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4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수정 2025-02-03 08:32등록 2025-02-03 07:00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왼쪽)가,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는 보수성향 단체인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 주최로 탄핵을 반대하는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가 각각 열렸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왼쪽)가,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는 보수성향 단체인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 주최로 탄핵을 반대하는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가 각각 열렸다. 연합뉴스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⑴지금 한국 정치의 제1과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최대 숙제는 정치 양극화다. 이렇게 가다가는 도저히 저쪽이 잘되는 꼴을 못 보고 망하기만 바라고 헐뜯다가 공멸할 것이다.(문희상 전 국회의장, 조선일보 2023년 1월5일)

⑵한국의 정당들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포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 ‘○○○부대’라 불리는 조직화된 소수가 의사결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됐다. 부정적 당파성 및 정서적 양극화가 깊어졌다.(이철희 정치평론가, 한겨레 2024년 3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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⑶미국을 압도하는 양극화 수준을 보이는 한국에서 … 이제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성공한 대통령은 나올 수 없다.(한규섭 서울대 교수, 동아일보 2024년 6월11일)

⑷대통령 탄핵에도 불구하고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온 정파적 양극화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 인물만 바뀐 채 지난 10여년간 그래 왔던 것처럼, 극단적 분열과 소모적 갈등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정치의 덫에 걸려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강원택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2024년 1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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⑸국민의힘이 변화를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하고도 살아남을 방법은 딱 하나, 정치 양극화에 의존하는 것이다.(이대근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2024년 12월24일)

이상 소개한 5개의 전문가 견해가 말해주듯이, 정치 양극화는 재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치를 망가뜨린다. 그래서 정치 양극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이들이 비판한다. 모두가 원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사라지거나 쇠퇴할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질 않다. 오히려 더 심해지고 번성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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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는가? 혹 내로남불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내 편은 무슨 짓을 해도 정치 양극화와 무관하지만, 상대편이 하는 일은 무엇이건 정치 양극화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정치 양극화를 바꿀 수 있는 대안 모색은 꽤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힘이 실리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제시된 대안은 ⑴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⑵다양성 보장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 ⑶양극화 습속에 찌들지 않은 인력 충원을 위한 세대교체 등이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디지털 혁명은 늘 양극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수용자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등으로 무장해 스스로 알아서 대처해야 할 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환경으로 간주되고 있다.

양극화의 대안은 약한 반면 동력은 매우 강하다. 서울대 교수 유홍림이 잘 지적했듯이, “열렬 지지층을 갈망하는 정치인들, 시청률과 클릭 횟수에 촉각을 세우는 언론이나 뉴미디어, 권투 시합을 응원하듯 정치 무대를 관람하는 유권자들 모두 정치적 양극화의 주술에서 빠져나올 인센티브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정직하지도 않다. 양극화의 원인이 유권자에게 있는 경우에도 정치인을 탓하는 쉬운 길을 택한다.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하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정치인의 언행이 결정되는 게 현실임에도 말이다.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대구·경북 전 지역구(25석)를, 민주당은 호남 28석을 싹쓸이했건만, 이마저 정치인을 비난할 이유가 된다. 유권자의 일상적 삶에선 지역주의가 사라졌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건 정치인들이 정치를 분열주의로 오염시켰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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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유권자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정반대다. 유권자가 지역 몰표로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은 채 그들을 정치인의 농간에 휘둘리는 바보로 여기는 게 무슨 유권자 존중이란 말인가. 일단 유권자를 탓해야 그들이 왜 그러는지 심층 분석으로 들어가 진짜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모두 다 “유권자는 착하지만, 정치인은 나쁘다”는 주술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양극화를 촉진하는 여론조사는 흘러넘치지만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는 유권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묻는 여론조사는 없다. 여론조사는 출구가 없는 갈등의 회로를 만들어놓고 그 회로에 갇힌 사람들의 일희일비(一喜一悲)를 숫자로 바꿔 팔아먹을 뿐, 그들을 회로에서 해방시켜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뜻이 없다. 이런 ‘유권자 모독’부터 깨부숴야 정치 양극화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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