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대한민국의 공무원
대한민국의 남성 기자
기자 출신 정치인
공무원 출신 정치인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제11대 국회의원
제12대 국회의원
제15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무소속 국회의원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4.19 혁명/관련 인물
함평군 출신 인물
함평 이씨
전두환 정부/인사
위기관리정부/인사
박정희 정부/인사
1939년 출생
광주서중학교 출신
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
서울대학교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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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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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1·12·15대 국회의원
이영일
李榮一 | Lee Yeong-il

출생
1939년 11월 17일 (85세)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본관
함평 이씨[4]
호
중원(中圓)
배우자
정정애[5]
학력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 / 학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과정 수료)
호남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병역
면제(질병)
종교
개신교
소속 정당
무소속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1, 12, 15
경력
국토통일원 정치외교정책담당관(2급)
국토통일원 통일연수소장(차관보)
국회 문교공보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광주권발전연구소 이사장
한중문화협회 회장
한민족복지재단 부이사장
호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개요2. 생애3. 여담4. 선거 이력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함평(咸平)[6], 호는 중원(中圓)이다.
2. 생애[편집]
1939년 11월 17일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에서 아버지 수봉(壽峰) 이재동(李載東, 1915. 4. 13 ~ 1969. 3. 1)[7]과 어머니 행주 은씨(幸州 殷氏) 은문화(殷文華, 1919. 10. 14 ~ )[8]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9]. 초등학교 2학년 때 전라남도 광주부로 전학해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33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1961년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을 결성 선전위원장을 지냈다. 1965년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을 결성해 선전위원장으로서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한 사건과 관련, 혁명재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4.19 혁명유공자로 형을 면제받아 출감하였다. 또한 1966년 김두한 등과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으로 구형공판에서 7년형을 구형받았지만, 같은 해 5월 10일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동양통신 외신부 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2년간 사상계에 정치 평론도 썼다. 당시 전과자는 신원조회에서 걸려 모든 공직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동양통신의 사주인 김성곤의 도움으로 간신히 취업하였다. 당시 외신부에서 일하다 보니 해외 소식을 많이 알게 됐고 당시 김대중 의원이 이영일에게 해외 상황을 자주 물어봤는데 곧 도청을 당해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한국독립당 때까지의 삶은 학생운동가였으나, 이후 정권에 적극 협력하여 1977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통일연수원장, 교육홍보국장, 홍보실장(1급) 등 관료로 근무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광주의 직할시 승격 공약을 걸며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녹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6년까지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민주정의당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국회 문교공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광주직할시 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정상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잠시 물러나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 쓰쿠바대학 역사인류학과에서 국제정치, 특히 공산권의 체제변동을 연구하였으며 1989년에는 당시 국교도 맺어져 있지 않던 중국을 홀로 방문하여 천안문 6.4 항쟁 이후의 중국사회상을 둘러보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당 정상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선출되자 이에 반발하여 이종찬 등과 함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1995년 새한국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자 민주당에 속하였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광주광역시장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송언종에게 패하였다. 선거 이후 다시 이종찬과 같이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1997년 신기하 국회의원이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별세하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박태영 전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뒤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국민회의 후보로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이후 1999년 6월 새정치국민회의의 대변인이 되었다. 대변인 재직 중 중앙일보 간부가 정부의 언론대책 문건을 정형근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발표한걸로 중앙일보와 정형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에서 김경천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이에 대해 본인은 공천권을 쥐고 있던 동교동계 구파들이 광주시민단체들과 연계하여 이영일을 5공 세력으로 몰아 광주지역 낙선대상자로 낙인찍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김경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21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의 빈소에 방문했다.#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10]
