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3

제21회 종로서평모임ㅣ역사관과 역사학자ㅣ허동현 교수ㅣ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제21회 종로서평모임ㅣ역사관과 역사학자ㅣ허동현 교수ㅣ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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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종로서 목사이 벌써 21회가 됐습니다 사실은 그 코로나
때문에 세번을 못했고요 그것을 쳤다고 하면 24회 어쨌든 그렇습니다 오늘
좀 죄송스러운 말씀은 저희들이 매년 연말에 조그만 그 차나 이런 선물들을
준비했는데 오늘 그걸 갖고 오시겠다고 하는 분이 오늘 갑자기 사장이 생겨서
못 오신다고 아 그래서 저희들이 그 저 과일 과일이라도 어떻게 좀 대체해
보겠다고 해서 밖에 나가 그 왔으니까 일단 휴식 시간에 드시고요 2월 달에
오셔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좀 나은 도시라고 아마 그래서 오늘 그
그 오신 분들은 2월 달에도 꼭 오셔서 뭐 간 뭐 이렇게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그 개인적으로
우리 서평 모임이 자랑스럽습니다이 한국을 지키는 사람들이 들이지 않을까라고 하는 그런
자부심을 같습니다 그 지난번에는 제가 그 미국을 갑자기 가느라고 그 참석치
못했고요 아 죄송합니다 이게 일이 묘하게 그렇게 겹쳐서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그 허동현 그 교수님 오셨는데 제가 그
박사 논문 썼을 때 허동현 교수님의 그 논문을 굉장히 그 하 그거 그거가
아니었으면 제가 제가 그 주제가 원래 미상제 선생이었던 원래 미상제 그 그
주제에 맞는 논문을 쓰기가 어려웠다고 하는 고백을 다시 한번 드리고이 자리를 빌어서 또 감사를 또
드립니다 그 저희들이 보면 그 오늘 날씨가 추운데 가급적이면 시간을 좀
맞춰 맞춰야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또 여기 총장님 또 오셨 김진현 총장님 오셨는데 되게
분당이 시간이 또 너무 이렇게 그 늦어지면 그 귀가길이 좀 어려울 거 같아서 저는이 정도로 마치고요 바로
함재봉 원장님께 그 사회를 넘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네 감사합니다 함재봉 있니다 어 오랜만에 제가 사회를
봅니다 아 참 어 김명구 소장님 말씀해 주셨듯이 참 소중한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이 정도의 깊이 있는 학술 토론을
하는 장을 시간상으로도 이렇게 많이 잡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거
같습니다 한 책을 갖고 세 시간을 우리가 최소한 세 시간을 잡고 하는데요 어 늘 시간이
부족하고 늘 하실 말씀들을 잘 못하시고 가시는데 어 참
그래서 그래도 정말 가장 뜻 있는 학술 모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그 특별히 그 허동현 교수님이 어 의 그 역사관과 역사 학자라는 어떻게
보면은 좀 자극적일 수도 있고 도발적인 수도 있고 딱 우리 서평
대회가 바라는 그냥 물에물탄듯 스탄 그런게 아니라 정말 좀 논쟁을
좀 유발할 수 있고 그리고 그런 논쟁을 멋있게 한번 펼칠 수 있는
그런 그 책이고 주제라고 생각을 해서 저도
아주 기대가 많이 됩니다 우선 호영 교수님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컬리지
교수님이시다 어 박사 학기를 어 받으셨습니다 제가 지난번 그 녹화
저자와의 만남 녹화하면서 어 허동인 교수님의 그 학문적인 배경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이 그 토론을 했고 역시 그런 거를 알면은 더욱더 그 그
학문과 그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정말 많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혹시 못
보신 분들은 그 동영상을 꼭 한번 어 봐 주셨으면 어 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 아주 어 뭐라 그럴까 이렇게 진짜 피하지
않고 쭉 늘 그 처해 한 그 논쟁이
될 수 되는 주제들을 어 피하지 않고 쭉 다뤄 오셨고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어 그래서 이제 허동 교수님이 먼저 발제를 해 주시고 그다음에 이제 두 번 두 분의 토론자를 모셨습니다 

번째 토론자는 김기봉 교수님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님이시자 박사 학기를 하셨고 우리 종로 서평 대회의 지주
아니 그 뭐라 그래 어 원장님은 뭐세요
지주 그죠 여명 여명의 지주 는
지주 시고요 어 그 역사로의 역사 뭐
등등의 그 오늘 허동현 교수님하고 어 늘 어 이런 적으로 학계에서 논쟁을
해 오셨고 토론을 해 오셨고 그래서 또 오늘 모셨습니다

