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

민경우공부 1 / 한국노동당, 주대환, 신노선 / 그냥 심심해서 하는 공부 250305


(1) Facebook 250305

민경우

Favourites · nopSsdtoeruaur60c2780a2 t2ga :M97h89276l0t05ct17mac912 11958 ·

공부 1 / 한국노동당, 주대환, 신노선 / 그냥 심심해서 하는 공부

- 텍스트: 
  • 노회찬 평전 195~200, 
  • 신노선(주대환, “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 경과
: 80년대는 레닌의 지하당 건설 방침에 따라 전위당을 건설하는 것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기본 과제였다. 이에 따라 PD 계열에서도 전위당 건설 작업이 진행되는데
: 91년 8월 전위당 건설에 합의, 91년 9월 주대환 신노선 제출, 92년 1월 신노선에 따라 합법 정당 건설
- 핵심적인 문제의식
: 배경은 6월항쟁과 소련 및 사회주의 붕괴
: 전위당,
폭력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폐기
- 평가
: 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권은 레닌의 전위당, 사회주의 등 혁명론에 젖어 있었다.(전민련의 합법정당 논쟁은?)
: 6월항쟁과 소련 및 사회주의 붕괴를 계기로 합법 정당에 대한 문제의식이 출현한다.
: 80년대 중후반 이른바 혁명론에 빠져 있었던 인텔리 중 소련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 자신의 생각을 재평가한 사람은 거의 없다. 
/ 내가 추적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조희연과 유시민이다. 
/ 혁명론은 2000년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악마화로 이어지고 그 중 다수가 문재인 정부와 연결된다.
: 소련 및 사회주의 붕괴 이후 혁명론을 부분적으로 재검토한 집단은 한국노동당 계열과 서울대 관악자주파 등이 있다 

/ 경실련.참여연대 등의 시민운동은?
: 운동권의 주류였던 주사파는 소련과 북한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어물쩍 넘어감
: 현재에 미치는 함의 
/ 80년대 중후반 사회주의.혁명론에 빠져 있었던 인텔리들이 소련 및 사회주의가 붕괴했음에도 기존의 생각 대부분을 유지함 

/ 이들이 나이를 먹어 2000년대 제도권.정치권의 주류로 등극 
/ 2000년대 이후 민주당과 4050(강남 좌파 또는 조국혁신당 지지기반)이 보여주는 급진주의의 뿌리




Most relevant

김태문
대안연대 TV에서 깊이 있게 강의 좀 해주세요.
읽고 습득하는 것보다 듣고 습득 하는 게 빠르더군요.
강의 하실때 좀 버벅이진 말고요.^^
  • Like
  • Reply
  • Edited
Hanji Cha
퇴색된 이념이 기득권 쟁탈의 버팀목이 된건가요
  • Like
  • Reply
류상협
한번 만나서 얘기해야 될거 같습니다. 87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지요. 87 민주화 운동인가? 아니면 6월 항쟁인가는 역사적 정치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6.10 이후에 6.23에서 제가 한 역할은 "남부군"을 이끌고 명동성당을 진격하는 총괄 책임을 지고 했었습니다.
  • Like
  • Reply
류상협
6.10은 꼴은 갖추었되 그다지 의미 조차도 없었어요. 만장 상례길 비슷한거지요.
기억은 오래되서 안나는데 국민 대행진인가 그랬고 치기어리고 의미가 없었습니다.
  • Like
  • Reply
2
이보숙
몇번을 읽어 봅니다. 이해하기 위해..
  • Like
  • Reply

=====

대환

최근 수정 시각: 
주대환
周大煥
주대환
출생
1954년 6월 1일 (70세)
현직
민주화운동동지회장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학력
소속 정당
경력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개혁신당 창원을 지구당 위원장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원을 국회의원후보 선거대책본부장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청년연합 36.5 자문위원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바른미래당 당무감사위원회 위원장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외부 링크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4. 소속 정당5. 저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54년 6월 1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에서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칠북초등학교, 함안 가야초등학교, 마산 회원초등학교 등 3곳의 학교를 전전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성호초등학교에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마산중학교(19회), 마산고등학교(32회), 198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과 종교학 전공[3](73학번)를 졸업하였다. 대학 입학 이후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9년 부마민주항쟁으로 구속되었다.[4]

