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10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 김윤태 문학평론가

“10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 인문 < 칼럼/에세이 < 기사본문 - 더칼럼니스트



기자명김윤태 문학평론가
인문
입력 2024.10.30

“10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김윤태의 항일민족문학 소개]
안중근 「장부가」와 우덕순 「거의가」
1909년 10월26일에 하얼빈역에서
민족 원흉 암살 거사 앞둔 두 청년의 결의
뉴라이트 세력 준동, 10·26 떠올리게 해


* 필자 주- 지난 6~9월 넉 달 동안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칼럼을 4회 건너뛰게 된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께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칼럼을 재개하는 김에, 그동안 <한국시 산책>이 취해 왔던 시기별·사건별 접근의 방향을 좀 바꾸어서 당분간 “항일민족문학” 작품들을 찾아 소개하는 방식으로 몇 차례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이에 <더칼럼니스트> 편집진의 동의를 얻어 이 글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다시 회복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79년 10월26일 그 날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단 한 명의 가수를 꼽으라고 설문조사를 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는 조용필이 차지할 것이다. 그는 특히 198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었는데, 당시 거의 모든 가수·가요상을 휩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급기야 1987년부터는 TV 프로그램에서 주는 그같은 가요 관련 상들의 수상을 스스로 거부했다고 한다. 이젠 방송이나 언론에 거의 비치지 않는 그에게 아직도 대중들은 ‘가왕’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그를 칭송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조용필을 제치고 1982년에 깜짝 ‘가수왕’(MBC 최고 인기 가수상)을 차지했던 이가 있었다. 1981년인가에 데뷔해서 1년 만에 최고 가수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함 직하지 않은가. 그는 ‘이용’이라는 가수였고, 그에게 가수왕의 타이틀을 안긴 노래는 「잊혀진 계절」이란 곡이었다. 그 노래 가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으로 시작하는데, 노래가 발표된 지 42년이나 지난 요새에도 더러 불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인기가 많았긴 했던 것 같다.

이즈음, 즉 바로 10월 말이 오면 필자도 가끔 그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꼭 그 노래를 개사한 것을 이어 부르게 되곤 한다. “왜 개사한 노래를?”이라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당시 대학생들은 1979년 10월 26일의 사건을 다 알고 있었고,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대목에 이르면 꼭 그 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날 저녁 경복궁 옆 궁정동의 안가에서는 젊은 여가수와 여대생을 양옆에 앉히고 정부 최고직의 부하 3명과 함께 회식을 즐기던 당시 군사독재의 권력자 박정희 대통령이 같은 고향에 같은 군인 출신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피격당해 사망하는, 희대의 대사건이 터진 것이다(당시의 이같은 정황을 자세히 재연하고 싶다면,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보라).

당시 대한민국의 전국민들에겐, 아니 전세계가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던 것, 그 순간 18년 간의 군사독재가 끝장나버린 것이다. 여기서 잠깐, 바로 그 노래 「잊혀진 계절」의 가사와 그 개사된 가사를 불러보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시월의 마지막 밤을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양주잔 기울이고 있다가) /
우리는 헤어졌지요(머리에 총맞았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짜릿했던 술맛은) /
그대의 진실인가요(독재의 종말인가요) /
한마디 변명도(유언도) 못하고 /
잊혀져야(물러줘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그래도 뒤를 잇는 파쇼는) /
나에게 꿈을 주지만 /
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
나를 울려요. (이하 생략 / 괄호 안은 개사)

그렇다. 우리는, 아니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 사건이 나기 딱 3주 전, 추석날 저녁에 유신 철폐 등의 내용이 적힌 유인물을 뿌리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되어 구치소 감방에서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기에, 45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그 마지막 밤’을 더더욱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이렇듯 10.26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

1909년 10월 26일 그날

그런데 한국의 근대사에서 “또 다른 10.26”이 있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115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만주 하얼빈역에서 울린 세 발의 총성! 일본의 초대 수상에 초대 조선통감을 지냈던 노회한 거물급 정객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안중근 의사가 저격하여 사망케 한 바로 그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너무나도 유명하기에, 여기에서 사건의 세부를 낱낱이 거론할 필요는 굳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거사를 치르기 전에 안중근 의사가 동지들과 함께 결의를 다지는 시 한 수를 지었다는 사실을 밝혀 소개하고자 한다.

