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알라딘: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 허동현 1999-

알라딘: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 - 근대의 길목에 선 조선의 선택 
허동현
(지은이)당대1999-07-26
12,000원
Sales Point :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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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17-03-09


문물제도를 시찰하고 그 관찰한 바를 조선의 개화와 자강정책에 반영하고자 했던 우리나라 개화운동사상 획기적 의미를 갖는 조사시찰단의 내용을 담은 책. 당시의 사진 자료와 그림들이 돋보인다.

서세동점의 높은 파고가 휘몰아치던 19세기 말 조선은 서구열강을 비롯하여 청과 일본의 침략에 직면해 국가존립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소중화를 중국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서구 근대문물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일본인가, 쇄국과 의례중심의 조공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개항과 새로운 조약체제를 도입할 것인가 등을 놓고 고심했다.

그리하여 조선은 1880년대에 이르러서 세계역사의 발전방향에 순응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인 동래암행어사 12명의 일본 시찰이다.

1881년 초 고종은 어윤중, 박정양, 홍영식 등 열두 명의 관료들을 동래암행어사로 임명해서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로 대변되는 메이지 일본의 모든 것을 샅샅이 조사해 보고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조선은 근대의 길목에서 일본을 조선 개혁의 모델로 상정하고 우리 역사 최초로 일본 따라 배우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의 자강(自强)을 도모하기 위한 모델을 찾아 일본을 시찰한 조사시찰단(속칭 '신사유람단')의 추진 배경과 임무, 활동상, 그들이 메이지 유신기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제도(의회, 사법, 군사, 교육, 행정...).풍속 등을 보고 느낀 점, 또 귀국 후 일본의 부국강병과 문명개화의 요체를 조선의 개화.자강정책에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이들이 남긴 보고서들이 당시 개화파 지식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이며, 근대 개화기 우리 역사에서 이 조사시찰단이 차지하는 의의와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남긴 총 90여 권의 보고서를 통해 밝히고 있다.


목차


1. 쇄국 그리고 개항
문화와 개항 / 오늘의 좌표, 100년 전 개항

2. 일본 따라 배우기가 시작되다
중국의 패배 / 흔들리는 중화의식 / 생존을 위해 선택한 부국강병 / 중국인가 일본인가

3. 일본행 화륜선에 오르다
고종의 결단 / 두 얼굴의 일본 / 고종의 밀명 / 12인의 조사와 그 수행원 / 일본행 화륜선에 오르다 / 일본을 샅샅이 살피도록 하여라 / 일본 보고서

4. 조사시찰단의 일본 탐험

(1) 아는 것만큼 보인다
새로운 눈, 개화사상 / 흔들리는 수구사상의 눈

(2) 일본형 국가통합 장치
군민공치를 한다니! / 조선의 모델을 찾다

(3) 자본주의를 향한 경제통합
경제성장과 재정파탄의 갈림길 / 우리도 일본식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4) 사회와 풍속의 대변혁
비난과 호평이 교차하다 / 일본의 서구화는 당연하다

(5) 세계로 향해 열려 있는 일본
문호개방과 자주성 / 일본의 문호개방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6)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
자수자강의 정세판 /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5. 100년 전의 실패

(1) 조선의 개혁을 이끈 쌍두마차
갑신정변 주역들의 국가구상 원형, 국민국가 수립론 / 유교 지식인층에 큰 반향을 일으킨 동도서기론 / 개혁의 쌍두마차

(2) 수포로 돌아간 근대 조선의 꿈
험난한 개화.자강 운동의 길 / 자주적 근대화의 앞길에 드리운 먹구름 / 근대 조선의 가능성 / 참담한 좌절

6. 실패의 역사가 주는 교훈
우리는 잠자고 있었는가 / 깨어 있는 자들 / 조사시찰단의 한계 / 누구의 책임인가
접기


책속에서


이미 유교 가치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던 어윤중과 홍영식에게 일본 시찰은 자신들이 꿈꾸는 새로운 국가의 밑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윤중은 이때 새로운 근대 국가에 관한 구상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유학 숭상의 폐단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폐단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과거제를 폐지하고 해외유학 등을 통해 신식 교육을 하여 국민정신을 개혁할 것을 주창했다.

