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7

이명박에 발탁된 황석영의 붉은 프로필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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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에 발탁된 황석영의 붉은 프로필

1) 위장취업 제1기생인 손학규는 2006년11월24일 한국발전연구원에서 이런 강연을 했다.

“저는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설가 황석영씨와 같이 구로동 수출공단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거기에 취직을 하려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이 사회를 뒤엎을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공장에 취직해서 다니다가 친구에게 들킬 형편이 되어서 다른 공장을 찾고 있던 중에 박형규 목사님께서 노동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빈민운동이라고 해서 청계천 판자촌에 가서 살았습니다. 지금 뉴라이트의 기수가 되어 있는 김진홍 목사님도 같이 일을 했습니다.”

2) 님을 위한 행진곡, 산자여 따르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윤상원과 그보다 한 해 전인 79년 겨울 연탄가스로 숨진 그의 여인 박기순과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두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발표되었다. 전남대 선후배 사이로 들불야학에서 만난 두 사람은 1982년 2월 망월동 묘역에 합장되어 부부의 연을 맺었고,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5월18일 윤상원-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불려졌다. 영혼으로 맺어진 부부가 함께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황석영이 내용을 따다가 작사를 했고, 여기에 김종률이 곡을 붙인 것이다

3)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에 김대중과 나란히 황석영이 바친 전태일 헌시가 있다

4) 2003년10월 송두율의 변호인을 자처하고 나선 또 다른 인물, 황석영씨!“송두율이 후보위원이라면 북에서 편한 일생을 보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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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범민련은 1988년 남한의 운동권 인사의 제의와 북한조국통일위원회의 화답으로 북한, 남한, 해외동포로 구성되는 통합단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대남사업에 활용되는 전위조직에 불과하다. 이들은 1989년 문익환, 임수경, 문규현의 밀입북으로 고무되어 19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남측 대표로 황석영이 참가한 가운데 첫 출범식을 가졌다. 이들은 1990년대 들어 운동권의 투쟁 노선이 민주화에서 통일 운동으로 변화함에 따라 맞춰진 조직이며, 이런 이유로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자가 대단히 많다. 한편, 범청련은 밤민련의 청년단체로 남측 대표는 한총련이 맡고 있다. 이 단체와 관련되어 구속된 사람은 다음과 같다.

조용술(목사,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공동본부장),
이해학(범민족대회 집행위원장),
조성우(범민족대회 사무처장),
이창복(凡民聯실행위원장, 全民聯 공동의장, 全國聯合 상임의장),
김희택(凡民聯 준비위원, 全民聯 사무처장),
권형택(凡民聯 사무처 차장),
김희선(서울민협 의장),
김종식(全大協의장, 한양大 총학생회장),
한철수(全大協산하 학추위 위원장, 경희大 총학생회장),
허동준(중앙大, 全大協 대변인),
하태경(서울大, 서총련 조통위 연대사업담당),
손성표(고려大 서총련 사무국계열부문 담당),
김시몽(목포대 전 총학생회장)
신현욱(한양大全大協의장 수행비서),
박순경(목원대 명예교수, 凡民聯 남측본부 결성준비위 부의원장),
전창일(凡民聯 남측본부 조직위원),
홍근수(향린교회 목사),
김재용(한양大 총학생회장, 韓總聯 의장),
김병삼(韓總聯 조국통일위원장, 연세大 총학생회장),
황석영(소설가), 
허현준(凡靑學聯 부의장, 전북大 회계4),
김세원(凡民聯 남측본부 光州전남연합 창립준비위원장),
오병윤(민주주의 민족통일 光州전남연합 사무처장),
김양무(凡民聯 중앙정책실장),
강희남(凡民聯 의장),
이종린(凡民聯 부의장),
전창일(凡民聯 부의장),
강순정(凡民聯 부의장),
안희만(凡民聯 간사),
황인성(凡民聯 집행위원장, 全國聯合 상임집행위원),
조성우(민족회의 정책위원장),
강재우 (凡民聯 남측본부 의장),
신창균(凡民聯 남측본부 상임고문),
유근삼(凡民聯 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의장),
정민주(凡靑學聯 남측대표, 인천대 건축3),
이혜정(凡靑學聯 남측대표, 가톨릭대 회계2),
박용모(법명 진관, 불교인권위원회 공동의장),
민경우(凡民聯 남측본부 사무처장),
이종린(凡民聯 남측본부 의장),
이천재(凡民聯 상임부의장) 등이다.

이들은 지금도 주로 운동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민주주의민족통일 全國聯合(약칭 全國聯合), 통일연대, 민족문제연구소, 凡民聯 등의 단체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한 편, 소위 원로라 일컬어지는 의장단들은 모두 1960년 결성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출신들이다.

범민련, 범청학련 관련 통일운동 구속사건
 
국가안전기획부는 1993년 5월 6일, 작가 황석영씨가 지난 89년 3월 20일 처음 북한에 들어간 이래 모두 5차례에 걸쳐 방북했고 김일성 주석을 7차례 만나 고려연방제 등을 논의했으며,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의 활동지침에 따라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을 주도하고 그 전위조직으로 활동하는데 앞장서 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4월 27일 미국에서 입국한 황씨를 구속한 뒤 1차 구속기간이 이날 만료됨에 따라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기간 연장을 허가받아 그의 방북 행적 및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가담 활동내용 등을 계속 조사했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량삼승부장판사)는 5월 25일 수차례 북한을 방문,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범민련 해외본부 결성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소설 장길산의 저자 황석영피고인(49. 본명 황수영)에 대해 이례적으로 형량을 낮춰 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했다.

6) 위키백과: 1943년생, 1989년 3월 북조선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했다.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예술원 초청작가로서 1991년 11월까지 베를린에 체류했다. 이때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신동아》와 《창작과 비평》에 게재했다. 1993년 4월에 귀국했을 때 방북사건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3월에 석방됐다.



2009.5.13.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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