 정해진 인물들을 찬미하기 위한 아카데믹한 미술 이었는데, 흣날 (인상주의는 본 것을 그리고, 표현주의는 느낀 것을 그렸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귀로 듣는 것을 그린다)... 고 술회한 바 있다.

「사실주의」와 「사회적사실주의」는 이처럼 기법상으론 유사하나 그것이 담고있는 「내 용」은 다르다. 전자는「눈」의 사실주의라면 후자는「이데을르기」의 사실주의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당에 의해서 연역적으로 전달되며, 그 회로는 앞에서 예시한 「문화어」로 교시되는게 북한미술의 성립과정이라는 것이다. 윤범모의 (북한의 문예정책과 미술이념) 가운데서 여기에 해당되는 부분을 인용하여 도움을 얻기로 한다.

「북한의 미술관계 글은 엄격하리 만큼 하나의 규범성을 지키고 있다. 어떠한 비평문일지라도 의례 글의 모두에 김일성(흑은 김정일)의 어록을 인용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은 엄중성 흑은 공평성을 유지해야 할 사전에서조차 같은 방식이 통용되고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본문이 명조체인 것에 반해 어록부분은 으례 고딕체로 강조하고 있다. 북한예술이 얼마 만큼 김일성의 지도이념 아래 놓여 있는가를 알려주는 예라 하겠다. 특히 미술관계 글의 대부분은 당국의 지도이념이나 혁명성을 기본사상의 설명에 대부분을 할 애하고 있음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구체적인 미술내적 평가는 매우 회박한 편이다. 심한 경우는 하나의 작품을 설명하면서도 그 작품의 작가에 관한 예술세계나 인적사항은 물론 작품의 제원(크기라든가 제작년도 혹은 재료나 소장처)조차 무시하기가 일쑤다」.북한미술의 특징적인 양식의 하나로「조선화」를 들수 있다. 도판으로 인쇄된 작품에서 받는 필자의 간접적인 인상은, 경쾌한 색조로 구성되는 화면의 효과와 섬세한 필치로 전체적인 인상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동앙화의 질감과 서양화의 표현기법이 공존하는 것같은 매우 야룻한 느낌마저 들었다.

조선화를 기본으로 미술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여러 갈래의 미 술형식에 비하여 조선화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우위를 찾이할 수 있게 앞세운다는 것촐 의미하며 조선화를 토대로 하여 모든 미술종류를 다같이 우리 인민의 비위와 정서에 맞게 우리 식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경호 :「조선화와 사회주의적 민족미술건설이론」)「조선화」는 북한당국이 국책으로 밀고 있는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미술형식으로 생 각되며, 김정일도「미술가들은 조선화를 기본으로 하여 여러가지 종류와 형태의 미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는것을 보아도 짐작되는바가 있다.

남한에서로 「동양화」를 「한국화」로 개칭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조선화」도 일종의 개명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이 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가령「한글」을「국어」 라고 호칭하는 경우처럼 「조선화」는 국체(國體)를 염두에 둔 문화정책적인 배려로서의 개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화」는 북한당국이 문화정책으로 밀고 있는 시각언어의「표준어」같은 것이며,「인민의 비위와 정서」인 감성적 레벨이「맞춤법」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조선사람」이 그린그림은 모두「조선화」가 되는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우는 것처럼 「사회화」를 통해서 「조선화」를 익혀야 한 다는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화의 정상에 당이 있다는게 된다.

"北, 평양 능라도 맞은편에 최대 규모 쇼핑몰 건설중"

"北, 평양 능라도 맞은편에 최대 규모 쇼핑몰 건설중"

