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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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2015.12.28.~2017.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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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2022.5.10.~현재) | → | (현재) | ||
더불어민주당 | |
영문 명칭 | Democratic Party of Korea |
등록 약칭 | 민주당, 더민주[1] |
슬로건 | 회복과 성장 다시 大한민국[2] |
고유번호 | 107-82-12235[3] |
설립일 | |
창당일 | |
당명 변경 | |
주소 | |
대표 | 이재명 / 재선 (21·22대) |
원내대표 | 박찬대 / 3선 (20-22대) |
사무총장 | 김윤덕 / 3선 (19·21·22대) |
정책위의장 | 진성준 / 3선 (19·21·22대) |
국회의원 | 170석[5] / 300석 (56.67%) |
광역자치단체장 | 5석[6] / 17석 (29.41%) |
기초자치단체장 | 71석[7] / 226석 (31.42%) |
광역의회의원 | 322석[8] / 872석 (37.39%) |
기초의회의원 | 1,355석[9] / 2,988석 (45.78%) |
당 색 | 파란색 (#152484) (2024 ~ 현재) |
파랑 (#003C96) | |
보라 (#5A1B87) | |
초록 (#006464) | |
정책연구소 | |
후원회 | |
재외국민조직 | |
당원 수 | 5,129,314명 (2023년 12월 31일 기준)[10] |
권리당원 수 | 1,504,222명 (2023년 12월 31일 기준) |
정당보조금 | 5,433,449,680원 (2024년도 4분기) |
당비 수입 | 29,634,969,448원 (2023년 기준) |
재산총액 | 88,574,077,445원 (2023년 기준) |
당가 | |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신익희와 조병옥을 중심으로 창당된 민주당을 당의 기원으로 규정한다.[11][12]
1955년 민주당은 이승만 정부에 대항해 4.19 혁명을 거쳐 집권에 성공했으나 집권 1년 만인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으로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1967년 민주당의 후신격으로 창당된 신민당이 1960년대~1970년대 동안 박정희 정부에 맞서는 주요 야당으로 활동했다. 1980년 신군부의 5.17 내란으로 신민당이 해산되자 1985년 신한민주당이 창당되어 선명야당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고, 1987년 통일민주당이 창당되어 그 뒤를 이었다. 통일민주당은 1987년 말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상도동계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과 동교동계의 평화민주당으로 갈라졌는데, 이 평화민주당이 현 더불어민주당의 실질적인 전신이다.
통일민주당은 1990년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되었고, 이는 현재의 국민의힘 계보로 이어진다. 반면 평화민주당은 3당 합당에 반대하는 통일민주당 탈당파(꼬마민주당)와 합당해 민주당이 되었으며, 김대중의 정계 복귀와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로 재편돼 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되었고, 두 정당은 2008년 통합민주당으로 합쳐졌다. 이후 2014년 통합민주당의 후신인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으나 친노-친문계와 비노-비문계(친안+호남계) 간의 계파 갈등 끝에 분당 사태를 겪고 2015년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1955년 민주당은 이승만 정부에 대항해 4.19 혁명을 거쳐 집권에 성공했으나 집권 1년 만인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으로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1967년 민주당의 후신격으로 창당된 신민당이 1960년대~1970년대 동안 박정희 정부에 맞서는 주요 야당으로 활동했다. 1980년 신군부의 5.17 내란으로 신민당이 해산되자 1985년 신한민주당이 창당되어 선명야당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고, 1987년 통일민주당이 창당되어 그 뒤를 이었다. 통일민주당은 1987년 말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상도동계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과 동교동계의 평화민주당으로 갈라졌는데, 이 평화민주당이 현 더불어민주당의 실질적인 전신이다.
통일민주당은 1990년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되었고, 이는 현재의 국민의힘 계보로 이어진다. 반면 평화민주당은 3당 합당에 반대하는 통일민주당 탈당파(꼬마민주당)와 합당해 민주당이 되었으며, 김대중의 정계 복귀와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로 재편돼 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되었고, 두 정당은 2008년 통합민주당으로 합쳐졌다. 이후 2014년 통합민주당의 후신인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으나 친노-친문계와 비노-비문계(친안+호남계) 간의 계파 갈등 끝에 분당 사태를 겪고 2015년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 간의 갈등과 분당을 계기로 시작한 정당인 만큼 초기에는 불안정성과 세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유일하게 전국 선거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석 차이의 신승을 거두며 야당 입장으로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고,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정권을 교체하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대구광역시, 경상북도를 제외한 전 지역을 휩쓸며 압승을 거두었고[13],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과의 연합을 통해 전체 의석수의 60%에 달하는 180석[14]을 확보하면서 1990년 3당 합당 직후의 민주자유당 다음으로 많은 의석을 확보한 초거대 여당이 되었다. 이는 선거로 확보한 의석으로는 가장 많은 수치이다.
이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하며 야당으로 전락했으나,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직전 총선 때 얻은 의석과 거의 비슷한 175석[15]을 얻어 압승하며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의 위치에서 단독 과반을 점하며 승리한 정당이 되면서 총선 3연승을 기록하였다. 또한 헌정사상 최초로 호남의 전 지역구를 석권한 정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16]
역대 민주당계 정당 중 두 번째로 오랫동안 단일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17] 2015년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이래로 2025년 현재까지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지지세를 잃거나 선거에서 크게 패배하거나 중견급 정당과 합당하거나 하면 이른바 '새 술은 새 부대에' 정신으로 당명을 변경하는 경향이 있으며, 민주당 역시 2000년대 중반부터 장기간 침체기에 빠져 당명을 자주 변경해 왔다. 따라서 단일 당명으로 오랜 기간 존속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18] 만약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거나 지지세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해 당명을 계속 사용한다면 보수 정당 한나라당(1997 ~ 2012, 15년)의 당명 유지 기간을 초과할 수도 있다.[19][20]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정당들 중 당원이 가장 많다. 2017년 10월에 권리당원(당비납부당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였고, 2017년 11월에는 150만 명을 넘었으며,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200만 명을 돌파하였다.
