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개정 교육과정/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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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국정과 검정의 차이4. 시대적 맥락5. 국정화 추진 주도자6. 집필진 구성 사태7. 현장검토본 온라인 공개 및 집필진 발표8. 1년 유예 뒤 국검정 혼용으로 결정9. 문재인 정부, 국정 교과서 폐기 결정
9.1. 수능 관련
10. 기타10.1.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10.2. 실험용 국정교과서 현황10.3. 2017 EBS 한국사 교재 수정 사건10.4. 국정교과서 집필진 관련 논란10.5. 국정교과서 예비비 편성 논란10.6. 교육부의 홍보자료 논란10.7. 국정화 태스크 포스 운영 사태10.8. 타 과목 국정화 시도10.9. 국정화 찬성 의견 조작 의혹10.10. 20대 총선 후 야당의 역사 국정교과서 폐지 촉구 결의안 추진10.11. 차떼기 찬성 의견서 논란
11. 여담12. 관련 문서박근혜 정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 ①>, <역사 ②>,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용도서를 국정도서로 추진하려던 것[1]과 관련한 논란을 다루는 문서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함께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한국사 과목 교과서의 국정화 관련 논란은 2002년 일본 극우에 의한 교과서 파동, 2003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발행 검정화와 정치계의 교과서 논쟁, 2005년 한국 교과서 포럼 출범, 2008년 금성 교과서 좌편향 논란 2010년 중등 교육 역사 및 한국사 교과의 검인정 교과서 체제 개편을 거치며 대두되었다.
2008년 9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금성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시각과 역사관을 담은 '대안교과서'를 출판했다. 당시 집권 여당 한나라당을 위시한 우익 정치가들 사이에서 이를 적극 환영했지만, 좌우를 떠나서 많은 역사학자들로부터 완전히 유사역사학이라는 맹렬한 비판을 받고 교육 현장에서도 대체역사물로 취급되어 곧 사장되었다. 대안교과서는 그 이름과 달리 실제 교과서가 아니라 보조 교재 혹은 참고 도서에 불과하므로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 질적 수준을 의심 받는 대안교과서를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보수 정치권은 역사학계와 교육계 대부분이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대안교과서를 부당하게 폄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
이 문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용도서 뉴라이트 논란이 벌어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당시 교학사에서 내놓은 역사 교과서의 내용 부실과 정치적 편향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대체로 교학사 교과서에 비판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일부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자 몇몇 동문과 시민 단체들이 채택 철회 운동을 벌였다. 일부 학교들은 '좌파의 공세에 맞서 보수 교과서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념 논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한편 교학사 교과서가 수험생들의 시험 준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결국 대부분의 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했다. 새누리당은 '교학사 교과서 살리기 운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교학사 교과서를 적극 지지했지만 학계의 비판과 교육 현장의 외면으로 교학사 교과서 살리기가 사실상 좌절되자 교과서 국정화로 방향을 틀었다. 2014년 1월 8일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 과정에서 '외압'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며, 같은 날 여당에서는 역사 과목을 종전의 단일 국정 교과서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201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지금 대통령이 교육부에 내린 큰 지침으로는 '균형 잡힌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라'는 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대통령 지시임을 인정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다만 20대 국회는 야당 및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수가 171명으로 과반이었으며 캐스팅 보트를 쥔 제3당 국민의당이 이를 막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추진이 사실상 힘들었다.#
2008년 9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금성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시각과 역사관을 담은 '대안교과서'를 출판했다. 당시 집권 여당 한나라당을 위시한 우익 정치가들 사이에서 이를 적극 환영했지만, 좌우를 떠나서 많은 역사학자들로부터 완전히 유사역사학이라는 맹렬한 비판을 받고 교육 현장에서도 대체역사물로 취급되어 곧 사장되었다. 대안교과서는 그 이름과 달리 실제 교과서가 아니라 보조 교재 혹은 참고 도서에 불과하므로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 질적 수준을 의심 받는 대안교과서를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보수 정치권은 역사학계와 교육계 대부분이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대안교과서를 부당하게 폄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
이 문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용도서 뉴라이트 논란이 벌어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당시 교학사에서 내놓은 역사 교과서의 내용 부실과 정치적 편향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대체로 교학사 교과서에 비판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일부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자 몇몇 동문과 시민 단체들이 채택 철회 운동을 벌였다. 일부 학교들은 '좌파의 공세에 맞서 보수 교과서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념 논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한편 교학사 교과서가 수험생들의 시험 준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결국 대부분의 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했다. 