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소장 각] 한국 기독교 역사 한 번에 다 보기ㅣ 배덕만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ㅣ잘잘법 164회




[👍소장 각] 한국 기독교 역사 한 번에 다 보기ㅣ 배덕만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ㅣ잘잘법 1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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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0 ◆ 1880년대, 한국 기독교의 시작 선교사들이 소개한 복음주의 영성 06:53 ◆ 1930년대 성령 체험과 오순절적 영성 12:55 ◆1930~1940년대 토착적 신앙과 영성 16:16 ◆1960~1980년대 경제 부흥과 자본주의적 영성 21:41 ◆1960~1980년대 고난받는 약자들과 민중 신학적 영성 28:05 ◆1990년대 새로운 대안, 수도원적 영성 33:10 ◆2000년대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총체적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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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법 :잘 믿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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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한국 기독교의 계보를 한번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어 한국 교회가 역사가 130년이 됐는데 그 역사를 영성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한번 정리를
해 보고 싶습니다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뭐 정의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만 하나님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거기서 형성된 우리의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어 거기에는 신학도 들어갈 것이고 뭐 사람도 들어갈 것이고
운동도 또 사건도 들어갈 것이다 저는 한국 교회를 형성한 그 몇 가지의
영성의 흐름들을 여러분께 소개를 해 드리고 그것이 지금 한국 교회를 그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가 시작이 된 해를 보통 1884년 혹은
5년이라고 얘기합니다 호레스 알렌 선교사가 평신도로 들어왔던 해가 이제 84년 이고요 그다음에 이제 그 4월
5일 날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에 왔던 것을 그렇게 기억하는데 어 저는 그때 우리나라에 들어 왔던
선교사들이 바로 미국에서 왔던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라는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우리나라에는 영국
선교사도 들어오고 독일 선교사도 들어오게 습니다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선교의 첫삽을 떴던 사람들이 어
미국의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이었다 교파들의 의해 분리가
되고 다양한 현상들이 들어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그 초교파적으로 또 역사와 지역을
넘어서서 한국교회를 형성하는데 제일 중요한 어떤 씨앗들이 그 우리나라에
왔던 초기 30년 동안의 선교사들이 행하신 사역의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분들이 우리나라에 들고 왔던 선교의 선물들 꾸러미를 복음주의적 영성이라고 먼저 명명하고 싶은데요
복음주의적 영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져왔던 그 패케지 안에 들었던 내용들인데 첫 번째가
성경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상라 와 달리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만주와 일본에서 한글로 성경이 먼저 번역이 되었죠 그리고 그 성경을
갖고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성서
판매원 성경 매서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팔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들에 의해서 교회가 최초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1907년에 평양에서 대부 운동이 벌어졌는데 그 대부 운동이 뭐였냐면 평양도 사경회는 거였거든요 그
사경회는 그야말로 성경을 공부하는 자리였습니다 전국 지역에 여러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졌지만 성경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그
선교사들 목사님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거의 몇명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양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평양에서 제일
큰 평양 장대원 교회에 모여서 더듬거리는 선교사들의 한국어로 성경을
가르쳤죠 그곳에 우리 성령께서 임하셔서 대부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교 들은 우리나라 말에
적합한 것으로 성경을 끊임없이 개정하고 번역해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그 뛰어난 성경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첫 번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준 가장 중요한 선물은 성경입니다 그게 그리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교파를 초월해서 지금까지 성경을 신앙의 제일 중요한 근거로
그다음에 기준으로 권위로 인정하고 있게 된 것 그게 첫 번째 두 번째는
