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 계약서 없다" 궁지 몰려 실토…학계 대사건으로 번진 '램지어 사태'>
● 램지어 국면 뒤흔든 하버드 석지영 교수의 폭로
- 석지영 교수가 잡지 뉴요커에 기고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미국 교수님들을 통해서 듣고 있었음. '사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도 있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어서 그럴까 궁금해 하고 있었음. 출고 시간이 늦어지면서 하루 뒤로 밀리나 보다 생각했는데, 기사가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이 내용을 확인해보라는 메시지가 빗발치기도. - 석지영 교수의 기고문은 역시 명성에 걸맞게 내용이 훌륭. 뉴요커 기고문은 미국인들에게 이번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 사건이 갖는 의미를 A부터 Z까지 모두 설명하고 있었음. 뉴요커는 미국에서도 고급 잡지 이미지가 강한데, 석지영 교수의 기고문은 미국 사회도 이번 사안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음.
- 석지영 교수는 이번 사태 초기에 트위터에 동료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올리면서 자신의 시각을 선명하게 드러낸바 있음. 당시 운 좋게 트위터 올린 다음 날 인터뷰를 할 수 있어 뉴스로 전했었는데, 이번 기고문을 보고 다시 연락을 안 할 수가 없었음. "교수님 기사로 많은 것이 바뀔 것 같다"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늦은 밤인데도 가능하다는 답신이 왔음. 석 교수는 뉴요커의 객원 기자 타이틀도 갖고 있어서인지, 이번 사태 한복판에 뛰어들어 그동안 열심히 '취재'를 해왔음. 본인이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동료 학자들 대부분을 만나 솔직한 속내를 들었음. 기사에 담지 못한 것도 상당해 보였음. 인터뷰하면서 석 교수가 파악했던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음.
- 이번 사태에서 석지영 교수만 할 수 있는 취재는 램지어 교수 당사자 인터뷰. 한국은 물론 미국 매체에도 램지어 교수가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는 않았는데, 석 교수와는 직접 만나 장시간 인터뷰까지 진행. 석 교수에게 램지어 교수랑 대화만 주고받은 거냐고 물었는데, "뉴요커 기고문을 싣기 위해 취재를 하러 간다고 고지를 했고, 허락을 받아 녹음까지 했다"고 확인. 여기서 나오는 램지어 발언은 나중에 부인이 불가능한 '빼박' 진술이라는 의미. 석 교수가 말해준 내용 가운데 새롭게 알게 된 걸 3가지로 정리.
1. "I don't have any korean Contracts"…결국 매춘 계약서 없다고 시인한 램지어
-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태평양 전쟁 이전 일본 여성들의 매춘 계약서과 태평양 전쟁 중간에도 일부 일본 매춘 여성들의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 하지만 하버드 역사학과 교수들을 비롯해 5인의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사 교수 등이 반박문을 통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계약서는 실체가 없다고 폭로. 학자들은 램지어가 그걸 어디서 보고 쓴 건지 밝혀야한다고 요구. 자신도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인 여성들의 계약서를 어디서 본거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램지어는 "한국인 계약서는 없다"고 답변을 했다고. 뉴요커에 조금 더 디테일이 설명돼 있는데, 램지어 교수는 "계약서를 찾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석 교수 당신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 이 말은 이번 판을 뒤흔드는 엄청난 내용. 램지어는 매춘 계약서가 없다는 걸 알고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문을 썼을 수 있기 때문.
석 교수는 계약서가 없다고 해서 존재가 없다는 걸 의미할 수는 없다고 전제. 구두 계약이나 계약서 자체가 전쟁으로 파괴됐을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램지어는 다른 2차, 3차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해줬음. 역사학자들의 팩폭에 램지어가 링 위에서 의식을 잃고 KO된 걸 석 교수의 인터뷰로 확인한 순간.
2. 10살 계약 매춘부라면서 'Owner(주인)' 표현…"내가 실수했다"
- 위안부 피해자로 해외 군인들을 상대해야했던 10살 일본 소녀 오사키에 대해서는 지난번 포스트에서 램지어 교수가 어떻게 사례를 뒤틀었는지 자세히 설명. 논문 자체에도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오사키의 포주를 Owner(주인)으로 표현돼 있는 걸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음.(대단한 빨간펜 선생님들) 자발적인 계약 매춘부라면서 주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서로 충돌.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실수를 했다고 인정.