노회찬 등과 함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91년 9월 29일 '회사의 노동자 정당 건설 전략에 재고를 요청함'(통칭 '신노선')이라는 문건을 발표했는데, 이 문건은 인민노련이 지하조직운동을 청산하고 합법적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2년 노회찬 등과 함께 가칭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약칭 한국노동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다.[5] 한국노동당 창준위는 김문수, 이우재가 주도하던 민중당에 합류하여 통합민중당이 되었으나 1992년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자동해산되었다.

1995년 노회찬과 함께 개혁신당에 입당, 창원 을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1997년 국민승리21 마산창원지부장을 맡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마산갑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5월 사회당 최혁 부대표와 비밀리에 통합 협상을 진행했다. 이 협상안은 민주노동당 중앙에 보고되었으나 상부로부터 묵살당했다고 한다. 기사

2002년 8월 김호일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하여 치러진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정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정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6월 민주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출마, 당선되었다. 정책위의장 선거 토론회 도중, 경기동부 계열 이용대 후보에게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여 당내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관련 기사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문성현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6]

2008년 3월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가 벌어지자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7] 다른 평등파들과는 달리 진보신당에는 합류하지 않은 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1월 27일 민주통합당에 전격 입당했다.[8]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창원시 성산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경선에서 탈락했다.[9]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당시에는 손학규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자 손학규 캠프에서는 주대환을 비롯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여 대단히 진보적인 정책공약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회자되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도 이들이 만든 것이다.

이후 사회민주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나 국민의당에 입당했고 바른정당과의 합당 후 바른미래당 당무감사위원장 등을 맡았다. 2019년 6월 28일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에 의하여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14일 만인 7월 11일 전격 사퇴하였다.#

2021년 검찰총장 직을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든 윤석열을 만났다.# 2024년에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2
경남 마산 갑
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
3,141 (6.92%)
낙선 (4위)
2004
9,773 (10.66%)
낙선 (3위)
2008
8,436 (12.81%)
낙선 (2위)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민중의당
1988
창당
정계 입문
1988 - 1990
정당 해산
1991 - 1992
창당준비위원회
민중당 1990년 글자
1992
입당
1992 - 1995
정당 해산
개혁신당(1995년) 흰색 로...
1995
창당
민주당(1991년) 로고타입
1995 - 1997
합당[10]
1997
탈당[11]
건설국민승리21 글자
1997 - 1999
창당
1999 - 2000
정당 해산[12]
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
2000 - 2008
창당
2008 - 2012
탈당
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
2012 - 2013
입당
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
2014 - 2015
합당[13]
2015
탈당[14]
2015 - 2016
창당준비위원회
2016
탈당[15]
국민의당(2016년) 흰색 로...
2016 - 2018
창당
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
2018 - 2020
합당[16]
2020 - 현재
탈당

5. 저서[편집]

  • K-데모크라시 개정증보판(2024년)
  • K-데모크라시(2022년)
  •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2017년)
  • 좌파논어(2014년)
  • 대한민국을 사색하다(2008년)
  • 진보정당은 비판적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2002년)
  • 자랑스런 나라는 정직한 사람이 만든다 (1996년)
  • 진보정치의 논리(1995년)
  • 87, 88년 정치위기와 노동운동(1989년)
[1] #[2] 73학번[3] 現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4] 출처 미디어스 기사[5]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68912.[6] 문성현은 원래 심상정과 함께 활동하던 PD(정파) 출신이지만, 이 선거에서는 마땅한 당대표 후보가 없던 NL계열의 몰표를 받고 당선되었다. 이후 사실상 바지사장으로 전락한다.[7]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20243[8] 출처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0253[9] 경선 승자는 변철호라는 사람이었는데, 본선에서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로 중도 사퇴했으며, 나중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으로 옮겨갔다.# 이후 다시 민주당으로 복당하여 부대변인을 맡았다.[10] 민주당과 신설 합당.[11] 국민승리21 창당을 위한 탈당.[12] 민주노동당 창당 목적.[13]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4] 사회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15] 국민의당 창당을 위한 탈당.[16]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
===
노회찬 평전  국내도서20,700원eBook14,490원
이광호 저자(글)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기획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3년 06월 21일
9.7
(82개의 리뷰)





