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7

(8) 박가분 - 도덕충과 탐미주의자 0. 나의 정신적 스승인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을 상당부분 참조했다. 1. 칸트가 쓴...


도덕충과 탐미주의자
0. 나의 정신적 스승인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을 상당부분 참조했다.
1. 칸트가 쓴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비판은 흔히 과학, 도덕, 미학이라는 별개의 영역을 다루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도덕과 예술 그리고 과학적 인식의 영역이 별도로 구획되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 과학, '순수' 도덕, '순수' 예술이라는 것은 주관적인(=초월론적인) 태도변경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는 게 칸트의 주장이다.
즉 우리가 심미적인 판단을 할 때 판단대상의 선악과 진위여부는 (괄호) 안에 넣는다. 즉 대상의 미추를 판단할 때 그것이 올바른지 아닌지 실제하는 대상인지 아닌지는 잠시 유보해두는 것이다. 바로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이 여타 관심사를 괄호 안에 넣는 무의식적인 작용을 칸트는 초월론적 통각이라고 부른다. 순수도덕, 순수과학, 순수예술이라는 제분야 모두 순수하기는 커녕 이러한 주체적 작위의 산물이다.
당연히,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 무언가 다른 관심사를 괄호 안에 넣는 이 초월론적 주관은 그 자체로 상호주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칸트를 독자적 주관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이다. 오히려, 칸트야말로 타자에 대한 윤리나 상호주관성을 외치는 흔해빠진 현대사상가들보다 더 급진적인 사상의 전회를 이루었다.
2.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 속에서 괄호안에 집어넣는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괄호 밖으로 빼내야 한다. 가령 우리가 티비를 보면서 아이돌 가수의 군무를 볼 때 별 생각 없이 아이돌의 외모를 평가한다. 이미 심미적인 판단의 대상으로 상품화되어 무대 위에 올려진 존재라고 초월론적인=반성적인 차원에서 아이돌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무의식적으로 아이돌이 또 다른 실제하는 인격이라는 사실을 괄호 안에 넣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이돌에 대한 심미적 태도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다보면 아이돌이 실제 인간으로서 영위하는 사생활이나 정견에 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서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한다. 즉 그들을 이미지 너머의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돌이 제공하는 이미지도 결국은 초월론적인 (상호)주관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셈이다.
이처럼 심미적 판단의 대상을 구하고 나서, 다시금 그 판단을 성립시킨 괄호를 벗겨내는 것. 그렇게 해서 대상의 윤리적이거나 인식론적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 그것이 칸트가 말한 비판=비평이다. 이처럼 3대 비판서 모두 비평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같은 비판=비평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무슨 자신만의 심미적인 태도나 윤리적인 기준을 강변하고 키배를 뜨는 것을 비평으로 착각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3. 정 반대로 우리가 윤리적인 판단을 할 때 우리가 무언가를 마찬가지로 괄호 안에 넣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망각하다보면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담은 예술작품이 실제로는 심미적으로 구리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입밖에 꺼내지 못할 때가 있다. 또한 가령 우리가 아이돌의 성상품화를 윤리적 차원에서 비판할 때, 랩퍼의 패륜적인 가사를 비난할 때, 그 같은 성적 대상화와 패륜을 성인남녀 공히 심미적인 코드로 향유하는 맥락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놓치곤 한다.
칸트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칸트를 무슨 꼰대 도덕충으로 오해하는 지점이다.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러나 칸트가 실제로 한 말은 "타인을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서도 대우"하라는 것이었다. 즉 윤리적인 잣대로 규정지을 수 없는 차원을 전제로 한 말이다. 오직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만" 대우한다면 수도승의 공동체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칸트라면 그들도 신자들의 헌금과 시주를 받으면서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다고 비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와 노동의 분업 자체가 화폐를 매개로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을 심미적이거나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행의 방식이 최선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 뿐이다. 물론 그 물음의 전제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라도 현 사태에 깊숙이 연루되어있다는 강렬한 자각이다. 그것이 바로 칸트적인 의미에서의 '비판'이다. 요새는 그 비판의 의미가 오남용되고 있다.
4. 요새 SNS를 보면 자신이 정한 어떤 절대적 윤리적 영역의 경계를 획정해두고 낙인을 찍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유행은 '겉멋 든 비판'일 뿐이며 비판의 본령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것은 자승자박으로 귀결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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