당내 계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며, 주요 계파로는 주류 친노·친문을 중심으로 한 계파와, 중도개혁주의 노선을 따랐던 동교동계 출신, 열린우리당 시절 실용파 출신, 온건주의 성향의 정세균계, 사회민주주의~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친명계와 민평련 등이 있다. 중도실용주의 방향성을 가진 홍의락 전 의원,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김부겸과 김영춘, 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의 김진표, 박영선, 김회재, 경제적 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성향의 이언주 등도 존재한다.
이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하며 야당으로 전락했으나,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직전 총선 때 얻은 의석과 거의 비슷한 175석[15]을 얻어 압승하며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의 위치에서 단독 과반을 점하며 승리한 정당이 되면서 총선 3연승을 기록하였다. 또한 헌정사상 최초로 호남의 전 지역구를 석권한 정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16]
역대 민주당계 정당 중 두 번째로 오랫동안 단일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17] 2015년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이래로 2025년 현재까지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지지세를 잃거나 선거에서 크게 패배하거나 중견급 정당과 합당하거나 하면 이른바 '새 술은 새 부대에' 정신으로 당명을 변경하는 경향이 있으며, 민주당 역시 2000년대 중반부터 장기간 침체기에 빠져 당명을 자주 변경해 왔다. 따라서 단일 당명으로 오랜 기간 존속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18] 만약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거나 지지세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해 당명을 계속 사용한다면 보수 정당 한나라당(1997 ~ 2012, 15년)의 당명 유지 기간을 초과할 수도 있다.[19][20]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정당들 중 당원이 가장 많다. 2017년 10월에 권리당원(당비납부당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였고, 2017년 11월에는 150만 명을 넘었으며,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200만 명을 돌파하였다.
당내 계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며, 주요 계파로는 주류 친노·친문을 중심으로 한 계파와, 중도개혁주의 노선을 따랐던 동교동계 출신, 열린우리당 시절 실용파 출신, 온건주의 성향의 정세균계, 사회민주주의~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친명계와 민평련 등이 있다. 중도실용주의 방향성을 가진 홍의락 전 의원,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김부겸과 김영춘, 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의 김진표, 박영선, 김회재, 경제적 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성향의 이언주 등도 존재한다.
양당제 특성상 세간에는 '진보진영에 속하는 정당' 내지 '진보정당'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 당의 정치 성향을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국민의힘과 그 전신 당들이 중심이 된 범보수의 축과 꾸준히 대립·경쟁해온 정당으로서 범진보의 소위 '큰집' 역할을 하는 중심축으로 기능해왔으며, 당 강령과 노선 그리고 그동안 추진해온 정강정책을 살펴보면 양당제로 점철된 한국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쪽으로 변천해왔다고 평가함이 적절하다. 그럼에도 마냥 진보 일색의 정책을 고수하거나 뚜렷한 선명성을 보이지는 않았고 당 차원에서 지도부 인사들이 스스로를 '진보정당'으로 규정하거나 "진보를 위해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산한 적은 딱히 없다.[21] 거대 양당의 한 축으로서 수권정당으로 기능하기 위해 중도화되고, 더 나아가 일견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국민의 정부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 대응 차원에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시행했고[22]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한미 FTA 협상을 진행했다. 즉,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정책과 노선을 조정해왔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해외에서는 중도~중도좌파(centre to centre left) 스펙트럼의 자유주의(리버럴) 정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타국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민주당, 독일 사회민주당-기독교민주연합-자유민주당의 혼합, 프랑스의 르네상스(구 '앙마르슈') 등과 비슷한 성향이라는 평. 때문에 진보좌파 선명성이 짙은 서유럽과 북유럽의 정치 지형에 가져다놓으면 중도~중도우파 계열 정당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범진보의 대표 격인 위치에 있음에도 내부 구성원들의 개별 성향은 매우 다양하다. 이는 과거 수십 년간 군사정권과 주류 보수정당에 대항하며 분당·합당·창당 등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양당제라는 공고한 진입장벽 앞에 현실과 타협한 군소 진보정당계 인사들의 정착지가 된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가 반영된 결과다. 명목상 당의 기원으로 간주하고 있는 1955년의 첫 민주당만 해도 반(反)이승만을 내세웠을 뿐 이념적으로는 자유당과 큰 차이가 없는 반공 보수 우익정당이었으나, 1960년대 신민당 시절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에 맞서며 점차 진보화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이 자유주의 및 반독재 민주화의 가치 아래 한데 모였고, 중도파 정치인들과 일부 좌파 정치인들까지 함께 활동하면서 당의 이념이 폭넓게 형성되었다. 21세기 들어서도 내부 갈등[23]과 외부 압력 속에 당의 성향은 유연하고 포괄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진보신당과 정의당 등 군소 진보정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입당[24]해왔다. 오늘날에는 국민의힘,[25] 개혁신당,[26] 새미래민주당[27]보다 더 진보적이며, 진보당, 정의당, 기본소득당보단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경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이 자유시장을 강조하며 규제 완화를 비롯해 기업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 경제 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민주당은 복지 확대와 공공 서비스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 안전망 확충과 소득 재분배 정책을 통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사회·문화 이슈에서는 대체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친노동자 정책, 성평등 정책, 청소년 및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인권을 중시하며 적극 연대하고자 하는 진보 정치인들도 있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적 전통을 근거로 이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제동을 거는 보수 인사들도 있다.[28] 당내에 혼재되어 있는 이러한 성향 때문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대의 아래 노동자의 기초적인 권익 보호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데에는 긍정적이지만, 노동권 신장이나 성소수자 인권 증진 등 이보다 더 진보색이 강한 정책들에는 "당내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거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지점은 군소 진보정당들로부터 꾸준히 비판받는 대목이기도 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전제하지만, 국민의힘과 달리 북한과의 대화에 협력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한 한미관계를 가장 중시하면서도 경제 교류 및 북한 문제를 고려해 한중관계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는 민주당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한일관계 개선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만큼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과거사 및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29]
빅 텐트 정당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성향도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가장 강고한 지지 기반인 호남은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고 기독교 신자가 많아 사회보수주의 세가 만만치 않은 지역이지만, 호남소외론과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독재정권 시기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보수정당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 줄곧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진보정당[30] 지지자들 또한 유럽의 자유주의 정당들과 비교해 문화적 자유주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옅은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하나, 현실적으로 양당제인 한국 정치에서 민주당을 제외하면 선택지가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뿐이기에 전략적 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많다.