더보기

책 소개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불평등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정신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노회찬의 삶과 꿈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회찬의 삶을 집대성한 『노회찬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기획한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 말과 글, 행적을 모아 ‘노회찬 아카이브’를 구성하였으며, 저자 이광호는 여기에 노회찬의 가족, 동지, 친구들의 기억을 보태 방대한 원고를 정리하였다.
이 책은 노회찬의 62년 동안의 삶을 따라가며 휴머니즘, 노동운동, 진보정치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 노회찬의 삶과 꿈을 되새기고,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밀고 나갔던 노회찬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광호
인물정보
정치가/정당인


1956년생인 노회찬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났다. 1992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 시절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회찬을 처음 만났고,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일했다. 『미디어오늘』, 『노동과 세계』, 『진보정치』, 『레디앙』을 창간하고 편집 책임을 맡았다.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두 수레바퀴가 잘 굴러갈 때 정치가 좋아지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노회찬과 공유하고 함께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고 있다.
접기

기획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노회찬재단은 노회찬 의원의 정치 철학을 계승하여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국고나 정당의 지원 없이 오직 후원 회원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추모 및 기념 사업, 아카이브 구축 및 운영, 정치학교와 시민교육, 6411 투명인간의 목소리 대변과 조사 연구, 나눔과 돌봄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차


발간사 : 노회찬 평전을 펴내며
기록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새로운 정치언어의 탄생

제1장 “나를 키운 8할은 학교였다”

1950∼1972년: 2개의 고향, 반항적 모범생

어머니의 피란길 / 아버지, 하이네를 사랑한 식민지 청년 / 약방 집 아들 / 모범생과 반항아 사이 / 정의감과 무력 행위 / 가난을 벗어나다 / 부산중의 ‘노괴물’ / 부산고 낙방 미스터리 / ▂ 노회찬 가족사의 잃어버린 고리, 실향사민

제2장 첼로와 유인물
1972∼1975년: 탈출, 자유, 질풍노도의 3년

1972년 10월 17일 / 낙방의 행운 / 외삼촌의 아우라, 조카를 물들이다 / 14년 후 세계정세를 전망한 까닭 /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잡지 한 권 / 화동에서 평생 벗들을 만나다 / 4·19묘지 참배를 제안하다 / 세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소년 / 노괴물에서 노지심으로 / 함석헌, 선우휘, 김상현 / 유신 1주년 기념 ‘거사’ / 소년 노회찬의 ‘잡설’ / 새해 첫날 정치를 생각하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 /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입시생

제3장 참당암의 결의
1976∼1983년: 삶의 목표를 세우고 ‘민중의 바다’로

해변 도시의 젊은이들 / 스무 살의 일기 / ‘의지를 앞세우지 않는 직업전투원’ /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생활 / 선운사 참당암에 간 까닭 / 노동 현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 / 구원과 깨달음 / ▂ 의형제 김종해

제4장 지하에서 꿈꾼 지상의 혁명
1983∼1992년: 투쟁과 사랑으로 뜨거웠던 젊은 날들

조직책 노회찬을 기억하는 사람들 / 주안과 하인천을 무대로 / 어머니의 스크랩북 / 인천, 한국의 페테르부르크 / ▂ 정파의 탄생 / 지상으로 올라온 투쟁 / 인민노련을 결성하다 / 1987년 대통령 선거 / 연애 그리고 결혼 / 인민노련의 기관지 / “바다가 보고 싶다” / 감옥에서 보낸 휴식의 시간 / 해바라기를 기르며 / 감옥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 ▂ 한국사회주의노동당과 신노선

