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2

차윤영 - 페친 박유하교수님 유튜브 내용 입니다. 참고하시길.

차윤영 - 페친 박유하교수님 유튜브 내용 입니다. 참고하시길. 번역은 Deepl과 ChatGpt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 Facebook


페친 박유하교수님 유튜브 내용 입니다. 참고하시길.
번역은 Deepl과 ChatGpt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일알못이라 유튜브 내용을 알 수 없어 동거인에게 통역부탁하기도 귀찮고 해서. 오 탈자 겹친 내용 수정 못했습니다. 번역기가 둘다 Free버전이라 한번에 안되네요.
[ 모두들 안녕하세요. 신세계를 변화시키는 100인의 일꾼입니다. 저희 데모크라시 타임즈에서는 한국의 보도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지난 총선 때도 크루를 한국에 파견하여 생중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세종대학교 명예교수 박유하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박 교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박유하: 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그리고 또 한 분, 특별한 게스트로 동경대학교 명예교수 우에노 치즈코님이십니다. 우에노 교수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우에노: 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왜 이 세 명이 모였느냐 하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국의 위안부' 때문입니다. 박 교수님, 이 책을 언제 출판하셨나요?
박유하: 일본에서는 2014년, 한국에서는 2013년에 출판되었고, 그 다음 해에 번역되었습니다. 일본어판은 2014년 10월에 출판되었고, 그 문고본이 나왔습니다. 이 문고본이 나온 이유는, 사실 이 책으로 인해 박 교수님이 고소를 당하셨고, 그 재판이 10년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박 교수님이 소송에서 거의 승소하셨고, 이제는 그 끝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박 교수님이 책이 출판되기 전부터 깊은 교류를 맺어오신 우에노 교수님과 함께 이 책에 대해, 그리고 이 책이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박 교수님이 이 책을 출판하셨을 때, 4년 전에 첫 장만 해설해주셨고, 그 후로 4장까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오늘에야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어느 서평이었습니다. 그것은 타카하시 겐이치로의 아사히 신문 서평이었죠. '고독한 책'이라는 서평입니다. 이 문고본의 해설에 타카하시 씨의 서평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글이라 조금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타카하시: 감명을 받았다고 쓰는 것도 망설여질 정도로 충격적인 이 책은 앞으로 쓰여질 모든 위안부 관련 글들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이토록 고독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토록 고독한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말문이 막혔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감상을 가졌을 것입니다.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 서평을 읽고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진행자: 타카하시 씨는 반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이미 쓰셨죠. 하지만 그 반발은 엄청났습니다. 정말 큰 법정 투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박 교수님은 10년 동안 유머를 잃지 않고 잘 견뎌오셨습니다. 우에노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에노: 오늘 정말 축하드립니다. 10년 동안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정신적으로 잘 버텨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발했지만, 책을 읽고 저의 의도를 이해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진행자: 우에노 교수님과는 90년대부터 비교문학 연구 프로젝트로 인연이 있었던 거죠?
우에노: 네,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건 2003년 '사상'이라는 잡지에서 특집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 이후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여러 연구회에서 함께 했습니다.
진행자: 박 교수님이 우에노 교수님을 많이 신뢰하고 있었군요.
박유하: 네, 그렇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여러 활동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우에노 교수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정말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군요. 이번 '제국의 위안부' 문고본이 출간된 것도 큰 일이고, 그동안의 재판도 큰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우에노: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7:54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2014년에 고소장을 받았을 때 열어보니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과 같은 것, 즉 운동에 방해가 된다거나 이것은 매우 미일동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책이라거나 이대로 가면 이어폰 문제 운동이 잘 안 된다거나 사회적으로 해롭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대로 적혀있었어요. 소장에 적혀있어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길게 말씀드린 것은 지난 10년간 언론의 비난도 받고 일반인의 비난도 한일 양국을 막론하고 많이 받았지만, 가장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자들입니다, 그 뿌리에는 학자들의 사고방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박유하 선생을 극도로 비난하는 사람 중에 돌아가셨지만 송현숙 선생님이 계시는데, 박 교수의 저서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일본에서 대접받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것을 박유하 현상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박유하 현상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하면 이 총참모부의 추론에 따르면 박유하파의 담론이 일본 자유주의자들의 숨은 욕망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라는 글을 쓰셨고, 이 형사소송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고 항의성명을 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 해외 연구자까지 합해서 많은 지식인들이 서명을 해주셨는데요, 이름을 좀 읽어드릴까요 54명 중 먼저 무라야마 후미이치 씨,
20:11
안드루 고든 씨, 가와노 요헤이 씨, 오에 겐자부로 씨, 오노기 마사오 씨, 우에노 치즈루코 씨, 와카미야 케이분 씨, 야마다 다카시오 씨 등,
20:23