두 번째 토론자는 이승열 어 소장님 전 역사문제 무소 어 소장님이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하셨고
어 최근에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이란 책을 내셨고 그전에 뭐 제국과 상인 여러 저서를 근대사에서
중요한 저서들을 내 주셨습니다 오늘 또 흥쾌히 토론을 내 그 수락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어이 우리가 사실 우리는 그 토론 하시는
분들한테도 논문을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이 보통 보통 그
그 뭐라 그럴까요이 애정과이 없이는 여기 토론 자로도 잘 참석하시기
힘드신 힘든 그런 그런 자리인데 또 어 논문을 써 주셔서 토로 논문을
써주셔서 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 곧바로 그 발제 허동현 선생님
발제로 들어갔는데 제가 허동현 선생님께도 말씀드렸고 늘 말씀드린 거지만 다 책을 읽어 오셨습니다 최
여기 계신 분들 다 셨습니다 그러니까 어 책을 그 일일이 다 소개해 주실
필요는 없고요 가장 하시고 싶었던 말씀 그리고 토론을 유발할 수 있는 말씀 중심으로 너무 길지 않게 2
30분 정도만 해 주시면은 저희가 또 토론하면서 많은 그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네 성현 교수님 부탁드립니다 
예 먼저 어
이런 자리에서 제 책에 대해서이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네 원장님하고 소장님 그리고 저 간사 선생님도 본
자리를 밀려서 감사드리고요 저는 사실 종 선생님이
사회를 보시지 않을까 [웃음] 했는데 그리고 어 좀 전에 원장님
말씀하셨듯이 아 토론자 선생님 두 분께서 어 너무 그 시간과 정성을
다해서 제책을 꼼꼼히 읽고 어 평을 해 주시고 그리고 계속 말씀해 주신
바와 같이 다 읽고 오셨다 그래서 설마했는데 지금이
보십시오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급적이면
빨리 해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저는 그 92년에 권양 대학에 이제 그 전인 강사로 취직을 해서요
한 3년 이다가 경희대학교에 연구 교수라는
직제가 생겨서 연구만 하면 되는 건줄 알고 갔다가 대한민국의 대학에 있는 교수
직위는 다 경험해 봤어요 강의교수 영구 교수 개공 교수까지
근데 거기에서 일관되는 공통점이 뭐냐면 전 교양이 많은 사람입니다
전공은 하나도 안 가르쳐 봤습니다 그래서 어 이 어떻하면이
학생들에게이 역사라는 과목을 맡으면서 좀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아이 또
학생들이 1학년부터 4학년 그리고 뭐 전공이 예체능부 공대까지 다양하게
있으니까이 친구들에게 좀 더어 쉽게 다가가는 방법을 갖다가
어 그 노 그 만드는데 좀 그 노력을 해 왔습니다이 책도 그러한 삶 중에
하나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어 비전문가도 어 쉽게 좀 읽을 수 있게끔 그렇게 쓰려고 했고
어 그래서 이제 사실은이 책이이 그 교재로도 쓸 목적으로 어
두 가지 목적 하에서 그러니까 뭐 학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킨다는 목적도
있지만 어 뒤에 더 방점이 찍혀 있을 수도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아
학생들에게 어떻하면 뭐 사실 요즘 시민사회도 어이 많이 갈라져 있지만
학생들도 어 성향들이 다양하거든요 근데 저는 뭐음 중도 우파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뭐 남들은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근데 어쨌든 학생들에게 제가
가진 걸 강요해서 전달하는 방식은 이거 아니라고 폭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에 이렇게 학교에서 이러이러한 문의들이 있고 이렇게 되고 있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 어 그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런 식의 강의를 해왔고
그런 거에 맞춰서 이제이 것들이이 전 그 저 만들어진 책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특히 어 제가 여기에 선택한 그 주제들은 사실은 그 국사 학계에서
어떤 쟁점이 될 만한 주제들이 근데게 허 보니 항시 제가 그 저
어 주루에 대해서 방계를 드 쪽에 좀 반론을 제기하는
쪽에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제 나름대로의 목소리를내는 쪽으로
이제에 그 공부를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어 제가 선택한 몇 개의
주제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그러다가 제가 이제 그 그 책으로만
속했지만 상당히 에 열심히 많은 책들을 읽었던 어 김영석 교수님이 그
그 쓰신 분명 전환에 관한 책을음 누가 한번 읽어보라고 해서 읽어
봤더니 아 뭔가 또이 반론을 달고 싶은 생각이 막 꿈틀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아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하는데 해서 이제 그 문명 전환의
주체들에 관한 글을 한번 써 보면서 그거를 화두로 해서이 논문들을 일
엮으면 책이 한 권 되겠고 거기에서이 그글을 쓰면서 어이 느꼈던게 제가
뭐이 사회학이나 역사 이론 쪽에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자 않았는데
어떤 책을 읽다 보니까 뭐 사회학자가 쓰셨던 거 같아요 지금 잘 생각을 한다는데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그
용어가 아 우리 학회가 처한 현실 이거 하고 참 많이 그 어 닮아
있구나 해서 부제로 이걸 달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장님하고 인터뷰
하면서는 이제 그 제목 때문에 좀 말을 좀 들었다고 좀 더
섹시하게 짓지 대중들한테 안 다가오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근데 하여튼
뭐이 제목이 뭐 그런 측면은 있지만이 용어는 상당히 함축적으로 다가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저는 이제 학생들에게 요즘과 같이
탈진실의 시대를 맞아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의
세상에서래 세대들에게 나도 또 확증 편향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긴 싫었고
그래서 이제에 그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이게에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이이 책 일장 황사 백서 개인과 전체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가 아 여기서는 제가이 책을
조광 선생님이이이 90년대 때 황세현 백서에 관한 그 조강 선생님이 이제
저를 여기에 끌어들이 그래서 황사영 백서에 대해서 그때 글을 썼었는데 그러고 나서 잊어먹고
있었는데 한 20년 지난 뒤에 보니까 제글이 엄청나게 인용되고 있는 거예요
아 그래서 아 내가 이렇게 뭘 썼길래 이런가 하고 다시 봤더니 아이 재밌는
주제를 다루긴 했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에 더 진전된 거에 더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까이 황연 백만 역사마당 평에 다른게 없더라고요 예
그래서 이걸 정리하면서 이렇게 어 많은 얘기들이 역사관이 부딪히고 있는
거에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게 네가 살아가는 미래에 대한 어떻게
보면 등대이자 나 침판 아니냐 이제 제 생각을 쭉 쓰고
그리고서 어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는게 이제 관견 있니다 사실은
대롱으로 보는 제 생각이니까 사실은 어 쭉 그 방식을 여태까지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해 주고 어 그러니까 첫 그 수준이 많이 차이가
나는 학생들에게 당시 객관적인 사실은 이러했다 어 그리고 역사가들은 이렇게
생각해 왔다 어 선생님이 이렇게 본다 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식의 그 논법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 건 그 제 관경은 그 저 읽지
않겠습니다 시간상 다 읽어 오셨을테니까 그리고 2장에서는 동학농민 봉기를 어떻게
기억해야 되나 이건 사실은 한일 역사가 회의 때 그 차순 선생님이
회장이셨던 과 혁명 뭐가 이게 주제였어요 근데 저라 이걸 한번 써
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걸 쭉 정리를 했던 건데 그때
김기명 선생님도 거기 같이 있었어요 근데 저들 이걸 역사 학보의 역사
비평으로 내라 그러더라고요 아 근데 내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좀 약간의 충돌도 있었고 그래서 이걸 그냥 묶혀 놨었는데이 책을 내면서 어
그 흐른 시간만큼 더 연구가 축척되고 어 간 20년이 흐른 거죠 이것도
그래서 어 제가 하여튼 그 당대 사령이 뭐니 다
이렇게 보고 어 그간에 진행된 연구를 함축한 다음에에 나름의 광견을 덮친 걸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건 사실은 한국 학계의 통설에 대한 어 어떤
반론 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에 한국 학계의 통설에 대한
반론이 거기에에 많은 초점이 묻혀져 있져 있는데 특히 이글은 아마 어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 그 3장에서는 대한제국은 국민국가라는
타이틀에서 어 민족사의 시야를 넘어 비교사적 국세 사적 시야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보려 했거든요 이건 사실은 명지대학 한국학연구
선가에서 어이 대한제국의 성격에 대해서 저한테 학수 레일 하면서 어
참여해 달라 그래서 그때 이제 쭉 보다 보니까 제가 가셨던 의문이 거기
밑에 인용문에 해 놓은 겁니다 왜에 어 김규은 일본을 모델로 하고
이승만은 미국을 모델로고 했는데이 피케 하버가 이저 고정이
쓰고 있 있는 헬멧 이게 보니까 프로이센의 헬멧이 니콜라이 이도 쓰고
있더라고요 보면은 자르의 복장을 입고 있었고 어 자루와 같이 입고 싶어했고
대한제국의 문장을 보면은 문장이 그 독수리 문장이 이게 그 러시아의
문장을 흉내낸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 제가 이제이 반론을 얘기했죠 근데
문제는 제가이 러시아 말을 못 읽는다는 거죠 근데 이게 제기해 놓고
보니까 이게 하나의 가설로서는 상당히 훌륭한데 이걸 하려면 또 평생 걸쳐서
이걸 연구로 해야 되는데 그럴 자신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문제 제기만 하는 상태로 물러났는데 어찌
보면 좋은 그 연구 소재를 던졌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기울이는게 전 좀
섭섭했어요 아 하여튼 그런음 하나의 론이고 이건 사실은 어 이게 한참
대한제국 성격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될 때 교수 신문에서 어 저 어 소위 그
경제 성장 사과들 그 뉴라이트라는 어 쪽하고 어 이태진 선생님 쪽하고
굉장히 크게 논쟁이 붙었었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어
생각했던게 이태진 선생님이나 이용훈 선생님이나 다 조선후기 연구자들이
었다가 거기서 붙은 논쟁이 대한 제국까지 내려오고 이렇게 그니까
현대사 연구자들이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자기 역할을 안 하고 있을 때 이런 일들이
저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좀 문제점들이 많다고 보였어요 그래서
이런 가설이라면 이런 반론에 뭐라고 답답하실까 교수신문 그 저기에서
나중에 저한테 뭘 서 그 얘기를 썼더니 그 이태진 선생님 제자분들
하고 김영 선생님 제자 다 아시는 분들이지만 뭐 여기서 말씀 안 드리지만 두 분한테 그 반론을
부탁드렸던 거 같아요 근데 거기에 이제 신랄하게 비판을 하시면서 밑에 단서에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쓰셨더라 그래서 제가 거기에 재발을 오면서
읽어보시고 토론을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없어요지 그래서 어 하여튼 저항시 그
열린 공간에서 토론을 준비가 돼 있고 생각이 있는데
답변을 못 받았습니다 어쨌든 이거는 제가 가설을 제기했고 어
러시아 말에 대한 그 저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연구는
못했지만 그 몇 개를 보니까 제기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근데 깊게 파고들지는 못한 상태고요 그래서 어 거기에 제가
그 러시아 자르 체제를 모델로 삼은게 아닌가 이러한 그 문제 제기를 한
거죠 그러니까 한국인들에게 러시아라면 냉전 시대 때는
적국이었던 이제 이런 잠재의식 때문 이런 생각을 못한게 아닌가 그런 그
생각을 이제 얘기한 거고요 그 4장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보이는
한국 현대사 서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는 제가 사실은 2002년에 그 검인정 교과서가 나왔을 때 검정
위원이 있거든요 그때이 저걸 보면 아
진짜 그 국어나 이런 과목은 말이죠 정원들도 많아요 그리고 작품만 선정하
할 일이 없어 이거는 사진에서부터 맞춤법의 문장에 거기에 또 저거
것까지 잠못 자고 엄청나게 고생을 했는데이 돌아오는 건 그때 당시
조선일보에서 검정 제도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어요 검인정 위원들이 밝혀주는이
공정한게 못 되거든요 근데 민정 원들이 가문의
영광인데 왜 공표를 안 하느냐 아 그때서부터 엮기 시작해가지고 계속이
교과서 문제 제가 얽혀들게 됐습니다 근데 이렇게 보다 보니까 어 미래인 교과서
필자 금성 교과서가 가장 문제가 됐지만 그때 미래을 주로 제가 이제
비판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 친구들이 그저 한철 교수 지금 공인이
됐지만 고 집필한 교사들이 또 제 동기예요 일상의 친구이고
하니까 비판을 해도 뭐 만나서 넌 자식아 이걸 그리라고 썼냐 그러고
이제 서로 싸우다 수한자 먹고 해가지고 하니까 그런 적이 썼었습니다
근데 하여튼 그렇게 되니까 이게 그 뭐 역사 전쟁이고 뭐
하고 되지만 저는 제 친구들하고 교감이 없고 그리고 그 했던 얘기
중에 야 어떻게 너는네 서가가 궁금하다 너 자구 발 아직도
뭐지 이러고 이제 구박을 했었거든요 근데 뭐 엊그제도
만났지만이 친구들은 떠나고 난 다음에이 책이 또 쓰인 거예요 요번에
쓰이는 것들은 어 근데 보니까 어쨌든 그 서로 처에게 대립되고 논쟁이
됐지만 어 그 영향을 그래도 받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비판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많이 받아들이셨고 어 그래서 많이 순화가
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아 의미없는 작업은
아니구나 어 하는 생각을 했고 근데이 큰 흐름이 보면이 현대사 연구는 어 사회과학
쪽에서 더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요 지금 현행 교과서 바로 전에 박근혜
정부 때 이제 정 교과서를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교과서라는 건 사실은
그 집필 요강에 따라서 어 그 저게 되니까 그 지필 요강의 그 교과서의
성격이 거의 다 정해진다고 보여요 그래서 제가 그 지필 요강 그거를 두
개를 대비시켜 놨는데 예 하나는 이제 밖에서 오는 계기들 어 뭐 이런
것들을 좀 더 강조하고 있고 하나는 아 자주적 그 성장이라 안에서부터
저거를 강조하는게에 서로 다릅니다 하나 열리는 세상을 얘기하고 있고 그래서
그 한번음 읽어 보시라고 어 다 보셨겠지만 거기에 그 제가 인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 관견는 제가 그 바라는
교과서라는게 사실은 이게 성경이 아니거든요 어 그 이제 검인정이라는
교과서 제도가 굉장히 좋은 건데 지금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저희는 그 뭐 전에 그 교학사 교과서 뭐 저는 그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에 동의 안 한 부분이 굉장히 많고 그거 그렇게 만들어 짧은 시간에 만드는 거에
대해서는 크게 찬성하지 않았어요 근데에
그 시장에 들어갈 수 있어야지 그런 교과서도 그래야지 이게 거민증 있데
예 선택에서도 배제하게 검인정이라는 거에 그니까 국정이게 국가의 에서
편하는 거라면 검인정 그럼 반대로 아주 터프하게 얘기하면 그
전교조에서 결정권을지고 있는 거에 진비 없지 않는가 이거는 사실은 고민정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저는 이제 그런 것들을 좀 얘기하고 싶었고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다원화된 세상에 살면 교과서도 많이 변했어요 저희가 학교기 때 배운 그
교과서는 는 민족이 주하고 단일 민족 얘기가 제일 하편 나왔었어요 지금은
우리 사회 현재가 변했으니까 단일 민족 얘기 있으면은 이건 난리가 나죠 유연해도 뭐라 그러기 시작했었습니다
90년대 초반에서부터 그러니까 그거 다 없어졌거든요 그리고 교과서는 항상
바뀌 가고 좋은 적으로 가고 있는데에 아직도 그 뭐 이렇게 이상적인 기준
아니면 뭐 정파적 기준이라도라고도 할 수 있겠죠 거기서 보면 미흡한게 있다
어 그리고 어떻게 제가 관견 광견의 기은 제가 생각할 때는 아 이렇게
다원화된 세상 그리고 우리 미래 세대들 그들이 밖에 나가서 어 연어처럼 어 5천의
불맛을 기억해서 돌아오는 회개하는 연어처럼 돌아오게 만들려면
어 진정한 정체성과 어 자긍심을 갖다 가을 수 있게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이제 그런 하기 위해서 교과서가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니까 우리 몫의 책임은 우리가지고 그리고 그 진짜
자랑스러운게에 단군 시대가 아니고 조선 시대가 아니고 너들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에 희생과 그때 땅과
노력을 기억하는게 옳지 않느냐 그런 식의 얘기가 좀 더
들어가야이 세대도 연결되고 우리이 시민사회도
어 그 미래세대들에게 해 줄 얘기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토대 화에서 이걸 한번 현재 쓰이고 있는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들
다시 한번 또 제 나름대로 돌아본 겁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그
5장은 어이 책의에 그 저걸 깨고 있는 어떻게
보면 목걸이에 구슬 깬 줄인데 어 그 학계의 그 인식 뭐 크게 보면 한국
사학계의 주류적 사관에 그리고 또 거기에 대한 대한 논리인지 수정주의
할 수 있는 아 경제성장 사학 쪽의 이야기 그리고
탈근대 탈민족 사학 쪽의 얘기들을 갖다가 제가 나름대로 이제 그 정리를
했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도 제가 제 생각을 좀 어 밝혀 봤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쭉 하다 보니까 아 뭐 저 어 저 이기백 선생님도
제가 수업을 듣거나 뭐 들어본 적은 없고 학교에서 멀리 이렇게 본 거에
지나지 않는데 이분 책을 이렇게 그때 보면서 제가 느낀게 종장의 보면
이분이 이제 식민주의 사관에 대해서 어 그 비판을 성과가 모인게 이제
한국사 신혼인데 그 국사 신론 서터 해 가지고 그 버전만 해도 뭐 한 2
30개가 되는데 최종판이 한글판이 그든 근데 거기에도 이제 들어 있는게
이제 종장에 보면 지배 세력과 역사 변화를 지배세력 중심으로 이양반이
써오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당파 성문 정체 성문 뭐 이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게에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계 이만 말라 어 어
자유학 평동 향 끝없는 흐름이 한국사에도 관철됐다 그 얘기로 하고
싶어서 그 얘기를 쓰신 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이기백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그 저는 뭐 이제
개인이 발견되는 시대가 그런 데라고 받고 그렇게 이양반이 어 개인이
등장하는 그러니까 시민 사회로 이루게 된 동력을 한국사 자체에서 찾아냈다는
거가 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더불어서이 양반이 얘기하고
있는게 열려야 된다라는 개방성을 얘기하시고 계시더라고 그래서 저 그
두 점이 어 사실은 현재 우리 한국 사학계에 이분이 쓰신 그게 올려
주는게 좀 크지 않는가 저도 한국 사계의 이론으로서 그부분의 얘기를 한번 다시
곱씹어 보자 하는 걸로 제가 책끝을 맺은 건데 예 그렇게
해서 제가 이체이 쓰게 되고 나오게 된 배경을
얼추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머지는 다 읽고 오셨다고 어
생각해서 중원 보원 말씀드리는 거보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어 토론자
선생님들 말씀을 더 듣는게 낫지 않을까서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 해주신 분중에서 가장
모범 왜 그렇게 입고 왔는데도 다들 이렇게 말씀들을 길게 들 주자들이
하시는지 아주 정말 맨날 안타까웠었는데 오늘은 아주 30분도
안 하셨네요 아주 정확하게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이제 그 설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설전으로 예네 김훈 선생님 아이 제가 원래는 사회를 막고
싶었었어요 왜 왜 왜 그러냐면 칼자루지고서 그랬는데 두분이 하시는
유튜브를 보고 난 다음에 원장님이 하신게 100배 나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그러냐면 제가 나름대로
허동현 선생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통해서 굉장히 많은 걸 아로만 칼란 줄 알았어요 다 불개
만 인이 많은 걸 알았어요 아니면 그 자리 그런게 안 했으면 절대로 죽을
때까지 몰랐었던 아 그래서 저 인간이 아니라 저분이
저렇구나 김원 선생이 인간이라고 부르셔도 돼 근데 이제 이게 토로는
굉장히 부담이 되잖아요 헛소리를 할 수가 없으니까 써야 되니까 그래서
튼 썼는데 그 제 그니까 그니까 책은
예전에 받았지만 읽기는 이제 이번에 읽었습니다 그니까 근데 인간이 사는 거 저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니까 근데 우리는 지금 여기 있거든요
근데 공간의 여기는요 실제예 근데 지금은 실제가 아니에요
그니까 지금이라는 시간은 식이거든요 그니까 지금이라 현재는 의식의
물이에요 그니까 의식은 내가서 어떻게 정의하면 기억된 현재요 그니까
과거 미래의 출발이에요 이게 재거 그니까
현재라는 개념 자체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접점인 거죠 이게 비동시
현재라는 말 자체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 역사라는 거는 집단 기억이든
집단 기억도 똑같아요 그까 역사라는 것는 언제나 과거지만 미래를 위해서
하는 거죠 그니까 그니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 역사 인간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 동시적인 것의 동성이든 근데 처음에 이제 책을 딱
봤을 때 부제를 딱 보고 어 허현 선생님 이걸 알까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근데 어이 개념을 한국사이 도입하면 굉장히 많은 새로운 시각이 열릴 수 있다고 해서 제 토론은 다른
것보다는이 개념이 갖고 있는 의미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가 여태까지 토론의
방식에 다른 방식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 점에서
했습니다 그니까 어 교수님의 한주 소을 쓰면 한국 현대사의 급소를
찌르는 문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급소는게 한 한의학에서는 경열
이거든요 혈자리 그든 그 혈자리를 건드리는 거는 몸 전체를 건드리는
건데 건드리는 방식은 두 가지예요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거거든요 정반대 침은 빼는 거고 혈은 넣는
뜸은 넣는 거거든요 그니까 넣고 빼고거든요 근데이 어 그니까 허선생
님 자기 자신이 건강한 보수 주자이며 열린 민족 주의라고 자천 하거든요
이제이 그러면서 그런 시각으로 한국사의 급소에 친과 뜸을이 책을
통해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약간 이게 비춰졌다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확실하게 한 건 아닌데이
개념을 가지고 했다 개념을 할 수 이비 아 그니까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번역을 하셨는데요이이 개념을이라는 걸 통해서 양수 겹장 친가 뜸의 양수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이 개념의 장점은 뭐냐면요 진영 논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이 문제를
시간성의 문제로 한번 우리가 성찰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아 그러니까
왜 그러냐면 한국사에서 역사 전쟁은 주로 진보 보수 이념에 따라 전선 형성돼 이미 결정돼 버려요
그래서 역사 사실보다는 역사관의 차이가 급소를 유발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술이 밤 남았을 때라
사람은 반밖에 안 남았네 하고 비라 사람 반이나 나네 하는게 역사관 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역사
사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결국 논쟁에 가장 급소가 되는 부분 역사관의
차이죠 이게 생각의 차이거든요 근데 역사관은 하나의 과거를 다른 역사로
과거는 하나지만 역사는 여러 개 거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뭐냐면 안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게 메타
역사의 문제 재정국 메타 사거든요 이게 바로 역사전쟁 종식되지 않는
구조적 이유죠 그니까 무엇이 역사적 사실인가 지는 것으로는이 태 역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니까 역사전쟁 끊임없이 반복되는 건 뭐냐면 근본적인 걸 따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니까 보는 안경은 우리가 볼 수가 없어요 안경을 통해서 본 것만 보는 거예요 근데이 안경의
문제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거죠 아 이치카가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역사책을 읽기 전에 역사가에 대해 조사하라 바로이 말이 뭐냐면 역사가의 생각의 역사관이 과거를 역사로
인식하는 형성하기 때문에 그래 그러니까 그 사람을 보라는 건 뭐냐면 그 사람 역사관이 뭐냐는 거예요
그거를 먼저 알고 그 사람이 쓴 책을 보라는 거죠 그니까 매타 역사가 역사를 결 구속한다는 거죠 그고 역사
전쟁에서 문제는 메타 역사의 역사가 아니고 근데 한국사가 문제가 되는
거면 한국사의 가장 큰 흐름은 실증 사이에요 실증 사학은 이론 없는 역사학에이 사실이 진실을 말한다고
보는 거죠 근데 사실을이라고 판단하는 거는 역사 관이에요 그래서 어이 이론이 빈곤한이 책은
어떤 부분에서 이론적인 부분을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란 개념을 가지고 건든다면서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이 토론에도 그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진 역사들 사이에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안경이 다른 사람에게 본 것이 다른데 어떻게 우리가 소통할 수 있냐는
문제죠이 물에대한 유의미한 답을 하려면 먼저 역사들 사이에 생각의
차이가 왜 발생했는지 터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마르크 불레 유명한 역사에 대한 정의가 시간 속에 인간에
관한 학문이에요 시간이 원수인 거죠 그다음 유시앙 페르가 역사가 짓는
가장 큰 재는 시대 차오라 그랬어요 그니까 현재처럼 과거를 보는 거예요 현재의 안경을 쓰고 과거를 보는 거죠
그 결국 두 개다이 두 개의 정의가 갖고 있는 건 뭐냐면 시간이 질라는 거죠 그러니까 누가 볼테르가
그랬나요지는 시간의 딸이다 이런 거죠 그 역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좌표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 시간은 물리적 시간처럼 선형적이지 않아요 엄밀하게 말하면
시간이라는 거 이게 유명한 요새 로벨리 그니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나라 그렇게 번역되는데 시간은요
마음 밖에 있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요 인간만 시간이라는 의식을 해요 인간만이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서 인식하고 그런 인간의 시간 의식이 만드는 이야기가 가 역사하는 거죠
그니까 보수나 진보라는 분선 갈리는 이념의 스펙트럼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시간을 구성하는 방치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보수는 시야가 뒤를 향해서 밀러를
보면서 앞으로 전는 사람이에요 과거를의 전범을 보면서 앞으로 가는 백미러를 보면서 앞으로 가는 사람이
보수 주자라 men 진보 주자는 반대로 앞에 목표를 설정하고 빨리 달려가겠다는 사람이에요 그니까 서로가
운전하는 방법이 다른 거예요 그런 그니까 시간 결국 초점이 되는 시간이 다른 거예요 보수자 과거라는에 중심이
더다 시간의 중심이 과거라면 진보 주자는 미래에요 시간의 중심이 그거
그니까 시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 과거제 미래를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죠 이런 시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성찰하는 개념이 바로 그라자 티카스 운가 자티 이거든요
원는 독일어로 어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 이게 뭐냐면 원시와 근시
이의 문제예요 가까이 보는 어 원 근시 안경과 멀리 보는 원시 안경이
있어요 그니까 역사는 다초점 그니까 보수와 진보의 다초점이 필요하다는 거죠 한 가지 초점만 보는게 아니라는
거죠 그니까 이런 다초점의 역할을 할 수 있는게 비동시적인 동성이라는 개념이에요 근데 현재라는 시간 자체가
미래가 과거가 되는 비동시적 동시성을 성립하여 이게 유명한 비유인데 현재란
건 뭐냐면 칼라예요 칼날 열 칼라 과거와 미래가 좁아지는 거예요
계속해서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이게 뭐냐면 현재가 비판과 위기 시간이
돼요 아 그니까 앞에 술자는 예처럼 과거 미래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보수와 진부 시각처럼
발견해요이 스펙트럼 자 그렇다면 보부 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비동시
적의 동시성의 문제로 한번 우리가이 급소들을 문제를 보잖아이 말을 만드는 사람은 원래 에스터 블로그예요
유대인인요 동독에서 교수 하다가 이제 한 사람인데이 사람이 희망의 원리라는 책에서 이제이 얘기를 해요이 이게
이제 유명한 정의인데 모든 사람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외형적으로만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각자가 현재라고 생각하는게 달라요
다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현재라는 그 기억의 마지막 지점이 이거요 자기가
꿈꾸는 것의 출발이에요 이게 다 같을 수가 없어요 그니까 우리는 현재
살면서로 현재 살고 있는 거예요 현재라는 시간 자체가 비동시적인게
동시성이 이제이 블로그가 이것을 생각한 건 뭐냐면 히틀러 문제예요 그
왜 독일에 바이마르 공학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헌법을 만들고 문화를
꽃히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왜 히틀러의 열광 있냐는 거죠 그까 이게 뭐냐면 발바 시대는 이게 유명한 근자
이론의 문제죠이 그니까 경제적 시간과 정치적 시간과 문화적 시간 럴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화는 독일의 문화는 전근대적이고 프로이센이 권위주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예수는
다다이즘 럼 굉장히 어 모더니즘적인 거예요 이런 걸 그고 히틀러는 낭만적
민족주의를 한 거죠 이까 막 시간이 여러 개 시간이 막 엉켜버린 이게 근대 병리학의 문제거든요이 여기서
아오미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자 이걸 이제 어 파시즘 이론으로 도입하면
에른스트 놀 테요 태가 이제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결국 파시즘 현성을 낳는 근본 원인이다이는 거죠
이걸 역사하게 하는 전면적으로 들어온 사람이 코젤 역이에요 이게 유명한
개념사 동시의 동시성은 근대의 징표라는 거죠 역사 개념 자체를 연구한 거예요 전통 시대에서는 역사는
두 가지 개념이에요 과거의 사건과 그에 대한 기록이에요 근데 우리가 갖고 있는 근대 역사는 개념은 만드는
역사요 새역사 창조라는 개념은 전근대 있을 수 없는 개념이에요 왜 과거를 어떻게 만들어요 새역사 창조할 때
역사는
미래거울 기점으로 해서 만드는 역사 곧 과거 간이 미래수 역사 개념이 생겨 놨고요 이게 노이 짜이요 이게
근대요 그니까 새로운 시대예요 이게 바로 근대 시간성이 그런 시대의 전환점은 코젤은 이걸 이제 델
사이트인데이 말장 시대 아니면 문턱 슈랜 자트 문턱 시대 그니까 말장
시대 달리기 시작했 거고 문턱은 시간이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이제 이게 이제 근대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라는 시간성 자체 근대인의 사
자체가 동식의 동시성이 근대는 언제나 전환 기고 과도기에 그러니까 미래가
선취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그러니까 이게 이제 전형 쟁의 진보 답이에요 근데 한국 근연 대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비동의 동시성이 큰 나라예요 왜 우리는 압축적이고 도지인
근대화를 성취한 이게 이명 교수 아까 허동 사회학자 이명백 교수 아마 책길 거예요 이명 교수가 비동 동시성
가지고 한국의 압축 군대나 지적 군대를 설명하는 거 제가 그 그거고 자 그럼이 급소가 하나씩이
항상 백사가 어떤 비동시 동시성이 있냐는 거예요 근대는 무엇인가를 할
때 가장 큰 이론 중에 보하고 막스아요 하나는 자본주의 하나는 탈주술화 합리화 과정인 거죠 그다음에
조선의 탈주술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선 회승이 근대화를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탈 지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탈
기독교가 아니라 조선은 탈 성리 학과에요 자 서구의 카톨릭과 달리
조선의 천주교는 근대문명의 표상에 이게 아이러니한 거예요 서구에서는 종교가 전동 시대를 대변하는