- 석 교수도 역사학자들의 반박문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램지어 교수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 반론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꼼꼼한 검증 보고서들이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 걸릴 줄 알고 슬쩍슬쩍 사안을 뒤틀어 마음대로 쓰던 램지어 교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음.
3. 지지 교수들도 등 돌려…철저하게 왕따 된 램지어
- 램지어 교수가 얼마나 초조하게 이번 사안에 대응했는지는 석 교수의 기사에 잘 녹아 있음. 미국에서 워낙 우군이 없으니 한국과 일본 극우 인사들의 편지까지 보여줬다고.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도 지지했다고 말해줬다고. 석지영 교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소개하며 기자 폭행 사건까지 친절하게 미국인들에게 언급. 사실 이런 사람들의 지지 편지는 수만 통이 있어도 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램지어 교수도 알겠지만,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이런 식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듯.
- 미국에서는 버클리 대학의 베리 역사학과 교수와 컬럼비아 대학의 웨인스타인 교수가 램지어 교수 논문에 지지 서한을 보냈지만, 이들도 학자들의 반박문이 나온 뒤에 석 교수가 직접 확인해보니 "오류를 시인해야한다"거나 "논문 철회가 적절하다"는 반응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음. 철저하게 왕따가 된 상태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외롭게 고민하고 있을 램지어 교수의 얼굴이 그려지는 듯.
● 학계 대사건이 된 램지어 연판장…"이런 논문 용납 않겠다는 결의"
- 재미 경제학자들이 주축이 돼 시작된 램지어 교수 논문을 반박하는 경제학자들의 연판장은 미국 학계의 대사건이 되고 있음. 사흘 만에 서명한 학자들이 2100명 돌파. 노벨상을 받은 하버드대 매스킨 교수를 비롯해 스탠퍼드대 로버츠 교수, 예일대 사무엘슨 교수 등 학계에서 존경받는 석학들이 굉장히 많이 직접 이름을 올려. 신구, 남녀 다양하게 섞여 있다는데,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교수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상황.
- 이 연판장 작성과 서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UCLA 정치학과 마이클 최 교수와 미시간대 법대 알버트 최 교수, 에모리대 경제학과 수 미알롱 교수를 한꺼번에 모시고 줌 인터뷰. 사실 다른 학자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인터뷰까지는 안하겠다는 경우도 있었음. 그런 분들께도 모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음. 일대일 인터뷰를 넘어 이제 미국 학계의 실력 있는 한국계 교수님들을 동시에 세분이나 같이 모시고 인터뷰를 한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 (마이클 최 교수는 영어가 더 편하지만, 나머지 교수들은 한국말도 잘했음)
- 이 연판장은 그냥 온라인에 걸려만 있는 게 아님. 핵심 역할을 하시는 교수들이 모두 동료 교수님들과 학계 중진에게 전화로, 이메일로 연락하고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이름을 올린 것.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 인터뷰한 교수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해. 알버트 최 교수도 자기도 미국에서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빨리 이름을 올린 걸 본 기억이 없다고 말하기도. 알버트 최 교수는 법경제를 전공해서 램지어 교수를 학술적인 자리에서 종종 봤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논문을 써서 낼지는 몰랐다고 말하기도. 이 논문에는 법도 없고 경제도 없다며, 어떻게 이런 논문이 실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
- 미알롱 교수는 연판장의 의미에 대해서 잘 설명. 이미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름을 올린 이상 일개 학술지가 논문을 철회하든 안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런 상황에서 학술지가 논문 철회를 안 한다면 그건 그들이 후폭풍을 감당해야겠지만, 이런 연판장의 수많은 이름 자체가 학계에 이런 전쟁 범죄를 정당화하는데 학문을 이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
- 마이클 최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게임 이론이 사용됐다는 것에 대해서 깊은 절망감을 표시. 10살 소녀조차 계약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램지어 교수를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마이클 최 교수의 마지막 당부는 인상적. 유대인들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어린 세대들에게 교육했다고. 그래서 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발을 붙이지 못 하게했다고 지적. 우리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 뭐가 역사적인 사실인지 철저히 교육해야한다고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음. 우리 학계도 이번 미국에서 논의되는 램지어 사태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서 단순한 반일 감정을 넘어서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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