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1

반일종족의 역사내란 출판기념

Bum Choi - 내일입니다 | Facebook


내일입니다


All comments

주익종
감사합니다^^
2
박진영
미국인들은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제시대랄 어떻게 봅니까? 노엄 촘스키가 일본은 긍정한 걸로 알아요.
Jaeyoung Han

대륙에 종속되어 굴종하며 유사이래 다시 없을, 같은 종족을 노예로 삼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민족반역이자 역사내란입니다.
"Despite the Mongol invasion in the 13th century and the Japanese in the 16th century, there was never sufficient social upheaval to unseat the slaveholding system. Rather, hereditary slaveholding through several dynasties became part of the LONGEST UNBROKEN CHAIN OF SLAVERY of any country on Earth." (Prof. Mark A. Peterson of Brigham Young University, Korean Studies)
"Considering the available evidence though, I believe the term “slave” describes the nobi’s crucial role in Choson society best, despite how much a nobi’s life varied depending on the master and the time. Their status must defined by what can legally be done to them, not what benefits they could legally be afforded. Following this logic, “slave” is best to describe the nobi, who could be legally beaten even to the point of death (Kim, 125), raped (Hee-sook, 123), or starved (Kim, 118), even if their treatment differed by time, place, and master (Kim, 108-109). Slavery not only existed, but it was crucial to the society, making up a large population and freeing up the upper class to create works of literature, culture, and statecraft" (Dartmouth Univ, "the meaning and importance of Nobi")


===
김경재 김대중
===

김경재
최근 수정 시각: 2025-04-04 16:56:46

9
편집토론역사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여수시 출신 인물
1942년 출생
경주 김씨
제15대 국회의원
제16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순천남초등학교 출신
순천중학교 출신
순천고등학교 출신
서울대학교 출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출신
학사사관 출신 인물
공군 장교 출신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제20대 대통령 선거/후보
박근혜 정부/인사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내일로미래로 소속
더 보기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김경재(동명이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갑)

선거구 개편
허경만[A]
조순승[B]

제15대
김경재

선거구 개편
김경재[C]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선거구 개편
김경재[D]
조순승[E]

제16대
김경재

제17·18대
서갑원[6]




대한민국 제15·16대 국회의원
김경재
金景梓 | Kim Gyung-jae



출생
1942년 11월 3일 (82세)

전라남도 순천시

본관
경주 김씨

종교
개신교 (예장대신복원)[7]

가족
배우자[8], 슬하 1남 2녀

학력
순천남국민학교 (졸업)
순천중학교 (졸업)
순천고등학교 (졸업 / 8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정치학 / 학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과정 수료)

병역
공군 중위 전역 (원에 의한 전역[9])

소속 정당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5, 16

경력
평화민주당 창당발기인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별보좌역
제15대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갑 / 새정치국민회의)
제16대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 새천년민주당)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 (박근혜 정부)
제16대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국민혁명당 상임고문
신자유민주연합 제20대 대통령 후보



1. 개요2. 생애3. 정치 활동4. 사건사고 및 논란
4.1. 노무현 前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4.2. 자유총연맹 비리 논란4.3. 광복절 광화문 집회 참여 논란
4.3.1.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
4.3.1.1.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5. 여담6. 선거 이력7. 소속 정당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국회의원.

동교동계의 일원이었으나 김대중의 사망 이후 친박 인사가 되었다. 이정현과 함께 ‘호남친박’의 대표격으로 불린다.[10]


2. 생애[편집]
1942년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순천남국민학교, 순천중학교, 순천고등학교(8회)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진성 운동권으로 박정희에 대항하는 학생운동(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등)을 주도하였으며, 살해위협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미국에서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집필한 김형욱 회고록이 유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미 망명 시절, 측근으로 활동했고 미국 뉴욕의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3. 정치 활동[편집]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황병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종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허경만 의원이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전라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순천으로 지역구를 옮겨[11],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남도 순천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순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되었다.[12]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를 흔들던 당내 (주로 동교동계) 세력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 친노 성향 네티즌들에게 호감을 사기도 했다. 특히, 2002년 11월 12일 63빌딩에서 열린 오찬 때 한화갑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노무현 후보를 겨냥해 볼멘 소리를 하자 주저없이 이를 반박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른바 "최후의 오찬" 사건으로 유명하다. 대선 직후에도 "16부작 드라마다. 이런 드라마가 또 있을까?"하며 감격에 차 했던 등 소위 대선의 1등 공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선 직후 친노, 386 세력들과 사이가 틀어지고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노무현 대통령과 완전히 갈라섰다. 노 대통령은 끝까지 신당 행을 설득했으나 김경재가 역정을 내며 거부했다고 한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강북구 을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였으나[13]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 최규식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한다.

