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0

통일일보 헌법과 국민을 배반한 헌법재판소



http://news.onekoreanews.net/detail.php?number=93601&thread=01r01&fbclid=IwY2xjawJj3KRleHRuA2FlbQIxMQABHtah_J2zE3A2JRnCX3msMOS-_dwmp-cmIt9tpLSlKcIp_UoK71AW-iEHlrIi_aem_4M3x-_xADaUIfDtfmtqvMA

헌법과 국민을 배반한 헌법재판소
국민저항권만이 자유민주 체제의 희망


 한국의 체제전쟁이 시작됐다. 헌법재판소의 8대0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6월 3일까지의 대선이 예고된 가운데 ‘국민저항권 광화문 국민대회’(5일)에 이어 ‘윤석열 지지 국민저항권 발동선언문’ 발표(6일) 등 조직적인 전투. 이 전투는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을 국민의 절반이 불신임하는 헌재가 탄핵·파면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헌재의 파면선고 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 가까이 승복을 거부했다. 원래 이번 탄핵은 이재명을 재판에서 구해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음모와 공작의 결과다. 판결문은 조잡했다. 재판관이 작성했다는 것은 매우 믿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주심재판관이 협박됐다는 의혹이 떠올랐다. 협박에 의한 판결이 있으면 그 재판은 당연히 무효다.



 8년 전 악몽 박근혜 대통령 사기 불법탄핵의 재현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해 절망하고 있다. 게다가 부패한 반역의 문재인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국민의 절반이 '헌재'라는 제도 자체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주권자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을 부정선거로 구성된 국회가 헌법을 밟아 불법소추, 자질조차 의심되는 임명직에 불과한 8명의 정치판사가 파면될 수 있는가.
탄핵 선고 후 여론조사는 판결불복의 응답이 44·8%, 승복이 52%라고 한다. 헌재의 판결문은 조잡했다. 법률가가 쓴 문장이 아니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사기 불법탄핵 당시 판결문보다 조잡하다. 8년 전은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여론이 70%였지만 헌재 판결문에서는 사실관계조차 잘못됐다. 당시 헌법재판관 8명과 국가(정부)를 상대로 국민이 집단소송을 일으켰다. 이 소송은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소송원고의 우종창 원월조선 편집장이 쓴 '어둠과 위선의 기록 박근혜탄핵백서' 등에 자세하게 고발된 헌재의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이재명당과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한 이번 탄핵심판 결과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것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 선포의 주된 이유로 꼽은 사전선거 등 부정선거 문제, 즉 헌법의 토대인 선거제도 운영의 부정 여부를 철저히 묵살했다. 헌재가 헌법과 국민을 배반한 것이다.
헌재가 부정선거를 다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원래 선관위와 법원과 헌재는 일체로 공범이다. 현헌법재판관 8명 중 6명이 법원 판사시대 각급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했다. 즉 부정선거 당사자다. 이들 6명은 부정선거가 문제가 된 탄핵심리에 처음부터 참여해서는 안 됐다.
헌재는 헌재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이 규정한 소송·재판절차를 무시했다. 대통령의 방어권을 제한하고 부정선거 관련 증거조사 요구도 모두 배척했다. 헌재는 선거제도의 운용 문제는 선관위가 시정·보완 조치를 취했다고 답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비상계엄령 아래 수원 소재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에서 체포된 국적불명의 수십명 사건은 선관위가 CCTV 녹화만 공개하면 된다. 선관위는 야당과 한겨레 신문에는 화면을 제공해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선관위는 계엄령에서도 접할 수 없는 성역임을 헌재가 확인했다. 부정한 소지를 불식하지 않는 한 다음 대선도 우파의 패배는 결정적이다.
상상도 못하는 음모와 공작이 난무한 이번 '탄핵내란'은 이재명을 구해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이재명의 난'이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 8대 0의 인용으로 결정적 역할을 한 정형식 주심의 배신이다. 그는 우파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배신하고 이재명에게 굴복, 투하했다. 그리고 서정아사히 변호사가 6일 '정亨植의 협박설을 철저히 조사하라'며 정정식이 이재명 측에 의해 협박된 상황을 공개, 당사자의 해명과 관계 당국의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정향식은 처음부터 탄핵을 기각·각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왔지만 선고를 논의 중이었을 때 장남(정진재 변호사)의 초호화 결혼식(3월 8일)을 올리고 거액의 축의금을 받았다고 한다. 재판관으로서 부적절한 행위로, 분명히 법률에 저촉하는 행동이었다. 헌재의 재판관 취임 때부터 약점이 있던 정향식이 이재명 측에 협박의 재료를 준 것이다.
이재명 측은 윤 대통령 탄핵의 기세로 여당 ‘국민의 힘’ 해체와 우파분열 공작, 개헌까지 나오고 있다. 우원 식국회의장은 6일 개헌안의 국민투표를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하려고 제안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여야 사이에 상당한 공감이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이 체제전쟁에서 자유민주체제를 지키는 확실한 길은 주권자의 힘으로 반역을 정리하는 국민저항권 행사뿐이다.
===
*통일일보는 독립운동가인 원심창과 이영근 등 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1959년 1월 1일에 "조국의 평화통일 구현"을 사시로 창간되었다, 57년간 단 한 차례도 결호없이 발행되고 있는 종합지이다. 민영 민족지로서 특정한 종교나 계파, 정치집단과 무관하다

