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알라딘: 현대 중동의 탄생 A Peace To End All Peace 서평

알라딘: [전자책] 현대 중동의 탄생
[eBook]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은이),이순호 (옮긴이)갈라파고스2021-06-11 
원제 : A Peace To End All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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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1922년, 9.11 사태가 시작된 해"
중동은 문제로 가득하다. 문제로 꽉 차 해결책이 들어설 자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의 기원을 찾는 일이다. 가깝게는 9.11 사태와 걸프전에서, 시선을 넓힌다 해도 40년대 후반 이스라엘 국가 수립부터 이어진 중동전쟁에서 원인을 찾곤 하지만, 실상 오늘날 중동은 1922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제국 열강의 정치적 이해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이 책은 바로 그때, 1914년부터 1922년 사이에 벌어진 현대 중동 탄생의 비화를 복원한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후 (제국 입장에서 보면) 텅 빈 공간이 된 넓디 넓은 땅은, 그곳을 삶으로 채워온 이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재편되었다. 이들은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텅 빈 공간에서 목소리는 전달될 수 없었다. 그렇게 국경이 세워지고 정부가 수립되는 한편 종교와 민족은 갈가리 찢겼다. 아우성 속에서 제국조차 원칙을 잃었고 상황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 바쁜 수십 년이 흘렀다. 이제 해결은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지만, 이대로는 평화롭게 살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1922년의 결정이 '평화를 끝내기 위한 평화'에 그쳤다면, 이제는 '평화를 끝내기 위한 평화'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넘어선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이 하나의 지평을 열어줄 열쇠가 될 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 인문 MD 박태근 (2015.01.20)


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60.0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984쪽, 

책소개
현대 중동 문제를 이해하는 필독서로서 「뉴욕 타임스」 편집진이 뽑은 13대 최고 도서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고, 히스토리 북클럽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미국 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최종선발 후보에도 올랐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타임스」 등 세계 유수의 신문들로부터 절찬을 받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20세기 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들로서, 모두 수백 년 동안 오스만제국의 속령이었다가 제국이 해체되면서 탄생한 국가들이다. 오늘날의 중동은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도중, 그리고 종전 뒤 연합국이 내린 결정에 따라 지금과 같이 형성되었다.

이 책은 어떠한 과정 속에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 그와 관련된 폭넓은 역사를 담아내는데, 저자가 말하는 '중동'에는 비단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 터키, 아시아의 아랍 국가들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도 포함된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이야기의 초점은 제국주의의 대표주자였고 중동에 가장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열강의 정책 입안자들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영국 정치권 내의 알력, 외교관-군지휘관-관료들의 힘겨루기, 그들의 오만함과 무지, 개인들 간의 충돌과 관료정치가 만들어낸 중동에 대한 상황 인식이 빠짐없이 기록되었다. 또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 각국과 그들의 상대국, 식민지 정부, 현지의 원주민 지도자들 간에 복잡하게 전개된 공개, 비공개 외교 비사가 총망라돼 있다.


목차


발간 20주년 기념 판본에 부쳐
지도 및 도판 목록
들어가는 말

1부 역사의 교차로에서
1. 구 유럽의 마지막 날들
2. 거대한 게임이 남긴 유산
3.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중동
4. 동맹이 급했던 청년튀르크당
5. 전쟁 전야의 윈스턴 처칠
6. 처칠, 터키 전함들을 압류하다
7. 오스만제국의 음모

2부 하르툼의 키치너, 장래를 준비하다
8. 키치너, 지휘권을 잡다
9. 키치너의 부관들
10. 키치너, 이슬람 공략에 나서다
11. 인도의 저항
12. 고래싸움의 새우등이 된 메카의 샤리프

3부 중동의 진창에 빠진 영국
13. 패전으로 몰고 간 터키 지휘관들
14. 영국의 터키 공격을 허용한 키치너
15. 다르다넬스 작전의 승리를 향해
16. 러시아의 속셈
17. 영국이 중동에서 원한 것
18. 운명의 해협에서
19. 전사들
20. 정치인들
21. 꺼져버린 불빛
22. 카이로 영국 정보국의 아랍부 창설
23. 아랍인들에게 해준 영국의 약속
24. 연합국에 해준 영국의 약속
25. 터키, 티그리스 강 전투에서 영국을 격파하다

4부 전복
26. 적진의 뒤에서
27. 키치너의 마지막 임무
28. 후세인의 아랍 봉기

5부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연합국
29. 연합국 정부들의 추락: 영국과 프랑스
30. 차르정부의 전복

6부 신세계와 약속의 땅
31. 신세계
32. 로이드 조지의 시온주의
33. 밸푸어 선언을 향해
34. 약속의 땅

7부 중동 침략
35. 예루살렘에서 크리스마스를
36.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37. 시리아 쟁탈전

8부 승리의 떡고물
38. 갈림길
39. 트로이의 기슭에서

9부 썰물은 빠지고
40. 시간은 흘러가고
41. 배신
42. 비현실적 평화회의의 세계

10부 아시아를 덮친 폭풍우
43. 분규의 시작: 1919~1921년
44. 이집트: 1918~1919년의 겨울
45. 아프가니스탄: 1919년 봄
46. 아라비아: 1919년 봄
47. 터키: 1920년 1월
48. 시리아와 레바논: 1920년 봄과 여름
49. 동 팔레스타인(트란스요르단): 1920년
50. 팔레스타인―아랍인과 유대인: 1920년
51. 메소포타미아(이라크): 1920년
52. 페르시아(이란): 1920년

11부 러시아, 중동에 돌아오다
53. 영국 적들의 실체
54. 중동에서의 소비에트 도전
55. 모스크바의 목표
56. 부하라의 죽음

12부 1922년의 타결
57. 윈스턴 처칠, 중동문제의 주도권 잡다
58. 처칠과 팔레스타인 문제
59. 연합국의 분열
60. 그리스의 비극
61. 중동문제의 타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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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P. 49 20세기가 끝나가는 작금의 중동 정치는 물론 그때와는 양상이 판이해져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변했다. 이렇게 폭발 직전의 중동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다름 아닌 1차 세계대전 전에는 무슬림 아시아에 별 관심이 없었고, 대중적 인기도는 높았으나 불신도 많이 받았던 영국의 젊은 정치인 윈스턴 처칠이었다. 이 무슨 야릇한 운명의 장난인지 처칠과 중동은 서로 간의 정치적 삶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게 되었고, 그것은 또 흔적을 남겼다. 현재 중동을 가로지르는 국경선들이 바로 양자의 충돌이 만들어낸 상처투성이 선들인 것이다. 접기
P. 215 독일과 전쟁이 터지고 오스만과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100일간, 오스만제국 영토를 보전해야 한다는 기존 원칙을 포기함으로써 1세기 넘게 유지해온 영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완전히 뒤바꾼 것이었다. 그리하여 튀르크와 전쟁이 발발한 지 150일째 되는 날, 애스퀴스 정보는 마침내 오스만제국의 해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영국도 영토분할에 참여하는 것이 이롭다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접기
P. 333 헤자즈 봉기가 일어난 직후에 발간된 《아랍 보고서》(1916년 6월 6일자) 창간호에 실린 로렌스의 글을 보면, 아랍인들은 심지어 봉기의 목적 면에서도 일치단결이 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로렌스는 대규모 부족 모임이 열리기만 하면 아랍인들은 어김없이 분쟁을 일으켰으며, 튀르크도 아랍인들의 그런 기질을 알기에 뒤로 물러 앉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라고 썼다. 튀르크가 조치를 미룬 것은 “부족 간 투쟁으로 그들이 조만간 공중분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접기
P. 386 러시아의 붕괴 가능성은 1914년 9월 이래 줄곧 영국의 악몽이었다. 반면에 엔베르 파샤에게는 그것이 꿈이었으며, 오스만제국을 동맹국 편에 가담시킨 것도 그래서였다. 그 점에서 볼셰비키 혁명은 한쪽의 악몽과 다른 쪽의 꿈이 실현된 사건이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917년 러시아가 전쟁에서 발을 뺀 것이 영국과 연합국에는 심대한 타격이었고, 독일과 오스만제국에는 쾌거였다는 사실이다. 접기
P. 419 시온주의는 새로운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역사는 바빌로니아에 의해 독립을 잃고 서기 2세기에는 로마의 지배에 항거해 봉기를 일으켰다가 진압당한 뒤 수많은 사람들이 타지로 추방되었던 고대 유대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유대인들은 유랑할 때도 그들 고유의 법률, 관습, 종교를 고수하여, 이주한 곳의 원주민들과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열등한 지위, 박해, 빈번한 학살, 되풀이되는 추방도 유대인 특유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그들은 언젠가는 하느님이 자신들을 시온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믿고, 유월절 행사 때마다 “이듬해에는 예루살렘에서!”의 기도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이렇듯 메시아적 꿈으로 남아 있던 시온으로의 복귀는 19세기 유럽에 등장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동시대의 정치 현안으로 탈바꿈했다. 프랑스 혁명군이 도처에 이식하여 만개한, 모든 민족은 그들만의 독립국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상이 그 시대의 대표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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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데이비드 프롬킨 (David Fromki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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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 주 밀워키 태생의 저명한 역사가 겸 저술가. 시카고 대학교 학부와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을 마치고 법무석사(JD)를 취득한 뒤 런던 대학교에서 준석사(PGDL)를 취득했다. 역사가로 입문하기 전에는 변호사, 개인 투자자, 정치고문 등 법조계, 재계, 정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했으며, 1972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나선 휴버트 험프리 민주당 의원의 외교정책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역사가의 길로 접어든 뒤에는 《포린 어패어스》, 《뉴욕 타임스》 그 밖의 간행물들에 다수의 글을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했다. 이 책 『현대 중동의 탄생A Peace to End All Peace』(1989)을 비롯해 『왕과 카우보이The King and the Cowboy: Theodore Roosevelt and Edward the Seventh, Secret Partners』(2007), 『유럽의 마지막 여름Europe’s Last Summer: Who Started the Great War in 1914』(2004), 『세상의 순리The Way of the World』(1998), 『미국인들의 시대에In the Time of the Americans: FDR, Truman, Eisenhower, Marshall, MacArthur, The Generation That Changed America’s Role in the World』(1995), 『국가들의 독립The Independence of Nations』(1981), 『정부의 문제The Question of Government: An Inquiry into the Breakdown of Modern Political Systems』(1975) 등을 저술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책 『현대 중동의 탄생』은 《뉴욕 타임스》 편집진이 뽑은 13대 최고 도서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고, 히스토리 북클럽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미국 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최종선발 후보에도 올랐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타임스》 등 세계 유수의 신문들로부터 절찬을 받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프롬킨은 보스턴 대학교에서 국제관계, 국제법, 중동정치 분야를 가르쳤으며, 이 대학의 국제관계 학과장과 국제관계 연구센터 장을 3년 동안 역임했다. 1976년부터는 미국 외교협의회 회원이다. 접기

최근작 : <현대 중동의 탄생> … 총 41종 (모두보기)

이순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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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 주립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타타르로 가는 길』, 『살라딘』,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가상역사 21세기』, 『살라미스 해전』, 『발칸의 역사』, 『인류의 미래사』, 『페르시아 전쟁』, 『제국의 최전선』,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바다의 제국들』, 『인류의 역사』, 『비잔티움』, 『로마제국과 유럽의 탄생』,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위대한 바다』, 『발칸의 역사』, 『현대 중동의 탄생』, 『이슬람제국의 탄생』, 『지리의 복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870~1945』(공역), 『코드걸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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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미국 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최종선발작에 빛나는 이 책은 분쟁으로 얼룩진 중동의 그늘, 그 기원을 찾아가는 현대의 고전이다. 또한 중동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중동 문제의 바이블로, 현대 중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한다.

한동안 잠잠한 듯하던 중동 사태가 요즘 들어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현재 IS(이슬람 국가)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중동은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왕조 간 투쟁이 끊이지 않는 고질적인 분쟁지역이 된 지 오래다. 저자는 연합국이 종전 뒤 빈 지도에 선을 그려,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이라는 신생국들을 탄생시키고, 중동의 지리와 정치를 개편하게 된 경위와 이유를 면밀하게 보여준다. 석유가 아직 정치문제로 부상하기 전이었던 1914년부터 1922년까지의 형성기에 초점을 맞춰, 중동이 어떻게 지금과 같이 끝없는 전쟁과 테러리즘으로 나아가는 노정을 밟게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제시해준다. 또한 세계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한축이기도 한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중동 문제를 이해하는 필독서로서 《뉴욕 타임스》 편집진이 뽑은 13대 최고 도서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고, 히스토리 북클럽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미국 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최종선발 후보에도 올랐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타임스》 등 세계 유수의 신문들로부터 절찬을 받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지금의 중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현대 중동 탄생의 대하 드라마

한동안 잠잠한 듯하던 중동 사태가 요즘 들어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한 이슬람 수니파 무장반군 아이에스(IS: 이슬람 국가)가 지난 6월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과 인근의 유전 지대를 점령하더니 최근에는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며 기세를 올리고, 시리아와 이라크 양국에서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해, 참수하는 행위로 인해 국제사회의 이목이 다시금 중동으로 쏠리게 된 것이다. 알 카에다의 잔당에 지나지 않던 아이에스는 갑작스레 생겨난 조직이라기보다 중동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데서 나온 결과물이며, 지금의 문제도 어찌 보면 지난 80~90년 동안 지속돼온 중동 분쟁의 연장 선상에 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외교정책 전문가인 데이비드 프롬킨의 방대한 저작『현대 중동의 탄생(A Peace To End All Peace)』은 복잡하게 전개되어온 이 지역을 폭넓은 시야에서 선명하게 이해시켜주는 역사서다.

