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9

북한미술

북한미술

김정일 주체미술론과 북한의 미술



월간미술. 2001. 6월호



1. 북한의 주체미학과 김정일 미술론의 대두



해방이후 북한의 미술사상은 실로 엄청난 형태로 변화를 거쳐왔다. 이는 물론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 Realism에 입각한 유물론적 사고가 중심이 되어 철저한 이념적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 저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소련이나 중국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는 지도자들의 교시에 의한 의식의 변화로 해석되지만 북한의 경우는 어떠한 사회주의 국가보다도 지도자의 교시에 의한 미학적인 구축과 미술경향의 변화가 막대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50여 년간 그들 미술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뒷받침이 되어온 이와같은 사상의 근원은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항일혁명미술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화와 선전화, 판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주체적 문예사상연구모임」과 같은 계기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사상적인 바탕을 구축해왔다.

여기서 주체미학의 근거는 물론 거슬러 올라가 보면 주체사상의 대두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데 김일성이 주체를 논한 것은 1955년의 일이며, 사상에서의 주체라는 용어는 1963년으로 기록되어진다. 이후 김일성과 관계가 소원하던 황장엽이 1970년에 본격적으로 사람과 인민대중을 모든 세계관의 중심이라고 보는 주체철학을 완성하였던 것이 점차 북한식 김일성 유일 통치사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 바로 주체사상의 과정이다.1)

주체미학은 바로 이같은 과정에서 연동적으로 이루어진 사상체계이며, 김일성이 창시한 것처럼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황장엽이 주체사상을 확립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던 바와 같이 핵심적인 이론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북한의 미술철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주도적인 사상적 무장에 있어서 과거에 보여주었던 김일성의 상징적인 위치와는 달리 김정일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북한의 실제로도 1인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깊이 빠진 그의 영화에 대한 광적인 취미에서 나타나듯이 문화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 의하여 많은 미술의 흐름이 실질적으로 주도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은 배경으로 북한은 1972년 4월 만수대기념비, 1975년 10월 왕재산기념비, 1979년 5월 삼지연기념비를 차례로 제작하였으며, 개선문과 단군릉 등을 계속적으로 완성해갔다. 그 중 1970년대에 이루어진 활기있는 작품들의 제작기간은 이른바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역사적인 사업을 달성하는 시기로서 기념비와 조선화를 필두로 무대미술을 비롯, 공예미술, 집단체조배경대미술 등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져서 주체미학의 전성기로 규정하고 있는가 하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체미학」이라는 용어가 본격화된다. 한편 1990년대에는 나름대로 심도있는 이론서가 발간되는 등 조선화와 조각 등에서 구체화되는 내용과 형식의 합리화로 이어지면서 북한식 사회주의미술의 전형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1991년 12월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고 이듬해 4월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원수로 추대되는 등 김정일의 위상이 강화되는 때와 시기를 맞추어2) 발간된 《김정일 미술론》과 《김정일 건축론》등의 연구서들과 함께 대다수의 주체미술사상이 주로 김정일이 중심이 되는 과정으로 나타나게되는 현상을 보이게 되며, 여기서 「김정일 미술론」이라는 용어가 공식화되어진다.

이때부터는 물론 천리마동상과 같은 상징적인 주체조형을 구축한 기존의 김일성교시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3) 상당부분이 김정일의 교시로 대체되어지고 그에 의거한 구체적인 좌표가 제시되고 작품 경향과 주제들이 설정되어지게 된다.

공연에서는 김일성의 교시를 이어받아 김정일의 구체적인 지도로 이루어진「피바다」식의 무대미술을 대표적인 모형으로 하는 혁명기념미술양식의 전성기를 이루게된다.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각본을 썼다고 알려진 이 가극에서4) 김정일은 음악에서도 광적인 취미를 발휘하였는데, 2000곡의 음악을 작곡시킨 다음 직접 수 십 곡을 골라 연습시켰을 정도였으며, 그가 직접관리하는 영화문헌 창고에는 세계 각국의 영화가 1만 5천 편이나 소장되어있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이다.5)

이와같은 형태로 대두되어진 주체예술에서의 김정일이 갖는 영향력이나 그의 사상적인 체계는 미술분야 이외에도 예술전반에 걸쳐 상당한 지도체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60년대 말부터 사상적인 영향력을 형성하다가 1992년 《김정일미술론》이 발간되는 것을 기점으로 김일성이 사망하는 1993년 이후에는 회화나 건축, 공예 등 전 분야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지침으로 작용하여왔다.