정리하자면 사회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중도·진보 세력을 아우르되, 항일 독립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동서화합, 남북대화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중도~중도좌파(centre to centre left) 빅텐트 정당(포괄정당)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국민의 정부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 대응 차원에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시행했고[22]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한미 FTA 협상을 진행했다. 즉,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정책과 노선을 조정해왔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해외에서는 중도~중도좌파(centre to centre left) 스펙트럼의 자유주의(리버럴) 정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타국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민주당, 독일 사회민주당-기독교민주연합-자유민주당의 혼합, 프랑스의 르네상스(구 '앙마르슈') 등과 비슷한 성향이라는 평. 때문에 진보좌파 선명성이 짙은 서유럽과 북유럽의 정치 지형에 가져다놓으면 중도~중도우파 계열 정당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범진보의 대표 격인 위치에 있음에도 내부 구성원들의 개별 성향은 매우 다양하다. 이는 과거 수십 년간 군사정권과 주류 보수정당에 대항하며 분당·합당·창당 등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양당제라는 공고한 진입장벽 앞에 현실과 타협한 군소 진보정당계 인사들의 정착지가 된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가 반영된 결과다. 명목상 당의 기원으로 간주하고 있는 1955년의 첫 민주당만 해도 반(反)이승만을 내세웠을 뿐 이념적으로는 자유당과 큰 차이가 없는 반공 보수 우익정당이었으나, 1960년대 신민당 시절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에 맞서며 점차 진보화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이 자유주의 및 반독재 민주화의 가치 아래 한데 모였고, 중도파 정치인들과 일부 좌파 정치인들까지 함께 활동하면서 당의 이념이 폭넓게 형성되었다. 21세기 들어서도 내부 갈등[23]과 외부 압력 속에 당의 성향은 유연하고 포괄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진보신당과 정의당 등 군소 진보정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입당[24]해왔다. 오늘날에는 국민의힘,[25] 개혁신당,[26] 새미래민주당[27]보다 더 진보적이며, 진보당, 정의당, 기본소득당보단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경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이 자유시장을 강조하며 규제 완화를 비롯해 기업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 경제 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민주당은 복지 확대와 공공 서비스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 안전망 확충과 소득 재분배 정책을 통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사회·문화 이슈에서는 대체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친노동자 정책, 성평등 정책, 청소년 및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인권을 중시하며 적극 연대하고자 하는 진보 정치인들도 있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적 전통을 근거로 이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제동을 거는 보수 인사들도 있다.[28] 당내에 혼재되어 있는 이러한 성향 때문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대의 아래 노동자의 기초적인 권익 보호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데에는 긍정적이지만, 노동권 신장이나 성소수자 인권 증진 등 이보다 더 진보색이 강한 정책들에는 "당내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거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지점은 군소 진보정당들로부터 꾸준히 비판받는 대목이기도 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전제하지만, 국민의힘과 달리 북한과의 대화에 협력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한 한미관계를 가장 중시하면서도 경제 교류 및 북한 문제를 고려해 한중관계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는 민주당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한일관계 개선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만큼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과거사 및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29]
빅 텐트 정당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성향도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가장 강고한 지지 기반인 호남은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고 기독교 신자가 많아 사회보수주의 세가 만만치 않은 지역이지만, 호남소외론과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독재정권 시기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보수정당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 줄곧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진보정당[30] 지지자들 또한 유럽의 자유주의 정당들과 비교해 문화적 자유주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옅은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하나, 현실적으로 양당제인 한국 정치에서 민주당을 제외하면 선택지가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뿐이기에 전략적 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많다.
정리하자면 사회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중도·진보 세력을 아우르되, 항일 독립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동서화합, 남북대화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중도~중도좌파(centre to centre left) 빅텐트 정당(포괄정당)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음의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강령/정강 정책에서 옮긴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공식사이트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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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촛불민주주의 혁명은 시민의 일상적 참여를 보장하는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중심의 정당· 의회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지향 하고 의회 내 정당 간 협력의 정치를 추구한다.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해 시민중심 정당을 구현한다.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를 없애고 공직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 청렴사회를 구현한다. 당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해 새로운 디지털기술 기반의 플랫폼 정당을 실현한다.
