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7

[월간조선 2009] 한국국제교류재단, 在日 反韓단체에 연구비 지원 내막 : 월간조선

[충격 리포트] 한국국제교류재단, 在日 反韓단체에 연구비 지원 내막 : 
월간조선  12 2009 MAGAZINE

[충격 리포트] 한국국제교류재단, 在日 反韓단체에 연구비 지원 내막
리쓰메이칸(立命館)大 코리아연구센터
글 : 김남성 sulsul@chosun.com

'정정 및 반론보도문'
“한국정부 지원금 받아 연방제 통일 옹호, 조총련계에 장학금 줘”


“코리아연구센터는 한국문화나 한일 역사를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옹호하는 선동대 역할.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血稅를 지원받아 조총련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기도”(리쓰메이칸大 교수 A씨)

“코리아연구센터가 예외적으로 큰 액수의 지원금을 받은 것도 문제지만, 한국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외교통상부 관계자)


“코리아연구센터의 전임연구원 안자코 유카 씨, 姜萬吉 교수와 한국에서 共著로 책 발간
그녀의 남편(한국인)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으로 활동.
센터의 실무를 담당하는 선임연구원 정영환은 조총련 산하조직의 간부로 활동, 조선청년동맹 방북단 일원으로 수차 訪北
올 6월 訪韓하려다 입국 거절돼. 그의 조총련계 인맥이 코리아연구센터 활동에 적극 참여.”

⊙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던 徐勝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센터장
⊙ 金大中 前 대통령, 徐勝 교수 주선으로 2007년 리쓰메이칸大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 받아
⊙ 코리아센터 자문위원과 외국인 특별연구원들, “코리아연구센터가 反정부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徐勝 교수는 反정부 인사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일한 사람”

리쓰메이칸대
2007년 10월 30일, 金大中(김대중) 前(전) 대통령은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리쓰메이칸(立命館)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반도 평화와 한일관계’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글씨를 쓴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현판.
이어 리쓰메이칸대 부설 ‘코리아연구센터’ 현판식에 참석했다. 코리아센터의 현판 글씨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썼으며, 현판에는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이 함께 적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 시절, 知人(지인)들이나 지지자, 친한 언론인들에게 붓으로 쓴 글씨를 나눠주곤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그가 직접 글씨를 써 준 곳은 손에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이 그만큼 애정을 쏟은 ‘코리아연구센터’는 지난 2005년 말 설립됐다.


코리아연구센터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現(현) 센터장인 徐勝(서승·65) 리쓰메이칸대 법대 교수다. 서승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16번째 명예박사 학위를 리쓰메이칸대에서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직접 연구센터 현판 글씨를 써 줬으며, 명예박사 학위 수여 후 특별 강연 모두에서 “서승 코리아연구센터 소장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서승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대표적인 재일동포 가운데 한 명이다. 서 교수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게 된 건 내력이 있다. 서 교수는 1970년대 유명한 간첩 사건 가운데 하나인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주인공이다.


햇볕정책의 적극 지지자인 徐勝 교수



1971년 재판을 받고 있는 서승(오른쪽), 서준식(오른쪽 두 번째)씨
1971년 4월 20일 金載圭(김재규) 육군보안사령관은 “선거를 틈타 민중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암약해 온 서승, 서준식 형제 등 재일교포 출신 대학생 4명을 포함한 북괴 간첩 10명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4개 網(망)의 간첩 관련자 41명 등 51명을 서울, 부산, 제주 등지에서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수사기관은 이들 형제가 큰형인 서순웅씨 지시로 북한을 방문, 대남공작 교육을 받고 反(반)국가 지하조직을 구축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朴正熙(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맞붙은 1971년 4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발표돼 의혹이 제기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성공을 위해 보안사가 간첩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간첩인 서씨 형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통했다는 혐의를 씌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증거 부족 상황에서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서승 교수는 보안사 조사 도중, 경유 난로기름을 끼얹고 분신을 기도해 얼굴 전체에 큰 화상을 입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과거 각종 간첩단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때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도 포함됐지만, 해당 사건이 조작됐다는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동생인 서준식씨가 10년간 전향서 제출을 포기하고 스스로 ‘공산주의자’라고 인정한 부분으로 미뤄, 당시 서씨 형제가 공산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부분은 확실해 보인다.