2. 김정일미술론의 미학적 관점



1) 북한식 사회주의미술사상의 근원

사회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미술이론은 물론 유물론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며, 유심적 관념론적미학의 대립적인 내용으로서 19세기에 접어들어 양 갈래로 나뉘는 한 주류를 이룬다. 이는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의 기본적인 해석을 계급주의에 기조한 사상적인 근원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더하여 사회주의 미술의 핵심은 막스 레닌주의의 본질이면서 18세기 이전의 봉건적인 사회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중심이 되는 사상적인 전환을 유도하는 혁명적인 사고가 바탕이 된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 중국을 모태로 하는 사회주의미술을 주창하게 되는데, 이를 위하여 김일성은 이미 1950년대부터 미술분야에 있어서도 여러 차례의 교시를 내린다.

《김일성저작집》에서 그는



우리의 미술은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는 참다운 인민적인 미술로 되어야 하며 당과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혁명적인 미술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의 미술이 철저하게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6)



라고 한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당성, 노동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에 기초한 미술사상의 시작은 사회주의의 전형적인 내용으로 당과 혁명에 기여하는 민족적인 형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인민대중을 위한 노동계급을 위한 미술의 성격은 종교적인 미학관이나 자연관, 인간본질에 대한 사유체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근대 이전의 왕권제도나 신권제도의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는 김정일의 교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정치적인 식견과 예술적인 기량이 높은 미술가는 사물현상을 혁명적 관점에서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며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한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7) 이와같은 사회, 역사적인 제한성은 자본주의 미술이 현실에 기조하지 못한 미학관으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객관성을 부인하였다는 점에서 형식주의적인 사상으로 규정되고, 이른바 제국주의 미학관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김일성이 주창한 사상적인 주체적 미학관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 이르러서 급기야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자주시대를 대표는 20세기 대 부흥시대」라는 구호 하에 피바다식의 무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가면서 미술분야에서도 이념적인 주제와 기법의 새장을 열어가게 된다.

결국 이는 미술분야의 주체사상적 대표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조선화」의 형성이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강조되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국제적으로 지극히 폐쇄적인 자주이면서 북한 내부에서는 과거의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서방세계의 이질적인 외세를 극복하며, 민족적인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의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구사되었다.

이같은 예로서는 고대 희랍과 로마시대의 흉상과 인물들을 석고로 제작하여 입시의 필수과목처럼 하고 있는 우리와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이미 오래 전에 이를 폐기 시켰다는 평양예술대학의 경우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평가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부분이지만 모든 명칭과 기법을 나름대로는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으로 바꾸어갔다. 서예에 있어서 청봉체, 천리마체, 붉은기체 등은 대표적인 예로서 그들만의 자주적인 것을 구축해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 인간과 현실중심의 미적 기준

주체미학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황장엽이 김일성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에서도 가장 우선이지만 사람과 인민대중의 중요성이다. 즉,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 형식주의, 복고주의, 수정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향은 철저히 비판되어야 하며, 모든 미적인 기준이 인간과 인민대중에게 집중되어야한다는 주체사상에서의 이론을 미술분야에서도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미적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크게 사람, 사회, 자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8)



주체의 미학관은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미의 기준으로 새롭게 제기하였다.9)



라고 말한 김정일의 말에서 주체미학의 기초가 바로 인간의 현실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점은 자연주의의 유심론적인 사고나 예술지상주의적인 사고에 정반대되는 내용이며, 인민을 위한 인민의 미학적 사고를 결정지우는 것으로서 모든 사물이 인간의 삶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으로 유물사관으로서 인간과 사물의 객관세계의 사물현상을 중시하면서 사물현상의 아름다움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상대적인 규정성을 강조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미의 판단이 된다고 보고 있으며, 이때 자주적인 인간의 요구와 부합하는 미적 요소로 인하여 미의 가치를 발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주성을 가진 존재, 자주적인 사회적 존재입니다. 자주성은 세계와 자 기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인간의 속성입니다. 자주성으로 하여 사람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사회의 온갖 예속을 반대하며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갑니다.10)



김정일의 이같은 교시는 바로 인간이 자주적인 사회적 존재임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자연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말로 해석되어지는 내용이며, 물질적인 대상에 대한 표상으로 체험되며 사회와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조직과 환경, 구체적인 인간과 그의 생활의 현상으로 체험되어진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생활은 새롭고 진보적이며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속에 있 다. 투쟁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은 가장 고상하고 아름답다. 온갖 낡고 보수적이며 반동적인 것을 쓸어버리고 새롭고 진보적인 것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은 그 지향에 있어서 고상할 뿐아니라 그 과정이 전투적이고 랑만적이며 아름다운 것이다.11)