제5장 창당으로 가는 여정
1992∼2000년: 흔들림 속의 전진, 창당을 위한 파종

백의종군, 다시 시작하다 / 역사적 낙관주의자 / 동지는 간데없고 / 40대 위기론을 ‘떠벌리고’ 다닌 까닭 / 『매일노동뉴스』 창간 / 노무현과 노회찬이 같은 당? / 나이 마흔에 떠난 첫 해외여행 / “권 위원장님, 대선에 나가시죠” / ‘국민승리21’, 실패가 남긴 소중한 성과들 / 위기의 부부 / ▂ 혁명은 CMS에서

제6장 민주노동당 창당과 일생일대의 승부
2000∼2004년: ‘쇄빙선’ 리더십, 여의도 상륙 작전 진두지휘

“내 모든 시간을 지배한 진보정당” / 민주노동당호에 오른 젊은 선원들 / 2000년 총선, 씨앗을 심다 / 1인 2표제, 한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 / “눈떠보니 제3당… 우리도 미래가 있구나!” / 100만 표를 넘겨라 / 보수 양당의 진보정당 봉쇄 / 노무현 탄핵 폭풍, ‘해석 투쟁’에서 승리하다 / 불판을 타고, 탄핵의 강을 넘다 / 상선약수 리더십

제7장 눈부신 활약과 분당의 아픔
2004∼2008년: 성공-실패, 승리-패배의 롤러코스트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날 / 초선 의원 노회찬의 아주 오래된 꿈 / 정치인가, 정책인가 / 법사위 보이콧 / 뜨거운 주한미군 현안, 집요한 추궁 / 노회찬의 ‘현안 정치’ / 삼성 X파일, 7년 싸움의 시작 /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를 입증하다 / 몰래 떠난 여행 / 민생특위, 상인들의 폭발적 반응 / ▂ 노회찬의 법안들 / 아픈 곳이 중심이다 / 낮은 곳, 소수자들과의 연대 / 소통과 공감의 정치인 / 평양 방문 / 대통령 후보 출마는 의무 / 노회찬의 제7공화국 / 뜻밖의 패배 / 초라한 대선 성적표 / 분당의 소용돌이 / ▂ 분당에 이르기까지

제8장 진보신당과 주체의 재구성
2008∼2012년: 정당의 이합집산 속 ‘생활정치’ 실천

첫 지역구 도전과 석패 / 처음으로 당대표를 맡다 / 중학생도, 동네 할머니도 찾아오는 당 / 스마트폰에 반한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 / 서울시장 선거, 평생 먹을 욕을 다 먹다 / 난생처음 청바지를 입다 / 대표직에서 물러나다 / “나를 용서하지 말라” / 노회찬과 유시민 / ▂ 진보정당 통합의 막전 막후

제9장 ‘정치적 사형’ 그리고 부활
2012∼2016년: 사민주의와 진보의 ‘세속화’를 내세우다

재선 의원이 되다 / ▂ 부정선거 소용돌이에 빠져 다시 침몰하다 / 노회찬의 마지막 호소 / 보좌관이 고마워한 이유 / 진보정의당 출범과 6411 버스 연설 / 2012년 대선, 출마의 뜻을 접은 까닭 / ‘정치적 사형’ 선고 / 사민주의를 말하다 / 노회찬의 ‘슬기로운 이중생활’ / 동작구 재보궐선거 석패 / 일본과 영국을 여행하다 / 진보의 세속화 / “집권해야 혁명할 수 있다” / 노회찬과 심상정 / 창원으로 가다

제10장 노회찬의 정신과 이념
휴머니즘-사회주의-사민주의

휴머니즘과 민중성 / 사회주의와 급진성 / 사민주의와 현실성

제11장 너무 짧았던 마지막 봄
2016∼2018년: 당당한 전진을 위한 ‘멈춤’

