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이은선 - 4.16세월호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이은선 - <한국信연구소 오늘, 24.04.16화> -信學하기이야기 10- “세월호 10주기의 오늘” 19세기 말... | Facebook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오늘, 24.04.16화> -信學하기이야기 10-

“세월호 10주기의 오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세밀히 분석한 글을 읽다가 세월호 10주기, 또 이번 총선에서 모든 고통과 죽음같은 시간을 견디고 다시 돌아온 조국혁신당의 조국을 보면서 2016년 세월호 2주기 때 쓴 글을 다시 들춘다. 오늘부터 몇차례에 걸쳐서 이 글과 더불어 세월호 관련 글들을 공유하고 싶다.

알 수 없는 신(神)을 품고 다가온 세월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수없이 외치며 정말 많은 사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 앞에서 다시 새롭게 '믿음'(信)을 논하고자 했고, 그렇게 해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몸(身)의 문제가 더 견딜만해졌고 분명해졌나? 믿음과 부활에 대해서 더 잘 말할 수 있게 되었나? 물음과 답이 몇차례 전회하는 가운데 10년이 지났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까이서는 손주들의 '탄생'도 몇차례 경험했다. 

이 글을 처음 쓴 것은 2016년 4월 4일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여 <기독교세월호원탁회의>에서 주최한 <세월호의 증인, 부활의 증인>을 위해서였다. 
이후 <에큐메니언>에도 실렸고, 
나의 책 <세월호와 한국여성신학-하라 아렌트와의 대화 속에서, 2020, 동연>, 129-164pp.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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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명멸(明滅)한다-4.16세월호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5:15)

“진실의 힘은 진실을 밝히는 길이 얼마나 고된지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는 길이 얼마나 외로운지 겪어서 알고 있습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세월호, 그날의 기록> 2016.637 쪽)

“사실이 권력의 손에서 안전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권력은 본질적으로 사실적 실재가 확보하는 안정성을 대신할만한 대체물을 결코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 사실은 완고성에서 권력보다 우월하다.”(한나 아렌트, <과거와 미래사이>, 2005, 347 쪽)

“마음이 지독하게 슬퍼봤던 자들은 아주 어렵게만 아주 어렵게만 기쁨이 태어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 기쁨에는 아무리 많은 감사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작은 기쁨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팟방416의 목소리 시그널, 2016.01.13)

I.  2주기를 맞은 4.16 세월호 진실의 오늘

   “팽목항은 지옥이었다. 산지옥이었다.” “내 자식이 저 40m 물속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태, 거기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꺼내주지를 못하는 상태, 그게 지옥이더라구요. 누구하나 우리한테 똑바로 얘기해주는 데가 없고...” 

   이렇게 “산지옥”, 지금 이곳에서의 지옥으로 비유되는 팽목항에서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2015년1.1부터 시행되었다. 그 특별법에 따라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지난 3.28일(월)과 29(화)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 홀에서 제2차 청문회가 열렸었다. 제2차 청문회 첫째 날의 과제는 세월호 참사의 침몰원인과 그 당시 선원들의 조치가 어떠했나를 밝혀내는 일이었다. 권영빈, 장완익 위원 등 조사위원들은 정부가 발표한 당시 상황의 세월호 AIS(Auto Identification System, 선박자동식별시스템: 선박이 항해하면서 자기 위치를 자동으로 발신하는 장치) 항적 복원자료와 진도와 목포, 제주의 VTS(해상관제시스템) 복원자료가 혹시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작되었고 편집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객관적 데이터 분석과 더불어 끈질기게 물었다. 

   하지만 해수부와 해양청의 증인과 참고인들(임병준 해수부 해사안전관리과 주무관, 김형준 해양경찰청 진도연안 VTS 센터장, 허용범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 단장 등)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잘모르겠다”, “기계결함” 등을 말하면서 계속 부인했다. 어떻게 17-8노트(18.52km/1시간)의 속력으로 가던 130m나 되는 큰 배가 외부에서의 간섭이 없었다면 3초 안에 뱃머리의 각도를 좌우로 10도 이상씩 빠르게 바꿀 수 있는지, 왜 사고 당시 인근에서 계속해서 구조를 제안한 둘라에이스호와의 교신내용 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진도 VTS 쪽에서의 대답에만 잡음이 끼어있는지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그날 ‘선내 대기하라’를 안내방송을 한 강혜성 전 여객부직원은 자신의 대기방송이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지시받은 것이라고 증언했으며, 또한 그 때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준석 선장과 강원식 1등 항해사, 조준기 조타수, 그리고 선원들이 함께 조타실에 있었으면서도 대책회의는커녕 서로 대화조차 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2차 청문회 두 번째 날을 통해서는 선박 도입 및 운영과정에서 ‘한국선급’ 책임자들 및 항만청 관리들과 청해진해운의 밀착, 국정원과의 관계, 그리고 선체 인양과 그 이후의 증거보존 등과 관련해서 질문이 이어졌는데,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노골적인 비리, 태만, 거짓과 방해 등이 한껏 드러났다. 이리하여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세월호의 진실이 더 밝혀질지, 그리고 보존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과 답답함, 안타까움만이 더해졌다. 이와 더불어 특조위의 활동을 6월 30일로 한정하려는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 올해 말까지 활동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또한 해양경찰 지휘부에 대한 특별검사임명을 요청했지만 4월 13일의 총선에 이긴 민주당조차 거기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있다. 