구 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과 합쳐진 후, 18대 총선 출마를 시도하나 현직 의원인 서갑원에 밀려 공천 탈락했으며, 이에 반발하여 탈당했으나 2009년 9월에 복당한다.

이후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화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7.39%를 득표하여 최하위로 낙선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평화민주당을 박차고 나가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자신의 원 지역구인 순천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6위로 낙선했다. 두번이나 의원직을 지낸 순천에서 3% 득표에 그친, 망신살만 뻗친 선거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세일국민생각 창당에 참여하여 영등포구 을에 공천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화갑, 한광옥 등의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14] 같은 해 말부터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하였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2015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16년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친이계로 분류되는 경찰청장 출신 허준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는 탄핵 반대 진영에 서며 태블릿PC 조작 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박영수 특검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2020년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전광훈 세력과 손을 잡았다.

2021년 10월 15일 국민혁명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당대표인 전광훈 목사와의 갈등으로 탈당했다. 이후 2022년 2월 8일에 충청권 지역정당을 표방하던 신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제20대 대선 후보 중 최고령자이다. 결과는 뒤에서 2등으로 낙선. 공교롭게도 옥은호와 함께 21대 총선 부정선거 주장에 의견을 같이 한 두 후보가 사실상 나란히 공동 꼴찌(?)를 하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4.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4.1. 노무현 前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편집]
2016년 11월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정부가 풍비박산날 지경에 이르자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삼성에게서 8천억을 거뒀고, MB도 미소재단으로 2조원을 걷었다."는 물타기성 주장을 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는 "책임을 묻겠다"면서 강경 대응을 시사했고, 김경재 연맹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적절치 않았다며 황급히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이해찬 의원 등은 바로 김경재 연맹회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기소했다 #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 받았다. 2019년 6월 대법원에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김경재의 유죄를 확정했다. 그 말고 민사소송 1심에서 노건호와 이해찬에게 각각 천만원, 총 2천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판결 받았다. 2019년 7월 김경재가 항소취하서를 내고 재판을 포기하면서 2천만원 위자료가 확정되었다.


4.2. 자유총연맹 비리 논란[편집]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 비리 의혹이 나와 경찰이 자유총연맹을 압수수색했다.#


4.3. 광복절 광화문 집회 참여 논란[편집]
2020년 8월 17일 16시경 전광훈 목사가 부인·비서와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김경재가 전 목사의 손을 맞잡고 들어준 장면이 포착되어 전 목사에게 물병을 쥐어준 보수 유튜버 주옥순, 그리고 집회에서 전 목사의 마이크를 돌려 쓴 연사 10여 명 등과 함께 코로나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김부겸 전 국회의원은 지난 7월, 8월 말에 있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위해 캠프를 꾸렸는데 그 사무실이 김경재 전 총재의 사무실과 같은 건물 같은 층에 마련되어 있었어서 감염 고위험군인 김 전 총재와 그 직원들을 피하기 위해 잠정 폐쇄되기도 했다.

김경재 등이 포함된 8.15 광화문 비상대책위원회는 사랑제일교회 변호인단과 9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정부의 방역대책이 대국민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완전국민소송 변호인단으로 조직을 확대개편한 뒤 송사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9월 23일. 전광훈과 공모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 결국 9월 28일에 영장이 발부되어 구속수감 되었다. # 그러다가 2020년 12월 17일 보석 석방으로 풀러났다.


