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여자… 아직도 교수직 유지하고 있는가요?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서 숨 쉬게 되었을까…ㅠ 청산해야 할 친일의 잔재들…."
2015년 2월 17일은 박유하 당시 세종대 일어일문학 전공 교수(현재 명예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이하 '제국')에 대한 출판금지 가처분이 일부 인용된 날이었다. 출간 10개월 만인 2014년 6월 위안부 피해자 9명이 자신들을 '매춘부' 등으로 매도했다며 박 교수를 고발한 뒤 첫 번째로 나온 결과였다.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관련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이처럼 언급했다. 소셜미디어(SNS)에 능했던 이 대통령의 일상다반사 촌평이겠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제국' 논란의 핵심적 단면을 압축해 보여준다.
'친일'. 정의기억연대의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서 출판금지를 신청한 뒤 따라붙은 멍에다. 박 교수는 출간 당시나 지금이나 해당 책은 위안부 문제의 복잡한 구조를 분석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서술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교수직 유지'. 학문과 표현의 자유 문제도 큰 쟁점이었다. 박 교수가 불편한 서술을 했다 하더라도, 해당 책이 금서가 되거나 저자가 교수직을 박탈당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 여자'. 이 대통령은 박 교수를 비난하려 성별을 구분하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제국'에는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 대만인 등 여성을 착취하는 식민지 구조를 지적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이 담겼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후 이 대통령은 '이 교수라는 사람'으로 해당 표현을 수정했다. 무엇보다 책을 둘러싼 논란이 충분한 '독해' 다음 이뤄졌는가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당시 페이스북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박 교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댓글로 누군가 '책을 읽어봤냐'고 묻자 "똥은 안 먹고 냄새만으로 안다"고 응수했었다.
박 교수는 10년이 넘는 송사 끝에 2024년 4월 민사, 2025년 2월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책에 대한 논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2025년 7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해당 출판사와 박 교수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하려던 것이 반발 끝에 무위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윤미향 사태 등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선을 조금은 달리 볼 가능성이 열린 지금, 그의 문제의식을 재확인하고 논란이 된 책의 내용도 묻고자 했다. 미국 시카고에 체류하는 박 교수는 최근 그간의 송사와 논쟁과정을 정리한 '11년:꽃다발과 화살'을 출간했다. 그를 지난 12월 23일(한국시각) 오전 화상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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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서를 쓴 저자로 사는 기분은 어땠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책, 나아가 한국을 좋아하던 일본인들이 혐한으로 돌아서는 걸 보며 쓰기 시작한 책이다. 출간 이후 열 달간은 제대로 읽혔다. 처음엔 경향신문이 한 면을 전부 써서 긍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발을 당하면서 짜여진 프레임으로 10년을 산 셈이다. '그런 책이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시정되지 않아 괴로웠다."
- 연구 결과물로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단순히 비난을 받은 게 아니라 엄청난 오해가 있었고, 그 오해를 10년간 풀지 못했다. 서서히 조금씩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다 재판부가 마지막에 그 대열로 합류한 것이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일본에서 일문학을 전공했다. 일본 사회를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쓰게 된 동기가 있나. "2001년 역사교과서 문제가 있을 때, 이 문제와 관련해 활동하던 일본의 진보적 학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다가 꼬인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전후 일본 사회는 사실 반성적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이 하나도 안 변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고 국민들도 그렇게만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2005년 '화해를 위해서'에서 전후 일본에 대해 설명했고 한 챕터에 위안부 문제를 할애했다. '제국'에서 썼던 여러 핵심은 거기에 이미 다 있으니, 문제 제기는 20년 전에 이미 한 것이다."
"비판도 뭘 알아야 할 거 아닌가?"
박 교수는 2012년 초 이런 기사를 접했다. '일본 관료가 청와대에 와서 보상안을 논의했지만,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이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정부 관계자가 난색을 표했다'. 이것이 그가 일본어로 집필하다 한국 사회에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였다. 청와대가 할머니들이 아닌 지원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일본의 제안을 거른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앞서 말했듯 전후 일본의 아카데미즘은 진보좌파가 이끌어왔고, 당연히 식민지 지배에 반성적이었다. 이런 것을 알아야 비판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박 교수는 2013년 7월 책을 낸 뒤 2014년 6월 고발당했다. 최초 소장의 요지는 "책에서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 했는데, 심포지엄 등 활동을 지속 중이니 이대로 놔두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박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집회를 동시통역한 1991년 이래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고, 출간 이후에는 할머니들을 인터뷰해 직접 보상금을 받고 싶다거나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는 등의 목소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인식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박 교수의 책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대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정대협에서 출간한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을 인용한 내용과 정대협에 대한 비판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박 교수가 내놓은 해석이 삭제 요청의 대상, 명예훼손 주장의 근거가 됐다.
- '위안부는 홀로코스트와 다르다'는 주장도 했다. "지원단체들이 홀로코스트와 비견하면서 운동을 했고 이에 대해 비판했던 거다. 홀로코스트는 민족 절멸인데, 조선인은 일본 식민지배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절멸시킬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민족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배란 민족 절멸이 아니라 포섭해 '사용'하는 구조를 갖는다."
