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2

알라딘:서울은 깊다 전우용

알라딘: [전자책] 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eBook] 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은이)돌베개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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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종이책 16,200원




책소개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서울학연구소에서 10년 이상 서울사史 관련 연구를 해온 전우용이 서울에 대한 종합적인 종합적인 해설과 비평을 시도한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탐색하며 다양한 의미와 사연들을 들춘다. 200여 컷의 사진자료를 함께 담았다.

‘똥개’, ‘땅그지’, ‘무뢰배’, ‘깍쟁이’ 등의 유래를 추적해 오래전 서울의 생태와 풍속을 되살리고, 청계천, 종로 거리, 덕수궁 분수대 같은 상징물들의 변화에 담긴 의미를 추리하고, 물장수, 복덕방 같은 사라져버린 문화를 회고담처럼 들려준다.


목차


- 책을 펴내며

1. 신시, 서울
2. 서울과 지방
3. 정도전의 서울, 이방원의 서울
4. 노는 놈과 미친년
5. 뒷골목
6. 똥물, 똥개
7. 등 따습고 배부른 삶
8. 땅그지
9. 무뢰배
10. 촌뜨기
11. 압구정과 석파정
12. 남주북병南酒北餠
13. 탕평, 땅평
14. 어섭쇼
15. 복수의 하나님
16. 종로, 전차
17. 덕수궁 돌담길
18. 팔각정
19. 시계탑
20. 제중원
21. 촬영국
22. 파리국
23. 도깨비시장, 돗떼기시장
24. 물장수
25. 복덕방
26. 협률사
27. 와룡묘
28. 덕수궁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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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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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도전은 새 도시에서 ‘괴력난신’怪力亂神이 거처할 곳을 아예 없애버리려 했다. 정도전은 종묘와 사직, 궁궐과 관아, 저자와 민가, 학교와 사당만으로도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세부 위치를 선정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새 도시를 공적 건물과 공적 기관만으로 채우고자 했고, 왕에게조차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
1398년,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였다. 정도전이 새 도시 공간 위에 구현하고자 했던 꿈도 아울러 사라졌다. 새 임금 정종은 다시 개경으로 거처를 옮겼다. 종묘와 사직은 한양에, 왕궁은 개경에 있는 어정쩡한 양경兩京 시절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1400년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1405년 거처를 다시 한양으로 옮겼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한양 공간 도처에 새겨 놓은 꿈을 다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모욕할 수는 있어도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장소 위에 새겨진 역사는 누적될 뿐 대체되지는 않는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집을 사복시司僕寺 마굿간으로 바꿔버렸고, 신덕왕후 묘의 신장석을 광교 교각의 초석으로 삼아버렸지만, 장소가 남긴 흔적은 어쨌든 이방원보다 훨씬 오래 살아 지금껏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든 동이든 골목 안의 택지 구성은 기본적으로 같았다. 고관대작이 사는 큰 집이 막다른 집이 되고 그 앞으로 난 골목길 좌우에 작은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꼴을 하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는 결코 가로지를 수 없는 신분과 경제력의 차이가 있었을 터이지만 그래도 이웃이었다. 불이 나도, 염병이 돌아도, 도둑이 들어도 같이 대처해야 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고, 그 안에서 일상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골목끝 고루거각에 사는 부자 나리가 같은 골목 안에서 굶주리는 이웃에 자선을 베풀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일상적 관계가 만들어내는 연대의식이었다.” (본문 중에서) 접기
도시는 생산 기능을 갖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갖춘 곳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생산물들은 대부분 도시 안에서 소비되어버렸다. 도시는 농촌으로부터 생산물과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25쪽 - 라주미힌
삼성종로타워. 도시 공간에서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는 대형 건물들은 모두 자신을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장식을 사용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대표주자 삼성을 상징하는 이 건물은 공간을 '낭비'함으로써 역석적인 장식성을 표현하고있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 '낭비'와 귀족적 소비가 동일시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물이다. -96쪽 - 라주미힌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서울 선비들은 사륙문을 새로 익혔으나 시골 선비는 그를 제대로 배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경화거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 그럼으로써 자기들만의 서울,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어갔다. 정교하게 고안된 과거와 전고의 여과장치를 거치면서 '명가의 자제는 날 때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퍼져나갈 공간도 넓어졌다. -101쪽 접기 - 라주미힌
신분제를 사회 운영의 핵심 원리로 간직하고 있던 중세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신분을 가리키는 표지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 중세성이 해체디어가면서 도시는 이제 '익명성의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중략 .....
시전 상인들 역시 중촌에 살아 스스로를중인으로 치고 있었는데, 정체불명의 사람을 대하면서 호칭에서 먼저 손해볼 수는 없었다. 어정쩡하게 얼버무리는 존대가 만들어진 것은 그런 심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144쪽 접기 - 라주미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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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전우용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대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가치관 형성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한국 회사의 탄생』,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이 있다.

