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7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옹호론 : 운동적 논.. : 네이버블로그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옹호론 : 운동적 논리와 상식인의 접근  시사비평 
2016.02.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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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 마크 트웨인 -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 다운로드 : http://parkyuha.org/



0. 들어가기에 앞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사회적인 논란에 휩싸인 이후, 해당저서에 관한 도서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진 상태이다. 인용한 첫번째 링크는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을 다운받을 수 있는 경로이다. 두번째 링크를 통해 해당 저서에 대한 검열을 명한 법원의 판결을 볼 수 있다. 한편, 박유하 교수에 대해서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이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하여 형사재판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박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삭제판 <제국의 위안부>를 인터넷에 배포하게 되었다. 지금의 서평은 무료로 책을 읽은 것에 대한 일종의 '책값'으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박유하 교수의 평소 주장은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장정일과 김규항을 필두로 몇몇 진보 지식인들이 박유하 교수의 주장과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기자회견문과 칼럼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박유하 교수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향신문에 실린 이나영 교수,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길윤형 기자와 손아람 작가의 반론글도 볼 수 있다. 이는 모두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먼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명백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한 필자가 지적했듯이,

a) 책에 담긴 위안부에 대한 해석과 해법에 대한 제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b) 책에 대한 민형사차원의 제재가 정당한지

 
   저 두 가지는 전혀 별개의 논점이다. 그의 언급대로 "이는 너무 당연해서 장삼이사도 해야 할 것 같은 구별인데, 막상 지식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럼에도 현재 민형사상의 재판이 걸린 상황에서, 저 두 논점을 엄밀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사정도 존재한다. 특히 박유하 교수에 대한 재판이 표현의 자유나 학문적 자유의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측에서는 심정적으로 박유하 교수의 저서에서 평가할만한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고자 하는 유인이 있을 것다. 그 반대의 경우, 박유하에 대한 형사적, 민사적 징벌을 바라는 이의 경우, 박유하 교수의 저서가 어떻게 학문적으로 파탄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데 열심일 수 밖에 없다. 그와 같은 '심정적인 편향'이 엄밀한 논리적인 논점구별과 별개로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적 논리'이다. 그럼에도 굳이 하자면 제 3의 논점이 여기서 도출될 수 있다.

c) 박유하 교수의 저서가 민형사상의 재판으로 시비를 가릴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즉 공론장의 토론과 비판으로 수용되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라면, 박유하의 교수의 저서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이 지점을 논할 때 b)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a)만을 논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현재의 상황에 솔직하지 못한 반쪽짜리 논의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박유하 교수가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쪽에서 비판을 거부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박유하 교수가 그저 동정론을 얻으면서 '징징댄다'는 식의 비아냥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현재 상황의 곤란함이다. 
  상황의 곤란함을 가중시키는 것은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적극적인 찬반양론이 주로 진보진영의 프레임 내부서 논의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위안부 할머니의 피해자중심주의를 옹위할 것인가, 아니면 학문과 비판의 자유를 볼테르 식으로 옹호할 것인가? 하지만 오히려 이 책은 진보진영의 프레임을 벗어나서만 비로소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제 아무리 진보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언어로 쓰여 있다 해도 위안부 문제가 더 이상 일국의 '운동적 논리'로 해결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박유하 교수의 책이 '우파의 언어'로 쓰였다 해도 여전히 평가할만한 책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박교수가 진보주의자들이 전매특허를 놓은 언어[평화, 인권, 제국주의 비판]를 사용한다는 점이 진보주의자들의 화를 돋군 것 아닐까?

 
1. 역사수정주의인가?