4.3.1.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편집]


4.3.1.1.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편집]
사건번호: 2020고합995, 2021고합805(병합), 2021고합806(병합), 2021고합908(병합)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5-3부 재판장 : 박사랑

이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

2022년 12월 21일, 전광훈에겐 징역 4년에 벌금 600만원,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에게는 징역 1년에 벌금 600만원형을 구형했다. 또 2·22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대해선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2023년 2월 15일 1심 판결에서 전광훈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450만원, 김경재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400만원, 김문수에게는 벌금 300만원이 선고되었다.#


5. 여담[편집]
한광옥과는 크게 놓고 보면 행보가 다르지만 말년은 비슷한데, 소위 말하는 구민주계와 지금 주류의 성향 차이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을 아예 떠나 보수 진영으로 들어간 구민주계 인사 중 하나이다.
20대 대선의 율동 댄스 영상에서 보듯이 건강만큼은 대단히 정정하다.
변희재의 결혼 소식을 어디선가 뒤늦게 듣고, 낸시랭과 결혼한다고 단단히 오해를 하고(...) 덕담을 해줬다는 후문이다. 문재인을 주례라 생각했던건 덤.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갑

16,438 (17.88%)
낙선 (4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29,820 (25.67%)
낙선 (2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순천 갑

43,762 (90.82%)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순천

61,164 (57.79%)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북 을
13,403 (15.71%)
낙선 (3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남도지사


68,220 (7.39%)
낙선 (4위)


2011
상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전남 순천
무소속
3,264 (3.90%)
낙선 (6위)


2022
제20대 대통령선거
대한민국

8,317 (0.02%)
낙선 (11위)




역대 선거 벽보

[ 펼치기 · 접기 ]



























7.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1965 - 1980
정계 입문


1980 - 1985
정당 창당


1985 - 1987
정당 입당


1987
창당
정계 복귀

무소속
1987
탈당[15]


1987 - 1991
창당


1991
당명 변경


1991 - 1995
합당[16]

무소속
1995
탈당[17]


1995 - 2000
창당


2000 - 2005
합당[18]


2005 - 2007
당명 변경


2007
합당[19]


2007 - 2008
당명 변경


2008
합당[20]

무소속
2008 - 2009
탈당[21]


2009 - 2010
복당

무소속
2010
탈당[22]



2010 - 2011
창당

무소속
2011 - 2012
탈당[23]


2012
창당

무소속
2012
정당 해산


2012 - 2015
입당

무소속
2015 - 2016
탈당[24]


2016 - 2017
복당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25]

무소속
2020
탈당[26]


2020 - 2021
입당


2021
당명 변경

무소속
2021 - 2022
탈당[27]


2022
입당



2022 - 2023
당명 변경


2023 - 현재
당명 변경



8. 둘러보기[편집]


김경재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전라남도 제15대 국회의원

[ 펼치기 · 접기 ]































제15대 국회의원


[ 펼치기 · 접기 ]



























































































































































[A] 순천시의 제14대 국회의원[B] 승주군의 제14대 국회의원[C] 순천시의 제16대 국회의원[D] 순천시 갑의 제15대 국회의원[E] 순천시 을의 제15대 국회의원[6]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7] 현재는 전광훈과의 갈등으로 인해 사랑제일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8] 2018년 사별.[9]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정보공개 자료에 나와 있다.[10] 다만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보수정당이었던 이정현과 달리 철새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시기가 적절했던 전향자기 때문에 애매할 수도 있다.[11] 사실 이건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과정에서 합류한 민정계 출신인 현역 의원 이종찬 부총재와 지역구가 겹치는 문제도 있어서 교통정리 차원에 가까웠다.[12] 지역구가 합쳐지자 이미 3선을 한 72세의 조순승 의원이 은퇴하고, 재선에 도전하는 59세의 김경재 의원을 남긴 것이다.[13] 본인은 이를 호남을 후배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적지에서 싸운다고 주장했으나, 실상은 탄핵으로 당선이 어려워진 호남을 포기하고, 강북구 을의 터줏대감이던 조순형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것에 불과했다. 대신 자신의 지역구였던 순천에는 이전 총선에서 강동구 갑에 출마했던 노관규 변호사(2년 후 순천시장 당선)가 공천되었다.[14] 다만 한화갑은 새누리당에 입당하지는 않았다.[15]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6] 민주당과 신설 합당[17]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위한 탈당[18]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9]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20] 대통합민주신당과 신설 합당[21]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22]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23] 국민생각 창당을 위한 탈당[24]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25]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6] 기독자유통일당 입당을 위한 탈당[27] 신자유민주연합 입당을 위한 탈당
===





목차 토글














김경재 (정치인)
언어 추가

문서
토론

읽기
편집
역사 보기
도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문서를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8년 3월)