사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20세기 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들로서, 모두 수백 년 동안 오스만제국의 속령이었다가 제국이 해체되면서 탄생한 국가들이다. 오늘날의 중동은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도중, 그리고 종전 뒤 연합국이 내린 결정에 따라 지금과 같이 형성되었다. 이 책은 어떠한 과정 속에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 그와 관련된 폭넓은 역사를 담아내는데, 저자가 말하는 ‘중동’에는 비단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 터키, 아시아의 아랍 국가들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도 포함된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이야기의 초점은 제국주의의 대표주자였고 중동에 가장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열강의 정책 입안자들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영국 정치권 내의 알력, 외교관-군지휘관-관료들의 힘겨루기, 그들의 오만함과 무지, 개인들 간의 충돌과 관료정치가 만들어낸 중동에 대한 상황 인식이 빠짐없이 기록되었다. 또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 각국과 그들의 상대국, 식민지 정부, 현지의 원주민 지도자들 간에 복잡하게 전개된 공개, 비공개 외교 비사가 총망라돼 있다.

전쟁 중에 불거진 볼셰비키 혁명과 러시아제국의 붕괴, 오스만제국의 음모, 숨 막히는 열강의 외교전, 책사들의 지략 대결, 처칠, 아라비아의 로렌스, 레닌, 우드로 윌슨과 같은 전환기적 인물들 등, 드라마적 요소도 많이 포함돼 있어 압도적 분량이 짧게 느껴질 만큼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법조계, 정계, 재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다 역사가의 길로 접어든 저자의 특이한 이력 탓에 문장이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흐르지 않고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저술된 것도 이 책이 지닌 매력이자 덕목 중 하나다.

이 책에는 로이드 조지, 우드로 윌슨, 하르툼의 키치너, 아라비아의 로렌스, 레닌, 스탈린 등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이들 모두 나름의 비전을 갖고 세계를 개편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남다른 비범함으로 사건들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사건들에 광채와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책 전체를 압도하는 것은 역시 윈스턴 처칠이다. 또한 그는 지금의 중동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현대의 중동이 탄생하는 과정과 더불어 20세기가 탄생하는 과정도 함께 보여주는 역사서로서, 지금의 세계질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중동에 대한 이해를 현격하게 향상시켜주는 중요한 저서다.

바람 잘 날 없는 분쟁과 혼란의 땅 중동, 그 비극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

현대 중동에서는 지금까지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이 선포되자마자 팔레스타인 문제로 촉발된 제1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중동은 언제나 일촉즉발의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다. 분쟁의 성격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 이슬람교 내 종파 문제, 쿠르드족 문제, 석유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개입, 거기다 최근에는 국제적 테러조직들까지, 갈수록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책 『현대 중동의 탄생』은 바로 중동이 이 같은 종파,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왕족들의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요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낸다.

저자는 중동 분쟁의 근원을 1차 세계대전과 서구 제국주의에서 찾는다. 승전국이 된 서구 열강이 400년 동안 오스만 치하에 있던 아랍어권 지역을 인종, 종교, 역사적 배경, 현지인들의 바람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합리하고 무책임하게 분할하고 지도자들을 임명한 결과 현대 중동이 탄생한 것이고, 그리하여 그 모든 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의미에서다. 영국은 자국 식민지인 인도와 이집트를 잇는 전략적 육지다리로써 중동을 반드시 필요로 했고, 러시아 또한 영국과 근 100년 동안이나 ‘거대한 게임’을 벌이며 아시아로의 진출을 집요하게 모색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영국과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맞서고,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장기화국면에 접어들면서 적과 아군이 뒤바뀌고 복잡한 셈법이 오가는 와중에 묵시적, 명시적으로 쏟아낸 복잡한 약속들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서구 제국들이, 20세기 초에 정점을 찍은 뒤로 제국주의가 저물어가는 것도 모른 채 힘과 문화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중동에서는 그 무엇보다 종교와 부족이 우선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도외시한 것이고, 그 무지의 소산이 바로 현재 서방이 맞고 있는 딜레마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방이 현재 처해 있는 딜레마는 자업자득의 성격을 갖는다.

1922년의 타결, 서구열강이 만들어낸 상처투성이 국경선

이 책에서는, 유럽 정치인들이 결정을 내릴 때 무시하고 넘어간 것들의 개요와 중요성을 언급할 때를 제외하면 중동의 인물들, 상황, 정치문화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저자는 주로 의사결정 과정을 다루었는데, 1914~1922년의 기간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나라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뿐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중동의 국가들과 국경선들이 유럽에서 조작되었던 시대였다. 이라크와 이른바 요르단만 해도 1차 세계대전 뒤 영국 정치인들이 비어 있는 지도에 선을 그어 만든 영국의 발명품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의 경계도 1922년 영국 관리에 의해 정해졌으며, 시리아-레바논의 무슬림과 기독교 지역의 경계는 프랑스에 의해, 아르메니아와 소비에트 아제르바이잔의 경계는 러시아에 의해 수립되었다.

1914년 영국과 프랑스군이 침략했을 때, 중동의 정치와 삶은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곳에 유럽인들은 세속주의, 민족주의, 동맹체제와 같은 유럽식 정치를 도입하려고 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는데, 중동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불만스러웠던 것은, 외국인이 무슬림인 현지인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영국 통치자들이 처음부터 다른 어느 국가보다 영국의 통치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수십 년간 영국이 ‘임시’보호령으로 통치했던 이집트에서 최초의 저항이 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애당초 중동의 정치나 정치 지도를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그러한 결과를 양산했다. 1920년 초까지 유럽 연합국이 취한 각종 조치, 협정, 결정들이 뒤섞여 중동 평화의 최종 타결안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1922년의 타결”로 명명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그 타결에는 많은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국가와 국경선을 당해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한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런 결정은 대개 그곳 사정이나 욕구에 무지한 연합국 관리와 각료들이 내리기 일쑤였다. 외국인이 정책 결정자였던 셈이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현지 주민들의 삶에 간섭할 자격이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만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영국과 연합국이 취한 조치는 유럽의 중동문제만 종식시켰을 뿐, 중동의 중동문제는 오히려 새로 불거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또 저자는 오늘날 중동이 겪는 정치문명의 위기는 1918년 영국이 그곳의 구질서를 파괴하고 그 대안으로 내놓은 1922년의 타결에서 비롯된 결과 못지않게 이후 영국이 본래의 약속을 지키는 데 급급하여 확신감 없이 1922년의 타결을 무작정 밀어붙인 것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중동 지역에 대한 패권경쟁에서 러시아의 역할에 주목한다. 보통 아랍이나 터키령 아시아에서의 유럽 정책을 다룬 책들에서는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현대 중동의 출현을 19세기에 일어난 거대한 게임의 결정판으로 보고, 러시아도 이야기의 주역으로 삼음으로써 기존의 연구와 달리 더욱 폭넓은 틀 안에서 현대 중동의 탄생을 밝혀낸다.

지금의 중동과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대작

데이비드 프롬킨은 한동안 극비로 취급되던 공식, 비공식 기록이 한꺼번에 공개되어 자료 수집을 시작한 1979년 무렵에는 마침내 사건의 진상이 속 시원히 밝혀지는 것도 웬만큼 가능해 보였다고 한다. 이 책의 집필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이후 기록보관소를 오가고, 문헌을 연구하고, 현대의 학술자료를 검토하면서 10년에 걸쳐 난해한 퍼즐 조각들이 그림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1914년 8월 1일 청년튀르크당 지도자들이 독일을 오스만과의 동맹에 끌어들이기 위해 공작을 벌인 일과, 아랍 측 협상대표였던 무함마드 샤리프 알 파루키가 독립 아랍국의 경계를 시리아 내륙으로 정하려 한 이유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저자는 서유럽 제국주의 팽창의 물결이 최고조로 솟아올랐다가 강력한 역류를 만나 뒤로 밀려나는 것이 처음으로 감지되었던 당시에 중동에서 벌어진 일을 포괄적으로 개관하고, 중동의 재편을 특별한 시대에 열강정치가 만들어낸 산물로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다고 술회한다. 1922년 무렵에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좁아지고 방향도 결정된 상태였다. 중동이 끝없는 전쟁(특히 이스라엘과 주변국들 간의 전쟁과, 레바논 민병대들 간의 전쟁)의 길, 1970년대와 1980년대 국제정세의 특징이던 나날이 격화되는 테러리즘(비행기 공중 납치, 암살, 무차별 학살)으로 나아가는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이 책이 다루는 역사 유산의 일부인데, 원제『모든 평화를 끝내기 위한 평화(A Peace To End All Peace )』처럼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한 그 모든 타결이 종국에는 평화를 끝장내는 타결이 된 내력과,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여과 없이 기록한 책이 된다.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사건들에서 비롯된 국제 문제들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해결 불가능해 보인다고 한다. 현대 중동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인 오스만제국의 멸망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격변들 중 하나로서 정치적 지진이라 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따라서 부서진 조각들을 이런저런 형태로 꿰맞추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프롬킨은 시야를 넓혀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을 역설한다.

10년에 걸려 완성된 노작인 이 책은 미국 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런던 타임스》 세계 유수의 언론으로부터 호평 받은 베스트셀러다. 또 다수의 미국 대학들에서 ‘아랍의 봄’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도 지정되었다. 이 책은 과연 중동의 탄생을 다룬 책으로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중동은 전 세계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지역이다. 또한 우리도 이 지역과 여러 측면에서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중요도에 비해 중동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빈곤하다. 현대 중동의 질서는 세계질서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책은 현대 중동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를 거시적 안목에서 이해시켜주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저작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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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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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 이슈적으로 읽으며 '미디어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종횡으로 촘촘히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필요해지는 시대, 네이버를 아무리 검색하고 다큐프로를 아무리 찾아봐도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중동의 현대사를 알 수 있어 매력적인 책. 쉬운 책은 아니지만, 조금만 노력해서 읽어보면 꽤 재미있게 읽힌다. 강추
산체보고파 2015-12-2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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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회와 문화, 그리고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 요즘 들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요.
그 기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거리의화가 2015-11-2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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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비싼 가격 아닙니다.
성호박 2017-05-1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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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고 싶었던 책!
알아야 깊이 생각할 수 있다..
sayalim 2015-12-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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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동에 대한 이해에 기여함
기바홍 2015-11-2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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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동의 탄생 / 데이비드 프롬킨


1부 역사의 교차로에서




"18세기에 마침내 지구를 둘러싼 제국을 수립한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식민지 중에서도 전설로 가득찬 동방에 대해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의기양양함에는 뜻밖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인도를 손에 넣어 승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좋았으나, 수송로와 병참선이 지나치게 멀어져 여러 곳에서 끊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그러한 취약점을 재빨리 간파했다. 나중에 본인 스스로도 주장했듯이, 시리아에서 전설과 영광의 길을 따라 바빌론으로 들어간 뒤 거기서 내쳐 인도까지 쳐들어갈 계획으로 1798년 이집트 원정에 이어 시리아로 진군해 들어갔다. 이후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러시아 황제 파벨을 꼬드겨 러시아군도 같은 길로 내몰았다. 영국은 중동의 토착 정권들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유럽 국가들의 이런 팽창을 막으려고 했다. 중동을 지배할 의도는 없었으나 유럽의 경쟁국들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 또한 결단코 막으려고 했다."(51)




"영국정부가 19세기 내내 유럽 국가들의 간섭, 전복, 침략에 맞서 쇠락한 이슬람 정권들을 지지하는 정책을 취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자 이윽고 러시아제국이 영국의 주적으로 떠올랐고, 이때부터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 계획을 막는 것은 영국 군부와 민관인 관리들의 집요한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거대한 게임the Great Game'은 1829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웰링턴 공작이 아프가니스탄을 통한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인도를 지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다 그 논의에서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접근을 막는 것이 최상이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이때부터 쇠락한 아시아의 이슬람 정권들을 영국령 인도와 이집트로 가는 통로 사이의 거대한 완충지대로 만드는 것이 영국의 전략이 되었다. 특히 이것은 파머스턴이 오랫동안 외무장관과 총리로 재직할 때 추진했던 관계로, 그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51-3)




"거대한 게임이 특히 격렬하게 진행되던 서아시아에서는 다르다넬스의 좁은 해협 위쪽,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동서 통로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북서 통로에 자리하여 수백 년 동안 세계정치의 교차로가 되었던 고대 비잔티움, 곧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 콘스탄티노플이 적대 국가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는 한, 강력한 영국 함대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들어가 러시아 해안선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러시아가 다르다넬스 해협을 점령하는 날에는, 영국 함대는 해협으로의 진입을 차단당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로 진출하여 영국의 생명선마저 위협할 수 있었다. 아시아 대륙 저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접한 드높은 산맥이 전략적 요충지였다. 침략군이 영국령 인도 평원으로 쏟아져 내려올 수 있는 요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서는 러시아가 그 고지대에 입지를 마련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영국의 정책 기조가 되었다."(53)




"오스만제국은 제1차 발칸전쟁(1912~1913)에서 발칸동맹(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에 패해 유럽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다. 제2차 발칸전쟁(1913)에서는 아시아 쪽 터키의 맞은편에 위치한 트라케(트라키아)를 용케 회복했다. 하지만 그 역시 제국의 붕괴가 계속되는 와중에 찾아든 잠깐의 휴지기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권을 잡고 술탄의 각료로 제국을 지배했던 콘스탄티노플의 청년튀르크당은, 제국의 영토가 치명적 위험에 처해 있고 유럽의 포식자들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시시각각 다가온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래지 않아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대륙마저 분할했고, 이제 그들이 눈길을 돌릴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지표면의 4분의 1은 영국, 6분의 1은 러시아가 차지하여 대부분 지역은 이미 점령된 상태였고, 서반구도 먼로주의에 포함돼 미국의 보호를 받는 입장이어서, 유럽 국가들이 뚫고 들어갈 여지가 있는 지역은 중동뿐이었다."(77-8)




"CUP(통일진보위원회) 내의 다양한 분파는 강력한 유럽 국가를 동맹으로 확보하는 것이 터키 의제의 가장 절박한 사안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유럽권의 한 나라, 아니 열강의 하나─영국, 프랑스, 혹은 독일─만 동맹으로 얻으면, 오스만제국은 영토를 침탈당하는 일 없이 안전해지리라고 청년튀르크당은 판단했다. 러시아와 러시아보다는 힘이 다소 약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그리스, 불가리아가 오스만제국을 침략할 개연성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었다." "1914년 5월과 7월 사이에는 오스만의 정세가 더욱 악화되어 CUP 지도자들이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다른 세 강대국에도 동맹의 개연성 여부를 은밀히 타진하는 상황이 되었다. 친프랑스파였던 해상장관 제말은 프랑스에 동맹을 제의했다가 거부당했다. 절망에 빠진 탈라트가 고심 끝에 러시아에까지 접근하는 무리수를 두었으나, 역시 퇴짜를 맞았다." "오스만제국은 열강의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못하는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져들었다."(83-4)