<원심창>은 일제시대 해외 3대 의거로 꼽히는 1933년 3월 17일 "상하이 육삼정 의거-아리요시아키라 주중일본공사 암살시도사건"의 주도자로서 일제 당국에 의해 15년간 수형생활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영근>은 원심창의 동지이자 통일일보 공동창간자로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브레인 출신이다.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으며 해방 직후부터 정치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훈1등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


북한이 새로운 한일분단책 
편견 계기에 대화의 의사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15일 발행의 1면 톱으로 노토반도 지진 피해에 대해 김정은 총서기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혐의 전보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국회나 납치문제집회 등에서 키시다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의 조기실현에 의욕적인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측이 대화 의사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간부와 조총련 간부가 극비회담을 거듭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3월 21일과 26일에는 축구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의 대북한전이 있어 이를 계기로 일본과 북한의 대화가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나왔다. 한편 북한은 한국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한일분단의 의도를 읽는 북한 워처도 있다.

아침 총련과 자민 간부가 극비 회담인가?

 조선신보가 보도한 것은 김 총서기명으로 5일에 '일본국 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카쿠시타'라는 주소로 송부한 전보. “일본에서 전날부터 지진에 의해 많은 인명 피해와 물질적 손해를 받았다는 소식에 접해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깊은 동정과 편견의 뜻을 나타냅니다”며 “피해 지역 사람들이 하루 빨리 안정된 생활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보도했다.

최초의 존칭 「각하」

 한국통일성에 따르면 김 총서기가 일본 총리에 '각하'라는 존칭을 사용한 것은 처음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으로부터의 전보는,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지진 발생시에, 국회에 상당하는 최고 인민회의의 상임 위원장 명의로 아침 총련에 향한 것과, 1995년 1월의 한신 아와지 대지진에 즈음해 강성산 총리 명의로 무라야마 토미시 총리(당시)에 송부한 것이 통신사의 라지오프레스는 김 총서기에서 키시다 총리로 향한 전보는 처음이다.
하야시 요시히로 관방장관은 “감사의 뜻을 표현한다”고 말하면서 “일·일 간의 교환에 대해서는 이번 메시지에 대한 대응을 포함하여 일의 성질상 삼가고 싶다”고 신중하게 말을 택했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접촉

 기시다 총리는 국회와 납치 문제 집회에서 북일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에 대해 강한 의욕을 말하고 있다. 또 한일 일부 미디어는 일본과 북한 실무자가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 제3국에서 여러 차례 극비에 접촉하고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 우처에 따르면 자민당 간부와 조총련 간부가 여러 차례 비밀리에 회담을 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김 총서기가 절대로 거절하지 않는 '기념품'을 들고 일조 정상회담을 실현시킬 준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지율 침체로 고민하는 키시다 총리이지만,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의 셔틀 외교에 의한 한일 교류가 진행된 시기에는, 지지율이 상승한 바 있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로 납치 문제가 해결에 이르지 않아도 어떠한 형태로 길을 붙이는 것만으로 지지율은 급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월드컵으로 융화 연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이 3월 축구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일본 대 북한 경기다. 21일에 도쿄·국립 경기장에서 개최. 26일이 개최지 미정이 되고 있다. 21일 도쿄 개최에서는 종종 스포츠 국제대회에서 주목을 받는 통칭 ‘미녀군단’이라 불리는 북한 여성 응원단이 대회에 꽃을 더함과 동시에 융화 분위기의 연출에 한몫할지도 모른다.
일본과의 융화를 진행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15일 김 총서기가 시정 방침 연설을 펼치며 “헌법을 개정하고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과 확실히 간주하는 교육 강화를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군사적 도발에 나서면 몇 배나 보복한다. '전쟁인가 평화인가'와의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강한 말로 대답하고 있다.

