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8

박찬승 - "해방은 하늘이 준 떡" vs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의 조직과 활동

박찬승 -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행한 독립기념관 관장의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비판을 하고... | Facebook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행한 독립기념관 관장의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비판을 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맞는 말"이라는 반응도 있다. 논란의 초점이 된 것은 "세계사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광복'은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 한 대목이다. 

자신의 이야기인지, 다른 이의 이야기인지 조금 애매하게 썼는데, 이어서 함석헌 선생도 이런 입장에서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 했다고 하여, 이런 견해를 가진 이들이 꽤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은 직접적으로는 연합국의 승전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간접적으로는 1905년 이후 수십년 간 제국주의 일본과 싸워온 한국인들의 투쟁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중일전쟁 이후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의 조직과 활동은 연합국측의 대일전쟁의 일부로 반드시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 [?]

좀더 들어가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민족들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으로부터 '선물'로서 독립을 얻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검토가 필요하다.
 
영국은 인도에 대해 종전 후에도 독립은 시켜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인도인들의 강력한 독립운동에 부딪혀 결국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을 인정하였다. 프랑스는 1945년 9월 2일 독립을 선포한 베트남 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결국 프랑스와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들어갔고,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남북 베트남의 분단 독립을 인정하고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물러났다.
필리핀은 1898년 스페인 대신 들어온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필리핀인들은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미국은 1934년에 10년 뒤 필리핀을 독립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하여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결국 종전 후 미-필 협상과정을 거쳐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독립하였다. 네덜란드는 종전 후 인도네시아를 다시 네덜란드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고, 여기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발발했다. 1949년까지 4년의 전쟁을 거친 뒤 유엔이 중재에 나서 결국 인도네시아는 1949년 12월 독립하게 된다.
 