-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자율과 조화의 헌법정신에 따라, 지방이 건강한 나라,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강화해 국민 각자가 전국 어디에서나 균등한 기회를 누리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한다. 주민자치를 활성화해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한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자치조직권·자치재정권을 확대해 각 지역의 자생적·자립적 성장기반을 마련한다.
- 남북통일
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 공동 선언과 10.4 남북 공동 선언 등 남북 간 합의를 존중하고 계승하며,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남북관계를 지향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국제사회 협력과 국민 합의에 기반한 통일·대북정책을 추진하며,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구현하여 번영된 통일국가 건설의 기반을 조성한다.
- 경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하에서 성장과 분배가 조화롭게 실현되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만든다. 경제적 생산성과 사회적 지속가능성 간의 선순환에 바탕한 성장을 추구하며,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 투입중심의 양적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혁신 중심의 질적 성장 방식을 지향함으로써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자율적 참여와 연계를 장려하고, 공정한 경쟁 의 기회를 보장한다. 국민 모두가 성장의 혜택을 공정하게 누릴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고,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여 ‘함께 잘 사는 나라,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든다.
- 기후·환경·에너지
21세기 모든 인류가 당면한 과제인 지구생태계의 회복과 보전,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성장과 효율을 환경보전 및 사회 형평성과 조화시키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한다. 청정에너지 공급 확대와 에너지 효율 혁신, 에너지 생산 · 소비방식의 공정성 제고를 통해 효율성과 형평성이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 전환을 추구한다. 자연생태계의 부담을 경감하는 자원순환형 사회를 구축하고, 자연생태계의 회복과 사전예방적 보전을 위해 노력한다.
- 복지
복지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인 동시에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바탕으로 국민 모두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기회균등과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포용적 복지국가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국민통합을 실현한다.
- 일자리·노동
혁신성장과 포용적 성장과 함께하는 경제로 사회통합적 일자리를 마련한다. 적정한 임금과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구축하며 일자리 안전망을 강화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권익을 보장받으면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한다. 헌법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동인권 및 노동기본권을 신장한다. 일하는 사람이 경제와 사회의 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촉진시키고, 사회적 대화기구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 교육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다. 따라서 교육은 국가의 기본 책임이다. 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통해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이 불평등과 차별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통합의 경로가 되도록 높은 수준의 교육재정을 확보한다. 국가와 세계의 문제에 대해 참여하고 책임지는 민주시민성을 기르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가는 인재를 육성한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여 헌법에 규정된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는 평생학습사회를 만든다.
- 언론·미디어
국민의 정서적·정신적 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언론은 정치 및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언론의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통해 건강한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며, 의사표현의 제약이 없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론의 장을 만든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경쟁관계 속에서 국민이 차별받거나 소외받지 않고 다양한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미디어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원 확대와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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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68길 7 |
Democratic Party of Korea | |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은 디자이너 손혜원이 지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국민의당이 분당한 이후 홍보위원장으로 취임한 손혜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브랜드가 좋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하였고, 여론조사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당명을 낙점했다.
최종 후보에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희망민주당, 민주소나무당[31],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이 있었고, 이 가운데 '민주소나무당'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당무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확정하였다. '민주소나무당'에 대해 몇몇 당직자들은 당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식물 정당'으로 불릴 것을 염려하는 의견을 내었고, 대부분의 당직자들도 '더불어민주당'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32] 손혜원 전 의원에 따르면 당시 원외 민주당의 분쟁 등과 관련해, 세 글자인 민주당과 무게 중심을 맞춰 '더불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을 공모한 제안자[33]는 이 명칭을 신영복의 글 중 '더불어숲'이라는 표현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정당이 있었기에 약칭은 '더민주당'으로 하려 했으나, 해당 정당은 이에 대해서도 유사 당명 금지에 위배된다며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 #, 이후 다시 '더민주당'을 포함해 다양한 약칭을 검토한 후, 문재인 전 대표가 제안한 더민주를 약칭으로 확정했다.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이 '더민주'라는 약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후 2016년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두 당의 이름 싸움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당명은 계속 더불어민주당으로 가되, 약칭은 '더민주'와 '민주당' 두 가지를 병용하고 언론에서는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하였다. #
