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2010 연중기획]식민지 근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주간경향

[2010 연중기획]식민지 근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주간경향

2010 연중기획식민지 근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 상하이ㅣ글·김호기 연세대 교수, 중국 상하이ㅣ사진·김석구 기자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은 현재진행형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는 36년간 이어졌다. 한 인간의 반평생에 육박하는 시간이다. 식민통치를 바라보는 관점들 중 가장 논쟁적인 이론인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의 이 기나긴 식민통치가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김호기 교수는 이번 글에서 식민통치를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을 대표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검토하면서, 역사 변화가 민족 구성원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역사의 진전이 아니라 역사의 후퇴라고 말한다. <편집자 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입구.

필자가 일본에 처음 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20대에 한동안 독일에서, 30대에는 미국에서 잠시 살아봤지만, 정작 일본을 찾은 것은 가장 나중이었다. 아직도 필자는 도쿄에 처음 간 날을 잊지 못한다. 나리타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펼쳐진 풍경들은 너무도 낯익어 그 느낌이 내 자신을 더 없이 낯설게 했다.

현대성 연구자로서 필자에게 한국의 현대성과 일본의 현대성의 비교는 적잖은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도쿄를 거닐다 보면 도쿄와 서울의 유사한 풍경에 놀라게 되고, 그 유사함 속에 존재하는 차이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 유사성과 차이의 기원으로서 식민지시대를 찬찬히 돌아보게 된다.

식민지시대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연구자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책을 통한 인식이었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역사사회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현재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 그 역사적 기원의 하나로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 왔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식민지 시대

이 가운데 필자에게 역사학과 사회과학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문학작품들이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이기영의 <고향>에 이르기까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이육사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학작품들은 역사학과 사회과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식민지시대의 또 다른 측면들을 생생히 보여줬다.


다른 하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셨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식민지시대에 대한 필자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필자가 관심을 두고 있는 현대성은 제도와 일상생활로 이뤄지는 바, 아버지로부터 들은 당시 경성, 일본, 그리고 만주에 대한 이야기는 그 일상생활을 이해하는 데 나름대로 소중한 자료였다.


그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식민지시대 경성의 풍경이었다. 1930년대 후반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해방 직전 혜화동 주변에서 신혼살림을 차리셨던 아버지의 경성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보다도 더 실감나는 것이었다. 전차, 다방, 축음기가 만들어낸 현대성의 풍경에 대해 부모님이 느끼셨던 놀라움과 두려움이라는 양가감정은 현대성을 바라보는 필자의 무의식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기도 하다.


36년이란 식민지시대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평균수명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이다. 더욱이 다른 국가의 식민지 경험과 비교할 때 일본의 식민통치는 더 없이 강압적이었다. 마치 영구화된 식민지의 건설을 목표로 한 듯 일제 식민국가는 우리 사회를 철저히 통치하고 억압했다.


이런 식민지시대에 대한 인식에서 큰 논란을 이뤄온 것은 다름 아닌 식민지 근대화를 둘러싼 논쟁일 것이다.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에서 치열하게 진행된 이 논쟁의 핵심 쟁점은 일제 식민지 경험이 우리 사회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맞춰져 있다.


지난 8월 19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청사 앞 매표소 입구에 줄지어 서있다.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전개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발전을 촉진시켰고, 그 역사적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기반이 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반면에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식민지시대에 생산력의 향상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탈을 위한 성장에 불과했으며, 식민지 근대화는 식민지시대에 대한 일면적이고 왜곡된 해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논쟁에서 경제학자 모두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고 역사학자 모두가 이를 비판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경제학자들 가운데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한 이들도 있고, 역사학자들 가운데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우호적인 이들도 있다. 옹호론이든 비판론이든, 최근에는 실증 자료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강화해 오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현대사 인식

사회학적 시각에서 볼 때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른바 문명개화론, 근대화론, 그리고 최근 세계화론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흐름 속에 위치해 있으며, 이 흐름이 우리 현대사에 대한 기존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대응해 새로운 역사인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시대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서 지난 20세기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거시적 전망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와 연관해 최근 뜨거운 논란을 가져온 것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다. 이 책은 일군의 역사학자, 국문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등이 모여 일제 식민지시대로부터 195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 대한 논문들을 모은 책이다.