그리고 2년 정도 늦게 미국에서 노엄 촘스키 씨와 브루스 커밍스 씨도 합류했다고 하는데요, 항의 성명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으로 대항해야 하고 학문의 장에 기여력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아니냐고 한 것에 대해 조작은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 난폭한 주장이고 눈을 의심했다고 답변한 것이죠 이 논쟁은 저는 전혀 끝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 결과 박씨의 이 책이 일종의 밟고 지나가는 효과라는 것을 가지고 이 책을 평가하느냐 마느냐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일본 관계자들이 둘로 쪼개지는 현상이 일어났는데요, 그런데 소씨는 난폭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난폭한 것이 아니라 아주 명확한 원칙에 불과합니다. 단순한 원칙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본인이 말씀 안 하시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만 대법원 파기환송심 판결문이라는 것이 아주 잘 쓰여져 있거든요 판사가 쓰신 대법원 판사가 쓰신 것인데 그 중에서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위해서는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설정성은 형사법정에서 결정되는 것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회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것을 굳이 대법원 판사에게 말해야만 하는 거죠 학자들이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게다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백씨의 책 내용을 들여다보고 상식적으로 판단한 판결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 도서의 사건 도서라고 하는데요 내용이나 문맥에 비추어 보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했다거나 조선인 아프가 자발적으로 배상행위를 했다거나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 것 같지 않다고 분명하게 적혀있고 조선인 일본군인 아프가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로서 일본제국에 협력할 수 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 읽고 있네요 역시나 대법원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제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데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오독이라고 할까 곡해를 했다는 것이 저는 전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용에 관해서는 저는 정말 이 기초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20:23
그리고 그 2년 정도 뒤늦게 미국에서 노엄 촘스키 씨와 브루스 커밍스 씨도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의 성명서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이번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검찰청이라는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바탕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제압하는 데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으로 대항해야 하고 학문의 장에 기여력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아니냐고 한 것에 대해 조작은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 난폭한 주장이고 눈을 의심했다고 답변한 것이죠 이 논쟁은 저는 전혀 끝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 결과 박씨의 이 책이 일종의 밟고 지나가는 효과라는 것을 가지고 이 책을 평가하느냐 마느냐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일본 관계자들이 둘로 쪼개지는 현상이 일어났는데요, 그런데 소씨는 난폭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난폭한 것이 아니라 아주 명확한 원칙에 불과합니다. 단순한 원칙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본인이 말씀 안 하시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만 대법원 파기환송심 판결문이라는 것이 아주 잘 쓰여져 있거든요 판사가 쓰신 대법원 판사가 쓰신 것인데 그 중에서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구 결과의 발표에 사용 된 위해서는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설정성은 형사법정에서 결정되는 것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회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것을 굳이 대법원 판사에게 말해야만 하는 거죠 학자들이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게다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백씨의 책 내용을 들여다보고 상식적으로 판단한 판결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 도서의 사건 도서라고 하는데요 내용이나 문맥에 비추어 보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했다거나 조선인 아프가 자발적으로 배상행위를 했다거나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 것 같지 않다고 분명하게 적혀있고 조선인 일본군인 아프가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로서 일본제국에 협력할 수 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 읽고 있잖아요 역시나 대법원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제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데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오독이라고 할까 곡해를 했다는 것이 저는 전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용에 관해서는 저는 정말 이 기초사실에 기재되어있는 그런..,
24:13
이 기초사실에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이가와부의 자발성, 공생연행의 부정, 상호적 관계, 그리고 일본군의 책임의 영역, 이런 것은 전혀 그 기초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24:31
네 네 네 네 네 네 독극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아주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고 독해하고 계신다는 것은 여기까지만 소개를 해주시고요 두 줄만 더 소개를 해드리면 일본 제국이나 일본군의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쓰셨지만 한국에서의 제국주의 주장과 전통적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와 같은 다른 사회구조적 문제가 연유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전사 문제에만 주목하여 양국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은 소위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25:28
감탄했습니다. 연구자가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이 대법원 판결문을 처음 읽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역시 대법원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심 형사재판만 놓고 보면 1심도 제가 이겼지만 그것도 굉장히 좋았어요. 또 40대 판사님인데.
25:56