민주당계 정당의 역대 간판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장수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역대 여당 중 유일하게 정부 출범 시점부터 종료 시점까지 당명을 바꾸지 않았으며, 제6공화국에서 유일하게 5년 이상 유지된 민주당계 간판이다. 문재인 대표 체제, 제19대 대통령 선거 시기, 문재인 정부 시기, 제20대 대통령 선거 시기와 이재명 대표 체제까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1990 ~ 2000년대에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15년간 이름을 유지했다가 2012년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이래로 1990년대 ~ 2000년대의 민주당처럼 이름을 자주 바꾸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종 후보에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희망민주당, 민주소나무당[31],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이 있었고, 이 가운데 '민주소나무당'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당무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확정하였다. '민주소나무당'에 대해 몇몇 당직자들은 당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식물 정당'으로 불릴 것을 염려하는 의견을 내었고, 대부분의 당직자들도 '더불어민주당'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32] 손혜원 전 의원에 따르면 당시 원외 민주당의 분쟁 등과 관련해, 세 글자인 민주당과 무게 중심을 맞춰 '더불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을 공모한 제안자[33]는 이 명칭을 신영복의 글 중 '더불어숲'이라는 표현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정당이 있었기에 약칭은 '더민주당'으로 하려 했으나, 해당 정당은 이에 대해서도 유사 당명 금지에 위배된다며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 #, 이후 다시 '더민주당'을 포함해 다양한 약칭을 검토한 후, 문재인 전 대표가 제안한 더민주를 약칭으로 확정했다.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이 '더민주'라는 약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후 2016년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두 당의 이름 싸움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당명은 계속 더불어민주당으로 가되, 약칭은 '더민주'와 '민주당' 두 가지를 병용하고 언론에서는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하였다. #
민주당계 정당의 역대 간판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장수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역대 여당 중 유일하게 정부 출범 시점부터 종료 시점까지 당명을 바꾸지 않았으며, 제6공화국에서 유일하게 5년 이상 유지된 민주당계 간판이다. 문재인 대표 체제, 제19대 대통령 선거 시기, 문재인 정부 시기, 제20대 대통령 선거 시기와 이재명 대표 체제까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1990 ~ 2000년대에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15년간 이름을 유지했다가 2012년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이래로 1990년대 ~ 2000년대의 민주당처럼 이름을 자주 바꾸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로고 | |
임시 로고(2015 ~ 2016) | |
2016 ~ 2024 | 2024[34] ~ 현재 |
첫 로고의 폰트는 자체 제작한 것으로, 시중의 폰트 중에서는 격동고딕과 유사하다.[35]
한편 이재명 대표 취임 이후 '더불어'를 얇은 흘림체로 작게 위에, '민주당'을 굵은 고딕체로 크게 아래에 배치한 짙은 남색의 로고를 함께 쓰고 있다. 시중의 폰트 중에서는 AG 초특태고딕[36]과 유사하다. 손혜원 전 의원 유튜브 생방송에 따르면 새 로고 또한 첫 로고 제작을 주도한 손혜원 전 의원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37]
이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중심으로 로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발표 전이지만 이미 SNS 등에서는 변경된 로고를 활용하고 있으며 주 로고를 이것으로 교체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또한 같은 보도에 따르면 당명으로 적은 PI 외에도 당의 상징 색상과 로고까지 전반적인 개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4년 1월 24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8년 만에 바뀐 PI를 공개하는 선포식을 열었다.# 기존에 공개된 PI를 포함해, 이전 로고의 그라데이션 컬러를 압축한 신규 당색 3종(파랑, 보라, 초록)[38]과 물결치는 깃발 모양의 상징 및 활용형을 함께 공개했다. 이로써 당명은 유지하되 로고와 상징색을 바꿔 이미지 전환[39]의 계기로 삼게 되었으며, 기존의 파란색이 한층 짙어져 남색에 가까워지면서 당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1955~1961년의 민주당과 이미지가 매우 유사해졌다.
한편 이재명 대표 취임 이후 '더불어'를 얇은 흘림체로 작게 위에, '민주당'을 굵은 고딕체로 크게 아래에 배치한 짙은 남색의 로고를 함께 쓰고 있다. 시중의 폰트 중에서는 AG 초특태고딕[36]과 유사하다. 손혜원 전 의원 유튜브 생방송에 따르면 새 로고 또한 첫 로고 제작을 주도한 손혜원 전 의원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37]
이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중심으로 로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발표 전이지만 이미 SNS 등에서는 변경된 로고를 활용하고 있으며 주 로고를 이것으로 교체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또한 같은 보도에 따르면 당명으로 적은 PI 외에도 당의 상징 색상과 로고까지 전반적인 개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4년 1월 24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8년 만에 바뀐 PI를 공개하는 선포식을 열었다.# 기존에 공개된 PI를 포함해, 이전 로고의 그라데이션 컬러를 압축한 신규 당색 3종(파랑, 보라, 초록)[38]과 물결치는 깃발 모양의 상징 및 활용형을 함께 공개했다. 이로써 당명은 유지하되 로고와 상징색을 바꿔 이미지 전환[39]의 계기로 삼게 되었으며, 기존의 파란색이 한층 짙어져 남색에 가까워지면서 당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1955~1961년의 민주당과 이미지가 매우 유사해졌다.
- 기본색상
- 파란색 (#152484)
- 보조색상
- 파랑 (#003C96)
- 보라 (#5A1B87)
- 초록 (#006464)
- 공식 PI에서는 거론되지 않으나 노란색도 보조색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40]
더불어민주당의 아이콘 | |
2016 - 2023 | |
2024 - 현재 | |
‘삼색 깃발’ 의 파랑 · 보라 · 초록은 각각 민주 · 미래 · 희망을 상징한다. 펄럭이는 깃발 모양은 시대에 맞게 다양한 가치를 품는 민주당의 모습을 상징한다.
더더더 송 |
|
당명의 첫 글자인 '더'라는 가사를 강조한 후크송 형태의 노래인데 홍보 효과가 좋은 덕분인지 이 노래가 처음 등장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더불어민주당이 치르는 선거의 유세 현장에는 이 노래가 빠지지 않고 있다. 참고로 이 노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기도 한 작곡가 김형석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지었다고 한다.[41]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홍보국이 배포한 자료에서는 당가로 명시되었다.# 워낙 자주 사용되는 노래이다보니 당에서도 당가로 공인하기로 한듯하다.
다만 인지도가 상록수에 밀려서, 상록수를 민주당의 당가로 여기거나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더더더송은 가사를 몰라서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상록수가 나오면 떼창이 나오는게 현실이다. 다만 상록수의 저작권이 아직도 음악인 김민기에게 있기 때문에 대선과 같은 큰 행사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쉽게 재생하기 어렵단 문제가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홍보국이 배포한 자료에서는 당가로 명시되었다.# 워낙 자주 사용되는 노래이다보니 당에서도 당가로 공인하기로 한듯하다.