3. 여담[편집]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재학 시절 김종인 전 보건사회부장관과 같은 반이었다.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함평 이재혁 가옥(咸平李載爀家屋,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379-2번지 소재)의 유래가 된 죽하(竹下) 이재혁(李載爀, 1893. 9. 15 ~ 1992)이 바로 이영일의 7촌 재당숙(再堂叔)이다.본 가옥은 1898년경 백범 김구가 은거했다는 '이참봉'댁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897년(고종 34) 조경묘 참봉(肇慶廟參奉, 종9품)을 지낸 석암(石菴) 이동범(李東範, 1869 ~ 1940. 3. 2)[11]이 건립한 뒤 이동범의 차남 이재혁이 대를 이어 거주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동범은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성우의 조부 이태형(李泰亨, 1841 ~ 1894. 12. 25)[12]의 9촌 삼종질(三從姪)이기도 한데, 이태형이 동학 농민 혁명에 가담한 혐의로 처형된 뒤 그 후손들의 집을 지어주는 등 생계를 보태주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공무원
대한민국의 남성 기자
기자 출신 정치인
공무원 출신 정치인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제11대 국회의원
제12대 국회의원
제15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무소속 국회의원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4.19 혁명/관련 인물
함평군 출신 인물
함평 이씨
전두환 정부/인사
위기관리정부/인사
박정희 정부/인사
1939년 출생
광주서중학교 출신
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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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1·12·15대 국회의원
이영일
李榮一 | Lee Yeong-il

출생
1939년 11월 17일 (85세)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본관
함평 이씨[4]
호
중원(中圓)
배우자
정정애[5]
학력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 / 학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과정 수료)
호남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병역
면제(질병)
종교
개신교
소속 정당
무소속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1, 12, 15
경력
국토통일원 정치외교정책담당관(2급)
국토통일원 통일연수소장(차관보)
국회 문교공보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광주권발전연구소 이사장
한중문화협회 회장
한민족복지재단 부이사장
호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개요2. 생애3. 여담4. 선거 이력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함평(咸平)[6], 호는 중원(中圓)이다.
2. 생애[편집]
1939년 11월 17일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에서 아버지 수봉(壽峰) 이재동(李載東, 1915. 4. 13 ~ 1969. 3. 1)[7]과 어머니 행주 은씨(幸州 殷氏) 은문화(殷文華, 1919. 10. 14 ~ )[8]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9]. 초등학교 2학년 때 전라남도 광주부로 전학해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33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1961년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을 결성 선전위원장을 지냈다. 1965년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을 결성해 선전위원장으로서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한 사건과 관련, 혁명재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4.19 혁명유공자로 형을 면제받아 출감하였다. 또한 1966년 김두한 등과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으로 구형공판에서 7년형을 구형받았지만, 같은 해 5월 10일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동양통신 외신부 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2년간 사상계에 정치 평론도 썼다. 당시 전과자는 신원조회에서 걸려 모든 공직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동양통신의 사주인 김성곤의 도움으로 간신히 취업하였다. 당시 외신부에서 일하다 보니 해외 소식을 많이 알게 됐고 당시 김대중 의원이 이영일에게 해외 상황을 자주 물어봤는데 곧 도청을 당해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한국독립당 때까지의 삶은 학생운동가였으나, 이후 정권에 적극 협력하여 1977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통일연수원장, 교육홍보국장, 홍보실장(1급) 등 관료로 근무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광주의 직할시 승격 공약을 걸며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녹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6년까지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민주정의당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국회 문교공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광주직할시 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정상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잠시 물러나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 쓰쿠바대학 역사인류학과에서 국제정치, 특히 공산권의 체제변동을 연구하였으며 1989년에는 당시 국교도 맺어져 있지 않던 중국을 홀로 방문하여 천안문 6.4 항쟁 이후의 중국사회상을 둘러보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당 정상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선출되자 이에 반발하여 이종찬 등과 함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1995년 새한국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자 민주당에 속하였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광주광역시장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송언종에게 패하였다. 