"불간섭 정책을 옹호하던 오스만제국의 국방장관 엔베르 파샤는 1914년 8월 말에 벌어진 타넨베르크 전투와 같은 해 9월에 시작된 마수리아 호수 전투에서 독일군이 러시아군에 대승을 거두자, 오스만이 러시아 영토를 획득하려면 독일이 단독으로 승리를 거두기 전에 참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러시아는 수십만 명의 병력이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사로잡힌 상황이어서, 엔베르처럼 충동적이지 않은 사람도 러시아의 패배가 임박했음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독일의 승리 열차는 이제 막 역을 떠나려 했으므로, 엔베르로서는 이번이 기차에 올라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더욱 조바심을 냈을 것이다. 9월 26일 엔베르는 결국 동료들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봉쇄하여 외국 배들(사실상 연합국 선박)의 접근을 가로막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고는 일주일 뒤 독일 대사 폰 반겐하임에게, 대재상이 더는 오스만의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통보했다."(114-5)




2부 하르툼의 키치너, 장래를 준비하다




"영국은 오스만제국과 전쟁이 발발하자 이집트와 키프로스 문제를 명확히 해둘 필요를 느꼈다." "카이로의 영국청(이집트 총독 키치너가 근무하는 곳)이 원한 것은, 이름뿐이나마 언젠가는 독립시켜주겠다는 언질이 포함된 보호령이었는데, 영국정부는 두 나라의 병합이라는 본래의 결정을 번복하고 카이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영국 내각의 결정으로 키치너의 영국청은, 키치너와 그의 참모들이 훗날 아랍어권 전역으로 확대시킬 생각이었던 통치 형태의 원형을 수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인도에서와 같은 직접통치 방식이 아닌 보호령이 그것이다. 키치너의 이집트에서는 허울뿐이나마 세습군주와 토착 각료들이 존재했다. 따라서 영국 고문관들의 조언으로 결정된 사안이라 해도 모든 법령은 그들 이름으로 공표되었고, 그것이 바로 키치너 사단이 바란 정부 형태였던 것이다. 로널드 스토스의 표현을 빌리면, 〈영국은 명령법에 반대하고, 가정법을 좋아하며, 기원祈願법도 마다하지 않았다.〉"(136-7)




"1914년 영국인들의 관심은 온통 오스만제국이 참전하면 수에즈운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에 모아졌다. 로널드 스토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럽의 국방부 관리들이 철도 시설을 중심으로 적국의 군사력을 분석하듯, 낙타에 초점을 맞추어 오스만의 군사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실 낙타는 구실이었을 뿐, 스토스의 진짜 목적은 그 편지와 함께 1914년 9월 6일 클레이턴이 건네준, 낙타 이외의 또다른 문제들을 메카의 지도자와 논의해달라는 내용의 극비 비망록을 키치너에게 전달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 비망록에서 클레이턴이 제기한 문제들 중에는 영국에 호의적인 아라비아 지도자를 이슬람의 칼리프로 만들어 오스만 술탄을 대체할 개연성에 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 클레이턴은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인 메카의 아미르가 칼리프의 명백한 후보자라고 말햇다. 그렇게 되면 성지순례의 면으로도 영국에 중요한 조력자가 생긴다는 것이 이유였다."(157-8)




"키치너는 외무장관 그레이의 승인을 받아 스토스에게 보낸 전문에서, 메카의 지배자에게 〈터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이 전쟁에서 아랍이 영국을 도와주면, 영국도 아라비아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아랍인들이 외국의 공격에 맞서 싸울 때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답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여기서 '아랍인'은 아라비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아라비아 반도가 술탄으로부터 해방되면 영국은 외세의 모든 침략으로부터 그곳 지배자들을 보호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월권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키치너의 발언이었다. 그는 아라비아의 역할이 전시보다 전후에 더 중요할 것이라고 여긴 자신의 믿음을 반영하듯, 메카에 보내는 메시지를 폭탄선언으로 마감했다. 〈메카나 메디나의 칼리프는 진정한 아랍 종족이 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지금 벌어지는 모든 악에서 벗어나 그 선은 달성될 것입니다.〉"(161-3)




"키치너의 측근들은 그들이 이슬람권에 대해 안다고 믿은 그 모든 지식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었다. 이슬람권의 불화와 분열상의 정도를 가볍게 본 것이었다. 그 점에서 이슬람의 극단적 청교도 운동인 와하브파의 지도자 이븐 사우드에게 수니파인 메카 지배자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라고 요구한 키치너의 계획은 현실적이지 못했다. 수십 개로 쪼개진 이슬람의 종파들이 그랬듯, 그 둘도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이다. 키치너와 그의 측근들은 메카의 지배자로 하여금 오판을 하게 만드는 오류도 범했다. 메카의 지배자는 그들이 보낸 전문을 보고 영국이 자신에게 거대한 왕국의 지배자를 제의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슬람의 새로운 칼리프가 뜻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메카의 지배자가 자신의 새로운 왕국의 경계지가 될 곳을 언급할 때 스토스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도 그래서였다. 키치너나 그나 아미르의 통치영역을 확대시켜줄 의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164)




3부 중동의 진창에 빠진 영국




"1915년 초 (서부전선 병력 차출을 거부하던) 키치너는 돌연 마음을 바꿔 영국의 다르다넬스 공격을 제안했다. 러시아 최고사령부가 다르다넬스에 대한 양동 공격을 급히 요청해오자, 그 청에 응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전쟁에서 발을 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조치였다. 그렇게 되면 독일이 모든 병력을 서부전선에 투여할 수 있게 되어 영국과 프랑스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견제 공격을 요청하고, 키치너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던 것은 사실 엔베르의 카프카스 고원 지대 공격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요청은 1951년 1월 러시아가 엔베르의 튀르크군에 신속한 승리를 거두기 전 영국에 전달되었다." "결과적으로 영국 지도자들은 있지도 않은 튀르크의 위협으로부터 러시아를 구해주겠다며 콘스탄티노플 공격에 총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처칠, 키치너, 애스퀴스, 로이드 조지, 영국, 중동의 운명을 바꿔놓게 될 다르다넬스 작전(갈리폴리 전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196-7)




"키치너와 처칠의 다르다넬스 작전이 막상 성공할 조짐이 보이자 원조를 요청했던 러시아 정부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작전 성공은 물론 기뻐할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영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할 것이 뻔했고, 그러자 러시아인들 마음속에 지난 1세기 동안 거대한 게임을 벌이며 느꼈던 공포와 시기심이 되살아난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우려한 것은, 영국이 일단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나면 내놓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1915년 3월 15일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사조노프가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메시지가 담긴 비밀 통전通電을 런던과 파리에 각각 발송했다. 콘스탄티노플과 다르다넬스 해협, 그리고 해협에 인접한 지역을 러시아에 인도할 것을 연합국에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제국의 다른 영토와 그 밖의 지역에 갖고 있는 야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양국의 계획을 호의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207)




"러시아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그레이가 콘스탄티노플 협정을 비밀에 부친 것은 그 내용이 공개될 경우 인도의 무슬림 여론에 미칠 파장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영국이 그때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무슬림 독립국, 따라서 중요성이 적지 않은 오스만제국을 파괴한 장본인으로 비춰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그레이는 또, 오스만제국이 파괴되는 데 따른 이슬람교도들의 손실을 다른 곳에 무슬림 국가를 세우는 방식으로 벌충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아라비아가 그 후보지로 가장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곳은 열강들도 탐내지 않았으므로 약속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도 훗날, 〈외국 군대가 아라비아 땅을 점령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마른 황무지여서 강대국이 목초지로 욕심 부릴 만한 곳도 아니었다〉고 썼다. 그때만 해도 아라비아에 엄청난 석유가 묻혀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211-2)




"한편 사이크스가 외유에서 돌아와 내각에 던진 주요 메시지는, 그동안은 아랍이 전쟁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연합국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따라서 메카의 샤리프 아미르 후세인과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절실한 사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각료들의 토의 끝에 결국 (카이로에 교섭권을 주어 후세인과 합의해야 한다는) 키치너의 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헨리 맥마흔이 런던이 부여해준 권한과 지시사항으로 메카와 교신을 재개한 것이 바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과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토록 오랫동안 그 의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만든 맥마흔 서한이었다." "1915년 10월 24일 맥마흔이 사뭇 달라진 어조로 후세인에게 답변을 보낸 것도 그래서였다. 원하는 약속을 해주라는 키치너의 지시를 받고 특정 영토와 경계지역에 대한 논의를 하기로 마지못해 동의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확실한 언질을 주는 데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헷갈리는 용어를 사용했다."(274-5)




"그가 그런 우려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1916년 초 윈덤 디즈가 상황 파악을 위해 작성한 자료에 아랍인이 세 부류로 갈라져 있던 것도 그 힌트가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영국이 그 모든 아랍인들을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했다. 그중 첫 번째인 시리아인들만 해도 프랑스를 철천지원수처럼 여겨 그들 영토에는 프랑스가 발을 들이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주목표로 삼았고, 그것은 물론 프랑스의 요구와 상반되었다. 두 번째 아랍인인 후세인도 아랍왕국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디즈는 아랍인 대다수와 터키인 모두 그것에 반대한다고 썼다. 〈이 생각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 대부분, 아랍인 다수, 모든 터키인들의 관점이다.〉 다른 아랍인들도 후세인을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라는 것이 디즈의 생각이었다. 끝으로 이라크의 아랍인들이 있었다. 그들도 (디즈가 보기에는) 독립을 원했지만 인도정부가 그곳을 병합해 지배하려는 것이 문제였다."(277-8)




"그러나 클레이턴과 그의 동료들은 몰랐지만, (아랍 비밀결사 지도자인) 알 미스리, (영국 관리와 아랍 지도자 간의 매개 역할을 한) 알 파루키, 아미르 후세인도 영국에 위조화폐를 남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세인에게는 군대가 없었고 비밀결사에도 부하들의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만 혹은 수십만 명의 아랍군을 결집할 수 있다고 장담한 그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처음에는 아랍 봉기를 약속한 알 파루키도 11월 15일 마크 사이크스를 만났을 때는 태도를 바꿔, 연합국이 시리아 해안지대에 군대를 먼저 상륙시키지 않으면 아랍 봉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세인도 영국이 먼저 공격해주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아랍 봉기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방식으로 행동에 나서기를 거부했다. 영국군이 시리아를 공격하지 않으면 아랍은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이크스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영국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침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결론을 내렸다."(281)




"1915년 11월 23일부터 프랑스와 영국은 후속 조치를 위한 협상을 벌였고, 갑론을박 끝에 서로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사이크스 쪽에서 보면 프랑스가 확대된 레바논을 지배하고 여타 시리아 지역에 대한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으니, 모술까지 이어지는 세력권을 프랑스에 부여하는 데 성공한 것이고, (프랑스 협상대표) 피코는 피코대로 그것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두 지방 바스라와 바그다드는 영국이 차지하기로 결정되었다. 걸림돌이 된 것은 팔레스타인이었다." "그리하여 두 항구도시 아크레(아코)와 하니파,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철도로 연결되는 영토 지대는 영국이 차지하고, 팔레스타인의 여타 지역은 모종의 국제기구 통치를 받도록 하는 절충안이 마련되었다. 팔레스타인과, 프랑스나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는 중동의 나머지 지역은 아랍국 혹은 독립의 허울은 쓰겠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와 영국의 세력권을 분할될 국가들이 연합을 만들기로 했다."(289)




# 사이크스-피코 예비 협정(1916년 1월 3일 체결)




4부 전복




"서방권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시간상의 문제일 뿐 쇠락한 오스만제국이 언제든 붕괴되거나 혹은 해체될 것이라는 관점을 지녔으므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벌이는 긴박한 전쟁의 과정에서 오스만제국은 와해될 것이고, 제국 내에서 일어난 분란이 그것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16년 중엽의 양상은 그와 다르게 나타났다." "오스만군에 속한 다수의 독일장교들이 명령이 잘 먹히지 않는 것에 좌절과 혐오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양국 관계에 균열이 갈 만큼 그것이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독일은 전쟁이 승리하는 쪽으로만 힘을 행사했을 뿐, 오스만 정부의 독립이나 혹은 CUP 지도자들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렇듯 독일은 연합국이나 동맹국의 그 어느 강대국보다 능란하게, 전후 아시아에 가진 영토적 야망을 전시 행동에 개입시키지 않는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고 그 덕에 후방을 교란시키는 기회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었다."(309-10)




"우연인지 필연인지 키치너가 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과 때를 같이해 메카에서는 아미르 후세인의 봉기가 일어났다. 후세인이 청년튀르크당이 자신을 폐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으킨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로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것이 키치너 사단의 노력이 가져온 성과로 믿었다." "그러나 후세인이 바란 아랍 봉기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오스만군에 속한 아랍부대들 중 후세인 편으로 넘어온 부대는 하나도 없었다. 오스만제국을 변절하고 연합국 측으로 넘어온 정치인이나 군인도 없었다. 알 파루키가 후세인에게로 몰려들 것이라고 약속한 강력한 비밀 군사조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후세인의 병력은 영국 돈에 매수된 수천 명의 부족민이 전부였다. 후세인에게는 정규군도 없었다. 헤자즈와 헤자즈 부족민들이 사는 인근 지역을 벗어나면, 후세인의 봉기를 지원해줄 곳 또한 없었다." "결국 후세인이 아랍 봉기를 선언한 지 1년 뒤에는 데이비드 호가스가 그것을 실패로 간주하는 상황이 되었다."(327-34)