전도입니다 성을 전해 람 선교사들이아요 평양에서 부 운동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1909년이 되면 백만인 구령 운동이라는게 벌어져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 교단이
연합해서 전도 활동을 했던 것이고 그 이후에 발전했던
부흥회라니요 그때 우리나라에 나와서 되게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날 연보라는 건데 그거는 교회 전도지를 만들 때 헌금을
할 수 없 없었던 사람들이 돈 대신 자기의 나를 헌금으로 드린 겁니다 그래서 그날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던 이런 전통들이 교회에 있었고 그래서 세상에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신앙의 과제로 한국 교회가 삼게 된 것 그게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국민의 20% 이상의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가 되게 되는 또 어 가시적인 어떤 기재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가 성령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복음이 들어오기 전부터 영적 체험이 되게 강했던 나라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제 그런 이방 종교를
대체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1903년 우리가 원산에서 기도회가
벌어졌을 때 또 1907년 대부 운동이 벌어졌을 때 그리고 그 위에
1920년 30년 50년대에 전국 방방 곡에서 부흥운동이 벌어지는데 그
부흥의 자리가 뭐냐면 성령의 임재 있던 것 죠 그래서 우리나라의 신자들은 어 성경을 중요시 여기지만
그것이 단지 문자나 지식의 머물지 않고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몸서
체험해서 살아 있는 체험적 신앙을 갖게 된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신학자들 다 어쩌면 부흥 강사나 기도원 원장들이 더 영향을 많이 끼쳤는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체험적
신앙이 매우 강했는데 거기에는 성령이 있었던 거죠 또 하나는 아 재림에
대한 관심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일제에서 우리가 강점기가 시작이 되기도 했고 항상 가난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던 나라에서 복음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됐던 것은 주의 나라가 도래할거다
주님께서 재림하실거다 특별히 일제 말기가 되면 신사참배를 강조할 때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는 그 림 의 신앙이 한국교회 굉장히 강했고 그것을
일제 말기에 성결교 뭐 구세군이 이런 교단을 저 지금 침례교 같은 교단을
일제가 해산시킬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어 재림 운동이 되게 강했죠 그래서 최초에 부흥사 있던 그
길선주 목사님이 우리나라 1대 전국구 부흥 강사가 됐는데 그분의 부흥회가
요한계시록 강의였고 나중에 말세야 강이라고 하는 책도 냈죠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부흥회를 통해서 종말론
재림 신앙을 갖게 된 겁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 교회가 어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얻었던 최초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한국교회 영성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한 1930년 경으로 올라오게 되면 한국
교회가이 성령 운동이 점점 점점 강해지면서 특별 성령 중에서 은사
1907년 대부 때는 성령이 임하면 사람들이 자기 죄를 고백하고 술담배를
끊고 또 첩을 내보내면서 윤리적인 삶이 바뀌는 것이 성령 체험이었어요 그래서 성령 세례가 곧 성결이 말할
수 있었다면 1930년대 이후부터 한국 교회는 그 그런 전통적인 성결
또 성령 운동과 더불어서 은사를 강조하는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성령 운동이 우리나라에 이제 매우 강력하게
터져나오고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을 절 영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이제 1907년부터 기도하는 것 그다음에 이런 거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 강해졌죠 그래서 1907년 평양 대부 때 우리가 아는 것처럼 통성 기도가 이제 보편화되기
시작하고 새벽 기도가 이제 확산되기 시작을 합니다 어 그러면서 특별히 여성들 중에 여성들이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교회에서 역할과 기능과 지위가 되게 제한적이었을 가는 것도 되게
제한적이었고 목사는 될 수가 없었던 그런 시절 절에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성경을 줄줄 못 읽거나 아니면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신학은 잘 몰라도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여성들이 남자에게
남자와 평등하게 주어졌던 기회는 뭐냐면 기도하는 자리였지요 그 예수를 믿기 전부터 기도하는 것이 몸에 뱉던
민족인데 평양 대부흥을 거친 이후부터 한국 교회 안에 기도가 점점점점
강해지고 세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은사를 경험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세워지기 시작하는데
1920년대 말이 되면 감리교회 이용도 목사라 그가 또 백남주 이런
사람들 또 그다음에 철사 안의 김성도 이런 사람들이 기도에 매우능한 사람들을 알려지게 되고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 이제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는 현상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근데 이게 이제 한국
교회 안에 문제가 되기 시작해요 장로교 쪽에서 볼 때 과도하게 열광 주를 가는 거 아닌가 과도하게