김경재
출생 1942년 11월 3일(82세)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읍 경호리
성별 남성
국적 대한민국
본관 경주
학력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력 사상계 정치담당 편집자
신민당 홍보기획위원회 위원
평화민주당 창당발기인
신민주연합당 총재비서관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회 집행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수석부총무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
평화민주당 사무총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기획담당특별보좌관
박근혜 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
형제 2남 2녀 중 차남
배우자 채수정(사별)
자녀 1남 2녀
군복무 공군대위 전역
종교 개신교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5·16
정당 신자유민주연합
지역구 전남 순천시 갑(15)
전남 순천시(16)
당내 직책 고문 겸 당무위원


김경재(金景梓, 1942년 11월 3일~)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제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생애[편집]

김경재는 1942년 11월 3일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신민당 대선 후보 홍보기획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유신 시대로 접어들면서 15년의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였고, 현지에서 신문을 창간하여 미국 교민사회에서 민주화의 불씨를 지피는 데 주력했다. 이어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유신 체제를 뒤흔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제13대 총선에는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강남구 갑에, 제14대 총선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종로구에 출마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순천시 갑에서 당선되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관을 맡아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기여하였다. 제16대 대선 당시에는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노무현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새천년민주당이 분당하여 창당된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여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2012년에는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있던 국민생각에 합류하여 서울 영등포구 을 후보로 공천되었으나 최종 후보로 등록되지 않았다.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이번 선거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와 김대중·김영삼 시대로 대표되는 민주화 시대의 화해를 의미한다."며 한광옥, 한화갑 등 구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홍보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였다. 2016년부터 2018년 2월까지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로 활동했다.

2020년 광복절문재인 퇴진을 요구하는 보수단체 집회를 열면서 집회 신고된 범위를 벗어나 집회를 주최한 혐의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 구속된 김경재는 "2000년과 2014년에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매일 약을 먹는데 추우면 견디지를 못한다"며 "제가 편하게 재판받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1]

학력[편집]1955년 순천남국민학교 졸업
1958년 순천중학교 졸업
1961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1966년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1975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7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력[편집]사상계 정치담당 편집자
신민당 홍보기획위원회 위원
평화민주당 창당발기인
평화민주당 서울특별시 지부 강남구 갑 지구당위원장
신민주연합당 총재비서관
민주당 서울특별시 지부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전라남도 지부 순천시 갑 지구당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회 집행위원
새정치국민회의 당보편집위원회 위원
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수석부총무
새정치국민회의 홍보특별위원회 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관
새천년민주당 전라남도 지부 순천시 지구당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진행분과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
새천년민주당 서울특별시 지부 강북구 을 지구당위원장
평화민주당 사무총장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기획담당특별보좌관
새누리당 특임고문
새누리당 상임고문
자유한국당 전임고문
박근혜 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
박근혜정부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미래통합당 탈당
기독자유통일당 입당
국민혁명당 상임고문
신자유민주연합
충청의미래당

전과[편집]정치자금에관한법률위반: 벌금 3,000,000원 - 2006년 9월 21일 선고[2]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 2018년 12월 7일 선고[2]

상훈[편집]1961년, 1962년 전국대학생 학술 토론대회(육사주최) 대통령상 2회 연속 수상
1963년 월간 세대지 제1회 정기필자모집 현상논문에 당선
1998년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선정 국회 상임위,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0년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선정 15대 국회(4년) 최우수 의원

출연작[편집]1988년 KBS 일요시사칼럼
1989년 MBC 진단 토크쇼
1990년 - 1991년 MBC 푸른신호등 시사칼럼
1991년 SBS 10분공방
2008년 MBC 아침을 달린다, 칼럼 <역사와 뉴스사이>

저서[편집]1970년 자정을 사는 사람들(소설). 삼지사
1985년 김형욱 회고록 3부작. 도서출판 아침. 전예원
1992년 쓰러지는 역사 일어나는 역사. 도서출판 죽산
1992년 軸, 새역사의 푸른신호등. 전예원
1999년 십청헌 김세필의 생애와 사상.
2000년 DJ의 독서일기(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인북스
2006년 김경재 고백 그리고 꿈, "청와대 허물어 아파트 짓고 싶다". 동행

가족 관계[편집]배우자 : 채수정 (1942년 ~ 2018년 10월 27일)아들 : 김필립
===
DJ의 독서일기 
김경재 (지은이)인북스2000-01-01


