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알라딘: 일그러진 근대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2003

알라딘: 일그러진 근대

일그러진 근대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은이) 푸른역사 2003-05-19



6.7
100자평 2편
리뷰 7편


책소개

이 책은 19세기 영국인들이 본 한국와 일본의 모습을 통해 세 국가 간의 상호인식을 고찰하며 19세기 문명과 야만의 담론에 의해 일그러진 근대를 조명하고 있는 역사서이다. '역사 속 타자 읽기'라는 주제 하에 열린 2003년 제46회 전국역사학대회의 기조발표 내용이기도 하다.

19세기경 이 두 나라를 여행했던 커즌과 비숍의 여행기 등에서 일본은 '인형의 집'으로, 한국인은 '야만인'으로 표현된다. 지은이는 이외에도 100여 년 전 영국와 일본, 한국에 만나는 과정에서 쏟아져나온 수많은 이야기와 장면들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타자화.주변화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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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서양은 동양의 근대성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프롤로그 곡해와 왜곡의 거울
다시, 근대성을 생각한다
'근대적 서양'과 '전근대적 비非서양'
근대성을 넘어서
식민지 근대성에 주목하는 이유
영국과 동아시아의 만남
1장 문명과 야만의 담론
타자보다 우월한 자아
문명과 야만
일본, 탈아입구에서 입아탈구로
조선, 이루지 못한 문명개화의 꿈
2장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제국에서 온 두 명의 탐험가
유럽의 저울 위에 놓인 한국과 일본
식민주의 담론의 남성성과 여성성
인종, 젠더, 현지 주민의 반응
3장 오만과 편견에 갇힌 인형의 집
예외적인 비非백인종에 대한 예찬
동양도 서양도 아닌 잡종의 나라
애정어린 멸시와 견제
균열, 일본의 야심과 영국의 오만
4장 영원히 클 수 없는 어린아이의 나라
문명 퇴화의 본보기, 조선
부패하고 무능한 웃음거리 왕국
희생양, 건장하지만 무관심한 백성들
배설 사건과 양기탁 사건
일본의 팽창에 대한 묵인
5장 흠모와 애증, 경탄할 만한 부의 제국
영국에 대한 열렬한 흠모
국체, 일본의 새로운 정체성
영일동맹과 러일전쟁
영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
영국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
적대감의 부상
6장 제국에 이르는 두 개의 길
제국주의적 심성
모범으로서의 영 제국
일본의 제국적 능력
영국식 간접통치와 일본식 동화주의
일본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에필로그
참고문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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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박지향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평등을 넘어 공정으로>,<제국의 품격> … 총 32종 (모두보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스토니브룩 소재)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프랫대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1992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도쿄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2011~2015), 한국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대통령 소속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영국사와 서양근현대사 전공으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집중 연구했으며 지난 10여 년간 영국, 아일랜드, 일본, 한국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노력을 진행해왔다. 저서로 Profit-Sharing and Industrial Co-partnership in British Industry 1880-1920: Class Conflict or Class Collaboration?(London & New York),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제국의 품격』,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클래식 영국사』, 『대처 스타일』, 『슬픈 아일랜드』,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 등의 저서가 있고, Past and Present, Journal of Social History,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서양사론》, 《역사학보》 등 국내외 저널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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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jip.choi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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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일본탓만하는 우리나라의 근대사의 기술은 본질적인 한계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우리들의 못난 선조들의 과오부터 정확히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너무 유치하다 못해 집단뽕에 빠져있으면서 헤어나질 못하는 한 한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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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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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의 의도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 독자의 독서방향을 침해하지 않을까 지레 걱정되었다. 내용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저자의 강한 성향? 자기 확신이 많이 드러나는 책임은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저자가 열심히 연구하고 확인한 결과인만큼 배울 게 많은 책인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일그러진 근대>는 비교사의 측면에서 100년 전의 한일관계를 다루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제국 영국의 눈으로 본 준제국 일본과 준식민지 조선을 설명한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삐뚤어진 제국의식은 그들을 동경하며 따르려는 일본을 비하하거나 경계한다. 영국은 근대화(혹은 서양화)에 어느정도 성공한 일본을인정하며 제국의 반열에 끼워주려 하지만, 러일전쟁을 거치며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침해받자 바로 본성을 드러낸다. 이런 점을 간파한 일본은 20세기 초반이 되면 반대로 영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에 비해 영국은 조선에 대해 시종일관 폄하하는 자세를 보인다. 부패하고 뒤쳐진 이 국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할 자격이 없기에 일본같은 문명국에서 지배받는게 낫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문명화의 최일선에 서 있는 영국인이지만 조선을 바꾸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그보다 자신들을 대신해 조선에 지극히 관심을 보이던 일본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인에 대해 가졌던 긍정적인 생각이 점차 바뀌어도 영국인은 조선 문제를 일본이 처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조선은 영국인들의 눈에는 어찌할 수 없는 나라였다.

