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
·
유종호의 변명이 너무 치졸해서 이 바쁜 농사철에 또 헛지랄을 한다. 내 성질에 내가 못 이겨 고추밭에 약 치다가 들어와서 쓴다(이것도 병이다)
비평가 유종호는 일제 말 문인들의 친일문학은 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강압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 말은 '저항 문학'에 대
● 일제 말 문학인의 세 가지 저항 방식
중일전쟁 이후 가속화된 총동원체제로 인하여 조선 작가들은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혹한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이전에는 이런 주제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것들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 가자 식민주의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고 저항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에게는 이러한 억압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일제 말기 저항을 한 작가들을 탐구할 때 넘어서야 할 것은 식민지하의 저항이 모두 내셔널리즘에 입각해 있었던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조선의 경우 문학적 저항에 국한시켜 볼 때 내셔널리즘의 저항은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셔널리즘 중에서 국민주의에 섰던 작가들의 경우, 예를 들면 이광수나 주요한 같은 작가의 경우 예외 없이 식민주의에 협력하였고 민족주의에 선 현진건 같은 작가들은 저항을 하였지만 문학적 저항 전체를 고려할 때 극히 소수였다. 오히려 끝까지 저항을 하였던 문학인들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자이거나 혹은 세계주의자였던 것이다. 왜 해방 후 많은 문인들이 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저항 작가들을 그 저항 방식에 따라 나누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침묵이며 둘째는 우회적 글쓰기이며 셋째는 망명이다. 유종호 교수는 이런 저항의 방식을 알고 있으면서 친일작가들을 변명하기 위해 일본의 억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쓴 것이 친일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뻔뻔한 변명에 발터 벤야민의 입을 빌려 싶다
- 저항을 선택할 수 없는 문학가는 침묵해야 한다.
저항을 할 경우 작가 자신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각각 다른 방향을 취하였다. 우회적 글쓰기를 택한 작가 중에서 가장 긴장이 강하였던 경우가 한설야이고, 우회적 글쓰기를 하다가 이것이 여의치 않자, 망명을 선택하였고 이에 성공했던 경우가 김사량이었다. 침묵으로서의 저항을 선택했던 작가 중에서 가장 극적 전환을 보여주는 경우로 김기림을 들 수 있다. 김기림은 신체제론이 선포되면서 많은 근대 비판론자들이 대동아공영권의 근대초극론으로 기울어질 때 이에 대해서 분명한 자의식을 갖고 비판하면서 침묵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육사 역시 우회적 글쓰기로서 시를 쓰다가 이것으로는 더 이상 자신을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였을 때 망명을 시도한다. 김재용의 글에 의하면 당시 이육사와 같이 망명하려고 했던 이의 증언과 주변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이육사가 망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검거되어 옥사하였음은 거의 분명한 것 같다.
유종호 비평가는 이 친일문학에 대한 민중의 거부감을 그 시대상의 억압적 지배를 인지 못하는 대중의 폭력성으로 돌리려 한다. 물론 그런 폭력성에 대한 성찰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묘한 차원의 단순 환원론이 있다. 수많은 식민 지배와 그에 따른 저항의 논리를 제국주의 담론에 다 묻어버리려는 것이다. 이런 단순 환원론이 문학계에서 '그 시절 친일 안 한 사람 나와봐라...친일과 그 작품은 분리해야 한다..' 라는 식의 무식한 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친일문학...식민담론에 포획된 주체들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는 있다.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그 식민구조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실은 항상 타자에게 구속된 채 고정되어 있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저런 저항문학은 나올 수 없지 않는가? 비평가들이 역사를 보고 인식할 때 그 주체의 내재성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인류를 억압하는 제국주의적 질서를 돌파할 가능성을 타진한 저런 주체들을 호명하면서 친일문학에 대한 반성적 인식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유종호는 침묵해야 한다.
===
김파란
·
작작 좀 하자
빨갱이로 밀리니까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으로 옮기자는 것인데, 좌빨들이 이념 전쟁으로 몬다고 말한다. 그래 좌빨이 니네들 논리의 전부겠지만, 그럼 해군사관학교의 거북선은 민속박물관으로 옮겨야 하나?
한국 사회는 이념이 아니라 '때려잡자 공산당'이라는 독재자의 유훈통치가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듯 하다. 지구상에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아직도 이런 취급을 받는 나리가 어디에 있으며,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틀에 맞춰 재단하고 취사선택하는 야만성을 이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자리에 있느냐 말이다.
역사적 인물을 빨갱이다 아니다,로 나눌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또 바로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에 수많은 사람들 목숨이 좌우됐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골목대장처럼 나서서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많이 양보해 윤석열이 마음속으로 어떤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그런 생각이 있더라도, 이분법적 사고로 국민들 분열을 조장하는 발언은 정치가나 관료 하물며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작업에는 다양한 정치적 이해가 개입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 사회 지도자나 지식인이 달라야 하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믿음의 형성과정을 명백히 틀렸다고 단정 짓거나 잘잘못을 가리는 즉 흑백을 나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