생각이었다면 우리는서 서구의 기독교나 카톨릭이 근대 표상이 된 거예요 전동
성리학과 근대 민족국가 관점이 보면 항상 의 매국 노고 반역자에 근데이
문서를내는 비동시 동시성이 그 이행을 보면은 왕은
국가예산의 백성에 갖고 있는 맹이 뭐냐 조선 왕조가 국가는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을 항상 그러니까이 이런
이런 사고이 근대적 사고요 그러면 운명에서 그러니까 어려 여러 맥락에서
천지에는 근대비 표상인 거죠 전통시대 성리학과 근대인 민족 국가를 보면
그렇지만요 이런 이행의 맥락 그다음에 신앙의 자유 문제죠 그리고 문노 개방을 하자는 거죠 이게 다른
방식으로 읽기를 하자는 거예요 그러면 근데 정치상 분기점으로 볼 수 있어요 상사형 이처럼 전통과 근대가 중첩된
것이 비동시 동일성이 한다면 문명사적으로 본다 그다음에 황사의 백선은 완전히 저는 자리 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런 것까지 아마 어 저 허기수 님이 생각하셨는지 한 물어보고 싶 문명사적 맥락에서 이렇게
본다면 황상의 백사에 대해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번째 가요 동학에
동학은 더 물건이에요 1894년에 동항의 이름은요네 개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예요 난 혁명 안되죠 전쟁 운동 그니까 교과서에는
운동이라고 썼어요 운동이라 쓴 이유가 뭐냐면 물 개념이라 그래요 이거 같이 중립적 개념이에요 그래가지고 누가
그러더라고 한국사 교과서 운동 교과서에 3일운동 4일 천부 운동이야 다 애매하게 이데올로기 문제가 다
그래가지고 선 운동자 붙인 거예 다 피해 나간 거야 근데이 재밌는게 안중
군이에요 안중은 동양 표에 보면요 동학군을 조선의 좀도 동학당이라 하고요 그 아응 7의 역사 자기
자선을 보면요이 사람 의병 대장이자아요 동학군 토벌 뿐이에요 그
이걸 어떻게 해야 될 거니까 그러니까 의병이 것과 독립군이 거 자체가
굉장히 모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예 그니까 이게 이걸 어떻게 할 것이냐이 문제예요 이게 전형적인 비동시적인 동
시템 시간에 따라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된다는 거야 결국 시간이 주인이라는 거예요 그니까 동화동 본기
자체는 청의 의하다 사건 태 시대 차고예요 그러면서 탈 성리학의 출발점이 이걸 가지고 그니까 한국
사는 사람들 이런 의식 못 해요 이거 의식을 한 사람이 소은 선생에 시민의 탄생이 이제 송원 교수의 태제 그니까
코젤렉의 개념사 갖다가 이걸 이제 이런 식으로 해석한 거예요 1860년대 이후 민남이라는 거
그리고 민남이 정점의 동학 공기가 양관 사회에서 문예 인민 사에
하버마스 이론이죠 공론장의 구조적 변동이 일어난 시이다 여기에 동학이
이걸 원하지 동학이 의도한 건 아닌데 이걸 기점으로 구조적 변동이 일어났다
이제 양반 사회가 어 여론을 잡는게 아니라 이제는 평민은 문의 인민이라는
개념이 나오 이게 바로 신민의 탄생이요 이거를 이분은 이제 서양의 어 저기 문턱 시대 마원장 시대가
조선의 마장 시대라고 이렇게 두면 동학이 근대와 관련이 되는 거죠 자
재밌는게 뭐냐 대한민국 역서 방법가 아마 김지현 선생님이 그거 하실 때 설립위원 이셨을 텐데요 제가 이전에
한번 무슨 칼럼을 썼는데 저한테 메일을 한번 보내신이 문제 가지고 제가 얘기했었던 거거든요 제일 전시를
어떻게 쉬는가 제일 관심 있었어요 저는 이전에는 개항 있어요 1876년
개항을 제일 전시 이게 근대 기점으로 본 거예요 그러다가 아마 문재인 정부 들아서 뒤집어 엎으면서 1894년으로
갔어요 이게 두 개예요 두 개 그러니까 계양으로 볼 것이냐 1893년을 볼 것는데
1894년 전형적인 비동시적인 동시성이 세 개의 사건이 중첩돼 있거든요 동학 청일전쟁 그다음에 갑보
경 갑보 계획이요 동학은 전통 이죠 청일 전쟁은 뭐예요 세계관이 변동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조공 채분 관계에서 만국 비서로 완전히 바뀌는 거죠
그다음 갑부 경장은 뭐예요 개혁을 하겠다는 거 자체적으로 그러니까 1894년에이 세 개 시간 있다는
거죠 그니까 동화 운동의 근대로 이행을 아래로부터 보는 역사라고 대변한다면 위로부터 보는게 뭐냐면
이태 진선의 고정 계획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뭐 위로부터 본다면 동화 그 볼 수도 있지만 아 아래로부터 본다
위로부터 보는 고정 이제 이게 이제 아 이태 선생님처럼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시각으로 보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재밌는게 아까 말씀하신 그
내주심을 어 고정에 어 전범으로 삼았다는게 일반적인 생각이잖아 그게
아니라 다른 얼터너티브 찾은게 아니냐 왜 자르가 더 정으로서 좋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이상의 삼다 해석인 거죠 그렇다면 뭐 누가 맞느냐 이건 제가 모르는 문제고 단지 하나는 뭐냐
대한제국은 고종의 생각은 국민이 아니라 신민이 이건 국민 국가 아니에요 신민은 그러니까 좋게 봐야
전형적인 보종의 머릿속에도 비동시적인 동시성이 있다는
거죠 그다음에 가요 1945 현대사 이제 이게 보면 한국 현대사는 굉장히
재밌는게 뭐냐면 냉전 포스트 사회주의 포스트 어 주의 그다음에 근데 타이
근데 디지털 문명 우리 다 같이 살고 있어요 이 세대가 다 있어요 그러니까
가장 세계에서 비동의 동시성이 강한 나라예요 저는 저 투살 문제 뭐 이런
문제 자살율 높은 거 다이 이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 여기서 완전히 가치관이 안오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그 근데 한국은요 밖에서 보면요 산업화 민주와 이주경 가장 성공한 살
거예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는 뭐냐 군사정변이 한
거고요 하나는 이제 군부 독재에서 일어난 일이고요 하나는 는 민주화에이
두 개가 완전히 다른 것이 동시적으로 일어라는 거죠 이중에 근대를 한 거예요 이것 이것이 나온 결과가 뭐냐
비동시 동시성이이 논쟁이 역사 전쟁에서 보면은 이것의 주체를 국가로 볼
것이냐로 보는 대한민국 역사를 보려는 거고요 민족으로 볼 거는 우리 분단 국가야이 강만희 선생 분단체제
로이에요이 두 개가 싸우는 거예요이 싸움이 계속하다가 최근에 나온게 홍범도 장군 동상 문제라는 거죠 자
여기서 독립 유공자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 안에도 비동시적 동시성이 있어요
자 예를 들면요 독립운동이 뭐냐는 거예요 독립운동 일제 강정일 때는요
일제로부터 독립운동 버린 이념에 관계없는 모든 사람이 항일운동 자체가
독립운동한 거예요 그죠 근데 대한민국이 성립된 이후에는 뭐예요 대한민국 전사로 독립운동사를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럼 좌파는 다 빠져야 돼요 자 그 이게 이러 뭐가 독립
운동이냐는 거예요 뭐가 그러니까 이게 시대 착고 문제예요 그러니까
지금의 이후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그때 일어난 일을 가지고 잣대를 하는게 맞느냐 그러니까 그럼 한국사의
범주가 뭐냐이 문제예요 이게이 범죄를 이념의 문제로 볼게 아니라 비동시적인
동시성의 문제로 보다는 거죠 그니까 항일 론도 벌 당시에는 대한민국 없었어요 당시 역사성 기준할 때는
자파 항일투쟁 모두가 독립운동 범죄에요 근데 시대가 바뀌 대한민국을
부정해 북한 정권을 지지해요 이사 독립 투사도 독립 공장이라는 거예요이
문제 어떻게 볼 것이냐 그런 모수는 근본 원인이요 이게 보호는 세계
고르거든요 뭐냐면요 독립하고 호국 민주에 이게
다 있어요이 세계가 처 모순이 돼요 그까 독립했는데 호국을 뭐예요 반공이
반공 그다음 민주는 뭐예요 반공이 빨 민주는 약간 좌파적 이죠이 세계가
엉망인 거야요 엉망 그러니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이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냐 거예요 모순이 아아 저는 이게 모순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긍정적 힘이라고 봐요 왜 그러냐면 역사는 죽음 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에요 역사는
진보하는게 아니라 진화하는 거예요 그니까 진보는 뭐냐면 미래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달려가는 거예요 무조건
응 그게 진보야 그게 아니면 진보 아니야 근데 진화는 뭐예요 다양성이
이 비동의 동시성이 우리의 역사의 다양성이라는 거예요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은 정답 아니에요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이 변하면 어제의 진리가 오류고 어제의 오류가 진리가 돼요 그니까
시간의 딸인 거죠 이거를 우리가 역사라는 보물 창고서 찾아야 된다는 거죠 이걸 찾는 방법 중에 하나가
비동시 성이에요 자이 마지막에 이제 근 주체 논쟁에 민족주의 내 발전론이
역사에 공감한다고 하셨는데 이백 선생님 그 뭐야 한국사 신혼을 관한
어 한국 뭐야 한국사의 신 해가지고 뭐 윤대중 선생은 김명 선생 썼고
자는 이기백 선생 쓴 거거든요 근데 허기수 여기서 제 허교수의 열림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저 이건 저기
주제넘은 얘긴데 허수의 큰 개예요 열린민족주의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과연이 글로벌 시대에 20세기에 일제
신민 지배를 받았어요 근데 이제 1번을 추월할 수 있다는 세대들 나왔어 이 비동시 동시성이 이제 그이
지금 제 얼은 애들은 일본 우습게 알아요 그렇잖아요 자신감의 세대와
비동시 동생 세대에 살아요 한류는 21세기 루발 문명의 아이콘이에요 한국은 식민지배를 받고 독립한
후진국이다 선지를 도약한 세계 유일한
국가예산이 신민지 근대의 내전력 발정이 문제가 해결 못 해요 설명 못 해요 이제는 글로벌 한국 문명사를
써야 된다고는 거예요이 글로벌 한국 운명 개부이 뭔가요 이러하면이 단절을
봐야 돼요이 단절이 단절의 지점들이 점프하는 기간이었다 거예요 이게 비동시성 동성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개방과 섞인 회복 탄력성 이게 우리의 문화적 기회예요 낫지도 않은 아이
이름 붙이는게 내적 발이고 자본주 맹화이 콤플렉스 콤플렉스 도전과 은전의 문화적 진화로로 한국에서
이룩한 거예요 이렇게 수하게 모순된 것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해서 여기까지 온 거라는 거예요 자 이제
이거를 얼마나 받아들지 모르겠어요 이게 시간과 진송이 필요해요 결국은이
서평도 이제 비동시 동생이 충돌하는 자리가 될 거예요 그래도 지구는 돌아요 이게 이제 이파 마지막에
했는데요 이파 손녀가 어 화디 히스토리 나오라는 책을 썼어요 여기
보면요 굉장히 완전히 달라요 이해 같이 19개 역사가 나와요 지구사
환경사 자연사가 그니까 역사가 쪼개진 거예요 이해하는 진보라는 하나의 역사를 썼는데요 손녀가 볼 때는
아니야 지금 역사는 뭐신가 이거 아니야 시대 차고에 자기 할아버지가 그니까 19개 역사 그러니까 젠더의
역사도 나오고요 역사를 키어링 한다는 것도 나오고요 장애인의 역사도 나오고요 역사가 쪼개진 거예요
다양해진 거예요 이게 진화예요 자 근데 허교수 책이 어떻게 보면 한국사에서 이럴 수 있는 하나의
돌파를 열어놨다 저는 이렇게 보고 싶다는 겁니다 이상입니다
네 주님 감사합니다 똑바로 이순열 장님께 넘 드겠습니다 먹기전
답 무 그래서 이여 선생까지 하고
잠깐 쉬었다가 그리고 돌아와서 답변 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열 하
하겠습니다 한 20분 정도를 그 옆에 스위치를
습니다 우리 서양사 선생님 말씀드리니까 그냥
머릿속이 막 맑아지는 거 같기도 하고 흐려지는 거 같기도 하고 좀
약간스럽습니다 저 어쨌든 한국사 영역에서 좀 그 뭐 이렇게 좀 소박한
질문을 하면서도 좀 심각한 질문도 하겠습니다 저는이 책
읽으면서 어 이책에 크게 큰 키워드는 이게 좀 시대착오적인 역사 인식에
빠져 있는 인족 민족주의 민족주의 민중주의 사학인 586세대 역사
인식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비판에 놓은 거는
그이 개인 다원 아도 코스트 담론적 입장에서 이렇게 비판의 담론의 각을
세우신 거 같습니다 우선 그 황산 백사에
관해서는 여섯 가지 정도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대체로 선생님
입장은 정두희 선생님의 입장과 같은 거 같습니다 그거는 지금
김기 선생님의 입장하고 더 유사한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이
부분은 질문은 뭐냐면 이승훈과 이승훈도 그때 이승훈베드로
우리나라 최초의 잖아요이 이승과
황의는 설명할 수 있는가이는 북경에 가서 그 황사영이 그 뭐야 백설을
보려고 했던 그 신부를 듯 만나서 세계까지 받은 사람이에요 두 사람은
근데 백서에 대한 이견 차이가 있단 말입니다 그럼 이런 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현대인이이 백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계인이 백설을 바라보는 관점의이 차이는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
관해서 그 생각해봤으면 좋 같고요 뭐 여러 가지 얘기가 있지만 선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죠이 말티 종교 개혁 같은 경우도 기독교 세계
내에서 일어난 거거든요 근데 이거 그 프리드리 대제가 마르틴 루트 보호하지
않았으면 종교 개혁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순수한 신학의
세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정치적 현실과 관련되 있다 이런 걸 모두
빼버리고 그냥 개인의 관점에서 그냥 역사 으로 황사 백설을
바라보는게 어떤 것인가에 대한 거 그다음에 이때 종교 전쟁 그 와중에
하지만 그 천주교 쪽에 선 천주교 쪽에서 위기 대신교 대학살 한단
말입니다 그게 뭐 성 바로 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인가 뭐 기독교 내에서도 입장이 잘라서
이렇게 학살을 하는 거예요 근데 전혀 그 사상의 체계가 다른
그런이 천주교가 왔을 때 이곳이 굉장히 심각한 어떤 뭐 소들을 겪
겪는다는 것은 또 정책 현실과 물일 때 겪는다는 것은 어쩌면 필적인
과정일 수도 있다 근데 그런 부분을 정말 비교하려면
천주교와 조선제 비교와 기독교 세계 내에서의 천주교와 그 기교 신교 갈등 이런
부분들이 질적으로 어떻게 갖고 다는지 이런 거에 대한 침도 있는 우리 또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거 탁 각설하고 그냥 천주교는 근 대고 성은 전근
대고 이런 진짜 이본 법적이 딱 대립각 돌 갖고 역사를 단순하게 해석하는 거는 우리가 좀 더
이성적으로 연린 민족주의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게 배치되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고요 동농 기도 뭐 여러가지
이하기지만 핵심은 그런 겁니다 동농 봉기를 보스거다 왜 이걸 갖고 자꾸
뭐 전쟁의 성격을 부여하고 혁의 성격을 하느냐 이건 익 선생님이
줄기차게 말씀하신 거 거의 뭐야 허 선생님이 거의 100% 용하셔서 최근
연구 성과를 좀 참 건데 저는 뭐 그
보스 거가 있다 보스는 말 동의합니다 시작 그래서 1860 인수 밀란과이
뭐지이 초기의 고급 밀란 같은 거 큰 차이가 없는데 이게 상황이 바뀌는
거거든요 1860년 계에서 외부적 자극이 없고 그다음에 내부에서도 그
1860 유정자 대응과 1894년 정도 대응이 달랐어요 선 민시 정권이
우선 청 초대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상황이 바뀌는 거거든요 그니까 거가
업이 벨으로 바뀌고 리리이 11월까지 가게 되는 영역이 발생한 거예요 아까
여기 김님 저기 뭐 안근 의사를 얘기했지만 안군 그때는 양반의 입장에서 민보의 입장에서 있었던 거
의병의 입장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약간의 계급적인 관계 있어 그니까 관군과 일본군과
민보이이 민보 나중에 의이 되는 사람 게 많습니다 어 근데이 사람들이
1894년 당기 충돌하는 거라고 이런 부분들의 성격 성질이 변화하는 거를
고려하지 않고 딱 대원군을 만났다 뭐 뭐 보수적인 어떤 담론이 있다 이런
거를 갖고 그 보수적인 거기 때문에 이거는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이거를
자꾸 뭐야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이념의 잣대로 그거를 뭐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거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해석하는 거다라고까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저는 김용섭 선생을 이셔야 그분들이 얼마나 실증적인 어 정말 구체적인 그
실제 이하는 연구자들 있데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들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다고 비평하는 것은 저는 상당히 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한제국 관련해서는 저는 뭐 제국과 사인에서
대한제국은 내가 누구 보서 많이 이렇게 그 봤던 사람이고 그다음에 그
교수 신문에서 그 할 때 동생한테 저 일부러 참여하지 않았어 왜냐면
논생태 소리들만 얘기하니까 근데 선생님이 그 페이
200에서 201 페이지에 보면 1910년 단계 한국 상황을 통계청
계약의 경제 사상을 갖고 인용 있어 우리가 그때 양반이 3% 7% 3
83% 그니까이 얘기는 뭐냐면 우리 수준이 굉장히 뒤떨어져 있었다 우리 사회가 뒤떨어져 있 있었기 때문에 그
우리가 매주 신들 개들만큼 우리가 제대로 우리나 사이를 개혁하지 못했다
인권도 신장시키기 못했고 사업하지 못했고 뭐 이거 객관적 사실입니다 근데 그건 왜냐 그렇게 된 상황이
정말 위정자들의 조선왕조 사람들만의 잘못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린
생각할 생각해 봐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비교하는 건 사회 지적인 사고
비슷한 거예요 그냥 편명으로 비교해서 너희들 두 놈들이니까 우리 지배를
받아야 돼 우리 그러니까 또 성장해야 돼 이런 비슷한 사고 형태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교사라는 그 단면적인 비교가 아니라 왜 우가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는가 거를 같이 설명해야 되고 그다음에 그 이후에 한국의 역사는 비록 졌지만 그 이후에 한국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는 이런 꽤 장기 사의 관점에서 비교를 해야 비교의
어떤 설득력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런 측면에서 대한제국에 관한 비교사적 서술은 그 상당히 문제가
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한제 관에서 딱 한 마디 말씀드리면
아 여기 주거래 은행들이 뭔지 모르겠 한국 기사에서 최고 오래된게
신한은행과 그 우리은행입니다 신한은행은 한성은행 역사 요을 갖고
있고 우리 은행은 대한 역사적 연를 갖고 있습니다 그게 189
1899년에이 왜이 연도를 얘기하냐면 갑보 개혁 때 일본애들이 여러 가지
개혁 정책 했지만 절대로 은행과 합회 개혁하지 않았습니다 은행과 해 개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전에도 우 가 해관을 담보로 해서
교하고 은행 만들려고 할 때 나라들이 반대했어요 못 하겠어요 그건 뭐냐면
우리가 화폐와 은행이 독립하는 순간 완전히 나라가 바뀌거든요 결국 근대와
핵심은 도를 어떻게 도구나 문제가 완료 있습니다 정치체제 문제도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은행을 만들 수 있었던 거는 개성사 우리나라 사인이 갖고
있는 그 사부라는게 있 세계의 체계를 갖고 만든 거예요 그 돈의 대부분은
왕실과 국가 제자입니다 그니까 독립협회의 주재원인 조선은행은 왕실과
조 대한제국 정부가 지원하자는 돌아가지 않아요 독립 패배도 마찬가지
독립신문 발간 작금 다 곡수 나옵니다 그니까 당대는 독립협회가 반드시 광부
정부가 대립적이고 않습니다 그리고 광무정 독립협회를 만들었던 참에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근황 주의자 거의 결코 그 그 거기에 유별나게
튀었던 사람이 누구냐 이승만과 이런 몇 개의 그 배제대학교 협성회
출신들입니다 이걸 갖고 윤치호는 되게 걱정했습니다 저 급진 주자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 그니까 상당수 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합의가 돼
있었습니다 이거를 그런 박나 이런 명의 가장 그 뭐 뭐라 그럴까
대한제국 정부 입에서는 가장 반정부적 인사 을 끝까지 주장을 했기 때문에
발단이 돼서 사단이 난 건데 그런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고요 그 교과서 문제에서 전
선생님에게 상담 부분을 동의합니다 예를 수정주의 여관이 많다던가
항장 중심에 그 뭐 이렇게 동 기술 한다든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저는 그
통하지만 그리고 그건 다른 말을 표현하면 와 민족주의적 입장이 교과서에 반영돼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저는 반드시 그거는 수정되어야 되고 우리가 재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단지 저는 그거를
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거는 대단히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이 좀이 부분은 다음과 관련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근대요 이제
근대 문명 전환 주체에 관련해서 이거는 기본적으로 민중적
민족적 단위로 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인 서술 책입니다 그래서 이거에
하나의 그 뭐야 담론의 책에서 의지하고 있는데 이백 선생이 지배층 중심의 변한 책를 얘기하시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이거 읽으면서 선생님 그 읽으면서 정말 그 재미난
걸 발견했습니다 저기 선생님이 많이 인용한게 이선생의 글인데 우리나라의
명가 전 된다 문명권에서 그 유교 문명 기독교 문명으로 대명 문화에서
해양 명 그리고 20세기를 한일관계 조은 시각으로 보수는 안 된다 이거
뭐 100% 동의합니다 근데 그이 선생 근데 이거를 이렇게 좁혀
버려요 일제 식민지시기 현대 한국 문명의 직접적 전자로 본다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완전히 다른 앞에 전 100% 동의하지만 그리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대로만 본다이 민주주의라는 건 그냥 민주주의 어떤
민주주의가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니까 북한도 민주주의 얘기합니다
남한도 민주주의 똑같은 민주주의가 아니거든요
그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저는 그 이렇게 입장이 전 굉장히 다르지만
김선생 아까 그 쓰신 그 하신게 뭐냐면 선생님 다르다고 생각했으면
같은 지점이 보입니다 스스로 이게 제 이거 21페이지 있는데요 스스로 변신하고
중간에 있습니다 사회 민주주 같은 개량된 자본주 문명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이 얘기는 뭐냐면 그 보통
우리가 진보적인 역사학계가 대한민국을 부정한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재원 헌법 취지를 동의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재원 헌법의 취지를 동의한다는 얘기는 뭐냐면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동의한다는니다 한국 대한민국의 건국의
의미는 재법 전문의 법은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제법은 굉장히 보수 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적인 성향도 있지만 굉장히 그
포용적인 자유주의 경향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그런 측면을 강조한 거고요 그다음에 그 이영훈 선생 같은
경우는이 자유주의적인 시장 중심적인 그런 측면에서의 자유주의 보보는 거예요
근데 재법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니까 같은 범위 안에서 존재한다는 거 저는 다른 지점보다
같은 지점을 더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고요 그래서 우리가이 재원 법을 어떻게 기억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들이 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굉장히 저는 포용적 근대 국가를 지했다 뭐냐면 자유주의
의회주의 공화주의 등을 위시하여 그 저희 나라가 지금
21세기에 나름대로 잘 나가는 중의 하나는 전 제법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제법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는 거예요이 민족주의 역사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 사를 그 민족주의 관점에서이 민족 론으로 대한민국를
재단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여러가지 포이 협인 그런 지점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그것이 민족주의 역사의
문제예요 그러나 이승만 정권도 그렇고 조보관 뭐야 김성수의 한민당 그다음에
이승만 등등등 그 주변에는 사회적 경향의 인물들 독립운동했던 사람들
자유주의적 성향들 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 이런 것들이 같이 있다는 거
이들이 결국 타협을 위해서 해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거고 그 그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게 농지개혁 같은 거예요 농지 개혁은 그러한 사회적 타입이 없이 불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이런 토대가 굉장히 한국 사이가 이게 그 지니에서 굉장히 낮은 결성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출발을 했기 때문에 50년대를 지나서 60년대의 그러
새로운 산업화의 기틀이 마련된 겁니다 그리고 뭐 초등학교 교육부터 시작해서 국민화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치
되거든요 일제 시기는 그런게 되지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 되는 건 있지만
이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요 그다음에 이백 선생 같은 경우에 개를 문명의 전환 주체를 보고
그다음에 독립 협도 그 독립협회가 그 연장 상에 있고 대한제국은 외세
의전적 아니다라고 하고 그다음에 이런 연장성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고 얘기하는데이 부분은 저는 이선생 당대 연구에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하면 저는 이렇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명 저도
이렇게 지배자 입장에서 벌 수가 없고 우선 일 얘기가 길어지니까 딱
한마디만 하면 여기 관련해서 3일 운동요
그 그 304만 생각하시면 잘 아실 겁니다 기독교 천도교 그다음에 불교
두명 그 천도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비었습니다 조 적
대한제국에서 특히 여기에 주목되는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왜 33 그니까
3일도 중심세력으로 떠올랐을까 한 겁 여기 천주교는 없어요 천주교는
요만큼의 참여도 없습니다 왜 조선왕조에서 핍박 받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던
거예요 근데 삼일 인도이 했던 거는 한편으로는 항일 운동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사회개혁 운동이었어요 그니까 그런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근데 기독교가 이렇게 세력이 중심이 되는 거는 하나는 고정이 고독
기독교를 초청했습니다 1885년에 1883년에 보빙사 갑니다 그 이후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오는 겁니다 그리고 왕실 주변에 교회가 많이
생깁니다 배재학교 다 베델 고정의 이름 써지면 그러는 거예요 한국의
기독교는 왕실에 보이지 않는 지원을 갖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서
유리 없을 정도로 빨리 확대가 됩니다이 힘이이 힘이 1907년
이후에 나타납니다 이때 수십만 명이 돼요 이건 뭐 전 기독교 서에서 정말
예외적인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거는 뭐냐면 기독교가 우리가 제일 늦게
왔습니다 중국 먼저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자리잡
개신교가 잡은 나라가 그 대한민국입니다 아 한반도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여기 독일 뭐 이렇게에서 영국으로 갔다가이 세력들이
미국으로 가고 그 세력 프로테스탄티즘의 한국에 오는 겁니다 저는이 이렇게 연결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연결의 역사가 그 대한민국의 그러한 그 근현대사와
대단히 밀첩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것이 한국의 근대 정신과 그를 세운 굉장히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세계를 지배해 나갈
때 그 힘은 기독교의 세속 주였던 그 세속주의 핵심이 개인과 개인을
탄생시키고 개인의 그 그것과 련된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 정신의 핵심을
만들어는 한국에서도 그런 저는 굉장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개양 이후에
완전히 다른 사회 세력에 등장한다는 그건 뭐냐면 우리가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에서 인천 김성수를 이렇게 서원을 박달 했잖아요 근데 저는 그 이러한 인천 김성수를
위시로 하는 그 호남과 그 때 있었던 새로운 지주 세력이 장이 지주
세력은이 경기 서울에 있었던 지주 세력과 완전히 다른 지거든요이 사람들은 조선 농업
관에서 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세력들이 아까 은행을 만든
세력인 상업 세력과 결합해서 막 그 한 개혁이 뭐냐면 갑보 개혁과 강무 개혁입니다 두 개의 그 개혁의 주체는
똑같아요 아니 기반은 단지 그 우두머리가 다를뿐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인 개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이이 세력들이 정말 성장에
나가면서 이들이 유학도 가고 갔다온 그 신지식을 갖고 돈을 투자해서 뭐야
중학교를 만 좀 인수합니다
고려대학교와 중앙고등 고려대학교 역사를 보면 재미난게 뭐면 첫 번째 주인이 실입니다 이용이 두 번째
주인이 도경입니다 세 번째 주인이 인천김 이거는 한국 근대의 사회적
핵계 머위가 어떻게 변환되는 아주 정하게 보여주는 겁 그다음에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세력입니다 프로테스 이게 그리고 경성제국대학
민족운동 관련해 있지도 어쨌든 관변 영향력이 굉장히 강한 겁니다이 세 가지 세 가지 대학이 한국 근대사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삼일운동은 바로 이러한
새로 성장하는 신진 사대 신진 그 자아지 층인 개혁적 지주들 하고
기독교 세력들이 소멸 이게 사라져 가는 천도교 세력 그래도 아직까지 가장
천도교가 힘 대중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이 연합해서 하는
거에서이 그 윌슨을 위하는 세계 정세의 기반을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겁니다뿐만 아니라이 우리가 일 운동이 일어날 수 있던 배경 중과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되는 배경은 거의 연결 선상이 있는데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된 거는 양자화의 관계에서만 된게 아니라 1815년 프랑스 혁명이 끝난 후에
그 나폴리 전쟁이라는데 그 마무리 회의가 1815년 비입니다 이건
영국이 주도하는 국제 소가 형성된 거군요 이거에 도가시 판이
영일동맹이 구도 하에서 한국의 일본의 식민지로 된 거고
바로이이 영이 부라파 영국 주대 국제 흔들린게 1차 세계 대전이고 거기에
미국이 초대되는 거거든요 미국이 등장하면서 민족 자교 주의가 등장하게
되고 뭐 국제 연명이 만들어지아요이 와중이 미국이 등장하는
과정 속에서 저희가 일 운동을 일수 국제적 정세가 나오는 거고요 그다음에 우리가 해방되는 것은 미국이 전면화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거 이게 한국의 식민지와 삼일운동과이
뭐야 이렇게 해방이라는 거는 일본과의 관계가 아니라 이런 한국이 서구와 전
세계 어떻게 대면해 가는가 하는 과정 수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이
이러한 과정들이 이러한 과정들이 한편에 우리가 일본 식민지 대교 하나
실패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구시대의 잔재들을 일본과 다르게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삼일운동 주도 세력들이 가서 박용 윤치 가서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니 당신은 와서 지도자로서
해주시고 정말로 다 거절합니다 정말로 한 다섯명 형한테 찾 다
거세요 그 경북에 있는 확 어떤 유학자 테도 갑니다 그들은 자기가
따로 하거든요 따로이 선생님 조금 다 전세계 아 그게 이게 제가
비교사 국제관계에서 선생님 학교 때 하는 얘긴데 그 그분들은 이러한 쌍
놈들이라 같이 하기 싫었을 거예요 근데 그니까 한국의 그
년대는이 이전에 갑부 개혁이나 광력 고 완전히 다른 세력들에 의해서 주소
된다는 것이고 제법을 만든 세력들이 바로 그 한민당은 만든 개혁적 기주를
토대로 한 세력들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거 이승만 세력이 참여하게 되고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을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된다는 거고 마지막 한
말씀만 더 드리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기자가 아완 질적으로 다른 사람 근데 선생님은
사회민주주의를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 민주주의 어 그다음 민족이 주인되는
어걸이 사로잡히는이 어 한국 역사학계 이런 식으로 자꾸 규정해 버리면 이게
밸런스가 안 맞는다 사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주의적 토대로 해서 공화주의와
의지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정치체제 이거든요 그 이런 부분들이 저는
그래서 선생님의 그 열린 민족주의와 용과 대화 다 동의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그 개념이나 어떤 걸 적용할 때 대단히 그 신중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그랬으면 좋겠다 뭐 그런 말씀을 끝 말씀
끝내겠습니다네 감사합니다 그럼 10분만 휴식하시고 7시 반에 허동현 선생님 답변 다 시작하겠습니다 