선거 이후 다시 이종찬과 같이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1997년 신기하 국회의원이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별세하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박태영 전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뒤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국민회의 후보로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이후 1999년 6월 새정치국민회의의 대변인이 되었다. 대변인 재직 중 중앙일보 간부가 정부의 언론대책 문건을 정형근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발표한걸로 중앙일보와 정형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에서 김경천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이에 대해 본인은 공천권을 쥐고 있던 동교동계 구파들이 광주시민단체들과 연계하여 이영일을 5공 세력으로 몰아 광주지역 낙선대상자로 낙인찍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김경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21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의 빈소에 방문했다.#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10]
3. 여담[편집]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재학 시절 김종인 전 보건사회부장관과 같은 반이었다.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함평 이재혁 가옥(咸平李載爀家屋,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379-2번지 소재)의 유래가 된 죽하(竹下) 이재혁(李載爀, 1893. 9. 15 ~ 1992)이 바로 이영일의 7촌 재당숙(再堂叔)이다.본 가옥은 1898년경 백범 김구가 은거했다는 '이참봉'댁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897년(고종 34) 조경묘 참봉(肇慶廟參奉, 종9품)을 지낸 석암(石菴) 이동범(李東範, 1869 ~ 1940. 3. 2)[11]이 건립한 뒤 이동범의 차남 이재혁이 대를 이어 거주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동범은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성우의 조부 이태형(李泰亨, 1841 ~ 1894. 12. 25)[12]의 9촌 삼종질(三從姪)이기도 한데, 이태형이 동학 농민 혁명에 가담한 혐의로 처형된 뒤 그 후손들의 집을 지어주는 등 생계를 보태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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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휘총장의 "이영일 저 햇볕정책의 종언 서평"
2021. 5. 2.
[이영일]김정일은 인민관이 등소평과 전혀 다르다
2021. 5. 2.
[이영일]지금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우려할 때가 아니다.
2021. 5. 2.
아베의 용미탈미(用美脫美), 미국은 알고 있나
2021. 5. 2.
북한은 왜 핵보유국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2021. 5. 2.
North Korea’s nuclear gamble: Why Kim should be denied his bomb
2021. 5. 2.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정상외교의 전망
2021. 5. 2.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을 보는 시각
2021. 5. 2.
<서평>: 강성학 저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
2021. 5. 2.
7.4 남북공동성명 45주년의 교훈
2021. 5. 2.
(1)북한에서 중국식 개혁개방은 성공할 것인가.
2021. 4. 30.
이영일]남북경협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한다
2021. 4. 30.
[이영일]존치와 폐기의 기로에 선 6.15선언
2021. 4. 30.
[이영일]유엔의 제재결의가 인도주의에 우선할 수 없다
2021. 4. 30.
[이영일]세계관을 바꾸어야 미래가 보인다
2021. 4. 30.
(1)[이영일]우선 학계가 응수해야 할 동북공정의 도전
2021. 4. 30.
(1)이영일]이영일의 세번째 평양나들이
2021. 4. 30.
[이영일]“중국인들이 다시 압록강을 넘어 온다”
2021. 4. 30.
[이영일]중국은 6자회담의 방관자인가
2021. 4. 30.
중국도 북한핵과 미사일의 피해자일 수있다
2021. 4. 30.
중국은 언제까지 김정일 정권을 지원할 것인가
2021. 4. 30.
한중민간우호포럼, 북경에서 뜻있는 공감에 도달
2021. 4. 30.
중국 지식인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
2021. 4. 30.
북한은 중국의 내정간섭 형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2021. 4. 30.
(1)천암함 사태로 본 중국의 대북정책
202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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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 칼럼 글 목록
글 제목
작성일
(1)동아시아 전략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 중국을 묻다
2021. 4. 30.
이영일의 중국산동성 웨이하이 시 한중문화교류의 달 개막식 행사 참관기
2021. 4. 30.
[이영일]중국의 " 용미외교"
2021. 4. 30.
[이영일] 겸허한 자세로 호남민심의 의미를 수렴하라
2021. 4. 30.
대북송금, 정치로 풀자
2021. 4. 30.
노벨평화상에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2021. 4. 30.
[이영일]북핵해결의 길은 유엔제재결의의 성실한 이행뿐이다
2021. 4. 30.
(1)아프간 살리는 콩의 이름은 우리말 '콩'
2021. 4. 30.
광복절 65주년날에 감상한 오페라 투란도트
2021. 4. 30.
류근일 전 조선일보 논설주간의 재심청구사건에서 행한 이영일 증언
2021. 4. 30.