「거사가(擧事歌)」 혹은 「장부가(丈夫歌)」라 불리는 이 시는 거사 3일 전 하얼빈에 있는 동지 김성백의 집에서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 등과 모여 거사에 임하는 자신의 각오와 결기를 읊은 것이다. 한시와 한글 시가 함께 전해진다고 한 것으로 보아, 두 가지 언어로 동시에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뚯이 크도다 丈夫處世兮 其志大矣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時造英雄兮 英雄時造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꼬 雄視天下兮 何日業成

동풍이 점점 참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東風漸寒兮 壯士義烈
분개하여 한 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憤慨一去兮 必成目的
쥐 도적 쥐 도적이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꼬 鼠窺鼠窺兮 豈肯此命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요, 시세가 고연하도다 豈度知此兮 時勢固然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同胞同胞兮 速成大業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萬歲萬歲兮 大韓獨立
만세 만만세여, 대한동포로다 萬歲萬歲兮 大韓同胞

(신동한 엮음, 『항일민족시집』, 서문문고, 1975, 132-134쪽 참조. 이 책에서 해당 작품을 인용했으나 약간의 오류가 발견되어 필자가 수정·보완하였음을 밝힌다.)
신동한 엮음 '항일민족시집'

위 시에서 ‘쥐 도적’이 이토 히로부미를 지칭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원문에는 쥐 도적(鼠窺)이 중복되지 않고 ○○으로 비어 있다고 한다. 보안의 필요성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이며, 그 자리에 들어갈 단어는 이토(伊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업’(이토 암살)을 이루고자 하는 안 의사의 장부(丈夫)로서의 결의에 찬 모습을 누구나 쉬이 읽어낼 수 있으리라.

이에 화답하여 우덕순(禹德淳)이 쓴 「거의가(擧義歌)」도 아울러 소개한다. 우덕순은 하얼빈 의거를 모의했던 동지였다. 그는 하얼빈역보다 앞 역인 차이자거우(蔡家具)역에서 거사를 분담 준비하던 중 기차역 객사에 갇혀버리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오히려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힌 인물이다.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
너를 한번 만나고자 일평생에 원했지만
하상견지만야(何相見之晩也)련고

너를 한번 만나려고 수륙으로 기만리(幾萬里)를
혹은 윤선(輪船) 혹은 화차(火車) 천신만고 거듭하여
노청양지(露淸兩地) 지날 때에 앉을 때나 섰을 때나

앙천(仰天)하고 기도하길 살피소서 살피소서 주 예수여 살피소서
동반도(東半島)의 대제국을 내 원대로 구하소서
오호라 간악한 노적(老賊)아 우리 민족 이천만을
멸망까지 시켜놓고 금수강산 삼천리를 소리없이 뺏느라고
궁흉극악(窮凶極惡) 네 수단을
대한민족 이천만이 다 같이 애련하여
너 노적을 이 정거장에서 만나기를 천만번 기도하며
주야를 잊고 만나고자 하였더니 마침내 이토를 만났고나

금일 네 명(命)이 나의 손에 달렸으니
지금 네 명(命) 끊어지니 너도 원통하리로다.
갑오 독립 시켜놓고 을사늑체(을사체약 乙巳締約)한 연후에
오늘 네가 북향(北向)할 줄 나도 역시 몰랐도다.
덕(德) 닦으면 덕이 오고 죄(罪) 범하면 죄가 온다.
네뿐인 줄 알지 마라. 너의 동포 오천만을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씩 보는 대로
내 손으로 죽이리라.

오호라 우리 동포여
한마음으로 전결(專結)한 후 우리 국권 회복하고
부국강병 꾀하면은 세계에 어느 누가 압박할까
우리의 자유가 하등(下等)의 냉우(冷雨)를 받으니
속히 속히 합심하고 용감한 힘을 가져 국민 의무 다하세.

(신동한 엮음, 항일민족시집, 서문문고, 1975, 156-157쪽 참조.

이 책에서 해당 작품을 인용했으나 약간의 오류가 발견되어 필자가 수정·보완하였음을 밝힌다.)

위 시에서도 역시 노적(老賊)은 이토 히로부미를 말한다. 그를 처단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후로도 일본인은 보이는 대로 죽이겠다는 의기를 다지며, 국권 회복과 나라의 부국강병을 제시하는 등 향후 독립투쟁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영화 '하얼빈' 포스터.

2024년 10월의 마지막 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필자는 이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 이 제작되어 오는 12월에 개봉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주연 배우로 안중근 역엔 현빈, 우덕순 역에는 박정민이라고 전한다. 이미 예고편과 포스터는 공개된 모양이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대한제국의 강점을 마치 합법적인 일인 양 호도하고 일제의 식민지 체제에 의해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처럼 주장하는 뉴라이트 세력들이 현 정부의 이념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요즈음의 정치적 실태를 고려할 때, 1909년의 10.26 사건이 다시 우리 앞에 호출되었으면 싶은 심정이 들기 때문이다.

1979년의 10.26과 더불어 우리 역사를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면서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 김윤태는 한때 문학평론가로 잠시 활동하면서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한 연구자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어쩌다 그냥 잡문이나 끄적이는 낭인(?)이라 스스로 평한다.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박사 졸업. 저서도 오래 전에 출판한 <한국 현대시와 리얼리티>(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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