  지금까지 박유하 교수에 대한 이의제기는 크게 보아서 1) 박교수의 사료에 대한 편향적인 취사선택, 2) 위안부 할머니의 일부 증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3) 법리적인 부분에서 일본정부와 우익의 주장에 경사되었다는 반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거론하자면 4)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비난이 있다. [당사자주의]와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4)번이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두는 당연히, 제각각 정당한 비판과 토론을 요하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았을 때, 박유하 교수의 저서에 대한 논란의 진짜 핵심을 이루는 사항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책을 읽기도 전에 이와 같은 반론을 먼저 접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나 역시 박유하 교수가 심정적인 우익이거나, 역사수정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80년대 독일에서도 나치의 전쟁범죄와 홀로코스트를 재해석하려는 '역사수정주의'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 좌장 격인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는 "볼셰비키의 계급학살이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나치의 인종학살에 선행한 것이 아니냐"며 나치의 인종학살이 마치 좌익 전체주의(소련 볼셰비키)에 대한 독일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필연적인 귀결인 양 물타기를 한 바 있다. 역사수정주의에는 물론 좌파적인 버전도 있다. 90년대에 마리오 소사(Mario Sousa)는 스탈린 치하에 벌어진 대규모 숙청과 정치수용소의 참상이 '과장'되었다고 평하면서, 동시대 미국의 인구 대비 교도소 수감률에 비하면 양호했던 소련 정치수용소 수감률을 볼 때, 구소련에서 있었던 각종 공포정치는 외세의 위협에 직면한 소련이 사회질서의 안정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단행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변호한다. 결국 역사수정주의라는 것의 본질은 일부 세부적인 디테일[소련과 나치독일은 외세의 위협에 직면했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유대인도 간수로 일하며 독일에 협력했다, 등등]을 빌미로 역사적 사건이 동시대인과 후대인에게 준 외상(trauma)의 본질을 간과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박유하 교수는 이와 같은 류의, 세부적인 사항을 빌미로 최소 8만에서 최대 20만의 한국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을 성노예로 동원했던 위안부의 역사적 의미를 물타기하고자 하는 역사수정주의자인가? 그는 일본의 우익들이 흔히 주장하듯이, 동시대 구미열강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가혹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박유하 교수는 저 역사수정주의자들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일본의 위안부는 미증유의 규모로 [그들이 자발적으로 갔든 강제연행되었든] 여성을 동원하여 군인들이 윤간을 일삼았던 사건이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나 기타 군대가 운영한 공창제도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는 것'이라는 일부 일본우익[심지어 현대사상가인 아즈마 히로키조차 그렇게 말한 바 있다]의 물타기성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공창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순차적으로 철폐되었고, “유지된 곳은 일본•호주•이탈리아•스페인 등의 국가”(요시미 요시아키, 2009년 여름)뿐이었다. 당시에는 ‘상식’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공창제도가 “전세계 어디에나 존재했다고는 말할 수 없”(같은 글)다. 게다가 설령 ‘어디에나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위안소 이용이 문제없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어디에나 존재했다’는 말은 합법성을 주장하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성 중심의 사고일 뿐이다.[155]

 
위안소의 이용을 ‘상식’이자 ‘합법’으로 여기는 사고에는 그 상황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여성을 압도적인 다수의 남성들이 윤간했다는 사실, 한 사람의 인간을 ‘인간’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일본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조선인 위안부들이 ‘존엄성’을 회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강조는 인용주)[157]

  바로 위와 같은 문맥 아래서, 만주에서 태평양까지 전선의 전후방에 걸쳐 '위안부'라는 제도를 운영해온 제국주의 일본의 멘털리티를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구절을 보아야 한다. 위안부의 역사적 기원은 일본의 제국주의 확장에 발맞춰, 군을 따라 이동했던 직업여성인 '가라유키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분명 '일본만의 특수한' 문제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특수성은 우선은 국가와 군대가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를 먼저 보면서 찾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일본에서 위안부 이용이 제도적으로 실시된 이유는 군국주의나 파시즘보다도 일본이 일찍부터 '유곽'이라는 공창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군이 쉽게 '이동'하는 '위안소'를 발상했던 것은 근세 이후 '유곽'의 전통, 즉 성매매를 '공적'으로 허용하는 인식의 영향으로 보아야 한다.

 
2.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진짜 쟁점

  앞서 보았듯이, 박유하 교수는 결코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가벼이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또한 책 어디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발적 매춘부이므로 자격이 없다는 식의 (극우들이 으레 행하는) 명예훼손 발언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가 사료를 해석하는 방법이나, 특히 그가 일본 측의 '입법적 해결이 곤란하다'는 논리를 옹호하는 데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의 저서에 걸린 진짜 쟁점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나영 교수는 박유하 교수에 대한 경향신문 지면상의 반론글에서 다음과 같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 바 있다.


