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선영 ‘전두환 옹호’ 책 65권 반납한 진화위 직원들
페이스북 모음 글 직원들에게 나눠줘
이미 65권 수거…“임무 수행 저해”
버렸거나 기록용으로 보관한 직원도
고경태기자
수정 2025-02-10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진실화해위 책 반납함. 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진실화해위 직원 제공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직원들이 지난달 설 연휴 직전 박선영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책을 반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직원들이 지난달 설 연휴 직전 박선영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책을 반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책은 박 위원장의 에세이 모음집으로, 배포 직후부터 “권위주의 정권 시대 국가폭력을 다루는 진실화해위 수장의 저서로 믿기 어려운 부적절한 내용이 담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책은 이미 60권 넘게 수거된 상태다.
10일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지부(진실화해위지부)는 지난 5일 저녁부터 사무실 5층과 6층에 책 반납함을 설치하고 박 위원장에게 받은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2023, 기파랑)을 수거 중이다. 진실화해위지부 관계자는 “연휴 직후 지부 차원에서 책에 대한 공식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 반납운동을 시작했다”며 “9일 기준 총 65권이 수거됐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책을 이미 버린 사람들도 있고, 기록용으로 보관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은 오는 11일 이날까지 수거된 책을 모두 들고 박 위원장실에 찾아가 반납할 예정이다.
책 반납함에 쌓인 박선영 위원장의 책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 진실화해위 직원 제공
앞서 박선영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설 연휴 직전 진실화해위 전 직원들(1월17일 기준 220명)에게 본인의 페이스북 글 모음집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을 한 권씩 나눠줬다. 박선영 위원장은 책을 돌린 뒤 내부망에 글을 올려 “저의 잡글, 일상 신변과 관련된 글들이다. 그냥 편하게 읽으시라. 내 일터의 기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보내드렸다”고 밝혔다.
광고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결코 편하게 읽을 책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왔다.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을 펴낸 기파랑은 김광동 전 진실화해위원장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책을 주로 내온 출판사다.
진실화해위지부는 책 반납운동을 시작한 뒤 내부망에 그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올려 “우리는 위원장의 책을 반납하고자 한다. 이 책은 ‘과거사 진실규명과 국민통합에 기여’라는 위원회의 임무 수행에도 저해가 된다고 판단하였다”며 “앞으로도 위원회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관을 직원에게 강요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지부는 글에서 또 “책은 국가공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설립된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쓴 글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부적절하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곳곳에 보인다. 비록 위원장 임명 전 SNS상에 올렸던 글을 모은 책이라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온 나라가 어지러운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자신의 역사관을 담은 책을 선물처럼 배포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12·3 내란 직후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박선영 위원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번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힌 적 없다.
진실화해위 5층에 놓인 책 반납함에 박선영 위원장의 책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이 쌓여 있다. 진실화해위 직원 제공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의 본문을 보면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전두환씨 사망 직후 이순자씨를 만난 소회를 적으며 전두환씨 부부의 ‘순애보와 부부애’를 칭송하다
10일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지부(진실화해위지부)는 지난 5일 저녁부터 사무실 5층과 6층에 책 반납함을 설치하고 박 위원장에게 받은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2023, 기파랑)을 수거 중이다. 진실화해위지부 관계자는 “연휴 직후 지부 차원에서 책에 대한 공식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 반납운동을 시작했다”며 “9일 기준 총 65권이 수거됐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책을 이미 버린 사람들도 있고, 기록용으로 보관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은 오는 11일 이날까지 수거된 책을 모두 들고 박 위원장실에 찾아가 반납할 예정이다.
책 반납함에 쌓인 박선영 위원장의 책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 진실화해위 직원 제공앞서 박선영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설 연휴 직전 진실화해위 전 직원들(1월17일 기준 220명)에게 본인의 페이스북 글 모음집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을 한 권씩 나눠줬다. 박선영 위원장은 책을 돌린 뒤 내부망에 글을 올려 “저의 잡글, 일상 신변과 관련된 글들이다. 그냥 편하게 읽으시라. 내 일터의 기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보내드렸다”고 밝혔다.
광고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결코 편하게 읽을 책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왔다.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을 펴낸 기파랑은 김광동 전 진실화해위원장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책을 주로 내온 출판사다.