그런데 2심이라는 것은 거의 논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으로 대충대충 한 것 같아서 굉장히 실망스러웠는데 정말 구원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에는 죄송합니다만 조금 여쭤보겠습니다만 그것은 한국 대통령의 정권교체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런가 하면 제가 대법원장인데 결국은 형사 대법원만 6년 정도 했는데 그 출신이 소위 말하는 진보 쪽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보 쪽에서는 안 내주셨지만 결국은 그런 식으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내주신 것이고 다만 저는 조금 아쉬운 것은 이런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일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역시 전 정권인 문재인 정권 때 내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그게 좀 아쉽네요 이번에 메모를 바탕으로 한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와 박씨와의 주고받은 내용을 읽었습니다. 정말 켄지 씨가 말하는 것이 정말 그로테스크한 거죠 뭐랄까 거대한 밀짚모자 허수아비를 휘두르는 것 같고 허수아비 난폭하다고 하는데 어디에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을 휘두르는 것 같고 그것을 박 씨가 제대로 반박을 하시고 그 반론을 쌓아가고 계시는데, 이게 10년을 했으면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정말 지쳐버릴 것 같은데, 그 검사가 말하는 것도 허수아비지만, 주변에서 박씨를 비판하는 학자 지식인들의 말도 그렇고요, 저는 가끔씩 읽다가 머리가 멍해져서 잘 모르겠어요. 정말 그 일본의 영토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박씨가 절대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의식하고 계시고, 거기에 더해 주식조정의 지배, 이 두 가지가 겹쳐서 그렇게 되면 빈곤이라는 문제가 생기면 빈곤층의 젊은 여성에게 가장 큰 주름이 간다는 현상 중 하나가 중군양호 문제로도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것을 읽으면 굉장히 잘 알 수 있지만 한국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과불화성의 문제를 말하자면 그것은 한국인의 문제인 거죠 아버지라든가 마을 이장님이라든가 일본군이라는 권력에 식민지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 상인이라든가 한국 사람들도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저퇴협이라는 중군양반들을 어떻게든 해결하자 라는 운동을 시작하신 분들은 페미니즘에서 나온 분들일 텐데, 그래서 과불화성에 대해 더 강하게 말씀해 주시면 결코 많은 본인과 상호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 페미니즘에서 나온 원래는 제국주의자 분들과 굉장히 부딪히기도 했어요. 그 부분은 우에노 씨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본인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중에 제가 보충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박 선생님께서 정체 허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우선 저는 그 고소당한 후 지금 소개한 것처럼 여러 가지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시간이 없어서 2018년 정도에 두 권의 반박서를 냈는데, 거기에도 쓰면서 생각한 것은 한국의 여성학교를 비롯한 운동가들이 여성 문제로 하면서도 원래는 민족 문제로 하고 했던 것도 있고 역시 구조적으로 민족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까 책임의 영역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31:40
그것도 많이 말씀하셨는데 거기서 좀 애매모호하게 책임을 부정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법적 책임에 대해서 저는 비판을 했고, 즉 법적 책임이라는 방식으로 해도 되느냐는 것을 저는 문제 삼았고 사실은 그것에 반발한 거죠, 그 이후에 여러 가지를 알게 된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외부에 말할 때는 제가 법적 책임을 비판했다거나 부정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책임을 부정했다는 말로 말했기 때문에 더 오해를 받았다는 것이죠, 아까 검사의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검사가 여러 가지 말을 하는 모든 것들 스스로 공부하고 학자의 책이나 논문 등을 읽고 저에게 들이대면서 이렇게 쓰여져 있지 않느냐는 것이 있었지만 역시 학자로부터 온 것이군요 실제 증거 즉, 저의 범죄 형사는 범죄라고 말하기 때문에 범죄 증거로 김모자씨라는 재일교포의 논문이나 책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었죠? 책임에 관해서도 검사도 처음에는 몇 가지 표현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결국 법정에서 결국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고 저도 왜 이런 식으로 이해해 주지 않는지 계속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언젠가는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이해하게 된 것은 역시 그 법적 책임의 문제인 것 같아서 예를 들어 그 이어폰 사태가 나왔을 때 일본과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이 있었잖아요, 그 때 일어난 문제라서 그런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중에 생략하셔도 되겠습니다만, 즉 한국이라는 나라는 65년 협상은 대충 협상했다는 생각이 한쪽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그렇지 않고 제대로 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뿌리 깊게 있는 것이죠, 그것을 역시 이어폰 문제로 하겠다는 그래서 법적 책임이라는 것은 배상을 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보증이 아니라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고 저를 피난시킨 여러 가지 피난이 있었지만 그 뿌리는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저 역시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보증과 배상을 구분해서 보증은 의무가 아니고 배상은 의무라는 것을 조금 보충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이 책이 위안부 관련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오늘도 못 가져왔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왔는데요, 그동안의 부재와 결정적으로 위안부 관련 책이 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 문제로만 보지 않고 식민지 지배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전쟁 전에 식민지 지배라는 것이 있어서 식민지 안에서 식민주의 아래 놓인 사람들이 단순히 억압을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조국 안에서 어떻게 동질화되어 가는지 제국 신민으로서 일류 시민이 되고 싶다는 비원을 가진 분들도 계셨고, 그 중 예를 들어 일본군 병사와 조선인 안보가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핵심으로 꼽힙니다.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핵심으로 꼽혔는데, 저는 박 선생님이 쓰신 것을 읽으면 이 사람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예를 들어 동사적 관계로 볼 수 있는 관계라고 쓰면 좋았을 텐데, 동사적 관계라고 해야 하나 동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를 들어 우리가 낸 책이 이 책인데 히라이 카즈코라는 분은 훌륭한 연구를 하고 계신 분인데 일본군의 전력 위반 문제를 하고 계신 분인데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향해 이 책에서 위안소에 간 병사, 가지 않은 병사라는 것을 쓰셨고요. 역시 병사와 위안부 사이에는 병사도 정말 종이 한 장으로 소집되는 노예처럼 노예처럼 부름을 받고 명령을 받은 벌레처럼 취급된 일본 남자들입니다 그것과 비슷한 형태로 동원된 위안부들 사이에는 공감이나 동정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연애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쓰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썼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일본군을 비하한 것도 조금도 아닌데 말했다고 해서 여러 가지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다만 그때 위안부 할머니들이라는 것은 별로 오늘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 쪽에서 말씀드리는 거죠. 그러나 일본 이름을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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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머리를 꿰매고, 유카타를 입고, 출정할 때 옷을 입고, 대일본부인회 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일본 국기를 흔들고, 종군간호사 같은 것도 하고 계셨던 거죠.