"차가운 겨울날 평화로에 앉아 1시간만 수요시위에 참가해 보시라. 그게 어렵다면 조용한 낮, 소녀상 옆자리 빈 의자에 가만히 앉아 보시라. 두 손 불끈 쥐고 발꿈치를 땅에 닫지 못한 소녀의 뒤에, 가슴에 희망 나비 한 마리 품고 스러져가는 할머니 그림자를 응시해 보시라. 식민지 위안소의 생존자가 할머니가 되어서야, 아니 죽어서야 비로소 최소한의 공감능력을 가진 청중을 만난 심정을 느껴 보시라. 만일 울림이 있어, 단단한 가슴을 싸고 있는 껍질이 소리 내어 깨지는 순간이 오면, 터져 나오는 울음에 오장육부를 마음껏 적셔 보시라. 책상에 앉아 손가락으로 익힌 ‘우리’의 재주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며 기만적인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
  나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나영 교수는 수요집회 등의 위안부 관련 활동에 연대해온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 '활동가' 혹은 '운동가'의 감수성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절대적인 필요조건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나영 교수나 여타 위안부 문제를 평하는 진보적인 인사들은 바로 이 전제 하에서 비로소 '토론'이라든지 '논쟁'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박유하 옹호론자들도 이 같은 운동적인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박유하 교수의 논지를 옹호하는 김규항과 장정일 류의 진보인사들도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상대 진영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절대적인 정의의 기준을 벗어나는 조짐에 대해 순결주의적인 태도를 가져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았을 때 박유하 교수의 저서의 핵심은 바로 그러한 '운동가의 논리'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의 상식인의 견지에서 이해지평을  공유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위안부 문제는 좋든 싫든 국가와 국가의 문제, 네이션과 네이션의 문제가 되었다. 박유하 교수의 핵심 논지는, '일본이 우경화되었다', '일본은 사과를 회피한다'는 식의 전체 일본인을 싸잡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기보다는,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는 보통의 상식적인 일본인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상식인의 논리와 운동가=활동가의 논리 중 그 무엇이 더 우월하고 선험적으로 옳다고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만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 국내에 해당되는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에게 공통적인 이야기이다. 이것이 박유하 교수의 논의가 (비판 받을만한) 부정확함이나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피해자중심주의'와 '당사자성'에 매몰되어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지금까지 운동가와 상식인, 그리고 한일 양국 사이의 호환될 수 있는 이해지평을 마련해야 한다는 저 상식적인 요청이 유독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보기 드물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3. 일본 내에서의 사과와 논쟁 - 일본의 보통국민을 향한 설득의 필요성

  이것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허를 찌르는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것들이다. 실제로 일본 정치인들은 여러 차례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서 사과했다. 
▲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과하는 무라야마 전 총리
  
  이와 같이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총리와 장관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표명했다. 보상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상당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그 같은 사과와 보상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불충분함'과 별개로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은 '사과를 회피한다', '반성을 전혀 하지 않는다'라고만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나 역시 일본에 대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한편 90년대 초 처음으로 한국에서 일본을 향해 공식적인 위안부 문제제기가 있자, 당시 일본 내 좌파성향인 사회민주당의 총리인 무라야마는 연립내각을 이루던 자민당 일각의 반발을 무릅쓰고  식민지배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 및 '수상의 편지'를 발표하고 '아시아 여성기금'을 모집하여 위안부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고자 했다.

  여기서 내가 몰랐던 것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한국 언론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자주 거론되곤 했던 와다 하루키 교수가 아시아 여성평화기금에 관여했다는 사실. 2) (개인적으로 정신병자로만 취급해왔던) 일본측의 위안부 부정론자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무엇에 이의제기를 해왔던 것인지. 3) 한국 내 60여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사과와 보상을 받아들인 사실. 4) 무라야마 정부의 대응은 입법부 다수를 차지한 자민당 일각의 저항을 우회해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도모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라는 점. 
  그럼에도 일본 내외에서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와 당시의 기금을 "또 다른 형태의 폭력", "국가의 전쟁범죄를 재은폐하기 위한 것"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비판하는 (매우 운동권다운) 논리가 있었다. 특히 정부의 국고가 아닌 민간기금으로 보상을 한다는 점이 한일 운동단체가 공히 비판한 점이기도 한데 실은 당시의 기금에도 국고가 지원되었다는 점은 간단하게 무시되고 있다. 그렇게 친다면 2015년 12월 28일 아베 총리의 사과와 일본측의 전액 국고지원을 통한 배상은 오히려 진전된 합의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

  아무튼 내가 몰랐던 사실을 다른 모든 비판자들도 자명하게 알고서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는 건지 되묻고 싶다.