진실화해위지부는 책 반납운동을 시작한 뒤 내부망에 그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올려 “우리는 위원장의 책을 반납하고자 한다. 이 책은 ‘과거사 진실규명과 국민통합에 기여’라는 위원회의 임무 수행에도 저해가 된다고 판단하였다”며 “앞으로도 위원회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관을 직원에게 강요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지부는 글에서 또 “책은 국가공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설립된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쓴 글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부적절하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곳곳에 보인다. 비록 위원장 임명 전 SNS상에 올렸던 글을 모은 책이라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온 나라가 어지러운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자신의 역사관을 담은 책을 선물처럼 배포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12·3 내란 직후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박선영 위원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번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힌 적 없다.
진실화해위 5층에 놓인 책 반납함에 박선영 위원장의 책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이 쌓여 있다. 진실화해위 직원 제공’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의 본문을 보면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전두환씨 사망 직후 이순자씨를 만난 소회를 적으며 전두환씨 부부의 ‘순애보와 부부애’를 칭송하다
이들을 애국자처럼 묘사했고, 사회 갈등을 종북 프레임으로 몰며 남북 대결을 고조하거나, 야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표현도 있다.
이를 두고 진실화해위 지부는 “특정 정부, 특정 단체(민노총 등), 특정 정치인을 향한 원색적 비난, 과거청산에 대한 편향적 인식, 독재자에 대한 미화 부분이 여러 곳에 적혀 있다”고 평가했다.
광고
책 반납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조사관은 10일 한겨레에 “위원장님은 ‘내 일터의 기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책을 보내드렸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기사나 발언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위원장님 알고 싶어 하는 분들께 나눠드리라는 차원에서 돌려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
박선영 (지은이)기파랑(기파랑에크리)
광고
책 반납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조사관은 10일 한겨레에 “위원장님은 ‘내 일터의 기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책을 보내드렸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기사나 발언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위원장님 알고 싶어 하는 분들께 나눠드리라는 차원에서 돌려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
박선영 (지은이)기파랑(기파랑에크리)
2023-07-20
다음






































=========
목차
시작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종착역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영혼의 바람 소리
참 슬픈 단어, 대한민국 교육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뼈저리게 아픈 기억들
평범해서 더 좋은 일상
책속에서
P. 19 오늘 아침에 보니 현관 밖에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길래 열어보니 세상에나, 국가유공자 명패가 들어 있었다. 맨바닥에. 편지 한 장 ㅤㄸㅣㄱ 넣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44년 전에 온몸이 다 찢긴 채 몇 시간을 시멘트 바닥 위에 누워계셨었다는 아버지처럼, 당신을 기린다는 유공자 명패마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있었다니.
국가유공자 명패를 만들지나 말든지. 영화에서도 보듯이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갑 끼고 정중히 쟁반에 담아 들고 와서 정성껏 대문이나 현관 등 유족이 원하는 곳에 붙여주고는 거수경례하고 돌아가던데. 우리는 코로나 시국이니까 네가 알아서 붙이든지 말든지 하라고 작은 비닐봉지에 못이랑 접착제를 명패와 같이 넣어 ㅤㄸㅣㄱ 보냈다. 마스크 끼고 와서 달아주면 되지, 보훈처든 국방부든 향군이든 인원은 남아돌고 훈련도 안 하면서 국가유공자를 두 번 죽이며 유가족도 멸시하는 이 정권. 아무리 속을 가라앉히려 해도 포탄에 가신 아버지의 몸, 갈갈이 찢긴 아버지의 영혼이 자꾸만 아른거려 속이 뒤끓는다. 접기
P. 33 54년 전 2월 말, 공지천이 꽁꽁 얼어붙은 어느 날. 공지천보다 어쩌면 엄마 마음이 더 꽁꽁 얼어 있었을 그날. 며칠인지는 몰라도 전학 신고를 하고 엄마와 나는 막국수를 먹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말 없는 엄마 앞에 앉은 나는 저 건너 주방에서 오늘처럼 어떤 남자가 반죽을 하고, 국수를 내리고, 국수를 씻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나온 막국수. 처음 먹어보는 막국수였다. 아니, 처음 들어보는 국수 이름이었다.
먹자.
