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① 예언
발행인 | 박상현 Facebook
otterletter@mediasphere.kr2024년 10월 19일 • 댓글 1개 보기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납치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를 사살했다.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 정부는 이를 축하하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종료할 것을 희망한다고 발표했지만, 이스라엘은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하마스가 인질들을 모두 석방하기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의 걱정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받는 고통보다 전쟁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는 데 있다. 이미 이스라엘의 지상군이 레바논에 들어갔고, 이란은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대적인 보복을 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스라엘에 군사적 지원을 하는 미국은 이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것에 민감하다.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국가를 지원한다는 혐의를 받을 경우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외교력이 심각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군과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건물 옥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보이는 시신을 던지는 이스라엘 병사들
전쟁의 승리는 다양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다.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면 일단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을 꺾을 수 있는 중동 국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싸움에서 승리해도 국제적인 여론이 등을 돌리면 그 정당성을 의심받고, 외교적으로 고립되며, 잠재적인 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막강한 무기와 전투력을 갖춘 이스라엘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금의 이스라엘은 다르다. 세계의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나빠졌지만—이번 전쟁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이스라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민간인에 구호물자를 전달할 수 있게 안전을 보장하라는 국제 사회의 요청을 거부하다가 결국 미국 정부가 30일의 기한을 주고 듣지 않을 경우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스라엘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이 질문에 "시오니즘(Zionism)을 바탕으로 생겨난 현대 이스라엘은 탄생부터 그런 나라였다"고 대답한다면 현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거다. 지금도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으로 해결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정도로 진보적이지 않더라도 현재 벌어지는 전쟁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하는 국민이 많다.
문제는 현 이스라엘 집권 세력이 극우 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데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익 정당(리쿠드)의 부패한 정치인이지만, 극우세력과는 거리를 유지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자 시오니즘을 믿는 극우 세력과 손을 잡고 극우 연정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네타냐후가 손잡은 대표적인 극우 정당이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로, 당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현재 이스라엘의 공안부 장관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 세력의 손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때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국내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들 극우 세력이 이스라엘의 권력을 잡은 건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며, 수십 년 동안 차근차근 진행되어 온 일이다. 뉴욕타임즈의 로넨 버그먼(Ronen Bergman) 기자는 마크 마제티(Mark Mazzetti), 네이탄 오덴하이머(Natan Odenheimer) 기자와 함께 그 과정을 지난 5월 뉴욕타임즈매거진의 르포 기사로 정리했고, 지난달에는 뉴욕타임즈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약 한 시간에 걸쳐 이 기사를 이야기로 풀어내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법이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이스라엘 정부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극우민족주의 세력에 밀리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지난 60년 동안 내부에서 일어난 싸움의 결과다. 극우민족주의 세력이 지금 이 나라를 존망의 기로로 몰아가고 있다."
이 기사는 기자의 호기심에서 출발해 꼼꼼하게 취재한 후 사안을 통시적으로 정리했는데, 그 내러티브까지 탄탄해서 이스라엘 극우 세력의 역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입문이 된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이어질 내용은 그의 기사와 이야기를 좀 더 간결하게 편집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옮긴 것이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뉴욕타임즈에 글을 쓰는 로넨 버그먼이 이 문제를 집중 취재하게 된 계기는 2015년에 일어난 한 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요단강 서안 지구의 두마에서 방화범이 팔레스타인 사람의 집에 화염병을 던져 화재를 낸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 집에 살던 가족 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에는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도 있었다. 이런 방화 사건은 처음이 아니었고,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 들어온 유대계 정착민들의 소행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로넨 버그먼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미국의 연방수사국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정보, 수사기관인 신베트의 수장을 지낸 아미 아얄론이라는 인물을 인터뷰했다. 유대계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가축을 죽이는데 신베트 같은 기관이 그런 단순한 방화 사건을 막지 못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버그먼 기자는 아얄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신베트는 아랍의 테러리스트로부터 유대계 주민을 지키는 일은 잘하면서 (적어도 작년 10/7 테러 사건 전까지는 그랬다) 유대계 테러리스트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는 건 왜 막지 못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요."

아얄론의 답은 이랬다. "그런 일을 막지 못하는 건 신베트만의 잘못이 아닌 걸 모르세요? 정부와 군, 검찰, 법원, 경찰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체가 과격한 극우민족주의 정착민이 법을 따르게 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이건 신베트 차원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총리와 내각 단계에서 내려온 거예요. 그 사람들은 신베트와 다른 수사 기관들에 '테러리스트가 유대인을 죽이면 끔찍한 일이다. 아랍인이 죽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다지 나쁜 건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버그먼 기자는 같은 질문을 다른 관료들에게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주 암울한 예측을 듣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아랍계(=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유대계의 폭력이 용인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그런 테러를 자행하는 극우 과격 세력이 정부에 들어갈 것이고, 그들의 행위가 합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기자는 그 주장을 믿기 힘들었다.