서승 교수는 1968년 4월 서울대 어학연구소 입학 후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 중 구속돼 사형 판결을 받고 복역하던 중 무기, 20년 징역으로 차례로 감형된 후 1990년 2월 가석방됐다. 동생인 서준식(전 인권운동 사랑방 대표)씨는 1972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1978년 형기가 만료됐으나, 사상전향 거부로 보안감호 10년 처분을 받은 끝에 1988년 5월 석방됐다.

1990년 석방된 서승 교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주한미군 철수,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찬성하는 강연과 기고를 활발하게 해 왔다. 이후 미국 버클리대로 유학을 떠나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98년 리쓰메이칸대 법대 교수로 부임했다. 사립 명문대인 리쓰메이칸대는 일본의 대표적인 좌파 대학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외적으로 큰 액수 지원



서승씨 형제 사건을 보도한 1971년 조선일보 기사.
서승 교수는 2000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대학 내에 있는 한국인, 일본인 교수들과 함께 ‘동북아시아 전문가 회의’를 발족시켰다. 현재의 ‘코리아연구센터’의 前身(전신)이다. 그는 이때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통일정책을 적극 지지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2005년 10월 서승 교수는 리쓰메이칸대에 ‘코리아연구센터’를 세우고 한국정부, 기관 등으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코리아연구센터에 가장 많은 지원금을 준 곳은 외교통상부 산하의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任晟準)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측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약 11만~15만 달러가 코리아연구센터에 지원됐다. 지원 명목은 코리아연구센터의 국제회의, 강연 등에 대한 지원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 K씨 얘기다.

“국제교류재단 지원금은 대개 해외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기관과 교수들의 논문이나 저술 활동을 위해 제공됩니다.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처럼 국제회의, 강연 등에 지원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입니다. 게다가 금액이 너무 많아요.”

―국제교류 재단은 대개 어느 정도 금액을 지원합니까.

“대부분 한 기관에 4만~5만 달러 내외죠. 코리아연구센터처럼 논문이나 책을 내는 것도 아닌 1회성 행사 등에 10만 달러 넘게 지원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이 관계자는 “서승 교수가 丁世鉉(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文正仁(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들과의 돈독한 인맥을 통해 국제교류재단 측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코리아연구센터는 지난 2008년 5월 30일, 리쓰메이칸대에서 ‘남북화해와 협력 10년’이라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정세현 전 장관, 張達重(장달중) 서울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정세현 장관과 문정인 교수 등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명박 정권은 오로지 정치적 목적하에서 햇볕정책을 폄하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 성과를 부각하며,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 비난하기 위한 연구소”



1990년 3·1절 가석방조치로 풀려난 서승 교수.
당시 심포지엄을 위해 코리아연구센터가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500만 엔(한화 약 7000만원)이다. 또 삼성에서 100만 엔(한화 약 1400만원)을 받았다. 다시 K씨 얘기다.