(1)동아일보 기고문 한국의 콩이 아프간을 변화시키고 있다(2010/10/14)
2021. 4. 30.
(1)적폐청산의 정치를 지켜보면서
2021. 4. 30.
북한의 戰力을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다.
2021. 4. 30.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의 천안함폭침사태를 주도한 북의 정치공세분석
2021. 4. 30.
주펑(朱鋒) 교수의 김정일에게 남은 선택은(퍼온글)
2021. 4. 30.
선한 사마리아인과 북한동포문제
2021. 4. 30.
연평도 패전과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
2021. 4. 30.
"자스민 혁명과 북한"토론에서 행한 이영일의 토론참가자로서의 발언
2021. 4. 30.
(1)평양에도 봄은 올 것인가.
2021. 4. 30.
(1)굶주림과 독재정권
2021. 4. 30.
6.25남침전쟁과 - 찬송가 363장에 얽힌 사연
2021. 4. 30.
북한 핵 폐기의 국제정치학
2021. 4. 30.
(1)최근 동북아 정세와 한국의 국가위기
2021. 4. 30.
[이영일]이영일 명예법학박사학위 수락연설전문
2021. 4. 30.
(1)박정희, 등소평 두 지도자의 고향 결연사업보고
2021. 4. 30.
(1)중국의 인권문제와 그것이 북한에 미칠 함의
2021. 4. 30.
(2)부러워할 만큼 발전하고 있는 兩岸관계(복건성의 샤먼)
2021. 4. 30.
한반도와 중국문제
2021. 4. 30.
호남대학교 중국유학생을 위한 이영일 총재 특강
2021. 4. 30.
한중어업 갈등 감상법
202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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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작성일
(1)두 날개로 비상하는 미국 경제, 비결은?
2021. 4. 9.
(1)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회장이 던지는 기쁜 소식
2021. 2. 15.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회장이 던지는 기쁜 소식
2021. 2. 10.
‘국민의 힘’을 위한 정책제언
2021. 2. 5.
중국 경제발전 패러다임의 변화 국내대순환의 배경과 의의
2021. 2. 5.
(1)손봉호 교수가 쓴 한국 개신교의 환부들
2021. 2. 5.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적(敵)이 아닌가.
2021. 2. 5.
김흥규교수가 본 당면한국외교의 딜레마
2021. 1. 12.
중국의 백신 수출 야망에 세계가 불안해하는 이유
2020. 12. 23.
미·중 갈등과 한국외교의 설 자리
2020. 11. 6.
국가원로회의 장경순 명예총재의 호소문
2020. 10. 25.
파탄직전의 한미동맹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추부길 박사)
2020. 10. 23.
돈대통령- 퍼온글
2020. 10. 21.
한국독립운동사의 맥락에서 본 항일전쟁승리70주년의 의의
2020. 10. 6.
대중국사대주의를 경계한다
2020. 10. 6.
(1)4.19혁명 60주년의 회고와 전망
2020. 10. 5.
4.19세대 인생80대이 자화상
2020. 9. 22.
대한민국건국사 바로알기
2020. 9. 22.
이승만 연설담긴 방송
2020. 2. 22.
문재인정권에 대한 내과적 진단서를 읽자
2019. 11. 28.
군경전사자추모합동집회
2019. 5. 18.
최진석의 철학적 돌파구
2019. 4. 1.
삼일절기념시
2019. 3. 27.
조중동의 반미선동
2019. 3. 12.
황교안 출마선언
2019. 1. 30.
통일이되면 무엇이 좋아
2018. 10. 3.
주목할만한 핵커박사의 해법
2018. 8. 11.
[시사웹툰 -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사람이 먼저라더니...세계 최고 금수저·인권탄압·갑질·끝판왕에 사랑해요 하트 뿅뿅
2018. 4. 29.
4.19혁명 58주년을 보내면서
2018. 4. 23.
한국에 정착하기가 脫北보다 더 힘들더라
201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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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 칼럼 198개의 글이박사 칼럼목록닫기
이박사 칼럼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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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한중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인가
2021. 4. 30.