신비주의로 치우친 거 아니냐라는 이제 비난을 받을 정도로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오순절 영성이 자생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근데 그것과 비 비슷한 시기에 1928년 요즘에 1930년이라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는데 어 미국에서 오순절 배경을 갖고 있는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순절 주의는 어 1901년에 미국의 그 캔자스에서
찰스 파람이라고 하는 감리교 목사가 운영하던 신학교에서 방언이 터졌는데요
그게 나중에 1906년 그 LA 아주사 LA 지역의 아주 살라는 거리에서 윌리엄 조세 무어라고 하는
흑인 목사의 또 집회에서 더 강력한 방언과 또 입신의 은사가 나타나게
돼요 그리고 그게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뭐 전 세계로 가면서이 운동을 펜테코스트 am 오순절
운동이라고 불렀는데 그 1906년 아주 사가 1909년까지 1910년까지 그 부흥이 이어지거든요
그근데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를 다녀왔고 그들이 그 부흥의 오순절의 불꽃을 미국 전 국으로 그다음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 메리 럼지 아고 하는 여성이
계셨는데 이분이 528년 혹은 30년요 어간에 우리나라에 들어옵니다
그리고이 사람이 성령 세례 받은 증거가 방언이다 하는 교리를 가리키는
그런 형태의 성령 운동을 한국에 도입한 거죠 그분들이 이제 허홍 혹은 박성산 이런 분들과 서울 서빈 고에
조선 오순절 교회를 세웁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이용도 아니면 뭐 김성도
같은 사람들이서 자생적으로 성령 체험하던 것이 우리나라에 내려왔다면 또 이제 메리 넘지를 통해서 오순절
운동이라고 하는 미국산 기독교가 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또 성령 운동의 한 축을 이제 차지하게 된 거죠
그리고 나서 어 1945년 전후로 해서 우리나라의 기도원이게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강원도 철원 그 신철원 여기 지역에이 대한 수도원이라는 곳이 생겨나게 되고
또 천인과 거기 용문산 기도원 나운몽 장로를 통해서 용문산 기도원 이런 데가 세워지는데이 기도원에서 기도를
정말 열심히 하면서 성령의 강한 임재가 나타났고 방언 입신 뭐 성령춤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게 되죠 그러다가 이제 여기에 이제 정점을 찍는 사건이 이제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가
1950년대 말에 어 서울 대조동 순복음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여기는
메릴 엄지가 세웠던 그 오순절 운동이 해방 이후에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미국 장교들 중에 오순절 사람들이 특히 이제 미국의 하나님의 성해라 하는 오순절 교단과 연결이 되면서
재구성이 됐는데 거기에서 세웠던 신학교에서 동기동창으로 조용기 목사와
최저식 목사님이 만났고 두 사람이 의기투합을 해서 교회를 세웠죠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이 폭발을 하게 되죠 조용기 목사의 교회가 결국 여도
순보 교회 나중에는 70만 명의 성도를 건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교회가 됐고 또 여전히 우리나라의 그 기도원 운동이 80년대까지 성령 운동의 중요한 또 요람이 됐고요 또
이런 성령 운동을 하는 심령대 부흥회와 그걸 주도하는 부흥 강사들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이제 단지 오순절
교회나 아니면은 그 용문산 기도원 출신들만이 아니라 교파를 초월해서 우리나라의 방언과 성령 성령 세례
이런 것들이 이제 자명해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오순절 운동이 어 처음에
복음주의 영성과 더불어서 오순절 영성이라고 하는 것으로 한국 사회의 뿌리를 내렸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겠고요 그 세월이 지나오면서 1940년 30년 40년이 경에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영성 흐름이 생기는데 저는 이거를
토착적 영성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거는 어 선교사들의 영향은
최소한으로 받고 한국에서 활동하던 평신도 혹은
목회자들이 강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거나 아니면 한국적인 토양
안에서 복음을 재해석하고 했던 노력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흥미롭게도 전라도 지역에 많이 모여 있어요 물론 전라도 많은
아니지만 거기 대표적인 사람들이 누구냐면 전라도 화순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던 어 이세종이라는 분하고
그분의 였던 이현필 이런 분이고요 또 그다음에 그 사람과 같이 활동했던
사람 중에 광주를 중심으로 한 장로교 목사였던 최흥종 이런 분들이 계셨고
또 그분들과 함께 그 지역에 활동해서 선교사가 있는데 요즘에 유명한 서서평 선교사들 이런 분들이 같이 친구들로
그 지역에서 활동을 합니다 거기에 또 플러스로 어 YMC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종교와 복음을 조화 하려고 했던 어 다서 유영모 선생 그
사람의 제 자였던 씨알 함석헌 이런 사람들이 1930년대부터 50년대
60년대까지 어 기존에 있던 주류 교회하고 사뭇 다른 한국적 기독교를
추구하는 운동들을 버리게 됩니다 특히 이제 이사종이나 이연필이 강원도
화순에서 최초로 자신들이 수도원을 만들죠 한국형 수도원을 만들어요
그래서 금욕을 강조하고 성경 묵상을 강조하고 그다음에 어 가난을가
강조하면서 어 여승 순천 사건 이후 625를 겪으면서 그 지역에 발생한
고화 이제 돌보는 일들을 하게 되면서 어 광주 지역에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요 또이 유영모 선생님 같은 분들은 기독교 신자로 출발을 했지만 불교 경전이나 유학 유교
경전을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성경과 함께 읽어낼 건가 그러면서 어떻게 기독교를 이해할 건가라는 아주
독창적인 사상을 만들어 내죠 어 그리고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았던 제자였던 또 함석헌 같은 경우는 는