“코리아연구센터가 예외적으로 큰 액수의 지원금을 받은 것도 문제지만, 센터가 벌이고 있는 행사의 성격이 문제가 돼 왔습니다. 한국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강연, 회의 등에서 서승 교수가 항상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대북정책을 비난하고 햇볕정책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이 맞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정권부터 외교부 내에서 이런 지적이 나왔지만 ‘쉬쉬’ 했어요. 노무현 정권 실세들에게 서승 교수는 ‘행동하는 지식인’ ‘통일을 위한 큰 일꾼’이었거든요. 하지만 오사카 지역 교포들이나 외교부 내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았어요.”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리쓰메이칸대 교수인 한국인 A씨를 만났다. A교수는 코리아연구센터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코리아연구센터’에 대해 “리쓰메이칸대 안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한 연구센터라고 말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1990년 2월 서승씨(왼쪽 두 번째), 서준식(오른쪽) 형제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조작됐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리쓰메이칸대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極右(극우) 인물을 배출하는 산실이었어요. 워낙 군국주의자들이 많아서 맥아더 장군이 해체하려고 했던 곳이죠. 대학교 해체를 막기 위해 대학교 측은 극우성향을 극단적으로 줄였어요. 1960년대부터 일본 학생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본거지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각국에 관심이 높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비판적이에요. 이런 리쓰메이칸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코리아연구센터가 일본의 과거사만 들추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를 비난할 바에는 일본 대학교에 연구센터를 왜 두는지 모르겠다’고 수군댑니다.”

―다른 교수들이 코리아연구센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가요.

“처음에는 한국문화와 한일 역사를 연구한다고 해서 관심이 있었죠. 게다가 한국정부에서 돈까지 지원한다고 하니, 대학교 측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까, 이건 한국문화나 한일 역사를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옹호하는 선동대 역할을 하더라는 거죠. 게다가 일본의 식민지 역사에 대해서 북한정권의 시각으로 비판하니 불편한 거죠.”

A 교수에 따르면, 코리아연구센터는 2008년 11월부터 한 달 동안 4회에 걸쳐 親北(친북)학자로 유명한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를 초청해 강의를 맡겼다. 미즈노 교수는 ‘日朝(일조·日北) 국민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북학자다. 미즈노 교수는 4회 강연 내내, 일본 식민지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비판했다고 한다. 다시 A 교수의 얘기다.




親北학자 초청해 강연



1988년 7월 12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양심수전원석방 수배해제 쟁취를 위한 국민대회 모습. 김대중 대통령 우측에 서준식씨가 앉아 있다.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해서 우리 민족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코리아연구센터에서 주최하는 강연의 궁극적인 핵심은 ‘식민 지배를 했던 너희가(일본) 어떻게 북한을 욕할 수 있느냐’ ‘일본이 납치한 사람에 비하면 북한에 납치된 사람은 소수다’ ‘일본이 조총련계 조선인 주민들을 우대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에요. 이런 주장은 일본 조총련이 주장하는 내용과 완전히 똑같아요.”

―북한 정권이나 조총련의 시각과 일치하는 주장을 할 때, 다른 한국인 연구원이나 교수들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나요.

“코리아연구센터는 대부분 서승 교수와 같은 시각을 가진 일본인이나, 조총련 출신이 연구원입니다. 이들이 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대규모 심포지엄을 할 때가 아니면 한국인 교수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습니다.”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홈페이지에서 연구센터 구성을 살펴봤다. 코리아연구센터는 사무국과 연구위원, 전임연구원, 자문위원, 특별연구원, 외국인특별연구원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 가운데, 상근직은 사무국 직원과 전임연구원밖에 없다. A교수의 설명이다.

“코리아연구센터의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일본인 안자코 유카 씨입니다. 안자코 씨는 일본에서 석사를 마친 후, 고려대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姜萬吉(강만길·76) 명예교수의 직계제자는 아니지만, 강 교수와 끈이 닿아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강 교수와 共著(공저)로 책을 내기도 했죠. 안자코 교수의 남편이 한국 사람인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으로 활동했어요. 이런 배경 때문에 북한, 남북통일, 일본을 보는 시각이 서승 교수와 맥이 닿아 있어요.”

―조총련계 사람들이 많이 활동합니까.

