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8

06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지은이) | 창비 | 20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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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흔들리는 분단체제> 이후 8년만에 선보이는 백낙청의 사회비평서이자 시국평론집이다. 전작에서 선보였던 지은이의 통일담론의 뒤를 이어 '6.15 공동선언'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남북 분단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남북 관계를 조망하는 글들을 다수 실었다.

"어물어물 진행중인 한반도식 통일, 그 1차적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1980년대 말부터 줄기차게 분단체제론을 전개해 왔고, <흔들리는 분단체제>에서 이미 분단체제의 동요를 읽어낸 지은이는 이번에는 한반도식 통일이 이미 현재진행형 상황에 들어섰음을 주장한다.

통일을 지금의 분단체제보다 국민들이 더 나은 체제에서 살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인식 하에서, 국가연합 형태의 점진적인 분단체제 극복을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는 지은이는 이른바 '6.15 시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전쟁 같은 불가피한 파국을 전제로 하는 일회성 사건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면, 통일은 어느 순간 '도둑같이' 찾아올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을 6.15 시대의 목표로 제시하는 등 보다 확장된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NL(민족해방파, 자주파), PD(민중민주파, 평등파), BD(부르조아민주주의, 온건개혁세력)의 3자결합을 제안하고,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나타난 최장집 교수의 시각을 분단시대에 대한 고려가 간과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 외에 다국적 민족공동체이자 네트워크로서의 한인공동체 건설에 대한 주장,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체할 '생명지속적 발전'의 제안,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 등을 담았다.





책머리에

제1부
1.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2. 6.15시대의 대한민국
3. 한반도의 통일시대와 한일관계
4. 분단체제와 '참여정부'
- 덧글: 변혁적 중도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제2부
5.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
6. 6.15선언 이후의 분단체제 극복작업
7. 다시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
8. 통일작업과 개혁작업
- 덧글: 이수훈 교수의 분단체제론 비판에 답함
9. 한반도의 2002년

제3부
10. 한반도에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해
11. 새만금 생태보존과 바다도시 논의
12.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가능한가
13.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
14. 박정희 세대를 어떺게 생각할까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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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같이' 찾아올 통일

정상회담 직전의 어느 간담회에서 나는 기독교 복음서의 표현을 원용하여 통일은 도둑같이 오리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이 8.15가 대다수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깜짝쇼'처럼 찾아왔듯이 통일도 그런 뜻밖의 사건으로 오리라는 말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때는 정녕코 우리가 잠든 사이에 '해방'이 도둑같이 왔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참된 해방을 놓치고 통일국가건설을 놓쳤으며 뒤이어 평화적 생존마저 도둑맞고 말았던 것이다.

통일이 도둑같이 온다는 것은, 통일이 일제의 항복과 같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분단체제극복의 과정임을 전제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들의 만남을 포함한 여러가지 작업을 통해, 남북 기본합의서에 이미 명시된 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로서의 남북관계가 꾸준히 확대되어가다가, '자 이만하면 국가연합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겠나, 그렇게 불러버리자'라고 쌍방이 합의하는 날, 통일과정에서의 결정적인 단계가 이미 성취되었음을 문득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취가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이 잠깨어 있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 본문 96~97쪽에서




백낙청의 한 마디

6.15 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작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즉 6.15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을 독일식도 베트남식도 아닌 우리식으로 하자는 합의였을 뿐 아니라 이러한 한반도식 통일에 시동을 건 사건으로서, 이후 온갖 파란을 헤치면서 그러한 통일작업이 진행되어 왔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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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7편




[서평] 백낙청의 분단체제론과 통일담론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붉은구름 ㅣ 2015-10-31 ㅣ 공감(0) ㅣ 댓글 (0)


[서평] 백낙청 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읽고 / 2006. 05., 284쪽, 창비


‘한민족의 염원’이자 한반도 남북에서 발생하는 주요 문제들의 구조적인 해결방향은 ‘평화적 통일’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식도 아니고 베트남식도 아닌 ‘한반도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반도식 통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이 저자인 백낙청 교수의 지론이자 전략이자 사상이다. 이 책은 통일담론과 관련한 그의 사회평론집이다.


