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0

Yoshiko Hatano - 戦中派の話  第二話...

Yoshiko Hatano - 戦中派の話  第二話... | Facebook

戦中派の話 
第二話

1945年、一年生の3学期と二年生の一学期の6月まで、三重県師範の附属国民学校で過ごした。学校はまるで軍隊みたいだつた。5、6年生は剣道や薙刀(女子)をしていて、四年生の兄はモールス信号や手旗信号を習っていた。級長は小隊長、隣の席の子は戦友と呼ばれる。先生に何かを命じられたら、必ず復唱(確認のため、命令を繰り返す)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すべて兵隊になるための訓練だ。
そして当時の私の愛唱歌がすさまじ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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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ち抜く僕ら少国民 天皇陛下のおん為に  
死ねと教えた父母の赤い誠を受け継いで 
心に決死の白襷 掛けて勇んで突撃だ
必勝祈願の朝詣り 木刀振って真剣に 
敵を百千切り倒す 力を付けてみせますと 
今日も祈りを込めて来た
僕らの体に込めてある 
弾は肉弾大和魂 不沈を誇る敵艦も 
一発必中撃沈だ 飛行機ぐらいは何のその
今日增産の帰り道 みんなで摘んだ花束を 
英霊室に 供えたら 次は君らだわかったか 
しっかりやれよ頼んだと 胸に響いた神の声
後に続くよ僕たちが きみは海軍予科練に 
僕は陸軍若鷲に やがて大空飛び越えて
 敵の本土の空高く 日の丸の旗たてるのだ

6月と言えば既に沖縄では兵士も住民も追いまくられて死につつあった。そんな時にこんなノウテンキ!な歌を作って子どもたちに歌わせた大人はだれか?!
この歌の悲壮感?が好きで愛唱していた二年生の私。
敗戦後の田舎の教室で子どもたちがそれぞれ好きな歌を歌った時、ある男の子がうたつた ドングリコロコロ がとても新鮮だった。

続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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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학년 3학기와 2학년 1학기 6월까지 미에현 사범의 부속 국민학교에서 보냈다. 학교는 마치 군대 같다. 5, 6 학년은 검도와 薙刀(여자)를 하고 있었고, 4학년 형은 모르스 신호나 수기 신호를 배웠다. 급장은 소대장, 옆자리의 아이는 전우라고 불린다.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명령받으면 반드시 복창(확인을 위해 명령을 반복한다)을 해야 한다. 모두 병대가 되기 위한 훈련이다. 그리고 당시의 나의 애창가가 대단하다.
--- 승리하는 우리들 소국민 천황 폐하의 녀석에게 죽음을 가르친 부모의 붉은 마코토를 이어받고 마음에 결사의 백도 걸어 용감하게 돌격이다 필승 기원의 아침 참배 목도 흔들어 진지하게 적을 백천 넘어뜨리기 힘을 붙여 보이자 오늘도 기도를 담아 왔다 우리 몸에 담겨있는 탄은 육탄 야마토 혼 불침을 자랑하는 적함도 한발 필중 격침이다 비행기 정도는 무슨 오늘 가산의 돌아가는 길 모두 따른 꽃다발을 영령실에 제공하면 다음은 너들 알았는지 확실히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가슴에 울린 신의 목소리 뒤에 갈거야 우린 너는 해군 예과련에 적의 본토의 하늘 높이 히노마루의 깃발을 세운다. 6월이라고 하면 이미 오키나와에서는 병사도 주민도 쫓겨 죽어가고 있었다. 그럴 때 이런 노트 키!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노래하게 한 어른은 누구인가? ! 이 노래의 비장감? 좋아하고 애창했던 2 학년의 나. 패전 후의 시골의 교실에서 아이들이 각각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때, 한 소년이 우타츠타 도토리 코로코로가 매우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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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세대의 이야기

제2화

1945년, 1학년 3학기와 2학년 1학기인 6월까지 저는 미에현 사범부속국민학교에서 다녔습니다. 학교는 마치 군대 같았죠. 5, 6학년은 검도와 나기나타(여자)를 했고, 4학년이었던 오빠은 모스 부호와 수기 신호를 배웠습니다. 반장은 소대장, 옆자리 아이는 전우라고 불렸죠. 선생님의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복창(확인을 위해 명령을 되풀이함)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군인이 되기 위한 훈련이었죠.

그리고 당시 제가 즐겨 불렀던 노래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승리하여 이겨낼 우리 소국민, 천황 폐하를 위하여
죽으라고 가르쳐준 부모님의 붉은 진심을 이어받아
마음속에 결사의 하얀 띠를 두르고 용감하게 돌격한다

필승을 기원하는 아침 참배길, 나무 칼을 진지하게 휘두르며
적을 백 명이고 천 명이고 베어 넘길
힘을 기르겠다고
오늘도 기도를 올리고 왔다

우리 몸에 담겨 있는
총알은 육탄 야마토 정신, 가라앉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적함도
한 발로 명중시켜 격침시킨다, 비행기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증산(생산량 증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 함께 꺾은 꽃다발을
영령실에 바치니 '다음은 너희 차례다, 알겠나?
열심히 하거라, 잘 부탁한다'는
하늘의 목소리가 가슴에 울렸다

우리가 뒤를 잇겠다, 너는 해군 예과 연습생으로
나는 육군 젊은 독수리로, 이윽고 넓은 하늘을 넘어
적의 본토 높은 하늘에 일장기를 세울 것이다

6월이라 하면 이미 오키나와에서는 병사와 주민들이 쫓기며 죽어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 시기에 이런 낙천적인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어른은 대체 누구일까요?

저는 이 노래의 비장미를 좋아해서 즐겨 불렀던 2학년이었습니다.

패전 후 시골 교실에서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을 때, 어떤 남자아이가 불렀던 '도토리 굴러가네'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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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中派の話  第3話 学校に入学するまでは 「青い目をした お人形は、、」とか「赤い靴履いてた 女の子」とか歌っていたのに、学校に入ると「ニッポン ヨイ国 キヨイ國 世界ニ ヒトツノ神ノ国」などと歌うようになり、国とか神とか日の丸などが幼い心に入って来た。 学校では「式」というものが度々あった。「君が代」を歌って「宮城遥拝」をすると、壇上の高い所に「ご真影」が現れる。それは見てはいけない尊い天皇陛下のお写真。頭を下げていると、「教育勅語」の奉読がある。難しい言葉で何もわからない。その間は頭を下げてじっとしていなくてはならない。暖房の無い寒い講堂、足元からも冷えて来る。その時間がとても辛かった。「御名御璽」で終わるのをひたすら待った。 ところがそれを繰り返すうちに、「尊い権威と一体化するような恍惚感」が感じられるようになる。最後に「海行かば」などを歌うと気持ちよくなる。 そのようにわたしは洗脳された。幼いなりに、わたしはクソマジメで先生の話をしっかり聞いて、それを信じた。そして神、国、天皇、、というものの実態は何もわからないまま、それに身をゆだねる心地よさまで感じていた。バカなわたし。 「権威」にひれ伏し、それと一体化する恍惚感は、わたしの心に染み付いて、戦後日本国憲法が公布されてからも、その権威の対象は変わっても長く続いた。 高三の日本史の授業で、天皇の祖先は大和地方を支配していた豪族だと知って、なあんだ、米と鉄器をたくさん持っていただけか!と知って、ようやく権威から解放された。 だからわたしは、生徒たちに伝えて来た。教師の言葉を信じるな!綺麗な言葉を 疑え!と。 恥ずかしい話し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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