최근작 : <잡동산이 현대사 3 : 정치·경제>,<잡동산이 현대사 2 : 사회·문화>,<잡동산이 현대사 1 : 일상ㆍ생활> … 총 37종 (모두보기)
SNS : //twitter.com/histopian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역사와 인류학, 공간 비평과 문화 비평을 가로지르는,
도시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서울학연구소에서 10년 이상 서울사史 관련 연구를 해온 전우용의 본격적인 저작이다. 서울에 관한 책들은 많지만, 건축가나 저널리스트, 혹은 근대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서울사와 도시이론을 공부한 연구자가 ‘서울’에 대한 종합적인 단행본을 출간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건축이나 근대사 등 지엽적 시각에 한정되지 않은 채 서울에 관한 깊이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그 표피에 가려진 다양하고 심오한 의미와 사연들을 들추어낸다. 먼저 ‘서울’이라는 말의 본 의미를 살피는 데서 시작해, 서울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과 비평을 시도한다. ‘똥개’, ‘땅그지’, ‘무뢰배’, ‘깍쟁이’ 등의 유래를 추적해 오래전 서울의 생태와 풍속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가 하면, 청계천, 종로 거리, 덕수궁 분수대 같은 상징물들의 변화에 담긴 의미를 과감하게 추리해내기도 하고, 또 물장수, 복덕방 같은 사라져버린 문화를 회고담처럼 들려주기도 한다. 이 풍성한 이야기들의 바탕에는 소비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현대 도시, 현실과 멀어져 장식품으로 전락한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깔려 있다.
역사적 사실과 고전 자료에 대한 적절한 참조, 탄탄한 역사적 지식에 기반한 과감한 추리,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에세이적 구성, 시의성 있는 비판적 성찰 등을 고루 담은 이 책은 200여 컷의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학생들부터 연구자들까지 다양한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서울의 유래부터 생태.주거환경, 계층적 분포와 습속의 변화까지
― 정도 600년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먼저 도시의 의미, ‘서울’의 본뜻을 묻는 데서 출발한다. 서울은 ‘높이 솟은 울’, 즉 신과 가장 가까운 도시, 가장 신성한 공간이고 정치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한편 그러기에 서울은 ‘생산’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변 시골의 생산물을 빨아들이는 ‘소비’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이 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은 바로 조선 초 서울의 틀을 구상한 정도전과 이방원의 경복궁 계획에서부터 드러난다. 여타의 오래된 중심도시들과 달리 서울에는 거대한 경기장이나 극장 등 스펙터클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간에 잘 알려진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갈등에서 저자는 도시 서울에서 종교성을 탈색시키고자 했던 정도전의 뜻을 읽어낸다. 또 경복궁을 『주례』에 따른 철저한 공적 공간으로 계획한 정도전과 그 ‘공’을 왕의 사적 권위와 등치시키고자 했던 이방원의 갈등 역시 경복궁과 서울이라는 장소에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런 공간에 아로새겨진 역사의 흔적, 무늬를 섬세히 짚어가며 그 구체적인 서사徐事를 되살려내는 것이 곧 도시연구의 본무本務라고 강조한다.
또 다산이 “이里가 귀한 이름이고 동洞은 천한 이름인데 지금은 풍속이 어그러져 사람들이 서울 지명을 모두 동으로 쓴다”고 했던 것에서 출발해 조선 초기 잘 다듬어져 있던 곧은길이 왜 구불구불한 작은 길, 막다른 뒷골목들로 바뀌었는지 생각해보며 서울의 생태적·사회적 변화를 추적한다. 또 오래전 대감집과 여염집이 공존하던 골목 공동체를 기억하며 ‘끼리끼리 모여살기’가 일반화되어가는 현대 서울의 주거환경을 성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당시의 역사와 생태·환경적 변화, 또 그로 인한 풍속과 습속의 변화를 연결짓는 서술은 「똥물, 똥개」, 「등 따습고 배부른 삶」, 「땅거지」 등의 장에서도 이어진다.
「무뢰배」, 「촌뜨기」, 「어섭쇼」, 「압구정과 석파정」, 「남주북병」, 「탕평, 땅평」 등의 장에서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계층적 분포와 각 계층별 생활방식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조선 후기 도시 상업발전 과정과 관직과 부의 양극화 현상은 서울 주민의 계층 분화를 더욱 재촉했다. 양반 사대부들이 자기들만의 성을 공고히 하자, 더 이상 건강한 방식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없게 된 서자·기술직 관리·무반의 무리가 사적인 인맥을 통해 세력 있는 자의 겸인 노릇을 하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일이 흔해졌고, 이들을 일컫는 말인 ‘무뢰배’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촌뜨기’ 역시 계층적 변화와 맞물려 생겨난 말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자’들이 특권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말이다. ‘어섭쇼’는 서울의 계층구조가 변화를 겪으면서 도시의 익명성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중촌 상인들이 그러한 변화에 적응해 만들어낸 새로운 어법이었다.