위와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우선 이 책에서는 100년 전 스스로 1등 인종이라 생각하는 영국인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은 문명화의 앞장선 우수 국민으로 자기의 역할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착각한다. 당연히 그들이 남긴 기록은 거만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짐작 가능한 내용이지만 영국인 스스로 남긴 기록을 확인하니 화나면서도 눈길이 간다.

둘째, 일본을 이해하는 영국의 시선이 정부와 민간인 사이에 간격이 크다는 점이다. 즉 영국 정부는 내내 일본의 한국 정책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위에서 밝힌 바처럼 문명의 입장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외교적으로도 일본을 이해하련는 자세를 강하게 드러냈다. 반면 영국의 민간인들은 처음에는 정부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다 제국 일본의 진면목을 확인한 뒤에는 일본은 비판하는 자세를 취한다. 오히려 한국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셋째,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믿을 수 없다. 자국의 이익 앞에서 어떠한 거짓과 가식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영국도 일본도 마찬가지다. 약소국의 입장이나 그 나라 국민들에 대한 이해는 없다. 이용할 대상으로만 판단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주었나만 강조한다. 시간 관념, 교통 시설, 건축물 등 드러내보일 수 있는 변화들을 통해 문명화의 역할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자주하는 망언들을 보면 여전히 이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할 수 있ㅆ다.

넷째, 저자 박지향은 100년 전의 조선에 대해 ‘조선‘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책 전체에서 한국이라고 썼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분명 지금의 한국과 과거의 조선은 다른 나라인데 왜 저자는 한국이라고만 썼는지. 연속성을 중요시했기 때문일까 궁금해진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뉴라이트 계열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 책은 역사전문 출판사인 푸른역사에서 출간되었지만 최근의 책들을 보면 우익 관련 책들을 전문으로 하는 기파랑에서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하고 박정희 시절을 옹호하며 MB 정부에 아부하던 그들과 손잡은 저자를 고운 눈으로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 책까지 엮어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저자가 영국사 전문가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아무튼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의 독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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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 200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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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인데, 실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 세 나라가 서로를 바라보았던 시선의 차이, 그리고 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일본, 한국의 근대와 그들이 서로를 보았던 시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명쾌한 분석의 영역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떤 애매한 범주만 있다. 이 책을 읽고는, 저자의 요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신화화 현실'이라는 부제로 몇몇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했다면, 이 책은 <일그러진 근대>라는 제목 자체가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한다. 자못 도발적인 이 제목을 걸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책의 서문을 읽어보면 저자의 지향이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지향은 (페미니즘을 포괄하는)탈식민주의, 탈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이 책을 쓰고 있으며, 지난 연구와 후속 연구를 통할하는 문제의식 또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그는 그가 의도했던 식민주의/근대화담론의 균열내기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주장하듯 식민지의 광범한 회색지대를 조명하고, 민족과 반민족의 고착적인 이분법을 깨는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어젖힐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어느 부분에서 포커스가 놓여지는지,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제기되는지가 다소 애매하다.

