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김파란 - 생활보호대상자

(10) 김파란 - 생활보호대상자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 Facebook
생활보호대상자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진실성을 의미한다.
(카를 마르크스)
내가 어릴 때는 저소득층이라는 말대신 '생활보호대상자'라는 딱지를 붙혔다. 중-고등 과정이 의무교육이 아니었던 시절이었고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의 '생활보호대상자' 손들어 보라는 말로 나는 친구들에게 낙인이 찍혔다, '생보자'. 게으르고 무책임한 부모를 만나 생계를 나라가 보호해 주어야 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나의 행동과 표정은 항상 어둡고 무엇인가에 대한 결핍을 담고 있어야 했다.
- 쟤, 신은 신발 짜가겠지.....생보자가 무슨 나이키...
남의 집살이를 하던 엄마가 보낸 준, 하얀 가죽의 빨간색의 날렵한 문양을 자랑하던 나이키는 가짜가 되어야 했거나, '생보자'의 주제 넘은 사치를 수근거리는 아이들에게 고개를 숙인 채 참회해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었는지 그 운동화는 연탄불에 연탄집게를 올려 놓고 말리는 척 다 구워졌고, 날품을 파는 아버지께 그것을 보이며 운동화를 사 달라고 울었다.
'생활보호대상자' 라는 낙인이 찍인 내가 숨기지 않고 신고 다녀도 되는 운동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렇게 살아온 우리가 잘못한 것인가! 아니다. 열심히 했고 그만하면 잘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경제성률이 점차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정이다. 즉 선진국이 될수록 성장의 속도는 떨어진다. 그 시절 복지를 얘기하면 '일단 나라가 잘 살아야지'를 말했고 우리는 믿었다. 그러나 GDP 10위가 된 이 나라에서 경제 성장의 과실을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나라만 잘 살게되면' 이라는 기득권 세력의 주장에 떠밀려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와 보니 아이들도 태어나지 못하는 지옥문 앞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뜬구름 잡는 성장을 얘기하는 정치, 아니 기득권 세력에게 악다구니를 써야 한다. 국민이 어떠한 경우에도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들라고. 또 이 돈의 위협을 막아 누구나 최소한의 존엄을 누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압박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몫'을 착취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번 김건희 명품 쇼핑 논란에서 옹호하는 이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 김건희가 나랏돈을 쓴 것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쇼핑을 한 것이 이리 비난을 받을 일이냐? 심지어 한국인들은 어떤 일이든 명품이면 욕 얻어먹는 명품 혐오가 지배한다, 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말 8,90년대 사회 인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생활보호대상자가 개인이 게으른 탓으로 나랏돈으로 보호해야 하는누추한 집단이라는 것과, 김건희의 부가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은 정말 똑같은 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괴상한 사회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지난 손혜원 의원을 보라. 논란이 생기자 뭐라고 말했나? "나는 욕심 없다. 나전칠기 컬력션 지금 팔아도 수십 억이 넘는다..다 내 놓겠다. "
난 이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는 하는구나! 더 희극같은 것은 조국 전 장관이었다. 돈 지랄이 당당한 정치, 이것이 선의의 정치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사회의 변회를 조금이라도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의식 변화부터 있어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
자기 손으로 생산하는 사람이 사회의 모든 중요한 결정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노동하고 생산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개나 소나 다 정치하냐' 로 비웃을 것이다. 그럼 물어보자.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중요한 일의 경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배계급이 만든 효율성에 우리의 노동력이 착취당하는 것이다.
그것을 사회는 이런 말로 순화 시킨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이건 개소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무슨 전문성이 있었나? 성추행 이런거. 전문성이라는 자체가 자기들이 정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있는 것이다. 어떤 어떤 지식이나 기능이 중요하다, 라고 먼저 전제를 해 놓고 그걸 대중들이 받아 들이고 나면 게임을 해도 우리는 절대 못 이긴다. 왜 처음부터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라고 정해 놓으면 시작하면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우리나라 정치인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이 룰에 따라서 모든 격차를 정당화 시켜 버린다. 절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개혁은 누가 할 수 있나? 절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이 전쟁이 끝나고 집권하자마자 무상의료를 실행하기 위해 국민건강제도를 입법했다. 이로써 영국의 모든 병원은 국가소유가 되고 의사 등 병원 관계자는 모두 공무원이 되며 병원은 세금으로 운영되게 되었다. 당시 보건부 장관인 어나이먼 베번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광산 노동자 출신이었는데, 의사들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무상의료를 정착시켰다. 교육도 모두 무상으로 운영되었고, 실업수당과 노후연금은 실업자와 노인들의 생활을 보호했으며 공공 장기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 소득에 따라 월세를 내게 함으로써 무주택자의 걱정을 들어 주었다. 이런 복지국가 건설은 1930년대 대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겪은 유권자들의 강력한 요구였고 1979년 5월 대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때까지 하나의 사회적 합의로 보수당도 존중했다.
누가 정치를 해야 되느냐? 사회의 중요한 결정은 어떻게 내려야 하느냐? 우리는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의식의 변화부터 있어야 한다. 반성이 없는 수구기득권과 이것을 그대로 닮아가는 현재의 진보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백번 외쳐도 그들은 들을 수가 없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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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꼼꼼히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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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예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수의 편견과 '가난한 자들의 소비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규정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빌어 써 봤습니다.
08화 『가난한 사람들』 3-3 템즈강의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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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가난한 사람들』 3-3 템즈강의 시체
08화 『가난한 사람들』 3-3 템즈강의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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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정작 그들 중 부자가 적어요.
그만큼의 부도 없으면서 정략적으로 김건희를 옹호하는 거죠. 체계 속에서 빵부스러기를 주워먹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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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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