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연구에 있어서 거듭되는 근본적 오류는 두가지. 첫째, 사회경제적 변화가 새로운 정치 세력을 창출한다는 오류. 둘째, 유학사상과 정치사를 직접 연계하여 사유한다는 오류이다.
첫번째 문제는 서구 학계의 철지난 이론의 반복에 불과하다. 형성된 경제적 기반의 차이에 따라 정치세력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주장은 마르크스의 계급론이나 하부구조론에 가깝다.
과연 그럴까? 서양사의 통념을 그대로 옮긴다하더라도 우선
#종교개혁 의 경우 경제적 기반보다는 신학적, 교리적 성격이 훨씬 강하며 무엇보다 중세의 전통과 교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반발이 크다. 이후 독일의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정신혁명에 가까운 종교개혁 전통은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신의 변혁이 문화의 창출로 이어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또하나는
#프랑스대혁명 인데 부르주아세력 형성의 경우
#신대륙발견 부터
#중상주의 로 이어지는 강력하며 질적인 사회변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해야한다. 즉, 16세기 이후 유럽사회의 근대를 향한 구조적 변동은 매우 이례적인 역사현상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는 부르주아와 귀족의 성격 구분에 한계를 느끼며 혁명을 내란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퇴행적 해석 또한 계급기반에 대한 회의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여하간 이 기준을 가지고와서
#신진사대부 #사림파 등에 적용하는 것이 가당키나할까. 원나라에서 명나라로의 이동은 위진남북조에서 수당으로의 변화에 가까울까 서양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에 가까울까?
정치적 목표와 이념적 이상을 등치시켜 이론화하고 그것을 혁명에 적용시키는 행태는 19세기말에나 등장을 했고 이 조차 유럽역사에서 제대로 관철된 적이 없다.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미헬스 의
#정당론 은 이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즉, 경제기반론을 배제한 관점에서 여말선초, 조선 전기 사회개혁의 원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주장은 바로 두번째 문제와 이어지는데
#성리학 이 혁명사상이었냐는 주장이다. 앞선 주장이 경제결정론적 태도라면 후자는 전형적인 형이상학적 오류이다. 이 주장의 맹점은 성리학을 공부한 정치인들이 과연 오롯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정치를 했느냐이다.
#이색 이
#이성계 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강화하려던 시도,
#정도전 이 역성혁명을 위해 이색, 이숭인등 스승과 동문을 처형하려했던 시도. 이런 것들에 성리학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철학 정치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진적이 없다. 정치는 매번 스스로의 정치 논리를 만들어내며 사상은 종종 현실을 합리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리학이 역성혁명이나 사림정치에 미친 영향에 대한 보다 섬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기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여말선초와 조선 전기의 정치가들이 모두 도학정치를 실현하려 애썼다는 식의 발상은
#비스마르크 가
#칸트 의 사상을 정치에 실천했거나
#카터 가
#복음주의 를 정치에 오롯이 구현했다는 말과 꼭 같다.
전통사회의 사회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100년전 이론을 들고와서 그것을 학술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배척해야할 태도이다. 또한 소위
#덩컨 식의 사고방식. 계급변동이 없었으니 사회변화도 없었다는 식으로 조선 500년간의 역사를 단순화시키는 것. 아마도 최근에는 이게 유행인듯한데 이런 태도는 신화를 까발리는데는 유용하지만 입론을 하는데는 완전히 무용하다. 이런 식이라면 역사는 매번 반복되고 역사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좀 더 치열한 이론적, 실증적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