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2

[미국과 러시아/소련, 적대적 공생의 역사] 미국과 소련/러시아를 각각 별도의... - Vladimir Tikhonov | Facebook

[미국과 러시아/소련, 적대적 공생의 역사] 미국과 소련/러시아를 각각 별도의... - Vladimir Tikhonov | Facebook

Vladimir Tikhonov
 
[미국과 러시아/소련, 적대적 공생의 역사]

미국과 소련/러시아를 각각 별도의 세계로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사실 재미있게도 19세기만 해도 이 두 나라를 대개 서로 자주 비교하곤 했습니다. 미국은 서쪽으로 영토 확장하고 러시아는 동쪽과 남쪽으로 확장해 갔지만, 둘 다 영토를 "개척"하면서 원주민들을 내쫓거나 강제로 그 지배 질서에 편입시키고, 그 광활한 영토 덕에 특히 세계 곡물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러시아가 점령한 중앙아시아산 목화와 미국산 목화 역시 세계 시장에서 경합을 벌였습니다. 단, 러시아보다 미국의 공업화는 훨씬 빨리 이루어지고, 임금 수준 역시 몇 배 높았고, 종교적인 톨레랑스도 러시아보다 훨씬 발달된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1880-1917년 사이에 미국에 이민 간 러시아 제국 출신의 유대인만 해도 2백만 명에 이르는데, 사실 오늘날 재미 유대인의 대부분은 그 후손에 해당됩니다. 그들의 스토리를 빼고 20세기 미국을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소련과 미국은 1933년에 이르러서야 국교 정상화했는데, 사실 그것과 별도로 1920-30년대 소련사에서는 미국의 역할은 거의 결정적이었습니다. 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제1차 대전과 내전의 결과로 엄청난 규모의 기근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 그 기아민 구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의 미구제기구 (ARA)이었습니다. 1922년에 미구제기구가 보내준 식량을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소련 인구는 약 1천 만명, 즉 전체 인구의 약 7% 정도이었습니다. 미국의 원조가 아니었다면 그들 중의 상당수는 아마도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비록 국교가 없어도 1929년 이후 스탈린의 초고속 공업화는 미국의 기술 협력, 그리고 미국 기술 수입으로 비로소 가능했던 것입니다. 1920-30년대 소련 정부는 외국 업체와 117건의 기술 협력 합의서를 체결했는데, 그 중에서는 약 60%는 미국 회사이었습니다. 1932년에 소련에서 9천 명의 외국인 기술자, 약 1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업화를 돕고 있었는데, 약 3분의 1은 미국인이었습니다. 레닌그라드, 로스토브, 하리키우에서 생산됐던 소련의 초기 트락토르는 거의 포드사의 Fordson 모델을 복제했는가 하면, 지금 푸틴 정권이 미사일로 때려부쉬려 하는 우크라이나 드니에프로강의 드니에프로 수력 발전소 (Dniprohes)를 설계한 것은 Hugh Cooper (1865-1937) 대령의 건설 사무소이었습니다. 공산주의와 아무 인연도 없었던 이 대령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서 거대한 수력발전소를 성공적으로 건립한 뒤에 스탈린으로부터 적기노동훈장까지 수여했습니다. 사실, 미국의 기술 지원을 빼면 스탈린이 거의 10년 안에 초고속으로 진행한 공업화는 아예 불가능했을 겁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스탈린과 그의 국가 주도 초고속 공업화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이었습니다.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수정 자본주의를 원했던 루즈벨트로서는, 스탈린의 공업화 실험 성공은 "국가 개입의 효율성"을 증명해주는 증거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영미권 패권의 유지에 큰 방해가 될 수 있었던 히틀러를 제거시키는 데에 스탈린의 협력은 루즈벨트로서도 절실했습니다. 그 협력의 대가는 소독 전쟁 시절 소련에 대한 대폭적인 물자 지원이었습니다. 소독 전쟁 때에 미국이 제공한 물자의 전체적 값은 그 당시의 달러로는 110억 달러 정도이었는데, 그게 오늘날 달러로는 2500억 수준의 금액일 것입니다. 110억 달러는 어느 정도의 금액인가 하면, 1950-60년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액 전체와 거의 비슷한 숫자죠. 소련 전투가, 폭격기들이 사용했던 휘발유의 절반 정도는 미국산이었습니다. 1943년 초기 같았으면 붉은 군대가 소비했던 전투 식량의 17%는 미국이 공급한 것이었죠. 그 당시에 참전했던 제 모계 조부가 이야기했던 붉은 군대의 현실은, 미국산 Studerbaker 트럭을 타고 미국산 통조림을 막고 살고, 미국산 휘발유를 차와 비행기에 넣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히틀러에 대한 승리라는 스탈린의 최대 업적도 달성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1940년대 후반 이전의 소련은, 미국과 갈등할 수 있는 수준의 강국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미국의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했던 사실상의 개도국이었죠. 한데 히틀러를 이겨 동유럽을 석권하고 특히 패배를 당한 독일의 최신 기술과 기계 등을 손에 쥔 소련은, 비록 가난해도 이젠 "초강대국"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에서의 친서방 민주 정부 허용 등 미국/서방측의 요구를 무시해서 미국과의 냉전에 돌입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죠. 그 만큼 - 루즈벨트 시대 미국의 협력 등으로 - 이미 큰 것입니다. 한데 냉전이란 꼭 "경쟁"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냉전은 경쟁인 반면 일종의 "질서"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냉전의 중심 무대이었던 유럽에서는 미-소는 "현상 유지"에 합의한 이상 미국은 1956년에 헝가리를, 그리고 196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도울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반대로 스탈린도 1940년대 후반 그리스의 공산당 유격대를 돕지 않았습니다. 유럽은 "분할"을 당한 반면, 나머지 세계에서는 대리전을 포함한 경쟁은 - 그 미-소 합의 사항 차원에서 - 가능했습니다. 그런 대리전 중의 하나는 6.25이었는데, 거기에서 약 200여명의 소련 전투기 비행사들이 직접 참전해 조선의 하늘에서 미국 공군과 싸움을 벌였지만, 미국은 그걸 알고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미-소 직접 교전을 무조건 피하는 것은 냉전의 또 하나의 규칙이었는데, 그런 교전이 이루어져도 비밀로 남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던 거죠.  