가려진 역사에서 근대화의 풍경까지
―과거를 되돌아보는 따뜻한 감성,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추리

「종로, 전차」에서는 종로의 역사를 서울의 통신교통 수단의 변화(전차의 부설과 철거, 지하철의 부설 등)와 함께 살펴본다. 조선시대와 구한말을 거쳐 1960년대까지도 서울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종로의 화려한 시절이 ‘전차 철거’와 함께 막을 내리는 쓸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덕수궁 돌담길」에서는 고종의 도로 정비, 경운궁 정비와 관련된 일화가, 「팔각정」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성한 형상으로 여겨지던 ‘팔각’이 이승만 시대를 거치며 세속화된 사연 등이 펼쳐진다.
특히 ‘서울’을 다룰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근대적 공간으로서의 서울, 경성이다. 서울 사람들은 근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끌어갔으며 그것이 서울 공간에는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저자는 「시계탑」을 통해 서울 사람들이 서력과 요일제, 24시제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제중원」을 통해서는 근대적 위생관을 심어주고 근대적 삶을 훈육하는 장치로서 병원의 기능을 살펴본다. 「파리국」, 「협률사」등의 장에서도 서울에 근대적 의미의 ‘공중’이 탄생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서울 시장의 역사를 압축한 「도깨비시장, 돗떼기시장」에서는 17세기 이후 서울의 독특한 삶을 구성했던 병상일치제兵商一致制의 상황을 조감해볼 수 있다.
숨 가쁘게 변해온 서울의 시공간을 탐사하는 만큼, 이 책에는 최근의 역사지만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는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물장수’, ‘복덕방’, ‘전차’, ‘덕수궁 돌담길’ 등 벌써 역사가 되어버린 이야기들을 단순한 복고적 감수성을 넘어 기억해내는 작업은 우리의 가까운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또 「덕수궁 분수대」에서는 침강원·분수대라는 파격적 양식이 경운궁(덕수궁)에 들어선 연유가 1904년의 경운궁 화재 사건을 배경으로 과감하게 추리되기도 하고, 다양한 자료와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똥개’, ‘땅거지’, ‘도깨비시장’ 등의 유래가 추론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흥미진진한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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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의 요모조모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책!
kronovaserk 2010-02-11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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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깊다. 깊이는 얕다.
rosaleon 2009-06-1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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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서울을 깊게 읽는 최고의 책. 이 책을 통해 서울은 낯선 타인의 도시가 아닌 내가 부대끼고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된다.
소요 2015-05-2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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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살아서 하여튼 궁금한 옛서울과 지금의 서울
블루데이지 2010-08-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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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맞다. 서울을 놓고 이렇게 재미와 상식을 버무려, 읽는 내내 즐거웠다. 철학책에 지친 내게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 같은 책이다.
군자란 2012-07-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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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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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얽힌 우리 역사 이야기