  한편 원폭투하 이후 (마땅히 본인들이 감수해야할) 패전의 참상을 딛고 일어난 전후일본 나름의 사상적 경로가 있다. 현재에도 '전후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상식적인 일본인이라면 대놓고 침략과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애초에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일본사회에서 일반적이었다면 (전세계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군대보유를 금지하는'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수십만명의 일본인들이 거리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사회를 싸잡아서 '우경화되었다'라고 단언하거나, '반성이 없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전후일본의 역사를 무시하고 왜곡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오히려 이 쟁점에 관한 보통 일본인들의 이해를 알아채고 이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일본은 외국이다. 우리가 일본 내에서 입법을 할 수도 없다. 다들 좋아하는 그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정치인이 입법 발의를 한다고 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관한 사과와 보상의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하길 바란다면, 일본의 입법부가 대표하는 일본국민과의 대화가 필요한 사항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그 동안의 한국의 운동단체와 (천황제 비판을 우선시했던) 일본의 좌익진영에서 구사해왔던 운동논리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인가,이 부분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있다. 박유하의 교수의 책은 바로 이 점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는 것으로서 나는 이 점이야말로 박유하 교수가 정대협과 일부 위안부 관련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에게 제기하는 핵심적인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4. '정치적 책임'과 '법적인 책임' 사이에서
  일본 국민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저항감을 갖는 이유는 1) 군에 직접 관여한 강제연행이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니었다. 2)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인식에 있다. 실제로, 군이 아닌 (상당수가 조선인이었던) 민간업자가 주체가 되어 취직해서 돈을 벌게 하겠다는 명목의 사기, 협박, 회유 등으로 많은 조선인 여성을 위안부로 만들었다. 또한 이송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하고 위안소 운영 과정에서 폭행과 강간 그리고 가혹한 노동조건을 강요했던 주체도 이 같은 민간업자였다. 물론 군인 자신에 의한 강간과 폭행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박유하 교수의 핵심은 '이러한 사정 전반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 같은 "구조적 강제성"을 초래한 궁극적인 책임은 일본군에 있다'는 것이다. 민간업자가 주도해서 위안부를 모집하고 관리한 정황이 있다 해도 그것이 일본의 사죄와 보상의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정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가서 생각지도 않게 윤간을 당한 위안부도 포괄적으로 사죄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박유하의 논지이다. 실제로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도 이 점을 전면적으로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앞으로 제기할 논의의 허점과 의문사항에도 불구하고) 박유하 교수의 논변은 일본군의 책임을 면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 내에서 제기된 반론을 경유하여 일본이 더욱 더 포괄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법적인 책임과 별도인)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현행법으로 마련할 수 없다면, 당사자들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보상과 사죄의 논리[식민지배 그 자체에 대한 사과 및 보상]를 새롭게 창안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박유하 교수가 되풀이 지적하는 사항은 위안부 문제를 개개인에 대한 법적책임의 논리로 접근하면, 현실적인 법리적 근거가 희박할 수 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존재한 위안부 모두에 대한 포괄적인 사죄와 보상의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가령 자발적으로 갔다가 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한 위안부의 피해를 어떻게 볼 것인지 등 피해자 개개인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입법과정 전후의 소모적인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의 핵심논지는 법적책임론에 매몰되다 보면은 정작 다양한 양태로 존재해온 역사적 위안부들의 피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박교수의 비판론자들은 얼마나 심각하게 그 논지를 이해하고 있는가?