백낙청은 1980년대 말부터 줄기차게 분단체제론을 전개해 왔고,1998년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으로 분단체제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남쪽에서 그것을 받쳐주던 군사독재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999년 이후 저자가 <창비> 등에 발표한 글 중에서 주제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려서 연대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대표되는 참여정부 중반기의 남북 분단 상황을 점검하고, 이후 남북 관계를 조망하는 글들을 다수 실었다.
그는 이 책에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6.15시대’를 가져왔고 ‘흔들리고 있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백낙청은 이 책을 통해 한반도식 통일이 이미 현재진행형 상황에 들어섰음을 주장한다.
통일을 지금의 분단체제보다 국민들이 더 나은 체제에서 살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인식 하에서, 국가연합 형태의 점진적인 분단체제 극복을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는 저자는 이른바 '6.15 시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전쟁 같은 불가피한 파국을 전제로 하는 일회성 사건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면, 통일은 어느 순간 '도둑같이' 찾아올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을 6.15 시대의 목표로 제시하는 등 보다 확장된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NL(민족해방파, 자주파), PD(민중민주파, 평등파), BD(부르조아민주주의, 온건개혁세력)의 3자결합을 제안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나타난 최장집 교수의 시각을 분단시대에 대한 고려가 간과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 외에 다국적 민족공동체이자 네트워크로서의 한인공동체 건설에 대한 주장,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체할 '생명지속적 발전'의 제안 등을 담았다.


이 책에서 크게 공감한 대목은 남한-분단체제-세계체제로 이어지는 구조적 연관성과 ‘한반도식 통일’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런 한반도식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분석 결과, 마지막으로 6.15 남북공동선언문 제2항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태생적으로 반민주적이며 비자주적인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남북 어느 한쪽에서도 온전한 민주주으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분단시대에 대한 모든 인식을 낡은 민족주의라고 배제한 채, 대한민국을 ‘하나의 자족적인 국가’로 설정하여 북유럽 또는 서유럽의 선진 민주사회의 척도로 재단할 때, 분단시대와 그에 앞선 식민지시대의 억눌리고 찌든 삶을 딛고 이룩해온 한국 민주주의의 눈물겨운 성취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분단체제의 고착기를 특징지은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는 작업이 명쾌하지 못하여 3당합당, DJP연합, 노무현정권의 ‘변형’ 등을 수반하며 구질구질하게 진행되어온 현실은 분단체제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고, 여기에 굳이 변형주의라는 외국 문자를 갖대댈 필요도 없다.”(65쪽)