몇 안 되는 책을 읽었지만, 전우용이란 학자의 책에는 믿음이 간다. 그냥 "우리 역사는 깊다"를 재미있게 잘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글에서 얻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특정한 장소에 얽힌 역사적인 깊이를 느낄 수가 있다. 그냥 우리가 덕수궁 돌담길 하면 현재의 공간을 떠올리고, 그 공간에서 생각을 진척시키려 하는데, 그의 책은 덕수궁 돌담길이라고 해도 덕수궁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 공간을 다루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몽골이나 알래스카 같은 초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눈'이 좋다.' (187쪽)



뜬금없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읽어가다 보면 왜 이렇게 시작했는지 알게 된다. 이것은 결국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으로 나아가고, 이 공간을 개조하는 힘들이 어떻게 근대화가 되던 대학제국 시절에 덕수궁을 개조해 갔는지 설명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결국 덕수궁, 이것은 궁궐 이름이라고 하기 힘들다. 지금은 우리가 그냥 덕수궁이라고 하지만 궁궐로서의 정식 명칭은 경운궁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렇게 그는 하나의 장소에 얽혀 있는, 또는 녹아 들어가 있는 역사를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알려주고있다. 따라서 지금 존재하는 하나의 공간은 그냥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축적된 우리 기억의 총체로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서울에 있는 많은 장소들을 이런 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처음은 '서울'에서부터 시작한다. 제목이 '신시, 서울'이다. 서울이 곧 신시라는 것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계에 건설한 첫도시를 신시하고 했다. 신이 세운 도시... 아니, 신이 세운 도시라기보다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으로 신시라고 한단다.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 솟대라든지, 국사 시간에 배운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소도라든지 하는 말에서 '새, 소, 쇠'라는 말은 모두 신성하다는 뜻을 지닌다고 하고, 그래서 신성한 울타리, 이것이 곧 '서울'이라고 한다.



서울이 한자어가 아니라서 참 생경했는데, 조선을 건국하고 그 도시를 신성한 도시로 통칭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서울의 모든 것을 풀어가고 있으므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 동의하지 않으면 반대되는 사실을 찾으면 된다. 또는 반대되는 주장이나 다른 주장을 하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면 된다.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저자 역시 추론을 하고 있을 뿐이고, 사실은 더 많은 자료와 사실들에 의해 계속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읽어가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고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보다도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 참으로 깊고 깊은 도시가 바로 서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단지 서울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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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6-08-09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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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서울은 깊다

문득 헤아려 보니 내가 서울에서 산 지 벌써 27년이 넘었다. 27년 전 처음 서울에 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하면 서울의 지형이나 문화가 참 많이도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만 해도 서울 중심가의 한 축이었던 종로는 이제 노년이 지배하는 쇠락의 상징이 되었고, 인쇄공장이 잔뜩 들어서 있던 성수동은 유행을 선도하는 핫플레이스로 변모했다. 4호선 까지만 있었던 서울의 지하철도 이젠 9호선을 넘어 경전철이 개통되고 있으며, 촌놈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던 고가도로들도 속속 철거되고 있다. 고작 30년도 안 되는 시간으로도 이렇게 도시가 바뀌는데, 그보다 먼 과거의 서울은 어떠했을까?

