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0

손민석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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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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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들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섬세하게 독해할 의무가 있는 연구자들까지도 지배•피지배 관계를 지웠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걸 보며 당황했다. 야마시타 영애 등의 위안부 연구자들이 이미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도 그런 식으로 비난했다. 

 내 반박을 듣고는 논의의 ’맥락‘이 다르다고 항변한 연구자도 있었다. 야마시타 영애가 위안부에 대한 착취를 비난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썼다면, 박유하는 일본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한국의 진보적 연구자들의 수준이라는 게 이정도인가 싶었다. 

 이런 경우를 몇년째 반복해서 본다. 상대의 주장을 최대한 선해해준 뒤에 내재적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박유하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먼저 봐야 된다.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운동이 ’법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비판한다. 위안부와 같은 여성착취는 ’법‘, 다시 말해서 “합법”에 의거해 이뤄졌다. 남성=폭력=국가=법=제국(주의)=내셔널리즘..의 연쇄 속에 포획된 게 여성이라는 존재다. 나쓰메 소세키 연구를 전공으로 한 박유하는 이 ’남성적 세계‘의 작동이 내셔널리즘을 매개로 어떻게 정당화되고 ’풍경화’되는지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위안부와 일본 군인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폭력의 관철만을 읽어내서는 안되고, 남성적 세계의 작동 전체를 보아야 한다. 합법적인 해결만을 요구하는 건 문제의 해결을 막고 남성적 세계를 강화하는 걸로 이어질 수 있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마지막에 전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기지들과 성매매의 관계를 논하며 위안부 문제를 매개로 한일 내셔널리즘이 공조하며 미국이라는 제국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극우와 진보 모두 박유하의 이 제국 비판은 무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박유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판은 그녀가 남성=법권력을 상징하는 윤석열을 자신과 같은 ‘내셔널리즘의 피해자’로 규정하며 지지해 자신의 논리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처럼 남성=법=폭력 등과 강하게 결합된 이가 또 있는가? 12.3 친위쿠데타 사태는 바로 그 남성적 세계의 직접적인 발현이었다. 민주당이 파시즘이고 전체주의고 내셔널리즘이고 어쩌고 하며 국힘당을 지지하던 이들은 자신의 논리가 파탄났다는 걸 인정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박유하도 다르지 않다. 그 자신이 비난하던 남성적 세계에 위안부 문제를 매개로 포섭되었다는 그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지를 물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를 않는다. 뉴라이트든, 윤해동이든, 박유하든, 윤소영이든 누구든 그들이 자신의 논리를 배신하는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비판하고 그들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비평을 해줘야 됐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뭐가 문제일까? 비평의 주체에서 대상이 되는 일을 요즘 반복해서 경험하는데 이쪽판 대학교수들이 말을 함부로 한다는 걸 많이 느낀다. 대학원생이나 주변인들이 좀 혼을 내고 그래야 되는데.. 이런 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좋은 비평지를 내고 싶다. 할 일 없는 교수들 친목 다지는 비평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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