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전라북도 익산군이며 500세대 중 30세대가 일본인이었던 완주군 이마무라 농장에서 성장했다 고향은 한국 국적은 일본 자신이 뱉는 한국말이 전라도 억양인 줄도 모르는 노년의 일
본인 그가 바로 재일일본인在日日本人 자이니치 자파니즈이다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라는 이 아이러니한 호칭은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결과로 발생한 일본의 이질적인 구성원 문제에 기인 했다 재일교포 지문날인 거부 사건과 함께 한일 공통의 경계인 문제로 부각된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로 건너가 식민자로 살았 거나 그 부모로부터 태어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패전이 되어 쫓겨난 사람들 우린 과연 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연의 시작
전라도가 고향인 재일在日 일본인 이야기가 현실감이 없다면 강점기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본정소학교인 현재의 종로 초등학교를 다녔던 한 일본인을 만난다면 어떠할까 2007
년 11월 29일 오카다 다카유키岡田隆之라는 일본애견연맹JKC의 유명한 애완견미용사 사범이 대구를 방문했다 지인을 통해 전달받은 메일에는 고향이 대구 중구 수창 팔중원정이라고 합
니다 노인께서 처음이자 마지막 고향 방문인데 태어난 집을 찾고 싶다고 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고향방문이라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런 기구한 사연을 가졌을까 게다가 태어난 곳이 강점기 대구의 팔중 원정八重垣町이라면 현재 중구의 도원동자갈마당 유곽촌이
라니 대구출신 자이니치 자파니즈의 출생지를 찾아주면서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그가 태어난 고향인데 왜 패전 이후 62년이 지나서야 처음 방문하게 되었고 또 이번 방문을 위해
4년을 준비 했다고 하며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을까
오카다 다카유키78 씨는 식민자 3세다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1910년 즈음 대구에 정착했고 영화관을 운영하다 후에 과수원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현재의 팔중원정에서 게이샤 유곽
大江梅를 운영했다 사창가의 게이샤집에서 태어난 그가 100년 가까이 변함 없이 성매매가 이뤄지는 이곳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만감이 교차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부모 잃은 아이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지만 도원동 할머니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게 되고 얼굴에 웃음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에
게 고향은 무엇이고 나라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해석하기 머뭇거려지는 그들의 시간여행
그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해서 필자는 상당한 숫자의 대구 출신 자이니치 자파니즈들이 대구를 다녀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태어났던 삼덕동 고향집을 찾아 부모가 심
어준 그 나무를 붙잡고 울었던 한 일본인의 이야기 패전 후 북성로 집에 보물을 묻어두고 그 보물을 담보로 일본에서 돈을 빌렸던 일본인이 있었고 그가 빚을 갚지 않자 채권자들이 찾아와서
북성로를 뒤집었던 사건들 그들에게 대구는 어떤 곳이었을까
성명 오카다 다카유키岡田隆之
출생연도 1935년소화10년 1월 2일 현 78세
현주소 岡山縣오카야마현 岡山市오카야마시 御津紙工 2679번지
출생지 조선 대구부 팔중원정야에가키쵸 현 도원동
이사간곳 태평로주차장 건너편 경부선 옆 목조 다다미집
학교 본정심상소학교1942년 입학해 당시 5학년까지 다님
오카다 다카유키 씨의 부모도 같은 선생님 밑에서 수업을 들었다 함
아버지 오에 마사다카大江正隆데릴사위로 가서 장인의 성을 따름
달성관達成館라는 유명한 여관에 불이 나서 사망
어머니 大江雪江외할아버지는 철도회사 근무했다고 함
할아버지 오에 류타료大江隆太郞대구에서 과수원 운영 대구에서 사망
할머니 팔중원정에서 게이샤 유곽 大江梅 운영 패전 후 일본 건너감 양부 岡田勝雄오카다 카츠오 은행원이었다가 그만두고 재산이 많았음
양부의 형제 오카다 이치로 岡田二郞 달성관達成館 요리집 운영자
양부의 형제 오카다 키하치岡田 喜八 주먹쓰는 사람이었고
철도수리회사 오카다조岡田組운영
2013년 5월330호
대구 시간여행 4 어느 자이니치 자파니즈의 대구시간여행 권상구
월간 대구문화
2013 4 24 1054 이웃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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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대구문화
3/4/25, 1:44 PM 대구 시간여행 4: 어느 자이니치 자파니즈의 대구시간여행/ 권상구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cu1985/185961392 1/6
