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明淑
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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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으로 후끈]
해마다 노벨상 수상 시기에 신주쿠에 하루키스트들은 모인다. 매스컴에서는 반드시 취재진을 파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 수상을 하면 알맞게 취재를 하려고…그들을 보며 시즌이 돌아왔다는 것을 안다. 그들도 수상 여부보다 술 마시며 즐기는 분이기이다. 이번에 예상외의 인물이 받아 취재는 그들의 인터뷰…아시아 여성이 받아 기쁘다는 꿔다놓은 인터뷰가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한강을 알리는데 일조한 사람들은 따로 있지만 뜻밖의 일이라 구온 출판사의 사람들이 모여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사실 노벨 문학상은 그리 기뻐할 일도 큰 일도 아니다. 내가 소속감이 옅어져서인지 그런 것들이 이제 내게 중요하지 않아서인지
그것보다는 세상에 숨겨져(내가 알지 못함으로)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명문장과 세계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이 가끔 안타까운 느낌이 들 때는 있다.
무명은 아니었지만 뒤늦게 세계적으로 알려진 존 윌리엄스 같은 작가와 만난 것처럼…또 영어가 아니어 번역의 기회가 낮은 여러 나라의 작품들…만나서 너무 잘 됐다는 기쁨을 주는 책들은 많이 있다. 한강 작가도 세계의 누군가에게 그런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겠지 싶다.
이로서 한강은 백년뒤에도 읽히는 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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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明淑
13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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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강의 작품은 처음인데 눈이 번쩍 뜨이고 재미있다.
한국 사회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기괴함을 역시 기괴하게 맞서며 육감적 색채적으로 그려낸다. 피식 피식 웃음을 유발시킨다
책은 3개의 서로 연결된 단편들로 구성된다(연작소설)
꿈의 잔혹한 영상으로 인해 채식을 고집하는 엄밀히 말하면 무슨 사상이 있어 채식을 하는 것이 아닌 영혜. 채식은 책의 전개의 주요한 발단이지만 영혜가 채식을 하게 되는 부분이 모호하다.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시점으로 글이 전개되지만 몇 곳에 영혜의 시점으로 짧게 삽입되는 글들이 있는데 그걸 보면 꿈에 사람이 죽어 묻는데 누구를 죽인 것인지 모호하다거나 아홉살때 자기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 피를 토할때까지 끌고 다니다가 마을 잔치를 벌였고 저녁상에 올라온 개장국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글을 통해 그나마 짐작을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소설 “채식주의자”와 연작들은 채식주의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걸 통한 우리사회의 폭력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채식주의자를 대하는 남편과 아버지, 주변의 태도를 통해 폭력의 야만성을 희화한다.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점으로 글이 전개된다. 예술의 이름으로 인간의 규범을 깨는 설정이지만 성적타부의 갈등은 예술의 광성으로 희석되며 색채감의 묘사는 작가의 언어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층분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나무 불꽃“은 영혜의 보호자로 정신병원 치다꺼리를 하는 언니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결국 영혜는 식물이 되려고 물구나무를 서며 음식을 거부한다. 영혜언니처럼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의 정상을 유지하기 위한 지단한 노력… 그 안에 산같은 고독이 있다.
한강 작가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100년 뒤에도 읽히는 작가일까.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의 작가들의 위대함이 새삼 경외롭다.
짧기도 하지만 재미있어 순식간에 다 읽게 되는 책이다.
책에서 작가가 알고 쓴 것은 아니겠지만 (책은 2004년에 발표, 나무 불꽃은 2005년이지만 나무의 뇌는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음)
식물은 인간으로 치면 물구나무를 서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것이 식물에서는 뿌리인데 인간은 위에 얹고 생활을 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만으로도 참 기괴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구축해 놓은 수 많은 생활양식과 규범, 심지어 종교, 문화라는 것도 문득 기괴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한강의 작품이 돌을 던져 상기시켜 주었다.
일본 공공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 행동 반경 내의 여러 도서관을 검색하니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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