5부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연합국




"행정부에 일어난 변화는 영국의 중동정책에도 우연치 않은 변화를 초래했다. 동방에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애스퀴스와 그레이가 내각에서 퇴출되고, 자신의 중동관을 내각에 강요했던 키치너도 죽고 없어진 뒤, 키치너와 모든 면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로이드 조지가 총리가 되었다. 로이드 조지는 처음부터 동방을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 변수로 보았다는 점에서 키치너와 달랐다." "중동에 관한 로이드 조지의 미래관은 많은 부분 기독교 백성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오스만제국을 혐오한 그의 첫 정치적 스승이자 자유당 출신 총리였던 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튀르크 정부를 증오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반면에 그는 소아시아에 영토적 야망을 가진 그리스에는 호의를 보였고, 성지(팔레스타인) 시온주의자들의 열망도 지지했다. 다만 두 번째 경우는, 유대인의 조국이 세워지더라도 그것이 영국의 통치를 받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366-7)




"1917년 5월 전쟁에 혐오감을 느낀 프랑스군이 폭동을 일으켜, 프랑스에서는 정치인들이 그간 편안하게 느꼈던 마지막 전시내각마저 붕괴했다. 전통적 지도력이 신뢰를 잃은 탓이었다." "이때 유일하게 남은 총리 후보자였던 조르주 클레망소도 로이드 조지처럼 정치적 '고독자'였다." "클레망소는 그 무엇에 앞서 증오자였고,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한 것이 또 독일이었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프랑스에 부과한 가혹한 강화조약을 비준하기 위해 열린 보르도 국민회의에서 끝까지 저항한 인물이 클레망소였던 것도 그 점을 말해준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인물이었다. 독일에 맞서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힘을 모아야 하고, 그러므로 프랑스가 식민지 사업에 힘을 분산시킨 것은 실책이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따라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프랑스에 병합시키려고 하는 프랑스 상·하원의원들에게는 그가 당연히 주적일 수밖에 없었다."(369-70)




6부 신세계와 약속의 땅




"로이드 조지는 1917년 5월 10일에 열린 하원 비밀회의에서 영국이 전쟁 중에 점령한 아프리카의 독일 식민지를 독일에 반환하지 않을 것이고,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도 터키가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선언을 하여 그의 긴밀한 협력자마저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각료들 중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로이드 조지는 마크 사이크스가 약속한 전후 중동에서의 프랑스 권리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사이크스-피코 협정도 중시하지 않았다. 그가 중요하게 본 것은 물리적 소유뿐이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그는 1917년 4월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에게 〈우리는 정복으로 그곳을 차지할 것이고, 이후에도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여, 프랑스도 종래에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로이드 조지는 내각에서 유일하게 팔레스타인 획득을 시종일관 원한 인물이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조국을 조성하는 안도 지지했다."(412-3)




"로이드 조지는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는 논지를 펼쳐) 정부의 주요 민간인 각료들이 시온주의를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전시내각의 레오 에이머리와 마크 사이크스는 전후에 독일이 오스만제국을 독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렇게 되면 인도로 가는 길이 적국 수중에 떨어져 영국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위험을 피하려면 튀르크와 독일을 격퇴하고 오스만제국의 남쪽 주변부를 차지하는 것이 첩경이었다. 내각이 개전 초부터 메소포타미아 병합을 염두에 둔 것도 그래서였다. 아라비아도 독립을 주장한 현지 지배자들과 협상을 벌여 보조금도 주고 지원도 약속하여 친영파로 만들어놓았다. 그리하여 그 지역에서 취약지로 남은 곳은 이제 팔레스타인뿐이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다리로서 이집트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육로를 가로막는데다, 수에즈운하와도 가까워 운하는 물론이고 운하와 연결되는 해로도 함께 위협할 수 있는 요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425-6)




"전시내각의 또다른 인물인 옴즈비 고어가 팔레스타인 농업연구소에서 아론손이 거둔 성과에 감격한 것은, 그것이 시온주의 논점의 핵심을 건드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지 커즌이 의회에서 개진한 시온주의 문제도, 팔레스타인 정착을 원하는 수백만 유대인들을 부양하기에는 그곳의 땅이 지나치게 척박하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아랍인 원주민들도 추가 정착민을 받을 여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기존의 나라를 제거하지 않고는 두 번째 나라를 세울 공간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아론손의 발견으로 그 논점이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아론손의 연구대로라면 과학적 영농기술로 땅이 비옥해져 팔레스타인의 주민 60여만 명을 쫓아내지 않고도 수백만 명이 추가로 정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옴즈비 고어도 시온주의 유대인들이 중동의 아랍어권 및 여타 민족들을 도와 그 지역이 갱생되면, 사막이 다시금 번영을 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런던으로 돌아왔다."(429-30)




7부 중동 침략




"영국 지도자들은 중동 아랍어권 지역의 정복이 끝나갈 시점이 다가오자, 후세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1914년을 시작으로 바그다드 및 다마스쿠스의 분리주의 지도자들과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기울였던 클레이턴의 노력도, 비무슬림 통치에 반대하는 현지인들이 저항에 막혀 좌초된 바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마스쿠스가 영국군의 진군로에 포함돼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중동의 미래를 위해 연합국의 대의와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그곳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파이살이 연합국의 계획에 동의한 것도 그들에게는 무용지물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스만 정부가 시리아에 즉각 자치를 허용함으로써 아랍 민족주의에 선수를 치려 했던 보고서들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영국은 시리아 지방들에서 후세인보다 한층 좋은 평판을 얻을 조짐을 보인 다마스쿠스의 토착 아랍 지도부에 맞서, 후세인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곤혹스런 입장에 빠질 수도 있었다."(503-4)




"마크 사이크스는 1918년 중반 7인위원회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영국의 의도를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이크스의 외무부 상관들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선언문으로도 새로운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사이크스의 필치에서 나온 것들이 그렇듯 그 선언문도 사용된 단어만 달랐을 뿐 아라비아 반도 이외의 아랍권 모두, 이런저런 유럽세력권이나 통치권에 포함되도록 만든 영국의 전후 중동정책을 다시 말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이크스의 선언이 인정한 완전한 독립은 아라비아 반도에 국한돼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독립된 지역이거나 혹은 아랍인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지역들만 독립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1918년 11월 8일에는 마침내 중동에 토착정부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영국-프랑스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주장에 따라 아랍 '독립'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506-7)




"외무부는 육군성으로 하여금 앨런비에게 새롭고 중요한 지시를 내리게 함으로써, 전부터 징후를 보여온 정치적 논제를 계속 진행시켰다. 앨런비가 점령한 시리아 영토를 점령된 적의 영토가 아닌 〈독립국 지위를 갖는 동맹의 영토〉로 취급하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외무부가 〈주요 지역들에 아랍 기를 게양하고 그것에 경례하는 것과 같은 특징적 혹은 형식적 행위를 함으로써 아랍의 토착 지배권을 인정하고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간 수차례 논의되었던 지시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10월 1일 사이크스는 앨런비에게 군정 지역을 최소화하고, 프랑스의 역할도 그에 맞춰 축소시키라는 전문을 보냈다." "이렇듯 외무부는 앨런비에게 형식적으로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따르되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할 것을 주문했고, 그 점에서 외무부의 조치는 더 많은 것을 원한 프랑스, 프랑스에는 아무것도 주고 싶어 하지 않은 파이살, 혹은 카이로 아랍부의 어느 곳도 만족시키지 못한 해법이었다."(512-3)




8부 승리의 떡고물




"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가 독일의 입김 아래 있을 것으로만 알았지, 오스만정부와 독일정부의 틈이 어느 정도나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1918년에도 그들은 독일이 아시아 북부 지역 점령을 끝내고, 이제는 중부를 탈취하는 과정에 있으며, 아시아 남부의 영국 입지도 뒤흔들 채비를 했다고 믿었다. 그것이 전시에 팽배했던 관점, 다시 말해 독일이 세계제국을 건설할 야망을 갖고 있고, 그러므로 종전 뒤 아시아의 모든 지역은 독일의 거대한 노예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며, 아시아의 부와 천연자원 또한 독일 산업의 연료가 되어 종국에는 독일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관점과도 부합했다." "에이머리가 1917년 말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은 것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전쟁은 이제 문자 그대로 동방으로 향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국-독일 경계선을 결정짓기 위해 아시아의 남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이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546)




"1918년 여름 전시내각 회의에서 영국군 참모총장은 유럽전의 승리가 1919년 여름에는 힘들고 1920년 여름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영국 내각도 적군이 그토록 신속히 아니 별안간 무너지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해, (적국들과의 휴전협정을 고려하거나 그 문안을 작성하는 등의) 준비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고 실제로 며칠 뒤 영국정부의 현안이 되었다. 10월 1일에서 6일 사이에는 오스만제국 정부와 몇몇 튀르크 요인들이 강화를 타진해 오고, 10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독일이 윌슨 대통령에게 강화를 요청하여 협상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영국의 전시내각은, 영국이 지배하기를 바라는 중동 지역이 행여 영국군에 점령되기 전 전쟁이 끝날까봐 안절부절 속을 태웠다. 레오 에이머리가 종전이 되기 전에 사실상 중동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영국의 세력권에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스뫼츠와 참모총장을 닦달한 것도 그래서였다."(554-6)




"1919년 겨울 총리실은 영국 언론에 파이살의 아랍군이 앨런비 장군의 시리아 정복에 〈현저하게 기여했다〉는 것과, 그들이 〈앨런비의 군대에 앞서 시리아 내륙의 4대 도시(다마스쿠스, 홈스, 하마, 알레포)에 입성했다〉는 취지의 기밀 비망록을 배포했다. 비망록에는 파이살군이 헤자즈의 외국군이 아닌 원주민군으로서 시리아 도시들에 입성했으며, 〈그러므로 시리아를 해방시키는 데 조력한 아랍군의 대부분은 그 지방 원주민들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비망록의 취지는 아랍어권 시리아는 그들 스스로 봉기를 일으켜 해방되었고, 그러므로 (튀르크에 이어) 그곳을 다시 지배하려는 의도를 가진 서구 민주주의의 원리 또한 그곳과는 맞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로이드 조지는 실제로는 아랍인들이 기여한 부분이 〈지극히 미미〉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영국의 또 다른 주요 동맹인 파이살에게 불리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자, 파이살과 시리아의 대군이 그들 나라를 직접 해방시켰다고 주장한 것이다."(575-6)




9부 썰물은 빠지고




"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영국제국의 힘은 절정에 달했다. 중동과 여타 지역에서 점령한 영토를 추가하여, 과거 그 어느 때 혹은 세계의 그 어느 제국보다 광대한 대제국이 된 것이다. 로이드 조지는 전쟁으로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고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생이 큰 모험을 치르느라 지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시에 얻은 영토를 하나라도 더 부여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로이드 조지는 중동에 파견된 영국군만 해도 250만 명에 달하고 그중 25만 명이 죽거나 부상당한 반면, 갈리폴리 전투를 제외하면 프랑스군은 사상자가 거의 없었고 미군 또한 중동에는 발도 디밀지 않았다고 하면서, 영국은 중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평화회의에서도 그는 108만 4000명에 달하는 영국 및 제국 병력이 오스만 영토에 주둔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와 더불어 영국을 제외하면 점령군에 의미 있는 규모의 군대를 파견한 나라는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583-7)




"중동의 평화협상은 기본적으로 로이드 조지가 짠 각본에 따라 전개되었다. 이는 미국을 소비에트 러시아나 혹은 소생하여 재무장한 독일이 제기할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영국을 보호해줄 세력으로 삼는 동시에, 이탈리아 및 프랑스와도 싸움을 붙여 어부지리를 챙기려는 두 가지 속셈을 가진 각본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1918~1919년에서 1919~1920년으로 협상시점이 넘어가면서 미국이 영국의 동맹도 아니고 어느 나라의 동맹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미국이 세계정세와 '헝클어진 동맹관계'로부터 발을 빼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동맹이 어려워지자 로이드 조지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모색하여 예전과 반대되는 길을 걸을 요량으로, 그간 중동에서 취했던 반프랑스 정책을 철회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영국-프랑스 동맹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을 입은 뒤였다. 결국 중동 평화협상은 출발도 어설프고 끝은 더욱 어설픈 것이 되고 말았다."(592-3)




"미국은 터키와 싸운 교전국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윌슨은 오스만과 관련된 협상에 참여했다. 그가 제안한 14개 조항이 오스만 문제의 타결에는 적용할 수 없었지만, 정치철학의 표현으로 간주되어 국제문제는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로이드 조지도 그것을 알고 우드로 윌슨이 오스만제국의 아랍어권 지방들의 안건을 심의하려고 하자, 시리아의 독립을 위협하는 프랑스─윌슨의 14개 조항과 원칙에 반하는 위협이었다─로 그의 관심을 바꿔놓았다." "윌슨은 당연히 시리아인 스스로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했다." "아랍 대표로 평화회의에 참석한 파이살도 회의 참석자들에게, 그가 독립을 주장하는 아랍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은 배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주장에 대해 보이는 파이살의 이런 합리성은, 아랍인들의 독립 주장을 영국의 사주에 의한 속임수로 보고 그에 대해 강경노선을 고수한 프랑스의 클레망소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600-1)




10부 아시아를 덮친 폭풍우




"중동 지역에서 이윽고 분란이 시작되었다. 1918년에 시작된 독립의 요구가 1919년에 들어서는 소요로 발전해간 이집트를 시작으로, 표면상으로 이집트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아프가니스탄의 인도 변경지에서도 1919년 전쟁이 발발했다. 아라비아의 영국 정책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와해되는 조짐을 보였다. 불행은 겹쳐 일어난다고 했던가, 당시 중동의 영국 당국에는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형국이었다. 트란스요르단만 해도 부족 간 투쟁으로 혼란이 초래되고, 서팔레스타인에서도 1920년 봄 유대인을 향한 아랍인들의 폭동이 일어나며, 1920년 여름에는 이라크에서 봉기의 불길이 타올랐으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아마도 종전 뒤 (재정난으로 인해) 중동에 주둔한 영국군 병력이 충분하지 못해, 사방에서 도전해오는 적들의 기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629)




"전후 영국이 중동에서 갖고 있던 입지에 최초로 도전장을 내민 곳은 수십 년 간 영국이 '임시' 보호령으로 통치했고, 그곳의 영국 통치자들이 처음부터 아랍어권 사람들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영국의 통치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이집트였다. 하지만 문제는 영국이 이집트에 독립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한 점에 있었다. 따라서 이집트 정치인들이 그 약속을 믿고, 1차 세계대전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영국도 이제는 이집트에 독립의 일정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고 여긴다고 해서 사리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다." "술탄과 이집트의 지도부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한 독립이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에 많이 의존했던 영국으로서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집트 지도부와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마저 실패하여 영국은 결국 현지 정치인들의 동의 없이 군대의 힘으로 지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631-6)