먼저,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의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분단체제의 하위 구조로서의 남북의 체제’라는 백낙청의 체계 구성은 한반도의 역사적인 과정과 현재 실제로 구성되어 있는 역학구조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의 관점을 확대시킨다.
남북의 정치체제와 한반도 분단체제가 세계체제의 하위체계라 함은,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 양쪽에서 ‘결손국가’ - 이 개념은 ‘정상국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외세에 의해 분단이 강제된 상태에서 독립과 통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가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평화와 복지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측면을 강조한 개념이다 -가 탄생되고 유지된 이유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간 경쟁과 제국주의(패권주의)와 제3세계 식민지의 저항이라는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대결구도 속에서 외세에 의해 분단이 강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열강과의 협의와 협조, 관계 개선 없이 남북 간의 노력과 합의만으로 분단체제의 해소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분단체제의 해소 없이 남북 각 정치경제체제가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그리고 대다수 민중의 행복한 삶과 자유, 평등, 평화가 이룩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한반도식 통일’이라 함은, 한반도 분단의 주체와 형성 그리고 고착화 과정으로 인하여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독일이나 베트남, 예멘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다른 체제로 흡수되는 독일식 통일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라는 전제와 그에 따라 분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독일 민중의 명시적,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서독과 동독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분단 과정과는 크게 다르고 고착화 과정 또한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반도에 적합한 방식이 되기 어렵다. 내전을 통해 일방 체제로의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의 통일 방안 역시 한국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는 한민족에게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며, 양쪽 정부의 상층부끼리의 담합에 의한 통일 후 합의가 불괴되어 다시금 몇 년간의 전쟁을 거쳐 통일을 이룩한 예멘의 통일 방식도 절대 다수의 민중의 동의와 참여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반도식 통일의 사례라 할 수 없다.
백낙청이 주장하는 ‘한반도식 통일’은 '6.15시대’와 같은 남북 화해와 교류, 경제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수의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통일 과정을 의미한다. 전쟁을 통하지 않는 통일, 일방의 이념이나 체제를 강요하지 않는 통일, 최종 목표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통일, 남북의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다수 민중과 한민족 전체가 통일 과정에 주체로 참여하는 통일을 의미한다.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전인미답의 길이 바로 ‘한반도식 통일’이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식 통일’은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운 또 하나의 강국이 탄생할 경우, 설혹 통일 한반도가 자본주의 사회라 한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을까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한 통일이 될 것이다.


셋째,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은,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한 남한의 군사독재 체제의 극복이 분단체제를 ‘흔들게’ 만들었고 6.15 공동선언을 통해 분단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곧 통일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즉 "분단이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각기 사는 곳에서 그날그날 수행하는 크고작은 싸움이 모두 분단체제 극복운동의 내용을 이룬다. 통일작업과 직결된 교류확대라든가 민주적 권리의 확보, 대외적 자주성의 신장 등만이 아니라, 생활현장에서의 성차별이나 인권침해, 환경파괴 등을 제거하고 자기 자신부터 그러한 습성에서 벗어나는 갖가지 실천이 곧바로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일회적 사건으로 이룩되는 분단극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그리고 우리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온갖 형태로 뿌리내린 분단체제의 극복’이기 때문이다.(84쪽)


마지막으로, 백낙청은 6.15 공동선언의 '남다른 의미’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합의하고 서명한 문건”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선언문 제2항이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에 대해 백낙청은 내용이 두루물싱할뿐더러, 남북 각자가 이제까지 배격해온 상대방 제안에 끌려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의 애매모호한 표현이야말로 6.15공동선언을 빛내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 실현가능한 방안을 찾아내는 실천적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그는 제2항의 합의정신을 “통일을 하기는 하되 너무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과 어떤 형태의 통일인지를 미리 못박지 말고 지금 가능한 통일작업부터 진행한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신뢰구축 작업을 명기한 공동선언 제4항이 비로소 힘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의 신뢰구축은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해도 불가능하고 ?┥爭貂? 통일하자고 외쳐대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백낙청은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고 제창한다. "단일형 국민국가로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쌍방이 확인할 때 ‘1단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엇이 통일이며 언제 통일할거냐를 두고 다툴 것 없이 남북간의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나가다가 어느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니라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하고 합의하면 그게 우리식 통일이라는 겁니다.”(21쪽)


이 책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은 백낙청 교수의 2015년 신작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2015 창비)를 읽고서 통일담론과 한국사회 변혁에 대한 그의 담론의 궤적을 알기 위해 읽은 것이다.
거의 10년 전 저서임에도 남북의 민중 모두의 아픔과 고통을 껴안고 통일담론과 한국사회 변혁담론을 이끌어 가는 백낙청 교수의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다. 그리고 고맙다. 평론집 중 통일담론과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도 되었고 배운 점도 많았다.
다만, 제3부 ’14.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서 박정희를 평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 어떻게 하더라도 괜찮다’는 관점이 지난 100년 간 한국사를 망쳐왔기 때문이고, 인간의 본성에도 한국 민중의 성과와 고통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기고 싶은 문장]