엄마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아버지 장례 치르고, 춘천으로 이사하고. 피곤했을까? 늘 명랑했던 엄마. 다른 사람보다 한 옥타브는 높게 스타카토로 통통 튀며 대화를 이끌던 그런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날은. 나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엄마 눈치를 살피며 막국수를 천천히 비벼서 막 한 입 떠넣었는데 “훅”,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막국수를 씹고 또 씹었다. 춘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접기
P. 56 제 본적, 그러니까 등록기준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30번지. 명실공히 독도 사람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독도로 주소지를 옮긴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본적을 독도로 옮겼습니다. 주민등록법 때문에 주소지를 옮길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독도 사람인 제가 독도지킴이인 귀여운 삽살개를 어제 업어왔습니다. 강연 갔다 오는 길에 경산에서요. 접기
P. 99 테헤란에 착륙하기 한 시간 전쯤부터 화장실 앞엔 길게 줄이 늘어섰다. 통로가 막힐 정도로 젊은 여성들이 손에 보따리 하나씩을 들고 주르르 줄을 섰다. 찢어진 청바지에 미니 스커트, 짧은 원피스를 입은 발랄한 여성들이 유난히 긴 속눈썹을 왕방울만한 커다란 눈동자 위에 힘겹게 얹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장관이었다. 화장실에선 하나같이 히잡을 둘러쓰고 긴 치마를 입은, 타임머신을 탄 여인들이 한 명씩 빠져나왔다.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그 모습이 하도 기이해서 나는 히잡을 안 쓰고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했다.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스튜어드가 내 앞을 막아섰다. 비행기에서 못 내린다고. 나도 버텼다. “나는 이란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니까 히잡을 쓸 수 없다”라고. 나도 완강했고 스튜어드도 완강했다.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대사가 전화를 했고 끝내 경찰이 기내로 들어왔다. 결국 대사가 들여보낸 손수건으로 앞머리만 대충 가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으로 절충을 했다. 공항 상점에서 히잡을 사서 쓴다는 조건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을 서로 택한 것이다.
물론 대사관이 미리 고지를 해줘서 내 가방엔 긴 머플러가 있었지만 나는 저항하고 싶었다.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옷을 갈아입던 그 젊은 여성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주고 싶었다. 접기
P. 116 인파가 구름처럼 몰렸던 개천절, 경찰에 연행됐던 탈북자 스물세 명 중 아직 영장실질심사 중인 두 명 외에 어제, 그제 순차적으로 풀려난 몇 명과 함께 저녁으로 해장국을 먹었다. 두부 먹을 상황은 아니니 선지 듬뿍 들어간 해장국을 먹으며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를 꾸역꾸역 선지보다 더 많이, 더 팍팍하게 참 많이도 들었다.
... 더보기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선영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언론인, 교수, 국회의원을 거쳐 NGO 물망초를 이끌고 있다.
언론 환경이 요동치던 1970∼1980년대, 12년 기자 생활은 평생 해야 할 고민과 토론,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아파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투철하고 지독했던 맹활약의 기간.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학위 과정에 도전. 서울대 법대 최초로 4년 만에 헌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여성을 헌법학 교수로 반기지 않는 현실과 차별 속에 겨우 법대 교수 자리를 얻어 정년 퇴임까지 강의했다.
20년 교수 생활 중 비례 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국회의원이 됐다고 공개적으로 상욕까지 들어야 했지만, 4년 임기 내내 대변인을 맡아 제3당의 존재 가치를 높였다. 기자 생활과 법대 교수 경력 때문에 정책위의장까지 맡겨져 고군분투해야 했다. 힘들었지만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국회를 나와서 만든 NGO 물망초는 우파의 시민 단체 중 진성 회원이 가장 많다. 탈북자, 국군포로, 납북자, 북한 인권 활동도 독보적이다. 사람들은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외치며 12일간 단식하다 쓰러지던 박선영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가 CNN, BBC, AFP 등을 통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는 사건이었다. 어느 일간지 1면 톱 기사 제목처럼 ‘40kg 그녀 세계를 움직였다.’ 접기
최근작 :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인터넷언론과 법>,<법 여성학>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다음






































=========
목차
시작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종착역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영혼의 바람 소리
참 슬픈 단어, 대한민국 교육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뼈저리게 아픈 기억들
평범해서 더 좋은 일상
책속에서
P. 19 오늘 아침에 보니 현관 밖에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길래 열어보니 세상에나, 국가유공자 명패가 들어 있었다. 맨바닥에. 편지 한 장 ㅤㄸㅣㄱ 넣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44년 전에 온몸이 다 찢긴 채 몇 시간을 시멘트 바닥 위에 누워계셨었다는 아버지처럼, 당신을 기린다는 유공자 명패마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있었다니.