=========
그럼 이제 허동현 선생님 한 한 15분밖에 안 드립니다네
너무많 안 들릴테니까 더 짧으면 더 좋고 왜냐면 어차피 다 한 번씩
질문하실 거고 소하실 거니까네겠습니다
아 김기홍 선생님이 지금 여기에 대해서 이제 제가 많이 쓰던
단어였는데 그때 거기란 말도 썼거든요 나중에 그때 거기는 또 어떻게이 저가
되는지도 좀 알려 주시고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아 그니까 지금 여기야 그때
거기 뭐 이렇게 이 얘기를 썼었는데 그니까 김기범 교수님이 오늘 토론해 주시는 거 듣고이 저거 하면서 어
한국 수학자로서이 역사 이론에 대한 무지가 아 다시 한번 느껴졌고 아까음
어느 분이 뭐 저 아 저 이승현 선생님 말씀이 하던 거 같은데 목사님들의 목사님이
계시다고 교수님들의 교수가 아니니까 아니 그런
느낌이 아 그니까 그 제가 이렇게 막연하게 해놨던
얘기들을이 쫙 그 일목요연하게 이렇게 훌륭한 의미가
있었다는 걸 제가 오늘 아 내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는가 하고 이렇게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아마이 책이 이제 2세일 찍었는데 거기서 멈추면 못하고 이게
하나 더 나오면은 선생이 토론 거를 응 좀 그대로 어 앞에 붙이는 것도
괜찮겠다 허락해 주시면 