  한편 현행법상으로 위안부에 대한 1965년 이후 추가적인 법적보상의 근거가 없다는 점이 일본 정부와 사법부가 시종일관 고수해온 사항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자문을 해 봐야 한다. '법적책임 불가론'을 우리가 바깥에서 규탄하고 비판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일본 사법부의 입장을 반박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이러한 현실적 한계 때문에라도 박교수는 오히려 위안부 문제에 관한 법적인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교수는 한일협정이라든가 지금까지의 일본측이 행한 '법적 보상'의 한계로서 '식민지배 그 자체'에 대한 사과와 반성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연히, 이것은 일본 뿐만 서구열강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일본은 개인들에 대한 ‘법적 책임’은 졌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후 처리’였고 ‘식민지지배’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일조약의 시대적 한계를 생각하고 보완하는 것은 다른 전前‘제국’ 국가들보다 일본이 한 발 앞서 과거의 식민지화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쟁뿐 아니라 강대국에 의한 타국의 지배는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앞장서서 표명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 표명은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263]
전후 일본은 평화헌법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지켜왔다. 대다수의 국민이 ‘반전’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온 점은 인정받고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국’으로서 존재했던—식민지를 만들어 지배했던—점에 대한 반성의식은 ‘반전’에 대한 반성의식만큼 일본 국민의 공통인식으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일본이 ‘당사자’들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형태로 단지 ‘반전’만이 아니라 ‘반지배’, ‘반제국’의 사상을 새롭게 표명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및 아시아를 넘어 세계사적으로도 의의가 깊다.[312]
  이후에도 보겠지만, 비록 박유하 교수가 일본 국내법이든 국제법이든 현행법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이 '현실적으로' 불가하며 오직 국민적 대화를 통한 정치적인 결단만이 위안부 문제를 대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현실론'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자승자박에 빠지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개개인에 대한 법적보상의 차원을 벗어나 식민지배 그 자체의 국민적=정치적 책임을 인식해야만 위안부 문제의 돌파구가 열린다는 주장은 경청할만한 대목이다.


5.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데서 생기는 곤란함

  작가 손아람씨는 2015년 2월 10일자 한겨레 지면을 통해 박유하 교수의 논지를 "(위안부가) 식민지 체제에서 불법이 아니었기에 일본군에 법적 책임은 없으며, 위안부 문제는 국가범죄가 아닌 개인범죄"라고 정리한다. 이상하다. 마치 박교수 한 개인이 주제 넘게(!) 일본에게 법적인 책임을 면책시켰다는 투이다. 물론 손아람씨의 논지도 소설가다운 상상력을 감안하면 심정적으로 이해할 구석은 있다. 그는 결국 일본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한국 측의 상식을 재차 단언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국제법적 현실이 그러한가?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될 때 1) '당사자와의 협의가 없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2) '일본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주요한 비판의 논리로 제기되었다. 전자의 경우에 박유하 교수도 견해가 일치한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와 한일 양국의 정부인사 그리고 양국의 지원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합의체를 제안한다. 당사자의 의사가 존중되고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항이다. 당연히 아베와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협의는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한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유포되고 있는 가장 잘못된 이미지 중 하나는 마치 한국 측이 주장하는 일본의 '법적책임'이 마치 국제사회가 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있다는 식의 논의이다. 나는 정말로 그러한지를 되묻고 싶다. 서양 열강들이 그 동안 행해왔던 식민지배에서의 개별적인 인권침해와 국제법 위반에 대한 사과와 보상의 의무를 열어놓는 견해에 대해 열강이 한국의 편을 들겠냐는 것이다. 정말로 궁금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얼마만큼 확신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이다. 일본정부는 물론 사법부와 입법부의 입장은 일본의 개별적인 법적보상의 의무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에 담긴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 더 포괄적인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제스쳐에 있었다. 물론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법적으로 이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거칠게 말하면 위안부 문제는 기본인권에 대한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므로 한일협정과 별개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러한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국내적인 정부에 대한 압박수단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논리냐는 것이다.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은 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결의안의 대부분은 법적책임에 관해서 침묵하거나, 권고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그저 과거 일본정부가 행했던 사과의 취지를 현 정권도 재확인하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일견 '인도적인' 견지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서구열강의 입장과 '법적책임'을 주문하는 한국시민사회 사이의 입장에는 온도차이가 있는 셈이다.


