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7

책을 읽어봐야 삶이 바뀌지 않으니 책 많이 읽었다고 까불지 말라는 글을 봤다. 인용해서 비판할까 하다가 그 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돼서 읽고 든 생각만 말하자면,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념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다. 삶을 기준으로 놓는다면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삶이 이념에 봉사해야지 이념이 삶에 봉사한다면 그건 이론으로 자신의 삶을 치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본인 나름대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실상 바뀐 게 아니다. 그저 본인이 보기에 유효성이 떨어져보이기에 바꾼 것일 뿐이지,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서 논리의 파탄까지 가본 게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아직도 그런 걸 읽냐? 는 것이다. 본인에게야 당연히 그 책들은 이미 지나간 삶의 필요에 지나지 않겠으나.. 정말로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해봤으면 완전히 버리기란 어렵다. 이념은 얼룩처럼 어딘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최근에 와서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나라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건 여전히 민족주의 이념이 얼룩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삶의 변화나 필요를 완전히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논리는 삶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삶의 필요나 변화가 논리의 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을 바꾸는 데 있어서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삶을 기준으로 삼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이념을 놓고 정말 끝까지 추구해보면서 한번 바뀌는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삶이 바뀐다. 나는 그 치열함을 경험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사실 저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삶의 필요에 의해서 책을 읽어야 했다면, 사실 그건 자신의 바뀌고 있는 삶을 혹은 바뀌어야 할 삶을 책을 통해 미리 연습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놓는 것이다. 책을 읽었기에 비로소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책을 읽으면서 배운 이념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완전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기에 그나마 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생각뿐만 아니라 인간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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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ngyeol Park 음... 글쎄요. 민석님은 아마 제 많은 페친분들 중에서, 가장 '근대적인' 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스피박의 "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책을 읽지 않는) 대중의 일상을 긍정하지 않는, 그 '리얼리티 체크'에 소홀한 이념적 독서의 힘을 저는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여하튼 제 주위에선 가장 열심히 공부하시는 사람 중 한 분이시니...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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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말씀하신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의 삶을 부정해서 뭐하겠습니까. 저는 책을 읽는 게 사실 그런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모든 이가 그리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다만 책을 읽는다면.. 굳이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읽는다면 저는 한번은 위에서 제가 말한 경험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근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아무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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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ngyeol Park 손민석 네... 제가 페이스북을 어느새 꽤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막상 글은 별로 안 쓰지만...) 2,000명 가까운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민석님이 가장 '근대적'인 것 같아요. 하하하... 

책의 힘, 글자의 힘, 이념의 힘을 이렇게 강력하게 믿는 분은 요즘 거의 없죠. 사실 위에서 말씀드렸듯 저 또한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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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une Kim 이념은 삶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오나요? 무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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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모르겠으면 그냥 가시면 됩니다. 대화할 것도 아니시면서 뭘 글을 달고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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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승 의도를 알듯도 하고 모를듯도 하네요.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상을 품고 현실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모습이 일면 느껴집니다.
저는 책이란 정말 대단한 도구지만, 책이 전부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책 많이 읽었다고 까불지 말라는 말은 아마도 저와 같은 경계심을 가진 분의 충고가 아닐까 싶네요. 민석님의 독서량은 페북으로만 봐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정도로 치열하게 책이 아닌 다른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민석님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도 훌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농민에게도 이상과 이념이 있을 수 있다. 수많은 책을 읽은 학자도 이상과 이념이 없이 천박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Man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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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위의 글에서 저는 책이 전부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글을 몰라도, 책을 안 읽어도 훌륭한 삶을 살다가 가신 분들이 많고 지금도 많을 것이며 또한 책을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박한 학자들이 많습니다. 누가 그걸 부정하겠어요. 이렇게 보면 책과 삶은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전자든 후자든 모두 자기가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적으로 얻든 이론적으로 얻든 어떤 기준을 세웠는가 세우지 못했는가가 핵심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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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승 손민석 열심히 썼는데 실수로 엔터 눌렀다가... 복사하고 삭제했는데... 복사가 안됐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짧게 쓰면, 결론적으로 저는 '책을 읽어봐야 삶이 바뀌지 않으니 책 많이 읽었다고 까불지 말라.'는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았으니 감히 뭐라 말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삶이 바뀌는 데에 중요한 게 뭔지 소견을 밝히고 싶었지만 ㅠㅠ 이제 나가봐야 해서. ㅎ 짧았지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혹시 또 답글 달아주시면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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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람의 경제적 상황이나 자기인식 등이 삶을 바꾸는 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인인 것은 맞습니다. 인간의 삶은 책이나 공부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변하는 여러 조건들에 의해 규정되어 바뀌어 갑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삶에 끌려가는 건 주체적인 삶이라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말 중에 “무지가 여태껏 누구에게도 도움이 된 적이 없다”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무지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변화하는 여러 조건들에 끌려가기보다 그것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면서 그 속에서도 자신이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완전히 구조적으로 결정되는 존재도, 그렇다고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존재도 아니고 구조 속에서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결국에는 구조를 바꿔 나가는 존재라 생각해요. 삶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들에는 경제적 요인을 비롯한 삶의 여러 주요한 조건들이 작용하겠지만 저는 그것만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 주체적 결정을 지나치게 강조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차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이념과 같은 어떤 기준을 놓고 그에 맞춰서 삶을 바꾸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래야 삶을 거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말씀하신대로 다른 조건들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되려 저는 이념과 책의 힘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봐요. 아무튼 저도 짧지만 의견 교환 즐거웠습니다. 제가 좀 강하게 말한 부분도 있겠지만 제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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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두 글다 수긍하면서도 심정적으론 선생님 말이 더 와닿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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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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