김정일의 현실적인 투쟁이란 다름 아닌 노동과 반체재에 대한 수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만 모든 세계관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개념에는 현실적인 사회의식을 내포하는 사상이 바탕이 되어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더불어서 이는 곧 그의 역사성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이론과 종자론 즉 생활의 사상적인 알맹이인 소재와 주제를 포함한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인 핵심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된다.12)

이로 인하여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삼대 사회적 존재의 개념이 뒷받침되며, 유일한 지배자, 개조자로서 인간의 이익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사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복무하여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아름다움을 인간들의 계급적인 처지와 역사적인 환경에서 고찰해가야 한다는 김정일미학의 요체인 것이다.



3) 예술미와 숭고미

북한에서는 미의 관점에 대한 시각 역시 명료한 사상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모택동식의 노동현장과 건설현장을 비롯하여 해방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인민군의 전투과정과 혁명투쟁을 중심으로 하여 기여하는 주제와 선동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어지면서 순수나 우아보다는 숭고한 비장의 미감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의 사상이 미술전반에 강조되고 있다.

이 역시 주체미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미의 본질을 인간위주로 설정하고 유물론적인 사고를 구축하면서 사회현실에 적합한 예술적인 표현을 요구하게되는데, 유미적인 미적 판단이나 감응이 비판되며, 현실의 아름다움을 반영해야한다는 이론으로 연결하여 예술미의 원천이 바로 인민대중이며 사회 그 자체라는 핵심적인 사고를 진전시킨다.13)

이와같은 사고에 의하여 작가는 언제나 계급적인 입장과 사상적 관점을 가져야하며, 사상이 담기지 않은 작품은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미학의 한 관점을 형성함으로서 사회주의미학의 한 전형을 세우게된다. 한편 이는 미의 평가가 계급적, 민족적, 역사적인 성을 지닌다는 이론으로 귀결되어지며, 여기서 모든 사물과 자연까지도 인간을 위하여는 개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1211고지는 자연적인 속성에 있어서 다른 자연과 큰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이 고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뜨거운 미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군대의 영웅적인 기상이 스며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혁명의 시대에 사는 인민대중과 같이 숨쉬고 그들과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는 작품을 요구하게 되며.14) 결국 미적 범주를 장엄한 투쟁과 영웅적인 위훈, 숭고한 사상감정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미적 범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까운 것으로 숭고미를 들고 있다.

그 한 예로서 백두산은 혁명의 산으로서 항일혁명의 삶과 투쟁의 영광을 느낄 수 있는 숭고함이 서려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숭고함은 영웅적인 것과 직결되며, 더 나아가 영웅적인 투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진실로 사실주의적이고 혁명적인 문학과 예술은 인간생활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15)



라고 한 김정일의 사상에서나 “계급적 립장”“사상관점”등의 표현으로 말하고 있듯이, 현실적인 반영이나 투쟁을 소재로 한 숭고한 표현이야말로 모든 미적 범주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라는 객관적인 사고를 뒷받침하는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미학체계를 나타낸다.



4) 내용과 형식의 조화

북한에서는 사실주의적인 미술을 강조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성을 강조한다. 이는 종교화나 자본주의적인 미술이 형식에 치우친 경향이라고 비판하면서 신비주의와 종교적 설교를 중심으로 허황 될 뿐, 인민대중의 사상성을 내포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이에 관해서도 김정일은



내용은 형식을 통해 표현되면서 형식을 규정하므로 예술의 형식은 언제나 내용 의 형식으로 된다. 16)



라는 말을 간결하게 남기고 있는데 이는 곧 김재홍의 해석대로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서 규정적이며 결정적인 것은 내용이며, 형식은 내용이 요구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고를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다.17)

그 성공적인 예로 천리마 동상을 말하고 있다. 이 동상은 심오한 사상성과 예술적 형식이 결합을 이루는 작품으로서 숭고한 혁명적인 의지와 약동하는 기상, 열렬한 찬양, 정신적인 풍모, 웅장한 조형적인 형식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참다운 조형미는 언제나 내용의 아름다움, 즉 사상성을 전제로 하며, 아름다운 내용에 의하여 밑받침된다는 이론을 전개하게 되는데,18)이는 곧 그들이 말하는 종자론에 귀결되어지는 절대적인 미학적 관점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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