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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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25일 위장취업(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2번째 구속이 되어 서울 남부 구치소에 수감이 됐는데, 1986년 첫번째 구속 때(독방)와 달리 7~8명의 경세 사범과 같이 합방이 됐다.
경제 사범은 천차만별이었다. 술(대략 10만원어치) 먹고 돈을 안낸 무전취식범도 있었고(제일 구박을 많이 받았다), 어떤 할매의 고소로 혼인빙자 간음 혐의로 들어온 60대 한량(?) 난봉꾼(?) 할배도 있었고(일제시대 주재소에 끌려간 이력도 있었다), 어음인지 수표인지 아무튼 부도 내고 도망다니다 불심검문에 걸려 잡혀 온, 중소기업을 2개쯤 거느린 범털 회장(?)도 있었다. 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두어달 같이 보내다가 나중에 독방으로 옮겨 출소 했다.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 7~8명과 24시간 같이 있으니, 참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1980년대 집시법 등으로 감옥 갔다 온 이른바 시국사범들(대체로 선망하는 대학 학생)은 대체로 색깔이 다른 명찰을 달고, 특별 대우 내지 관리를 받았다. 재소자들은 자신들은 잡범으로, 우리는 장래가 촉망되는 독립지사라 하였다. 자신들은 징역을 살고, 우리는 옥고를 치르신다고 했다.
돌아보면 시국사범은 정말 허접했는데, 당시 국가와 사회는 우리를 너무 과분하게 대우해 주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 시국사범은 대체로 집시법 위반이 많았는데, 그 이후는 국보법, 폭처법 등이 더 많았던 것 같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어거지로 좌경용공 사범이었다면, 그 이후는 진짜 좌익이요, 반대한민국 사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동 농민 빈민 운동가들도 처음에는 빼앗긴 권익을 찾는 데 크게 일조했지만, 기여에 비해 과도한 몫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중소기업, 비정규직, 미래세대 등 진짜 약자의 권익을 억압하는 조폭적 존재로 바뀌었다. 시국사범 대부분이 국제정치경제도 문외한, 경제산업기술도 문외한이었다. 도대체 국가를 책임질 수 없는 지성도 덕성도 없었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운동권(학생)의 어마무시한 허물 내지 그늘에도 불구하고, (운동권의 짙은 그늘이 아니라) 그 빛(양지)에 주목하였다. 1980년대 이후 문재인정권 중반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건국과 산업화의 짙은 그늘을 해소하려면, 아무리 허접할 지언정, 운동권의 용기와 정의감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다수의 이런 판단이 1987년 이후 민주진보개혁 등으로 자신을 포장해 온 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도록 만들었다.
당시 공안기관과 사법기관은 운동권을 사법적 잣대로 처벌을 했으나, 국민의 잣대는 달랐다. 대부분 정치적 사면은 물론이고(그래서 일종의 훈장이 되었다), 사법적으로도 사면됐다.
돌아보면 운동권은 그 역량, 업적, 지성, 덕성에 비해 과분한 평가와 보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를 감사하고, 성찰하고,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르니 급기야 대한민국을 말아 먹는 선봉이 되었다.
다 아는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윤통을 보는 시각 때문이다. 윤통도 1970~80년대 운동권만큼 허물이 많은 존재이다. 강렬한 빛만큼이나 짙은 그늘을 가지고 있다. (윤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책을 2권을 썼으니, 그 허물과 그늘을 논하라면 아마 메달권에 들 것이다)
나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많은 보수 논객들이 윤통의 행태(정치, 정책, 인사, 발언 등)에 이를 갈면서, 탄핵을 주장하고, 확신하고 있다. 마치 과거 공안기관들이 운동권을 단죄하듯이! 그런데 국민 상당수는 전혀 다른 쪽을 보고 있다.
그래서 윤통의 최종 변론문에 크게 공감한다. 불법에 불법에 불법이 중첩되고, 무리에 무도에 무뇌가 중첩된 사법처리 절차에 분노한다. 1987년 이후 민주진보좌파가 주도적으로 만든 시스템과 문화와 리더십이 썩어 문들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윤통을 지지하고 성원하게 된 것이다.
탄핵을 확신하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심판대 위에
- 윤통의 죄 내지 허물 하나만 올려 놓고, 격분하면서 상응하는 벌을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의 절반은 심판대 위에
- 윤통의 죄 내지 허물과
- 이재명-민주당-공안기관-사법기관-언론의 그것과
- 모순적이기 이를데 없는 시스템(1987 체제)과
- 후진적 문화 등을
동시에 올려 놓고 정의의 칼이자, 국익의 칼을 어떻게 휘두를 지를 고민한다.
탄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저울 위에 2개의 거대한 허물 내지 죄악을 올려놓고, 균형감을 가지고 국가사회 발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에 한번 답해 보시라. 이들은 부정선거론에 현혹된 정신없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하지 마시고.
작년 12월부터 지인들과 탄핵 이후 정국을 전망하고,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모색하는 토론을 많이 했다. 지인 대부분은 100%, 200% 탄핵 인용을 점쳤다. 하지만 나는 12월에는 기각 가능성을 10~20%라 했고(그래서 미친 놈 취급 받곤 했다), 한총리 탄핵과 불법무도한 체포 구속을 보면서 그 가능성을 50~60%로 올려 잡았고, 이진숙 4대4를 보면서 70~80%로 올려 잡았다. 지금은 이 가능성을 더 올려 잡았다.
내가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프레임은 1980년대 운동권을 바라보던 국민 다수의 프레임이다. 당시는 국민 다수는 건국과 산업화에 대한 피로감과 짙은 그늘에 절치부심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민주화 내지 1987년 헌정질서에 대한 피로감과 짙은 그늘(썩어 문들어졌다)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내가 인용 가능성을 점점 낮춰 잡은 것은, 곪을대로 곪은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과 리더십), 경제, 사회, 문화 속살 내지 바닥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이를 연구소(좋은 컨텐츠 생산) 활동으로 바로 잡아 보려고 별 지랄발광을 다 해 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윤통이 친 사고 보다 훨씬 심각한 사고를 많이 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윤통 구속 취소는 예상한대로 묵과할 수 없는 절차적 하자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필귀정이요, 만시지탄이다. 탄핵 심판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체적 진실(정의)는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데, 절차적 하자는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결정에 따른 국익도 8대0 각하가 제일 크고, 그 다음이 기각이다. 인용은 엄청난 국익 손실이다. 아니 민주공화국의 존립이 위태롭다. 온 국민이 경악한 그 많은 불법무도함들이 몽땅 면죄부 아니 월계관을 쓰기 때문이다.
각하나 기각으로 생길 국익은 엉망진창인 공안기관, 사법기관, 선관위, 언론기관에서 법과 상식이 통하게 만들고, 정치인 재판이 일정대로 가게 하여 민주당과 국회를 정상화하고, 무엇보다도 좋은 헌법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제일 좋다는 것이다.
2026년, 27년, 28년에 있을 선거도 비교적 생산적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첩첩히 쌓인 경제, 산업, 고용, 재정, 의료, 연금, 지방, 인구 문제등은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지 모르겠다. 윤정부도, 민주당도 공히 고민도 깊지 않고, 지혜도 모자라고, 당연히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시국에서 문제의 핵심은 국민이 사용하는 저울과 칼의 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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