“코리아연구센터 연구원 가운데, 조총련계인 정영환 선임연구원이 있습니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상근을 하지 않는데, 정영환 연구원은 거의 상근을 하다시피 합니다. 이 사람이 안자코 유카 씨와 함께 코리아연구센터의 실무를 모두 담당하고 있어요. 정씨는 과거 조총련 산하 조직인 유학동 간부로 활동했고, 조선청년동맹 방북단 일원으로 북한에도 여러 차례 갔던 인물입니다. 정영환씨의 인맥이 대부분 조총련계라서, 조총련계 사람들이 코리아연구센터 활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조총련계 정영환 선임연구원 우리 정부가 入國 거절

―정영환씨가 한국에 입국한 적이 있나요.

“올해 6월에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한일 공동심포지엄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입국이 거절됐어요. 조총련 활동을 활발히 한 것도 문제가 됐고, 북한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재일동포들을 自國(자국) 공민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총영사관에서 입국을 거절했겠죠.”

여권법 시행령 16조는 한국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외국거주 동포는 외교통상부장관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사카 총영사관이 정영환씨 입국을 거부했다는 건 정영환씨가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정부 지원금 받아 조총련계에 장학금 줬다”

다시 A씨와 나눈 얘기다.

―코리아연구센터는 어떤 활동을 합니까.

“주로 남북 문제나 한일 관계, 식민지배 등에 관해서 강연을 합니다. 일본 내 학자들이나 재일동포들을 모아서 회의를 하고, 1년 한두 차례 국제심포지엄을 하죠. 또 차세대포럼이라고 해서 한국과 일본에 있는 대학생들을 불러서 모임을 가져요. 그런데 이 포럼에 참가한 조총련계 학생들에게 포럼 참가비 명목으로 장학금을 준다고 합니다. 동료 교수들이 ‘한국정부 돈을 받아서 북한 쪽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을 하더군요.”

―서승 교수에게 관련 내용을 물어봤나요.

“포럼 참가비가 장학금이냐고 물어보니 얼버무렸어요. 서승 교수는 북한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에요. 제가 한국어 강좌를 열자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관심도 없더군요. 오로지 햇볕정책, 일본 식민지 문제만 신경을 써요. 코리아연구센터가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곳에 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원금을 주는 겁니까?”

코리아연구센터에 자금을 지원한 정부 관련 기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뿐이 아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鄭在貞)은 지난 2008년 6월 코리아연구센터에 1600만원을 지원했다. 조선 식민지시대를 주제로 한 역사강좌 지원금 명목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서승 교수가 개인 인맥을 통해 자금을 신청했다고 한다.

또 재외동포재단(이사장 李求弘)은 2007년 10월 코리아연구센터에 한국영화제 개최 명목으로 100만 엔(약 1400만원), 2008년 11월에는 재일동포문제 국제심포지엄 비용으로 100만 엔을 지원했다.

재외동포재단 측에 따르면, 지난 2007년 3월 서승 교수가 이구홍 재외동포재단 이사장과 개별 접촉을 통해, 재일동포 가수 박보씨 콘서트 개최를 명목으로 약 1만5000달러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행사 성격과 참석 인원 상당수가 조총련과 관련돼 있어 국정원의 이의제기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연구센터는 한국정부에서 재일민단에 주는 교부금에도 눈길을 돌렸다. 오사카 민단본부 洪性仁(홍성인·75) 고문에 따르면, 코리아연구센터 측이 2007년 2월 오사카 총영사관에 민단 교부금 가운데 일부를 자신들에게 할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민단 측은 “일본에서 대한민국을 비판하고 조총련 인사들과 어울려 다니는 곳에 민단 교부금을 내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해 무산됐다고 한다. 홍성인 고문의 얘기다.

“리쓰메이칸대는 좌파 인사들이 많아서 민단에서 예의주시하는 곳입니다. 코리아연구센터가 대한민국을 욕하고 다니고, 조총련계 사람들과 똑같은 얘기를 하고 다니면서 어떻게 대한민국 정부가 민단에 주는 돈을 탐냅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입니다.”