​냉전의 경쟁 속에서 미국도 소련도 군수복합체를 발전시키는 등 '기술 발전'의 효과를 보고,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영구적 무기생산 경제라는 모델을 자본 축적에 요긴히 이용했지만, 결국 그 경쟁을 더 이상 해낼 힘이 없었던 소련은 1991년에 공중 분해됐습니다. 그 뒤로는 미-러 관계는 1920-30년대와 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다시 시장 자본주의로 회귀한 러시아는, 미국의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 등을, 대폭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반란 사건 등이 있어 러시아의 "와그너 그룹"이 세인들의 인구에 회자됐지만, 사실 "용병 기업"이란 모델을 러시아가 도입한 것은 바로 미국의 영향이었습니다. 미국이 하는 걸 보고 배운 것이죠. 미국의 구글이라는 검색 엔진의 위력을 보고 러시아는 Yandex을 "국민 검색 엔진"으로 키운 것이고, 페북의 위력을 보고 vk.ru나 ok.ru.를 "국산 소셜 네트워크"로 더 키운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프로파간다에 있어서도 밀리터리 블로거, 즉 소셜 네트워크에서 팔로워가 많은 블로거들에게 의지하는 것만 해도 미국의 인플류엔서 문화를 그대로 배운 겁니다. 뭐, 미국을 배우면서 CIA가 하는 것처럼 이제 소셜 네트워크에서 본인들이 지지하는 미 대선 후보를 위해 여론 조작 특수 작전도 수행하는 모양인데, 이건 크게 봐서 다 미국을 "학습"하는 과정입니다.  

​이제 냉전이 돌아와도 미-소 아닌 미-중 냉전일 것입니다. 현재로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미국과의 갈등에 휘말린 러시아는 이 미-중 냉전 구도에서 중국의 편에 서고 있습니다. 
그게 영구적인 것인가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중국도 1970년대에 냉전 구도에서 미국 편으로 돌아선 일이 있는 등 두 초강대국의 경쟁에서는 "작은 강국"의 선택이란 늘 유동적입니다. 만의 하나에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동유럽에서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망에 "양보"를 한다면, 미-중 갈등 구도에 있어서의 러시아의 포지셔닝도 충분히 바뀔 수 있을 듯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약 5백만 명의 구소련 출신들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중-러 사이에서는 이런 "인간적 고리"는 없습니다. 러시아 지배층 구성원들 중에서는 영어 능통자는 중국어 능통자보다 훨씬 많고, 중국에 비해 미국/서방은 여전히 기술을 사들이거나 불법 복제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지역입니다. 대러시아 투자 역시 여태까지 중국보다 구미권 국가들은 그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그 무슨 영구적인 "항미 세력"으로 보시는 일부 국내 스탈린주의자 분들에게, 국제 정치를 조금 더 넓은 안목으로 관찰하시는 것을 권장해 드리고 싶습니다. 열강 각축이라는 과정에서는 합종연횡은 끝이 없고, 그 이익에 따라 열강마다 그 포지셔닝을 계속 바꾸어 나갑니다. 진짜 진보 세력이라면 그 어느 열강에 대해서도 착각을 하지 않은 채 일관되게 지구/기후의 관점, 그리고 모든 나라들의 모든 약자들의 관점, 탈자본주의적 관점을 간직하는 게 중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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