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5

백승종 - 쓰노 가이타로의 100세까지의 독서술. 나이 들어서 책과 사귀는 방법, 송경원 옮김, 북바이북,...



(5) 백승종 - 쓰노 가이타로의 <100세까지의 독서술. 나이 들어서 책과 사귀는 방법>, 송경원 옮김,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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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December 2017 at 12:16 ·



쓰노 가이타로의 <100세까지의 독서술. 나이 들어서 책과 사귀는 방법>, 송경원 옮김, 북바이북, 2017.

1.

모처럼 일본 작가의 책, 한 권 읽었다. 쓰노 가이타로는 당연 80세. 연출과 편집 일에 종사하다가 나중에는 대학교수로 은퇴한 일본의 지식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지식인의 삶을 담담한 필치로 잘 그려내었다.

덕분에 나는 쓰노를 통해서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여행한 기분이다. 일본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의 이야기를 읽는 사이, 나의 뇌리에는 이 땅의 현재와 미래가 얼핏얼핏 스쳐지나갔다. 한국은 일본의 복사판이 결코 아니지만, 어느 만큼은 서로 운명적인 맞물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

<100세까지의 독서술>에서 나는, 대단히 일본적인 이야기를 많이도 주워듣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나라라는 생각이 시종일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기억 가운데서 서너 가지만 간단히 복기해보자.

하나. 일본사람들은 참 오래도 산다. 세계 최고수준의 고령화 사회라는 점을 실감하였다. 죽음 앞에선 노인들의 다양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대체로는 나이와 관계없이 ‘죽음의 공포’에 짓눌리기 마련이지만, 더러는 낡은 종잇장처럼 소리 소문 없이 담담하게 ‘바스라져버리’는 존재들도 있다.

이런 현상이 이제 우리사회의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도 나/우리와 함께 늙어가는 많은 벗들이 있다. 죽음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는 순간이 이제부터 점점 늘어날 것이다.

하나. 일본의 지식인들, 아니 교양시민들은 죽도록 책을 읽고 또 읽는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많이 읽는 이들은 하루에 3권씩 꼬박꼬박 죽을 때까지 읽어내려 간다. 아주 조금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하루에 한 권 정도는 독파하는 모양이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그날 읽을 책을 붙들고 책상에 앉아서, 만약 기력이 부치면 침상에 누워서라도 그들은 책장을 넘긴다. 그냥 읽기만 하는 법이 별로 없다. 읽고, 쓰고를 되풀이하는 ‘서생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요, 일본인의 평정심을 보장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나. 일본의 교양인들은 나이에 비례하여 무거운 책 더미에 깔릴 가능성이 높아간다. 장서라는 것을 조금 가진 사람이면 수천 권, 본격적으로 책을 사 모은 이라면 6만 권도 넘게 책을 쌓아두고 있다. 그들은 그 많은 책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걱정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다!

책을 읽는 이가 극히 희소한 한국사회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풍경이다. 조선 500년 동안 과거시험에 분주하였던 ‘선비의 나라’에는 독서인의 종자가 거의 멸종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은 역사상 과거 시험을 한 번도 제대로 보인 적이 없었던 무사의 나라이다. 그런데 책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우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참,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럴 수도 있구나!

3.

일본인의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일본 전역에 수많은 교양시민이 넘쳐나도, 그것이 일본을 ‘시민사회의 힘’으로, 정치/사회적 변혁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나날이 교양을 차곡차곡 쌓으며, 일본인은 개인의 시름을 달래고 취미를 쌓아갈지언정 정치투쟁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사무라이가 호령하던 시대에도 그러했다. 정치는 지식인의 몫이 아니었다. 일본의 지식인은 그저 순수한 학인이든가, 아니면 권력의 시종에 불과하였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인상을, 나는 이 책에서 받았다.

한반도의 상황은 정확히 그 반대가 아닐까. 여기서는 무얼 좀 안다는 것은, 정치/통치무대에 돌입하여 팔뚝을 걷어 올리며 제 주장을 하는 것으로 직결된다. 지식인이든 교양인이든 한국인은 정치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책을 읽든 말든, 현실을 고치는 일에 관해 할 말은 넘쳐난다. 그래서 여기는 일본처럼 늘 쥐죽은 듯 조용하지가 않은 것이다. 항상 의욕과 활기가 넘쳐흐른다.

4.

저자 쓰노는 일본인답게 이 책에서 아무런 큰 주장도 꺼내놓지 않았다. 한일관계에 대하여는 더더욱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한국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짧고, 개인적인 지면에서조차 ‘거대 담론’을 펼치게 된다.

끝끝내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은 한국일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비슷한 점이 한둘은 아니지만, 아마도 두 사회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으며 나아갈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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