한일미 흔들림

 한국에 적의를 드러내며 일본에 대화를 깜박이는 자세에 한국 정부의 싱크탱크 '통일연구원'의 서학사 연구위원은 "한일 관계를 흔들며 한일미의 협력 틀의 약체화를 도모할 목적이 있다"고 한일 분단의 의혹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의 사에키 코아키 대표이사는 “문제 전보의 의도는 신중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지만, 무반응은 좋지 않다. 사의는 전하는 편이 좋다. 자문제 해결 등의 진전을 바라고 있다.




15일 발행의 「조선신보」의 1면. 김정은 총서기의 노토반도 지진에 대한 편견이 톱 기사가 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주목받은 북한 여성 응원단

====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⑭
「在日韓僑在郷軍人会」の発足         1951年1月頃から米軍と韓国軍に所属していた在日義勇軍の一部は除隊して、米国と日本の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締結前に日本に帰還することができた。彼らは6・25戦争によっ...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⑬
所属部隊で運命が分かれた在日義勇軍たち
 第1陣から6陣まで分かれて参戦した在日義勇軍たちは所属部隊によって運命が分かれた。第1陣と2陣などで出征した義勇軍の中には前回に触れた通り、わずか参戦3カ月で不本意ながら日本に帰されたケースもあるが、国軍に配属さ...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⑫
祖国の山河で3散華した在日学徒義勇軍
1師団の在日義勇軍たち、衛生兵としても活躍 韓国軍への服務を志願した在日学徒義勇軍たちはいろんな部隊に分かれた。国軍第1師団には、金在鎮、裵命巌、宋東源、辛栄玉、沈載元、鄭相玉、洪敬鶴などが隷下各部隊に配属され、...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⑪ (2015-02-04 05:28:48)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⑩ (2015-01-28 00:40:12)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⑨ (2015-01-15 05:45: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⑧ (2014-12-16 04:00:1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⑦ (2014-12-03 03:49:33)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⑥ (2014-11-27 10:27:17)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⑤ (2014-11-19 03:33:07)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④ (2014-11-06 09:07:35)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③ (2014-10-29 01:19:04)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② (2014-10-16 06:25:32)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6.25戦争と在日~① (2014-10-01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⑭ (2014-09-25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⑬ (2014-09-18 03:31:34)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⑫ (2014-09-03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⑪ (2014-08-15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⑩ (2014-07-24 00:42: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呉基文氏を偲んで⑨~ (2014-07-09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⑧~ (2014-06-25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⑦~ (2014-06-18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⑥~ (2014-06-11 00:00:00)



[1][2]


===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⑤~ (2014-06-04 00:08:22)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④ (2014-05-28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③ (2014-05-21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② (2014-05-14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民団結成から韓国戦争勃発まで(1)~ (2014-05-01 03:55:11)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終 (2014-03-19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⑦~ (2014-03-05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⑥ (2014-02-26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⑤ (2014-02-19 08:26:5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④~ (2014-02-13 04:31:46)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③~ (2014-02-05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② (2014-01-29 00:00:00)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 在日の従北との闘争史~解放後から民団結成まで①~ (2014-01-16 04:30:29)



[1][2]



【논고】 납치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는지 사태의 진전에는 북한의 민주화가 불가결
아라키 카즈히로


 북송 사업으로부터 61년이 지나, 아직도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왜인가.
“개인적으로는 일본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큰 요인 중 하나는 전후 일본의 문제다. 자위하지 않고 미국에 지켜주고 있다는 구도가 책임감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2002년 9월 17일의 제1회 일조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일련의 납치사안이나 공작선 사안을 인정해 사죄한 것에 의해, 보도가 과열했다.동년 10월 15일에 납치 피해자 5명(렌지 부부·지무라 부부·소키 히토미씨)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납치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어도, 그 상세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납치 문제에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 밝혀진 것만으로도 납치 피해는 12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이 당사자 의식을 가지는 것은 물론 필수이지만, 국제적인 문제라는 측면도 크다고 느낀다.
“현시점에서는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협상도 포함해 가능한 납치 피해자는 1명씩이라도 되돌려야 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곳까지 가려면 북한의 체제가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 때는 타국의 납치 피해자도 구출할 수 있게 된다. 치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나 공개처형, 탈북자 등 인권문제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아직도 국제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듯 느낀다.
"메이지 시대는 글로벌화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심은 매우 높았다. 요즘의 분위기가 당시와 대조적인 것은 흥미롭다. 외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자체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요인은 다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다. 코로나 소란으로 자국주의가 높다" 

문제에 있어서의 일본의 책임은.