어 기독교 식으로 한국의 역사를 재서술 해 내잖아요 그 성서로 본
조선 역사라는 책을 썼고 나중에 이제 평화 운동 그다음에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면서 또 하나의 되게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죠 이런 분들이 한국 사회 1930년부터 한국적
버전에 교회를 만들려고 하는 어 노력이 세워졌는데 그 모양은 매우 다양하지만 저는 기존에 주류 교회하고
조금 다른 색깔이 있었던 전이 부분들을 어 토착적 영성 이라고
규범화 시키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제 뭐 이단의 논쟁도 있었고 교회
주류 교회 비판도 받았지만 최근에 와서 이제 영성 신학이 한국 교회에 되게 중요해지면서 그러면 우리가 맨날
외국 거 또 외국 사람들의 거만 말고 한국에는 그런 거 없었나 한국에는 수도원 문화가 없었고 묵상의 문화가
없었고 또 그다음에 복음과 실천을 같이 갔던 이런 건 없나하고 봤을 때
이런 그 이연필 그다음에 이세종 그 유영모 함석헌 최종 으로 오는 또
서서이 끼어 있는이 부분들이 최근에 한국 교회의 새로운 어떤 그 영적 대한으로 꽤 주목을 학기에서 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이제 그다음에 고민해야 될 부분이 이제 해방
이후에 해방 이후에 우리가 냉전 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1961년
이후에 박정희 정권이 세워지면서 어 그야말로 산업화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나라에서 는 잘
살아보세 세마을 운동 경제 개발이 이런 어 슬로건을 걸고 이제 정부가
이제 뭐 세마을 운동도 하고 경보 고속도로도 만들고 산업 단지도 만들었는데이 시기가 구한말부터
그다음에 일제 시대 때를 통과하면서 한국 사회가 지글 징글징글하게 빈곤에 쩌들어 있었잖아요
특히 이제 1931년 만주 사변 이후로 한반도는 일제의 그 그 전쟁
동원 체제에 들어가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뭐 노그 까지 다 갖다
바치고 배급을 받아야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보리 고개라는게 의해서 우리의 그냥 그 숙명처럼 이겨주는
시대에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패배주의 숙명론 운명론 가난은 벗어날 수 없어
뭐 이런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젖어 있었을 때 이제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을 강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잖아 근데 그것이 교회와 같이 접목이 되는데 같은 시기에 뭐
여의도순 보험 교회를 대표로 해서 그다음에 또 감리교를 통해서
나라에서는 잘 살아 보세요라고 말했지만 또 조용기 목사가 사중복음을
발전을 시켜서 오중 복음이라 걸 만들어 내는데 그게 이제 원래 하나님의 성에는 중생 성령 세례 신유
재림 이걸 믿어요 근데 조용기 목사가 여기에 축복이란 걸 붙여서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한다는 요한 1세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영혼이 잘되는 축복 그다음 병이
나는 축복 범사가 잘되 는 축복을 어 교리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의도 교회를 처음에 세웠던 그 순복음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인데 그런
목회를 하면서 결국 성령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으면 병도 거치고 또 물질적으로도 낮아질 수 있다 이런
메시지들을 전하게 된 거죠 근데 그게 이제 그 시대에 그 산업화 시대에 저이 전라도 지역에서 올라와서 도시에
빈민촌을 형성했던 가는한 노동자들 또 병든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이 조용기 목사의 메시지가
매 설득력 있고 그 감동적으로 다가오게 되죠 또 그때 미국에서도 어
교회 성장하니 아니면은 적극적 사고 방식이니 뭐 긍정의 복음 이런 것들이 이제 유행하고 있었거든요 노만 빈센트
펄이라고 하는 목사가 가이드 포스트를 만든 사람인데이 사람이 파지티브 think 적극적 사고 이거의
중요성을 미국에서 매우 강조했는데 이게 우리나라도 이제 같이 들어오게 된 거죠 그러면서 그게 여유도 순보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게 다른 교단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1960년 70년 80년대까지 한국 교회 안에이 가난을
극복하려고 하는 거 그게 특히 예수를 믿으면 어 성령을 받으면 변화되면
변화될 수 있다라고 하 이런 그래서 너희가 어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신지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 아마이 말씀이 그 당시에 가장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싶은데
이런 것들이 한국교회 교파를 초월해서 30년 동안 한국교회 지배적인
메시지가 되게 되죠 그래서 그 전에는 어 수도원의 영성 같은 것들이 한국
교회에 컸기 때문에 또 청교도들의 영성이 컸기 때문에 청빈이라는 것 물질에 대한 탐욕을 극복하는게
신앙이라고 생각했고 가난은 어쩌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삶의 양식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빈곤의 시기를 오래 겪고 60년대부터 국가주도의 산업화로 넘어가면서 정부의
그 교회에서 하는 이런 긍정의 메 메지 축복의 메시지가 한국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고 그게 결국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교단마다 출연하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그 교단의
초대형 교회들은 각 교단의 전통적인 교파 신학을 가리키는 데가 아니라
성령과 은사와 그다음에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어 미국에서 나오는 그 학의 논문들 중에도 한국의 초대형 교회들은 모두 오순
이었다고 말하는데 결과적 그 오순절의 영성을 가졌던 사람들이 결국 예수
믿고 그거의 가시적인 결과물로 물질적인 축복과 번영을 강조하게
되면서 한국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하나가 되는 그런 교회가 되죠 저는
