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2

Yuik Kim - 홍콩은 유럽식 민주주의를 누렸던 적이 사실 한번도 없다.

(2) Yuik Kim - 이분 설명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사람들이 홍콩의 역사와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 Facebook

이분 설명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사람들이
홍콩의 역사와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홍콩은 유럽식 민주주의를 누렸던 적이 사실 한번도 없다.
홍콩의 언론자유와 인권 등은 일종의 선물로 식민지 사회에 주어졌던 것이지, 실제로 투표 제도 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정 자체가 실행된 적은 거의 없었다.
홍콩의 문화적, 제도적 수월성(?) 혹은 그 번영의 배경중 일부로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 영미계 법치주의
- 동아시아인들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홍콩특유의 가족적 공리주의
- 효율과 신뢰를 중시하는 중국 남방문화의 상인정신과 영국식 교육과 제도로 키워진 전문직의 프로페셔널리즘
- 대만, 해외 화인 사회와 대륙 공산당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식으로 좌우 이념에서 어느 정도 독립된 자유주의 문화였지
민주정 체제 자체는 아니다.
민주정 자체는 아니지만 그 과실을 간접적으로 맛본 젊은 홍콩인들이 완전한 민주정(행정원 대표를 선출하는 보통선거)을 요구한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만, 대륙 정부는 홍콩에 민주정 체제를 허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민주정 체제는 홍콩인들의 독립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자유화는 그보다 훨씬 느릴 수밖에 없고, 타임 스케일이 서로 맞지 않았다.
홍콩 반환당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지만, 반환 직후에는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고, 정치적 갈등이 격화됐던 2014년, 2019년 당시에도 여론은 반으로 갈라졌다.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사회안정과 경제적 이권이 보장되면 오히려 권위주의 정부를 선호한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간접적으로라도 민주정 체제를 경험한 유학파 엘리트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반환직전에 영미국가로 런을 박았었고, 그 후에 외국 국적만 보유하고 홍콩으로 돌아와서 중국반환후의 경제적 과실을 적지 않게 누렸다. 2019년후 급격하게 사회적 자유도가 하락하면서 다시 떠나는 이들도 있고, 정치에 관심이 적은 이들은 그냥 남아있다.
대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의 status quo로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외부의 지지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대륙인민들의 지지였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국가이지만 자국 인민들의 여론을 무시하지 않는다.
중국의 보통 인민들이 홍콩을 (대만과 마찬가지로) 알게 모르게 부러워하면서 화인 사회의 희망이자 자부심으로 여기고 심정적 지지를 보낼 때는 함부로 철권을 휘두르지 못하지만, 그들의 반감을 사는 수준에 이른다면 눈치를 볼 것이 없어진다. 따지고 보면 식민지 시절의 자유화도 영국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프랑스의 식민지인 뉴칼레도니아(독립요구하는 원주민)의 2024년 폭동후 정치적 교착상황만 봐도 알 수있다.
홍콩의 자유와 인권의 개선은 애초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포함해서 아주 불안정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일종의 외줄타기와 같은 것이었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한국에서도 이번에 파시스트 (혹은 칼슈미트의 초헌법적 순간과 최고통치자의 결단의 시간을 지지하는 이들)들과 투쟁을 벌이면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공론장에서 한국의 정치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거의 물신화된) '민주주의'라는 기호로 모든 것을 뭉뚱그리지 말고 쪼개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서로 주고 받으면서 타협과 협상을 통해 건설적 합의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May be an image of 10 people and text that says "2 한번 빼앗긴 자유는 아무리 부르짖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홍콩 반환 반대 시위때 대영제국의 유니언 잭을 들고 나온 할아 버지 할머니들을 뜰딱이라며 비웃던 당시 청년들은 이제와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백만 시민들이 힘을 모아도 이미 늦어버린 뒤였고 이미 사회 깊숙이 침투한 중공 간첩들의 훼방으로 시위대는 결 국 해산 수순에 들어갔다."