<서울은 깊다>에서 전우용 교수는 거대 도시 서울의 역사를 구석구석 좇는다. 시간대로는 조선 건국부터 유신 정권까지가 되겠으나, 연재 컬럼을 엮은 책이라 매 장마다 다루는 주제는 각기 다르다. 저자는 권력에 의해 서울이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권력의 변동에 따라 생멸하는 문화의 변천사를 꽤 설득력 있게 - 인문학의 특성 상 가끔 지나친 상상력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 제시한다. 이를테면, 영조 대에 한양의 개천을 준설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17세기 말에 이르러 한양에는 물난리가 자주 났는데, 그 이유는 개천들의 하상(河床)이 높아져 배수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개천의 하상이 높아졌을까? 조선 시대, 도시의 분뇨를 해결하는 방법은 개천에 내다 버리거나 텃밭에 퇴비로 뿌리는 것이었다. 조선 전기만 해도 한양의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집마다 텃밭을 곁에 둘 수 있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상비군과 그 식솔들, 유랑민들, 벼슬길에 오른 양반들이 한양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텃밭은 몽땅 주택지로 전환되었다. 그러니 자연히 개천은 똥물이 될 수 밖에. 게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온돌이 보급되면서 땔감의 소비량이 급속히 늘었고, 온돌에서 타고 남은 재가 개천으로 쓸려 들어가면서 퇴적되어 하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수해가 빈발하게 된 것은 전란으로 인해 한양으로 부와 인구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언어의 유래도 말해준다. 아이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조선 시대 거지들이 다리 밑에서 생활하며 패거리를 짓게 된 데서 온 말로 ‘거지 아이를 데려왔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광장시장은 원래 일제 때 광교와 장교 사이의 구간을 판자로 덮어 시장을 만들려는 계획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돗떼기 시장‘은 돗자리째 물건을 떼어가는 도매 시장을 뜻하는 말로, 상품을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매매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북적이게 되어 ‘혼란하고 정신없음‘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는 곧 맥락이고, 맥락 속에는 그 흐름을 만드는 권력과 대중의 역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서울의 도시사를 읽는 것은 유의미하다 할 수 있겠다. 나와 내 아이들이 발디디고 사는 땅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니까. 게다가 이 책은 서울의 곳곳에 담긴 맥락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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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독서가 2022-06-08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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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숨어있는 볼거리를 만천하에 드러내다.

어느나라건 마찬가지다. 수도에 볼거리가 제일 많다. 그러나 대부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롭고 신기한 현대물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화려함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그런 숨어있는 서울의 볼거리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역사적인 장소와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통해서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해 준다. 너무도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2009년 4월 26일부터 동년 5월 5일까지 읽었다.
카이져쏘제 2010-10-2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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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를 읽고



1.




이 책의 저자는 전우용 씨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신,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저자는 이전부터 여러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역사학자답게 역사적 사실 속에서 반추하는 트윗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저자의 트윗을 다른 경로로 -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습니다 - 접할 기회를 가지면서, 저자의 탁월한 통찰에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담긴 책을 여러가지로 검색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저자가 누구인지 안 후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1'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서였습니다.




어릴적 부모님따라 다녀왔던 동해안 해수욕장이나, 교회 수련회 등의 특수 목적의 장소가 아닌,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해 봤던 것은, 결혼하기 전에는 2박 3일의 부산행이 유일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했던 고학생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스물 다섯 살의 초여름 어느날, 동기 녀석이 살고 있던 부산에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딱히 여행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면허가 없었고, 따라서 차도 없었습니다. 면허를 따고 나니, 학원 강사 신세라 어디로 갈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고, 둘째 낳고 세 번째 대학 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하다보니, 역시나 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불현듯 부산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의 석가탄신일 날, 당일치기로 부산행을 감행했었지요. 아침 여덟시에 출발해서, 첫 기착지인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이 오후 네 시. 자정 무렵까지 단지 여덟 시간 동안 부산 공기를 맡기 위해서 왕복 열 여섯 시간의 운전을 결행했던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쁜, 그런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은, 아마도 재작년 전주 행이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서는 서울의 인사동, 삼청동 등지에서 느꼈던 의아함이 그 단초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어번의 인사동 행은, 왜 여기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삼청동 행은, 이 곳이 왜 이런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당일로 다녀온 전주 행은, 그런 제 의문을 확실한 무언가로 만드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오리엔탈리즘 학습은 토속적인 역사, 죽은 역사는 즐거이 상품화하면서도 아직껏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는 아프고 창피하다는 이유로 감추고 숨기는 태도를 깊이 심어주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대장간은 후딱 복원하면서, 난지도 역사를 살아서 증언해온 구조물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허물어버리는 이율배반의 시대가 21세기형 '역사의 시대'요 '문화의 시대'였다. (중략)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10~11쪽)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한 여행일 뿐, 그 소비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는 그런 여행, 그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한동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작년 여름을 통째로 건너 뛰는 - 세째의 출산도 있었지만 - 까닭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은, 소비하는 여행 이상을 누릴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만 명소가 어디이고 맛집이 어디인지, 어떤 숙소에서 어떻게 소비하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지내온 삶을, 그 곳이 가지고 있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찾는 곳은 누군가 살던 곳이고, 무언가를 하던 곳이며, 그러면서 생각과 생각이 맞닥뜨리던 그런 곳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행이 주는 감동은 소비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여정을 보낼 수 있다면, 아마 다음에도 같은 장소를 한 번 더 찾을 수 있겠지요. 그 곳의 삶과 관계 속에, 그 곳을 지내온 나의 삶과 관계도 녹아들었기에, 조금 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그 곳은, 나를 한 번 더 당겨들게 되겠지요. 조금 벅차더라도, 이런 책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2.