이제 이것이 그 시절에는 매우 적절했고 또 필요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을 하지만 또
우리가 전통 가졌던 재물과 하나님을 경 섬길 수 없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하고 뿌리다 하는 교회의 아주 전통적인 가르침이 약화되는 경향도 됐죠 그래서 교회에서
잘 사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어쩌면 축복에서 배제된 사람이라는 그런 인식을 심어 주게 된
것도 그런 부작용의 하나가 아닐까 아무튼 그러면서 저희는 어 적어도
60년대 이후부터 80년대까지 자본주의적 영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흐름이 한국 교회 안에 편만하게
됐다라는 겁니다음 그러나 동시에이 자본주의적 영성이 한국 교회에 이렇게 그 뿌리기
될 동시에 또 하나의 정반대 영성이 한국 교회에 출연합니다 저는 그거를
민중신학적 영성이라고 명명하고 싶은데요 그 우리나라가 산업화가 되면서 그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이 프랑스 독일이든 미국이든 자본주의에 근거한 산업화가 벌어질
때는 아직 무슨 뭐 노동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노블레스 노블리 이제라고 하는
그런 가진 사람들 들 약자들에 대한 어떤 그런 도덕적 책임 같은 것들을 충분히 인식 못했기 때문에 어 결국은
초창기에 상당히 많은 자본주의 모순들이 노출되게 되죠 다시 말하면
시골에서 올라온 저임금 노동자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어 그 혹한
노동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얘기를 건의를 할 수 없게 되고 그런 얘기를 하게 되면 뭐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뭐 파면 된다든가 그 이렇게 되고 또 뭐 노동 협상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무슨 노동환경을 좁게 개선해 달라 휴식을 늘려 달라 아니면은 뭐 어 시간의 근무수당을
올려 달라 최저 임금을 맞춰 달라 이런 이야기를 사용자와 할 수 있는 그런 루트 자체가 없었고요 그런게
받아들여주지도 않은 시대를 지난 거죠 그러다가 이제 병이 들면 그냥 소위 말로 잘리는 것이고 어 이래서 사실
노동 노사 관계가 매우
부당했다는 청계천 동대문 지역을 중 심으로 그런 봉 공장들이 생겨지게
되고 그다음에 그다음에 경공업 중심으로 산업회 돼서 50년 60년대에 영등포가 로라가 부평에
다양한 실과 천과 관련된 회사들이 모직 회사나 방직 회사나 이런
회사들이 많이 생겨지게 되죠 근데 그 일들을 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전라도
지역에서 올라온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살에서 살짜리의 저 어린 소녀들 있데 그들이
환풍기도 없는 곳에서 하루에 시간 16시간씩이 재봉틀을 돌리게 되면
3년만 지나면 거의 100% 폐결핵에 걸립니다 그러면 또 회사가 그걸 뭐 치료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 면제
회사에서 내보내고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 벌어지는데 이런 문제에 주목을 한 사람들이 생겨요 그게 바로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 일을 제일 먼저 주목했던 사람이 누구냐면 우리나라의 도시 산업 선교회는 선교
단체입니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 중에 감리교 장로교 목사들이 어 인천에서
그다음에 영등포에서도 시 산업 선교라는 걸 만들어서 원래는 이게 무슨 운동을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
새로 생긴 공단에 있는 여공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만든 단체들 있데 어 그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이제 사정을 들어 보니까 교회 회사 안에 참담한 일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근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장님한테가 가지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또 해 줬는데 잘 안 들으시아요 그니까 나중에는 노동
노동법을 이제 검토해 보니깐 어 이런 그런 그 단체를 만들 수 다시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것이 헌법으로 나라에서 인정한 법으로 있었고 뭐
이러면서 노조를 이제 조직하는 것들을 가르쳐 준다든가 또 단체 협상하는 개입을 한다든가 이렇게 되면서
노동운동에 이제 관여를 하기 시작한 거죠 교회가 근데 이제 이런 것을 뭐 그런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
주시는 분도 계셨지만 그 부당한 간섭이나 방해로 여기신 사람들은 이들을 전부 다 용공 분자로 몰아가기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노동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이 유신 정권 시절에 감옥에 가고
탄압을 받게 되죠 그러다가 이런 이런 상황에서 이제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는데 그게 바로 1970년대
전태이라고 하는 그 청계피복 노동자가 분신을 해서 죽은 겁니다 예 그 사람의 죽음이 알려지고 난 다음에
어이 그이 청계천에 그 그의 친구들이 최초로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을 만들죠
물론 그 전에도 노동조합이 있긴 있었습니다 아 근데 그 노동조합은 그때 사실 어영이 그 정부가 노동자들
관리하기 위해서 만드는 노동조합 이었지 노동자들이 입장을 대변하는 식의 노동 조합은 아니었거든요 이렇게
되면서 어 이제 우리나라 노동 운동이라는게 형성이 됐는데 그때 이게
우리나라의 서울에 있는 감신대 총 그 한신대 연세대학교
교수들에게 충격을 줍니다 같은 서울 안에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 젊은 어린
그 우리 딸 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혹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구나
우리가 그동안에 무관심 했구나 강도 만난 이웃에게 그 유대인에게 누가 이웃이 될 거냐 이런 질문 앞에