38:14
그래서 병사들에게는 말하자면 고향의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장치로 적의 여자를 유린했다는 것이 아니라 점령지에서 보면 당연히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관계 속에 놓여진 것 자체가 식민지 지배의 무서운 효과였다는 것을 제대로 적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식민지 지배의 끔찍한 효과였다는 것을 제대로 적혀있어요... 이제 그 다카하시 씨 원자폭탄은 아니지만, 그 장면이 정말 끔찍한 느낌이 들어요... 일본이 거기까지 했다는 것이 역시 이 책의 유례없는 강점이라고 할까, 충격력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목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제목으로 부제목으로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싸움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처음에는 이걸 제목으로 하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반대해서 이게 부제가 됐는데 이걸 제대로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제국이라는 단어에서 지금 말씀하신 것과 제국에 동원된 것, 두 가지가 모두 빠져 있는 거죠, 그것을 역시 모두가 받아들이고 싶은 방향으로 각각 받아들였다는 것을 단어 자체가 반쯤 읽은 것 같고, 그래서 제국에 동원된 것 그래서 제국에 협력한 위안부라는, 아까 이케다 씨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제국주의에 협력한 위안부라는 것은 역시 뿌리가 깊은 거죠, 제대협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는 원래 저신체문제협의회였기 때문에 단체로 2000년에 여성 최근 국제법정을 했을 때, 그 안에서 끝난 후에 저신체문제협의회 대표였던 윤미향 태협 대표였던 윤조옥 씨가 일본 측에 대해서 너희들은 페미니즘 여성의 관점은 있었지만 페미니즘은 국제주의이기 때문에 식민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내부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거기서 역시 그 식민지와 건국국 사이에 선을 긋고 한쪽은 피해자고 한쪽은 가해자라는 이런 선긋기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 한국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민족주의 아래 놓여져 왔다는 것은 외부에서 보면 우리 그런 것을 너무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어렵지만 박씨는 분명하게 말씀하신 거죠 1990년대는 한국에서 민주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동시에 민족주의가 싹튼 시대이기도 했고, 그 속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것도 기세를 더해갔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조금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이 페미니즘과 민족주의라는 것의 거리감이라고 할까, 그 효과가 어떻게 되었냐면 한국인 안보는 피해자이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그렇지 않다는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전후 일본의 페미니즘과 여성주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문제 삼지 못한 한계도 물론 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이런 효과를 낳는 결과를 낳게 된 거죠 4년 전에도 말씀드렸듯이요. 말씀드렸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전 종군위안부 분들이 이렇게 차례로 이름을 밝히면서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인의 전 종군위안부라는 것은 시라타 스즈코 씨라는 가명인데, 이 한 사람의 이름밖에 모르는 이 상황을 우에노 씨 우리들은 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네, 최근에야 비로소 생매장에 가령 지원해서 들어갔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정책사의 피해자라는 것이 명확하게 말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저는 여주인공인 가노미키요 씨로부터 통혼의 생각으로 그녀의 생각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 90년대에 90년대에 그 사실은 나는 사실 전 위안부였다는 것을 말씀하신 분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만, 그 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를요 그에는 지금 말씀하신 그런 선 긋기라든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어요 역시 가해국의 피해자는 피해자 취급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까 과불화 이야기 나왔지만 역시 저에 대한 비난도 매우 그런 인식이라고 할까 감정을 느낍니다 과불화 비난이나 비판, 즉 역시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았던 것 같고, 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역시 한국의 여성운동가들도 함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죠, 아까 말씀하신 윤정숙 씨에 대해 아까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90년대 초에 윤정옥 할머니가 신문에 글을 썼기 때문이거든요, 이 글을 쓸 때는 그렇게까지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일본군과 조선인 야호 사이에 인간적인 만남이 있었다는 식으로 쓰여져 있어서 놀랐지만 바이순이라는 단어도 쓰고 있고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가 변해 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저는 오래된 증언서를 사용한 것도 90년대에 나온 것에는 정말 여러 가지가 평범하게 쓰여져 있어서 그 쪽이 더 풍부하다 더 풍부하다고 생각해서 사용한 것이지만, 점점 더 이야기가 좁아졌다고 할까, 일면적이 되어 버렸다고 할까, 운동이라고 할까, 정치의 필터를 통해 깨끗하고 순수한 운동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위안부상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만들어져 갔다는 것이죠. 이 책에서 제대교에 잠시 관여하셨던 야마시타 요시에 씨라는 분이 인터뷰의 역사를 쓰셨는데, 나중에 갈수록 매우 정중하게 있는 그대로의 인터뷰를 하고 있고, 그렇게 나온 인터뷰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하시는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요. 아시다시피 제가 모델 피해자라는 말을 썼는데요,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모델 스토리로 유통되고 그것이 정치화되어 민족주의에 영유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초기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커밍아웃한 분들은 국가의 수치심을 드러내지 말라고까지 했었는데, 그 후 국민적 영웅이 되고 민족의 딸이 되고, 그것이 180도 그렇게 변해가는 가운데 역시 이야기의 다양성이 점점 억압되고 그것이 금기시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2011년에 만들어진 대사관 앞의 조어인데, 그 이후에 기업이라든지 여러 영화라든지, 즉 2010년대 이후에는 그런 이미지로 리플을 달게 되었지만, 그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말하자면 담론에 의한 세컨드 리플 같은 것이죠,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박선영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굉장히 개별적인 사례에서 이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그냥 넘어가도 될까,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도 그것을 어쨌든 일단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여러 목소리를 듣는다,
49:10