“선진국이라면 PD와 NL만의 ‘변증법적 결합’을 꿈꾸어봄직하지만, 분단국가에서 분단시대에 대한 인식, 그런 의미에서 ‘NL적 시각’이 빠진 상태로는 탁상공론에 가까운 사민주의 이외의 ‘결합’을 생각하기 힘들다. 다른 한편 PD를 배제한 NL과 BD만의 결합은 민족주의 과잉의 통일 이외의 어떠한 변혁전망도 제거된 반민중적 노선이 되기 십상이며, 그렇다고 NL과 PD의 ‘재결합’ 또한 당위론에 불과함은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 내 양 정파의 ‘내분에 시달리는 동거’가 잘 보여준다. 내분의 ‘재봉합’이야 물론 가능하겠지만, 국민의 신뢰를 얻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면 개혁정권 및 온개혁세력과의 좀더 확실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책적으로도 연합하면서도 자신을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내분’이 ‘건강한 의견차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해줄 공감대가 바로 분단체제극복이 현시기 최대의 변혁과제인 동시에 남한사회의 구체적 개혁작업이기도 하다는 인식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곧 분단체제이고 남북 각기 상대적인 독자성을 갖는 사회이긴 하지만 분단체제의 매개작용을 통해 세계체제의 규정력을 받영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다면, 자주통일론과 세계적 시각을 지닌 계급운동은 한국사회의 구체적 개혁과정에 촛점을 둔 시민운동 및 개혁정당(들)과도 자연스럽게 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68쪽)


“북핵문제 자체에 관해서는 위라가 정부 차원이건 시민사회에서건 할 수 있는 일이 엄연히 한정되어 있다. 핵무기를 배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북이며, 이러한 북을 공격해서 파멸시킬 수도 있는 무력을 보유하고 그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두 당사자 모두에게 한국의 입장은 절대적인 변수가 못 된다.
그 점에서 ‘민족공조’든 ‘한미동맹’이든 모두 상대적인 의미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이 대등한 맹방이 아님은 너무나 뻔한 사실인에다 오늘날 미국과 대등한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마당에, ‘한미동맹’을 절대시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맹종을 서약하는 행위 밖에 안 된다. 다른 한편 북측의 핵개발 문제를 한국정부와 협의해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북의 안전을 담보해줄 능력도 없는 마당에 ‘민족공조’를 절대시하는 일 또한 허황되고 무책임한 처사가 되기 쉽다.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단호하고 지혜롭게 해나가야 한다.”(238쪽)


[ 2015년 9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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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어물 다가오는 통일 일로거 ㅣ 2006-12-05 ㅣ 공감(1) ㅣ 댓글 (0)


백낙청 교수는 한국의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가 8년 만에 한국사회에 대한 비평서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출간했다.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만 그동안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분의 책이라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다. 또 책은 출간되기도 전부터 또 다른 진보진영의 대표지식인인 최장집 교수에 대한 실명비판으로 화제가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벌써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아도 큰 틀에서 이러한 짐작은 빗나가지 않는다. 저자는 한반도의 통일이 이미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핵 위기, 미국의 강경한 대북 노선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인 시점에 자칫 이러한 주장은 통일지상주의에 빠진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확실한 근거가 자리 잡고 있다. 6.15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는 6.15선언으로 이제 분단체제는 흔들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선언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특성은 오히려 남북의 합의를 위해 꼭 필요한 특성이었다고 주장한다. 분단은 선언이 있기 전부터도 이미 흔들렸다고 한다. 한국이 민주화를 겪으면서 분단체제는 확실한 타격을 입었고 그 이후에도 분단체제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확실히 통일국가로 만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이렇게 어느 순간 통일된 국가를 이루어야 통일이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비판한다. 6.15선언에 근거해 남북이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 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합의 하면 그것이 통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의 무력통일과도 다르고 독일의 흡수통일과도 다른 한반도통일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이렇게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통일의 목적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통일의 목적은 순전히 통합된 국민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반도의 민중들이 조금 더 낳은 상태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만들기 위해 통일문제를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민족해방파, 평등파, 온건개혁세력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진보세력은 한반도의 분단이 다양한 모순을 낳은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중도적인 노선을 찾아 한반도의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반도의 통일이 다양한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진보'만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은 통일을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장집 교수는 정당정치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분단체제를 외면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통일문제 외에도 저자는 원로의 안목으로 환경문제, 한반도의 발전전략,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통일론은 통일이 더 이상 최대의 이슈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통일 문제는 언제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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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논의, 불을 땡기자! kopri ㅣ 2006-06-29 ㅣ 공감(0) ㅣ 댓글 (0)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

