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4

《조선의 오늘》 통일애국의 길에 영생하는 삶 리종만선생

《조선의 오늘》


통일애국의 길에 영생하는 삶

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리종만선생


 


조국과 인민을 위해 고귀한 한생을 바친 애국렬사들의 영생의 삶의 언덕인 신미리애국렬사릉에는 남조선에서 량심적인 민족자본가로 활동하다가 공화국의 품에 안긴 리종만선생의 묘비도 있다.

리종만선생은 해방전부터 기업활동을 하며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있던 민족자본가로서 1885년 1월 경상남도 울산군(당시)의 빈농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서당공부밖에 못하였지만 20대에 민족산업을 발전시킬 꿈을 안고 기업활동에 뛰여들었다.

어업분야의 중소기업도 경영해보고 간난신고끝에 대동광업주식회사와 같은 큰 기업을 일떠세우기도 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일제의 박해속에 그의 기업은 점점 쇠퇴해졌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밑에서 민족산업을 발전시킨다는것은 허황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그는 왜놈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항거심을 안고 적지 않은 자금을 들여 학교와 출판사를 꾸려놓고 계몽활동도 벌리였지만 끝내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깊은 산속에서 은거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해방후 남조선에서 또다시 기업활동에 나섰지만 일제를 대신하여 남쪽땅을 강점한 미제에 의해 그의 꿈은 다시금 무참히 짓밟히우고말았다.

일찍부터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열렬히 흠모하던 선생은 공화국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환갑이 지난 나이에 용약 북행길에 올랐다.

주체38(1949)년 6월 당시 남조선에 조직되였던 조선산업건설협의회 위원장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한 선생은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더없는 행운을 지니였다.

이날 대회장에서 자신을 주석단으로 몸소 불러주시고 량심적인 애국자라고 높이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선생은 온 나라를 밝게 비쳐줄 태양은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깊이 절감하였다.

공화국에 삶의 닻을 내린 선생의 여생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각별한 신임과 사랑속에 흘러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선생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내세워주시였으며 일흔살을 가까이 하는 고령의 나이에 나라의 지하자원개발을 맡아보는 광업성(당시) 고문의 중임도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하던 선생이 92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못내 애석하시며 여러 출판물들을 통해 그의 공로를 널리 소개하도록 해주시고 조국통일상도 수여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과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에 삶을 빛내인 리종만선생의 뒤를 이어 오늘은 그 자손들이 보람찬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에 애국의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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