다만 인지도가 상록수에 밀려서, 상록수를 민주당의 당가로 여기거나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더더더송은 가사를 몰라서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상록수가 나오면 떼창이 나오는게 현실이다. 다만 상록수의 저작권이 아직도 음악인 김민기에게 있기 때문에 대선과 같은 큰 행사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쉽게 재생하기 어렵단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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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성장 다시 大한민국[42] |
-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민주화 운동권[44]
윤석열 정부 이후 (2022 ~ 현재)
- 주류인 친명과는 다른 의견을 내는 비명
이 중 호남권 정치인 중에서 친노계와 반목이 심한 계열은 대부분 국민의당으로 나갔고,[50] 민평련 계열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51] 3번으로 대표되는 명사 집단 중 가장 크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계파가 바로 친노이다.
친노는 참여정부 임기가 끝나고 '폐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힘을 완전히 잃었지만,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부활의 불씨를 마련했다. 그 시작점이 된 게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이때 친노 진영 인사들이 눈부신 성과를 냈다.[52] 2011년 말에는 친노 진영에서 문재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인기가 저조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여러 가지 실책들로 인해 뜻밖의 패배를 당했고, 이어지는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낙선한 뒤로는 두 번째 고난기를 맞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가 된 2015년 2월부터 극심한 계파 갈등으로 인해 그 고난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이때 친노도 여러 개로 분할되기 시작했는데 친노계의 다수가 당시 민주당 쪽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 중 하나였던 문재인 쪽으로 뭉치면서 친문계라는 새로운 정치 진영이 만들어졌다.
친문은 2015년 말에 있었던 민주당 온라인 입당 열풍과 2016년 20대 총선이 지나고부터는, 당내 계파치고는 느슨한 결속력이지만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권리당원과 국회의원을 보유한 최대 계파가 됐다. 추미애가 당대표로 선출된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는 친문 성향의 권리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문재인 전 대표 시절에 몇 안되는 협조적인 최고위원이었던 추미애가 당대표에, 문재인에 의해 영입된 양향자, 김병관이 각각 여성 부문 최고위원, 청년 부문 최고위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되고, 2017년 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530만표 차이로 압승함으로서 친문계의 수장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후로도 2018년 7회 지방선거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 야당[53]을 상대로 초압승을 거두며 친문 세력이 매우 탄탄해졌다. 당시 친문과 거리가 있는 계파는 친명, 민평련 정도 뿐이었고, 이재명과 함께 한때 차기 대선 주자였던 이낙연의 계파는 친문의 하위 계파라는 것의 보통의 인식었다.
하지만 2021년 재보궐선거, 20대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하자 정권심판론을 불러일으킨 친문계의 발언권은 줄어든 반면, 이재명 대선 후보는 정권심판론 등 불리한 구도 속에서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석패[54]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친명이 당내 신주류로 떠올랐다. 결국 대선 종료 약 6개월만에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대표에 선출되었고, 다수의 의원들도 친명을 자처하게 되었다. 다만 친명&비문보다는 친명&친문[55]이 더 많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헌을 통해 “전국대의원대회는 전국의 당원을 대표하는 당의 최고대의기관이다”라고 명시했다. 2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린다.
2024년 전당대회부터 공식 명칭이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전국당원대회로 변경되었다.
2024년 전당대회부터 공식 명칭이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전국당원대회로 변경되었다.
- 전국당원대회
- 당대표
- 비서실
- 윤리감찰단
- 중앙당후원회
- 중앙위원회
- 당무위원회
- 윤리심판원
- 당무감사원
- 최고위원회
-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 시도당 대의원대회
- 시도당 상무위원회
- 시도당 사무처
- 운영위원회
- 대변인
- 교육연수원
- 전국여성위원회
- 전국노인위원회
- 전국청년위원회
- 전국노동위원회
- 전국대학생위원회
- 전국장애인위원회
- 전국농어민위원회
- 소상공인위원회
-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 사회적경제위원회
- 기타 위원회명단
- 사무총장
- 사무부총장
- 전략기획위원회
- 대외협력위원회
- 국민소통위원회
- 홍보위원회
- 법률위원회
- 총무조정국
- 조직국
- 자치분권국
- 노동국/대외협력국
- 직능국
- 여성국
- 청년국
- 당원주권국
- 법률국
- 을지원국
- 교육연수국
- 국제국
- 공보국
- 평가감사국
- 전략기획국
- 홍보국
- 디지털전략실
- 원내대표
- 원내대표비서실
- 원내행정기획실
- 정책위원회
- 정책실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 산하의 싱크 탱크이다.[58] 2008년 8월 27일 민주당 산하의 정책 연구소로 설립되어, 합당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 산하에 있게되었다. 당헌에 따라 이사장직은 당대표가 맡는다. 산하에 국방안보센터, 청년정책연구소 등이 있다. 2016년 11월 4일 명칭이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민주연구원'으로 개칭했다. #
2016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1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김용익 전 의원이 5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2017년 5월 17일 김민석 특보단장을 민주연구원의 6대 원장으로 임명했다. 상근부원장에 빅데이터 전문가인 고한석 빅토리랩 대표가 들어왔다.
2018년 당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전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양정철 일본 게이오대학교 법학부 방문교수가 7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당대표로 선출된 이낙연 전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선출 이후 9월 7일, 홍익표 전 의원이 8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1년 당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전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4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2021년 6월 23일 노웅래 전 의원이 제9대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2년 당대표로 선출된 이재명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24년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의원이 당연직으로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1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김용익 전 의원이 5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2017년 5월 17일 김민석 특보단장을 민주연구원의 6대 원장으로 임명했다. 상근부원장에 빅데이터 전문가인 고한석 빅토리랩 대표가 들어왔다.