또 조선의 경제가 빈한한 것은 유교의 안빈낙도식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그전까지의 절용을 바탕으로 한 경제관에서 벗어나 상공업 진흥을 주장하는 사상적 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본문 104쪽 접기


줄거리

먼저, 열두 명의 조사들 중에는 일본을 보는 잣대가 다른 두 부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국민국가 수립론자'와 '동도서기론자'로 나누어서 이들이 일본의 근대문물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구분해 고찰하고 있다.

어윤중과 홍영식은 개화사상이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가지고 일본과 같은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국민국가 수립론자'로 볼 수 있으며, 심상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사들은 유학적 세계관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선별적으로 근대문물의 수용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동도서기론자'로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꿈꾸었던 일본형 국민국가의 요모조모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폭과 깊이에서나, 일본을 시찰하면서 얻은 조선 개혁에 관한 구상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났다.

다음으로 이러한 조사들의 눈을 통해 메이지 유신기 일본의 상황을 일본형 국가통합 장치(왕정복고, 삼권분립, 선거제도, 근대 형법, 군사제도 등), 자본주의를 향한 경제통합(기선과 철도, 전신, 우편국 등), 사회와 풍속의 서구화(태양력, 신문, 근대교육, 사회복지 시설 등), 일본의 문호개방과 대외정책(불평등조약 개정, 근대식 외교제도 등), 당시의 국제정세 등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사시찰단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그리고 우리가 찾을 교훈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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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허동현 (지은이)


고려대학교 문학박사
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원장

저서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당대, 1999)
『건국·외교·민주의 선구자 장면』(분도출판사, 1999)
『근대 한·일관계사연구』(국학자료원, 2000)

공저
『우리역사 최전선』(푸른역사, 2003)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푸른역사, 2005)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푸른역사, 2009)

『인문학 콘서트 3』(이숲, 2011)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윤보선과 1950년대 한국정치』(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1)

역서
『유길준 논소선』(일조각, 1987)

편저
『조사시찰단 관계자료집』(국학자료원, 2000)
『장면, 시대를 기록하다』(샘터, 2014)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1(1948-1949)』(경인문화사, 2016)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1949-1951)』(경인문화사, 2019) 접기


최근작 : <역사관과 역사학자>,<윤보선과 1950년대 한국정치>,<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 (1949~1951)> … 총 35종 (모두보기)
허동현(지은이)의 말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수수방관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않았거니와 자주적 근대국가를 수립할 능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인식 태도에는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우리의 당연한 책임을 회피한 면이 없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 세기 전 역사의 재현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첫 작업은 실패의 원인을 우리에게서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국가나 민족은 도태되게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할 때 우리는 또다시 참담한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다.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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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민국가 만이 살길인가?

이 책은 1881년 고종의 밀명에 의해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의 근대 문물과 제도를 습득하고 돌아와 당시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던 조사시찰단에 대한 책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조사시찰단이 일본의 어떤 모습과 근대 문물 및 제도를 보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또한 어떤 부분을 받아들여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는지를 자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의 실패를 조사시찰단의 활동과 그 영향만으로 규정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사시찰단의 일본시찰이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또한 저자는 대외의존적인 개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듯 하면서도 

이 책 전체에 흐르는 논지는 근대 국민국가 수립론자의 견해를 시대적 상황에서 지지하는 듯하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가능한데도 수립론자들은 민중을 도외시하고 외세에 의존적이었다는 점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된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근대 국민국가 수립론자 중 어윤중 같은 점진적인 개혁론자라 하더라도 말이다.