동시대 담론의 분석, 정세의 분석이라는 차원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분석적이라기보다는 나열적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별로 생산적인 비평은 못되지만 하여튼 박지향의 글은 좀 그렇다. 역사적 사실의 배열 자체가 첨예한 문제의식을 통해 조직되어야 글을 읽으면서 예리한 느낌을 받을텐데, 이 책은 그저 구구절절 역사 이야기를 해 놓고선 어느 부분에 가서 갑자기 민족의식의 허구성이라든가 식민지화의 근본적 원인이라든가 하는 뭉툭한 비판을 던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엉성함은 탈식민주의라는 20세기 후반(그리고 21세기로 넘어서는)의 커다란 지적 기획을 동아시아와 구미열강의 비교역사학적 차원으로 끌어오려는 힘겨운 노력에서 발생하는 옥의 티 정도로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저러나 저자에게 바라는 것은 탈식민주의 이론에 휩쓸려 성급하게 비교연구를 내놓는 것보다는, 일단 지금까지 해 온 자신의 각국사 중심의 지적 훈련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저자가 비교의 대상으로 매번 들고 나오는 영국, 일본, 한국은 그 사이의 관계보다 더 커다란 차원에 대한 확실한 문제설정이 있지 않으면 너무나 엉성하다. 왜 굳이 세 나라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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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에사는고래 200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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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대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일본과 서구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전제하에 책은 이야기 되어지고 있다. 일본과 서구라는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통해 구부러지는 빛으로 우리의 근대는 이야기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는 우리민족의 고유성이나 우리 민족의 우수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일본을, 서구를 제외 시켜 놓고, 타자로 대상해 놓고 우리의 근대는 이야기 되어 질 수 없다. 우리의 근대는 일본과, 서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식으로 받여들여져 생성되었지 우리의 독자성이나 우수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우리의 근대성의 원천을 살펴보는 동시에 일본의 근대와 서양의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 그들의 편협한 입장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일본과 조선의 시각은 오리엔탈리즘 적이면서도 서양식의 색깔이 가미된 오리엔탈리즘일 수 밖에 없다. 일본 역시 서구를 표본 삼아 근대를 이루려 했지만 그것은 일본식의 근대성 이루기가 아닌 서양 따라잡기의 근대 만들기로 그치고 있다는 점을 책은 지적하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로 길들여진 습관을 극복하고 서양이 자기와 타자를 바라보고 이론화한 방식에 우리는 이제 의문을 제기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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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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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근대>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의 초반까지. 한도 많고 탈도 많아 시끌벅적하던 그 시대의 한국과 일본을 서양 강대국, 즉 영국에서의 관점이 어떠했는가를 깨끗하고 부드럽게, 또한 흥미롭게 나타내 주었다. 동양인이라는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대를 판단했던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관점의 제시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면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어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정작 저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 즉, 우리의 역사관점 - 피해자라는 역사의식을 떨쳐버림과 동시에 민족주의의 틀을 깨자는 그 의도는 도대체 무엇으로 나타내려고 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 그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면, 또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시각의 틀에서 벗어난 서양의 눈으로 보았던 동양정세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면을 제시해 주었을런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그것만으로 우리의 역사의식을 다시 대체시키고 민족주의라는 틀을 깨자고 하는 저자의 의도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저자가 머릿말에서 밝혔던 거창한 주제와 의도는 책을 읽으면서 잊어먹기 일쑤란 말이겠다.

저자는 우리의 근대를 제대로 알고서, 남의 탓으로 돌리곤 하는 우리의 의식을 우리자신부터 각성하여 탈식민지화, 탈근대화를 논하고자 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다소 불명확한 영국의 관점 하나만으로는 우리의 근대를 제대로 알수 없을뿐더러,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근대의 일그러짐을 되살펴 각성하기에도 무리다.