2018년 당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전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양정철 일본 게이오대학교 법학부 방문교수가 7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당대표로 선출된 이낙연 전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선출 이후 9월 7일, 홍익표 전 의원이 8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1년 당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전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4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2021년 6월 23일 노웅래 전 의원이 제9대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2년 당대표로 선출된 이재명 의원이 당연직으로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24년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의원이 당연직으로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 일반고문
- 서호석
- 최봉구
- 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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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2017.5.10.~2022.5.9.) | |||||
[1] 현재 더민주라는 약칭이 남아있는 흔적은 중앙당사, 대다수의 지역시도당사 홈페이지 도메인 등에서 찾을 수 있다.[2] 이재명 지도부 2기 2025년 1월 슬로건.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와 비슷한데, 이재명 대표가 "말에는 죄가 없다"면서 사용하자고 했다고 한다.[3] 사업자 등록 번호와 같은 기능을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것을 승계했다.[4] 사업자 설립일.[5] 지역구 160석, 비례대표 10석.[6] 강기정(광주광역시장), 김동연(경기도지사), 김관영(전북특별자치도지사), 김영록(전라남도지사), 오영훈(제주특별자치도지사).[7] 서울 9명, 경기 9명, 인천 2명, 경남 1명, 강원 4명, 대전 2명, 충남 3명, 충북 4명, 광주 5명, 전북 13명, 전남 19명.[8] 지역구 280석, 비례대표 42석.[9] 지역구 1,240석, 비례대표 115석.[10]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4), 2023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2024.11.29.), 2024년 11월 29일 확인.[11] 매년 9월 18일마다 신익희 생가에서 1955년 민주당 창당일을 기념한다.[12]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같이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의 뿌리로 한국민주당을 강조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 1955년 민주당 창당 당시 여러 세력이 참여했고, 이에 따라 민주당 구파와 신파로 당내 계파가 갈렸다.[13] 동시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10석을 가져오며 의석 불리기에 성공했다.[14] 더불어민주당(지역구) 163석 + 더불어시민당(비례대표) 17석으로 총 180석이나, '비례연합정당'을 표방하며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소속 후보 각 1명씩을 함께 출마시켜 당선된 더불어시민당 특성상 그 2명의 당선인(용혜인, 조정훈)이 선거 후 더불어민주당에 흡수 합당될 때 형식상 제명되어 원 소속 정당으로 복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178석을 얻은 셈이 됐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성립된 제6공화국 국회의원 선거 역사상 단일 정당이 획득한 최다 의석이며, 개헌선(원내 3분의 2 이상)을 요구하는 절차(헌법 개정안 통과, 대통령 탄핵 소추, 국회의원 제명 등)를 제외한 모든 의정 활동을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수치이다.[15] 더불어민주당 161석 + 더불어민주연합(비례대표) 14석으로 총 175석.[16]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호남권에서는 무소속 당선인들도 없었으며, 진보 정당들도 모두 더불어민주당에 패하였다.[17]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정당은 신민당이다.[18] 더불어민주당 또한 2021년 재보궐선거와, 제20대 대통령 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했으며, 특히 8회 지선의 경우 전국단위 정규선거에서 참패를 맛보았다는 점에서 보면 과거의 사례를 따를 때 당명을 교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선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 양상을 보임에 따라 향후 정국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당과 지지층을 막론하고 알음알음 퍼져 당명 개정은 가시적인 논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1년여 후 2023년 10월 보궐선거와 2년여 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설욕에 성공했다.[19] 한나라당의 기록을 넘으려면 최소한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도 3년 뒤인 2030년까지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20] 다만 법인으로서의 한나라당은 자유한국당까지의 2020년까지 23년간 정당명만 바꾸며 유지된 (대한민국 기준) 엄청난 초장수 정당이기에 당명이 아닌 법인 기준으로 한나라당을 넘으려면 아직 한참 멀긴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첫 정당 등록일은 새정치민주연합의 2014년으로 2025년 기준으로 11주년이다.[21] 이는 스스로를 '보수정당'으로 이야기하며 "보수의 ~을/를 위해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고 논쟁하는 국민의힘 측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부분이다.[22] 다만 이것이 100%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지라고 보긴 어렵다. 당시 대한민국은 IMF의 구제금융 기간이었기 때문에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다.[23] 2000년대 온건 성향 동교동계와 개혁 성향 친노의 갈등,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의 원인이 된 중도파 비문과 진보파 친문의 갈등이 대표적이다.[24] 박용진, 박창진, 배진교, 윤소하, 추혜선 등이 이에 해당한다.[25] 역사적으로 수십 년간 민주당과 대립 및 경쟁해온 보수 정당이다.[26]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이준석계 인사들과 일부 민주당계 정당 및 진보정당 출신 인사들이 결합해 출범한 정당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의힘 등 주류 보수정당에서 갈라져 나간 정당은 자유보수주의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지만, 개혁신당 구성원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과거의 사례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이다. 