- 접기
대장장이 2003-09-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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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일본이 진실로 강한지, 우리는 지금은 알고 있는가?
평점8점 | b******b | 2001-07-14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151992

허동현씨의 박사논문을 책으로 엮은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그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신사유람단에 대한 상세한 연구조사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시찰단'이라는 이름 대신 '유람단'이라 불러야 했고, 공금이 아닌 국왕의 사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신사유람단의 처지, 당시 청년 사대부들이 일본의 개화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내용, 그들이 귀국해서 우리 근대사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히 짚어봄으로써 신사유람단이 오갈 때의 한국과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둘째, 이제껏 '온건개화파' 또는 '시무개화파'의 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왔던 어윤중의 개화 의식에 대해 조명하였다. 온건개화파는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개화파와는 달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되 기술적 분야에만 국한하고, 동양의 정신을 고수해야 한다는 '동도서기론자'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어윤중이 당시 일본의 발전상을 냉정하게 꿰뚫어보았을 뿐 아니라 유교 대신 기독교의 국교화를 검토했을 정도로 급진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뒤에 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에서 추진하게 되는 급진적 개혁안들도 어윤중이 처음 고안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윤중에 대한 집중적 연구는 아직 별로 없는데, 이 책의 분석이 맞다면 우리나라의 근대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서 철저한 재조명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셋째,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는 고종의 질문은 두 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는 당시 어윤중과 홍영식 정도를 제외하고는 직접 일본을 보고 온 신사유람단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조선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서양문물에, 그 위력과 제국주의적 태도에 무지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진실로 강한지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경제동물', '역사왜곡' 정도가 일반상식의 대부분이 아닌가? 그리고 일본을 넘어서, 서구의 정신과 사상, 제도의 진면목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서구 제도의 겉모양만 한껏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둘째는 신사유람단 사람들이 지적했던 일본의 약점이다. 전통적 화이관에 따른 편견이 일부 작용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일본이 철도, 공장 등 인프라를 구축하느라 외채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으며 그러다가 곧 재정파탄이 날지 모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마구잡이의 서구 문물 수입으로 일본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일부 일본인들의 개탄도 옮기고 있다. 뒤에 군국주의와 아시아 침략의 길로 나서고, 세계대공황을 만나자 세계대전으로까지 줄달음친 일본의 어두운 행로가 이 때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식 자본주의 모델을 취한 결과 IMF의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경제성장 지표만 좇으며 어설프게 넘어갔던 우리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근본적으로 반성해볼 상황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일부 면에서 지나친 속단을 내리는 점도 보이지만(가령 유교 관료제의 비효율성 문제), 대체로 많이 조사하고 신중히 분석한 책이다. 동양 근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인상깊은구절]
일본이 서양 탐험에 열중하던 1860년부터 20년 동안 우리는 알렌과 후쿠자와의 지적처럼 미몽에 사로잡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시간을 허송했으며, 서구 근대문물을 능동적으로 섭취하는 데 미흡했다. 

여기서 한 세기 전 우리의 참담한 실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구 국가들이 두 세기 전에, 그리고 일본이 한 세기 전에 달성한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떠안고 있다. 한 세기 전 우리 선조들은 동시대의 서구 열강과 일본에 비해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경우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자신들의 힘을 쏟을 수 있었던 반면, 우리에게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에 맞서 국가를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었다. 반봉건과 반외세라는 이중의 과제가 우리 선조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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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허동현 지음/당대 368쪽 1만2000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 12명의 관리가 52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1881년 초 일본을 방문했다. 이른바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신사들이 일본에 놀러 갔었나?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이라 불러야 한다고 밝힌다. ‘조사’란 벼슬을 하는 관리를 뜻한다.


고종은 이들 12명을 동래암행어사로 임명, 일본을 부국강병으로 이끈 메이지유신의 모든 것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스승의 나라’였던 조선이 ‘제자의 나라’인 일본을 개혁의 모델로 삼고 일본 따라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


저자는 1876년 개항의 배경에서부터 조사시찰단의 결성, 일본 방문의 내용 및 성과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개혁의 실패과정을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특히 400여 점에 이르는 사진과 해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조사시찰단을 1860년대부터 일본이 서구 국가들에 파견했던 사절단과 비교했다.


그 결과 시찰단의 규모와 계획성, 파견 인물들의 전문성, 보고서의 내용 등에서 일본에 미치지 못했음을 밝히며 이를 개혁 실패와 국권 상실의 주요인으로 지적한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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