그 당시의 열강인 영국은 동양인 일본과 조선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또 어떤 생각으로 이용하였을까하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궁금점과 흥미성만큼은 이 책이 충분히 제공하여 준다. 더구나 군데군데 들어가 있는 삽화는 배껴내고 싶을 만큼 정곡을 찌르고 풍자성이 넘친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근대가 일그러졌었다는 것만을 시사해 줄뿐, 우리의 근대가 어떻게 일그러졌었고 우리는 그 일그러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는 전혀 제시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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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kay 200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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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그러진 근대를 읽으면서, 나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보고십지 않은 자화상을 거울을 통해 보는듯 했다. 편협한 민족주의 사관이나, 한총련 계통의 좌파적 사관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한 반감과 거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를 미화하거나, 아니면 victim의식에 사로잡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우리의 불행의 책임을 일본 제국주의와 열강에게 전가하며 살아왔다. 배타적인 민족주의 사관이나, 마르크시즘적인 사관, 그리고 페쇠적인 역사관이 지배하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박지향 교수는 담대하게 우리의 과거 역사를 조명할 뿐만아니라, 한국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 교수님의 학자로서의 담대함과 지혜와 비전에 다시한번 감사를 들리며, 앞으로도 더 좋은 역사 책들을 써주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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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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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향 교수의 책이라면 이미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또 지난 번에 봤던 책,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에서도 그의 논문 한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존재는, 바로 그 논문에서 알게 됐다
마음에 드는 학자였고 무엇보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근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로워 상당히 기대를 하고 본 책인데 100% 만족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영국 역사를 쓴 책에서는 번뜩이는 재치가 빛났는데 한국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비록 일반 대중에게는 다수의 정서이나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청산해야 할 과거 유습이라는 지배가 다수인지라, 학자들이 외치는 민족주의 극복이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타자성 극복 역시 새로울 것은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민족주의 정서가 퍼진 것은 겨우 식민지 시대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즉 일본에 대한 대항 논리로써) 과거에는 외세와의 접촉 자체가 없었으니 민족주의라 이름붙일 만한 현상조차 없었을 것이다
즉,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민족주의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인은 일본이나 여진 등에 대한 타민족에게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만 봐도 얼마나 극렬하게 그들을 배척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겠지만, 근대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일본이란 국가의 저력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줬다는 자부심 때문에 갖게 되는 우월감 자체가, 사실은 과거부터 실체가 모호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하수로 여겼던 것만큼, 일본이 조선을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은, 그저 막연하게 남을 우습게 보는 유아독존적인 유치한 감정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일본은 조선과는 매우 다른 별개의 문화를 만들어갔고 유교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중국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과연 조선에 대해 얼마나 문화적으로 고마워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지도층이 사생결단을 내고 전력한 결과였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당연히 고종을 위시한 왕조 세력가들의 무능함과 부패다
이상하게도 식민지배의 책임은, 을사오적을 비롯한 일부 친일파에게만 국한됐고 정작 조선을 대표하는 당사자, 고종과 민비 등에게는 동정론이 퍼져 있다
마치 고종은 외세와 친일파들에게 휘둘려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하게 죽은 가엾은 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고종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일까?
만약 그런 식으로 동정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무능함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민비나 아버지 대원군에게도 휘둘렸던 걸 보면 아마도 고종은 난세를 헤쳐나갈 군주감은 못됐던 것 같다
이미 국운이 쇠락해져 누가 왕이 됐더라도 왕조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등의 군주였다면 그런 식으로 힘 한 번 못 써 보고 식민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따지면 이른바 "조선의 국모"라는 명성황후의 부패상과 정권욕도 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외세 침입 때문에, 즉 나쁜 놈들 때문에 착하고 선량한 조국이 멸망했다는 식의 자조론은, 저자의 말마따나 발전지향적인 미래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 경제력이 일본을 압도할 때야 비로소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이나 혹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한국 여행기는 읽은 적이 있다
항상 원자료가 2차적인 해설서 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원자료를 분석할 수준이 될 때 하는 얘기라는 걸 이번에 느꼈다
물론 "한국과 이웃나라들" 을 재밌게 읽긴 했으나 박지향 교수가 분석한 글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시대적 의미나, 혹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윤치호 일기가 국역됐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가 그 복잡다단함에 놀라 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은 워낙에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그런지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 보다 100배는 재밌게 읽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원자료 보다 해설서가 아직은 더 쉽게 다가온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지 통치는 이 책에서도 영국인의 눈을 통해 확인된다
영국이 간접 지배를 선호했던 데 비해, 일본은 완전 동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억압과 반발이 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윤치호 같은 사람은 이왕 식민지라 될 바에야 일본보다는 영국이 낫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간접통치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영국인이 훌륭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박애와 사랑 정신에 가득차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영국은 워낙에 광대한 제국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100% 복속시킬 수는 없었다
여력이 안 됐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전면적인 동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동화 정책이 심한 억압과 함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당시 영국 제국주의 관료들에 따르면, 일본이 동화 정책을 포기하고 간접 지배 쪽으로 돌아선다면, 즉 보다 인도적으로 그들을 지배한다면 한국인은 식민 지배를 유순하게 받아들였을 거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 정책은, 당시 같은 편이었던 영국 관리들 마저도 고개를 흔들게 만들만큼 끔찍했다고 하니, 식민지를 살아 낸 조선인들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구한말 조선인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한말 사진을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인데, 대체 왜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도 무표정했다는 말인가?
요즘 눈으로 보자면 상당히 촌스럽기까지 하다
매우 평면적이고 뚱한 느낌을 준다
고위 관리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난 단지 오래된 사진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당시 한국을 방문한 유럽인들도 나처럼 조선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기라는 신식 물건에 너무 긴장해서인가?
아니면 원래 전근대는 개인의 감정이 무시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여서인가?
비슷한 시대의 다른 나라 사진들도 좀 구해서 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일본인은 보다 화사하고 생기있게 느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한창 국력이 물오를 때였으니 유럽인들이 생동감 있게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또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본의 판화를 보면, 꽤나 강렬하게 역동적인 색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는 동양 국가였을 것이다