국가유공자 명패를 만들지나 말든지. 영화에서도 보듯이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갑 끼고 정중히 쟁반에 담아 들고 와서 정성껏 대문이나 현관 등 유족이 원하는 곳에 붙여주고는 거수경례하고 돌아가던데. 우리는 코로나 시국이니까 네가 알아서 붙이든지 말든지 하라고 작은 비닐봉지에 못이랑 접착제를 명패와 같이 넣어 ㅤㄸㅣㄱ 보냈다. 마스크 끼고 와서 달아주면 되지, 보훈처든 국방부든 향군이든 인원은 남아돌고 훈련도 안 하면서 국가유공자를 두 번 죽이며 유가족도 멸시하는 이 정권. 아무리 속을 가라앉히려 해도 포탄에 가신 아버지의 몸, 갈갈이 찢긴 아버지의 영혼이 자꾸만 아른거려 속이 뒤끓는다. 접기
P. 33 54년 전 2월 말, 공지천이 꽁꽁 얼어붙은 어느 날. 공지천보다 어쩌면 엄마 마음이 더 꽁꽁 얼어 있었을 그날. 며칠인지는 몰라도 전학 신고를 하고 엄마와 나는 막국수를 먹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말 없는 엄마 앞에 앉은 나는 저 건너 주방에서 오늘처럼 어떤 남자가 반죽을 하고, 국수를 내리고, 국수를 씻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나온 막국수. 처음 먹어보는 막국수였다. 아니, 처음 들어보는 국수 이름이었다.
먹자.
엄마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아버지 장례 치르고, 춘천으로 이사하고. 피곤했을까? 늘 명랑했던 엄마. 다른 사람보다 한 옥타브는 높게 스타카토로 통통 튀며 대화를 이끌던 그런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날은. 나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엄마 눈치를 살피며 막국수를 천천히 비벼서 막 한 입 떠넣었는데 “훅”,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막국수를 씹고 또 씹었다. 춘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접기
P. 56 제 본적, 그러니까 등록기준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30번지. 명실공히 독도 사람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독도로 주소지를 옮긴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본적을 독도로 옮겼습니다. 주민등록법 때문에 주소지를 옮길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독도 사람인 제가 독도지킴이인 귀여운 삽살개를 어제 업어왔습니다. 강연 갔다 오는 길에 경산에서요. 접기
P. 99 테헤란에 착륙하기 한 시간 전쯤부터 화장실 앞엔 길게 줄이 늘어섰다. 통로가 막힐 정도로 젊은 여성들이 손에 보따리 하나씩을 들고 주르르 줄을 섰다. 찢어진 청바지에 미니 스커트, 짧은 원피스를 입은 발랄한 여성들이 유난히 긴 속눈썹을 왕방울만한 커다란 눈동자 위에 힘겹게 얹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장관이었다. 화장실에선 하나같이 히잡을 둘러쓰고 긴 치마를 입은, 타임머신을 탄 여인들이 한 명씩 빠져나왔다.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그 모습이 하도 기이해서 나는 히잡을 안 쓰고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했다.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스튜어드가 내 앞을 막아섰다. 비행기에서 못 내린다고. 나도 버텼다. “나는 이란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니까 히잡을 쓸 수 없다”라고. 나도 완강했고 스튜어드도 완강했다.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대사가 전화를 했고 끝내 경찰이 기내로 들어왔다. 결국 대사가 들여보낸 손수건으로 앞머리만 대충 가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으로 절충을 했다. 공항 상점에서 히잡을 사서 쓴다는 조건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을 서로 택한 것이다.
물론 대사관이 미리 고지를 해줘서 내 가방엔 긴 머플러가 있었지만 나는 저항하고 싶었다.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옷을 갈아입던 그 젊은 여성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주고 싶었다. 접기
P. 116 인파가 구름처럼 몰렸던 개천절, 경찰에 연행됐던 탈북자 스물세 명 중 아직 영장실질심사 중인 두 명 외에 어제, 그제 순차적으로 풀려난 몇 명과 함께 저녁으로 해장국을 먹었다. 두부 먹을 상황은 아니니 선지 듬뿍 들어간 해장국을 먹으며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를 꾸역꾸역 선지보다 더 많이, 더 팍팍하게 참 많이도 들었다.
... 더보기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선영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언론인, 교수, 국회의원을 거쳐 NGO 물망초를 이끌고 있다.