"아프가니스탄은 인도 평원으로 이어지는 고개들이 있는 영국의 또 다른 전략거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국도 1세기 동안 여러 차례 유혈낭자한 전쟁을 치르며, 적대국(러시아)이 그 험준한 산악왕국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1907년 영국-러시아 협정 체결로, 아프가니스탄이 영국 보호령임을 인정받음으로써 그 문제도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졌다." "재차 발발한 제3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결짓는 라왈핀디 조약이 조인된 것은 1919년 8월 8일 오전이었다. 영국이 적대적 외세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악왕국으로부터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 보유했던 외교권을 철회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완전한 독립을 부여하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그런데 라왈핀디 조약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아프간 정부는 새롭게 얻은 자국의 독립을 볼셰비키 정부와 조약을 체결하는 데 사용했다. 이렇게 영국이 지난 십수년 간 아프간을 보호령으로 삼은 결과 얻은 것은 우호가 아닌 원한이었다."(637-40)




"아라비아에서는 영국의 두 주요 동맹인 헤자즈의 왕 후세인과 나지드의 왕 이브 사우드가 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분쟁은 후세인의 지배권이 끝나고 이븐 사우드의 지배권이 시작되는 국경지대의 조그만 도시풍 오아시스들이었던 (알)쿠르마와 투라바에 집중되었다. 그곳들의 점유가 보기보다 중요했던 것은 너른 목초지와 더불어 부족들의 충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이븐 사우드는 선대로부터 18세기의 종교 지도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와하브주의 신봉자였다. 1745년에 맺은 양가의 동맹관계도 두 집안의 잦은 혼인으로 더욱 돈독해졌다. 문제는 이 와하브주의자들(와하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와하비로 불렀다)이 그것에 적대적인 사람들에게는 광신도로 보일 만큼 엄격한 청교도적 이슬람을 표방했고, 예리한 감각을 지닌 이븐 사우드가 와하브의 그런 광신적 에너지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할 생각을 했다는 점에 있었다."(642-3)




"후세인이 자신의 권위가 침해당한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도 이런 청교도적 이슬람이 부근의 헤자즈 지방으로 스며들어왔기 때문이다. 정통 수니파였던 그에게 와하브주의는 교의적이고 정치적인 적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근절시키기 위해 쿠르마와 투라바로 되풀이해서 군대를 보냈으나 가는 족족 패하기만 했다." "1921년 말에 이르면, 전투병력만 15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흐완('종교상의 형제들'이라는 뜻)을 선발대로 내세운 이븐 사우드군은 아라비아를 완전히 정복할 기세였다. 1920년 9월 20일에는 《타임스》의 중동 전문 특파원마저, 카이로의 아랍부가 후세인을 이슬람 칼리프로 만들려고 한 정책은 실패작이었음이 드러났다는 기사를 썼다. 그는 이븐 사우드가 헤자즈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그의 말대로 이븐 사우드는 4년 뒤인 1924년 헤자즈를 점령하고 후세인을 망명길로 내몰았다." "영국은 이렇듯 중동제국의 서쪽과 동쪽뿐 아니라 남쪽 경계지에서도 더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644-5)




"한편 무드로스 휴전협정이 체결된 1919년 말엽 오스만제국에서 실시된 하원 총선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압도적 다수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새로 뽑힌 의원들은 하원이 소집되기도 전, 터키 내륙 깊숙이 위치하여 바다와 영국 함대의 대포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고, 서른여덟 살의 민족주의 지도자 무스타파 케말이 새로운 투쟁기지로 삼은 곳이기도 한 앙고라(지금의 터키 수도 앙카라)에 모여들어, 민족계약National Pact으로 알려진 케말주의적 정치원리가 담긴 선언문을 채택하여 열화와 같은 대중의 성원을 받았다." "1920년 1월 중순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하원이 소집되고 1920년 1월 28일에는 하원이 비밀회의를 열어 민족계약의 채택을 의결한 뒤 2월 17일 대중에 그 사실을 공표했다." "20세기의 정치적 논제가 유럽 주변 대륙들에 대한 유럽 지배의 종식에 있었다면, 오스만 의회의 독립선언이야말로 20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만했다."(646-7)




"앙고라에 수립된 케말의 터키정부가 처음 결정한 사항은 러시아로 사절단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나라 간에는 우호관계가 수립되었으나, 조약)1921년 3월 16일에 조인된 모스크바 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1년 여의 기간이 걸렸다." "당시 스탈린은 인종문제와 국가통제인민위원이었다. 그랬던 만큼 볼셰비키 이데올로기보다는 러시아의 국가 이익을 우선시했을테고, 그래서 케말이 (볼셰비키 운동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과는 별개로) 영국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 현실주의적 아니 냉소적 볼셰비키였던 그로서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케말을 지원할 만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전례 없이 많은 양의 소비에트 자금과 물자가 반볼셰비키 민족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터키 국경지대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외국의 정치운동에 제공한 최초의 중요한 군사원조였다."(649-50)




"시리아에서는 세 개의 주요 급진적 민족주의 단체가 활동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출신의 아랍계 오스만군 장교들로 구성되었던 만큼 당연히 메소포타미아 지방들의 미래를 관건으로 삼은 알 하드, 대다수가 팔레스타인 출신 아랍인들이어서 파이살이 시온주의자들에게 해준 약속을 철회하도록 압력 넣는 것에 전력투구한 반시온주의 조직인 아랍 클럽, 세 단체들 중 명성이 가장 높았던 알 파타트(청년 아랍협회)가 그들이었다." "시리아 의회는 1919년 중반 소집되기 무섭게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냈다. 지금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이 포함되는 대시리아 독립국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는 방식, 혹은 프랑스의 요구에 맞서 미국, 영국, 시온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으려 했던 파이살의 계획과는 상충하는 요구사항이었다." "1920년 1월 말에는 호전적 민족주의자들이 시리아 의회를 장악한 채 (프랑스의 느슨한 위임통치를 인정한) 파이살-클라망소 협정을 부결시켰다."(658-60)




"그러나 시리아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지와 파이살의 입지 모두 영국이 없으면 무너질 허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1920년 7월 26일에는 프랑스군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했고, 7월 28일에는 파이살이 망명을 떠났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몇 개의 하부 지역으로 나누었다. 지금의 레바논이 된 대레바논도 그중 하나였다. 1920년 8월 1일 구로 장군이 선언한 대레바논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프랑스의 직접 통치지역으로 명시된 곳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그곳에는 옛 오스만제국의 한 지방이었던 레바논─프랑스의 후원을 받는 마론파 기독교도와 전통적으로 그들의 적이었던 드루즈파의 중심지─외에 해안가 도시들인 베이루트, 트리폴리, 시돈, 티레, 그리고 레바논 내륙의 상당 지역에 걸쳐 있던 알비카(베카) 골짜기도 포함되었다. 기독교도 근거지인 레바논에 생경한 지역들이 추가된 것이고, 그에 따라 다수의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 인구도 그곳으로 유입되었다."(662-4)




"프랑스 정부는 시리아를 정복하기 위한 군사 행동을 하는 것과 더불어, 부근의 팔레스타인이 '시온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외교와 선전운동도 함께 펼쳤다." "하지만 1920년 프랑스가 영국의 이익에 직접적 위협을 가한 곳은 그곳들이 아닌, 장차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75퍼센트 정도를 접하게 될 요르단 강 동안의 인구가 적은 트란스요르단이었다. 부족적 삶과 구조로 보면 아라비아에 가깝고, 역사적으로는 많은 지역이 성서의 땅에 속해 있었으며, 과거 한때는 아라비아의 로마 속주에 속해 있기도 했던 복잡다단한 지역이었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가을에는 앨런비 장군이 그곳을 점령한 뒤 파이살이 통치하는 무능한 다마스쿠스 정부에 일임해 두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곳은 방치돼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의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실책이었다. 프랑스가 다마스쿠스에서 파이살 세력을 몰아낸 뒤 파이살의 계승자를 자임하며 트란스요르단의 지배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666-8)




"1917~1918년 앨런비 장군의 점령에 이어 팔레스타인에는 군정이 수립되었다. 그와 더불어 평판 나쁘고 수행하기 힘든 짐을 떠맡은 것에 대한 영국정부의 고난도 함께 시작되었다. 벨푸어선언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의 조국을 창설하는 문제를 두고 이해 당사자들끼리 군정 기간 내내 실랑이를 벌인 탓이다." "클레이턴만 해도 시온주의를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공동체를 전 세계 유대인들의 문화·정서적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확장하되, 유대인 국가가 아닌 다민족 국가로서의 영국 통치령으로 받아들였다. 팔레스타인의 다른 영국군 장교들은 심지어 그런 한정된 시온주의조차 인정하지 않고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아랍인들을 지지했다." "반면에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벨푸어선언이 영국정부의 확고한 정책이고 따라서 반드시 실행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며, 그렇게 하면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도 군말 없이 그 정책을 따를 것이고, 나아가 그것의 이점에도 눈뜨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672-3)




"로이드 조지는 바스라와 바그다드 그리고 모술에 대한 통치방법을 구상할 때, 그 세 곳이 단일 정치체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이라크(영국이 메소포타미아 지역들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한 아랍식 명칭)는 단일 정치체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분열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이라는 뜻)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모술을 구태여 이라크에 포함시키려 한 것도, 그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유전을 보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널드 윌슨은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갈등을 메소포타미아의 근본적 문제로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 200만 명에 달하는 메소포타미아의 시아파 무슬림이 소수파인 수니파 무슬림의 지배를 수용하지 않을 것은 뻔한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수니파 지배가 수반되지 않은 정부 형태 또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윌슨의 보고에 따르면 이라크 주민의 75퍼센트는 〈정부에 한 번도 복종해본 적이 없는〉 부족이었다."(679-80)




"페르시아의 스러져 가는 카자르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무력한 젊은 군주 아흐마드 샤는 목숨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형편인데다, 그렇지 않더라도 친영파 인물을 총리에 앉혀두는 조건으로 영국정부의 정례 보조금을 받는 처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커즌의 지휘 아래 테헤란의 영국 공사와 페르시아 총리 및 그의 두 동료 관리들 간에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 협상에서 페르시아 대표들은 조인의 조건으로 영국에 13만 파운드를 요구하여 몰래 받아 챙긴 뒤 협정문에 서명하였다. 영국-페르시아 협정은 이런 협잡 끝에 1919년 8월 9일 조인되었다." "그러나 1921년 2월 21일 대령 레자 칸이 카자크 병력 3,000명을 이끌고 테헤란으로 진군, 권력을 탈취하고 스스로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지 고작 닷새밖에 안 된 2월 26일 테헤란의 신정부는 소비에트 러시아와 우호조약을 맺었다." "이렇게 해서 세 이슬람 국가들(터키,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반영 동맹국이 되었다."(689-96)




11부 러시아, 중동에 돌아오다




"소비에트가 페르시아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터키 민족주의를 후원하고, 이라크 봉기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운동들 중 어느 것도 그들이 직접 고취하거나 지휘하지는 않았다. 중동 일대를 휩쓴 봉기가 볼셰비키 러시아가 연루된 광범위한 국제 음모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은 것은 영국의 망상이었다. 중동 사태는 일련의 어설픈 봉기들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중 많은 것들이 개별적 혹은 지역적 상황에 따라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따라서 그 운동들을 이용은 했을망정, 볼셰비키와 볼셰비키주의가 그 운동들에서 현저한 역할을 한 것은 없었다." "영국 관리들은 종전 뒤 중동에서 일어난 봉기들을 오래된 음모자들이 꾸민 사악한 음모로 규정했다. 영국 정보부는 볼셰비키와 국제 금융, 범아랍주의와 범튀르크주의, 이슬람과 러시아도 거대한 음모의 공범자들인 국제적 유대인 공동체들과 독일-프로이센이 이용한 재료로 보았다."(701-3)




"1919년 외무장관이 된 조지 커즌은 러시아와의 거대한 게임을 열렬히 옹호한 인물답게 러시아의 세력 팽창에 맞서 영국의 군사적 입지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러시아에서 독립한 남카프카스와 북부 페르시아에도 확고한 방어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커즌과 외무부 사무차관 하딩은 중동의 어느 한 지역을 러시아에 빼앗기면 도미노효과로 나머지 지역도 잃게 될 것이고, 그러다 나중에는 인도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인도장관 에드윈 몬터규와 인도 부왕 쳄스퍼드 남작 3세는 볼셰비키 러시아의 위협이 군사적인 면보다는 정치적인 면에 치중될 것이고, 그러므로 러시아와의 경쟁도 이슬람권 아시아 일대의 민족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영국은 중동의 민족주의 세력을 러시아로 돌아서게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하면서, 그 상황에 영국군까지 주둔시키면 민족주의 세력은 영국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710-1)




12부 1922년의 타결




"1921년 2월 식민장관으로 취임했을 당시 처칠에게는 이미 적은 비용으로도 중동을 지배할 수 있는 광범위한 복안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난날 육군장관과 공군장관을 겸직했을 때도 그는 비행기와 장갑차로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여, 중동의 유지비를 줄이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그가 쓴 글에) 방비가 잘된 공군 기지 몇 곳만 있으면 〈병력과 돈만 잡아먹는 기나긴 병참선 없이도〉 영국 공군은 〈보호령들을 충분히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록된 것도 그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처칠도 인정했듯이 외부의 침략에서 메소포타미아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의 '내적 안정 유지'를 유일한 목표로 삼은 전략이었다. 처칠이 중동에서의 영국 문제를 외부가 아닌 내부, 내적 분란에서 찾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대에 뒤쳐진 제국주의적 관념을 내포하고 있던) 처칠의 전략은 토착민의 봉기 진압에 주안점을 두었던 만큼, 동의가 아닌 강압으로 아랍인을 통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751-2)




# 카이로 회의의 네 가지 기본 안건(1921년 3월 21일)

1. 메소포타미아(이라크) 문제 : 파이살에게 왕위를 부여하며, 원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왕위를 제공한 것처럼 꾸민다.