  일본 국내적인 레벨에서 봐도 가장 진전된 사과를 했던 무라야마 총리조차 자민당이 의석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입법'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또한 군이 직접 강제연행했는지에 대한 문제에 초점이 잘못 맞춰져 [이는 위안부문제를 순결한 소녀의 군대 강제연행 이미지로 극화하고자 했던 한일운동단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시비가 오가는 상황에서 [좁은 의미에서의 강제성=직접연행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당시 일본의 구조적 강제성과 책임을 최대한 전부 다 인정하려는 '정치적인 결단'을 단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국 내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박유하 교수 비판론자들은 특히 법적책임론에 있어서 솔직하지 못하다. 현실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 근거를 만들려면 일본 국내의 입법 혹은 사법적 판단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인데, 할 수 있었다면 이미 20년 넘게 왜 하지 못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결국 정부 차원의 정치적 결단과 그를 통한 배상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95년에 있었던 가장 진전된 사과와 책임의식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어떻게 [보상과 역사교육 등의 측면에서] 계승하고 확대시킬 것인가에서부터 출발해서, 위안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박교수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6.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의문

  지금까지 박교수의 논지를 최대한 선의로 이해하려 했음에도, 물론 나는 박유하 교수의 논의가 매우 기초적인 지점에서 자기 발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운동단체 및 지원단체가 요구하는 궁극적인 해결책[법적 책임]이 왜 불가능한지에 대한 '현실론'을 거론해도 충분한 사항들에, 자꾸 무리해서 심층논리적 외피를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다. 가령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은 손쉬운 '근대비판'의 언어에 호소한다. 내가 보았을 때 이는 자충수에 불과하며, 독자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항이다.


"위안부 여성을 위한 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국)국가는 남성을 전쟁에 동원하면서 남성들을 위한 '법'은 준비했지만 여성들을 위한 법은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보상과 사죄는 필요하지만, 그를 묻기 위한 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는 근대 국가의 시스템 자체가 남성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332]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에는 여성을 위한 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위안부에 대한 법적 책임이 불가하다는 논지로 나는 이해했는데,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근대국가 시스템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일본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건가? 완전히 엉뚱한 이야기이다. 나치 독일도 당시 유대인을 위한 법이 없었음에도[그들은 말 그대로 '호모 사케르'였다] 전범재판을 통해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가 처벌되었다. 위안부 문제가 법적으로 제대로 책임지어지지 않은 것은 위안부 피해국이 전후에 승전국 지위로 일본에게 법적인 책임을 요구할 수 없었다는 등의 현실적인 이유가 주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국가의 법 시스템 자체가 애초에 "남성중심주의적이었다"는 논리는 겉보기에 무언가 심층적인 구조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똑같은 "남성중심주의적"인 근대 국가가 전후에, 어떤 경우에는 전시에 윤간당하고 학살당한 여성의 편을 들고, 어떤 경우에는 법적 사각지대에 내모는지, 그 역사적인 엇갈림이 오히려 박유하 교수가 다루고자 했던 핵심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아래와 같은 구절에서 더욱 더 오해의 소지가 증폭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위안소 설치와 이용을 규제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일본국의 범죄라고 말할 수 없다는 논리는 박유하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위안소 운영을 "여성에 대한 조직적-집단적 윤간"으로 지목하는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법적인 현실과 이상론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원자들은 ‘위안’을 일본군의 하나의 체계적인 시스템이었던 것으로 간주하고 ‘국가범죄’로 생각했다. 물론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일본군이 위안소 운영에 따르는 문제들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위법’사항이 인신매매뿐이었던 이상, 위안소 설치와 이용을 ‘일본국의 범죄’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군’이 한 일을 범죄시하려면 오히려 개인적인 강간이나 폭행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247]
  그 다음으로 일본군이 초래한 "구조적 강제성"과 그 속의 민간업자와 포주의 "직접적 책임"에 대한 구획정리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박유하 교수는 일본 국가가 가난한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려가게 만든 "구조적 강제성"을 초래했지만 "직접적인 주체가 아니었다"는 식의 뉘앙스로 서술하고 있다.

