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4

한국 민둥산에 나무 심은 일본인 < 자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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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둥산에 나무 심은 일본인
기자명 홍승기 변호사·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
입력 2025.04.30 
홍승기

달포 전에 망우리 공원에서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의 94주기 추모행사가 있었다. 다쿠미는 1914년부터 홍릉 임업시험장 기사(技士)로 근무하며 조림사업에 헌신한 인물이다. 1931년 4월 식수일(植樹日) 행사 준비 중 과로로 세상을 떴다. 아까운 나이 41세였다.

유언에 따라 조선식 장례를 치른 후 조선 땅에 묻혔다. 현재 묘비의 비문은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다쿠미의 추모식을 전하는 연합뉴스 기사에 묘한 문장이 보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당시 일본의 목재 수탈로 황폐했던 조선의 산들은 다쿠미의 노력 덕에 푸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과연 1914년 무렵 한반도의 산이 일본의 목재 수탈로 황폐했던 것일까?

1898년 부임한 미국 외교관 샌즈(W. F. Sands)는 서울의 산이 얼마나 황폐한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 무렵 외국인의 카메라에 담긴 인왕산은 소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민둥산이다. 조선사회는 18세기에 이르러 임진왜란의 충격에서 벗어났던지 인구가 늘기 시작한다. 소빙하기(small ice age) 영향으로 온돌 이용이 확대되자 난방용 땔감 수요가 급증했다.

정약전은, 백성들이 온갖 꾀를 내어 단체로 산에 올라 푸른 산을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벌거숭이로 만든다며 무력한 금송정책(禁松政策)을 격하게 비난했다. 빈곤층의 화전 개발도 남벌(濫伐)을 재촉했는데, 임진왜란 시대 인물인 유성룡이 이미 ‘산허리 이상의 화전 경작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대한제국은 1908년 통감부 요청으로 삼림법을 공포하고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통감부의 삼림법은 총독부에서 산림령으로 바뀌었다. 실태 조사보다 산림녹화가 시급하다고 각성했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관리가 불량한 국유림을 민유림으로 바꾸면서, 종자와 묘목을 개발하여 대량 보급했다. 병합 다음 해에 4월 3일을 ‘식수일’로 정했고, 1907년부터 1942년까지 82억1500만 그루를 심었다. 총동원령으로 어수선한 시국에도 산림녹화 사업에는 애착이 강했다.

그 정책의 바닥에 아사카와 다쿠미가 있다. 그가 이룬 잣나무 양묘(養苗) 기술 덕에 인공조림의 37%를 잣나무 묘목으로 대체할 수 있었고, 그가 혁신한 사방(砂防) 기술은 일본에까지 전파됐다(이대근 <귀속재산연구> 202쪽 이하). 그런데, 1914년에 목재 수탈로 조선의 산이 벌거숭이가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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