지난 청문회에서도 드러났듯이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특조위 활동이 끝난 이후(7월)로 잡고 있고,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세월호 진실의 핵심증거인 선체를 인양 한 후에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지에 대해서 “계획이 없다”고 한 것 등은 “세월호는 인양되지만 ‘진실규명’은 침몰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혹을 강하게 품게 한다. 특조위는 청문회에서 쏟아진 각종 의혹과 그동안 접수된 조사신청 건수 중 176건의 진상규명을 남겨두고 있다고 하지만 6월30일까지는 그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예견할 수 있다.

II.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와 정치의 충돌, ‘생지옥’의 다른 말

   “사실적 진리는, 만약 그것이 특정 집단의 이득이나 쾌락에 반하는 경우라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한 냉대를 받는다.” “... ‘진리의 반대는 수천 가지의 모습이고 무한한 (활동의) 장을 가지고 있다.’ 방향 감각과 실재감을 얻기 위해 의존하는 모든 사물의 소름끼치는 동요(動搖)에 대한 경험은 전체주의 통치하에 있었던 사람들의 공통적이고 가장 생생한 경험 중 하나이다.” 

   이 말들은 아렌트가 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 전 ‘르네상스(renaissance, 재탄생)’ 시기에 프랑스의 몽테뉴가 한 말을 20세기 나치나 스탈린 등의 전체주의를 돌아보면서 다시 음미한 것들이다. 오늘 세월호 참사 청문회를 지켜본 유족들과 국민들도 크게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세월호의 진실이 세 가지 차원에서 변형되고 왜곡되어 지는 것을 말한다. 즉 먼저 왜 그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다음으로 그것이 일어난 후 왜 그렇게 구조를 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원인들을 규명하고 진실을 알려는 자신들의 노력과 고통이 왜 그렇게 짓밟혀지고 왜곡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고 당시 팽목항에서 경험한 “생지옥”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그들이 왜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실을 알려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한, 사고 이후의 매일의 삶도 역시 “지옥”임을 밝힌다.

“지금 현재 가족들은 사고 초기나 지금이나 생활은 거의 똑같아요. 지옥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도, 그때는 진짜 생지옥이었고, 지금은 지옥, 그보다 조금 좀 나아지기는 했으니까. 언론, 그 다음에 바라보는 시선, 그 다음에 압박, 아직도 이런 게 저희들한테는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가족들한테는. (일 년 내내 지옥을 살고 계신 거군요.) 그러죠. 계속 트집을 잡아서 끌어내릴라 그러고, 없앨라 그러고, 지울라 그러고, 가족들은 어떻게든지 진실규명 할라고 노력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서로 싸우다 보니까 지옥이 되는 거죠. 그렇게. 가족들한테는.”
   여기에 더해서 이번 416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뒤늦게 알게 된 더 충격적이고도 끔찍한 사실 하나는 이런 정치와 진실의 충돌이 단지 유족들을 상대로 해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인간성의 지극하고도 자연스러운 표출이라고 여겨져 오던 자원봉사자, 그것도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고서 팽목항에서 희생자를 수습해 오던 민간 잠수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김관홍 잠수사의 말에 따르면, 그는 2014년 4월23일 팽목항에 먼저 가있던 후배 잠수사로부터 그곳에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잠수사들이 너무 적으니 빨리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내의 허락을 받고” 다른 동료들을 더 모아서 그곳으로 급히 내려갔다. 당시 언론의 보도는 사고현장에 500여명의 잠수사들이 투입되었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선내로 진입할 수 있는 잠수사는 7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7월9일 해경이 “달랑 문자 하나로” 그만 철수해 달라고 할 때까지, 즉 배안에 희생자가 11분 더 남아있었지만 그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만 했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선내로 진입하며 죽음을 넘나들면서, 온갖 비리와 비인간성을 겪으며 열악한 상황 속에서, 동료 민간잠수사의 죽음도 목도하며 스스로도 다리부상을 당하면서 일했음을 전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은 “죽음과 맞서서 일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이나 권력자들은 와서 자신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브리핑 받고, 그들이 한 마디씩 던진 말들을 해수부와 해경은 전문가인 자신들에게 다시 명령하고, 심지어는 유족들이 수고한다고 보낸 음식물조차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면서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그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해경이 바로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의 죽음을 자원봉사자들인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우고, 2015년 9.15일 국정감사에서 해경본부장이 위증까지 하면서 이들을 임금고용인으로 둔갑시키며 절망과 죽음에로 몰고 간 것이다. 또한 바다 속을 넘나들며 290여구의 시신을 수습해오는 가운데 얻은 부상을 공무원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제 때에 치료해주지 않아서 이들 중 누군가는 절망으로 자살하고, 누구는 신장투석까지 하는 지경으로 병이 깊어졌고, 김관홍 잠수사 자신도 더 이상 잠수 일을 할 수 없게 되어서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벌며 자식들과 더불어 죽으려고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동료 자원봉사 잠수사의 죽음이 ‘업무상과실치사’로 덧씌워져서 억울한 재판을 받아온 선배 공우영 잠수사에 대한 판결이 2015년 12.7일 17개월이나 걸린 지난한 싸움 끝에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그리고 자신은 그 일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증언을 해서 위증을 정정해 낼 수 있었지만, 수개월동안 생업까지 뒤로하고 세월호의 구조에 힘을 쏟던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아픈 몸뿐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국체와 거기서의 사람들은 뼛속까지 썩어있었고, 그 타락한 관료주의와 보신주의, 일상화된 거짓말과 뻔뻔함은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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