이 책은, 도시로써의 서울, 농촌과 대비되는 장소의 의미를 가진 서울이 지내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가 '도시사'라는 학문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도시의 역사에 대한 책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마침 저자가 책 중간에 '도시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내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그런 서울의 역사 중에서도 특히, 이 책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 그러나 근대로의 이행이 일제에 의해 좌절되어가던 시기인 '대한제국'기와,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이행되지 못한 근대의 신기루를 뒤로 한 채, 탈근대 - 가져본 적 없는 시기라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 의 몸부림이 가시화되던 시기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는 서울은 '결핍의 공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시(또는 서울)는 없는 게 없이 풍족한 공간이고 농촌(또는 시골)은 여러 가지가 부족한 빈곤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물질의 총량에 대해서만 통용될 수 있을 뿐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질에 관한 한, 도시는 오히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결핍의 공간'이다. (중략) 앞에서 중세 도시의 크기를 규정한 여러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 경제적으로 가치 없는 요소들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력적, 기술적 토대를 만들지 못했던 것도 도시 확장을 제약한 중요 배경이었다. (272~273쪽)




도시는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소비 지향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견해입니다. 따라서 도시는 '생산 자체보다는 그 생산물을 분배하고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128쪽)' 인류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도시는 그러한 인류의 모습을 '지표 위에 도로와 필지, 그 위에 우뚝 솟은 건조물'이라는 '관계망이 그려낸 그림(128쪽)'입니다. 풍부하나 빈약한, 넘치는 듯 하나 메마른, 그런 공간 중에서도, 특히 서울이라는 곳은 극장 하나, 공연장 하나 없는, 유교적 사상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영된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도시 서울, '그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24쪽)'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는, 그러나 실은 '농촌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루이스 멈퍼드, 24~25쪽에서 재인용)'하는 외로운 공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57쪽)'을 살면서 '공간과 장소를 공유해 본 경험을 갖지 못한 채(56쪽)', 2~3m앞의 간판들에 시야를 뺏겨버려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그런 근시안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경박성(188~189쪽)'을 한껏 드러내며 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 채, 혹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면서 '서울과 시골 사이에 시간적 장벽을 쌓아가는(101쪽)' 그런 삶을 자랑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와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자리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서울 사람이 아주 낙향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중략) 이제 부의 원천은 더 이상 농토에 국한되지 않았다. (중략)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하여 학연으로 혼맥으로 끼리끼리 뭉친 서울의 대관 나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못 하는 일이 벗었고 안 하는 짓이 없었다. 특히 시골의 인재를 빨아올리는 빨판 구실을 해왔던 과거제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중략)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중략) 경화거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후략). (100~101쪽)




요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획일적인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된 서울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온 시골의 문화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도, 거기와 같은. 풍부한 듯 보이지만, 지나치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마도 서울의 특징이라기보다는, '21세기의 문화(7쪽)'가 서울을 외피로 하여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으니, 21세기의 문화가 분명할 것입니다.







3.