그리고 아까
질문이 그 생각 나는대로 답변을
드리면 첫 번째가 [음악] 아 그 황 백에 당긴 문명사적 의미를 그 생각하셨냐 
사실은음 저도 이제
문명사의 의미나 얘기들을 어 많이 생각을 하고 있고 다섯 번째 장이
사실은 문명사 얘기에 저을 하다가 아 선생님도 그 저 경희대 미래
문명을에서는 거기에서 어이 이것도 가만 거기서 제 그
제가 글을 발표해 달라 그래서 하다가 나온 글이에요 그러니까 문명사에 대해서 저도 많이
생각을 했는데 이제 제가 이러면서 어 갖는 적이 뭐냐하면 선생님은 저를
그까 아까 이기백 선생님의 내제적 발전하고 민족주의 사학을 따르는
사람으로 이제 보 보시잖아요 근데 이제 이승현 선생님 보기에는 저는 포스트 담론을 추정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니까 제가 그 중간에 껴 있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자발적 외톨이일 수 있어
그래서 선생님이 보기에는 그렇고 또이 선생님이 보기에는 또 다르게 보이는
그런 좀 별다른 위치에 있다는 점 

그리고 저도 어 어떤 문명의
중요성이나 이런 걸 알고 있고 여기에서 이제 문명 변화의 주목 저걸
갖다 제일 먼저 정확하게 진단한 사람들은 사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당파성 론에 제기되는 들이 그 얘기를 지적하고
있다고도 보여요 근데 그게 또 하나의 함정이기 때문에 그 얘기를 하면은 야
너고 저 식리 사자하고 비슷한 얘기하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를들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래서 뭐 생각을 못 했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기에 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그리고음 사실은 문명적인 의미를 찾는게 저 김교 교수님 말씀대로
저는또 동의하는 거고 그쪽으로 좀 더 어 봐야 되지 않는가 그래서 제가 그
김영석 선생님이 문명사 흐름 재단하는 거랑 고병희 선생님이 문명사
저어하는게 전혀 다르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 두 개를 적어보면서 문명사
흠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봐야 한다라는 데서는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말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에 질문이 
그니까 그리고 하나 저기 같이 동감하는 거는 1894년
하나에 그 동학, 청회 전쟁, 갑오 경장이 한 가만에 일어났거든요 이게 
뭐 메비스 띠처럼 연결돼 있는 건데에 한국의 그 그 교과서나 역사
연구자들은 이건 따르게 딱 분절해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이게에 연결이 안
돼요 어 사실은 갑보 경장은 선생님과 좀 다르게 보자면 이게 일본
지향형 개혁 문명사적 입장에서 보면 그게 시점인 거거든요 어 그리고
45년이나 어 1945년이 뭐 IMF이 의회 적에 큰 흐름에서
보자면 서구 지향형 영미 지형으로 바뀐이 문명사의 전환이 든요 갑보
경장 이전에에 조금 쳤거든요 예 그러니까 그거는 중국장 문명 의에
종말을 얘기할 수도 있고요 그 선생님 말씀드리면서 제가 그런 영감이 떠올랐다는 거 어 그걸 좀음
감사하다고 부연 드리고요 그리고 어 진보가 아니라 진화라는 거 아 이거
전적으로 어 그 저 깨침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그 선생님이 진보하고 보수
차이 설명할 때 하는 방식을 저는 아 보수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면서 앞으로
가는 거고 진보는 깽깽 말로라도 빨리 가겠다 어 그렇게 설명을 하는데 그
목표는 같은 거다라고 얘기했지만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아 진화라는
표현을 해야지만 지금 여기에 얘기가 더 적확하게 설명되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거에 대해도 감사 드리고 싶고 

독립운동의 개념에 대해서는 홍범도 문제 갖고 많은 논란이 있었잖아요 이제 그게 제 어찌
보면 우리 사이가 지금 인정 투쟁 중이고 두 개의 문명간의 충돌이라도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일제 시대 이전에 그 계급 해방을 꿈꿨던 어 민족
독립을 꿈꿨던 국가가 없는 데서는 다 그 여태까지 그 뭐야 보을 했죠 근데
이제 요번에 문제가 된게 뭐냐하면 육군사관학교에 이제 그 표상이
세워졌던 말이죠 그 사람처럼 살라는 얘기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거기에서부터 충돌이 난 거죠 어 그러니까 그 문제를 얘기하고 싶고 또
하나는 어 우리가 현재 독립운동가다 그러면 일제에 대한 저항 어 그게
이제 동화에서도 쭉 이어져 가지고 동까지 이제 본부에서 어 저걸 해야
된다고 유공자 법이 생긴 거잖아요 근데 거꾸로 보면 지금 여기에서 그때
거기를 보자면 어 대한민국이 식민주 로 전락해서 아
그니까 조선왕조가 망하게 되는데 가장 큰 저거를 한 거는 일본이 근데 그에
못지 않게에 그 헌 나라는 중국이고 어
그때 거기를 지금 여기에 대치시켜 보면 지금 현재 중국이 한국을 더 어 못 살게
굴고 있는 그렇게 되면 전에에 뭐야 친일 그러니까 일본을
코드로 봤을 때 개하는 친일파의 원형이란 말이죠 그래서 평가 절화 됐지만 거꾸로 놓고 보면 최초에 친청
독립운동가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 선생님 말씀에서
독립운동가를 오늘 여기에 맞춰서 다시 해석한다면 좀 더 여지를 넓혀야
되는게 아닌가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 보야 될 여지가 있다 아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어 다 답변 놓은 건 아닐 텐데 다
한 건가요

 아 그리고 마지막에 이제 이기백 선생님 말씀 아 그리고 제가
열린 민족주의자 그리고 그 저희 크기의 한계 하여튼 저 제가 김기봉
선생하고 이런 토론장이서 할 때에 김기원 선생이 항상 제가 열린
민족주의를 얘기하면 그것도 애국주의 아니냐 민족주의 일 아니다 예 저는
인제에 민족주의 사관 하고의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 근데
이제이기 선생님의 얘기에 대해서 제가 취할 부분은 개인의 발견 이유 그게
현재 구현돼 시민사회를 이루는 힘을 안에서부터 찾은 그 정신과 열려
있음을 그 취해야 된다는 걸 강조한 건데 당점을 다른데 찍어서 이제
말씀하시면서 너도 결국 민족주의자 아니냐이 얘기고 또 이승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저는 포스트 모두에 이게 가까운 얘기로 어
민족주의의 한국 사계를 이렇게 비판하는 그렇게 보이니까 

저는 두사람음 그 두 분 가운데 있는 그 존재 같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그리고 저음 그 저 사람들이 이제 제가 이제 처음에 새로운 보수주의를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저 뉴라이트 나오기 전에 그래서 제가 그 같이 무슨 저
현대사회에도 어 그때 뭐 발기인에 참여하고 뭐 해서 저 자꾸 뉴라이트라는 제가 얘기하는게 저는 뉴라이트 아니라 올드 라이트입니다 전 옛날부터
라이트였다 이트는 이제 운동하시다가 이제 생각이 바뀌신 거죠 어 그러니까
그 차이가 크다 그리고 전 그러니까 사실은 저희 세대
보기든 올드 라이트입니다 그러니까 그 점을 항상 유념해 주시고
어 저 얘기할 때 그걸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저를 얘기해 주시면은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어 오늘 많은 깨침 주셔서 제가 어이 이걸 저는
이게 잘 그 어 딱 적합하게 설명되는 거 같다고 해서 이렇게 했는데 제가
한 일이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인지 먼저 해서 을 제가 그린
그림에 의미를 부여해 주셨고 거기에서 제가 많은 걸 배웠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승열 선생님이이 그 지금 하나 그니까
얘기하신 거에 대한 답변은 그 같이 겹쳐서 드렸고요 그리고 어 제가 아까
여쭤보니까 어 저 토론자 두 분이 다 번은 7고 합번 이시지만 나이는
저보다 몇 개월씩 위해요 저는 한번은 7 8학 번이지만 아까 얘기한 전후
[웃음]
[음악] 세대하자접수 정확하게 말하면 286
at 세대요 그 제가 쓴 컴퓨터는 286 컴퓨터였다 어 80년대 합번 어
그리고 386 그 어 CPU 쓰는 컴퓨터를 쓴 세대가 386 어
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그 제가 오해하잖아 선생님이 80년대 합법인
줄 알았단 말이죠 그러니까음이이 이거 고쳐 주세요 286 세대가 아니라 2 아 아
586이 아니라 2868 세대로 바꿔주시길 바라고요 이건 좀 농담섞인
얘기고 하여튼 686이네 686 686 이제 60대가 됐으니까 