기자로 일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사 거리를 제보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허황한 얘기가 많아서 기사로 옮길 수 없단다. (대부분 "넷플릭스 드라마에나 어울릴 얘기들"이라는 게 버그먼의 표현이다.) 하지만 2015년에 들었던 그 암울한 전망은 달랐다. 그 이후로 8년 넘게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료들을 포함해 수백 명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찾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 전망이 정확했음을 깨닫게 되었단다.
"이스라엘에서 오랜 세월 취재를 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스라엘은 외부의 적은 막아낼 수 있지만, 진정한 위협은 내부에 있다는 겁니다. '모두가 법의 보호를 받고, 동일한 법이 적용되는 민주주의 국가'의 근본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그먼 기자가 보기에 극우 세력이 이스라엘을 장악하게 되는 과정은 1967년 6월에 시작되었다.
'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② 발단'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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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② 발단
발행인 | 박상현 Facebook
otterletter@mediasphere.kr2024년 10월 20일 • 댓글 1개 보기
현대 이스라엘이 탄생한 1948년 직후부터 주변의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땅에 있던 아랍 사람들을 밀어내고 만들어진 국가였기 때문이다. 건국 직후부터 주변국들은 이스라엘과의 국경에 병력을 배치해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켰고, 이스라엘은 이들을 끊임없이 막아내며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UN은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서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았다.
그런데 1967년 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시나이반도에 병력을 집결하고 UN 평화유지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 후 홍해로 들어가는 티란(Tiran) 해협을 봉쇄하면서 이스라엘의 경제를 위협했고, 5월에는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와 동맹을 맺었고, 이스라엘과의 접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하면서 이스라엘 침공을 암시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스라엘은 이들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쟁이 '6일 전쟁'으로도 불리는 3차 중동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으로 주변국의 공군을 궤멸한 후, 지상전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오히려 세 나라의 영토를 빼앗았다.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빼앗겼고 (1982년에 이스라엘이 반환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 가자(Gaza) 지구, 요르단 서안(West Bank) 지구, 골란고원(Golan Heights)이 모두 이때 획득한 땅이다. 단 6일 동안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2배가 되었다. 이스라엘로서는 자축할 일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빼앗아 차지한 새로운 영토에는 1백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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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③ 전개
발행인 | 박상현 Facebook
otterletter@mediasphere.kr2024년 10월 23일 • 댓글 남기기
1973년에 탄생한 이스라엘의 우익 정당인 리쿠드가 1977년 연정을 통해 집권하면서 이스라엘 최초로 우익이 다수인 의회가 탄생했다. 그 결과로 총리가 된 리쿠드의 당수는 메나헴 베긴 총리로, 젊은 시절—즉, 현대 이스라엘이 탄생하기 전—무장 조직에 소속되어 아랍 세력을 공격하는 데 가담했던 사람이다.

1977년이면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3차 중동 전쟁 10주년이 되는 해다.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그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시나이반도,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 골란고원—에서 불법 정착촌을 넓히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군과 정부는 이를 묵인해 왔다. 베긴 총리는 이 문제의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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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④ 학살
발행인 | 박상현 Facebook
otterletter@mediasphere.kr2024년 10월 23일 • 댓글 2개 보기
오슬로 평화조약에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격했다. 그러다가 최악의 참사가 1994년 2월에 발생한다. 바루흐 골드스타인(Baruch Goldstein)이라는 유대계 미국인 의사가 이스라엘군 군복을 입고 군용 공격 소총을 든 채 무슬림과 유대인의 종교 성지인 막흐펠라 동굴(패트리아크 동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둘러싼 건물이 세워져 있다)에 들어가 아랍인들을 향해 총기 난사를 한 거다.
무슬림의 명절인 라마단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가득했던 그날, 골드스타인은 아무런 문제 없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사고에 대비해서 철저한 경비가 이뤄져야 했지만, 군도 경찰도 그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느긋하게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기도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동소총을 쏴서 29명을 죽이고, 129명에 부상을 입혔다. 생존자들의 반격으로 그 역시 현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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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⑤ 침투
발행인 | 박상현 Facebook
otterletter@mediasphere.kr2024년 10월 24일 • 댓글 남기기
두 번째 인티파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당하기 전까지 추진했던 팔레스타인과의 오슬로 평화조약은 제1차 인티파다(1987~1993)를 끝내고 평화를 되찾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유대계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라빈을 암살하고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상황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유대계의 정착촌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없애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는 거세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마음을 산 건 폭력 저항 운동을 원하는 세력이었다.
제2차 인티파다(2000~2005)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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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⑥ 포그롬
발행인 | 박상현 Facebook
otterletter@mediasphere.kr2024년 10월 25일 • 댓글 남기기
마지막 글이니 간략한 요약으로 시작해 보자. 흔히 이스라엘의 문제는 중동을 떠나 살던 유대인들이 지금의 땅으로 돌아와 현대 국가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 로넨 버그먼 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즉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의 영토—시나이반도와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 골란고원—를 빼앗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전쟁이 현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변국들의 침략 위협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이스라엘의 영토를 직접적으로 침공할 수 있는 나라는 주변에 없다. 현재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1967년에 손에 넣은 점령지에 있다. 문제의 해법은 이미 나왔다. 이스라엘은 10년 넘게 갖고 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면서 관계를 회복했다. 마찬가지로 가자 지구와 요르단 서안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평화안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지하고,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이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스라엘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제동을 걸었다. 그들에게 1967년의 점령지는 신이 허락한 것이고, 메시아가 세상에 오는 날을 앞당기는 전제 조건이다. 이런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타협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세상의 법을 따르느냐, 하나님의 법을 따르느냐"라는 선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세상의 법"을 이야기할 때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법이었지만, 현대 세계에서 "세상의 법"은 많은 경우 민주주의 제도다. 근본주의 종교인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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