다시 법사위로 / 촛불혁명과 탄핵 / 대선에 불출마하다 / ▂ 이재영과 오재영 / 노회찬이 눈물 흘릴 때 / “협치하려면 문서화해야 한다” / 적폐청산에 대한 노회찬의 생각 / 정의당의 개헌안 ‘국민헌법’을 만들다 / 공동교섭단체 원내대표를 맡다 / 지방선거와 대통령의 제안 / ▂ 노회찬과 연합정치 / 드루킹과 특검 / 워싱턴에서 인민노련 얘기를 하다 / 귀국, 그리고 노회찬의 마지막 하루 / 닷새 동안의 장례식

에필로그: ‘백척간두’에서 내디딘 한 걸음


미주
노회찬이 걸어온 길
도움 주신 분들
펼치기

책 속으로


노회찬은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목격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광주항쟁 때 부산 집에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는 일본 NHK 전파가 잡혔다. 일본 방송을 통해 광주의 참상을 접하면서 그는 광주 시민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 광주항쟁이 군부에 의해 진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회찬은 혼자만의 진혼제를 올리기 위해 광주에 갔다. 그곳에 다녀온 노회찬이 가까운 고교 친구 최만섭에게 한 말이다.
“내가 마음이 힘들어서 광주를 다녀왔다. 충장로와 금남로 술집을 순회하면서 일부러 고향 사투리를 쓰면서 ‘부산에서 왔습니다’ 하니까 그분들이 내 말 듣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더라.”
--- 본문 125쪽

가을이 왔다. 몇 차례 밟히고 뽑히기도 했던 해바라기는 어느덧 씨를 맺기 시작했다. 한 번 뽑혔을 때 가운데 큰 줄기가 꺾이는 바람에 선산의 등 굽은 소나무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늦가을 찬 기운에도 씨앗이 알차게 여물어갔다. ... 그 봄에 노회찬은 출소했고, 뽑히고 밟히면서 자란 그 해바라기 씨앗 몇 개를 가지고 나와서 부산집 마당에 심었다. ... 1994년 노회찬이 진보정당 건설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던 시절, 그는 청주교도소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해바라기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기록했다. “해바라기를 길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해바라기는 어떤 땅에서도 다 잘 자란다. 그 자태는 숱한 잡종교배 끝에 만들어낸 화려한 꽃에 비할 수 없지만, 그 열매는 어떤 화초보다도 크고 풍성하다.
--- 본문 186쪽

아버님, 어머님!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결과가 아닙니다. 義(의)롭게 살아야 한다. 불의와 싸우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개인의 출세와 영달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국민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개근상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배운 내용이며 또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온 것들입니다.
--- 본문 191~192쪽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오십 대, 육십 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 본문 430~431쪽
펼치기

출판사 서평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1992년 부모님께 보낸 옥중편지에서, 본문 191~192쪽)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회찬의 삶을 집대성한 『노회찬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기획한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 말과 글, 행적을 모아 ‘노회찬 아카이브’를 구성하였으며, 저자 이광호는 여기에 노회찬의 가족, 동지, 친구들의 기억을 보태 방대한 원고를 정리하였다.

노회찬의 삶을 노동운동과 완전히 분리하여 서술할 수는 없으나, ‘운동사’ 그 자체가 아닌,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직접 겪어낸 노회찬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노회찬의 62년 동안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보여준 휴머니즘, 노동운동 및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노회찬의 고민과 그 과정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단, 그에 따른 인간적 고뇌와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담았다. 또한 ‘2023년 현시점의 정본 전기’를 지향하며 노회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현재 사회 상황에 적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노회찬이 학생운동을 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고, 투쟁과 사랑으로 뜨거웠던 젊은 날들을 거쳐, 이후 한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진보정치에 몸담기까지, 그가 경험하고 성찰하며 행동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휴머니스트 노회찬은 지금 뭐라고 말할까?”
노회찬의 삶을 통해 엿본 그의 단면은 독재에 저항하고 억압과 착취에 분노한 휴머니스트다. 혐오와 갈등, 차별과 편견, 냉소와 체념을 발견하기가 무척 쉬워진 사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절실해진 지금이다.
노회찬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 부쩍 첨예해진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라면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지금 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이 질문은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자는 호소이며, 연대를 요청하는 메아리다.