이거
생각이 우리 밑에 그 386세대 들하고는 2세대들이 좀 달라요 그
386세대 때는 NL 쪽이 들어왔고 우리 친구들은 PD 열이요 
그래서 제 친구들 보면 아직도 공부해요 걔들은 도그마를 안 믿어 물론 자기가 생각하는 걸 견제를 해서 새로 그 적용은 하지만 어 차이가 있다면 저기 애네는 그냥 도그마를 믿는다고 보면이
친구들은 그러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 그 차이가 있어요
교수님은 7세대에서 75 저요 아 저 7번입니다 그러니까 70년대 학번에
50년대생 이잖아요 아닙니다 저는 60년 1월 학용이 59년 생하고 같잖아요 네네
그 어디 껴야 되나요 아니라 그래요이 사람들이
단 그 치해 여기 

예 한국사에 갖고 있는 정근 대석이
나오는게 이게 나이 따지고 선우에 따지고 그러는 건데 저는 저
포스트모더니스트 그럴지 몰랐어요 그리고 저 정도희 선생님
견하고 이제 황사에 갔다고 얘기하셨는데 저 뒤에 보면은 정도희 선생님은 이제 호교론 그가 여기는
가톨릭 사니까 저 가까 고 저는 장가 가려고 물음 묻었는데 그 이후에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어서 안 갔거든요 저 뒤에 이제 다른 얘기를
좀 했습니다 그니까 밀레니엄 맞아서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그때 이제 그
교황님이 이제 그 아랍 하고 이슬람 하고에 화해를 못했듯이 추기 형님이
저 어 김창수 선생님 요서 가서 절하고 어 하면서이 과거의 잘못을
참여하는 걸 이렇게 했 거든요 예 다른 생각이 다루고이 한 것도 어 어
같이 갈 수 있는 그 정신을 배우는게 오타고 한개체 포인트였습니다 그러니까
정동이 선생님하고 다르다는 거 말씀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렸고요 그리고
그 질문이 이제음 이승훈과 황사영의 차이 이거에
덧붙여서 개신교와 기독교 아 그니까
기독교하나님의성회 이 어 말씀하시 거 들으면서 이제 제가 생각했던게 뭐냐하면 어 이승훈과 황사영 그니까
이승훈의 입장에서는 황사영의 그 저걸 갖다가 좋게 보지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조카 사위인 황사용 정약용이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어 고발했던 그러니까 그 지식인들의
속성이에이 탄압이 들어오면 어이 바뀌잖아요 어 배교 하잖아요 그니까
숨겨 사람들이 거의 없고 그리고 기독교 이후에 100여년 동안 뭐
독짓는 늙은이라 아 뭐 이렇게 그 소설 김종 소설 같은데
나오듯이이 지식인들이 다 배교한 상태에서 어 이게 민중의 종교가 돼버릴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력이
미진하게 됐고 고종이 그니까 천주교 보다 개신교가 100년 뒤에
들어오지만 그때에 고정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는 는 상당히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거죠 그 기독교는 어떻게 보면 천주교가 펼쳐 놓 주 단위를 깔고 들어온 거거든요 근데 영양력
면에서 보자면 어 200년의 역사를 가진 천주에
위해서 기독교는 엄청나게 큰 파워를 자랑했는데 천주교가 그걸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는게 명동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그 어떤 성소가 되면서 김선수
기형의 역할이 굉장히 컸거든 근데 나중에 김수환 추기경도 그
386들이에 뭐 친일 어쩌고 하면서 하는 거는 참 아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거 들으면서 아 그리고
그 저 개신교나 천주교나 다이
외부에서 이식된 거거든요 그래서 아까 그 말씀하신 것 중에 근대라는게 이제
자생적으로 다했다는게 한국학 에 그간 그 시학에서 개화 사상이 나온 것처럼
이제 우리가 서술을 하고 그렇게 근거를 찾는게 보면 인적 보라가 뭐
이거예요 사상이 질적으로 어떻게 저거 됐는가를 잘 안 나타나거든요 서술이
근데 사실 보자면 데는 밖에서 들어온게 맞는
건데 그 측면에서 보자면이 뭐야 황사영 백은 아까
말씀한 것처럼 분명 큰 의미를 주는 그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근데 항상 백서 자체 이제 문제는 뭐냐하면 서양의 대박을 요청하고
원병을 요청했는데 그때 서양은 그때 당시로 볼 때 그럴 힘이 전혀 없던
상황인데이이 그 황사영이 머릿속으로 그 저기 잘못 생각을 한
거죠 어 그 그거는 어 황사영이 이제마 황이 중국 천자만 굉장한 힘이
있다고 이제 오해를 한대서 비롯된 일 중에 하나일 텐데 하여튼 그런 것도
지금 보니까 선생님이 문명사적 차원에서 다시 보면 말씀하신 거를 저
주목해서 김기범 선생님 말씀하신거 라든가 이승열 선생님 그 지적해 주신
그런 문명적인 차원에서 다시 보자면 아 새로운 얘기들을 다시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그 저기 이승 선생님이 이제 동학에 대기 하시면서 시작은
보수주인 시작했다가 상황이 바뀌면서 이제 변해 나갔다 제가 그 저 유영희
선생 수업 들으면서 저희 그 제자들이 맨날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던 얘기가
얘기였어요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 거는 아니 봉 칩시다 그러면
김계 나면은 어떻게 설명하실 거냐 김계 나면은 훨씬 더
혁신적이었다 잡아 죽였고 어 전봉준은 그 대군 연결된 걸 캐라고 영사관으로
데려간 거 아니냐 그러면 그 혁신성은 응 어 그 김계남 찾아야 되는 거
아니냐 아마 박경희 선생도 김계주 아마 김남인 거 같은데 예 거기에서이
변 가능성을 그 문학에도 쓴 거 같고요 

어 그리고 아까 이제 그
김영석 선생님 말씀 주셨잖아요 그때 이제 전봉중 공초 분석에서 김영수
선생님이 현 단계에서는 없는 걸로 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 제가 그거를
김영수 선생님이 그 논문에서 찾아가지고 그 부분을 이제이 그러니까 전봉준이 전반에
불과하고 그리고 그 사회 경제적으로는 그 소작농과 같은 처지다 그니까
변역을 도망할 사경제적 처지였고 그리고 전봉준과 대원군과 관계가 없는
걸로 일단 보자 왜냐면 그 전에 나온 책들이 다 어 대원군과 동학당 이라든가 이런 얘기를 했고 공차에
나오는게 어떻게 보면은 너무 불어라 너 저 대원군이 시켜서 한거 아니냐이
얘기거든요 근데 끝까지 그 대원군을 옹호했다는 건 거꾸로 보면은 대원군과
상당히 정치적으로 연관돼 있다라는 얘기가 되니까 그래서 그런 얘기들도
좀 고려해야 되는게 아닌가 그러니까 갑자기에 다시 돌아가서 수업 시간에
유영식 선생한테 발론 제기 때 제 모습이 떠올라 가지고요 그래서 참 야 이거 참 그때 그랬었죠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걸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요 어 그

비교사적 관점에서 봐야 된다라는 얘기 제가 이거를 이제에 학교 수업
시간에 여러분들은 가급 학교에서 민족을 월한 역사 교육을 받았고
그러니까 항상 그 밖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 초등학교때도 배우고 중학교 때도
배우고 고등학교 때도 배우고 똑같은 거 또 배우는데 한국사를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 하는 얘기를 지적하는
거예요 그거는 거꾸리 얘기하면 수강생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대학에서 수업이 왜
다르냐 민족을 주어로 한게 아니라 비교사를 통해 보고 그리고 국제사
통해 볼 때 안 보이던게 보인다 그래서 그 시점을 달리해서 가르키는데
주안점이 주어진다는 얘기를 해 준 거고 그래서 제가 여기서 비교사적
시점에서 얘기한 건 대한 제국까지 계약의 흐름의 역사에서 비교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보일 수 있다라는 사실 서술에 그 점을 넣었다는 거 근데 어 말씀 주신
것처럼 이승현 선생님이 부족한 부분이 있죠 어 그러니까 그 부분은 제가 유념하고 어 당시이 이 유념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 그 저기 교과서 문제에서 이념대로 교과서 문제 다루는 거에 대해서 저도 선생님 말씀에 동의를
하고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라는 거 어 그리고 그러 노력들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더라고요 이렇게에 토론을 하고
반대편에서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 담겨 있는 얘기는 꼭 정치적인
대립적 잣대 이념적 잣대로 얘기한게 아니라 아 교과서로 배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전 썼다고 생각하니까 그 읽으신 분들도 그 그래도 나름대로
어 그 영향이 있는 부분들은 많이 좀 고쳐졌다고 제가 생각이 돼서 근데 그
연적 자대로 교과서 문제 다루는 건 저도 어 그 동의하지 않는 다른 거
이승열 선생님하고 견해를 같이 한다라는 걸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3일운동 얘기하실 때 제가 어 생각이
난게 이제 이영훈 선생님하고 저하고 크게 차이 나는 건 어 저는 한국
사학계 어쨌든 이론이고 어 그 이영훈 선생님은 이제 경제 성장사 가시잖아요
그러니까 사회과학은음 사실은 어 결과를 더 중시하신다면 
그 아 뭐 이렇게 말씀드리는게 낫겠다 그니까 학생들한테 얘기할 때는
[음악] 유비하다 보면 인문학자들이 유비를 많이 택할 텐데 사회자들은
조조다 나는 도덕적인 관점도 중시하니까 그니까 그쪽에 속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근데 그러기 때문에 그 그 식민

그니까 그 어 제일 동의
안 되는 부분이 여기 쓰셨는데 아까 말씀 안 주셨는데 삼일운동을 얘기할 때 이제이 경제성장 사학 쪽에서는
아이 해방 이후의 이승만 대통령의 업종이나이 대한민국을 어이 특화시키기
위해서 삼일운동을 뛰죠 어 그래 가지고
건국절 해가지고 이제 논란이 많이 빚어졌고 3일 운동의 역사적의 이나
이걸 갖다가 평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학생들한테 그런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는게 아니 

그 저기 러시아 가봐라 그러면 저 응 누구지 이따만한 그 목가 개념 있잖아요 어
그 누구 뽑으면 뭐 뭐 푸틴 있가 지금 푸틴 빼면 뭐 엘친 나오고 뭐
이렇게 해가지고이 레이지 나오잖아요 그니까 그건 다 부정 부정 부정 단절 거다
어 중화인 민주주의 공학을 봐라 거기 보면은 마우 초등이 입고 나오는 그
옷이 그게 민이 손문이 입고 다기는 옷이다 적어도 중화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의 역사를 서구의 침략에 대항할 때 문에서부터 연결시키지 않느냐 여기
일본 봐라 요또 만원 조약돌이 2만원 바위가 될 때까지 천패 만만 세우는
애들인데 
우리는 사정없이 다라잖아요 중국 시하고 어디가 보이느냐 어디가 났냐 어 그서 물어보는게 
우리 학교앞 그 대문이 네오르네상스 문이에요 그래
르네상스 시대를 근대라 생각하느냐 자기들은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고 자기들이 근대의 시작이라고 봤지만 화려한 종말이다 도미에
불과하다 
응 꼭 보는게 현대 문명 사가들의 저거다 
그 근데 시작이 아니라 중세의 끝이다 
응음 자기 시대를 어이 빛내게 하기
위해서 앞 시대를 암흑 시대로 만드는 건 그건 넌센스 거죠 어 연속으로
봐야지 장미의 이름인가요 하여튼 그 저는 사실은 그 지점에서 큰 차이가
있고요 어 연속으로 봐야 되고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체제 아까 승 선생
지적해주신 건국 헌법 거기에 나오는 것들에 원조이 그 삼일 운동에 심지어
생명형음 사형 금지 조항도 거기 들어 있고 
남녀 동권 문제라든가 어이 다 들어 있거든요
 그이 부분이 그만큼 있었다라는 걸 얘기하는게 훨씬 더 어 나은 거지
그걸 이승만 대통령 혼자의 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잘라다는 건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영사가 이라고 보기 때문에 예에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들 그러니까 하여튼 이영호 선생님이 얘기하시는 대한민국
논에 보면 그게 제 생각에는 뭐 제 작은 생각이지만 그 그 백색 전체
그니까 하여튼 개인이 아닌 전체를 이렇게 옹호하려는 측면이 보이고요 그
아까 이제 이승 선생님이 저한테 주신 말씀 중에에 그 어 사회민주주의를 어 오해하고 있다 사회주의 하고 근데 저는 오해한게 아니라 아까 제가 올드하고 뉴의 라이프 차일을 말씀드렸듯이 그 제가 보기에 사회민주주의는 뉴라이트 아 뉴레프트 든요 어 뉴 레프트가 그니까
포스트모던 쪽에 입자 저 김기봉 선생님 우리
교수님들의에 교수님이 김기봉 선생님이 이 허시는 얘기들은 뉴레프트 쪽에
얘기에 가깝다 그러니까 역사 사회학자가 어 지금 그 임지현
선생님이나 김기봉 선생님의 그 민족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하는게


이제에 뉴레프트 쪽 입장이라면 올드 레프트는 아직 제가 말한 민중 혁명
필요 아직 민중 민중의 그 저걸 중시하는 쪽 그러니까 이게 용어 문제
인거 같은데 어 북한이 사회주의 우리 사회주의라고 얘기하잖아요 그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전혀 다르죠 그러니까 저는 색깔이 히든 어 불든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저 체질적으로 좀 안 맞는 거 같아 그래서 제가 저희
때는 서클이는데 서클도 못 들었고 그리고 저 대학원 시험 볼 때 동화일보 기자 시험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어디를 가서 시험을 볼까 하다 생각하다가 아 도저히 저는 조직
생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돼서 그냥 배터리로
살자 그러니까 이제 제가 이거 이해 못해서 드린 말씀은 아니라는 점
이렇게습니다 

민중 필연 혁명론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과 사회민주주의를 등치시키는 등치 시키지 않 않은 거고요 그 제가 보기에는 아 그니까 저는 항상 여기서 그 책에 글에 나오는 얘기를 하고
인용을 하면서 얘기를 했거든요 

그니까 제가 독해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영 선생님이 민족주의 민중주의
사에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하셨고 선생님이 사회 민주주의 입장을
지향한다고 또 말씀하셨잖아요 그니까 그런 것들이 연결된다는 거예 독자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오해할 수 있죠 근데 제가 말씀드리는 건 이제 그거죠
어 오해 소지가 지금 말씀 주시니까 있겠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 그깐
처음에 제가이 문명론 그 문명 계 전원에 주체적으로 할 때 저한테 그걸
읽어보라고 추천한 분이 그러니까 김영석 선생님이 그 책을 쓰고
제자들에게 에서서 많은 그 반발 비판을 들으셨다 그래서 김영석
선생님이 생각이 많이 바뀌셨다 그 제가 읽고 보니까 나는 안 바뀐 거 같은데 그래서 왜
바뀌셨다 그러느냐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그 재언 헌법에 의미를 강조하셨습니다
옆에에 신민주주의 중국의 신민주주의 문명의 전범 우리가 딸을 문명의
전범으로 어 봐야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에 그게 이제 그렇기도 읽길 수
있다 그렇게 얘 김이 따라야 된다고 쓰지 않았어 아니 전범이 될 수 있다고 보니까 국이 그랬다는 거지
우리가 간다는 얘기 하는게 아니 아니 우리나라의 문명 전화인데 왜 중국 그거를 얘기하 아니 동양에서 중국의
사례가 있고 대한민국의 사례가 있다고 하여튼 제가가 독해를 잘못할 수도 있지만
왜냐면 말씀하시 죄송한데 예 여기 힘력 페지 보면 선생님의 가슴 속에
이런게 있어요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자신들이 상상하는 세상에 정당성을 주게 연역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그런데 이게 이 문장이 191 194 194 태제
그대로 계속 반복된다는 거예요 저는 이게 의도적인 건지 순지 알 수 없
의도적인게 아니라 제가 그렇게 느꼈을 거 같아요 그 그니까 그 선생님 마음
속에 이게 너무 강하다는 거예 아까 확정 평양을 지향하신다면 이미
선생님이 그런 확정 평양이 너무 강하시기 때문 그 저도 지금 여기에 불리니까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그니까 사회 경제 사학이 식민 왜냐 식민 사학자들이 책를 세운게 막시스트
세운 거예요 일본에서 네네 그거에 비판하다 보니까 사회 경제사 유물론을
하나 방법으로 갖고 온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이 그들이 꼭 막시스트라고 직결해서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저는 이제 그렇게 선생님 지적하신 것처럼 오독 했을 수
있어요 어 그거는 충분히이 맞는 말씀이고 맞는 지적이라는 거
말씀드리고 어쨌든 뭐 제가 그런 독에도 불 불구하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점은 그런 걸 좀 넘어서자는데 방점이 있다라는 거 그걸 좀 그냥
이해해 주셨으면 감 감사합니다 자 이제 곧바로 어 오픈
토론으로 왔는데 정수 선생님이 아주 제가 아직 뭐라 그러기도 전부터 손을
드셨 거 아 하 아니 아니 아니 진짜 언