「(일본인 납치에 있어서) 일본 정부의 책임에 대해 말하면, 전승국에 안보를 의존해, 자국민을 타국으로부터 지키려고 오지 않았을 뿐, 그 사실을 은폐해 왔다고 하는 의미로 매우 큰 책임이 있다」

무엇을 가지고 납치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납치문제에 “해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 최종적인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납치 피해자의 구출을 위해서는 현 체제의 변화가 필요 불가결
하다


“(일본도 포함해) 솔직히 도대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미 북한 내부에 감염이 상당히 퍼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한편으로 미사일의 발사나 군의 훈련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라키 카즈히로> 타쿠쇼쿠 대학 해외 사정 전문 연구소 교수. 특정 실종자 문제 조사회 대표, 예비역 블루 리본의 회 대표 등을 맡는다.


2020-04-01 4면







오피니언 섹션 목록으로




===
【論考】拉致問題はなぜ解決しないのか
事態の進展には北韓の民主化が不可欠

荒木 和博

 北送事業から61年が経ち、未だに拉致問題が解決しないのはなぜか。
「個人的には、日本自身にも問題があると思う。大きな要因の一つは、戦後の日本の問題だ。自衛せず米国に守ってもらっているという構図が、責任感の喪失につながっている。
つまり、『米国との関係から逸した問題についてはなかったことにしてしまおう』という雰囲気がある。その一つが拉致問題だ」

現在の日本における拉致問題への態度はどのようなものか。
「2002年9月17日の第1回日朝首脳会談で、北側が一連の拉致事案や工作船事案を認めて謝罪したことによって、報道が過熱した。同年10月15日に拉致被害者5人(蓮池夫妻・地村夫妻・曽我ひとみさん)が帰国したこともあり関心が高かった。しかし、現在ではあまり注目されていないように思う。日本で拉致問題が起きたということは認識していても、その詳細は知らない人が多い」

我々は拉致問題にどう向き合うべきなのか。判明しているだけでも拉致被害は12カ国で起きている。日本が当事者意識を持つことはもちろん必須だが、国際的な問題という側面も大きいと感じる。
「現時点では北朝鮮と交渉できる状況ではないが、交渉も含めて可能な拉致被害者は1人ずつでも取り返すべき。しかし最終的なところまで行くには北朝鮮の体制が民主化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ときは他国の拉致被害者も救出できるようになる。そのためには日本国独自の努力と並行して国際的人権問題としての取り組みが成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拉致問題のみならず政治犯収容所や公開処刑、脱北者などの人権問題に取り組む人々との協力が必要である」

日本はまだまだ国際的な問題に無関心なように感じる。
「明治時代はグローバル化を目指していたため、国際的な関心は非常に高かった。昨今の雰囲気が当時と対照的なのは興味深い。外国について関心を持たないこと自体は問題だと思うが、要因はさまざまにあると思うので、一口に言い切ることはできない。コロナ騒ぎで自国主義が高まってきていることもあり、岐路に立たされていると言える」

拉致問題における日本の責任は。
「(日本人拉致における)日本政府の責任について言えば、戦勝国に安全保障を依存し、自国民を他国から守ろうとしてこなかったばかりか、その事実を隠蔽してきたという意味で非常に大きな責任がある」

何をもって拉致問題の最終的な解決と考えているか。
「拉致問題に”解決”は存在しない。あえて言うなら、拉致される以前に時計の針を戻せるなら解決と言えるだろう。拉致は不可逆的な問題だ。失われた時間は決して回帰しない。解決ではなく進展という捉え方がふさわしいように思う。
北朝鮮の体制が変わり、北韓住民が自由に自己の意思を表現できるようになることが、拉致問題の最終的な進展と言えるのではないか。拉致被害者の救出のためには現体制の変化が必要不可欠だ」

武漢コロナウイルスによって現体制はどのように変化(崩壊)していくと考えられるか?
「(日本も含めて)正直いったいどうなるのか分からないが、現在すでに北朝鮮内部に感染が相当広がっていることは間違いなく、一方でミサイルの発射や軍の訓練で体制を維持しているという状況だ。崩壊直前であることは明らかで、あと一押しがあれば金正恩暗殺などの急展開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もちろん、それはそれで日本も含めて周辺国にとって大変な状況になることが予想される」

<荒木和博>
拓殖大学海外事情専門研究所教授。特定失踪者問題調査会代表、予備役ブルーリボンの会代表などを務める。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