이 책을 통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 노회찬의 삶과 꿈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내고,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밀고 나갔던 인간 노회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앞세우는 노회찬 정신은 ‘평등과 공정’이다.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삼겹살 불판’이나 ‘6411 버스’가 그의 생각을 전부 설명할 수 없듯이, 노회찬의 정신을 한 가지 단어나 사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나, 평등과 공정이 현재 사회에 절실한 가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로막는 불평등과 불의가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노회찬의 직업이었고, 그 바탕에는 휴머니즘이 있었다. 이 책은 노회찬의 휴머니즘이 “구체적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휴머니즘이었다”(본문 479쪽)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노회찬, 우리가 모른 노회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사회·정치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반항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2018년 7월의 어느 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복도에는 조문을 하러 온 사람들의 긴 줄이 계단으로 타고 층층이 이어졌다. 노회찬을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먼저 온 사람 나중 온 사람만 있을 뿐 윗사람 아랫사람은 없어서 국회의장도 차례를 기다려 조문을 했다.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저마다 소곤소곤 적당히 복작대는 분위기에는 저잣거리부터 국회의사당까지 평등을 실천하려던 고인의 뜻이 어린 듯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친구 같았던 정치인을 떠나보냈다.

노회찬의 삶은 어땠을까? 뭇사람들에게 익숙한 건 국회의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모범적인 학생이기도 했고, 시험에 낙방해 분루를 삼킨 수험생이기도 했으며, 어려서부터 사회변혁을 꿈꿨던 될성부른 혁명가이기도 했다.

노회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과서다. “인류가 현재까지 성취해낸 자연,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 지식, 보편적 가치와 철학으로 채워진 책.”(본문 43쪽) 이것이 노회찬이 말하는 교과서였으며, 그는 자신의 삶에 교과서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감과 인류애는 확고한 가치로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이른바 ‘10월 유신’을 발표한 날, 열여섯 노회찬은 부리나케 집으로 가 교과서를 펼쳤다. 교과서에는 그가 생각한 대로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날로부터 1년 후인 1973년 11월 29일.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유신독재 반대 유인물을 제작하여 살포했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본문 105쪽)에서 노회찬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는 ‘반항적 모범생’이었다.

노회찬만큼 운동과 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라면 대학생 시절에도 학생운동으로 이름깨나 날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이라는, 당시로선 특권적일 수 있는 지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저항과 변혁의 맹아는 노동 현장에 있다고 판단하고 일찍부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용접을 배우러 다녔고, 83년에 용접 자격증을 따 서울, 부천, 인천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4년부터는 노동 현장으로 가는 대학생 운동가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노회찬은 그보다 조금 빨랐던 셈이다.

그가 얼마나 철저히 노동자로서 생활했는지는 아내와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아내 김지선 씨조차 부산의 시어머니를 만나서야 남편이 고려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정도였다. 김 씨도 당시 내로라하는 노동운동가였고, 비혼으로 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노회찬의 절절한 청혼에 마음이 움직여 1988년 부산의 시댁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해 12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제도적 민주화의 길을 살짝 열어주었지만 투쟁의 현장은 여전히 엄동설한이었다. 정부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좌경 세력으로만 치부하며 탄압을 했고 노동운동가들은 언제 체포영장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노회찬 역시 1989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대공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면회가 금지되었지만 김지선 씨는 매일 홍제동 경찰청 대공분실을 찾아가 기어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는 경찰이 알지 못하게 동지들한테 전할 비밀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는 2년 4개월 남짓 되는 기간 노회찬은 어머니에게 83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두 배가 넘어 172통에 이른다. 비록 징역살이를 하고 있지만 올바른 일을 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고 결연한 ‘위로’를 담은 편지글 말미에는 면회 오실 때 멀미하시지 않게 ‘귀밑에’를 챙기라는 노회찬 특유의 잔정이 서려 있다.