2. 쿠르드족 지역 문제 : 이라크 편입 또는 쿠르디스탄 독립 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여 현행 독립체 상태를 유지한다.

3. 트란스요르단 문제 : 파이살의 형 압둘라를 임시 총리로 임명하여 반프랑스 운동과 반시온주의 운동을 억제한다.

4. 이븐 사우드 문제 : 하심가 왕족(파이살, 압둘라)의 승승장구에 반발할 여지가 있으므로 연간 보조금을 인상해준다.




"파이살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위임통치령에 반대하고 이라크('뿌리가 튼튼한 나라'라는 뜻)의 정식 독립을 요구하여 영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라크와 영국의 관계를 국제연맹의 결정이 아닌, 양국 간의 조약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에 대해 영국은 국제연맹의 승인 없이 이라크의 지위를 바꿀 법적 권한이 자신들에게는 없다고 맞섰다. 다만 위임통치령과 관련된 것이면 조약 협상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파이살은 위임통치령과 관련된 어떠한 문구도 조약에 포함시키기를 거부했다. 그런 식으로 협상은 런던에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며 1년 넘게 지지부진 계속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라크와 이집트가 얻은 것은 제한된 자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국가의 지위는 갖게 되었다. 이라크와 이집트 모두 정치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했다. 영국에 의해 임명된 군주들도 그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764-6)




"압둘라를 트란스요르단 지배자로 남겨둠으로써 파생되는 문제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처칠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것은, 그로 인해 영국이 사우드가와 하심가가 벌이는 아라비아의 극렬한 종교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 식민성이 트란스요르단에 잠정적으로 취한 일련의 행정적 조치들로 그곳은 영속적인 정치적 실체로 굳어져 갔다. 아라비아 왕자가 외국 수행원들과 암만에 정착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이라는 복잡한 통치체제 속에 항구적 요소로 뿌리내린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본래 그곳의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분할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간 되풀이된 제안이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영토의 75퍼센트가 이미 그곳 사람도 아닌 아랍 왕조에 돌아가 버린 형국이었다. 훗날 입헌국가 요르단으로 독립하게 될 트란스요르단은 이렇게 팔레스타인에서 분리된 개별 정치체로 서서히 발전해갔다. 그리하여 지금은 요르단이 지난날 팔레스타인의 일부였다는 사실마저도 잊을 정도가 되었다."(772-3)




# 사우디아라비아 왕국과 요르단 하심 왕국의 대립




"1921년 아민 알 후세이니가 예루살렘의 대 무프티(최고의 법률적 권위자) 겸 팔레스타인 무슬림 지도자가 되었을 때 리치먼드는 그로 인해 시온주의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타격을 받은 쪽은 오히려 아랍인들이었다. 대 무프티가 아랍인들을 피투성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감으로써, 시온주의에 가하려던 것보다 오히려 더 끔찍하고 파괴적인 피해를 그들에게 입힌 탓이었다. 아만 알 후세이니는 '모 아니면 도' 식의 모험가였다. 그러다 보니 아랍인-유대인 문제도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어느 한쪽이 쫓겨나거나 소멸되어야 끝장이 나는 극단으로 몰고 가 아랍 영토와 아랍인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런 극단적 행보를 이어가던 끝에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결국은 나치 독일에 가서 아돌프 히틀러와도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그가 아랍권 팔레스타인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아민 알 후세이니와 지도자 자리를 놓고 겨룬 여러 명의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779-80)




"아랍 지도부와 시온주의 지도부는 벨푸어선언을 구체화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위임통치령 내용과 시온주의에 대한 영국의 공약이 대폭 축소된 영국정부의 백서도 거부한다는 전문을 런던 식민성에 보낸 아랍회의 집행위원회와 달리, 하임 바이츠만 박사는 일단 그것으로 유대인들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에서 발전을 이루어 자치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기틀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영국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온주의 지도부는 시간이 가면 상황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으로 처칠이 부여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아랍회의 집행위원회는 시간이 가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처칠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거부한 것이다. 1922년 7월 22일에는 국제연맹이, 영국이 요르단 강 서안에 (처칠이 고쳐 쓴) 벨푸어선언을 실행하도록 명시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을 최종 승인했다."(791-2)




"오스만제국의 아랍어권 지역은 튀르크의 지배를 더는 받지 않게 되었다. 동쪽에 메소포타미아에는 아라비아 왕자(파이살)가 지배하고 쿠르드족,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유대인 인구가 뒤섞인 신생국가 이라크가 세워졌다. 독립국의 외양은 갖췄으나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보호령이었다. 이라크에 접한 시리아와 크게 확대된 레바논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강 동안에는 앞으로 입헌국가 요르단으로 독립하게 될 신생 아랍국이 수립되고, 요르단 강 서안은 유대민족의 조국이 들어설 때까지 당분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따라서 처칠이 원했던 오스만제국의 재건된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재편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식민장관 처칠이 설정했던 주요 목표들은 달성한 셈이었다. 그가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비용절감을 관철시킨 것만 해도 그랬다. 경제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군사체계를 확립한 것도 처칠이 거둔 큰 성과였다."(795)




"중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유럽 국가들이 재편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시스템만 구축해 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 전시와 종전 뒤 영국과 연합국은 중동의 구질서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숴놓았다. 아랍어권 지역에서의 오스만 체제를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시킨 뒤 그 자리에 나라들을 세우고, 지배자들을 임명하며, 국경선을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국가시스템 비슷한 것을 도입했으나, 그것에 반발하는 현지인들의 저항까지 죄다 물리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중동 분규가 여타 지역의 분규와 비교하여 특별했던 것은, 1922년 초 영국과 프랑스가 합의한 내용에 따라 그 즉시 모습을 드러냈거나 혹은 종국에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나라들의 규모와 경계는 물론이고 그 나라들의 존립권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내포돼 있다는 점이었다."(863-4)




"유럽의 정치 가설은 그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이론이 되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중 하나, 세속적 문민정부에 대한 현대적 믿음만은, 정치를 포함해 삶의 모든 양상을 지배하는 이슬람 율법을 1,000년 넘게 신봉해온 사람들이 사는 중동에서는 이질적 존재였다." "종교적 이유로든 그밖의 또 다른 이유로든, 1922년의 타결 혹은 그것의 토대가 된 근본적 가설에 맞서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중동 정치의 특징이 된 것도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이해가 부족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동에는 합법성에 대한 인식─게임의 규칙이 없다는 것─이 없고,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믿음도 없으며, 경계지 내에서는 어느 곳이든 나라로 부르면 나라가 되고, 지배자를 칭하면 지배자가 되는 곳이었다. 그 점에서 연합국이 제아무리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오스만제국의 계승자들을 들어앉혔다고 주장한다 한들, 중동에는 아직 술탄의 진정한 계승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8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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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21-05-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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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중동의 국경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 알겠다

두껍다.2009년에 발간 20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2015년 1월이 초판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게 아닐까?이미 이 책을 능가하는 저작이 나왔어야 하는 시기에 겨우 번역이 나왔다니.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중동은 마이너리그다.중동, 아랍 세계에 대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 소중한 교과서다.일독, 정말 필요하다!
알퐁소 2015-05-0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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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현대 중동의 탄생

중동에 대해 큰 관심은 없지만 우연히 검색해 본 이 책의 평가가 칭찬 일색인 것을 보고 궁금해져 어쩐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책은 뭘 읽던 좋으니까.
아침에 출근 할 때 마다 운전해서 갈까 아님 지하철 타고 책 읽으면서 갈까 조금 고민했다. 오래 읽을 수록 앞부분의 기억이 소실 돼 책 읽는 즐거움이 확실히 반감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빨리 좀 읽어 치우고 싶어졌다. 8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이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운동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동의 근대사라니 꽤나 따분할 것 같지만 인물 중심으로 서술돼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게 쓰였는데도 중동에 대한 내 밑천이 워낙 없어서 흡사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것 마냥 인물 관계도만 떠올리기도 벅찼다. 끊었다 읽을 때 마다 리셋되는 나의 기억. 이런 고충 다들 알고 있지…?
모든 책에는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는 일념으로 읽어 나갔다. 완독만이 목표라는 듯. 마치 보잉 747기의 조립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니 대체 일개 소시민일 뿐인 내가 왜 이런 외교 정치 공학의 메커니즘까지 상세히 알아야 되는거지! 갑자기 짜증이 솟구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부품이 하나 하나 끼워 맞춰지고 짜잔 완성된 모습을 보았다. 현대에도 중동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은 약 100년 전 이른바 유럽 열강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다툼을 벌인 결과라는 것. 그리고 또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인간들의 한계로 어리석은 결정들이 쌓여온 결과라는 것. 과연 세계사란 그런 모든 인간들의 삶의 총합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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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ugh 2019-09-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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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FromkinDavid From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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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a OakesKaya Oa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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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to End All Peace, 20th Anniversary Edition: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Creation of the Modern Middle East 
Paperback
 – 21 July 2009
by David Fromkin (Author)

4.6 4.6 out of 5 stars 1,503 ratings

Edition: 20th Anniversary ed.

Published with a new afterword from the author--the classic, bestselling account of how the modern Middle East was created

The Middle East has long been a region of rival religions, ideologies, nationalisms, and ambitions. All of these conflicts--including the hostilities between Arabs and Israelis, and the violent challenges posed by Iraq's competing sects--are rooted in the region's political inheritance: the arrangements, unities, and divisions imposed by the Allies after the First World War.




In A Peace to End All Peace, David Fromkin reveals how and why the Allies drew lines on an empty map that remade the geography and politics of the Middle East. Focusing on the formative years of 1914 to 1922, when all seemed possible, he delivers in this sweeping and magisterial book the definitive account of this defining time, showing how the choices narrowed and the Middle East began along a road that led to the conflicts and confusion that continue to this day.






A new afterword from Fromkin, written for this edition of the book, includes his invaluable, updated assessment of this region of the world today, and on what this history has to teach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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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Wonderful...No book published in recent years has more lasting relevance to our understanding of the Middle East." --Jack Miles, Los Angeles Book Review

"Extraordinarily ambitious, provocative and vividly written...Fromkin unfolds a gripping tale of diplomatic double-dealing, military incompetence and political upheaval." --Reid Beddow, Washington Post Book World

"Ambitious and splendid...An epic tale of ruin and disillusion...of great men, their large deeds and even larger follies." --Fouad Ajami, The Wall Street Journal

"[It] achieves an ideal of historical writing: its absorbing narrative not only recounts past events but offers a useful way to think about them....The book demands close attention and repays it. Much of the information here was not available until recent decades, and almost every page brings us news about a past that troubles the present." --Naomi Bliven, The New Yorker

"One of the first books to take an effective panoramic view of what was happening, not only in Egypt, Palestine, Turkey, and the Arab regions of Asia but also in Afghanistan and central Asia....Readers will come away from A Peace to End All Peace not only enlightened but challenged--challenged in a way that is brought home by the irony of the title."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About the Author
David Fromkin (1932-2017) was a professor at Boston University and the author of several acclaimed books of nonfiction, including A Peace to End All Peace, The King and the Cowboy: Theodore Roosevelt and Edward the Seventh, Secret Partners. He lived in New York City.

Product details
Publisher ‏ : ‎ Picador Paper; 20th Anniversary ed. edition (21 July 2009)
Language ‏ : ‎ English
Paperback ‏ : ‎ 690 pages



Amin k

5.0 out of 5 stars Very happy!Reviewed in Australia on 18 Augus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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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arrived earlier than expected, and it was exactly as descri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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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5.0 out of 5 stars Great readReviewed in Canada on 1 March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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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 informative review on how middle eastern unrest was sta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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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
5.0 out of 5 stars excellent analyseReviewed in France on 5 Decemb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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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livre qui n'a pas été traduit en français ! quel domm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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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io Bernardini
5.0 out of 5 stars Assolutamente da leggereReviewed in Italy on 28 Februar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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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o libro e bellissimo. Se si vuole capire qualcosa sulla Prima Guerra Mondiale che vada oltre i libri di testo di scuola bisogna leggerlo. Con la scusa di parlare della guerra sul fronte Ottomano, l’autore di fatto scrive una storia della Prima Guerra Mondiale incentrato non sulke battaglie ma sulla politica che ha influenzato l’andamento della guerra. Due cose appaiono in modo originale. Primo: la guerra sarebbe potuta finire prima (forse nel 1917) se Churchill e Loyd George avessero potuto far prevalere la loro strategia. Secondo: Laurence d’Arabia tanto osannato come eroe ne esce con le ossa rotte, risulta essere un impostore, un millantatore di successi mai avuti. Per capire questo leggere il libro ne vale veramente il prez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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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ic
5.0 out of 5 stars Marvellous Book about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Creation of the Modern Middle East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9 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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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btitle of this book is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Creation of the Modern Middle East", and that gives one a pretty good idea of what the book covers. Extremely well researched and documented by the American author, lawyer, and historian, David Fromkin, the book describes in detail—including much "insider" detail—about the complex, Machiavellian maneuvering of the imperial powers—Britain, France, Germany, Austria-Hungary, the Ottoman Empire, and Russia—in the theater of what we now call the "Middle East" in the period between 1914 and 1922, in other words, the imperial struggle that we label the First World War or the Great War. The book is particularly good at elucidating the machinations of (and struggles among) the British Foreign Office, Kitchener of Khartoum, and the India Office and their complicated relations with the French, the Turks and the Arabs that turned the "War to End All Wars" into what we now know today as "A Peace to End All Peace". Unflattering pictures emerge of David Lloyd George, Winston Churchill, Lord Kitchener and a host of Arab and Ottoman leaders; but they are condemned by their actions and not by slurs from Fromkin. Can't be read without taking notes unless you have a total photographic memory. Amazing how the best histories are not written by esteemed academic histor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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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kas
5.0 out of 5 stars Good presentation of a complex part of historyReviewed in India on 31 Jul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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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ly presented with facts and analysis. However, Paperback version has small font size which strains the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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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vor
1,340 reviews · 22.7k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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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31, 2017
This is an odd book in many ways. Not least because it is a history of the Middle East that is structured around a major character’s life. Now, you might think that such a life might well be someone who lived in the Middle-East. No chance, really, when you think about it – books written in the West are much more likely to focus on someone also from the West, even when discussing the history of the East… It’s just what we do.