(2)타이베이(臺北)에서 사라진 장제스(蔣介石)의 꿈 통일꾼활동/중국교실 2012. 3. 2. 15:40
2021. 4. 30.
중국의 정치개혁과 그 전망
2021. 4. 30.
한중수교 20년을 돌아보면서
2021. 4. 30.
한중문화협회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면서 통일꾼활동/중국교실 2012. 10. 14. 23:35
2021. 4. 30.
이영일의 한중정상회담 수행기
2021. 4. 30.
중국 칭화대학 옌쉐퉁교수와의 대화
2021. 4. 30.
중국의 난찡과 일본의 히로시마
2021. 4. 30.
(2)한국독립운동사의 맥락에서 본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의 의의
2021. 4. 30.
피아니스트 이희아(李喜芽)의 베이징 연주회를 참관하고 통일꾼의 삶과 꿈 2011. 11. 24. 00:04
2021. 4. 30.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추억
2021. 4. 30.
신수정, 나덕성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베토벤 소나타 공연을 보고나서
2021. 4. 30.
(1)Flutist 박지은의 수준 높은 연주를 듣고
2021. 4. 30.
(1)박영호 교수의 공산당 선언 새로읽기 출판기념회를 다녀와서
2021. 4. 30.
오재식 선배의 부음을 듣고
2021. 4. 30.
통일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2021. 4. 30.
楓石 徐有矩 선생의 傳記를 읽고
2021. 4. 30.
Canandian Rockies산록의 도시 Banff시에서 받은 감명
2021. 4. 30.
한겨레신문의 성유보 동문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2021. 4. 30.
4. 19 혁명 55주년 국립묘지참배를 마치고
2021. 4. 30.
전 思想界 사장 봉래 부완혁선생 30주기추도식을 다녀와서
2021. 4. 30.
4.19세대 인생 80대의 자화상
2021. 4. 30.
한반도2국체제와 공존질서의 제도화문제
2021. 4. 30.
전쟁불가론과 전쟁불가피론의 현주소
2021. 4. 30.
대한민국 70년 현대사를 제 위치에 올려야 한다.
2021. 4. 30.
4.19혁명 58주년을 보내면서
2021. 4. 30.
북한 비핵화의 길은 요원한가 통일꾼이야기/북한이야기 2019. 2. 22. 23:29
2021. 4. 30.
《대중국사대주의를 경계 한다》
2021. 4. 30.
4.19혁명 61주년을 보내면서
2021. 4. 20.
미 상원 외교위, 초당적 '중국견제법' 합의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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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 칼럼 글 목록
글 제목
작성일
(1)실학자 풍석 서유구 선생의 재발견
2014. 12. 4.
(1)통일은 매력국가가 될 때 가능하다
2014. 9. 12.
제8회 한중정치외교포럼 토론 종합 및 이영일 회장 발표요지
2014. 7. 30.
통일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2013. 6. 24.
박근혜정부의 집권기초는 단단한가
2013. 1. 31.
박근혜 대통령당선에 붙여: 우리는 또다시 국운상승의 전기를 맞았다
2013. 1. 1.
(1)Flutist 박지은의 수준 높은 연주를 듣고
2012. 10. 30.
(4)한중수교20주년을 되돌아 보면서
2012. 8. 9.
통일이익이 분단이익보다 훨씬 크다
2012. 7. 23.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희아의 베이징 연주회를 끝마치고.
2011. 11. 27.
평양에도 봄은 올 것인가.
2011. 10. 2.
좌파들에게 우롱당하는 '중도실용'정부를 개탄한다.
2010. 6. 20.
탈레반에게 호소합니다(한국일보 2007년8월 2일)
2007. 8. 4.
젊은 한국인들의 미국관은 건강하다
2005. 10. 16.
서울대학교는 지금 해체위기에 놓여있다
2005. 7. 9.
한국적 포퓰이즘 정치의 종언
2005. 7. 3.
시효 임박한 미국의 대만카드
2005. 5. 20.
북핵문제를 중국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2005. 3. 3.
30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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