백낙청 교수는 8년전에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에 대해 최근에 출간한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제목을 잘 지어서 재미를 좀 보았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진행된 남북관계 ‘뽕나무 밭이 변해서 바다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변화하였다. 이런 변화를 실감한 사람들은 6.15 공동선언 발표 이전에 이미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간파한 백낙청 교수의 혜안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 잘 지어서 재미를 좀 보았다는 백교수의 표현에 은근한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백교수는 이번에 출간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이라는 책에서도 재미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똑같은 재미를 두 번 되풀이해서 느끼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한반도식 통일이란?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에는 말 그대로 분단체제가 흔들린다는 분석과 예측이 담겨 있다. 그 예측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목 잘 달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제목도 얼핏 우리가 못느끼는 사이에 통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예언 같은 게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세월이 흐른 뒤에 사람들이 “그때 백교수가 한 예언이 딱 맞았어”하고 말한다면 백교수는 또 제목 잘 달았다는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른 표현은 점쟁이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 표현은 우리의 통일의 성격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예측을 잘해서 그게 입증되면 나중에 재미를 볼 수 있는 성질의 제목이 아닌 것이다. 이미 우리가 맞이해야할, 맞이하고 있는 통일의 성격을 밝히고 있으므로, 그 성격을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사실만으로 재미를 보기에 충분하다.



백교수는 ‘한반도식 통일’이란 독일식도, 베트남식도 아닌 ‘우리식’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진행형’이란 통일은 과정이고, 6.15 선언 이후 과정으로서 통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란 표현은 우리가 이룰 통일에 대해 압축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 제목이다.



2차대전 이후 분단국가가 통일된 사례로 흔히 독일, 베트남, 예멘을 꼽는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은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진행된 일방적인 흡수통일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의 경우 전쟁에 의한 비평화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예멘의 경우 국민대중의 지지와 참여가 없이 이루어진 정치권력에 의한 야합형 통일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분단의 유지와 지속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늦은 통일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통일은 준비가 필요하고, 일방적인 흡수통일이거나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며, 국민대중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다른 나라의 사례와 다른 한반도식 통일의 내용이 될 수 있다.








현재진행형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통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표현은 백교수가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꿀 것을 제창한 의미속에 그 표현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백교수는 “단일형 국민국가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쌍방이 확인했을 때 ‘1단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을 제창하고 있다. 그리고 “다소간에 두루뭉수리로 진행하다가 문득 통일이 되는 과정이야말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한반도식 통일의 참뜻”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필자도 오래전부터 통일의 개념을 바꿀 것을 주장해왔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널리 퍼져 있다.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아무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민족동질성의 회복은 곧바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통일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반은 맞지만 결코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놓쳐서는 안될 것은 통일은 하나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통일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지만, 민족동질성에 기초하되 남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통일과정에서 더 중요하다.