수집하는 그런 땅벌레의 눈으로 증언을 모으고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새의 눈으로 식민지 지배라든가 제국주의라든가 과불균형이라든가 그런 구조의 문제 구조적인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그런 왔다 갔다가 새와 벌레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저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일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굉장히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유약학자들의 본격적인 연구가 조금 지금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렇죠 여기에 3년 정도에 조금 새로운 지금까지 말하자면 보면 이 책은 그 양 극단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던 양쪽을 비판하면서 양쪽을 모두 비판한 책인데, 이쪽도 큰 거죠, 온도 쪽만 그런 게 아니라 이쪽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굉장히 제대로 된 연구서가 2년 전쯤에 나왔고 특히 작년에는 재일 여성인 그러나 저는 놀랍게 받아들였는데요, 식민지 협상성을 분석한 책에서 거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과거에 거의 30년 동안 연구라는 것은 그 사이에 소위 위안부와 매춘부라는 것을 너무 구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소위 일본 내 연구의 주류라고 하는데, 계속 끌어온 분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2년 전에 나온 것은 굉장히 좋은 논문이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쪽은 오히려 이쪽은 동료와 동료 관계라고 하면 동료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아니죠, 이미 30년을 해오신 분인데 그분도 재미있는 것은 책 첫머리에 이미 30년 전에 미국 학회에서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하려고 했더니 한국 연구자들에게 비난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할 수 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그 전에 이케다 씨가 말씀하신 내용인데, 아주 좋은 문장이 있어서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로부터 자신의 기억의 주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한때 자신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위안부들은 지금 다시 자신의 기억의 주인이 되는 것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서평은 굉장히 빨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한 아마 가장 빨랐을 것 같아요 제가 그 전에 민족주의와 젠더라는 책에서 내러티브에 대해 써서 모델 피해자라는 개념을 내놨을 때 비판자분들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우에노 우에노 가 리존에서 박 씨가 그것을 실천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말도 안 돼요, 이제 정말 저는 그런 영향력이 전혀 없고 그런 관계도 전혀 없는데 그런 난해한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났어요,
53:51
그래서 말하자면 어떤 의미에서 제가 미숙하고, 저는 이건 일반서적으로 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4:00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반서로 썼기 때문에 나온 논문이나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었으니 부끄럽지만 90년대 후반에 내셔널스와 뉘앙스 문제라든가 그런 심포지엄이 있었다든가 책으로 나왔다든가 하는 것도 모르고 지금 우에노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책도 읽지 않고 썼지만 그 외의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는데,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우에노의 제자라든가, 영광입니다만 종종 배후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영향력은 전혀 없습니다, 가장 큰 오해는 화해를 위해서도 와다 하루키 씨 와카미야 아사히에게 쓰게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말에는 정말 놀랐어요. 그리고 여자가 뭔가를 하면 남자가 그런 건가 싶어요. 테크니컬 하라스먼트라니. 그렇구나,
54:59
그래서일까. 파쿠리일 거라든가. 그거에 정말 놀랐어요. 저는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다음 해에 와다 하루키 씨를 처음 만났어요.
55:14
박 씨는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연구를 하셔서 하라 이치로 씨가 저렇게 많은 서평을 쓸 정도로 정말 훌륭한 책인데, 조금 딱딱한 일반서라는 포지셔닝이잖아요, 자료는 많이 썼지만 일반서로 쓴 이유는 역시 학회라고 하는 것과 조금 밖에서 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왠지 어렴풋이 느껴져서 역시 밖으로 열고 싶었고, 게다가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일반서로 썼어요. 그런데 그 박 씨가 이 책을 쓰실 때 솔직히 공부가 부족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때 박 씨가 바라본 미래라는 게, 예를 들어 그 사라소 씨라는 한국계 미국인 분이 이 책이 나오기 5년 전쯤에 나온 이우프 문제의 책이 얼마 전에 일본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그 방향과 같죠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제대로 핵 불균형의 문제, 식민주의의 문제라는 것 속에서 위반 불 문제를 사라소 씨도 논하려고 하셨다고 생각하는데요, 번역에 시간이 걸렸어요 정말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어요. 아까 조금 전에 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결국 노예제와 협상제는 다르다는 것을 계속 피해자제를 강조하기 위해 말씀하신 거죠, 협상제라는 것은 계약에 따라 자발적으로 그 매춘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이야기해 왔지만 그 안에는 나는 매춘부가 아니다라는 일종의 성매매를 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주의라는 것이 있어서 그 선긋기가 계속 이어져 왔지만, 반대로 연구를 진행하면 콘돔 성폭력의 정의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예를 들어 전후의 점령군 안기부도 모집한 거니까 동의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심하게 생각해보면 패전국인 일본이 점령군 병사들에게 내민 여성들은 이미 피해자였어요, 국가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죠. 그런 구조적인 폭력 아래 놓여 피해자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그런 구조적인 폭력 아래 놓여 피해자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그 속에서 역시 그런 강제로 끼어들거나 혹은 제탈 상태에 놓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생매장 산업에 들어갔던 사람들 사이에 선거를 하는 것이 계속 진행되어 왔고 그것이 사실은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사가 총장님도 쓰고 계시고, 박 선생님도 말씀하신 최근의 연구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은 다른 분야에서 들어와서 그 방향을 제대로 열어 놓으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텍스트처럼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죠 여러 가지 배경에 정말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적인 배경도 있고 개인적인 그런 독해력에서 혹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이익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저를 고소했던 나눔의 집의 소장은 2년 전쯤에 대가성 혐의로 기소되어서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지금 교도소 안에 있는데, 제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여러 가지로 다르죠.
준다는 그런 느낌이...