"北, 평양 능라도 맞은편에 최대 규모 쇼핑몰 건설중"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북한이 평양 능라도 맞은편에 최대 규모의 통합쇼핑몰을 세우고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매체 NK뉴스가 17일 보도했다.
NK뉴스가 공개한 지난 5월 촬영된 위성사진에는 북한이 능라도에서 남쪽으로 맞은편 기슭에 대형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 소식통은 이 건물에 대해 "현재 건설 중인 복합상가"라면서 "가게와 식당, 각종 편의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은 가로 80m, 세로 140m에 4층 규모로, 전문가들은 완공되면 지난 3월 재건축된 미래상점의 약 3배로 북한 최대 쇼핑몰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NK뉴스에 "외관이 매우 현대적이며, 입지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좋은 곳"이라며 "한국의 대형쇼핑몰과 비슷한 규모"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관영 언론들은 현재 건설 중이 려명거리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도 지난 2014년 여름부터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 쇼핑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독자적으로 짓고 있는 려명거리와 달리 이곳에는 중국 자본이 들어갔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평양 능라도 맞은편에 건설 중인 대형 쇼핑몰

2017-05-27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NKSIS 대표소개말




대표소개말




안녕하십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대내외 정세는 참으로 한치도 가늠치 못할 격변하는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우리가 바라는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 자유시장화, 더 나아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는 앉아서 기다려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 체험하였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김정은 3대 세습 후계'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 한반도 평화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로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북한 폭압정치에 의한 주민 노예화 및인권침해를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며, 미래 한반도에서 예기치 못할 급변사태가 닥칠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게 합니다. 특히 지난해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북한의 강도 높은 도발이 빈번해지고 우리를 향한 핵전쟁 협박의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매우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정부의 비핵개방3000의 대북 상생공영정책으로 오늘의 남북대결이 불거진 것처럼 논하고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마치도 오늘의 안보불안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최근 북한 3대세습체제의 안정화를 위한 권력구도의 변화와 이들의 역학관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북한대남정책의 다변화의 근원에 대한 우리의 전략적 대응을 오직 현정부의 탓으로만 볼 그렇게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북한전략정보에 대한 접근에 대한 대응책을 개선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북한에 의한 제2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막는 것을 오직 정부의 잘못으로만 탓하는 현 대정부시각에서 벗어나, 민-관 협력으로 정면 돌파하여 대북정책만큼은 여야, 좌우익을 초월하여 한 목소리를 낼 때가 오늘 이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북한 내에서 이루어지는 반 인권, 반 민주화, 반 시장화, 반 평화 및 통일정책 등 현지 전략적 핵심정보들을 신속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수집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분석종합하고,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사단법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NKSIS)는 북한에서 대학교육 및 그에 상응한 고등교육을 받고 남한에서도 박사, 목사, 의사, 한의사 등 각 분야의 고등전문교육을 받은 일부 북한출신 핵심엘리트들과 남한 각계의 명망 있는 인사들의 협조 하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전략정보서비스사업을 책임지고 주도해 나가는 것을 주요 사명으로 여기며 실행 가능한 사업들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고와 노고를 아끼지 않은 고문님들과 자문위원님들, 그리고 감사 및 이사님들, 앞으로 저희의 영원한 고객인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과 북한의 '김씨왕조' 추종자들을 제외한 모든 주민들에게 앞으로 우리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여 주실 것을 부탁 드리며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사단법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이 윤 걸








<경력>

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역임 통일부정책자문위원
역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원
전 사)열린북한방송 수석연구원
전 농진청 국립유전자원센터
연구원
전 북한 김일성장수연구소
연구원



<학력>

충남대학 농생명공학 박사
국민대학교 기업경영학 MBA
북한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 박사과정
북한 리과대학 동물생명생리학 준박사 졸업

5.1절 명절 식비용, 최상위층-서민 간 40배 이상 차이나

5.1절 명절 식비용, 최상위층-서민 간 40배 이상 차





5.1절 명절 식비용, 최상위층-서민 간 40배 이상 차이나

상위 1%, 100~200$이상의 외화식당 이용도 거뜬히
중산층의 20%는 모란봉, 대성산 방문해 50$ 이상의 식사 즐겨
시장 활동으로 돈 번 중하위층, 20$ 상당의 식사는 거뜬히
북한 인구 60%이상인 하위층, 한 끼 명절식사로 5$도 못 써, 야외 소풍도 불편


2011-05-09 19:44:18
최호연 기자

지난 4일 본지 소식통은 “북한 상위층들은 5.1절에 4인당 200$ 이상을 쓰는가 하면 하위층은 겨우 5$을 쓸 정도로 생활수준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아예 한끼 식사도 없어 아예 생활이 어려운 계층도 많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야외소풍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5.1절 명절에 소비하는 돈을 기준으로 북한주민 상중하 계층의 생활수준을 나누어 분석해보았다.