- 소녀상에 대해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했다고 했다. 강제동원과 할머니들의 투쟁을 표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투쟁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소녀상은 수요집회 1000회 기념인데, 과거의 위안부를 기린다기보단 현재의 운동 기념이었다. 저항하는 독립군과 같은 이미지를 담았지만 그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이상적 모습으로 표상하는 것은 과거에 국가에 이용당한 이들을 다시 한번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 일본군과 위안부 여성이 연애했던 사례를 인용해 '동지적 관계'란 표현도 썼다. 식민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서술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 일본의 책임을 묻는 논리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거다. "일본 책임을 희석시킨다는 논리 끝에는 실은 '불법이 되지 않는다'가 있다. 불법이 되지 않는다, 불법이 되지 않으면 배상이 되지 않는다, 배상이 되지 않으면 나중에 북한이 북·일 수교를 할 때 배상금을 받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1965년 한국이 어정쩡하게 독립 축하금을 받아 식민지배 문제를 대충 때웠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중 일부가 북·일 수교 때 한국이 못 받은 법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위안부 문제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물론 그 생각을 처음 한 건 북한이다."
- 일본 다수 대중의 설득도 고려했나. "처음부터 그 목적이었다. 한국어판을 낸 후에 바로 일본어판을 준비한 이유다. 당시는 일본이 1990년대 시작했던 보상도 끝나 2010년 한·일 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에조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한·일 양국에 거의 없었다. 남은 일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당신들이 잘못한 게 있다고 써야 하지 않나.
하지만 '(일본군과 위안부 사이) 좋은 관계가 있었다'는 게 무슨 설득을 위해서는 아니다. 예를 들면 여러 증언이나 다큐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게 할머니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현실만이 아닌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는 걸 말하려고 쓴 것이다. 지원단체는 오랫동안 '전쟁범죄'라고 했다. 일본과 전쟁을 해서 적군 여자를 강간했다는 식의 인식을 기반으로 위안부 문제를 풀려 했다."
- 그게 아니라면.

"법적 사죄만이 최고의 사죄인가?"
박 교수는 위안부는 물론 과거사 문제에 대해 "법적 사죄만이 최고의 사죄냐는 질문을 지금까지 해온 것"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한·일 간 역사적 이해의 접점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서 '사죄 의식'을 더욱 가졌던 것은 1990년대였다고도 덧붙였다. '사실과 다른 비난'으로만은 일본 사회가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말씀대로라면 과거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상당부분 뒤집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실 일제시대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기 시작한 건 최근 30년밖에 안 된다. 그리고 그 시기 담론을 이끈 것은 진보좌파다. 그 이전엔 목소리를 못 내던 사람들이니 당연하다. 그 자체야 시대적 필연이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 인식조차 좌파 중심이 되었다는 게 문제다.
지난 여름 탁현민씨가 만든 광복절 포스터 시안을 보니 해방이 독립전쟁을 해서 된 것처럼 그렸더라. 사실 여부를 떠나 그건 북한의 인식이고 결과적으로 반쪽 역사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부분은 부정하고 깊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 최근 30년이다. 양쪽을 온전히 보는 게 불편하더라도 그걸 넘어서야만 제대로 우리 역사를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물에 흘려보내자'는 건 절대 아니다. 과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함께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한·일 과거사 문제는 '사과'와 '배상'으로 쳇바퀴를 돌고는 한다. 강제동원 관련 문제도 진상규명이 어려워지는 배경이기도 한데. "십수 년 전에는 유골 봉환 사업 같은 것에도 일본 정부가 적극 참여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한·일 관계가 어그러지며 그것도 중단됐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야 하는데, 우선 당사자들은 다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사자들끼리 합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목소리 큰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틀에서 보상이든 사죄든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여러 저술을 한 것이다. 일단 사태 자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매개자'들의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의 대변인들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 측과의) 매개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 '뉴라이트' 사관이란 비난은 어떤가. "나는 정의기억연대 중심 학자들과 이영훈 교수 등 뉴라이트라 불리는 이들의 주장을 양쪽 다 일정 부분 평가한다. 다만 양쪽 모두 현재의 정치를 위해 역사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학문이 운동에 종속된 측면이 있다. 진보 쪽 어떤 학자는 '연구가 안 된 상태에서 문제가 일어나니 운동을 따라간 측면이 있었다'고도 했다."
- 지난 10년간 본인의 책이 한국 사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나. "그토록 문제시되면서도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지만 읽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줬다. 2015년에 한·일 합의가 있었는데, 고발자 주변인들은 한·일 합의가 내 책 때문인 것처럼 비난했다. 나는 나대로 한·일 합의가 양국 국민적 합의나 이해 없이 갑자기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상당수 할머니들은 합의를 기반으로 보상금을 받았다.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받은 할머니들도 많으니 두 번 받은 분들도 있다. '제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는가 묻는다면, 비판자들이 '한·일 합의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니 그런 측면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겠다. 최소한 일본인들이 위안부를 식민지 지배 문제로 이해하고 사죄 의식을 갖게 했다고는 생각한다."
- 10년 넘게 이어진 논쟁과 재판으로 잃은 것과 얻은 것은. "잃은 건 너무나 많다. 경제·시간적 손해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내 명예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무죄 판결이 났을 때도 진보 언론은 단 한 곳도 긍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았고, 그저 '학문의 자유로 유죄를 피했다'는 식의 보도만 나왔다. 하지만 판결 요지는 '원고 측이 주장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였다.20년 전만 해도 한겨레에서 대담도 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진보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렇다. 만약 패소했으면 나는 파면당하고 (교수) 연금도 못 받았을 터인데도 고발자들과 주변인들은 원고 측을 지지했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덕에 한국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윤미향 사태는 어떻게 봤나. "윤 전 의원은 지금 사면돼서 활동을 하고 있고, 나를 고발했던 나눔의집 소장도 횡령죄로 2년 반 징역형을 받았다가 2년만 살고 나온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별로 변한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 새해부턴 어떤 활동을 하나.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여러 상황을 보면서 조금 더 밖에 있다가 들어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새해에는 도쿄대학에 1년 가 있게 됐다. 2016년에 일제시대 때 조선 반도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귀환 관련 연구로 책을 냈는데 이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일본에 대한 공부도 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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