  "일본 국가가 필요로 했고,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는 점에서 일본 국가의 '강제성'은 존재했다. 그러나 소녀들을 '위안부'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끌어간' 직접적인 주체는 대부분 포주이거나 업자였다. 그런데도 정대협은 '위안부를 "일본 정부에 의해서 강제로 연행, 납치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여성들"이라고만 설명한다."[111]
  조금 더 정확하게 말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박유하 교수가 발굴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우리가 이해하는 '순진무구한, 일본군과 순사에 의해 끌려간, 어린 소녀'라는 기존의 위안부 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평가할만 하지만, 박유하 교수가 인용한 사례들 대다수는 사기와 인신매매는 물론이고 돈벌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해도 '자신이 정확히 무슨 상황에 처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안부가 된 경우들이다. 박교수의 말대로 당연히 가난한 여성을 위안부로 내몰리도록 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제국의 확장에 편승하여 여성을 갈취한 중간업자들의 책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책임과 일본군 나아가 일본 제국의 책임이 얼마만큼 구별될 수 있는가? CIA가 고문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대신 민간업체에게 '군사안보 컨설팅' 명목으로 외주하면 어떨까? 이처럼 오늘날의 문맥에서도 국가가 자행한 범죄의 구조적인 책임과 직접적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예컨대 오늘날 미국이 외주한 민간군사업체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현지 주민을 학살해도 그렇게 "구조적 책임"과 "직접적 책임"을 무 자르듯이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나로서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가장 찜찜한 부분은 "일본군은 인신매매와 가혹행위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는 반복된 진술이다. 일례로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국가가 군대를 위한 성노동을 당연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그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삭제) (일본군의 공식 규율이 강간이나 무상노동, 폭행을 제어하는 입장이었던 이상) 강제연행에 대한 법적 책임이 일본 국가에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191]

위안부를 필요로 한 군이 위안부 모집을 조선이나 대만 총독부 등에 부탁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본군은 해외에서의 전쟁터나 오지까지 와주는 ‘해외원정 종군위안부’를 필요로 했지만, 사기나 속임수를 써가며 모집하는 일까지를 일본군의 의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군의 수요를 알게 된 업자들이 사기나 속임수를 써서까지 모집했던 것이 대부분이었고, 일본군은 그런 상황을 묵인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단속했다. 그리고 단속한 이상 ‘단속’ 쪽이 일본군의 인신매매에 대한 자세를 나타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위안부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게 된 것은 분명 일본군이 그런 시스템을 허용하고 묵인하고 이용했기 때문이지만, 그에 따른 처벌을 일본군에게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한 위안소 이용이 ‘국가범죄’가 될 수는 없다.[218]
  일본군의 공식규율이 "강간이나 무상노동, 폭행을 제어하는 입장"이라는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인신매매를 단속했다"는 말이 사실이라 해도, 책에 인용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치와 가혹행위와 인신매매 그리고 폭행과 강간 무상노동이 행해졌다는 것은 결국 그 같은 공식적인 방침이 그저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위선이 있다면 더욱 더 강하게 '당시의 기준으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한국도 고문과 납치살해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이것이 국가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근거가 되는가? 아래와 같은 일본제국군이 홍보했던 것과 같은 구타와 가혹행위 없는 평화로운 병영생활과 중국에의 평화로운(그러나 실상은 무수한 인명살상과 강간으로 얼룩졌던) 진출도 당시 일본제국의 공식적인 규율이 아니었을까? 박유하 교수의 언급만을 종합해봐도 앞 뒤가 안 맞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반복되는) 대목들이야말로 쓸데 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법원의 명령과 별개로 오히려 수정이 필요한 대목 아닌가? 할 수만 있었다면, 우리가 승전국이었다면, 위안부 관련자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어야 했고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가정법에 불과하다.

