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농 선생과 한살림 마을 /
몇 해 만에 인농(仁農) 선생의 묘소에 참배했다. 오늘 충주 우경 김상덕 선생 1주기에 참석하려 가는 길에, 하루 먼저 나서서 괴산의 오랜 동지인 조희부 선생과 함께 인농 선생의 묘소에 참배한 것이다.
인농 박재일 선생은 세상에는 한살림 운동을 창립한 생명운동가로, 이 땅의 생활협동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분이지만, 나에게는 이번 생에서 맨 처음으로 형님으로 모셨던 분이다. 그 형님을 통해 당신의 스승이셨던 무위당을 나의 스승으로도 모시게 되었다.
내가 농민운동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인농 형님을 통해 가톨릭농민회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형님을 만난 뒤부터 가농운동과 한살림운동, 우리밀 살리기 운동, 귀농운동, 생태산촌 만들기 운동 등을 함께해 왔다. 인농 형님이 하시는 일을 내나름으로 돕고자 했고,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형님께서 지지하고 이끌어 주셨다. 그렇게 형님은 이번 생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인연으로 형님을 보내는 길에 호상을 맞아 이곳에 유택을 마련하는 일에도 함께했다.
형님의 묘소 앞에 잠시 엎드려 있는 동안, 형님과의 지난 인연들이 한순간 스쳐갔다.
‘인농(仁農), 어진 농부’라는 그 이름은 스승 무위당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선생은 생전에 당신이 가꿀 수 있는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했지만, 그는 이 땅의 가장 큰 농부였다. 그래서 형님의 1주기 때, 묘소 앞에 작은 표석을 세우면서 그 돌에 새길 짧은 글을 이렇게 썼다.
“그는 이 땅의 큰 농부였다. 살림의 오롯한 한 길에서 스승 무위당과 함께 ‘한살림 농산’을 만들고, 자신과 온 세상을 갈아 생명의 큰 밥상을 마련했다.
그의 뜻은 이제 여럿이 함께 걷는 큰길이 되었다. 생명과 이웃에게 한없이 겸손했던 그는 ‘한살림답게’라는 말과 더불어 "한살림"의 영원한 벗이다.
2011년 8월 29일 1주기에”
이 표석의 글씨는 이철수 화백이 썼는데, 이화백이 남한강에서 자연석을 어렵게 구해 온 것이다.
선생의 묘소는 괴산의 한살림 마을 곁에 모셔져 있다. 선생이 생전에 한살림 연수원과 한살림 마을을 만들고자 마련해 두었던 부지 뒤편 산자락에 유택이 모셔져 있는데, 그곳에서는 이웃한 한살림 마을이 잘 바라보인다.
지금 이곳 한살림 마을은 한살림 활동가였던 이들을 중심으로 30여 가구가 조성되어 있다. 한살림 마을 입주 조건이 한살림 활동가들에게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소박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집집마다 텃밭이 함께 있는 이 마을은, 분양받은 터에 저마다의 취향으로 지은 다양한 형태의 집들과 정성스레 가꾼 정원과 텃밭의 모습들이 서로 어울려, 여느 마을과는 다른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심과 살림의 ‘한살림하는’ 이들이라는 공통의 지향이 이 마을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하겠다.
마을의 들머리, 개울을 지나는 다리의 이름이 인농교(仁農橋)이고, 이 길의 이름이 인농길이다.
인농 선생 생전에 이 마을이 이렇게 가꾸어진 것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희부 선생은 “이런 한살림 마을을 전국에 최소한 30개는 만들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을 새삼 이야기한다.
이곳에 한살림 연수원과 한살림 마을 부지를 마련하는 것과 인농 선생의 유택을 이곳에 모시는 일들을 대부분 조희부선생이 주도했다.
우리는 70년대부터 인농 선생과 더불어 가농운동, 한살림운동, 귀농운동 등을 함께해 왔다. 조선생은 학교를 졸업한 뒤 운동의 현장을 농민과 농촌으로 삼고 곧바로 이곳으로 뛰어들어 이곳 괴산 눈비산 마을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데, 어느새 50여 년이 흘렀다. 지금 이곳 눈비산 마을은 한살림의 주요생산지이자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연수원이기도 하다.
저녁 식사 자리는 조 선생 부인이신 여강 선생과 괴산의 토박이 농민운동가이신 이재화 선배님, 지금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애쓰고 있는 차광주 대표와 함께했다. 조선생이 미리 자리를 주선한 것이다. 여강 여사는 몇 해 전에 큰 병을 앓아 고생을 했는데, 다행히 이제는 완치되셨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잠자리는 눈비산 마을에 마련했다. 이곳 연수원 숙소 또한 50년에 가까운 지난 세월 동안 숱한 만남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새삼 감회가 새롭다.
그렇게 함께 했던 인연들 가운데 먼저 떠난 분들이 대부분이고 이제 몇 사람밖에 남지않았다.
남은 우리들이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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