예 뭐 세 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그 논쟁에 대해서 끼어들 생각은 없고요 그거는 앞으로 우리가 뭐 딱 정리된 걸 가지고 오늘 끝낼게
아니라 머릿속에 다 가지고 있으면서 앞으로 공부할 때 참조해야 될 상황이라고 봅니다 제가 볼 때이 책이
갖고 있는 중요성은 역사 교육의 방점을 둬야 될 것 같거든요 역사
교육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교 교과서 역사가 있고 그다음에 시민사회 교육으로서의 역사 교육이 있을 텐데
우리가 한 100년의 역사라고 그러는데 지금 1876년부터 치면 이제 150년의 역사가 됐습니다 근
현대서 150년의 역사를 우리는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우리들 시민으로서 어떻게 인식해야 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이 책은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많이 제공해 주고 있다 그 저는 뭐 개인적으로
사회학자가 사회학자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사회학적 상상이 란 말인데 사회학적 상상력은 아무 근거
없이 뭐 뭐 머릿속에 환상 떠올리는게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재 내 나를 규정짓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들이 어떤 것들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왔는가 나의 개인적인 퍼널 한 히스토리하우스
츄럴 히스토리를 엮어서 생각해 보는 능력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그런단 말이죠 그러면 저는 여기서 여기
역사를 사회학사 상장에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아니면 제 아들이 제
아버지가 뭐 제 조카가 나는 왜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럼 자기
개인사가 있다 그다음에 여기기 함 선생님하고 허 선생님 두 분 대담해서
허 선생님 개인사와 가족사가 이렇게 나왔는데 개인사 다음에 이제 가족의 역사가 있죠 가족의 역사는 사회사
속에 들어 있죠 사회사 속 다음에는 이제 뭐 국사나 세계사랑 연결되죠
근데 150년을 하다 보면 4세대로 연결된다고 보 요 30년씩 치면은
150년 4세다 올라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나를 이해하려면은 나 개인을
내가 누구지 하려면 3세대 3차원의 역사를 알아야 된다 제가 그렇게 맨날
학생들한테 얘기하고 다녔는데 개인사 사회사 그 개인사 가족사 사회사를
최소한 자기 세대 부모 세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지금은 150년 됐으니까 증조부 증조부모 세대니까 4세대를
알아야 된다 그다음에 개인사 사회사 가족사 회사가 아니라 세계사를 알아야 4차원 4세대를 알아야지 나를
아는거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자기 개인의 역사와 세계사
역사를 연결시키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거 이게 말하자면 저는 역사 교육게 기본적인 목표가 돼 된다고
보고 그 점에서 역사 사회학이나 서양사 동양사 국사를 포함하는 역사학 연구는 만난다 그래서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역사학을 기본으로 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그다음에 이제 다음에 역사가 어떻게
쓰느냐는데이 책에 나오는 것들이 여러 가지 사관들이 충돌하는 이유는 여기에
저는 정치 권력과 정치 권력의 정당성 문제가 연결되기 때문에 항상 교과서 문제가 불거진다 보거든요 거기에는 뭐
근황 주의자라는 말도 쓰셨고 또 뭐 경제성장 사관이란 말도 쓰셨고 민족 민족 사관이란 말도 쓰셨고 선생님
입장인 무슨 다원적 시민 사회주의라는 것도 있는데 이런 입장들이는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회를 이끌어가야
된다라는 뒤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는 거거든요 말하자면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들 사이에 토론이 어느 하나가
맞느냐 맞는다는 걸 찾아내기 위해서 뭐 토론하는게 아니라 저는 최소한
학교 교과서라면 이런 여러 것 여러 사관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
공통점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네 가지나 다섯 가지 뭐 사관이나 거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막스 베버가 무슨 세상이 아이디얼 타입을 만들어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사실이 의미 있는게 되는 거지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게 아니거든요 냐면 사관이란게
사실을 의미 있게 해주는 어떤 관점이라면 그 관점은 여러개 공전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들이 싸우는게
아니라 저는 오이 아니라 드로 해야 된다 이거냐 저거냐 이것도 맞고 저것도 저는 이용 선생도 맞는 거
같고 김용섭 선생도 맞는 거 같고 이태진 선생도 맞는 거고 부분적으로 다 맞는데 아 장님 코끼리 만진다는
식으로 어 부분적인 거만 설명해 주거든요 그니까 전부 다 맞아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를
세계사 속에다 넣어서 봐야 되기 때문에 공통점은 무엇이냐 내 여러 가지 학파 그거는 교과서의 내용이고
나머지는 시민사회 교육에서는 그거를 선생님 말씀대로 관견 각자 나름대로 선생님은 선생님의 관경을 얘기했지만
각자 자기의 관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그게 다원 주지 사회고 시민 사회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한다면
불필요한 논쟁은 이게 피하고 생산적인 논쟁을 해야 되겠다 그게 제 하나의 생각이 있고요 그러면 이제 두두
번째는 조그만 건데 선생님은 이제 황사영과 저기 이승훈 얘기하셨는데
저는 황사영 얘기가 나오면 꼭 이별이 생각나거든요 예이 조선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충거 충효 그리고 가장 상대방을 비난할 때 쓰는 거는 묵은 무부하
너는 애비도 없고 임금도 없냐 이거거든요이 충인데 저는 이이
훌륭하다는게 아버지나 뭐 조상들이 와가지고 천주에 믿지 말라고 그렇게 뭐 원을 하고 아버지가 목을 매달
정도로 해도 끝까지 천주를 믿었다는 거 효라는 가치를 완전히 무시한 거죠
이은 임금이 구은 없다 임금 말도 충하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거
효라는게 그게 무너지는게 조선 성리학 유교가 무너지는 거라면 천주교에서
왔다면 천주교라는 건 말하냐면 요라는 두 가지 가치를 거부하는 거고 그거의 상징 인물로 황사영과 입역 두 사람을
들 수 있지 않냐 이런 생각을 제가 해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뭐 우리가
그 역사 논쟁이라는게 그 사실을 가지고 누가 사실을 더 많이 갖고
와서 치밀하게 논쟁을 하느냐 그건 학자들의 쟁이지만 역사 교육에서는
다양한 관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것이 컨디션이나 무슨 리트가 아니라 코스나 런스 쪽으로
가고 서로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을 더 많이 알아가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네가 맞냐 내가
맞냐 서로 배우면서 공통점은 찾아가고 차이점은 분명하게 만들어 가면서 계속적인 지속적인 토론을 해 가는
과정 그게 중요하고 정치적인 어떤 입장에 따라서 이런게 어떤 입장을
갖는다는 좀 명확하게 해주 좋겠어요 그럼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사과는 어떤 것이고 뭐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과는 어떤 것이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과는 어떤 대충 있거든요 지금 보면은 뭐 민중 민족사회 사과는
정의에 가깝고 뭐 뉴라이트 경제성장 사과는 국민의임에 가깝고 뭐 또 뭐
그 중간에 있는 건 민주당이고 뭐뭐 여러 가지 그래서 그거를 밝혀놓고 교과서 논쟁을 해야지 그게 시민들도
확실하게 그 알지 그 교과서 논쟁을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만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저는 허 선생님 책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여러 입장들을
잘 대변해 주고 있지만은 

그 이론이나 사관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에서 김교
선생님 의견에 저는 동의하는데 뭐 연역적으로 만들어진 미리 만들어진 그
도식을 가지고 그렇게 기계적으로 서술한다 이런 표현은 그 민종 민족
사관에 꼭 적합하지는 않는 거 같 너무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거 같거든요 그래서 이론이나 사관과 사실 사의
관계는 이론이나 관이 딱 있다면 거기 필요한 사실을 모아 갖고서 설명하는게 아니라 느슨한 상태의 관점으로 보고
사실을 모아서 설명하다가 잘 안 되면 또 사관을 수정하고 이렇게 사실과 사관 사이에 왕복 자을 통해서 사관이
좀 더 풍부하게 여러 많은 사실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단계로 가는게 학문의 발전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좀 연구자들도 그렇고 시민들도 그렇고 유연한 방식의 관점을 가져야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네

제가 그 그 한국 개신 교사를 연구한 사람이어서
그 처음부터 이렇게 황사형 백설 이렇게 쭉 나오니까 아 굉장히 관심 있게 사실은 봤거든요 그래서 근데
이제 전반적으로 이제 굳이 그 저희 아이하고 그 저희 큰 녀석이랑 저랑
항상 싸 선거 때문면 싸웠는데 저는 이제 굳이 말하면 중도 파고요 그
저녀석은 제 아들 중소 좌파에 그래서 항상 그 하 뭐 의견 대립이 되는데
허동현 교수님 이양반이 아마 정치적인 것으로는 저랑 아마 색깔이 거의
비슷하다라고 하는 생각을 생각을 했는데 그 그건 그거고 

여간 그 좀 여쭤보면 그 기독교 신학에서이 그
비동시성의 동 비동시성의 동시대성이라고 하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던 사람이 칼 바르트에 그니까 칼
바르트가 얘기하는 거는 성경의 개념은 시대적인 상황은 상당히 다르지만 2천년을 넘어서 동시대성을 갖고 있다
이제 그러고 보니까 아 왜 기독교인들이 거의 파시즘에 가까운
이런 집착을 그 하나라고 신앙이라고 하는 이름 아에 집착을 하나 했더니
아까 제가 김기봉 교수님이 이게 설명을 들어 보니까 아 제가 그 이해를 했습니다 근데 이제 제가 이제
여주 보고 싶은 거는 그 황사영 꿈꾼 세상을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과연이 사람이 정말 신앙의 자유가 목표을 굳이 얘기하면 교회의 자유가
목표였다 그이 사람은 말은 신앙의 자유라고 하지만 신앙의 자유 물론
천주교의 교리 굳이 뭐 천주교 사람들이 신앙관을 교회를 떨어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이 신과 교회를 일치시킬
라고하는 얘기 뭐냐면이 사람은 교회가 마음껏 그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꿈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아까 김봉 교수님이
해석을 하실 때 이게 생이 왕실과 국가를 분리했다라고 이제 보셨거든요 근데
사실은 교회 사에서는 황을 누구랑 대게 비교를 하냐면 이승훈이 이백이
아니고 정하상이 비교을 해요 정하상이 상재상서 그 잡혔을 때 쓰거든요 그
우리 우리 천주교도 그이 왕의 왕의
그 그 자손들이다 왕의 그 그 뭐
그죠 갑 그 표현이 생각 안는데 자손들이다 그렇게 그렇긴 하지만 그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이 효와 총이라고 하는 것을 멀리 생각하지 않는다이 정화 상의 정경의 아들이었어요

그러니까이 사람은 국가와 왕실을 불리하지 않
않았다고요 그렇지만 천주교라고 하는 것을 그 강요에서 그 배을 하라고
하면 나는 그러지는 못하겠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이게 정하상의 논리란
말이죠 그러니까이 천주 내부에 이것을 황에
꿈꿨던 하고 그리고 정상이 신앙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똑같을 수 있지만
같았을까 그 그고 왜 그런 말씀을 또 드리냐면 천주교가 사실은 한국 그
역사에서 보면 개신교 굉장한 갈등을 일으키고 신교하 갈등을 일으킬 뿐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고 갈등을
일으키거나 이란으로 우리가 기 이수의 난이
일어난 것도 결국은이 치해 복권인 나중에 이제 천주교가 그 종교의
신앙의 자유를 얻었을 때 교회의 자유를 얻었을 때 천주교 교인들이
교회라고 하는 것을 등이었고 하다다 제주 관철 사을 그 따기까지 때려서
그게 발단이 되었던 거거든요 그리고 아까 그 그 안중군 말씀하셨잖아요 안중근이
그 동학을 비판했다 사실은 이것도 그 그 카가 얘기한 것처럼 그 카의 말을
굳이 빌리자면 안중근이 왜 그랬을까를 안중근을 쫓아가 보면요 안중근의
아버지가 안태훈 이거든요 안태훈이가 해주 사람이라고요 그 안중근도 거기서 태어났고 그랬는데
동도들에게 라고 하는 그런 슬로건을 갖고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굉장 천주교도들의 쪽에서든
자기네들을 그 핍박하는 거거든요 그니까 안중군
머릿속에는이 동도에 대한 굉장한 거부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요
그리고 안테이 그랬고 근데 나중에도 보면이 안태운 집안에서 그 군 때문에
사가들이 그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그 안중근의 집안이 특히 안중근의 숙부가 되는 그 이름을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그 사람에 의해서 해서의 교환이 일어난다고 해서
지역에 그까 천주 교도들이 천주 교회를 등이 없고 그 행패를 부리거나
그러니까 황성을 해석할 때 과연 신앙의 자유고 그 그 만민 평등의
사상을 원했던 신앙의 자유냐 아니면 천주교가 갖고 있는 교회
자 교회 그 해든 했겠지만 교회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그런 세계를
원했을까 원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하는 그 생각이 하나
들고요 또 하나는 그 한국의
역사가들이 아까 저 그이 선생님 거기에서도 제가 많이
의를 했는데게 보면 그 해방 이후의 시장
경제 뭐 자본주의 뭐를 한국 그 박정희까지 그
그런 것을 추구했다 그렇게 해석 들어하는데 그 해석이 정말 타당한
걸까 그 허동현 선생님은 그 해석을 받아들이시는 걸까 왜 그러냐면 그
쫓아가 보면요 그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그 단어가 19 그 20년부터
나오거든요 그근데 일본에 일본을 갔다온 그러니까 일본의 그 다이쇼
민주 데모크라시 시대에 유학했던 사람들이 그 민주주의의 폭을 상당히
넓혀 가지고요 미국식 민주주의도 얘기하고 사회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의
큰 틀로 봐 가지고 이게 경제적인 민주주의 그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이다 그를
얘기해서 얘기하고 ym 특히 기 개신교계 같은 경우에는 신흥호 아고
하는 사람이 여기 ymt 총무였던 그 사람이 그 경제 민주주의라고 하는 그 단어를 써요 그리고 경제 민주주의라고
하는 단어를 또 쓰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시겠지만 조병옥이야 그
조병옥이야 사실은 제가 보기에는 콜럼비아에서 학위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 그 자서전에 그렇게 썼잖아요 그
내가 저 내 박사 논문이 하면서 쭉 나왔는데 사회 복음주의를 그 얘기했다 그 사민
사회복음 주의가 스시 가스페 이거든요 그건 뭐냐면 그 대게 민주주의를
정치적인 평등만을 그 경제적 평등도 얘기를
해야 하는게 경제 민주주의 그요 사실은 그것을 이승만을 쫓아가 보면 이승만도 주장을 한다고요 그 이승만의
주장이 어느 그 정치적인이 이유에서 조봉암을 농무 장관으로 한게 아니라
이승만의 머릿속에 프로테스탄티즘 갖고 있는 이런 그 경제적으로도 사람들이
평등을 누려야 한다라고 하는 의식이 있었고 그것이 그 조병 선택했고 농지
개혁으로 연결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1908년에 그 이승만이 장로
교인이었다 감리 교인으로이 트랜스를 하는데 그것은 뭐냐면 그때 그 미국의
감리교회가 그 선택했던 사상이 사회복음 주의예요 영미 복음주의에
사회 복음주의로 1908년에 교회의 표지를 옮기는데 그 사회복음 주의를
어떻게 이승만은 해석을 했냐면 그 식민지를 당하고 있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그 정치적인 평등이라고
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조선 사람들이 경제적인 평등도 누려야
한다라고 하는 것을 미국의 민주당이 그 감 그 내걸었고 그것을 미국에
제공했던게 미국의 감리교인이 때문에 감리교 있기 때문에 그 트랜스퍼를 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요런 좀
역사를 들어갈 때 제가 3일 운동은 굳이 얘기 안 하겠습니다만 좀 세세히
좀 쪽에서 좀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해서 말씀 말씀을 한번
드립니다 

이영훈 씨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인데 

왜 우리는 초기 예수와 뭐 후기 예수라
초기 마르크스 뭐 후기 마르크스 이야기는 잘하는데이 가까운 사람은 그렇게 잘 보기 힘들잖아요 근데 그
이영원 씨가 초기에 쓴 글들을 보면 어 우리가 기담을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네네 뭐 후기가 안 그렇다는 건 아니고네 하여튼 후기에 비해서
초기는 훨씬 저는 많은 그 이념적 스펙트럼에 관계없이 상당히 많은 그
그 아이디어들을 갖고 계신 분인데 그게 이제 안 알려져서 참 참 그건데 뭔가
이분이 최근에 그 지금 조선일보에 그 연재되고 있는 그 캐나다의 그
송아무개 교수네네한테 송교수가 이제 지금
연제를 하고 있으니까 이영훈 씨가 이메일을 하나 보낸 거를 그 송교수가 그 신문했다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래
제가 그걸 보고 이제 뭔가 하면 우리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하면 조선을 이제 어떻게 볼것이냐를 지금 허교 스님이 이렇게 좀 좀 더 익플 말씀을 안 해 놓으
가지고 저는 이제 조선을 뭐 그 꼭 제임스 리를 따라서가 아니라 저는
노비자 사회를 봅니다 그건 이영훈 교수의 연구업적과 연관되는
건데 교수가 이렇게 이야기했죠 교수한테
는 노비자 사회인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압도적인 노비제 사회인데
어 그 노비가 어 반은 왕이 가지고 있고 반은 사대부들이 다 가지고 있다 
근데 조선의 통치자들은 단 한번도 어
민은 민으로 백성을 다지 공민으로 백성을 본 적이 없다

이 문제를 제가 왜 황사영뿐만 아니라 지금 그 수님 말씀
드리냐면 저는 여전히이 문제를 그 우리 한국 사학자들이 이영훈
씨만큼 다부지게 이게 달라붙어 가지고 해결을 지금 한 글을 잘 읽지를
못했어요 그러니까 어 저는 황 황 가지 있는 가장
명인는 들은 말할 뭐 철한 실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배계층
사대부들이 대충 50명 이상의 노비들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 자기 노비는 계속 데리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나이 문제 해명해야 된다고 봅니다 워싱턴도 있었어요 아 뭐 그건
뭐 오늘 이제 이야기할 거지 아니고 뭐 제퍼슨 한 300명 있었고 그기
아들도 있잖네 이태계 해도 그 당시에 300명 있었고 예 이태계 뭐 아
택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순 씨 말할 것도 없고 그근데 그건 지금 얘기 안 하고 황사영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뭐
정상도 마찬가지고 자기네들은 노비를 황금 데리고 있으면서 하나님
믿는다고 전 이거는이 문제를 해명하지 않고는 한국 후기 후기 조선 조선
후기를 저는 다 잘못 보는 거라고 봅니다 전는 송원 씨 책도 열심히 본
사람인데 이양반 책에도 그런 이야기 없어요네 뭐 한교 수님 책에 대해서
다음 이야기하기로 하고 하여튼 저는 조선 후기에서 노비를 이야기 안 하고 조선 후기를 이야기를 한다 그려놓고
지금 자유 민주주의 이야기를 한다 보수의 가치가 뭡니까 이건
오히려 진보보다 더 보수가 지금 클링 해야 되는 문제거든요 

그이 말씀 뭐 정숙 선생님 말씀해 주신 거 뭐 다 대부분 어 동의하고 그리고 그
제가 그 사세대 차원을 포괄하는
그 교육 그 시민 사회가 원래 학교 교육 역사 근현대 교육이라는게
시민사회 시민 교육이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이 중요하다는 점에 제 공감하고
저도 이제 그 얘기를 했는데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지만 얘기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지 이제 더 넓게
확장해야 될 거 같고요 

그리고음 아 그 공통점 찾기 다른 것 차이를 지향하고 
우리가 함께 그 저기 모아나가는 거 어 다양성을 인정하되
자기의 그 주여은 지키면서 남과 다름 차이점을 인정할 수
있는 예 그 화동으로 가는게 옳다는 말씀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음악] 

그리고음이 저기 도식 그 이승현
선생님 계속 제가 도시이고 얘기한 거 거기 이제 말씀드려서 생각한게 이런
차이와 다름에 대한 포용은 사실은 메인스트림이 먼저 해야 될 거지
짓밟히고 있는 소수가 얼마나 한이 쳤으면 세 번이나 얘기를 했겠는가 그
점도 좀 어 한번 생각해 주시기 그러니까 사실은이 다른과 차이를
포용하는 거는 어 먼저 해야 될 때가 어디겠는가