논란은 책 제목이 내걸고 있는 상징성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1980년대 우리 지식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겨냥한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한 교수는 ‘지난 20여년간 학계의 부단한 연구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서 제기된 주장들의 잘못이 지적되고 수정되어 왔음’에 주목해 ‘그간 진척된 수준 높은 학술 논문들을 선정해서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제시해주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목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담겨진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필연론이 ‘우리 역사 해석에 끼친 폐해에 대한 우려’와 ‘균형감각을 잃은 역사인식에 대한 걱정’으로 표명되고, 이 우려와 걱정은 그동안 진행된 과거사 청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문적 연구에서 시작됐으나 현실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둘러싼 논란은 학문 내의 문제만은 아닌 셈이었다.


김호기 교수가 임시정부 청사 안 김구 선생 집무실에 서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집단적 기억’에 대한 경쟁 및 갈등이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본격화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다. 물론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역사적 사실의 복원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에 대한 해석이 이념적 관점에서 그렇게 자유롭기는 어렵다. 편집위원 중 한 교수가 ‘일제가 남긴 전시경제체제를 해체하고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대한민국이 성립된 것은 출발로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현대사에 대한 보수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필자 역시 대학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역사인식에는 1980년대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염원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방향적인 해석을 낳고, 이 해석에 공감한 민주화 세대가 이후 우리 현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점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사실 복원과 해석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0년대의 시점에서 볼 때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당시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로 돌아와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일본 식민지 근대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신용하 교수는 자료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 기반해 “일제가 조선을 ‘공업화’, ‘개발’, ‘근대화’시켰다고 떠드는 1930~40년대 시기의 ‘공업화’, ‘개발’, ‘근대화’는 일제의 선전문구에 불과한 허구였다…. 오늘날 일본의 신군국주의 책동자들, 군국주의 부활론자들이 조선 침략과 조선인 수탈의 죄악을 감추기 위하여 이전의 총독부 관리들의 홍보문구를 찾아와 재활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신용하 외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나남·2009·116~7쪽).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현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시대 역시 사람이 살아가던 시대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또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이 살아온 시대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식민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기억마저 식민화할 수는 없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던 시인 정지용의 ‘향수’(1927)다. 연보에 따르면 정지용 시인은 이 시를 일본 유학시절에 쓴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옥천의 풍경과 일본 교토의 풍경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 시는 더 없이 유려한 조국의 언어를 구사해 두고 온 고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살아 숨쉬던 이 시가 부지불식간에 떠올랐던 것은 지난 8월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를 찾았을 때였다.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면서 역시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것은 식민지시대에 대한 제도적 분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에 대한 기억이었다.


역사 해석에서 하나의 시각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의 복원과 이에 대한 평가 또한 고정돼 있지 않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으로 역사는 재구성되며 재해석된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어느 하나의 집단적 기억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떤 집단적 기억이 역사를 정직하게 반영하는가를 연구하고, 그것이 현실에 어떤 함의를 주는가를 성찰하는 것은 역사를 해석하는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의 책무다. 이러한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변화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해 이뤄졌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다. 민족 구성원 다수를 위한 개발과 발전이 아니라면, 그것은 역사의 진전이 아니라 역사의 정체 또는 후퇴를 의미하는 것일 터다.

2010 연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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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고 나와 골목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구 선생을 이야기하고, 윤봉길 의사를 이야기하고, 또 일본 식민주의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식민지시대는 앞으로 다음 세대에게 어떤 집단적 기억을 남기게 될까. 상하이의 무더운 날씨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향수>를 다시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상하이ㅣ글·김호기 연세대 교수, 중국 상하이ㅣ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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