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재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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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 故 송곡 최형섭 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KIST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과학기술계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익숙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대중들에게 최형섭 박사는 여전히 낯설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분일 것입니다. 송곡(松谷) 최형섭 박사는 최초의 정부 출연연구소 KIST의 초대 소장이자 과학기술처 장관(1971~1978)을 지내신 분입니다. 탄신 100주년을 맞아 KIST에서는 1995년에 발행된 최형섭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새로 재발간했는데요. 다양한 업적과 일화를 다룬 회고록 중에서 박사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 두 가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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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송곡 최형섭 박사
바로 이분이 H.S.Choi!
1973년, 중요 연구기관의 책임자들과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호주를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CSIRO(호주 연구기관) 산하의 금속제련연구소에서 담당 교수가 중요 합금 재료 첨가제인 특수금속추출에 관한 설명을 할 때였습니다. 설명 도중에 그가 “이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가진 에이치.에스.최.(H.S.Choi)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옆에 앉아 있던 CSIRO 총재 프라이스 박사가 최형섭 박사를 가리키면서, “바로 이분이 에이치.에스.최”라고 해서 자리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과학기술처 장관이기 이전에 한 명의 뛰어난 과학자로서 최형섭 박사의 연구성과가 과학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분에게는 마치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을 눈앞에서 가까이 마주한 기분이지 않았을까요? (웃음)
우리가 일하는 목적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부임 당시 과학기술계 출신은 5%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국장은 행정직 공무원인 이사관으로 임명되어야 한다는 관행에 따라 기술직 공무원들은 배제되었는데요. 과학기술용어조차 모르는 행정관리들만으로 어떻게 연구자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겠는가라고 판단했던 최형섭 박사는 국·실장들을 전부 기술직으로 교체하고, 하위 직원들도 점차 대체해 50% 이상으로 기술직의 비율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정직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때 최형섭 박사는 이러한 말로 불만을 잠재우고 본인의 철학을 지켜냈습니다.
“우리가 과기처에서 일하는 목적은
과학기술행정 자체가 아니라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많이 배출되는 바탕을 만들어주고
이 사람들이 불철주야로 연구에 전념해서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소?
행정 절차가 희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들을 지원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오....!”
최형섭 박사는 회고록 내내 같은 이야기를 강조했습니다. 1.과학을 이해하고 기술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2. 과학기술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3. 과학기술행정은 언제나 연구자들을 위한 조정과 지원이 원칙이다.
당시 최형섭 박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연구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당당하게 건의하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라면 조직개편이나 법안 개정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노력하신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간혹 KIST가 미국의 주도 아래 설립과 운영이 된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최형섭 박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언급합니다. KIST가 설립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한국군의 월남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국군의 현대화와 경제원조를 해 주겠다는 목적으로 박 대통령을 초청했는데요. 이때 발표된 공동 성명문 안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공동 성명서에 연구소 설립에 관한 합의만 이루어졌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형섭 박사가 주도적으로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등 선진국 연구소의 장점만을 본따 우리 상황에 맞는 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KIST는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구상하고 운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속에 최형섭 박사는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구요. 이런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지금의 한국 과학기술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는 별명도 이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회고록 안에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인상깊은 내용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관민 일체가 되어 기초와 응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회고록이 쓰인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2020년인 현재에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KIST가 앞으로 정부출연연구소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해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고 언제나 항상 빛날 수 있도록, 최형섭 박사의 뜻이 유지되어 더 찬란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꽃피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KIST와 모든 사람들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출처] 최형섭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재발간|작성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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