북한은 5월 1일을 국가적 명절인 ‘5.1절(국제노동자절)’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스스로 무산계급인 노동자, 농민의 나라로 선전하고 있는 만큼 5.1절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북한 명절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그리고 김정은 등 김씨 가문의 생일이거나 건국, 건당, 건국 기념일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5.1절은 서민들에게 그 자체로 특별하다. 특히 주민들은 계절도 봄이라는 특성이 있지만 5.1절에 대부분의 명절에 이루어지는 ‘특별 경비’가 없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명절다운 명절을 보낼 수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에서는 5.1절을 맞아 주민들이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산이나 들로 나들이를 가는 풍경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평양의 경우에는 이날 모란봉, 을밀대, 대성산 등 모든 명승지나 대중 오락장소가 방문객들로 가득 차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식통은 “1990년대 초부터 계층 별로 명절을 보내는 수준이 차이가 나기 시작하여 1990년대 중엽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생활수준에 따른 계층화가 더욱 뚜렷해졌다”며 “지금은 상류층과 일반 서민들의 차이는 가족 당 외식비 기준으로 볼 때 40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우선 군부, 중앙당, 내각의 고위급 인사 및 그 가족 등을 포함하는 최상위 1% 계층의 명절 외식비는 평균 4인 당 최소한 100~200$ 이상이며 이들은 대체로 고급 외화식당을 이용한다고 한다.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 내각 무역성의 한 고위급 김씨 가족은 5월 1일 오후 고려호텔의 지하식당에서 식사 한 끼로 200$ 이상을 소비했다고 한다. 또 다른 군부 장령의 5인 가족은 모란봉구역의 ‘류경식당’에서 100$정도를 식사비로 썼다고 한다. 보통 북한에서 100~200$은 평균 4인 가족이 최소 3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액수라고 한다.

반면 북한의 중상위층 중 20%는 모란봉이나 대성산 등을 즐겨 찾고 있으며 야외 음식 준비로 4인 가족 당 평균 50$를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식통은 “이들은 평양에서 먹을 걱정 없이 살고 있는 북한 권력의 핵심층에 해당된다”며 “실례로 북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이모씨는 이날 모란봉에서 자기가 다닌 모대학동창모임을 가졌고, 10명이서 각각 북한 돈 2만원(약 8$)씩 모아 야외활동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하위층은 4인 기준 약 20$ 규모의 외식자리를 가진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 활동을 통해 큰돈을 번 사람들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들은 “투자와 절약이 생활화되어 있고, 명절날 과도한 소비를 하기보다는 집이나 시장에서 적정 수준의 여유를 즐기는 편”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마지막으로 북한 인구의 60%에 속하는 하위층은 5.1절에 한 끼 식사로 4인 기준 5$도 쓰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소식통에 의하면 이들의 명절 음식으로는 육류 반찬은커녕 소주 몇 병에 두부 등이 고작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이 초라한 반찬과 술안주를 들고 야외 소풍을 가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고 한다.

소식통은 “5.1절에 사용되는 비용을 평양 사람들의 평소 소비량의 척도로 볼 수는 없다”며 “하지만 명절 식비용만 보더라도 북한 내부의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양 시민들 공휴일이 노동절 모습

평양 시민들 공휴일이 노동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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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절 이전 북한이 초청 한 외국 언론이 촬영한 평양 모습 2017.04.17

북한 노동절, 평양 을밀대 앞

북한 노동절, 평양 을밀대 앞

북한 노동절, 평양 을밀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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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AP/뉴시스】1일 노동절을 맞아 북한의 평양 시민들이 모란봉의 을밀대 앞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북한 가족들은 휴일인 이날 공원과 경기장 등으로 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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