Speaker B 00:02
감사합니다 드디어 학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연구가 조금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3년 정도 만에 조금 새로운 책이 나왔는데요, 지금까지는 양 극단으로 나뉘어서 대립하고 있었는데, 양쪽 다 비판하면서 양쪽 다 비판하는 책이 나왔는데요. 비판한 책입니다만, 이쪽의 입장도 크죠, 이번 쪽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쪽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굉장히 제대로 된 연구서가 2년 정도 전부터 나왔고 특히 작년에 재일 여성인데, 저는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는데 식민지 협상성을 분석한 책으로 거기서 우리가 과거 30년 동안 연구라는 것은 소위 위안부와 매춘부라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구분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이 내부라고 할까, 소위 일본 내 연구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데, 계속 끌어온 분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2년 전에 나온 것은 굉장히 좋은 논문이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쪽은 오히려 이쪽 동료라고 하면 동료의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아닙니다.30년이 넘었습니다. 오셨던 분인데 그분도 재미있는 게 책 첫머리에 벌써 30년 전에 미국 학회에서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발표하려고 했더니 한국 연구자들에게 비평이라고 할까 그건 하지 말라고 했다는 식의 이야기도 적혀있어서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소리로 재미있었어요.
Speaker C 02:12
아까 이케다 씨가 말씀하신 내용인데 좋은 문장이 있어서 인용을 해드릴게요 이건 박 할머니의 글인데 피해자로서의 기억 이외의 것을 은폐하는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서 자신의 기억의 주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다카하시 원이치로 씨가 원이치로 씨가 말하는 것은 한때 자신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위안부들이 지금 또다시 자신의 기억의 주인이 되는 것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Speaker A 03:04
그 서평이 너무 빨랐어요.
Speaker B 03:08
제가 기억하는 한 가장 빨랐던 것 같아요 굉장히 기뻤어요.
Speaker C 03:17
제가 그 전에 민족주의와 젠더라는 책에서 내러티브에 대해서 써서 모델 피해자라는 개념을 내놨을 때 비판자분들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우에노가 이론으로 박 선생님이 그것을 실천했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정말 그런 영향력이 전혀 없었고, 그런 관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관계도 전혀 없는데 그런 난해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Speaker B 03:51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어떤 의미에서 제가 미숙해서, 저는 이건 일반서적으로 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반서적으로 썼기 때문에 나오는 논문이나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어서 부끄럽지만 90년대 후반에 민족주의와 뉴알문제라든지 그런 심포지엄이 있었다거나 책으로 나온 것도 모르고 지금 우에노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책도 읽지 않고 썼지만 그 외의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런 점에서 우에노 선생님의 제자라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Speaker C 04:34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Speaker B 04:35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Speaker C 04:36
그런 영향력은 없습니다.
Speaker B 04:37
음 가장 큰 오해는 화해를 위해서도 와다 하루키 씨와 와카미야 씨에게 쓰게 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거는 정말 놀랐어요, 여자가 뭐..
Speaker A 04:51
가 하면 남자가 그런.
Speaker C 04:54
그런 건가, 텍스타일 괴롭힘이라고 할 정도니까, 그 정도면 가나카쿠리일 거라든지...
Speaker B 05:02
저거는 정말 놀랐어요 저는 젊은 시절에 내고 나서 그 다음 해에 와다 하루케 씨를 처음 만났어요.
Speaker A 05:12
네, 그 박씨는 나츠메...
Speaker B 05:16
소세키를 연구하고 계셔서...
Speaker A 05:20
그 원이치로 씨가 저렇게 많은 서평을 쓸 정도로 정말 훌륭한 책인데 조금 딱딱한 일반서적이라는 느낌.
Speaker B 05:36
의 포지셔닝이잖아요 자료는 많이 썼지만 일반서로 쓴 이유는 역시 학회에서 말하는 것과 밖에서 말하는 것이 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고, 역시 외부에 공개하고 싶었고, 게다가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일반서로 썼어요.
Speaker A 06:09
그 박 선생님이 이 책을 쓰실 때 미숙해서 솔직하게 말씀하셨는데, 이 때 박 선생님이 바라본 미래라는 게, 예를 들면 그...뭐였더라, 사라소라는 미국에 계신 한국계 미국인 분이 이 책이 나오기 5년 전쯤에 위안부 문제 책이 얼마 전에 일본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그 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같죠. 그래서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제대로 된 핵 불균형의 문제,
Speaker A 07:06
식민주의 문제라는 것 안에서 위반불가 문제를, 사라유종 씨도 논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Speaker C 07:14
그런데 번역에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아까 박선영 씨가 말씀하신 것 때문에 결국은 노예제와 협상제는 다르다는 것을 계속 피해자제를 강조하기 위해 말씀하신 거죠, 협상제라는 것은 계약에 따라 자발적으로 그 제도에 매매에 계약에 따라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했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지만, 그 안에는 나는 매춘부가 아니다라는 일종의 성매매를 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주의가 있어서 그 선긋기가 계속 이어져 왔지만, 반대로 연구를 진행하면 콘돔 성폭력의 정의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세이바이바이라든가 협상제라는 것 안에도 강제성이 있고, 혹은 예를 들어 전후의 그 전율의 군대도 모집한 거니까 동의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심하게 생각하면 패전국인 일본이 전율의 군인들에게 내놓은 여성들은 이미 피해자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을 국가가 한 거죠 그게 그 후 오프 리미트가 된 후에 트라우마가 된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구조적인 폭력 아래 놓여진 피해자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그 안에서 역시 그런 강제로 끼어들거나 혹은 제압 상태에 놓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생계형 성매매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끼리 선거를 하는 것이 계속 이루어져 왔던 거잖아요 그게 사실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사가 총장님도 쓰셨고, 그리고 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최근의 연구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 대단하네요.