2000년 6월 15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축하 오찬에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백낙청(왼쪽 세 번째), 강만길(왼쪽 네 번째) 교수의 모습.

“강연료 등 과대 계상”

지난 3년간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에 약 40만 달러 넘게 지원금을 준 국제교류재단 측은 이런 사실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국제교류재단 관계자와 나눈 얘기다.

―코리아연구센터에 지원금을 준 이유가 있습니까.

“국제교류재단은 전 세계 대학교 가운데 한국 관련 연구소에 지원을 합니다.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에 지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원금 규모가 다른 곳보다 크더군요.

“네. 인정합니다. 대개 4만 달러 내외인데, 리쓰메이칸대에 지원이 많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본이라 우리나라 동포가 많기 때문에 지원금을 많이 보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센터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확인했습니까.

“남북 관계, 한일 관계 등에 대해 강연이나 심포지엄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센터에서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했는지 확인했나요.

“저희에게 지원금 사용 내역을 보냈습니다.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교류재단 관계자의 얘기와 달리, 리쓰메이칸대 A 교수는 “코리아연구센터는 각종 행사 후에 실제 지불한 비용보다 금액이 많은 영수증을 만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강연 등 행사가 끝나면 연구센터에서 항상 영수증을 임의로 만들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연료를 준다는 명목으로 영수증을 만들었어요. 사실 강연이나 심포지엄을 해도 별로 사람이 많이 오지 않거든요. 강연하지 않은 사람 이름으로 강연료를 준 것처럼 해서 다른 곳에 쓰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어요.”

코리아연구센터 소장인 서승 리쓰메이칸대 법학부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국정원, 검찰, 법원에서는 과거 서 교수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서 교수를 여전히 간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과 다른 시각을 가진 1970~1980년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서 교수를 민주화 운동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승 교수는 민주화 인사”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센터 자문위원과 외국인 특별연구원 가운데서는 눈에 익은 이름이 여럿 있다. 白樂晴(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 金容德(김용덕) 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모 교토 민단 단장과 김우전 광복회 고문 등도 자문위원 명단에 있었다.

외국인 특별연구원 명단에는 韓寅燮(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鄭根植(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柳鍾一(유종일) 전 노무현 대통령후보 경제 자문(현 KDI 대학원 교수), 徐東晩(서동만) 전 상지대 교수, 徐敏敎(서민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 등이 실렸다.

이들이 코리아연구센터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뭘까. 月刊朝鮮은 이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일부 교수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락이 된 교수들은 “코리아연구센터가 조총련과 활동했는지 모른다. 反(반)정부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서승 교수는 반정부 인사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서울대와 코리아연구센터가 여러 차례 학술교류 활동을 했습니다. 코리아연구센터가 조총련 계열 인사들과 反韓(반한) 활동을 했다는 얘기는 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 서승 교수는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 수많은 사건을 조작할 때, 많은 희생을 치른 분입니다.”(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리쓰메이칸대는 진보적인 학교라고 들었습니다. 이 학교 출신 학생들이 우수하고 진보적인데 한국에서는 취직이 안돼 고민이 많다고 해서 관심이 가더군요. 코리아연구센터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두세 차례 참석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한국의 정치 변화와 한미일 동맹 관계 변화’라는 제목의 논문도 발표했습니다. 저는 서승 교수나 코리아연구센터가 친북 관련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승 교수는 민주화 인사지 친북 인사가 아닙니다. 생각은 진보지만 인간관계가 넓어 보수 인사들과 친분이 깊습니다.”(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저는 한국학, 특히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이기 때문에 코리아연구센터에 참여했습니다. 최근 영화배우 김혜수씨도 코리아연구센터에서 행사를 했습니다. 그럼 김혜수씨도 조총련 계열인가요. 저는 코리아연구센터가 조총련과 관련된 활동을 했는지 전혀 모릅니다.”(金貴玉 한성대 교양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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