궁금하네요. 이런 글을 극우 진영에서 돌리나본데, 그쪽에 나이 많은 사람들 많잖아요. 홍콩 반환에 대한 역사적 내용을 알 교양수준은 못된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런 글을 아무 생각도 없이 공유한다는 게 참..교양만이 아니라 기억마저 부족한 걸까요?
영국이 홍콩을 가져간 건 아편전쟁의 결과였습니다. 99년간 영국에 넘겨주는 조건이었죠. 반환에 이르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1990년대에 영국이 중국을 상대로 19세기 제국주의 결과물을 지속하겠다고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약속대로 돌려줘야 했습니다. 이건 굳이 국제정치나 역사 같은 거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럼 당시에 젊은 사람들은 반환에 찬성했고, “틀딱”들은 반환에 반대했을까요? 웃기는 소리입니다. 그때 홍콩사람들 거의 전부가 반대했습니다.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데 그걸 누가 찬성합니까?
90년대가 홍콩영화의 전성기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시 홍콩영화의 파워는 어마어마했죠. 그런데 그 영화들에 공통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홍콩반환을 앞둔 상황을 비극적으로 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파악하지 못하면 당시 영화들 해석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홍콩 영화계는 사회비판적인 영화가 주목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홍콩 연예계를 지배하는 것이 삼합회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들어와서도 홍콩의 유명 배우들은 대륙의 조폭들, 실권자들의 손에 계속 끌려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홍콩 영화계에서조차 홍콩 반환을 비극으로 봤습니다.
홍콩은 영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어서 희생당한 케이스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 쪽에서는 “19세기 아편전쟁으로 뜯긴 우리 땅 찾아온 건데 뭔 소리냐”라고 할 거고, 그 말이 사실 맞는 말이니까 영국이 홍콩을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런 역사 때문에 유럽의 민주주의를 누리던 홍콩 시민들 입장에서는 너도나도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도 맞습니다. 결국 그들이 걱정했던 대로 홍콩이 몰락하고 말았으니까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이런 식으로 왜곡해서 이용하는 건 역사와 홍콩 사람들 앞에 죄짓는 겁니다. 지금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입니다. 틀딱 어쩌고 하는 소리는 그 투사들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극우 진영이 거짓과 사기로 사람들을 선동한다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말이 많았다는 건 지금 찾아봐도 나오는데, 이걸 기억하지 못하는 건 진짜 지적 능력 문제입니다.
하긴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도 아무렇지도 않게 모욕하는 자들이니 다른 나라에 대해 이러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진짜 사람같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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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n Yang
서구의 입장에서는 특히 영국의 입장에서는 정착 식민주의 와 강도 식민주의 사이의 어중간한 어딘가 였고, 실제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 가 2차 대전 이후 유혈충돌을 계속 낼때 엘리트 포획 과 장기적 재구축을 골자로 하는 독립 영연방 모델을 구상에서는 그냥 적용한 것 같습니다. 중국입장은 뭐 아실것이고. 아마 인도 초기 엘리트와 퀘벡, ANZAC 사이 어딘가 쯤 의 '홍콩인' 의 탄생을 노렸던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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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n Yang
그리고 인용 내 원글이 영화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걸 제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사람이 '왕가위' 이죠. 일대종사까지의 장편영화들은 모두 그 홍콩의 역사를 다뤄왔는데, 알리 탄센트 자본으로 OTT, 에서 처음 연출한 화교 이민사를 다룸 장편 드라마는 화인들 말고는 아무도 안 보죠. 촬영감독 듀오 였던 크리스토퍼 도일 하고도 결별했고, <화양연화> 미술감독 인 장숙평은 한복공정에 최전선에서 한국문화는 없다고 주장하는게 현재죠. 국내에서는 희한하게 주윤발이나 양조위 유가령 부부에 호의적인데. 그냥 제 눈에는 중국인처럼 보이는 군요. 오히려 통합의 상징이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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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Swn Yang 네 왕가위의 후기 영화들은 특히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미학적 측면에서 계속 선호되는 것 아닐까요? 정치적 자유주의가 메시지로 드러나는 것과 자유로운 표현양식이 수월성을 갖게 되는 것 때문에 혼동이 있을 수는있죠. 한국의 50대이상이 왕가위, 주윤발, 양조위 등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정확한 이념적 지지와는 무관합니다. 시대적인 기억과 정서이죠. 양선생이 그 시대를 정확히 공감할 수 없으니 그렇게 보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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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n Yang