비숍 여사가 식민지 관리였던 커즌과 달리, 젠더라는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소수자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타자성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인도의 부왕까지 지낸 커즌의 여행기와, 개인 여행가에 불과했던 비숍의 여행기가 다른 관점이었음은 당연하다
근본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 혹은 영국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을 우상시 하고 따라잡을 목표로 봤던 일본에서는, 젠더보다 인종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훌륭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 서양을 배척해야 할 오랑캐로 간주했던 조선에서는 (아마도 일반 민중들까지 서양 기술력의 위대한 실체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종보다 더 앞선 것이 젠더였다
동방예의지국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생각하던 당시 양반 계층조차, 비숍 여사의 눈에는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있다
상대적으로 커즌은 남자였기 때문에 관으로부터 지극한 대접을 받았고 여행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관이나 양반 계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충고까지 적어 놓는다
그러나 비숍 여사는 관의 협조문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마을을 가든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
19세기 조선인의 눈에는, 여자 혼자서 먼 이국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계급적인 부분은 (민족이나 젠더, 직업군,인종 등 모든 신분을 망라해서)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단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도 현지인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백인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백인의 특권까지 거부해 버린 것이다
반면 커즌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비슷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민족주의나 집단적인 대응이 근본적으로는 싫지만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개인은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관용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아무리 완벽한 개인의 시대를 외친다고 해도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민족이나 젠더, 인종, 종교 등으로 명명될 수 밖에 없고 완벽한 개인의 시대란 어쩌면 영원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비극적인 느낌이 든다
결국 국가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아나키즘 역시 유토피아 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란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아나키즘의 시대가 아니라, 유럽 연합이나 미 합중국 같은 느슨한 의미의 지역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이나 민족주의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끈질기게 유지할 것 같다

300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고 서술도 평이해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관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근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윤치호 일기를 분석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제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말고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다른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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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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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의 근대사책입니다.근대에 대한 관심으로 읽었던 2003년 출간 당시 읽었던 책입니다만, 박교수는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 ‘뉴라이트(new right)‘를 지지하셨더군요.

