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

[포커스]동학혁명 120년 vs 갑오경장 120년 - 주간경향

[포커스]동학혁명 120년 vs 갑오경장 120년 - 주간경향

[포커스]동학혁명 120년 vs 갑오경장 120년
윤호우 선임기자2014.01.14

갑오년 의미 둘러싸고 진보-보수 역사논쟁 … 진보역사학계는 봉건질서에 저항한 동학농민혁명을 되새기는 데 반해 보수학계는 갑오개혁 띄우기 나서


2014년 갑오년은 ‘갑오’라는 단어에서 120년 전의 역사적인 상황인 갑오경장과 갑오농민봉기를 떠올리게 한다. 1894년 갑오년에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들 역사적 사건은 올해로 60갑자가 두 번 순환하는 2주갑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교학사 역사교과서 검인정 통과로 크게 논란이 일어난 역사학계는 2014년의 의미를 두고서도 새로운 논쟁을 앞두고 있다. 보수성향의 역사학자는 올해 갑오년을 근대화의 첫걸음이라는 의미에서 갑오경장에 초점을 맞추고,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는 농민들이 기존의 봉건질서에 저항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신갑오경장’ 내세워
이런 논쟁은 지난해 말 정치계에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120년 전 갑오년에는 갑오경장이 있었다. 경장이라는 말은 거문고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때 낡은 줄을 풀어 새 줄로 바꿔서 소리가 제대로 나게 한다는 뜻인데,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신갑오경장’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은 곧바로 “1894년 갑오년에는 갑오경장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학혁명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지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전북 정읍에서 ‘고부 봉기 역사맞이굿’ 길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 경향신문

논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박 대통령은 120년 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조부인 박성빈씨(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친)가 경북 성주에서 동학의 접주로서 활동했다는 설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1963년 10월 3일 전북 정읍 황토현에서 기념탑 제막식이 열렸을 때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해 “5·16 혁명도 이념면에서는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에 쓴 글 ‘나의 소년시절’에 의하면 ‘선친께서는 (…) 20대에는 동학혁명에도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처형 직전에 천운으로 사면되어 구명을 하였다고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는 발굴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히려 동학혁명을 진압하는 쪽에 서서 벼슬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2005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동학 관련설은 다시 정치계에서 화제가 됐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시행 후 혁명 참여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족들이 혁명 참여자 신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대길 정읍시청 동학농민혁명 선양팀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유족들이 혁명 참여자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갑오경장 논란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 임명 당시 뉴라이트 성향 때문에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킨 유 위원장은 갑오경장·동학 연구로 학계에 알려진 인물이다.


유 위원장은 동학농민혁명을 부패한 민씨 친족 정권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을 추대하려는 무장개혁운동이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그는 동학의 진보적 교리와 사상에 입각한 ‘동학혁명’이 아니라, 보수적·복고적 성격의 ‘갑오농민봉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명대 주진오 교수(역사콘텐츠학과)는 “역사학계에서 갑오경장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며 “갑오경장이라고 거의 유일하게 쓰는 분이 유 위원장”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유 위원장은 동학농민혁명을 부정적으로 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갖도록 앞장서온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전북 정읍에 있는 동학혁명군의 첫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 입구. | 경향신문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농민운동으로, 갑오경장을 갑오개혁으로 표기하고 있다. 교과서 검인정 통과로 논란이 된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역시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관련 부분에 대한 일부 잘못된 서술로 학계에서 여러 가지 비판을 받았다.


특히 동학농민군의 목적이 국왕의 선정 회복과 전통적 질서 복구에 있다는 서술은 교육부에서 ‘학계의 통설과 어긋나는 유교적 의거관에 의거한 서술로 부적절’이라는 평가와 함께 수정 요구를 받았다. 역사학계에서는 이 서술이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주장한 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서술은 최근 수정·보완됐다.


“민중ㆍ변혁 운동에 대한 거부 반응”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농민운동이 ‘살육과 약탈’을 해 전세가 불리해졌다고 한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또다른 서술을 문제삼았으나 이 내용은 수정되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 서술의 주역인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해 5월 연 학술회의에서 이미 동학농민운동을 거론한 바 있다. 이 학술회의에서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연구교수는 “2011년 출판한 한국사 교과서에서 동학농민운동에 비춰진 민중적 시각을 분석한 결과 동학농민운동의 서술 분량이 (청일전쟁·갑오개혁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실려 있다”고 주장하며 갑오개혁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갑오개혁의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주 교수는 “개화파의 개혁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민중운동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북대 신영우 사학과 교수는 “갑오개혁은 우리 스스로 개혁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무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유영익 위원장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람들은 동학농민봉기를 가장 중요시하고, 다음으로 갑오경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교과서에도 그런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세계사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청일전쟁이었다”며 “청일전쟁을 잘 이해해야 갑오년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갑오경장의 의미를 띄우고,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축소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주 교수는 “박근혜 정부로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민중·변혁운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동학농민혁명은 국가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충북대 신영우 교수는 통합적인 시각을 주장했다. 신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이든 갑오개혁이든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것은 입체적인 면을 한 면만 보는 것”이라며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갑오개혁이 동시에 일어난 복합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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