통일을 과정으로 바라보지 않을 경우에는 급격한 체제통합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급격한 체제통합이 가져올 후유증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일을 논의하지 말자는 데로 이른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빨리 통일을 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고 통일이 가져올 혼란을 걱정하면서, '지금 이대로'가 더 낫다는 논의를 만들어 낸다. 통일을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을 경우 '통일'에 대해서 이와 같이 부정적인 연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현단계에서 추구해야 할 통일은 '통일과정의 초기 단계로서 공존'이라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북의 공존도 통일이고, 현시기에 추구해야할 통일상태는 공존이며, 이 상태가 역동적으로 발전해 가면서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을 미룰 필요도 없고, 통일 때문에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염려해서 통일을 부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통일과정에서 모아진 민족적 열망을 통일공동체 건설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6.15 공동선언 합의 이후 현재의 상태를 통일이 진행 중인 상태라고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통일논의 활성화를 기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6.15 선언이 발표되었고 한반도 통일이 현재 진행중인데도 통일에 대한 논의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급속한 통일이 가져올 혼란을 피하자는 것이 그 이면에 깔려 있어 보인다. 하지만 통일논의를 활성화하여야 오히려 혼란을 방지하고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다.



통일을 과정으로 바라보고 통일을 점차적으로 추구한다면 통일논의를 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활발한 통일논의를 통해서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모아야 한다. 급속한 통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평화롭게 공존하는 통일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활발한 통일논의를 통해서 어떤 상태를 통일이라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길이다.



백낙청교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한동안 주춤했던 통일논의를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식 통일의 성격, 통일의 개념, 통일운동 방식, 통일과 남한사회개혁과의 관계, 6.15선언 2항을 비롯한 통일방안 논의, 통북아와 한반도 평화체제 등 통일론을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백교수의 주장이 통일논의 활성화에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것인지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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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대한 믿음과 확신 열린사회의적 ㅣ 2006-06-20 ㅣ 공감(6) ㅣ 댓글 (0)
거두절미하고 들어갑니다...

통일 진해 방식애 대한 소견
그 통일은 큰목소리나 발걸음이 아닌, '시나브로' 하지만 '시나브로'된다고 주변의 모든 문제가 헤실바실되는 건 아닌데, 당연논리로 풀어가는 건 목적론적 글쓰기나 낭만적 이상주의에 머무는 상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남북간의 신뢰구축과 교류협력을 통한 실질적 통합을 진전시키는 일만이 남게 된 바, 그러한 성과가 상당 정도 축적되었을 때 어느 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남북의 합의하면 그게 곧 한반도식 통일. 더 엄밀히 말하면 '제1단계 통일'이라는 것입니다."(35쪽)

문제제기*(지은이).
1 . 이론상의 문제-말장난
2. 보수층의 대대적인 이념공세나 북미 관계의 악화, 특히 미국 행정부의 더욱 노골화되는 대북 강경노선으로 요원한 점.

지은이는 '한반도식 통일'을 주창하면서, 그에 따른 문제를 위의 두 가지로 풀어놓는다. 나는 여기에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지은이는 6.15공동선언을 통해, 베트남의 무력이나 독일의 흡수 통일이 아닌 '한반도식 통일의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어느날 더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 듯. 하나로 합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니가 옳니 내가 옳니'하는 자기만의 감정 싸움 대신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믿음'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의 눈은 꽤나 순수하다. 그는 한반도식 통일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장기적인 문제와 보수층, 미국의 눈을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내부의 적이 없는가? 분명 그는 보수층이라고 한정하는데-냉전으로 인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 포함-보수층 이외에는 모두가 통일을 원하며 그들은 순수함으로 뭉쳐있나라는 문제제기이다. 이런 식으로 보는 것 자체가 딴지 걸기이며, 통일에 대한 가로막기식 견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제기하는 데에는, 지은이의 시선에 대한 기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있다해도 안돼지만, 있는 것을 없다해도 안된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변수를 상 아래에 차려놓고, 그에 대한 대안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협상이 이루어지고 '니가 그럴줄 몰랐다'니 '거기 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통일은 말장난이 아니며, 싸움에 비유될 수있다. 싸움에는 지피지기가 가장 기본이며, 더 나아가 주변상황도 읽어내는 눈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의 시선은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동심에 젖어 있는게 아닌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전반적 구성이 이야기가 핵심(한반도식 통일에 대한 희망내지 확신)만 있고 겉(우리 안의 문제와 주변국의 정치논리는 없다)을 맴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요지의 이야기가 다른 제목으로 둔갑하여 책 속에 숨어 있다. 나는 낯설지 않은 '점진적 통일'이라는 단어를 세뇌 당하듯이 읽어가고 있다. 이러다 책을 덮을 때에는 '네 말이 옳다'라고 할런지 모르겠다. 이러한 전략에는 세세하게 비판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두리 뭉실한 논의와 주장의 반복이 더 전략적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땅에서는 이미 통일이 시작되었다!'