Yuik Kim 하긴 지금 소위 '외퀴' 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케이팝 팬들도 자신들의 스타는 좋은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나쁜 한국인 이라는 인식이니까 그렇게 보면 무리는 아니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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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욱
영국인들은 미국인의 길을 따라 처음에는 국어의 변화를 강요한 다음, 홍콩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잊게 하고, 식민지 지위를 숭상하고, 대영제국을 숭배하는 법을 배우도록 최선을 다했다. 영국은 미국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홍콩에는 이 부분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젊은 사람들도 아예 모른다.. 그들은 홍콩 국민들의 의식에서 자신들의 음습한 과거를 지우려고 모든 역사책을 불태우고 홍콩의 역사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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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욱
따라서, 문화적 붕괴의 힘 외에도, 대부분의 홍콩은 극심한 경제적, 노동적 억압을 겪었고, 결국 폭력적인 정치 시위로 분출된 경제적,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다. 공장들이 불에 탔고, 경찰서가 폭격을 당했으며, 교통과 다른 파업, 거리 시위와 폭동이 있었다. 버스들은 불타고 관공서는 약탈당했고 건물들은 불에 탔다. 식민지 정부는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중국 현지 직원들을 해고했다. 경찰은 노조 사무실에 강제로 진입해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등 보복 폭력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외신들은 중국 본토의 소요를 비난하는 대규모 언론 캠페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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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an
홍콩이라는곳이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직위와 위치가 확실하지 않은 지역이니까 지금의 결과가 나온거죠. 홍콩은 영국통치 막판을 제외하면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1인 1표제도 제대로 실행된적이 없고. 그리고 식민지 시절에는 정부를 선거로 구성해본적이 없어요. 즉 식민성 그후 외무성에서 관할하는 식민지 였고 그러한 이유로 독립국가의 근간이 되는 자치령이 된적도 없어요. 지금 특별행정자치구는 말만 특별행정이지 사실상 고도의 자치행정을 누리고 있는 식민정부라서 주권은 없고요. 그러니까 중영합의를 두나라가 홍콩인들 의견 안듣고 마음대로 하고 홍콩인들의 목소리가 반영이 안된채로 반환된거죠. 단 영국때가 자유로웠다 이거는 영국이 민주주의 정체는 홍콩에 안만들었지만 정부 성향이 본국반영해서 식밈지정부 행정부가 경제 및 언론, 사회에는 라쎄페 정책을 했으니까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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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an
반환뒤에도 의회와 구의회는 선거로 구성됐어도. 문제는 홍콩 입법회가 영국때 잔재인 직능공 선거구 같은게 남아서 1인 1표제는 전체 입법회 의석 90석중 20명만 직선선출이어서 1인 1표제는 없었고요. 그리고 직능공제가 기업에 의해서 움직이니까 말만 민주주의지 사실상 북경통제 올리가르히였고요. 그러니까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없애기 좋은 시스템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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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Kim
제가 읽어본 여러 글들 중에 선생님 글이 가장 와닿네요. 대부분은 그저 홍콩인들이 민주화를 갈망한다고만 하는데 제가 느끼기엔 민주화파(?) 못지 않게 친중인 홍콩인들도 많고, 또 홍콩의 미래는 중국인들 끼리 알아서 할 문제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이들 이민을 가버린 이유도 있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아랍의 봄 이후 민주화된 국가가 하나도 없는데 (튀니지도 최근 결국..) 오히려 지역에 혼란만 가중된 걸 보면 한국 일부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감나라배나라 하는 게 무책임해 보이고 또 많이 우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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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Han Kim 고맙습니다. 사실 제가 언급한 내용 일부는 홍콩출신 인류학자 헬렌 시우의 10-20년전 에세이에 근거한 것입니다. ㅎ 제 공상의 세계를 펼친 것만은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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