일군의 신학자들이 반응을 하기 시작을 한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의 그 산업 시대 산업화 시대의 사회적 가장 큰
문제였던이 노동 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끌어안고
성경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할 수 있을까 그다음에 조직 신학에서는 그다음에 역사 신학에서는
교회 사에서는 이러면서 일군의 신학자들이 한국의이 노동 문제를
신학의 문제를 끌고 와서 한국적 신학을 만들어내기 시작했 그게 이제 소위 말한 민중 신학이라는 것이고 그
민중신학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 이런 노공 공단 지옥이 들어가서 교회를 세우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되면서 소위 말한 민중 교회가 세워지게 된 거죠 당시에 정부로부터
충 정보와 충도를 했고 비난도 많이 받고 감옥에도 많이 갔습니다만 또 세월에 지나서는 민중
신학도 시들고 민중 교회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한국이 본주의 사회 그다음에 산업 사회 도시화가 되면서 생겨났던이
사회적 문제들을 오늘날 우리의 신학의 과제를 끌어앉고 또 목회의 주제로
끌어 안았던이 노력은 지금도 모양과 형태를 달리했지만 한국교회 되게
중요한 과제로 예 나려 오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것을 민중신학적 영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또 하나는 1990년대가 되면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 형성이 되는데
그것은 한국 교회가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적어도 가시적으로
물질적으로 규모면에서 정점에 오르기 시작을 하게 됩니다 해방되고 나서
한국의 교회가 한국 기독교 인구가 아마 제 기억에 한 5% 정도가 인구
대비 기독교 신자였는데 1970년대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면서 1990년대 들어왔을 때는 어 뭐 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우리나라에 있었고요 전 인구 대비 거의 20에서 25% 정도가 개신 교인이다고 말할 정도로 교세가
늘어났고요 정 대통령을 포함해서 소위 말한 파워 엘리트라고 말하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뭐 정치가 대기업 co 교수 변호사
저널리스트 뭐 의사 이런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의 숫자가 제일 많이 많아지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을 뽑는데도 막강한 영향력을 수 정치적 세력을 갖게 되고 어 교회
예산도 불교나 어 그다음에 가톨릭의 비해서 거의 공이 하나 더 많을 정도로 물질적 토대가 단단해지게 되죠
이러면서 한국 교회가 이제 되 성장을 했는데 흥미롭게도 바로 그 시간부터
한국 교회가 적어도 가시적으로는 외쪽으로 한국 종교교회 탑을 찍었을이
시점부터 한국 교회가 성장이 멈춥니다 그리고 점점점점 빠른 속도로 후퇴로
성 교회가 축소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고 그게 2천년대 들어와서는 더
가시화 되게 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서 한국 사회를 한국 교회가 가장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손해 진 그때에 한국 사회
외변 있는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비판하는 소위 말하 안티기독교 세력들이 급증하게 되고 교회를 떠나는
어 소위 가나안 성도들이 급증하게 되고 또 이단과 사이비들이 또
발행하게 되면서 교회를 위협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 있는데 그게 안으로 들어가서는 뭐 교회 세습이라는
목회자들의 성적 스캔달 이라든가 교회 안에 그 재산과 권력을 둔 이권
다툼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들이 막 속출하게 되면서 추정 60분이 뉴스의
단골 매뉴로 한국 기독교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들이 90년대부터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 이거를 그 외부의 비난이다 공격이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아 일각의 사람들은 왜
한국교회 그동안 열심히 성령 체험을 했고 성령 열심히 있고 전도회 열심히 내서 헌신해서 이렇게 교회사를
불렸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사상 사람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모습이
자꾸 드러날까이 원인을 다름이 아니라 아 우리의 영성의 왜곡이 아닐까 그동안
한국 교회가 파워 스피드 그리고 규모
여기에 지난 30년 동안 올인해 온 건 아닐까 그 는 빨리 가는 것보다
조금 더 속도를 놓치고 많이 가는 거보다 좀 덜 같고 규모보다는 질
밖에 외적인 거보다는 속의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닐까 그래서 마치
서양에서 4세기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연하면서 교회가 왼쪽으로는 빅뱅을 했지만 그게 내쪽으로 타락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해서 더 깊이 기도하고 금욕하면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 광야에 들어갔던 사람들처럼 한국교회에서도 어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러면서 최초로 그동안에
이단이라고 들쳐 보지 않았던 카톨릭 신자들 중에 주목할 만한 영성가들의
글이 한국 개신교인들 안에서 읽혀지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인 신부 같은 사람
토마스 키딩 같은 분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소위 말하는 관상 기도라는게
알려지기 시작하고 영적 독서 렉티오 디비나라고 하는 것들이 한국 교회
소개되기 시작하는 거죠 한국 교회가 그동안에는 온통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었느냐
힘썼다면이 성경은 주야로 묵상하는게 중요하지 성경을 많이 읽고 암송하는