The life chosen was that of Winston Churchill. I'm not trying to say that Churchill wasn't an important figure in the history of the Middle East at and around the time of the First World War. Anything but. However, for a book whose subtitle is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creation of the Modern Middle East' it wouldn't be outrageous to expect that the author might have focused more on someone other than an English politician.

This book is really about the British Government's role in mucking about in the Middle East during and shortly after the First World War. As such, it is very comprehensive – well, you know, says someone who is not all that aware of much of this history - and so it might not be nearly as comprehensive or as accurate as l think. Still, he gives lots of examples from documents, conversations, letters, diary entries and so on. All this adds to an interesting account of many of the sorts of events (and so on) that we've all heard something about over the years - however vague or knowledge.

The problem is how British centred this is. You don’t really get nearly enough of a perspective even from other European nations involved in all this, you know, from say-Germany or France in this long story of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Given Germany was an allay in the war, you might think more of their relationship and the key players involved in that might have made it into this book - but for every page on that there would have been 20 on British politicians.

It is not that you hear nothing about the interests and manoeuvres of other powers in the region. Clearly, they had interests and parts to play, but we often only hear of those to the extent that they relate to the British interests and actors. So, while you come away from this with a fairly detailed understanding of Lloyd George's feelings concerning the likely problems associated with the future of the Middle East after the war, you don't get anything like the same detail of anyone else's opinion from any other nation, other than perhaps Stalin's. But even this is hardly something you could really compare.

You do get endless detail on the motivations and reasoning of the British but pretty well only the basic actions of everyone else.

T.E. Lawrence (of Arabia fame) gets a bit of a kicking here. Not only are we told most of what we know of him from the famous film is basically rubbish, but he comes across as mostly a liar and self-serving fool.

Churchill, however, is the hero of the hour, but one that is overall misunderstood or even the fall-guy for the mistakes of others. Again, this might well be an accurate assessment of him and his role-during this phase of his political career, I don't really know, but this book had the smell of hagiography about it.

Let me give one example of what I had hoped this book would give me and why I ended up feeling that it didn’t give me nearly what I wanted. A case in point is around the Zionist movement and the relationship it had with the local Palestinians. A long time ago a friend of mine from Lebanon told me the Palestinians couldn't really complain about Israel, as they had sold so much their own land to the Jews it is hard to know what else they could really have expected? This is something mentioned in this book too. So, I was hoping that I would get some idea of just how significant this sell-off of Palestinian land to the Jews might have been. I was hoping to get some perspective of what it might have amounted to. Clearly, land was sold-but how much was sold? As a proportion of the total land area of Palestine-was it perhaps ten per cent? Twenty? Or was it perhaps not a lot of the land, per se, but strategically important land? None of these questions are answered. It seems some land was definitely sold, but how much and what this all amounted to politically or economically or geographically is harder to say. You see my point? Was it enough to justify the Palestinians no longer having a claim to their homeland? What is presented here is enough to make you think, as my friend had said, that they had it coming. But I still don't really know.

Zionism plays a very large part in this book – both as something coming out of the British government’s position given the Balfour Declaration, but also from Churchill’s idea that Jews were likely to fall into 3 categories: those that took an interest in the local politics of the country where they lived, those that wanted a Jewish homeland, or those that supported the Soviet Union. Since the two main options were Zionist or Communism, Churchill supported the Zionists as a way to encourage the Jews away from Marxism. I would have liked more information on the overall implications of all this, but since Churchill is presented as a bit of a saint, it is hard to know if his perspective on even this theme might be considered wise, foolish or somewhere in between. The problem I have with this book, then, is that I sort of don’t trust what I'm reading, even if I'm left unsure. Because the book is so strongly focused on the English, it is hard to know the motivations of any of the other players. Other countries are presented as inconveniences to English policy, which is too often presented as if it was something other than fundamentally self-serving.

I would have liked more of the perspective of the Ottomans, Turks, Iraqis, Persians...you know, Middle Easterners – and while there was some of this, it all felt like it was far too little. A book written from inside the Ottoman empire looking out would have been a book about what the title of this book implied. One written from within Whitehall, not so mu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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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ole
268 reviews · 238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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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5, 2019
This book talks about its subject so accurately and in detail that I think it is enough on its own as an excellent source to know about the origin of the Middle East and the events that happened in Europe during the First World War.
How the countries of Syria, Iraq, Saudi Arabia, Jordan, present day Turkey, Lebanon, Israel and Palestine came into being,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rofound influence of the Allies on the main destiny of the Middle East today, the differences that arose between the Allies after the First World War and the huge effects of the Middle East issue in The process of these differences is fully explained.
The translation and editing were flawless and I will definitely go to the rest of the books of the world history series published by Mahi. In short, I literally enjoyed read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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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Deerb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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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0, 2017
Anyone who is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our Arab region, our countries, and how our Arab countries were created should read the book.
The documents and papers collected and used in this book are the latest documents that were released from decision-making circles in Europe and America.
As usual, there is a complete absence of Arabs, except for some figures. I do not want to accuse them of being collaborators, but they were a puppet in the hands of the colonialists.

I advise everyone to rea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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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med Abdel Fatt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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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4, 2013
The reader can only tentatively applaud the author's perseverance and perseverance in collecting so many sources from books, documents, and memoirs to compose this largely coherent story of the emergence of the modern so-called "Middle East."

In addition to the great effort of the author, we cannot forget the distinguished effort of the translator to produce the book in this dazzling image.

The book relies mainly on British sources to narrate what happened without relying on them solely from the author, as it shows in many places the errors of the views adopted by the British government regarding many issues, focusing on the conflict within the British bureaucracy between the Ministries of War and Foreign Affairs, the Ministry of Indian Affairs, and the Government of India. The British, the Ministry of Finance, and the House of Commons often adopted contradictory views regarding what should be done in the Middle East and toward the position on Russia and the Ottoman Empire. The book is, in part, a history of the workings of the British state, especially that part of it related to war affairs.

However, the author did not rely only on British sources, but he relied extensively on French, Russian, German, American, Zionist, and Arab sources to compose his own novel.

The book has two main advantages in my opinion:

First: It is the first book, for me at least, that places Russia at the heart of the global game that took place in our region with such clarity, and traditional and nationalist histories have accustomed us to limiting the conflict to two parties, England and France.
He explained the nature of the great game that was going on in the nineteenth century between Britain and Russia to prevent the latter from threatening India and the impact that had on the Middle Eastern world.

Second: It fills major gaps in the traditional narrative of what happened, especially those related to the nature of the British state and how it could be dealt with, and the nature of the alliances that Britain made in the region with Arabs, Jews, and Armenians alike, and how those alliances influenced the emergence of the modern Arab states. It also includes Great benefits for students of the emergence of Arab nationalism and its relationship to colonialism and others.


It also has two major defects:

The first is that the Arab version of events “almost” neglects, that is, how the people of the “Middle East” thought about what actually happened, and the Arab voice appears in the book mostly through British government reports about it and the nature of its alliances or conflicts with it, so this voice has always been He comes out with a fair amount of orientalism.

Second: The author has clear sympathy for Zionist claims in Palestine, and in general the period he studies forced him to largely ignore Zionism in general in the midst of the events that the world was witnessing at the time.

In summary, the book provides a good, detailed account of what happened in the “Middle East” that can be greatly benefited from in knowing the effects of the 1922 settlement and the impact of World War I on our present world until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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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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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7, 2022
David Framkin, professor of history and researcher of the Middle East, in the huge book The Peace That Destroyed All Peace, has told two historical stories full of details that finally connected and created a region called the Middle East or West Asia with a population of about 450 million. people have formed His first story begins with the decision of Lord Kitchener, the Secretary of War in Henry Asquith's cabinet , to commission Sir Mark Sykes to work out a map of the Middle East or, more correctly, the details of the division of the Middle East. They did not have the needs and desires of the people of the Middle East, from their point of view, the only question was where the borders of France and more importantly, Russia should be on this map. In this way, the Sykes-Picot treaty was concluded based on the division of the Ottoman Empire between France and England and giving less important parts to Russia and Italy
between France and England. Mr. Framkin's second story deals with the change of mind of the new British government and its Prime Minister Lloyd George , when it came time to implement the treaty, the new British statesmen no longer believed in it, Lloyd George considered the presence of his former allies Russia and France in the Middle East dangerous and He knew it was disastrous. The result of the change of opinion in Europe and the joining of these two stories led to the formation of a group of countries in this region, which, from the author's sharp perspective, have not yet become a nation. Therefore, the continuation of the great game this time takes place in the Ottoman land, and of course sometimes in the Balkans and sometimes in Central Asia, and the main players are England and the Ottoman Empire, and in the next stage, Russia and France, then Italy, America and Germany, and the men of this great game Although the role of Churchill, Lord Kitchener and Mark Sykes is rightly considered by the author to be very strong, but together with them, Lloyd George, the prime minister of the British Empire during the war, had a very prominent and perhaps more important role than them.
Although the author has written important articles about the Ottoman Empire and its foreign policy, the book is from the time of the First World War, which is accelerating, despite the declaration of neutrality of the Ottomans at the beginning, a series of factors led them to an unwanted war, and this resulted in There was a chain of unforeseen events that eventually created the Middle East and the Middle East problem.
The interesting point of this story is the miscalculation of the old colonialist and the young Churchill in not handing over two warships to the Ottomans, for which men and women, old and young, had participated in this project by giving money or donating gold. England's bad faith gave Germany the opportunity to get close to the Ottomans, Framkin has described with a lot of details the chase of the two German cruisers Goben and Breslav and their entry into the Black Sea and their fake sale to the Ottomans, these two cruisers then By attacking the coasts and ports of Russia, it caused the Ottomans to join the German-Austrian and Hungarian fronts against their will and fight with Great Britain, France, Russia and then Italy.
The author then focuses on two main topics, namely Lenin's role in ending the war on the Eastern Front at the end of the war and the Battle of GallipoliAt the beginning of the war, Framkin, although he briefly discussed the futile war and the terrible killing of soldiers and of course the futility of war, but in the Gallipoli part this can be seen better, Churchill's stubbornness and lack of information caused a war that resulted in half a million casualties. left and the government of Asquiit fell and the new government of Lloyd George came to work with new policies based on extensive interventions in the Middle East and supporting the independence of the Arabs against the Ottomans.
Three very big events took place during the First World War, whose effects seem to be permanent and eternal in the Middle East:
1- The mistake of the British in the strength and power of the Jews, and the naive acceptance of the fact that the Young Turks were in the hands of the Jews caused it. In the hope of the downfall or at least neutrality of the Ottomans, with Arthur Balfour's statement , the British supported the idea of ​​Jewish immigration to Palestine and then the formation of a Jewish state. This issue has caused constant conflict in the Middle East and of course the trampling and exile of millions of Palestinians and has caused a crisis that seems impossible to solve today.
2- Racial cleansing in order to build a pure Turkish country caused the expulsion of millions of Armenians, Assyrians and then Greeks . Forcing Armenians to go on long walks without access to water and food, as well as their execution and rape of women and children caused one of the first genocides of the 20th century. The lack of reaction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caused the intentional burning of the city of Izmir and the
complete destruction of the Greek neighborhoods during the Turkish independence wars, this time during Mustafa Kemal's era. This is how Turkey became pure .
3- The formation of Arab countries in the Middle East was accompanied by a series of conspiracies and deceptions, both on the part of the Arabs and on the part of the British and French (one of the most interesting points of the book is related to the presence of Wilson, the good-hearted but simple-minded American president It is in Paris during the Treaty of Versailles. Framkin skillfully shows how Lloyd George drew Wilson's attention to the colonial goals of Italy and then France in the Middle East, and then proceeded to divide the Middle East with an attribute beyond impudence. The part full of details, the reader finds that it is a set of promises and agreements that none of the parties were bound by. Sharif Hussein , who was supposed to be the ruler of all Arab countries, died in Cyprus and was not the ruler of any land, but his son Faisal I became the king of Iraq and his brother Abdullah became the ruler of Jordan (both with the help of England). By defeating Sharif in Mecca, Abdul Aziz bin Abdul Rahman Al Saud conquered the Arabian Peninsula and renamed it after his family, Saudi. In the west, Syria and Lebanon emerged under French rule in the neighborhood of Hashemite Jordan and Palestine under British rule. The Palestinian issue remained unresolved during the British rule, and its solution was referred to the United Nations until today, when it has become an international and unsolvable humanitarian crisis.
Framkin has finished his huge book while there is no more news about the Ottoman Empire , in the center and capital of which the Republic of Turkey has emerged thanks to various wars and genocides and the loss of millions of people, and in the western countries of Syria, Hashemite Lebanon and Jordan (who Abdullah, Sharif's son, put his father's family on the newly established country of Jordan), the Palestinian region was not only divided, but because of the British policy and Jewish immigration, its population structure and ethnic composition changed and went from problem to crisis. And finally, it turned into a malignant and unsolvable problem. In the east of it and in the lands of Hijaz, Saudi Arabia, Iraq, and then Kuwait and other emirates along the Persian Gulf were established.
It can definitely be said that there is rarely a book like the valuable book of David Framkin, whose every word is informative and useful, his book is full of details with an attractive and masterful translation by Hassan Afshar , as if Framkin is a word of the devil hidden in the details . He believed that even though this small detail has greatly affected the lives of millions of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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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iar 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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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9, 2020
First of all,
although there was a two-week break in reading the book, and of course it was unjustified, but the story line of such a historical and voluminous book fascinated me so much that without
the slightest damage to the totality of the content, I read the two parts (before and after) from the break), it was a calloused patch in my mind, what a

second callous patch
in the middle of the turmoil of those years in the Middle East, Atatürk's "timely flexibility" + "timely perseverance", each in the right place and time, the only virtue of the collection The actions of the leaders of the eastern countries of that era are still alive today as a legacy in the veins of Turkish diplomacy, and of course admired by the majority of its nation

.
After all, their sinking into billions of dollars is a constant vice that has been and will be forever. An example of this is the story of Faisal and Malek in the mistake of each other. From this blessed series, I give

the fourth
translation of the book a score of 17 out of 20, which is a very, very high score

.
In a short chapter, a reference to the 1299 coup incident and its consequences is

the sixth
smallest and most detailed view of the entire process that the current book narrates in the construction of the Middle East today, looking at the story of "Britain's role in promoting peace" and From this point of view, the book is an English-oriented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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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n akb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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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4, 2018
In his name,

the peace that destroyed all peaces is one of the best historical books I have read recently.
A unique book about a critical period that has been incredibly neglected.