지은이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수많은 언어를 줄세운다. 여기에서 '네 생각이 옳고 이건 그러다'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 바람도 통일에 대한 현지 진행형'이기에, 그리고 바람을 담고 있기에. 하지만 어떠한 전략적 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외세에 의해 분단이 되었고, 수구세력과 기득권, 군부에 의해 분단이 고착화 되었지만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의는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작은 불씨는 국민의 정부를 통해 되살아 낳고, 세계 나라가 위기를 맞거나 맞았더라도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며, 우리는 '가장 이상적 통일'을 이룩할 것이다라는 글쓰기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책 제목'을 뒷받침하거나 강요하기 위한 글 묶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의 글에 대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한 발 더 낳아가 구체적 논의(-186쪽에 살짝 보이지만, 금방 눈을 감아버림)를 해야 되지 않나싶다. 이런 점에서 그의 글쓰기는 통일애 대한 현재 진행형의 믿음과 확신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보여진다.


통일에 대한 또 다른 논의 키노 ㅣ 2006-06-17 ㅣ 공감(0) ㅣ 댓글 (0)


얼마전 6.15 6주년 기념을 위한 민족대축전기념행사가 있었다. 행사주체와 관련한 잡음에서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발표 등 그야말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정작 우리 국민들은 그저 무덤덤한 것만 같다. 6.15 자체가 정부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통일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당위명제로 인식하고 잇지만 그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면에서는 감상적인 면에서 통일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통일에 대해 지은이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실무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다. 6.15 공동선언문이 채택되는 과정에 참여하는 등 통일에 대한 논의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지은이의 냉철한 현실 판단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지은이가 그간 발표한 글이나 강의들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 지은이는 단일형 국민국가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릴 것을 제안하고, 그 형태야 어떻든 연합형태의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 이면에는 국제적인 조류와 국내 상황을 염두에 둔 지은이의 고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두루뭉술한 상태로 어물어물 진행되는 과정이야말로 한반도식 통일의 고유한 속성이며 그 내용 자체라고 한다. 이는 우리 주변 지역 그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중국이나 일본을 감안한 것으로 일본의 위기의식을 덜 자극하고, 또한 흡수통일 저지를 일차 목표로 삼는 북의 기득권층이나 흡수통일의 비용을 염려하는 남의 기득권층에도 차선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제3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은 남북한의 통일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은이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군사독재정권의 타도에서부터 지역주의 타파, 인권신장, 부패추방, 언론개혁, 환경보호, 성차별 철폐, 빈부격차 축소 등등을 위한 수많은 싸움들은 실질적으로는 모두 '제대로 된 통일'의 필수적 요건이라는 것이다. 무척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통일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먼저 우리 사회내에서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은이의 이러한 주장이 뚜렷한 목표점이라든지 구체적인 대책이 없이 단지 당시의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한다는 식의 우유부단한 생각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제목이 의미있지 않나 한다.

독일이나 예맨과 같은 나라들과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고, 또한 아직까지 제대로 된 통일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시간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한 생각이 옅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통일에 대한 생각으로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생활하여야 할 것이다.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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