진보정당 역사와 얽힌 삶의 여적

1990년대 노회찬의 삶은 영화로우면서도 안타깝기도 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진보정당의 역사와 겹쳐 펼쳐진다. “불판 갈아보자”는 촌철살인으로 하룻밤 새 화려하게 떠오른 정치 신인으로 비쳤지만 그 뒤에는 기나긴 노력과 활동, 공부가 있었다. 거대정당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소수정당, 진보정당의 역사가 노회찬의 삶과 얽히고설켜 있음을 평전은 잔잔히 풀어내고 있다.

노회찬은 모범생이자 반항아였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이미 모두 알고 있었던 가치를 당당히 외치고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사회가 불의하면 싸우는 게 당연한, 그게 모범이라고 생각한 반항아였다. 그의 부모님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어떻게 피란해 부산까지 오게 되었는지, 노회찬은 부산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쪽 가족 이야기의 실종이 한국 현대사와 어떻게 엮여 있는지, 어떻게 첼로와 책을 좋아하는 모범생이면서 반항아인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는지도 평전은 새로운 자료와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노회찬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할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노회찬 평전』이 그의 삶을 톺아보는 여러 평가 중 하나일 뿐 노회찬 전기가 아닌 이유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우리의 이웃으로서, 일터의 노동자로서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들을 나누었는지를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는 것은 그의 삶을 평가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터이다. 감히 독자에게 권하건대 조금 더 알아도 좋다. 그럴 만한 사람이다, 노회찬은.
접기

기본정보

ISBN 9791167071101
발행(출시)일자 2023년 06월 21일
쪽수 600쪽
크기
152 * 222 * 49 mm / 982 g판형알림
총권수 1권




Klover 리뷰 (82)


좋아요 순
종이책구매자mi******|2023.09.20|신고/차단
/최고예요
노회찬의원님 지금 너무 보고 싶으네요
한달 후 리뷰 보기
2답글 0
종이책구매자mi******|2023.07.15|신고/차단
/집중돼요
너무 기다리던 의원님 평전입니다.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웃음과 해학을 주던 그시절..
그때가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의원님
접기
한달 후 리뷰 보기
2답글 0
종이책구매자mi******|2023.07.02|신고/차단
/추천해요
노회찬의원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목숨과 비꾸신 등치시키신 분
지금의 위정자들이 배웠으면 합니다
한달 후 리뷰 보기
2답글 0
종이책구매자lo*******|2023.11.19|신고/차단
/추천해요
잘 읽었습니다
노회찬의원님 잊지않겠습니다
한달 후 리뷰 보기
1답글 0
종이책구매자th********|2023.09.12|신고/차단
/최고예요
노회찬이 그리워지는 시절, 인간 노회찬을 만나기 좋은 책
1답글 0
종이책구매자dh****|2023.08.11|신고/차단
/추천해요
책을 끝까지 읽는데 며칠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도 책을 쉽게 덮을수는 없었다. 휴머니스트 노회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국회의원 노회찬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실패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왜 멈추어야만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1답글 0
종이책구매자eh****|2023.08.10|신고/차단
/추천해요
고 노회찬의원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1답글 0
종이책구매자ku******|2023.07.20|신고/차단
/추천해요
시대에 양심 노회찬을 이야기하다
한달 후 리뷰 보기
1답글 0
종이책구매자fo*******|2023.07.14|신고/차단
/최고예요
유머가 있는 정치는 상대를 적으로만 여겨 제로섬게임을 하는 정치에 없어서는 안되는 기제입니다. 조그마한 연못에 붕어 두마리가 싸우면 결국 다 죽게 마련이다는 김민기 선생의 노래말 같으니까요. 우리에게 숨구멍을 열어주시던 노회찬 선생님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입니다.
한달 후 리뷰 보기
1답글 0
종이책구매자sg******|2023.07.07|신고/차단
/추천해요
안타깝고 그리운 인물 노회찬을 다시 떠오려 보게 합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