이 책은 영국사는 전공한 교수가 집필해서 영국과 일본의 근대화 사례가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중심주의 (ethnocentrism)적 시각을 설명합니다.
특히 영국이 본 일본과 한국에 주목합니다.

여성인만큼 이런 서양중심주의에서 보이는 남성의 시각을 드러내는 점도 나름 신선했습니다.

다만 시각(perspective)의 문제인데 다른 뉴라이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생적 근대화 ‘의 가능성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제국으로서의 영국과 제국이 되고자 하는 일본에 주목해서 논의를 이끌어갑니다.

서양사를 전공한 학자라서 동양과 한국에 대한 무의식적 열등감이 책에 투사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서양이 바라본 일본과 한국을 일별하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만 좀 더 비판적 읽기가 요구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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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5-19메뉴


낮에 일찌감치 나온 <창작과 비평>(2006 여름호)을 구내서점에서 사들었다. 읽을 만한 글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물론 내게 결정타는 슬라보예 지젝의 '반인권론'이 번역/소개되어 있다는 것.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비판'이란 글도 목차에서 바로 눈에 띄었는데, 프레시안(06. 05. 17)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떠있길래 옮겨온다. 필자는 강양구 기자이며, 타이틀은 "<재인식>은 진보파 사관에 대한 전면적 보수 반격"이다.











지난 2월에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놓고 양 진영의 논란과 설전이 얼마간 오고간 바 있는데, 본격적인 건 이제부터라는 예감을 갖게끔 한다(<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이를 계기로 지난 3월에 재출간되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해 볼 만하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인식>)을 비판하고 나서 보수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에 대해 진보학계의 본격적인 반론이 제기돼 주목된다.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을 지낸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는 최근 발행된 이 잡지 2006년 여름호(132호)에 '다시 찾아온 토론의 시대'라는 글을 기고해 <재인식>의 편집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보수언론의 격고(擊鼓) 소리가 요란하기도 하거니와 언론에 노출된 편자들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지 않은가 해 내심 혹 빈 수레가 아닐까 하는 저픔(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완독하고 난 첫 느낌은 꽤 충실한 선집이라는 안도감이었다"고 책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최 교수는 "논문들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편자들의 주장을 상기하자 의심이 떠오른다"며 "논문을 가려 뽑은 편자들의 실제적 안목이 훌륭한 데 비해 그것을 총괄하는 편자들의 시각은 매우 단석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편자들과 필자들 사이에 균열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의 편자들은 과도한 대표성을 행사한 것은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재인식>의 편자들은 개혁정권들의 연속 속에서 훼손된 한국근현대사의 '적통', 즉 식민지 시대와 이승만 시대와 박정희 시대의 일관성을 총체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며 "민족해방운동과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분단극복의 통일운동을 축으로 삼는 진보파의 사관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반격"이라고 지적했다.