반면 일본에 1879년 병합된 류큐는 오키나와현이 되었는데, 병합 직후 외에는 이렇다 할 독립운동이 별로 없었다. 2차대전 후에는 미국이 군사기지로 사용하다가 1972년 일본에 돌려주었다. 독립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류큐는 독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적절한 과정을 거친 뒤'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 '적절한 과정'이란 바로 신탁통치였다. 미국은 30-40년 정도의 신탁통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에는 영국과 소련도 별 이의가 없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군대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이후 신탁통치와 관련한 수많은 논란, 미소공위 실패 등 우여곡절을 거쳐 3년 뒤 남북에 분단정부가 들어선다. 연합국은 한국에 온전한 형태의 독립을 선물로 가져다 준 적이 없다. 그나마 분단정부라도 건진 것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서 전개된 광복운동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2차대전 종전을 전후하여 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그들의 식민지지배 시대는 사실상 끝이 났다. 그러한 시대를 이끈 것은 식민지 민족의 끈질긴 독립투쟁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구 식민지의 독립 혹은 광복은 오랜 세월에 걸친 피압박 민족의 독립투쟁, 광복운동이 그 결정적인 원동력이요, 계기였다는 것이 역사적 팩트다. [?] 연합국의 선물론 내지 시혜론은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이며, 자기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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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류큐는 독립운동이 활발하지 않았군요...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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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준 문경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란 표현은 '연합국의 승리 = 일본의 패배'로 얻은 선물이라는 뜻이지, '승리한 연합국이 (패배한 일본에게서 빼앗아)준 선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반례로 드신 인도나 베트남, 필리핀 등은 '승리한 연합국들'이 원래 소유해왔던 식민지로서 그들은 자기네 식민지에 해방이라는 선물을 '당연히' 주지 않았지요.
그러나 일본은 패망 - 즉 연합국이 승리 - 함으로써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였던)조선에 해방이라는 선물이 내려진 것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그에 대한 응원군으로 김형석은 함석헌을 소환한 것이고요).
잘 아시다시피,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까지도 독립군뿐 아니라 조선 민중 대다수는 '전황상 일본이 패할 것'이라는 건 느끼거나 예견할 수 있었지만, 그게 '독립운동 덕분'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3.1운동 이후 해외에서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독립운동이 무려 30년이 넘도록 조선을 지배하던 막강한 일제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할 거라고, 또 그 덕분에 해방을 맞은 거라고 믿은 조선인이 얼마나 됐겠습니까.
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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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문경준 말씀하신대로 1945년 8월 15일의 '해방' 부분은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합국의 대일승전의 배후에는 수십년간 싸워온 한국인들의 공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복'이란 단어는 해방과 독립(정부 수립)까지 포괄하는 단어라 그 문장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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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박찬승
문경준 잘 읽었습니다. 위의 답글에서 광복이란 해방과 독립(정부수립)을 포괄한다 한 것은 광복절을 정할 때 45년의 해방과 48년의 정부 수립을 모두 포괄해서 정한 것을 감안하여 그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관장의 기념사는 서로 대립되는 견해들을 모두 인정하여 역사전쟁은 하지 말고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취지인 것 같긴 한데 서로 대립되는 견해를 서로가 인정한다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위에 쓴 글은 '해방, 독립=연합국선물론'과 관련하여, 세계사적으로 한국 등의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더 나아가 정부수립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 쓴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다소 추가했는데, 해방=연합국 승리의 선물이라는 견해에 대해, 한국인들의 광복운동도 승전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 생각을 써본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질문주신 내용도 그 글의 질문 뒤에 답변을 달아두었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좋은 질문과 코멘트에 감사드립니다.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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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준
아래는 김형석 관장의 기념사 전문입니다. 김형석은 독립투사들의 독립운동을 절대 간과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며 단지 '세계사적 관점'을 추가한 것인데 언론에서 뒷부분만 꺼내 시비를 걸고, 그 왜곡적 기사에 많은 우국지사들(?)이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ㅠ https://i815.or.kr/2018/news/news.do?mode=V&no=996521
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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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Chan Lee
"위와 같은 사실들을 안다면, 한국을 비롯한 구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이 연합국 승리의 선물로 주어졌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무지가 죄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또하나의 사례입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인터넷 커뮤 등에서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입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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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heery Khan
  · 
그건 아니고 카이로 선언
조선민족의 노예상태에서 해방ㆍ 이 구절은 장개석 그 뒤 김구의 윤봉길 한방의 결과
ㅡㅡ
英입장에서는
ㅡ아니 지금 이순간 노예상태가 한두 나라냐?
프랑스는 계속 식민지 유지 욕심 ㅡ
물론 美가 패권을 주장.일단 英의 맹주 자걱 박탈
그리고 간접통치로 ㅡ
패권국이 평화적으로 넘긴 첫사례
그리이스가 400년 터키 통치를 벗어난것도
민족 정신을 지켜온 문화의 힘
ㅡㅡ코리아는 안 먹는게 효과적이라는 인식
ㅡ 일단 그 독립관장놈은 土倭의 일부ㅡ
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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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류구왕국을 기억하는 토착민들은 어쩌면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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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 Eun
스스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투쟁과 희생으로 쟁취한 경험이 없고, 무임승차한 자들이 이런 식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 6.29선언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미국이 더 이상 독재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거든 "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죠.
민주 공화국의 탄생,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떡이 될 수 있겠어요?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희생과 투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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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훈
현장의 교원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광복절 기념사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 놓고 근거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변벙을 늘어놓는 것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세계사적 시각에서도 역사적 사료에 기반한 진실된 역사교육 더 고민하겠습니다.
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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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교수님 👍
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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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훈
우리가 독립의 의지를 스스로 외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전범으로 몰렸을겁니다. 홍사익 중장까지 갈 것도 없이 일본에게 몰려 징용으로 끌려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본은 조선 징용 노무자들에게 전범에 관련된 전반적인 죄를 뒤집어 씌우려 획책했고 그로 인해 억울하게 수많은 이들이 일본의 전범 대신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독립을 외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억울하게 감당해야 했을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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