Speaker A 09:17
박 선생님은 다른 분야에서 들어와서 그 방향을 제대로 열어놓으셨다는 게 대단하다고....
Speaker C 09:30
생각 텍스트처럼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Speaker B 09:34
네. 여러 가지 배경이 정말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적인 배경도 있고 개인적인 그런 독해력에서 혹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이익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저를 고소했던 나눔의 집 소장님이 2년 전에 응징죄로 기소돼서 지금 감옥에 있는데 지키려고 했던 것은 여러 가지가 달랐던 것 같아요 그게 잘 겹쳐서 대답하게 된 것 같은데 역시 90년대 민족주의와 그런 페미니즘과 민주화 운동의 관계를 좀 물어보셨는데요, 한국은 일본과 다른 점은 소위 냉전붕괴가 되기 전까지는 좌파가 굉장히 발언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그전까지는 보수적 민족주의예요, 박정희가 이끄는 보수적 민족주의로 80년대까지 군부정권이었기 때문에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뒤집혀서 겨우 발언할 수 있게 된 최근 30년간의 한국의 역사 인식이라는 것은 어머니가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머니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것은 그것대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에서 보이는 편향성이라고 할까 경직되어 있었다고 여러 가지 말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문제가 역시나 발생했고 그래서 역시 그 여성들이 여성 관계자들이 혹은 학자들이 제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저도 진보의 끝에 있던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지난 10년 동안 왜 그러는지 물어본 10년인데, 예를 들어 10년 동안 견뎌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고생은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정말 그것에 대해 발언을 했으면 좋았을 사람들은 거의 하지 않고, 이것을 무엇일까라는 것은 아직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게다가 국가에 의한 그런 억압을 받은 사람들이 좌파이기 때문에 그 뿌리에는 식물인간 시대에 가장 억압을 받은 것이 좌파이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역시 그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그런 일이 있어서 뭔가 극복하지 못하고 폭력을 당하고 정말 30년 전에는 끔찍한 고문도 당하고 국가폭력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 텐데 저는 이제 전혀 부드러운 폭력이라고 하면 그렇긴 한데 역시나 그런 국가 폭력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너무 안타깝고 그것을 방치하거나 묵인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사법부의 일부에 있는 폭력성의 문제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역시 여러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고 위급한 상황이 되면 죽일 수 있어요 저 또한 도 죽지 않았지만, 처형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고, 아까 말씀드린 어떤 국회의원을 잡아서 파쿠이파 처벌법을 만들라고 하는 것을 어떤 영상에서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국회의원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Speaker C 13:35
박현정님의 지금 말씀을 듣고 가슴이 쿡쿡 찔리는데요, 잘 버텨왔다는 게 정말....
Speaker B 13:46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큰 버팀목이 된 것은 믿어야 할 사람들이 믿어준 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어요.
Speaker C 13:56
해놓고 생각해보면 그건...
Speaker B 13:57
가장 컸어요 사실 이거.
Speaker C 13:59
은 발언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했다는 것은 얼굴이 떠오르니까 저도 그렇고요, 아까 박선영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연구가 나왔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역시 고양이 문제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 멀어지게 된 거죠, 그렇지 않더라도. 인아프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예요, 소수파의 사람들이 세밀하게 연결해 온 연구가 있는데도 젊은 사람들이 역시나 이런 일을 하면 다친다, 화상을 입는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멀어지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굉장히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Speaker A 15:01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요?
Speaker C 15:02
아까 말씀하셨는데 아까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사실 박유하 현상을 둘러싸고 일본 지식인들이 두 동강이 났는데요, 그게 2016년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도쿄대 집회인데, 정말 애초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지식인이 그렇게 많지 않고, 그 중에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은 그 작은 서클에서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 계속 어려웠는데, 자리를 함께 하고 공개 토론을 하자는 것을 했습니다. 이것은 훌륭하게 맵스들의 요청으로 개최되었고 이전보다 더 깊은 균열을 남겼습니다.
Speaker A 16:05
그 트라우마가 일본 학자들이 모이게 된 계기가 된 건가요?
Speaker C 16:08
네, 재일동포 분들도 계셨지만 그 트라우마는 지금도 치유가 안 된 것 같고, 그러면 그것을 외부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곳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Speaker B 16:31
저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Speaker A 16:35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요, 아까 우에노 씨도 말씀하셨지만, 박 씨는 왜 까치 밤만 주우시는 거예요? 어린 애들 때문에 4개나 줍고 있어요, 이런 식이죠.
Speaker B 17:01
제가 처음 쓴 책이 한민족 짐코아라는 책인데요, 그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역시 한국에서 일본에 대해서 가르치는데, 90년대 학생들, 들어오는 아이들은 일본을 좋아해서 들어오는데, 사회에서는 일본에 대해서 거의 10이면 10은 안 좋게 이야기하니까 자괴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에서는 일본에 대해 거의 10이면 10의 나쁜 점을 말하기 때문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식으로 저에게 말한 학생이 있어서 첫 번째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쓴 책입니다. 비판을 해야 하는데 애초에 비판이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고 그런 낭비를 견디지 못하는 성격도 있고, 역시 한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Speaker B 18:12
학생분들을 비롯해 항상 말씀드리지만, 진정한 비판은 먼저 정확하게 알아야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정말 그랬어요.