일단 이준석은 자당의 노선을 우측에 위치한 자유주의로 규정했다.[27]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며 이낙연 전 대표를 중심으로 분당해 탄생한 정당이다. 중도개혁주의를 천명하는데, 이는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노무현 등장 이전까지 김대중 중심의 동교동계가 민주당의 주류였을 때 내세웠던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등 민주당계의 중심 정당에서 갈라져 나간 정당은 범민주당계로 묶이면서도 제3지대를 추구했고, 원 소속 정당을 비판하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 왔다.[28] 일례로 김진표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 바 있다. 문재인 前 대통령도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는 소극적인 편이다.[29] 당장 대한민국 민주당계 진영의 시초 격 인물인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한일관계 개선에 꽤 적극적으로 나오긴 했어도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30] 역사적으로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및 소수자 관련 의제에 높은 관심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31] 실제로 2008년 민주당(구 통합민주당)의 상징이 소나무였다. 훗날, 이 당명은 소나무당에서 써먹는다.[32] 이후 소나무라는 이름은 2024년에 송영길을 비롯한 몇몇 탈당 인사들이 만든 소나무당에서 쓰이게 된다.[33] 안중찬, 한글과컴퓨터 출신으로 코렐드로우 전문가였고 신영복 교수와 절친하다.[34] 1월 1일부터 기존 로고와 병용하다가 발표식은 동년 1월 24일에 치렀다.[35] 이 폰트는 더불어민주당이 포스터나 선거 공보물 등에 애용한다. 폰트에 대한 호응이 좋자 국민의힘 등의 다른 정당이나 매체 등에서도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36] 열린민주당의 로고에도 사용된 적이 있다.[37] 47:03 참고. 텔레그램 창에서 손 전 의원이 한웅현 당 홍보위원장과 '민주홍보방'이라는 채팅방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장병인 하우스컨설팅 대표가 로고를 직접 제작하고, 손혜원 전 의원이 그 과정에서 자문 내지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하우스컨설팅 사무실은 정청래 의원의 지역사무실 옆방에 있으며, 손혜원, 정청래 등 손혜원 주변 인사의 선거 디자인을 책임져오던 업체이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한웅현 위원장은 PI 변경메시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이유로 공격받을 수 있다며 로고 제작에 손혜원이 관여한 사실을 숨기길 원하는 모양이다.[38] 각각 '민주', '미래',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39] 유사한 사례로 2004년 당시 당명은 그대로 두고 로고와 상징색만 변경한 한나라당의 사례가 있다. 한나라당은 변경 당시 짙은 파란색에서 하늘색 계열로 색을 바꾸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PI 변경에서 거꾸로 색이 짙어졌다.[40] 더불어민주당 체제에서는 청색과 황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한 열린민주당을 합당한 뒤 후보 기호번호에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당시 열린민주당은 황색이 노무현정신을 상징한다고 하였다.[41] 김현식의 추억 만들기와 멜로디가 유사하다.[42] 이재명 지도부 2기 2025년 1월 슬로건.[43] 헌정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6선 국회의원.[44] 정치권 진입 이후 우경화했기 때문에 정의당, 진보당 등의 진보정당과 성향 차이를 보인다.[45] 시민단체 활동가 등.[46] 단, 친문이지만 비노 성향 정치인들도 있으며, 반대로 친노이면서도 비문 성향 정치인도 있다.[47] 여기에 일부 비문재인 성향 정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48] 대표적으로 조금박해.[49] 친문이면서 동시에 친명인 케이스도 있으며, 머릿수로 보나 면면으로 보나 사실상 이들이 2024년 기준 당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친명계의 수장인 이재명 본인부터가 이른바 '명문정당론'이라는 친명-친문 일체설을 내세우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견지해 나가고 있다.[50]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민생당에 고루 퍼져 있다. 2020년 4월에 권노갑, 정대철 등 동교동계 원로들이 대거 더불어민주당에 재입당을 추진하면서 다시 더불어민주당으로 각 계파가 결집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아직 민생당에 머물고 있지만 원로들의 합류 자체가 호남권 정치인들의 민주당 복귀 이후 호남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대선 가도 지원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는 동교동계의 복당에 대해 “동교동계 원로들은 당 바깥에서 원로다운 방식으로 민주당을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다”며 동교동계 복당 문제에 선을 그었다.#[51] 다만, 김근태 전 의장의 부인이자 민주화 동지인 인재근 전 의원이 남편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고 그와 뜻을 같이하고 지지했던 정치인들 일부가 민평련이란 당내 정파로 남아 있어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동질성을 가지는 느슨한 연대를 보이면서 존재감은 유지하고 있다.[52] 안희정이 충청남도지사에, 이광재가 강원특별자치도지사에, 민주당계 정당 깃발로 영남에 계속 도전장을 던져 '리틀 노무현'이라 불렸던 김두관은 이때에는 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무소속 신분으로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 3곳 모두 당시 민주당의 열세~강열세 지역으로 유명했다. 또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을 상대로 뜻밖의 선전을 했고, 국민참여당 유시민이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단일화를 해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김문수와 접전을 펼쳤다.[53] 2018년은 자유한국당, 2020년은 미래통합당.[54] 윤석열에 역대 대선 최소 득표율차인 0.73%p 차이로 패배했다.[55] 대표적으로 박주민, 이해찬, 추미애 등.[56] 중앙선관위원회에는 같은 달 8일 공고되었다.[57] 총 득표수 13,423,800표.[58] 정당법에 따라 보조금 배분 대상에 속하는 정당은 의무적으로 정책연구소를 설립해야한다.[원내대표] 59.1 59.2 59.3 59.4 59.5[당대표] 60.1 60.2 60.3 60.4 60.5 60.6 60.7 60.8 60.9 60.10 60.11[국회의장] 61.1 61.2 61.3 61.4 61.5[국회부의장] 63.1 63.2 63.3[국무총리] 68.1 68.2[국무위원] 70.1 70.2 70.3 70.4 70.5 70.6 70.7 70.8 70.9[94] 문상주 등.[95] 정동영, 박지원, 천정배, 유성엽, 김관영, 정동영계, 박지원계, 천정배계 등. (호남계, 국민의당계)[96] 조응천계-이원욱계, 원칙과 상식, 김종민 등.[97] 이언주, 공재광 등.[98] 이상민, 김영주, 김윤식, 조원휘, 김경훈, 이금선, 송재만, 이명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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