7.0 100자평(0)리뷰(2)

001. 제1장 책과 함께 한 인생
002. 제2장 책으로 만난 사람들
003. 제3장 책속의 길
004. 제4장 DJ의 독후감
005. 제5장 애독서 다이제스트
006. 제6장 아버지와 아들의 일기장 대화



저자 및 역자소개
김경재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42년 전남 여수 출생
순천남교, 순천중학, 순천고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미 버지니아 신학교 수료(1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U Penn)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5년)
러 브리아티아 국립대 명예교수

월간 ‘사상계’ 정치담당 편집자
미 뉴욕 ‘독립신문’ 주필 겸 발행인
미 북미주 민통연합 전국의장
제15대, 제16대 국회의원 (순천)
김대중 대선후보 홍보위원장
노무현 대선후보 홍보본부장
박근혜 대선후보 기획특별보좌역
청와대 박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

저 서: 필명 박... 더보기

최근작 :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혁명과 우상 : 김형욱 회고록 세트 - 전5권>,<혁명과 우상 : 김형욱 회고록 5>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김대중 대통령이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 그의 일생이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는 것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다. 그는 어떤 책을 읽고 패배와 좌절로 가득찬 인생을 극복하고 21세기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이며 책을 통해 얻은 사상과 신념은 무엇일까? 그의 애독서는 무엇이며 내용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불굴의 용기와 신념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책들에 관한 비망록이다. 토인비로 부터, 앤소니 기든스 까지, 헤밍웨이에서 박경리까지 김대중이 만난 명작과 미래서들을 그의 인생행로와 견주어 소개하고 있으며, DJ의 독후감과 애독서 30편의 다이제스트를 곁들였다. 책의 말미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아들의 일기장 대화를 실어, 청소년기의 바람직한 인생관 형성에 노심초사하는 뜨거운 부정을 엿볼수 있도록 했다. '김형욱 회고록'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바 있는 김경재의 학구적인 시각이 책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를 잘 웅변하고 있다. 접기






마이리뷰
구매자 (1)
전체 (2)
리뷰쓰기
공감순




어디까지가 김대중의 독서일기인지..



독서일기라지만 이책의 저자는 절대 김대중이 아니고 김경재라는 "정치인"이다.첨엔 김대중저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나로서는 뜨아~~ 싶었다..

이책은 전기전문작가가 전기쓰듯이.. 김대중의 평소 언행 등을 바탕으로 쓴 얄굿은 형식의 독서일기였던 것이다. 거기다 전자가 전문작가도 아니고 정치인이니.. 여러 부분에서 연설문같은 느낌이 났고 챕터의 마지막은 연설문티가 팍팍 났다. -고백하건데.. 나는 정치인을 무척 싫어한다....감정적인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독서일기라지만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김대중의 견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뒤부분은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앞부분의 독서습관 등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로 홍보전단지 같은 느낌이 강했다.. 휴...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이책속의 도서선정도 김대중이 했고, 견해도 대부분 김대중의 견해라고 믿고 이 책을 보면.. 티비 속에서 보지 못한 그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여러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식,견해를 내비칠 때는 과감할때는 과감하지만 조심스러울때는 한참 조심스럽다. 책을 꼽는 그의 견해는 아주 백과사전식(뭔가 적당한 단어가 안떠오른다..규범적? 추천도서 100선? 뭐 그런 느낌)이다..물론 이건 김경재위원의 선정잣대도 포함되어 있겠지만..그리고 그의 독후감은 참으로 따듯하다.. 라는 느낌이다..날이 선 정치인이라는 느낌이 별로 안들었다.

이책의 백미는 마지막부분에 홍걸이의 일기발췌가 아닐까 싶다. 그나이의 한참 반항기의 청소년이 이렇게 착하고 반듯할 수 있나.. 싶다. 남의 말을 넓게 받아 들이고 아버지를 따를 는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 이렇듯 착하고 반듯반듯한 아이를 본 적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자상한 아버지 김대중.. 이렇게 자식에게 하루하루 글을 써주는 것이 쉽지 않을 터인데 그의 자식사랑하는 마음이 가득보였다. 홍걸이의 서투른 견해에 "그런 너의 생각은 정당하다"라고 편을 들어주며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글이 정말 인상깊었다.

- 접기
teatime 2004-03-02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

==

==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