것이 어쩌면 더 그게 그게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국 교회가 통성
기도하고 방언 기도하고 40일 금식 기도를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플레이션 관상 기도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하죠 이런 것들이 좀 지나고 나면 리처드 포스터나 유진
피터슨 같은 개신교 계열의 영성가들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나중에는 어
은성 수도원의 엄두 목사님 이라든가 최일도 목사라 또 김영봉 목사 같은
사람들의 글이 기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다음에 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다음에
성에 대한 이해들이 이제 확산이 되면서 수도원적 영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거죠 그래서 여전히 카리스마틱고 오순절 영성이 존재하지만 그것과 대비돼서
침묵으로 기도하는 것 그다음에 말씀을 깊이 읽는 것 그다음에 진정한 의미의
수도원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 이런 것에 이제 치중한 그런 영성이
한국교회 90년대부터 소개되기 책을 했습니다 그런 전 이거 다시 말해서
이제 수도원적 영성이라고 말씀을 드리겠고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 벌어진
저는 총체적 영성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얘기 무슨 얘기냐면 앞에 얘기와 연결이 되는데요
어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 들어오게 되면 한국 기독교는 더 이상 외래 종교나 소수 종교가 아니라
숫자나 또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가
됐습니다 대통령들이 연속에서 기독교인도 되고 장관들 국회의원들
다수가 기독교인들이 그요 서울 강남 3구가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제일 높고요 서울대학교 안에 기독교
신자들이 타종교를 압도하고 어 우리나라 오피니언 리더들이 전부 다 기독교인들이 된 그런 시대가 된
거죠음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교회의 생존이나 종교만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게 된 거예요 교회가 갖고 있는 인력 돈 정치적 힘
이런 것들 그래서 기독교가 마음만 먹으면 면요 대통령의 당락의 영향을 줘요 기독교인들이 마음만 먹으면요
법안을 통과시키고 혹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 하도록 막을 수가 있어요 어 기독교인들의 학자들을
동원하면 새로운 이론과 문화를 창단해 낼 수도 있고요 한류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뒷배경을 보면 다수가 교회 신자들이아요 이렇게 됐을 때 더 이상
이제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나 자기 종교만을 위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국교회 안에 다시 중요하게 들어오게
된게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기독교인이 학문을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그 신앙을 어떻게 나의 학문의 영역에 정치를 하더라도 어떻게 기독교적
가치를 우리 사이 보편적인 가치에 적용시킬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의 마음이나 교회 담벼락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처 우주 전체에 미치도록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되면서 일단 기독교인의
정체성이나 교회의 사명 그다음에 신학 자체의 범주가 바뀝니다 그래서 영혼만
강조하던 신학이 영과 육을 함께 강조하게 되고요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던 종교가 개인과 사회가
변화되는 그다음에 생태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어 갖는 그런 종교로
바뀌게 되는 것이고요 성직자와 평신도의이 간 귀 어떤 그 차이를
강조하면서 어 이런 어떤 위계 질서를 강조하던 이런 교권 구조가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가 해야 될 역할이 따로 있고 또 협력해서 교회를 세워야 된다 또 평신도들이 어쩌면 사제나 목사들
다 할 일이 더 많다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어 이런 것들이 이제 함께 버무리는 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도 개인 기도와 사회를 위한 기도 그다음에 교회
사역도 교회 성장과 개인의 영적 육성만이 아니라 사회의 변과 하나님의
나라가이 땅에 이루어져야 된다 라는 그런 것을 함께 포괄하는 신학 교회 사역도 교회 안과 교회 바깥을 함께
아우르는 더 나가서 국내와 세계를 함께 아우른 이런 이야기들이 한국
교회에 오게 된 거죠 그 그러면서 어 소위 말한 크리스텐덤 체제에 살았던
기독교가 정치와 종교에 영향을 끼치던 그런 나라에서는 어떻게 기독교가
존재했는가 그래서 영국이나 네덜란드나 미국이나 독일의 모델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어떻게 기독교가 종교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 그러다 보니깐 신학이 시대의 문화를 이해해야 되고요 신학이
그다음에 시대 정치와 경제를 공부해야 되고요 근데 그것을 단지 사회 운동이 안 되려면 깊은 영성이 있어야
되니까이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관심이 또 깊고 그래서 아주 보수적인 것
같지만 대단히 진보적이고 대단히 사회 역적 행동적인 거 같은데 또 깊은
영성을 아주 축 단호하게 또 다부지게 추구하는 이런 것들이 버물러 있는이
시대에 맞는 기독교적 영성이 이제 추구된 거죠 그걸 저는 이제 총체적 영성이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런
운동들이 한국 교회 안에 또 일각에서 지난 20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188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20년 동안 한국
교회 안에서 탄생했지만 동시 한국 교회를 구성하고 변화시켜 왔 영성의 흐름들을 복음주의적 영성에서 오순절