대구본정소학교를 1943년 졸업한 일본인동창생들이 공동으로 그린 소학교 교구지도
더욱더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대구종로초등학교에 가면 이 학교를 졸업한 자이니치 자파니즈들이 모여서 만든 대구본정소학교 동창회 명부가 있다 이 안에 충격적인 지도
가 한 장 들어있다 1943년에 졸업한 일본인 졸업생들이 4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위의 지도를 공동으로 그려 낸 것이다 본정소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거주 범위
를 담았고 북성로 중앙로 약령시 서문로에 빼곡히 적혀있는 당시의 상점 정보 들은 강점기를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런 기억들을 끄집어내 대구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을까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에서 발간한 스기야마 토미杉山とみ 구술열전에서는 더 충격적인 증언이 이어지고 있었다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사범을 나오고 달성 소학교현 달성초등
교사를 지냈던 스기 야마 토미는 패전 후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제자였던 KJ의 도움으로 도야마로 귀환 하게 된다 이후 KJ와 제자들의 초청으로 달성학교를 1976년 다시 방문하게 된다 그
녀는 대구의 제자들에게 그때 사과 하러 갔지만 다른 제자들이 CJ는 안 왔고 그가 스기야마 선생님이 무슨 낯으로 올 수있냐며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전해줬다고 한다 다음에 재차 그녀가
대구에 방문했을 때 CJ는 앞장서서 반겨주었고 그녀에게 신사 참배가 싫었고 나막신의 끈이 발에 스쳐서 피가 나고 아파서 그때의 기억에 한이 맺혔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일본인
들의 고향 방문은 그렇다 치고 한국인들은 왜 국적을 넘어 일본인 스승과 제자관계를 이어가고 있었을까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한일 관계와 피부로 접하는 한일 관계는 이렇게 차이가 있었
던 것일까
유곽촌에서 고향집을 찾던 오카다 씨를 만나면서 시작된 자이니치 자파니즈에 대한 이해는 진솔하고 솔직한 여자 모리 사키 카즈에森崎和江를 만나면서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모리사키 씨
는 1927년 대구출생 대구고등여학교를 나오고 아버지가 경주 중학교에 부임하고 경주에 살게 된다 어머니가 그녀가 14살이 되던 해 암으로 사망하면서 경주가 그녀에게 가슴에 맺히게 된
다 그래서 경주만 생각하면 어머니가 생각 나고 어머니만 생각 하면 경주가 생각난다는 이야기를 담은 경주는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라는 책을 쓰게 된다 아버지가 조선인 편을 들어 친한파로 분류되어 감시를 받았고 부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로 그 마음이 용기를 주어 자이니치 자파니즈로서의 애환을 이 책에 쓰게 된다
『나는 실향민이다 1945년 패전하고 고향을 잃었다 고향은 본래 있어야 하지만 나의 고향은 타 민족으로부터 빼앗은 영토였다 어릴 적부터 토함산을 바라보고 살았고 왕릉 사이로 클로버
꽃을 땄고 계림의 가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아래 산책을 하기도 했다 분황사 석탑 뒤에서 없어진 강아지를 찾기도 했다 일본침몰이라는 SF영화가 유행했지만 나는 어디로 이주할까
생각해봤다 한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방인 왜놈이 사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말이다 … 비록 생활습관이나 민족의식에 있어 한국인과 비교가 못되는 거리가 있지만 특정한 조선인이
나 불특정한 조선인과의 사이에서 통하고 있었던 신뢰는 지금에 이르러도 지울 수 없다 나라는 어린이의 마음에 비치고 있었던 조선은 어머니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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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대구문화
3/4/25, 1:44 PM 대구 시간여행 4: 어느 자이니치 자파니즈의 대구시간여행/ 권상구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cu1985/185961392 2/6
2007년 오카다에서 시작된 그 인연은 젊은 연구자 마츠이 리에를 통해 모리사키 카즈에 경북대 박현수 교수를 통해 스기야마토미 후루가와 쇼에이까지 이어졌다 오카야마에 거주하는 대
구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발간한 후루가와 쇼에이에게 2013년 전화 연락을 해 보았지만 그는 전화상으로 영남대 최범순 교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너무 늦게 연락을 하신 거 같아요 우리
가 지금 만나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오늘도 고향 대구를 찾는 자이니치 자파니즈들의 조용한 방문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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