아래 엽서의 출처 : 도위창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tirpitz000)




7. 나가며 - 운동과 당사자주의

  위와 같은 의문들은 물론 남지만, 이는 독자 입장에서 비판적인 수용으로 얼마든지 여과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일 수도 있고, 저자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정상적인 수용을 방해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불필요한 민형사상의 제재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책에서 명예훼손 성립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비방의 의도를 검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었는지, 이것은 내 상상력 바깥의 일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보았느냐는 반론을 두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냐"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내가 먹어봤더니 똥은 확실히 아니었다. 다만 설익은 된장인지, 잘 익은 된장인지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감별을 방해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책을 읽지도 않은, 똥인지 된장인지 냄새조차 안 맡은 주변사람들이 싸놓은 똥냄새 때문이라는 점은 단언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미각을 방해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제국의 위안부는> 논의상의 여러 결점들이 박교수의 전체적인 논지를 빛 바래게 한 아쉬운 저작이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전후 국민국가의 법제도 그리고 국제정치가 빚어낸 법적책임의 현실적인 한계를 무리하게 강조하느라 이론적인 궤변으로 빠져드는(국민국가의 법제도는 원래 남성중심적이라느니) 점이다. 불필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박유하 교수의 저작을 범죄시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의도했던 논지는 현행 법논리를 넘어선 정치적 결단과 국민적 합의만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현실적 타개책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만큼 나는 절대적으로 박유하 교수의 논지에 공감한다.

  위안부 문제가 현실적인 해결책을 얻기 힘든 이유는 한일 양국의 운동단체가 '위안부 문제' 그 자체에 대한 해결을 바라기보다는, '위안부 문제'를 통해 국내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에서 비롯되었다는 박유하 교수의 지적은 뼈 아픈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한국의 운동단체는 위안부 문제를 민족적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문제로 인식한다. 한편 일본의 좌익은 위안부 문제를 통해 (2000년도 <국제여성전범법정>에서 보여지듯천황제라는 부권적 상징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사회의 전면적 개조를 기도한다. 실제로 나는 사석에서 국내 위안부 단체의 활동가로부터 "한 정권과 정치인의 사과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운동권의 논리이다. 여기서 내가 느끼는 순수한 의문은, "자국의 사회를 변화시키기에도 벅찬데, 어떻게 위안부 쟁점 하나로 타국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개별적인 사안을 통해 사회 전체의 전면개조를 기도하려는 '운동적' 태도가 위안부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른 노동문제, 교육문제에서도 현실적인 문제해결의 질곡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송곳>을 통해 재환기되었던 이랜드 파업 당시에도 실은 좌익 단체들이 개입하여 '해방구(소비에트)'를 만든다든지, '혁명적 활동가를 육성한다'든지 하는, 조합원 본연의 복직요구와 임금인상요구을 넘어서는 정치적 목표를 앞세워 귀중한 시간과 인적자원을 소모시킨 일이 있다.

  손아람 씨는 박유하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제국의 궤변>이라는 칼럼에서 "나는 <제국의 위안부>의 전반부, 사악한 조선인 포주와 인간적인 일본군의 일화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가부장적 국가제도에 있다는 주장을 수긍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마치 가부장제와 국가권력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박유하 교수의 표면상의 진보주의적인 언어가 그나마 참아줄만 하다는 듯이 군다. 다만 일본국가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가볍게 한다는 게 진짜 문제라는 듯이. 마치 박유하 교수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 당장 법적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박유하의 핵심을 완전히 비껴나가 있다. 오히려 저 선량한 진보주의자들이 진짜로 불편해야 할 지점은 일본의 보상과 사과를 수용한 60명의 할머니에 대한 박교수의 언급이라고 생각된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사이에서 장기화된 과정은 전후일본의 전면적인 개조와 한국의 국제적 위상정립이라는 등의 정치적인 목표에 매진한 결과 여러 다양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위안부 할머니들이 '순수한 피해자'로서의 표상에 맞추어가고, '다른 기억', '다른 증언'을 가지고 있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주변화된 과정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투쟁과 파업이 장기화될수록 구성원들이 지쳐 떨어지고 몇몇 남은 순수한 투사들이 해당 쟁점에 관한 모든 기억과 표상을 가져가는 소위 '운동적인 방식'과 일치한다. 

  다시 한번, 박유하 교수의 핵심논지는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상대적으로 쉬운 운동적인 접근이 과연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 한명 한명의 존엄성을 되찾는데 얼마나 유효했는지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와 이의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일정부분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운동적 문제제기를 통한 압박의 효력이 다했다. 박유하 교수의 이 같은 의견표명은 범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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