이 책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견해를 곁들여,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서울에 대해, 압구정과 석파정의 서울에 대해, 양란 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서울에 대해,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에 대해, 5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장소로써 주목하기보다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서울을 주목하여 보는 편입니다. 특히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고종 황제입니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인 견해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대원군의 것보다 더 많을 듯 싶습니다. 보통 고종이라면, 대원군 혹은 민비 - 명성황후라고도 하는 - 와의 연계 속에서 고찰하는 시선도 많지만, 몇 년 전에 읽었던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같은 책에서 드러나는 조금은 긍정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고종에 대해서, 나약하고 의존적인 군주였다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확고한 통치 철학을 가진 군주로써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181쪽)' 탓에 고종의 의도는 그 방향을 곧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긴 하지만 말이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마도 천지가 개벽하는 것같은 급변의 시대에, 고종이 군주로서 자신의 의지를 오롯이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도시'의 역사 속에서, 농촌 - 시골 - 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하고 있는 그런 책입니다. 장소적으로는, 경운궁(덕수궁), 종로, 청계천, 남대문시장 등을 언급하지만, 어디를 가기 위해서 읽어야하는 답사기 격의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을 사는 이로써, 서울에 대해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에 대해서, 거대한 위력을 휘두르는 메가시티로써의 서울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있게 바라보고 싶은 분들이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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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야헌처크 2015-01-1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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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문학



'부산은 넓다'를 아주 기분좋게 읽은 나는 '서울은 깊다'라는 제목에서 끌렸다. 비록 대한민국의 수도이기는 하지만 내가 거주한 것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보아도 된다. 즉 어떤 거리와 건물과 지리를 이야기하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적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역사 속의 어떤 이야기들이 내 눈을 통해 가슴을 자극시킬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서울은 그 피상적인 느낌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 이름으로도 너무나도 익숙했다. 바로 이렇게 익숙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섬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들게 만들었다.



조선의 역사와 더불어 서울은 우리나라의 500년 수도로서의 첫 출발을 하였다. 우선은 그 어원부터인데 '새벌'로 새로운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서울의 동서남북과 보신각이 유교의 인의예지신에서 왔고 그런 의미에서 유교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왕 중심의 사회를 바랬던 이방원이나 그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신권 중심의 정치를 바랬던 정도전이나 모두 유교중심의 질서를 세우려했다는 점에서는 함께 하였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수도였던 만큼 한국사를 관통해간 거대한 사건들은 서울을 비켜가지 않았다. 왕조의 흥함 속에서도 서울은 함께 했고 왕조의 쇠퇴와 몰락의 길에서도 서울은 함께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성의 모습으로 일제식 건물과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는가 하면 6.25 동란으로 인한 파괴와 피해를 고스란히 간직하여야 하였다. 1950년대부터 고달픈 경제개발이 시작되고 80년대 후반이 되어서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영양분을 흡혈귀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서울은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서울에도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민초들의 삶과 정과 애환이 깃들여 있었고 선비들의 정신도 있었고 정자문화의 풍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권력을 향한 의지와 피비린내도 진동했다. 시대에 따라 땔감을 해서 먹고사는 직업도 있었고 뱀을 잡아서 팔아 먹고사는 계층도 존재했으며 근대에 와서 물장수도 등장했다. 복덕방도 이 시기에 등장하며 새로운 직업으로 화려하게 무대 위로 올라왔다. 특히 이 책에 실린 서울의 근대 모습 사진은 내가 처음 접하는 아주 귀한 자료처럼 보인다. 서울이 복잡한 건물들로 가득 메운 곳이 아닌 한적하고도 여유로운 공간 속에 가로수길도 흙길도 그리고 청계천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들의 모습도 청계천에 몸을 담그며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도 모두 친근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서울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한 권의 책이 우리 나라의 수도 서울을 조금은 정이 붙게 만들어 준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의 블랙홀로 대한민국 사람으로 나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처럼 기회의 땅이기도 하고 착취의 공간이기도 하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빠른 시간의 블랙홀이기도 한 이 공간 서울, 이 곳을 시대의 창을 통해 바라보니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사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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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15-08-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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