새누리당은 '교학사 교과서 살리기 운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교학사 교과서를 적극 지지했지만 학계의 비판과 교육 현장의 외면으로 교학사 교과서 살리기가 사실상 좌절되자 교과서 국정화로 방향을 틀었다. 2014년 1월 8일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 과정에서 '외압'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며, 같은 날 여당에서는 역사 과목을 종전의 단일 국정 교과서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201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지금 대통령이 교육부에 내린 큰 지침으로는 '균형 잡힌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라'는 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대통령 지시임을 인정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다만 20대 국회는 야당 및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수가 171명으로 과반이었으며 캐스팅 보트를 쥔 제3당 국민의당이 이를 막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추진이 사실상 힘들었다.#
국정교과서 | 검정교과서 | |
저작권 | 교육부, 교육부 장관 | 국가공인 민간 출판사들 |
저작 형태 | 국가 저작물 | 국가공인 저작물 |
대상 지역 | 국·공립 및 사립 초·중·고등학교 전체 | 국·공립 및 사립 초·중·고등학교 일부(학교장 승인 채택 가능) |
보급 및 교육 대상 | 대한민국 국적에 속하는 모든 남녀 초·중·고등학생 | 각 학교에 다니는 남녀 초·중·고등학생 |
권고 사항 | 모든 학교 및 학생이 의무적으로 교육 및 학습 목적에 사용 | 각 학교별로 출판사, 학교 성향 등에 따라 학교장의 승인하에 보급 결정 |
국정교과서는 국가 및 정부에서 직접 주관하에 나서서 저작 목적으로 교과서를 발간하는 것[3]을 뜻하며, 초중고 어느 곳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검정 교과서는 국가 및 정부에서 공인 채택된 민간 출판사들이 저작한 내용의 교과서를 말하는 것으로, 국정 체제와 달리 학교별로 원하는 출판사나 학생에게 교육할 만한 회사의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교육부의 검정으로 승인되어 나오는 교과서를 말한다. 자격증에 비유하면 국가기술자격증과 국가공인 민간자격증 격에 속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국정교과서의 경우 국공립 및 사립학교에 관계없이 모든 학교나 학생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되지만, 검정교과서는 국공립 및 사립학교별로 학교장의 승인 채택하에 그 학교 교육이나 학생들 적성에 맞아보이는 국가공인 민간 출판사에서 발간한 공인 교과서를 채택하여 학생들에게 교육 받는 방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검정교과서는 초중고 교장이 임의하에 학교의 교육 목적에 적합한 검정교과서를 채택 승인하는 권한이 있지만, 국정교과서는 국가적 의무훈령사항에 묶여있기 때문에 학교장 채택승인 권한이 없다. 따라서 국정교과서만 사용하여 가르쳐야 한다.
국정교과서에는 교육부 저작이라는 문구에 교육부 부서 칭호가 발행사 위치에 나오며[4] 검정교과서에는 교육부 검정이라는 문구에 국가공인을 받아 검정교과서를 발행했던 출판사 상호가 나온다.
2015년 기준, 중·고교에서 사용한 교과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의한 교과서인데[5] 모두 검정 또는 인정 교과서이며 국정은 없다.[6] 80년대 이후에 점차 국정교과서를 줄여왔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발행 변천사 정리 기사
교과서는 국정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역사 과목에 대한 전면적인 국정화가 진행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다. 해방 이후 제2차 교육과정(1963~1972)까지 국정과 검정 시스템이 병행되었고, 역사 교과서는 검정 체제에 속해 있었다. 제2차 교육과정 당시 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각각 11종으로, 오히려 지금보다도 그 종수가 많았다. 이것이 1973년 2월, 교육 과정 개정 전 평가교수단 건의사항으로 전면 국정화가 제기되면서 사안이 본격화되었다.[7] 이러한 국정 교과서 추진은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한 당시 유신 정부의 국사 교육 강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즉, 역사 과목의 본격적인 국정화는 박정희 정부, 그것도 10월 유신 이후의 유신 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국정화 과정은 단일본 발행으로 시작되었다. 1973년 2월 16일, 정부는 국사 교과서 11종에 대해 유신 정신의 반영, 새마을 운동 및 수출 증대 내용 보강, 교육 재료 보강, 급변하는 국제 사회 적응 문제 및 변동된 교재 및 통계 보완, 국사 교육 강화 내용을 반영하라는 개편 지시를 내렸다. 한 달 뒤인 3윌 16일, 한국 검인정 교과서 대표이사가 11종의 발행자와 저자 연서로 합의서를 첨부, 단일본 발행을 건의하였으며, 3월 29일, 교과서 발행자 전원은 11종 개별 발행을 중지하고 단일본 교과서 제작에 돌입하였다. 이렇게 해서 두 달 만에 만들어진 단일본 국사 교과서는 실질적으로 국정과 마찬가지였고, 교과서 내용 개편과 방향 및 체제 등을 문교부에서 모두 결정하였다. 그리고 1973년 6월 9일, 청와대 보고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따라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추진되었다. 이에 대하여 역사학자와 현장 교사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묵살되었다. 이에 따라 1974년 1학기부터 '국사'라는 이름으로 역사 교과서가 국정 체제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국정 교과서는 지배층 위주의 서술, 지나친 반공 이데올로기, 정권의 홍보 역할 등이 문제로 지적되며 비판 받았음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 국정 체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발행되며 검정 체제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이후 2010년 중학교 역사 검정 전환, 2011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전환으로, 37년간 지속되었던 국정 교과서 체제가 붕괴되었다.
검정 전환으로 반공과 관련된 서술이 지나치게 삭제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2007 개정 교육 과정 당시 교과서 상당수에서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을 다루었다. 그러던 것이 현재 없어진 이유는 교과서가 좌파로 치우쳐서가 아니라, 교육 과정 각론에서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즉, 해당 내용을 삭제한 것은 교과서 저자들이 아니라 정부였다. 이러한 현상은 내용 축약에 초점을 맞추며 나타나는 교과서 전반의 현상이다. 실제로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상대적으로 내용은 많이 들어갔지만 각종 탐구 활동이 대부분 생략되었고 사진도 극도로 적게 넣었으며, 본문만 써놓는 스타일로 구성하였다. 이렇게 하면 내용은 늘릴 수 있으나, 교육 과정상의 지침인 '탐구 활동 등을 통한 주도적 학습 능력의 향상' 등에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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