-최원식 교수는 특히 <재인식> '머리말'에 대해 "박지향의 글은 논리의 분열로 논술이 가지런하지 못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치밀한 분석이 돋보이는 논문을 책에 게재한 그가 어떻게 이 머리말에서는 이리 변신할 수 있느냐"고 꼬집은 뒤 본격적으로 편자들의 '단선적인 시각'을 비판했다. 최 교수는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그의 의식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정치적"이라며 "그가 이 책의 기획이 우리 현대사를 부정하는 참여정부 집권층의 역사의식을 교정하기 위한 역사학자의 책임감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의 동지들은 현 집권층에 '못된' 역사의식을 주입한 배후주범으로 <인식>을 고발하기에 이르는데 왕년 공안검찰의 논고를 어쩌면 그리 닮았느냐"며 "'머리말'에는 사학의 바탕 중의 바탕인 실증적 접근이 부재한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인식>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시기에 나온 1권과 상대적 해빙기에 출현한 나머지 권들 사이를 분간해야 마땅하고 무엇보다 누구의 어떤 글이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작업방식으로서 마땅하다"며 "<인식>이 정말 문제라면 총서 6권을 풍문에 의거하여 단매에 뭉뚱그릴 것이 아니라 정밀히 검토해서 '문제의 역사'를 새로이 구성하는 엄격한 선행 작업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최원식 교수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에게는 좀 더 매서운 비판을 던졌다. 최 교수는 "나는 평소 그의 주장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실증적 작업에 기초한 그의 견해들에 대해서 관련 학계가 성실히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곤 했다"며 "그런데 이번 글은 달랐다"고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최 교수는 "이영훈이 강만길의 '해방전후사 인식의 방향'에서 단 두 대목을 따 이 글을 '민족지상주의'로 단정하고 최장집 등의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을 친북혁명론으로 간단히 요약하는 것에 이르면 당혹스럽기조차 하다"며 "특히 최장집 등의 글을 '젊은 시절 한때 그 혁명에 영혼이 팔려본 사람이면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식의 독심술까지 동원해 매도하는 것은 학술적 엄밀성을 누구보다 주창하는 이영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또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한국에서 좌파 민족주의의 정치적 영향력이 결코 쇠퇴하지 않'게 된 연유를 탄식 속에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민간 공안을 뺨친다"며 "그는 급기야 <인식> 전체를 사회주의혁명론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하고 있는데 1980년대에 이런 경향이 대두한 것이 중반경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1979년부터 89년까지 출간된 이 총서 전체를 이렇게 과감히 단순화하다니 (이런 식이야말로) 그가 통탄해 마지않은 '역사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은 글쓰기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최근 발행된 <녹색평론> 5~6월호(제88호)에 <재인식>에 대한 비판을 기고한 이승렬 영남대 교수(영문학)는 <재인식>의 근저에 깔려 있는 '근대주의'를 톺아볼 것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개발과 근대화만 이루어진다면 식민지든, 독재든,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든지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길 마음가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민족주의 역사관에 대한 대안으로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문명사로 한국의 현대사를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는 <재인식>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인식>의 편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탈민족주의적 인식론의 근저에는 한국의 현대사가 근대 문명의 이식이라는 문명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이렇게 근대 문명 우월주의라고 불러볼 만한 인식은 근대 문명이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오기 이전에 존재해 오던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 같은 것은 (근대 문명을 실현할) 국가의 틀 속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의 인식으로 연결되는 양상을 아울러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승렬 교수 역시 '근대주의'를 강하게 보여주는 예로 이영훈 교수를 들어 비판했다. 이 교수는 "<재인식> 프로젝트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영훈의 글에서 일제 식민통치가 좀 더 길었다면 해방 이후 한국 역사가 더 쉽게 근대화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등장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식민지의 역사는 억압과 침탈의 역사가 아니다"며 "식민지는 보편적인 문명사와 야만적인 우리의 전통 역사가 융합할 수 있는 계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영훈에게 식민지는 강자의 문화, 즉 보편의 문화를 이식시키는 것이자 또 야만적인 약자의 문화가 더 보편적인 강자의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이영훈이 근대 이전의 소농사회를 가리켜 마녀, 이교도, 저주의 세계라고 비판한 데서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본성이 마음껏 꽃피는, '경제인간'들이 만드는 근대의 도시 공간을 문명의 이상향으로 보는 이영훈의 입장에서는 소농사회는 증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경제인간들이 만든 근대사회에서 황폐화된 도시의 빈민촌이나 농촌을 바라보면 근대의 풍요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영훈은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바로의 말을 인용해 '기존의 사회주의는 낡은 생산양식 위에 건립된 전제정치'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바로 바로야말로 자유와 이기심을 한껏 고양시켜 이룩한 시장경제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정의롭지 못한 야만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재인식>은 '강한 대한민국'을 지향하는 국익 우선주의와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의 가치가 확산되는, 즉 자유로운 개인과 강한 국가를 동시에 염원하는 대중들의 모순적인 욕망에 호소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성의 폭력과 탐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사적 비전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강조했다. 즉 '재인식'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06.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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