영성 그리고 자본주의적 영성 민중신학적 영성 또 토착적 영성
그리고 수도원적 영성 마지막에 총체적 영성으로 구분 여러분께 소개를 드렸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이것들이
대부분 함께 여전히 각각의 영역에서 나름의 크기와 또 규모를 유지하면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것들이 이런 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한국 교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러면서 이제 21세기로 이제 나아가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런 영성 중에 어떤 거는 우리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놓칠 수 없는 기독교의 DNA 붙잡아야 할
것이고요 또 어떤 것들은 또 시대가 지나면 효용성이나 가치가 약화되는
것들 어쩌면 정말 어떤 거는 도려내야 될 버려야 될 것인줄 모르는 것들이 자명해 질 겁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런 다양한 영성의 흐름들을 한국 교회가 깊이 또 정직하게 그관 하고
분석해서 어떤 거는 계승할 어떤 거는 버릴지 어떤 거는 더 교정해 보강해서
가지고 갈지를 고민해서 다음 세계에는 또 더 적절하고 더 더 성숙한 그런
한국 교회가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이 역사를 통해 좀 한번
배우거나 생각해 봐야 될게 있을까요 아 어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교회가
여러 면에서 되게 어려운 상황 교인들이 자꾸 줄고 사회적으로 교회가 그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시대에
지난 한국의 역사 속에서 무엇을 꼭 기억해야 될까 어떤 거는 더 강조해야
될까 또 어떤 거는 좀 넘어서야 될까라고 생각했을 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되게 중요했던 성경의 말씀
중에 하나가 저는 어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갑보 나온 회당에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사야서 61장 읽으시지아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럼 눌린 자들이나 갇힌 자들이나 넘어진 자들이 온전케 이런 복음이 나오는데 는 그게 역시 또 그 한국
교회가 버리지 말아야 될 유산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령을 체험했던 영적인 체험 저는 이거를 절구 교회가
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 신앙이 관념화 혹은 제도화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계속 성령의 역사 가운데
우리가 노출되어야 되고 그런 걸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동시에 복음을 전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복음을 전하느라 매우 중요한데 그거는 적어도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뭘 요구하시는 성경의 핵심
뭔지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 되고 결국
그것이 어디로 향하면 가난한 자들이죠아요 그게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 정신적으로 가난한 자 정치적으로
가난한 자 다양한 이유로 가난한 자들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이 복음이 흘러 들어가야
된다 그래서 성령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그게 어떻게 우리와 예수의 관계와 인식을 올바르게 할 것인가 그
깨달음을 어떻게이 시대에 우리가 아니면 살아나갈 힘이 없는 약자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게 할 것인가 저는
이런 맥락에서 어 지난 우리 100년의 영성 중에 무엇을 우리가
우리가 황금 드림팀으로 재구성을 해야 될지 어떤 거을 더 보강해야 될지를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아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기독교 안에도 진보
보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옳고 저 사람은 틀리다 이렇게 하는데
자기가 속해 있는 그 입장이 다른 것이겠네요 모든 사람은 존재잖아요
우리가서 있는 자리에서 밖에 활동할 수밖에 없고 거기서만이 볼 수 있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거기밖에 안 미이아 저는 기본적으로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른 영성의 흐름들은 내가가 있지 못한 자리에서 내가 못하는
일들을 나를 위해서 대신해 주고 있는 우리의 동지들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적대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비친 자들이고 고마워야 될 사람이고 또한 역으로 나는 또 그들에게 그런
이웃이 된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서로에게 비난이나 정제나 뭐 이런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게 아니라 결국 협력할 선을 이루자 마지막에 가가지고
당신과 내가 얼마나 복음에 충실하고 기독교의 DNA 제대로 구했는가 그
열매로 승부를 걸자 그래서 처음부터 너는 하지 마 경기에 뛰어들지 마
밖에 나가 이런 태도가 아니라 당신이 정말 내가 못하는 걸 갖고 있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그거를 열매를 맺도록 격려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의 승부를 결정 짓자 그래서 나도 그에게 뒤치 않도록
뒤져 않도록 나에게 주어진 그 길을 나의 방식대로 달려가는 것 그게
우리가 좀 해야 될 일이지 않을까 그래서 바울이 말한 대로 선한 경주를 해야지 처음부터 서로 경기에 못
나가도록 사바를 붙잡어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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