그니까 저 그 점에서 이제 김기병 선생님하고도 제가 토론할 때마다
우리를 저 처지를 보면 응 강어 재초대 제 나라고 초나라 사이에
끼었는데 여기에서 그니까 등나라 문공이 맹자 물어보잖아요 어떻하면
살겠느냐 그러니까 왕도 정치하고 뭐 정전제 하고
그러니까 문공이 나라를 지켰나요 그러니까 제가 볼 때는 저는 사실은
이승 선생님 볼 때는 저 뭐야 포스트 모던 쪽 얘기를 어 어 많이 저
받아들여 가지고 한국 사학계의 통론 공격하는 어 사람으로 비추겠습니다
근데 다 아니죠 근데 저기 김기봉 선생님 너도 애국주의 아니냐
이 왜냐면 민족주의 나쁜 거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이건 강자가 먼저
벗어나야 선순환의 고리가 틀려요 아까 선생님 저한테 얘기하신 것도
한국사회가 먼저 변해야지 저도 그런 강박에서 변할 수 있다라고 이제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고요 제가 그 김용수 강만 강동진
예를 정말 작은작은 비판에 셨죠 아 그니까 선생님도 보니까 어 선생님
저하고 결이 비슷하게 아니니까 그런게 아니라
주류에 대해서 두려움 없이 아니 그 먼저 그냥 하시고 다 마지막에 또
여기 보니까 제가 그 저기에서 한민당 계열의 얘기라던가 아 그 부분 아까
어 누구야 저 김명구 선생님 같은 취지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조병호 그
저쪽 그런 얘기에 대해서 어 지적해 주신 건 제가 그 모르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그 깨침을 받았고요 근데 제가 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다
다 언급하고 공부해서 쓰기에는 제가 책임질 얘기들이 너무 많다라는 거 아
그리고 아까 이승 선생님이 그 저 그 민족 자결주의 삼일 운동하고 연관해서
얘기하실 때 사실은 민족 주의보다 먼저 나온 민족 자로는 인이 얘기한
거고 밀스의 민족 자결 주인은 거기에 대한 어 대대 대응이 그든 그러니까
사실은 어 거기에서 이제 독립운동 분열이 이제 일어나는 거고 상해
임시 그때 나온 잡지가 개벽 이였는데 개벽이는 지금보다도 더한 이념 대결의
패러다임의 대결장이 있거든요 어 그건 뭐 얘기할 거 많지만 예 그래서
하여튼 그런 부분들을 다 여기에다가 어 쓸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아니
그니까 그니까이 그 르쳐 주신 거에 대해서 제가 오늘 배운게 많은데 근데
그런 그런 얘기를 드린 거는 제가 다 책임지 못하고 제가 이제 책임질 수
있는 건 그 선생 다른 그 분들이 얘기한 거에서 제가 읽기에는 이렇게
비쳤다 이렇게 요약을 해 놓은 거라는 점을 이해해 주십사이 나 끝나고습니다
도망갈 거예요 그리고 김영구 선생님 아닙니다
아닙니다이 짧게짧게 김구 선생님 그 어
칼바 칼바르트 어 그 아르트 신학자 말씀은 어 그 아주 충격으로 다가오는
말씀이었고 어디 7초 어디예요 몇 년이에요 그게 2천년을 넘어서 동시대성을 다 그랬는데 언제 언 연도
언제이 말씀 에스 로우라고 돼 있거든요대 사에서는 아니 칼바르트의 신 제가 그 어떤 책 기억이 안
나는데 그렇게 연를 좀 확인해 보세요 에스 블로그라고 다 화돼 있는데
의책 그러니까 책 제목하고 연도가 분명해야 우리가 공유할 수 있어요 아
예 어 그리고 저 선생님 저 질문 주신게 이용 선생님을 어떻게
이제 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 중에서 어 그 제일 저어 머릿속에 닿는
얘기가 이제 그 노비 문제 그니까
천주교이며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도 노비를 갖고 있었고 근데 이제 이게
공격되는 포인트가 저 서고자이 공격하는 거는 아 저기는 이민족이
너네는 같은 민족을 지금 소유하고 노비를 만들지 않았느냐 이렇게 공격을 받는 거거든 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은음 좀 더 연구가 필요하고 그리고 사실은 임진란 이후에 사비
말고 공비는 거의 다 도망가서 없는 상태였고 그 사비의 경우에 그이
황사도 그 중간에 연결하고 뭐하 노비들의 활동이 있거든요 그니까 이게 그 문제는
하여튼 좀 더 고민해봐야 될 문제라는 거 그 부분은 미쳐 생각 못했는데 지적을 해주신 거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승 선생님께는이 도망가 않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도 그 사회적 구성에서 그 평면적으로 다 노지만 노비
내부에서 여러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거를 그냥 40% 완전히 노비제
사회다 이렇게 딱 명예적으로 한 위는 같다 너무 너무 전통적인 방어 신데
아니 아니 그 이군 전생이 그렇게 논문을 쓰셨어요 그양 그 이용훈 선생 자체가 그렇게 논물을 쓰였다고 제가
건 이훈 선생의 논 그 제임스 래 노비로 비판하는 논을 이용전에 쓰거든
그까 노비제 내에 그 그 뭐야이 외고 노비 같은 경우에 농노적으로 있다
노예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들이 많이 있거든 그러니까 그리고 조선왕조
사이라는게 그 농업 관료제이기 때문에 석구랑 달라요 완전히 일정하게
폐쇄적이고 그 내부에서의 자기 사회 운영 논리가 있는 거를 전제하고 해야지 그냥 평면적으로 딱 비교해서
여기 높이가 많고 얘는 적다 이런 식으로 설명해 가지는 쉽지가 않 그니까 논리는 우리가 많이 개발해야
됩니다 제스 레는 그런 부분을 정확히 지속한 거고 우리 역사 그런 부분에대 깨라고 대히 깨다 그음 이론적으로
아직 성숙돼 있잖 않 반계 수록에 대해서 비판한 거에 대해서도 우리개가
대답을 안 하잖아요 대답을 제도 안 하잖아 뭐 저도 최근에 다시 제가
나중에 쓸 건데 그거는 그 또하 내가 선생님 그 관련해서 입장 차이가
있지만 진짜 하나 꼭 부탁드리고 싶은 명제가 학술적 개념이 아니다는 나는
선생님 명제적 개념을 갖고 자꾸 학술적 용어로 쓰 신교가 많다 그 개인 그 중요하죠 그럼 내가 쓰는
개인은 어떤 의미의 개인이라는게 설정이 되고 과거에 어떤 개념을 내 투 이런게 긴장감이 있어야 되는데
선생님한테 그게 없다는 거예요 그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게 다원화
그니까 그 말에 가면 다 좋은 얘기가 다 붙어요 미사여구가 그거 다 좋지
근데 쏘하 도체 어떻게 그거 갖고 어떻게 연구를 할 건데 그럼 가면
비판하는데 저점이 있지 이걸 갖고 내가 어떻게 역사를 새 재구성했다 대한 대한 제시가 없다 먼저 한번 한
바퀴 더 돌고요 나머지 또 분들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다시 토론 토론하실 두 분한테는 토론하실 두 분한테 내
제가 마지막에 또 한번 기회를 드릴 테니깐요 아 이제 고만 주세요네 하시죠 예 그 책을 제가
일치감치 사 봤습니다 오랜만에 들 줄 보니까 뭐 좀 뭐 생각나는 것도 있고 그랬는데
우선 전반적으로 굉장히 제가 어 뭐 허 박사님의 그 생각을 조금 조금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전적으로 동일하고 아주 훌륭한 책을 써 주셨다
공통점이 저가 상당히 밝다 아까 그 올드 라이트 얘기하셨는데 사실 저도
그 말을들은 사람입니다 뉴라이트 후 하는 후배들이 와서 제가 뭐 하자
같이 하자라고 끼워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선배님은 올드 라이트라서 안 됩니다
그러더라고요 오늘 다시 한번 올드 라이트라는 말을 어 통해서 동질감을
하나 느꼈습니다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황사영 백서 얘기가 좀
나왔는데요 어 새로운 문명 얘기 이제 그 점의 방점은 을 상당히 주셨다
이런 생각은 듣는데 사실은 그게 상당히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은 어 카톨릭 자체가 사실은
근대 그 계몽주의를 거부한 문명이었다
그 프랑스 혁명 이후까지도 그렇고 이게 이제 그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거는 사실은 그 1800 19세기 중반에 제일 먼저 그 비오
9세가 그 시도 합니다 시도를 하다가 실패를 하고 어 그래 가지고 오히려
희 이제 그 소위 말하는 반동으로 돌아가는 그런 셈이 됐고 그래서
교황령의 폐지된 다음에 어 1890년 돼야 이제 레오 13세가 이제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서희 계몽주의 자체는 또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뭐 말
자체가음 19세기 저 초반 가야 나오는 말입니다만 어 그 자체를 히 단죄를
했 했거든요 그서 그런 의미에서 어 그 새로운
문명하고 우리의 소위 근대적인 문명을 좀 얘기하는 건데 어 카톨릭의 관계가
어떤가를 정확하게 좀 짚어 내실 필요가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고요 참고로 이제
그와 관련해서는 그 토크빌이 그 비국 민주주의를
1830년에 미국을 갔다 와서 씁니다 근데 거기서 그 종교 문제가 나오는데
어 프랑스에서 이제 그 혁명이 지나고 다시 왕정복고 되고 뭐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 아마 미국에서는 가두기 이건 완전히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의 나라다 그런 생각을 갖고 미국을 관 시체를 하는데 깜짝
놀랍니다 거기서 카톨릭이 굉장히 번성하고 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없어져야 되는데 반성하
번성하고 있더라 그래서 그것을 이제 분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 어
제시하는 개념이 뭐냐면은 어 카톨릭은 평등 적에 관심이 있고 그러니까 그
꼭 근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평등에 관심이 있고 개신교는 인디펜던트 그냥 자유적인 정에 그쪽에
관심이 있다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접속이 접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라는 그 표현을 그 당시에 이제 미리 합니다 이제 그런
그 예를 들어서 그런 관점 예를 들어서 어 황사영 백수 조금 이후의
일입니다만 어 그 뭐 다 다 같이 하느님의 자녀다 그 표현이 일종의 그
평등 개념이 되고 아까 이제 노비 문제가 나왔습니다만 노비 문제는 사실은 그 2천년 동안
기독교가 내려오면서 어떤 정치 체재하고 다 연결됐던 거거든요 그 그
자체를 그 교리화 문제나 그 성경의 문제하고 직접 적 그 관련이 역사
상은 없다 실질적으로는 모든 정치 체제와 항상 연결돼 있었다라고 하는
점을 염두 두면서 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게 이제 제 생각이고요 그다음에
아까 그 사회민주주의 말씀하셨는데 뭐 깊이 들어갈 거는
없고 저도 약간 그 우리 허 박사님 쓰신 책을 보면서 저도 약간 오해를
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용어가 용어 선택에서 약간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
비판 하시려고 하는 거는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저희 자코뱅 이즘 있죠 자코뱅 일종에 자코뱅 이즘
비판하는 건데 물론 그걸 이제 전체주의라는 표현도 하셨지만 그 사회민주주의를 그렇게 카테고라이즈
하면은 조금 그건 좀 문제가 좀 있고 그렇다고 제가 뭐 사회문 주지를 어
뭐 찬성한다는 그런 입장은 아니지만은 그건 뭐 같은 그러니까 같은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경쟁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것 뭐 큰 문제가 없다라는 그런 얘기가 됩니다 이제
그런 면에서 어 아까도 그 한 분이 지적해 주셨지만 다원적 신민 사회 뭐
이런 대안으로서 그런 얘기를 나오시고 또 한쪽으로 말씀하시는데
이념이 아니다라고 얘기하시는데 사실은 그게 다 이념입니다 그리고 어
결국에는 뭐 다원적 시민 사회가 움직인다고 하는 말로 그게 마치 무슨
보이지 않는 손같이 뭐에 의해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냐 이런 뜻이 잘못 될 수가 있어 그래서 결국은
새로운 문명 근대 국가나 근대 문명 자체의 문법이 무엇인가 근대 국가의
헌정 원리가 무엇인가 그런 점하고 연결시켜서 그것을 세련 그 정확한 이념을
이르기를 설정해 주셔야 이게 진전이 있을 수 있지 비판하시는 어 그
비판은 되지만은 제시하려면게 좀 더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이고요
그다음에 용어의 문제가 조금 있었는데 그 아까 민족주의 말씀도 하시고
민족주의를 비판하시는 물론 그런 민족주의가 그런 측면도 갖고 있지만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이 자체를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는 거냐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은
비판할 수 있지만은 민족주의는 근대 국가의 기본 원리이고 지금까지도 우리가 살고 있는 기본 원리인데
그것에 긍정적인 부분을 잘 우리가 다듬어서 저는 민족주의라는 거 자체를
좋아하지 않 오히려 국민주의 이런 쪽으로 이해가 돼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면 마지막 한 가지 용의 문제 중에 하나가 그
근주의 뭐 표현을 하셨는데 그 대한 제국이나 이쪽에 하시는 분들을
비판하면서 그 말을 쓴 배경은 이해하지만 그 근주의 그 당시만
몰라도 지금 21세기에 그쪽을 대한국 찬양했다 서걸 근황이라고 표현을 해야 되냐
조금 조금 용어상의 문제입니다 조금 다른 있요 다른 아 그거는 제가
없습니다 약간 뭔가가 뭔가가 좀 포인트가 안 맞는게 아니냐 감각상 예 없어어 쓰셨을 거는
하겠습니다만 좀 더 고민을 해 주십사 하는 뜻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간단하게요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다네 목님 아 아까 김 교수님 말씀하신
그칼 동시대성의 신학은 1932년 교회 교학에 나왔고요 에스트
블로우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34년에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사실은 이게 뭐
누가 먼저냐 아니라 그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그 신학적 대응이나
역사적 역사성에 대한 대응에서 아마 독일의 학계에서 다루었던 그 역사적
담론이 아닌가 그 생각 마 썼다 그러거든요 예예 그래서 거의 동 동성이
동성 그러니까 그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바르트 나치 독일에 대한 고백교회
운동으로 그 비판적으로 대결했던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거의 동시대적으로
나왔던 그런 부분이 아닌가 생각을 좀 하고요 그 저는 그 좀 황사영 백서
사건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에서 좀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들 중에 하나가 그 교황청과 한국교 천주교회의 관계
성이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 황사영 백사 이전에는 그런 반역이라고 하는
그 카테고리 안에서 박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재산 논쟁 때문에 사실은 박해가 이루어졌는데 황사 백서 사건
이후에는 반역이요 그니까 재산 논쟁은 들어가고 반역이라고 하는 재산 논쟁이
오히려 반역으로 가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 거 보면 그 전에 김영 교수님이
저한테 한국 교회사를 가르치시면서 했던 천주교의 전교 방식 그러니까 선교 방식의 문제가 좀 있거든요
그러니까 학문으로 도왔던 천주교는 재산 쟁에 별로 문제가 안 되고 그
당시는 교황청에서 제사를 금하지 않았고 그 그냥 효에 하나에 봤던
반면에 황사영 백사 사건 직전에는 그 수도원적 어떤 그 선교사들에
의해서 어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이런 수도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교황청의
결정은 재산은 우상숭배 있거든요 그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 황사영의
종교성이 하는 것이 개인의 어떤 선택이나 어떤 신학적 발견이나 신앙적
발견에 의한게 아니라 어떤 교황청에 어 아까 김명구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거는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교회의 교리를 따라가는 거였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걸 문명사적 전환으로 본다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그 황사영이 주변으로 둘러싸 했던 어떤 신앙의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복잡한 천주교와의 관계 이렇게 보면 너무 과도한 해석으로 갈 수 있지 않나
오히려 어 정이 믿었던
천주교하늘공원 되지 않는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게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담론이 그든 그런 면에서 보면
천주교하늘공원 조금 더이 황사영 백사 사건은 천주교와 어 그 당시 한국의
천주교인들의 관계 교황청과의 관계를 한번 좀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또 한번만 더 누구 아무
선생님 아 그 영업 문제 관해서 좀
말씀드릴게요 그 아까 토론 중에도 여러 개가 있을 수가 있다
주장한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라고 자기들 국회에도 쓰지만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 정의하든 또 그것에 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던
어 북한 같은 체제가 민주주의일 수는 없는 거죠 그렇게 분리 수는 그래서
그거는 좀 곤란하고 그리고이
사회 민주주의라는 말도 그렇습니다이 그 우리가
사회민주주의가 이제 정확한 의미로는 그 복지 국가 론자 그것은 가장
중요한게 뭐냐면은 공산주의를 핵으로 하는 뭐
우익 그 나치스 같은 전체주의 전체주의에 대해서 절대 반대한다는 거예요 그 누구보다
아 티보다 더욱 생명을고 명 하는 것이
민주주의자이고 그럴 때 그 가치가 있는 거고 그게 자기들이 몽주 이대로
소 운명의 적자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사실 주류 사회죠
디에서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안 돼요 한국에서 사회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이 북한과 또는 중공과 예전
련 세력과의 관련을 절대 끊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사회민주
주의자가 아 예 1945년 이후에 대한민국에 사실 존재하질 않았어요 그
이제 미국도 조봉암 시도 사회민주 내세웠지만 그 관련으로 그것을 떼지
못해서 결국 처벌을 받는 겁니다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걸 이제 또
너무 미화해서 안 되고 관련해서 지금 한국 역사학
주류에서 국의 48년 재언 헌법을 좀 싸고 돌아요 왜냐하면은 이것이 뭐
이익의 균이라고 할까 해서 굉장히 사회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즉 탈자본주의 자본주의 비판적인 요소가 있다 이래서 지금 싸고 돌아요
그래서 한국은 어 자본주의와만을 위주로 하는 그런
체제로 출발한게 아니다 좌익에 대해서 개방적 류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게 이제
그 이데올로기적인 그 저게 있는 거예요 배경이 그래서 그런데 그
제법의 사회주의 요라는 것이 당시 세계사적으로 20세기 전반에 세계를
그 휩쓸고 있던 좌익 통토 식이네 그건 뭐 미국을 워싱턴 유역을
비롯해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잖아요 그리고 어 한국도 또 부한 상황에서
지식인과 인들이 어 제국주의에 반대하다 보면은 어 거기에 끌리는 건
뭐 너무나 당 이해 갑니다 그러나 그 실상을 잘 모르고 당시 한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미국 워싱턴
국무부 관리들이 미국 대통령도 그런 점에서 그 실상을
보면은에 그걸 그대로 저 읽어 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만약 그대로 한다면 그것이 프리코스 니즘이에요
조숙한 케인 제한 주의다 그러니까 저개발
사회에서이 재원 헌법대로 했다면 절대 오늘 같은 한국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건 저개발 사회를 결코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예 그런 점을 그 실상이 그렇다는 거를 이해를 하고 어 재언
헌법을 대해야지에 그 잘못 빠지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지금 혹시 청장님 말씀 안하요 입니다 마지막께 말씀 좀 오늘
[음악] 주시
아예 뭐 아이고 싶고 질문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사실 많이이 체크해
왔는데 시간도 없고 또 제가 처음와서 괜히 너무 시간을 많이 빼는 것도
얘기가 아닌 거 같아서 우선 여기 질문 중에 하나는 여기 보면은 그 몇
페이지가이 천주 교회도 우리나라 정배 북사 편찬 위원회가 있듯이 우리
한국의 천주교에도 뭐 그런게 있겠죠 거기서는 황사영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어 한국의 천주교회 국사 편찬 의원에서는 황소를 어떻게 표신고
있어요 여기 지금 여기저 그게 아니라 천주교회의 새신과에 2년 그걸 인용을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교회사 연구소에서 그 저기 한국 천재
교회사를 새로 편찬해서 어 그 황사영 백석지 나온 걸 제가 거기 인용을
했어요 그 스신 선생님이 누군지 지금 생각을 안 나는데 그러니깐 어 그게
교단의 그 공식적인 견해라고 볼 수는 없고 연구자의 견해인 거죠 공견 없요
공식 견해는 제가 없는 걸로음 말고 있습니다 사과하지 않았어요 아
사과한게 그게 2000년에 새신과 반성인가 뭔가 그 주교 회의에서 나온
건데 제가 그 장희 주견 님한테 그런 거 하지 않았냐 물어보니까 그런 기억이 없대 근데 그때 회장님이
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게 이제 선언적으로 나온 거는
교황님이 그때 그 이슬람고 사과하고 추기경님이 그 김창숙 선생님 묘소에
가서 참배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하여튼 그때 당시 교회의 그 공식
입장은 로마 교황청의 입장하고 공통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입장이었던 거 같습니다에 예 어 무엇까지 얘기하고
말아야 될지 지금 머리 좀 정리해이 제가 1억 저럭 본이 아니게
본이 아니게에 저기가 제가 1935년
생인데 일제 때 실제로 여러분들은 일제 체제 경험을
안 하시고 책으로 보신 거예요 저 일제 체제를 직접 경험한 세대로서
어 일제를 어떻게 봐야 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영훈 씨 얘기 같은
것에 대해서 어 좀 좀 더 그렇게 다큐멘트 의가 아니라 체험의 실체를
좀 의에서 좀 했으면 이런 논란이 좀 많이 죽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납니다 예를 들면은 같은 그냥 콜로니얼리즘 이렇게 하고
일본의 한국 콜로니얼리즘 이렇게 보니까 이게 제기가 닮아지는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영국이 네덜란드가 프랑스가 뭐 여러나라를 지배했지만
[음악] 거기에 단의 출석까지 본 헌병이 나온
그 그런 그런 지배는 없었거든 제일 청으로 우세가 그
차이를 자꾸 잊 잊어버리고 영국은 2억 2억 5천만을 2천명이 가서
컨트롤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지방 자체라는게 있었어요 베트남도 지방 자체라는게
있었고 프랑스가 우위를 지배하고 매판 자본을 지배하고 중앙 정보를 지배했지만 그대로 있는
거예요 거기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리고 다 대학이 있었어 그래서 호지민
저저이 뭐야 호지민 저 하노이 대학 나오고 레루
뭐 간디 다 거의 대학 나왔어 우리린 대학이 없지 았어요 1940 몇 년에 왔어야 겨우 경성제대 생기겠지 그
전문대학 전문 대학도 없지 았어요 그러니까 일본의 일본의 한국 그리고이
세상에 도대체 신민 통치 한다면서 나는 일정때 간내 시어진 게이에요 교문 들어가면 그
순간에서부터 일본말 해야 돼요 한국말 하면 딱지 저 새학기에 20 20개
주고 한국말 하면 딱지 하나 뺏겨요 그 20개 뺏기면 진급 못 해요 세상에 그런 통치 없어요 그
신민 통치 뭐 아니 그까 한일합방 조에서도 그렇게 돼 있다며 한국의
자치를 지방 자치를 허용하고 뭐 이렇게 돼 있다며 원래는 그거죠 저 한일합방 조약도 그 일본은 그런 거
그러니까 일본의 통치의 특증 와 서양의 콜로니 를 사이를
들고 얘기를 해야 되는데 자꾸 콜로니스 하고 이러니까 이런 이런지의 한부 문제에서부터 참이 혼란이 나오고
이제 친일 문제가 자꾸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역사학자들이 자꾸 다큐멘트 의존하지 말고 그리고
서양 그 콜로니에 자꾸 의존하지 말고 진짜 체험의 중심으로 한 적 어 내
체험 얘기 또 하나 할게요 우리 아버님이 지형 그냐 이래저래 참 일정에 난 역사 전에는
관계가 없 없이한 출발한 사람이 역사에 자꾸 말리게 됐는데 일생이 아버님이 제원 국회를 하셨어요 정때
신간의 운동을 하시고 이런저런 좀 그러는데 제언을 하시는데 그때 내
중학교 3학년 때입니다 그때 안성에서 네분이 출발하는데
아버지는 저 독 독이고 또 한번에 한민당이고 이제 또 뭐 뭐 있네
분인가 다섯 번 있었는데 내 국민도 아 신기하다 할 정도인게 두 가지가 똑같 있어요네 사람 후보 첫째 반민족
친일행위에 결 척결하겠다 두 번째 농지 그러니까 이승만이 뭐다 뭐 자꾸
그러지 말라고 그게 그게 민심이 있어요 그게
그게 그러니까 해방되고 뭔가 새로운 세상에서는 농지 에견 해야 되는 거로
돼 있어 그건 뭐 사회주의가 돼서 그렇고 무슨 뭐 뭐 뭐 개인 소위가죠
그 문제 아니야 자꾸 이것도 내가 나 같은 체험 세대서 볼 때는 이것도 쓸데없는
논쟁들을 하고 있는 거야 정말로 체험적인 그걸 좀 했습니다 그 체험적인 얘기는 아니지만은 여기서
얘기가 안 나오는게 있어요 1941년 그 몇월 달인가 아 41년
12월인 2차대전 일본 저 송 일본이 하와이 공격을 하니까 그 여흘인가만의
대한민국 상해 정부에서 극 강령을 발표하자아요 극 강령 참 그 신기해요
이차대전 나고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극 강령 이젠 젠 일본이 망하고
건국할 때가 됐다 이거 그리 나을 거기 한번 보세요 그걸
보면요 지금 뭐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거기 보면 물론 뭐 뭐 무슨 농지와
뭐와 뭐 하천과 이건 다 유하는 건 물론이고 뭐 무슨 뭐 은행 뭐 다
극이고 출판업 영화
극장 인쇄 타 구경이야 그리고 제일 끝에 중등 및 소등 기업은 민영으로
한다 이렇게 돼 있어 경제 항목에 뭐 제연 의견에 뭐 뭐 어쩌
어쩌 그 여향을 다 받은 거예요 그리고 내 고향이 안성인 안성희 외성
때 경성제대 나오신 분이 두 분 있어요 두 분 다 큰 부자예요 안성이 큰 부자가 돼서 그 경성제대 출신이
두 사람밖에 없었어요 30 몇 년 동안에 그 두 분이 다 요새 말하
빨갱이야 한 분은 해방되자마자 아주 입으로 갔고 한 분은 해방 뒤에도 그
좌회 운동하시다가 어떻게 몸이 아파서 그 어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 거예요 압도적으로
좌파 그러니까 제 3세기라는게 한국 한국은 미국이 이렇게 저 분단돼
있었으니까 그랬지 다 제 3세라는 건 다 반동 회의라는게 다 그 다 사회주의 그거 아니에요 그 상식이야
상식 아 1번 좌파라는게 뭐예요 일반의 지식인 일본의 동경제대 뭐
나온 사람은 다 좌파라는 거 아니에요 일본 놈도 그게 그게 1920년
30년 40년대 50년대 그게 인
거예요인 그러면은 여기서 우리가 다시 또 반성해 드릴게 그러면은 그럼 한국에서 어떻게 시장 경제 되나 아니
더 얘기할게 박정희가 1962년 2월 달에 통화 개혁한 거 여러분 그게
그냥 통화 계획으로 디노미네이션어요 그거 아니에요 그거는 그 내용을 보면
그 공표된 그 군사정부 통화하는 사업 은행에게 게 모든
은행과 모든 은행과 모든 민간기업의 주요 민간기업은 다 산업은행으로 뭘
모어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이 날 불러다가
따로 저저 합의부가 합의부가 내가 동화 보
있을때 이거 이거는 사회 주로 가는 거니까 이걸 한다고 그러면은 미국은
단결 선언 하겠다 그거 써 달라 동할 거야 그걸 내가
동아에서 난 나로서는 쓰라 그럼 쓰는데 너무 위중하다 회사에서 일단
미국 축하고 다시 또 박정희 정부하 박정희 군사 정부하 상의해서 이걸 쓰느냐 마냐 결정을 해 달라 그런
직전 경험 합의하고 그 경이 너무 저설 기적인 설명은 너무 걱정인데 나
건 참만 다 얘기 시간 당 그런 과정을 거쳐서 시장 제가 된
거예요 저 내가 신문 기자로서 내가 내 기사
썼지만 저 1958년 쯤 돼요 대한민국에서 염전 이제 전매 청서
불라 하라고 미원 조 당구에서 그래요 재무부가 말 안 들어요 아 하나도
꼬붕이 더 있어야 그래도 뭐 돈이 생기는데 그래 해 그럼 내년도 대충
자금에서 재무부 예산 반값게 그럼 아이고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하된 거예요
무슨 박정희가 시작 경제 해요 이승만 시작이 제 아니에요 미국의
강화에 KDI 에면 들었습니까 K 이제 원조로 원조를 끝 아플로 한이
스트링이 안 되니까 그때 이제 이념적으로 이념적인 제도의 제도와
이념으로 시장 경제를 적하기 위해서 KD 맺 그래서 KD 맺는 것도 전부
미국 돈으로 맺는 거 아닙 히스와 마찬가지로 실체에서 얘기를 해 돼요
자꾸 우리 경제학자들이 우리나라 시장 경제 만들어 아니에요 우리나라 관료가 만들어요
아니야 환율 관계 요까지만 얘기 내 집이 신당동이 있는데 1년에 한번
1년에 한 번은 꼭 한 보름쯤 진 차도 서고 버스가 서요 그럼 난 신당도 있니까 물리 대까지 걸어다닐
수 있어 영등포 있는 사람 놈은 못 와 왜 환율 이제 매년 저 되면 좀 되면
미국 쪽에서 작년에 물가가 22% 올랐으니까 20% 환율 올려야 되겠다
그럼 그때는 우리나라의 메인 소스가 수출보다 미팔군이나 미군 공군
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이 그걸 요새 팝스 케이팝으로 유명한
팔군 무대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 돈을 포함해서 그게 더 많았어 그러니까
환율이 올라간다는 건 그 사람들을 월급이 죽어진 얘기야 아 저저 달러 달러가
저들 들어온다는 얘기야 응 환율이 올라간다는 얘기는 수 정부의 외화
수입이 줄어든다 얘기 그러니까이 박사가 절대 반대야 박사 고집이 세잖아 그래 알았어 그럼 미국에서
석유 금지 석유 금지시키는 거야 석유 안 주면은 버스가 돼
전차가 그러면 이제 한 한 한 뭐 한 달쯤 한 달까지 나어 되게 20일
벌름 신경이 하다가 그래 그러면 이번에 15% 환율 올리고 그 대신
원전 중을 맞아 줄게 그래서 쿠션을 하면서 이게 그래서 우리나라는 시
전통 경제에서 또는 비비 비시장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야매 시장에서 여러분들 해외 유학할 때는 야매 시장이라는 것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들
갈 때는 야미 시장에 두 배 정도 세배 정도 있었어 소련이 망할 때
1년에 10배 20배 환율이 차이가 났어 그래서 소 붕괴된
거야 얘기 근데 요컨데 정말로 정말로 우리이이 이까지 난
여기서 지금 오늘 어 꼭 좀 듣고 싶은 얘기는 내가
머릿속에서 지금 그리고 있는 큰 저이 얘기는
정말로 정치를이기는 외교도 안보도 경제도
산업도 교육도 없는가
그야말로 역사는 정치를 이길 수 있는 것인가 요새 사태를 보면서이 두가지
어떤게 서는가 정치가 역사도 이길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역사가 결국 정치까지
일기는 건지 그러면 우리나라이 사대가 이렇게까지 뭐
얘기할 수가 없어 역사 박물관 저할 때 그 그 구급 바와 자들이 그 그
간에서 시달린 얘기를 하면은 그러면은 어떻게
이것이 이게 어떻게 보면은 보수의 사실은 김영삼 씨부터
이승만이 부정했고 좀 자세히 나옵니다만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그 민주라는 결국은 이제 이상한 변종 민주화가 된
거란 말이야 그 변종 민주화가 되면서 역사가 이렇게 되고 이제는 나 그건
좀 여러분 내 그런 것도 좀 유튜 보고 싶었는데 내 리스트에데 최근 아 최근에한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지금 우파에서 활동하시는 분한테 정말 지금 전국
교사 중에서 전교자 몇 프로냐 아직도 90% 그랬더니 아직도 90% 그러더라고 그게 맞는 얘기예요
90% 어 9% 역사 아니 국사 교사
국사 교사 중에서 중학 국민의 중학교 고등학교 국교가 교사 중에서 아직도
전교조가 90% 90% 거까지는 아니고 6인가 7인가 그러면 뭐
장치가 못 이겨 그러면 장치가 못이기는 거야 그러니까이 때의 말을 사실은
답을 좀 내 여기서 얻는 힌트에도 얻을까 하고 저는 사실 오 어 나번 오시면 답을 드리겠습니다 체험적
대한민국사 쓰셔야겠습니다 제가 저도 한 말씀만 드리고 저도 저도 커멘트
짧게 진짜 할게요 저는 그 우리 지금 다 말씀하신 거에
있어서 역사의 역사의 동시성의 비동시성 얘기도 있고 그렇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우리가 전혀 지금 안
되고 있는 방법론이 뭐냐면은 근대가 근대가 근대인 만든
건지 대인이 근대를 만든 건 둘 다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황사영이
근대인이었던 수가 없죠 황상이 근대인은 이미 그때가 근대 사회였다는 얘기니까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어 없죠 그러니까 이게 역 전부 다 단계마다 그런 거예
그걸 이제 비동시성의 동성이라는 방금 말씀하신 대로 무슨
이승만이 시장 경제를 알았어요 박정희가 시장 경제를 알았어 우리나라 관료들이 시장 경제를 알았어요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알아요 그까 근데 그걸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전혀 그걸 하려 그러지 않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게 된 거인 건데 역사를 그렇게 설명을 해야 되는데 자꾸 뭐 동학이 무슨 근대성에
뭐 뭐 였었고 뭐 뭐가 뭐 였었고 아 정말이 우리 한국 역사 쓰는 서술
방식이 이게 이러니까 이게 근대성이 있다 아니었다 이제 이거 갖고 맨날 싸우는 거고 이게 진짜 근대성이 저게
시민 신이고 이런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건 그래서 저는 항상 그 후코가
말하 개부 아이라는게 그 문제 의식을 갖고 하는 건데 그런 그런 거의 그
필요성을 절감을 진짜 그 많이 했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 방법론적인 문제
있어서 아까 어 김규홍 선생님도 그러셨고 호현 선생님도 저 정수
선생님도 그러셨는데 어 전 화이부동이란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이게 무슨 지식인게 그런게 어디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자기 자 진리
자기가 생각하는 진리를 얘기하는 것이지 무슨 그 그니까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혹시 그래서 정말 내가 내 논리보다 엄청난 논리를 내
주면은 어 나가 내가 그건 승복할 수 있다라는거 뭐 과학 정신이 그 자체니까 그래서 전는
항상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해리 커닉 주니어라는 재즈 하는
가수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쓴 노래 가사 중에 성인데
뭐냐면 I will love you forever for now 지금만 그 있지 아니 그니까
지금 사랑하는 건 진짜거든 근데 그게 영원히 갈지
모르죠 그렇지만 그때는 진짜 사랑을 해야지 그게 사랑이지 이게 뭐 그냥
여러 가지 다원적인 거 내가이 사람하고도 나중에 보면 저 사람 그게 아니에 저는 학문 세계에서는 그
끝까지 정확한 자료를 내고 끝까지 토론을 해야 되는 거지 거기서 화이부동 하면은 이건 화위 부동은
누가 결정할 건데 부동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동이라는 건 의견을 달려야 돼
계속 토론할 수 있다는 거 화 싸우지 계속 토론 물론 물론 뭐 그니까 자유민주주의가 이제 그런 건데 그
핵심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 같이 그렇게 뭐 마음이 넓어서 열려서
그렇다기보다는 저는서 먼저는 개인이 아무튼 그하고 두 분 빨리 1분씩
드릴게요 다시 기회 한 분 그러니까 뭔 얘기할지 모르겠는데요 그 제가 좋아하는 역사가 코젤렉 있데 아까
한원장님 얘기하셔서 그네 역사 그 자체는 비이성적이고 역사가의 분석만이
이성적이다네 굉장히 어 왜 그런 얘기를 했냐면 설명을 해야 되거든요
설명을 해야 돼요 근데 역사라는게 그 책에 나와요 그 히스토리 What
is 히스토리 나에 누가 그런 얘기를 했데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이렇게 됐다는 걸 사후적으로 설명을 해요 근데 그 설명대로 역사가 됐느냐 물론 아니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 그 자체는 비성적이야 근데 역사가는 그걸 이성적으로 설명을 해야
돼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 개입해 이해하고 개입해 그니까이 과정이
있거든 근데 또 하나 중요한 건 뭐냐 그렇다는 걸 우리는 알아요 그게 저는
어 화위 부동이 하위부 등이 반대가 동이불 하거든요 그러니까 나가 틀릴
수 있다 내가 나중에 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렇다 그걸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나는 역사 그 자체는 비이성적이지만 나의 분석은 이성적이라고 최대한 노력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세상에 개입하고 세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거죠 간이이 힘으로 저는 살았다고 생각해요 예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네 이님 저는 아까 아까
아니 말 끝나이 말이어서 하면이 말이 저는
카에 그 디스의 핵심 주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성의 학대와 그 자유주의의 확대가
형이고 진보라고 생각하는 거여서 너무 진보 있 그 뭐
민족주의 민의를 시키지 마시고 진보는 상대적 념 포스트 모든이 진보가 될
수 있는 거고 뭐 민족 때로는 민족과 등단 때는 진보가 될 수 있었던 그런 거지
진보는 단적이다 인족 민족주의는 단적이다 그래서 하고 민중 필요
혁명을 연결시키는게 논리적으로 잘 연이 안된다 그런
측면에서가이 그 원화 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 좋겠다 그런 말씀드네 허생
선생님 마지막으로네 2분 드리겠습니다 제가 저기 이분 내에 그
제가 저기 저 지적해 주신 거 보면 대부분 용어
문제에 지적이 있으셨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뭐 유광호 선생님
서영호 선생님 지금 다시 지적 계신 이승현 선생님 그리고 뭐 하고
싶은데 많이 못한 김기봉 선생님까지 다 맞는 지적이 시라서 제가 앞으로도
공부를 하게 되면 안 할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어 그 부분을
충분히 반영해서 어 더 어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 함재봉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어 개인 얘기 하는 거가 하고 좀 비슷하신 거
같아서 조금 미안을 삼았고 그리고 지금 그 체험회 그
현대사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다큐멘트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
특히 이제 경제성장 사가 통계 갖고서 이제 다 설명하신다 그런 점에 문제점
같은 거를 어 지금 지적해 주시면서 많은 깨침을 주셨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기 간사님 말씀 주신 거 황 에 대해서 그런 부분에서 저는 이제
신앙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가했기 대해서 이렇게 저걸 주시면
글을 써 주시면 다음번에 제가 공부를 계속하게 되면 그 신교 측에서는 이렇게 본다가 하나 더 들어가겠다는
이제 기대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제가 볼 땐 김기 선생님이 제 이거
토론하면서이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갖고 책을 쓰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이걸
탕 해 진짜 좋은 책을 쓰실 수 있는 거
같아요 교수님들의 교수이 그 중요한 일을 좀 해주십사 하고 분이 같이
하세요 자 이상 답변
마치겠습니다 슷한 하나한이인데
그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그와 쓸 수
있는 우리라 중에 하나가 극성 양극성이에요 극성 양극성 천주교회가
한 것과 개신교가 한 것 우리나라
박정희가 저이 통화 개혁한다는 사람이
까꾸로 시장경제 무슨 선두자 같이 된 거라든가대 뭐 공자도 보했던 유교
국가에서 지금 세계 성형수술 세계 낙태율 인류 역사상 고의
기록을가이 양극성 이거 해명해야 돼요 이거 해명 못 하면 한국 이건 아무
발전 없어요 왜 이렇게 양성이 나왔나 그 비동
공성 아니 그거는 너무 철학적인 얘기고 대한민국의이 변화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된다 설명을 해야지 자꾸 그것만 얘기하면 수없네 저희가 이제 장소를 비워야
돼서 지금 죄송합니다 어 정말 열 window 토론 아 허동현 선생
시간이 너무 많다고 아까 걱정 하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말씀 아시겠죠 무슨 말씀인지 시간 너무 부족합니다
오늘 이것으로서 21회 종로 소평 대회를 모두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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