Speaker A 18:29
그렇죠, 비판을 하려면 우선 사실에 근거해서 했으면 좋겠어요.
Speaker B 18:33
네, 정확하게 비판이든 용어든 정확했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동기로 젊다는 이유로 굉장히 비난을 받았지만 그 당시에는 젊다는 말이 별로 안 나왔을 때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건 이제 화해하고 끝내자는 거 아니냐, 이런 말을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않고 화해를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일단 예를 들어 전후 일본은 어땠는지라든지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조금 소개한 거죠 위안부 문제도 사실 여기 제국의 위안부에게 쓴 내용의 80% 이상은 쉽게 쓴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뭐 그런 것들로 썼다는 거네요.
Speaker C 19:28
그런 의미에서 박 선생님이 계속 수비로 일관하고 계시는데 역시 이 책에서 화해에 대해서 아주 좋은 글을 쓰셨기 때문에 그걸 좀 소개해도 될까요 예 그럼 그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피해자가 보여줘야 할 노예와 가해자가 보여줘야 할 겸손이 만날 때 비로소 화해가 가능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둘 다 없네요, 사실 그렇죠.
Speaker A 20:01
박 씨는 일본은 이런 부분을 비판해야 한다, 한국의 이런 부분은 좀 더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양쪽에서 다 말하니까 양쪽에서도 양쪽에서 다 지지를 받고 양쪽에서 다 지지를 받는 거죠.
Speaker B 20:20
그 사이에 사실은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 지지해준 거니까 이쪽이 좀 더 넓어지면 아마 한국은 사실 아까 좌우의 문제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일본보다 더 심하고 그것은 내전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사실은 거기서부터의 관심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역시 이쪽이 조금 더 넓어지면 한일뿐만 아니라 좌우 문제라든지 남북 문제라든지 좀 더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Speaker A 21:02
좀 더 성숙해졌으면 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Speaker C 21:05
아니 진짜 이 문제가 터지고 나서 제가 한국에 갈 때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이 위안부 문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요 저는 대답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 막힌 채로 정말.... 이미 경착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에 아니~ 지금 정말 징용공 문제도 있지만 한국이 어떻게든 이런 손을 내밀고 있으니까 일본 정부도 제대로, 그 지금 뭐 기업에 협탁금 내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거잖아요 정부도 급여도 내면 되지 않습니까 내면? 그렇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일본은 아직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지 정말 궁금하네요, 박 대통령이...
Speaker A 22:25
정말 벌써 그 옛날에 화해를 위해서 네 가지 그 기둥을 내어주셔서 한국 사회도 일본 사회도 좀 더 성숙해지자고 하는 것을 정말 아프고 정말 박 대통령님이 지난 10년 동안 이렇게 유연하게 정말 목숨의 위협을 느끼신 것도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그 세정대학교는 박선영 씨를 지켰어요.
Speaker B 23:09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 가지를 말하면서 조금 비판적인 분들도 있고 연구년 안 내릴 때도 있고 역시 사람에 따라 달랐어요. 후반기에는 비교적 호의적인 분이 총장이 되기도 해서 좋았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발표자 A 23:28
정년까지 근무하시고 명예교수가 되셔서 저는 이제 그것도 정말 뭔가 기쁘게 생각하는데요, 지금부터 좀 표현이 좀 그렇지만 지난 10년 동안 재판하면서 저는 그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되고 알게 되고 놀라게 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 때문에 정말 박 선생님은 힘들었을 텐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 일로 일본...
Speaker B 24:05
그리고 한국이요, 민주재판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Speaker A 24:11
음 형사 재판은 4월입니다.
Speaker B 24:13
대법원에서 끝났지만 감옥에는 안 간다는 거죠, 검사로부터 장기 3년 휴직이 됐으니까 이런 거죠.
발표자 A 24:31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박 씨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안 전 소장은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고, 그다음에 그 후 정의연인데, 거기서 박 씨에 대해 대대적으로 논전을 펼쳤던 윤미향 씨는 그 기세로 국회의원이 되셨죠? 하지만 역시 할머님들에 대한 기부금 출처 불명이나 회계 부정으로 당을 함께 민주당이라는 여당이었지만 당에서 제명되어 지난 선거에서는 출마도 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지난 10년간 싸웠던 두 사람이 그렇게 사회의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것과 지난 4월의 대법원 승소와 라는 것이 타이밍적으로 겹치는데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를 저희들에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에노 씨도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Speaker C 26:11
이케다 씨가 성숙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정말 패전으로부터 80년 가까이 지났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나 정정할 수 있는 힘도 없고,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고 거기서 배우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겠지요.
Speaker B 26:45
국회 결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쯤은.
Speaker C 26:50
그러기 위해서는 정권교체.
Speaker B 26:53
지금 80년이라고 말씀하셔서 기억이 났는데요, 본인은 70년 정도 됐으니까 한국 얘기 여러 가지를 쓰면서 이제 좀 성숙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썼는데 그게 위안부 할머니들 얘기한 거라고 하셔서 그것도 삭제됐어요. 거기서도 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았어요 진짜.
Speaker A 27:17
에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일로....
Speaker C 27:20
오독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오독하는 것 같아요.
Speaker A 27:23
네, 깜짝 놀랐어요 두 분 모두 오랜만에 감사합니다.
Speaker B 27:28
여러분 어떠셨어요.
Speaker A 27:30
네. 이제 들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민주주의 타임즈는 여러분의 캠퍼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민주주의 타임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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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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