The subtitle of the book: "Th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Formation of the New Middle East" says everything that needs to be said about the book.
David Framkin, the author of the book, says in a part of the introduction of the book: "The Middle East that we hear in the news headlines today is the product of the decisions of the Allies in the First World War and after it... The official report of the Russians and the French about their actions in the Middle East at that time, of course It had a promotional aspect. The British reports were also far from the truth... But in the last few decades, the truth came out bit by bit and now, with the opening of the archives of confidential documents and private papers, it has finally emerged like the sun from behind the clouds. In 1979, when I started the research, it seemed that the truth of the story could be told again.

The book contains details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War in 1914 to the complet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in 1922. A period that exactly includes the events and developments of the past 100 years. Developments that are in a way the introduction of all the events of the last 100 years in the Middle East. A region that enjoyed relative peace under the banner of the Ottoman Empire for several centuries before the First World War. And after that, the day did not come when he saw peace. Knowing these points is essential for the audience who is in the center of these events. And it is surprising why this book was translated so late (the publication date is 1989).

If you want to learn about the formation of countries in the region such as Saudi Arabia, Turkey, Iraq, Jordan, etc., or to learn about the formation of the Zionist regime, do not miss "The Peace That Destroyed All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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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hammad Ali At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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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2, 2013
This book is considered one of the strongest, most beautiful, and most enjoyable history books that I have read in my life.
This is a book that you cannot help but express your admiration for the effort made by its author in compiling its material, from among hundreds of references from here and there...and it has shortened for you a diving journey among hundreds Books and thousands of documents, whether English, French, German, Ottoman, Russian...etc.
If we were to emerge from the study of history in general with one lesson, this lesson is that it is absurd to imagine that the major events in history occurred every time. It results in a grand conspiracy, without believing in another role for coincidence and stupidity in changing the course of history (which is the title of another book)... And if some insist on reducing everything to a conspiracy theory, we can accept this, but we will divide the matter into a conspiracy. An external conspiracy from the enemy (whether outside the country’s borders or within it), and an internal conspiracy that we commit against ourselves, which brings us back to the concept of (stupidity)...
This book confirms how Western governments changed their strategies during the war during the war, in alliances and settlements. Tactical divisions and priorities depend on the change in the politicians in charge of matters - for example, the difference between Asquith and Lloyd George in Britain - but the matter remains a change in the context of a difference in vision and viewpoints, and in the end the politician remains only concerned with the highest interest of his country... unlike the rulers of our countries. Those who have no concern except to remain on their thrones.
The book explains how the absence of information or the presence of wrong information among decision makers or perceptions that have nothing to do with reality, in addition to sometimes hesitation. How all of these factors had effects, whether in prolonging the duration of the war or in changing the fate of some countries.
It also sheds light on the conditions inside Tsarist Russia before the Bolshevik Revolution, and Lenin’s relationship with the Germans... and the end that justifies the means for the revolutionaries :)
as well as the network of volatile alliances, whether during or after the war... which ended with Britain alone and everyone against it at the end Ultimately
, and of course, because the writer aimed through the book to draw a map of the modern Middle East, talking about the harbingers of the Sykes-Picot Agreements, the idea of ​​Zionism and Jewish immigration to Palestine, the Balfour Declaration, and the Great Arab Revolt...all of this took up a large portion of the book.
In the end, the writer summarized his point that what the Allies thought was a comprehensive settlement of the Middle East issue in a way that would achieve peace between them by demarcating the borders between the areas of influence of Britain and France, whether they were nominally independent countries under British rule such as Egypt and Iraq, Or the Mandate countries like Syria and Palestine... All of this had no effect on the residents of the region... The secular civil government systems that the Europeans planted in our country were a strange plant in a soil that lived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under the rule of Islam, which covers the religious, life, and political aspects. ...So this settlement was the cause of all the problems that the Middle East witnessed later, including the Arab-Israeli conflict, so that this settlement truly became what the author called it: peace beyond peace.
My wishes to everyone for an enjoyabl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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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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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8, 2018
Palestine in the heart.
How much this book will make you feel weak and helpless, and the conspiracy of the Arabs and Muslims to protect the Holy Land in beloved Palestine. I remembered while reading this book how the early Muslims opened the world, east and west, to the call of Islam and subjugated the tyrannical kingdoms such as the Roman, Byzantine, and Persian by force that did not oppress or oppress. I was reminded of the situation of our master
Rab’i Ibn Amer
when he entered upon Rustam, the king of Persians, piercing his carpet with his staff, tying his horse to the edge of his carpet, telling him
the reason for his coming and entering upon him in his solemn assembly, opening his words with the most sincere greeting, then following them with his historical sentence:
We have come to remove whomever we wish from the worship of servants to the worship of the Lord. The servants, from the injustice of religions to the justice of Islam, and from the narrowness of this world to the spaciousness of this world and the afterlife,
this was the state of the conquering Muslims who spread the message of Islam throughout the entire world. They were never the owners of money, prestige, glory, and pride, but rather they were the owners of religion, a message, and value.
Then we return again to the topic of our review:
We sometimes hear from some absent-minded Arabs and their media mouthpieces that our ancestors and forefathers who lived on the holy land of Palestine at the beginning of the last century sold their land in exchange for Jewish money, but now is the opportunity for them to put their tongues in their mouths and not utter such myths again. Other than that, the book in our hands is by an American writer who did a great and great job and collected various sources to formulate a timeline of historical events, conspiracies, agreements, and secret and public treaties that ended after fifty full years with a Zionist occupation of the Holy Palestinian Lands in light of the complete resistance and adherence of our Palestinian ancestors to their historical rights to control the entire Palestinian land.
The story begins with th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scramble of the great powers to share the spoils resulting from the disintegration of the huge and sprawling empire and the control of the Young Turk party over the reins of power in the Sublime Porte and their involvement in the empire in the First World War for the benefit of Germany against the allies - Britain, France and Russia - and as a result of this Britain confiscated two battleships. Two Ottoman Empires were being manufactured in Great Britain and the Young Turks intended to cede them to Germany, which led to the development of the situation and Turkey’s entry as a party into the First World War.
It was an era in which the countries of the Middle East and its borders in Europe were artificial. Iraq and Jordan, for example, were British inventions, and the lines were drawn on a white map by British politicians after World War I, while the borders of Saudi Arabia, Kuwait, and Iraq were created by a British civil servant in 1922 and were drawn by France. The borders between Muslims and Christians in Syria and Lebanon, and Russia drew the borders between Muslims and Christians in Armenia and Azerbaijan.
The players:
Great Britain,
which is the first supporter and the only pledge to the Jews of a homeland and a land for the Zionists without a homeland or land.
Following up on the issue of the division of the Middle East, Transoxiana, and the Palestine issue were:
Lord Kitchener, Minister of War until 1916, Field Marshal of the Egyptian Army, and expert on Eastern affairs,
David Lloyd George, the British Prime Minister and the first supporter of Zionism,
with the assistance of both Lord Allenby, Mark Sykes, and Thomas Edward Lawrence.
These people were able to exploit th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 movement of some Arab tribes to gain control and establish autonomous regions and secede from the Ottoman Empire, which was persecuting the Arabs, such as the case of Sharif Hussein and his son Faisal, to rule the region of Syria and Iraq.
Their efforts succeeded in paving the way towards settling the Zionists by force after a great war led by the bloody bull Lord Allenby, supported by the presence of Prince Faisal - General Faisal, who was given the rank of general in the British army - and some of his forces, who succeeded in controlling the port of Aqaba on the Red Sea, also supported by forces. Egyptian, with direct instructions and directives from Prime Minister Lloyd, who was loyal to the Zionists, invaded Gaza, led by a large force of the British army stationed in Egypt at the time, and succeeded in defeating the Ottomans, led by German General Von Sanders. The beginning was with Beersheba, then Jerusalem and Damascus fell, and the straw that broke the back of the Ottoman army in the region was The Battle of Megiddo in 1918 ended after which any presence of the Ottoman army in the region ended. In every city conquered by Allenby’s army, Arab forces led by General Faisal were at the forefront of his army to prevent resistance from Islamic cities that would inevitably struggle against the Christian occupation. A flag of Arab nationalism was made and carried by Faisal’s Arab forces. It was designed and produced in Britain, as George Lloyd narrated, said, “The last Crusade campaign against the Muslims was the Battle of Megiddo.”
The role of Mark Sykes was no less brilliant than that of Lord Allenby. He was the architect of the partition operations and manipulated all sides of the game, including his French counterpart, Georges Picot, and his Russian counterpart, Sazanov. He also manipulated his Arab negotiators, headed by Prince Faisal, in light of Prime Minister Lloyd’s strictures not to give the Arabs any promises regarding the issue. Regarding Palestine.
Lawrence also did a difficult and arduous job that no one else dared to do. He led Faisal’s Arab group - as the writer calls them - in attacking the most important Turkish army concentration point on the Red Sea - the Aqaba garrison - in the Gulf of Aqaba and wresting control over it. His role in leading it will also not be forgotten. tribes and attacking Turkish forces on the right flank of the British army during Allenby's campaign against Gaza in order to distract the Ottoman-German forces defending Palestine.

France
The conflict was intense between the Allies after the end of World War I and victory was achieved for them. The conflict over the division of the Ottoman feast intensified, and the most severe point of disagreement between the Allies was the fate of Palestine. Britain believed that Palestine should be kept away from the partition table - in preparation for presenting it to the Zionists - and it is surprising that the French governments The successive French governments, especially Clemenceau's government - and even after Balfour's promise to the Zionists to establish a homeland for them in Palestine - were most concerned with controlling and dominating the Holy Land due to its sensitivity and priestly religious importance and out of concern for France's commercial interests. In the region there is a threat from Zionism sponsored by Britain, and French interest even extended to the Levant and Palestine region as well as the Sinai, but that did not please the British negotiator Sykes, who saw that the French side did not make the sacrifices and field work that deserved it to obtain all this area of ​​land and was satisfied in the end. By giving France the region overlooking the sea from the Levant, in what advocates of French imperialism considered it a betrayal by Georges Picot of his homeland and an unacceptable waiver of France’s rights in the region.

America
: The American academic and President Woodward Wilson saw the necessity of keeping his country away from World War I and maintained his country’s neutrality. He was a supporter of the right of the newly independent Ottoman states to govern themselves and the right to determine their own destiny and not be subordinate to any of the great empires that existed at the time. He believed in democracy to a great extent and did not It seeks to impose its control or share areas of control and influence with the allied countries, despite their efforts to drag America into the Middle and Near East region.

Italy
Italy entered World War I with great promises from the British and French sides to give it territorial gains when dividing the Ottoman Empire, including, for example, part of Anatolia. Italy did not have nationals in the Anatolian region, so there was no reason to justify the Italian presence, as there were no Italian communities or Italian interests. Therefore, the Italian Parliament and the Council of Ministers - under the pressure of nationalist fervor - felt the necessity of taking action before it was too late, and therefore the Italian forces embarked in 1919 on A landing program in southern Anatolia in order to achieve a quick gain and without waiting for the allies, which sparked the anger of the allies and prompted George Lloyd to request the Greek forces for a landing operation similar to the Italian operation with the aim of imposing control over the region. At the same time, he succeeded in diverting the attention of US President Woodward Wilson from Britain’s ambitions and ambitions to interest. To Italy's ambitions, this ultimately led to Italian Prime Minister Vittorio Orlando submitting his resignation.

I conclude my review by emphasizing that the effort expended in this book is an amazing effort, collecting the sources and weaving the story was something wonderful to the point that I felt like I was reading a novel and not reading a history book. Every detail and every little story was tracked down, studied, and written in a wonderful way, and the translation is easy, enjoyable, literary, and very solid in language. I enjoyed this book very much, and I would like to end my review with this quote by Rumkin:
“It took Europe one thousand five hundred years to resolve the crisis of its social and political identity after the demise of the Roman Empire, including about a thousand years for the political system to stabilize in the form of the nation-state, and about another five hundred years to decide which nations had the right to form states.
There were issues that needed to be settled in Europe has been subjected to painstaking work through ages of research and conflict, such as: Will the ruler be the Pope or the Emperor? Will Catholicism or Protestantism prevail in the Christian world? Will allegiances and obedience be to empires ruled by dynasties or to the nation-state? An acceptable map of Western Europe has finally emerged with the emergence of Germany and Italy, after it became obsolete. The time on the Roman map is one thousand five hundred years.
As for the Middle East, how can diverse peoples regroup themselves to create new political identities for themselves after the collapse of a long-standing imperial system? The allied country - Britain - has undertaken the process of dividing the region, but the question that still remains is whether it will accept it. The peoples of the region?
Written by: Kamal Sabry Shaker
on April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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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a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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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4, 2017
Since this summer, when I found out that Nash Mahi and Hassan Afshar are going to translate this book, I have been counting the minutes for it to be published as soon as possible so that I can read it.
This book was published in March of this year, and in the first week I bought and read it. I already knew the subject of the book and that's why I was extremely eager for it.
The book examines the formation of the contemporary Middle East and the current governments that we currently know by the names of Jordan, Iraq, Arabia, Palestine, Israel, etc. The Middle East and the governments that are the result of the First World War and th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after 500 years of rule and empire.
This book deals with the issue that the coalition that sometimes people in the allied governments had for the formation of the Middle East and governments still has its effects on the Middle East and it is not irrelevant if we say that an important part of the situation in the Middle East today and the current wars and conflicts are the result of the same peace that Allies agreed to divide the lands of the Middle East.
Also, the book deals with the issue of how the peace after the First World War and the underground fire that appeared in the Middle East later affected Europe and especially Britain.
If you already have some information about the first war and the Middle East, this book will be one of the sweetest and most useful books you will read.
There is a lot to say about the book, but I prefer to suggest you to read it yourself and enjoy read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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