언론 환경이 요동치던 1970∼1980년대, 12년 기자 생활은 평생 해야 할 고민과 토론,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아파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투철하고 지독했던 맹활약의 기간.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학위 과정에 도전. 서울대 법대 최초로 4년 만에 헌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여성을 헌법학 교수로 반기지 않는 현실과 차별 속에 겨우 법대 교수 자리를 얻어 정년 퇴임까지 강의했다.
20년 교수 생활 중 비례 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국회의원이 됐다고 공개적으로 상욕까지 들어야 했지만, 4년 임기 내내 대변인을 맡아 제3당의 존재 가치를 높였다. 기자 생활과 법대 교수 경력 때문에 정책위의장까지 맡겨져 고군분투해야 했다. 힘들었지만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국회를 나와서 만든 NGO 물망초는 우파의 시민 단체 중 진성 회원이 가장 많다. 탈북자, 국군포로, 납북자, 북한 인권 활동도 독보적이다. 사람들은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외치며 12일간 단식하다 쓰러지던 박선영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가 CNN, BBC, AFP 등을 통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는 사건이었다. 어느 일간지 1면 톱 기사 제목처럼 ‘40kg 그녀 세계를 움직였다.’ 접기
최근작 :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인터넷언론과 법>,<법 여성학>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언론인, 교수, 국회의원을 거쳐
NGO 물망초를 이끌고 있는 박선영 교수의
생각과 감정과 일상
탈북민 지원 NGO 물망초를 이끄는 박선영 교수가 언론인, 교수, 국회의원, NGO 대표 등 여자가 하기 힘든 직업과 활동을 전혀 다른 네 가지 영역에서 평생 동안 독보적으로 헤쳐온 이야기. 페이스북에 본인이 써두었던 진솔한 생각과 감정과 평범해서 더 아름다운 일상의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2012년,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를 외치며 중국대사관 앞에서 12일간 단식하다 쓰러지던 박선영의 모습을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제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였다. 덕분에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가 CNN, BBC, AFP 등을 통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어느 일간지 1면 톱 기사 제목처럼 ‘40kg 그녀, 세계를 움직였다.’
박선영은 언론 환경이 요동치던 1970∼1980년대, MBC 방송 기자로서 투철하고 지독하게 맹활약하였다. 12년 동안이었다. 그는 잘 나가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 서울대 법대 최초로 4년 만에 헌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여성을 헌법학 교수로 반기지 않는 차별의 현실을 딛고 법대 교수가 되어 정년 퇴임까지 강의했다. 국회의원 출신으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중간에 뜻하지 않게 비례 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국회의원이 됐다고 공개적으로 상욕까지 들어야 했지만, 4년 임기 내내 대변인을 맡아 제3당의 존재 가치를 높였다. 기자 생활과 법대 교수 경력 때문에 정책위의장까지 맡겨져 고군분투해야 했다.
국회를 나와서 만든 NGO 물망초는 우파의 시민 단체 중 진성 회원이 가장 많다. 탈북자, 국군포로, 납북자, 북한 인권 활동도 독보적이다. 이렇게 여자가 하기 힘든 직업과 활동을 전혀 다른 네 가지 영역에서 평생 동안 독보적으로 헤쳐왔다. 그 덕에 ‘독하다’라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작고 여린 체구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일들을 독하지 않고 어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박선영을 아는 사람 중 대부분은 그를 한없이 연약한, ‘천상 여자’라고들 한다. 또 투사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극우라고도 한다.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교수, 깐깐하고 숙제와 질문이 많아 엄청 힘들었지만 정말 고마운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국회의원 시절에 공무원들에게는 진땀 흘리게 하고 피하고 싶었던 독한 의원이었지만 “의원은 저렇게 해야지”라고 인정받는 국회의원이었다.
박선영이라는 인물은 하나인데 이렇게 흩날리는 바람처럼 종잡을 수 없이 수많은 그의 모습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고. 일상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그러기 위해 저자 박선영은 페이스북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페이스북 글에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비교적 정제되지 않은 채 실려 있다. 나중에 읽고 후회하는 글도 더러 있지만 그는 가능한 한 한 번 올린 내용은 지우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연속이기도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저자 박선영은 그 진솔하고 솔직한 감정의 기록 페이스북 글을 여기 모아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이라는 책으로 엮어내 자신의 삶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에는, 그를 치열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원동력을 제공하는 가족과 일상 이야기를 시작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 탈북자 지원에 대한 활동과 소회, 대한민국과 교육 이야기,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접기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