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5

‘고난의 행군’ 끝에 시장으로 다가갔네 – 시사IN



‘고난의 행군’ 끝에 시장으로 다가갔네 –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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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끝에 시장으로 다가갔네
4월2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에는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이라는 말이 보인다. 이 표현에 담긴 의미와 북한 경제의 변화를 짚어보았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8년 05월 08일 화요일 제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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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정상국가로의 길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평화와 번영, 북남 관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그런 순간에서,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마음이다”라며 “원점으로 돌아가고 이행하지 못하는 결과보다는 미래를 보며 지향성 있게 손잡고 걸어가는 계기가 되자”라고 말했다. 물론 원론적인 발언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일주일 전인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정서를 보면, 정상국가화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결정서의 제목은 ‘혁명 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하여’다. 비록 사회주의라는 단서가 붙긴 했으나,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이라는 보기 드물게 강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중국과 베트남 공산당의 경우, 정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인민들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경제 건설)’ 수 있다면 굳이 방법 때문에(사회주의냐, 시장경제냐) 애면글면하지는 않았다. ‘반동’이라고 치를 떨던 시장경제 노선에 그냥 사회주의란 이름만 붙여 추진하면 그만이었다. 중국공산당이 1980년대 초반 내걸었던 슬로건인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실질적 내용은 급진적 시장 개혁과 대외 개방이다.

북한 노동당이 총력을 집중할 경제 건설 역시 시장을 발전시키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 지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 자체가 사실상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로 시장경제가 비집고 들어갔다.



ⓒ사진공동취재단4월3일 평양 주민들이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예술인들의 공연을 본 뒤 귀가하고 있다.


원론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시장경제의 대척점에 있다. 시장경제에서 생산자(주로 민간기업)가 물자를 만드는 이유는, 팔아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다. 어떤 제품을 어느 정도 규모로 생산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너무 많이 만들거나 적게 만들면, 해당 기업은 수익이 줄거나 도산한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는 민간 차원의 생산 및 영업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국가의 ‘생산 부서’인 국영기업들 역시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국가의 경제 사령탑이 인민들에게 필요한 물자의 종류와 양을 미리 예측해서 ‘벼와 철강은 몇 톤, 신발은 몇 켤레, 의류 몇 벌’ 하는 식으로 각 국영기업에 생산을 지시한다. 국영기업 간의 원·하청 거래도 국가가 조절한다. 국영 광업소에 ‘흑연 몇 톤을 생산해서 연필 공장에 공급하라’고 명령하는 식이다. 이렇게 생산된 소비재들은 국가가 정한 가격(국정 가격)으로 국영 상점 진열장에 놓이거나 배급된다. 특정 물자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또는 적게 공급된다고 해도 국정 가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인민들은 국가가 정한 보수(국정 임금)를 받아 국영 상점에서 국정 가격으로 생필품을 구입한다.

장마당과 민간 자본가 ‘돈주’의 출현



이처럼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국가를 동력 삼아 생산과 유통을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물린 정교한 기계와 같다. 국가가 멈추면 생산과 유통이 모두 중단된다. 그런 일이 1990년대 중반의 북한에서 일어났다.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인한 국제교역 중단에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공장과 농장들은 국가로부터 원자재와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직장에 나가도 할 일이 없었다. 생산이 중단되어 배급이 끊어지면서 북한 인민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몰았다. 수십만명이 아사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모든 것을 책임지던 국가가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하게 되면서, 인민들은 각자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다. 시장경제의 씨앗이 뿌려졌다.



인민들은 직장에 나가는 대신 집 주변 작은 토지 등에서 재배한 곡물로 생계를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개, 돼지 등을 키워 고기를 얻었다. 그러다 보면 자신과 가족이 먹고 남은 곡물(고기)을 고기(곡물)와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북한 전역의 이런저런 거리에 자연발생적으로 작은 암시장이 무수히 생겼다. 이른바 장마당이다. 일단 시장이 형성되면, 사회주의 체제에선 불가능했던 ‘시장에서 팔기 위한 생산’이 가능해진다. 국가가 독점했던 생산이, 이윤을 얻기 위한 민간의 활동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1990년대 말의 북한에는 이미 민간 사업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체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원자재에 ‘국영기업에 나가지 않는 노동자’들을 결합시켜 과자·약품·맥주·신발 등을 생산했다. 이렇게 만든 물건을 장마당에 팔아 돈을 벌었다.

이런 민간 사업체가 운영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부 민간인이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조선 원화(북한의 통화)뿐 아니라 중국 위안화까지 축적해놓고 있었기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중국 원자재를 수입해서 생산을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민간 자본가로 발전하는 ‘돈을 쌓아둔 계층’이 ‘고난의 행군’ 당시 불쑥 나타났다. ‘돈주’라고 불린다. 북한에서 외환 및 해외 상품에 접근할 드문 기회를 가졌던 재일동포나 북한-중국 국경의 주민 가운데 일부가 돈주로 변신했으리라 추정된다.

민간 자본가의 출현은 시장경제 발전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자본가는 특정 상품을 자신이 소비하거나 다른 생필품과 바꿀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이윤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상품이든 무제한적인 규모로 출시한다. 늘어난 상품은 시장을 확대하고, 확대된 시장은 상품 생산을 촉진한다. 이로써 북한의 시장경제는 성장하게 된다. 급기야 국영기업이 시장경제 부문에 의존해 명맥을 이어나갔다.





ⓒ사진공동취재단4월4일 평양순안국제공항에서 공항 방문객들이 면세점을 둘러보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는 당초 국영기업에 원부자재와 에너지 공급을 보장해왔다. 고난의 행군 당시 이런 국가 기능이 마비되자, 국영기업들은 결국 암시장인 장마당에서 원·부자재를 매입해야 했다. 매입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즉 돈주에게 빌릴 수 있었다. 외부의 민간업체에서 일하는 소속 노동자의 결근을 묵인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 생산한 공산품을 낮은 수준의 국정 가격으로 국영 상점에 내놓기보다 장마당에서 높은 시장 가격으로 팔았다. 물론 불법이다. 심지어 민간 업체의 상품을 국영기업 명의로 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일종의 ‘명의 대여료’를 받기도 했다. 사회주의 생산 시스템의 중추인 국영기업이 자금 조달과 판매를 시장에서 실현하는 엄청난 변화가 이미 2000년대 초반 북한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북한의 지배자인 노동당으로서는 결코 달가울 리 없는 현상이었다. 시장마저 마비된다면 인민들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묵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체제 단속 차원에서 그냥 놔둘 수도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장마당을 단속하고 공장 이탈 노동자들에게 복귀 명령을 내릴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한동안 사회주의 정부와 시장 사이의 힘겨루기가 진행되었다. 북한은 2003년 3월에 암시장을 합법화한다. 종합시장이라는, 건물과 상업시설을 갖춘 소비재 거래소를 공식적으로 허가한 것이다. 불법이지만 공공연한 행위를 합법화해서 체제 내로 흡수하려는 시도였다.

종합시장에서는 장마당과 달리 공산품을 합법적으로 사고팔 수 있다. 국영기업이 국영 배급망이 아니라 시장에 상품을 내놓도록 허용됐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이후에도 북한 당국은 간헐적으로 종합시장에 대한 통제를 시도했다. 2009년 말에는 종합시장을 폐쇄하려 했는데, 물자의 유통 자체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철회했다. 2010년 북한의 ‘지붕 있는 종합시장’은 200개 정도였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산하 한미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월 현재 위성사진으로 확인된 북한의 종합시장은 모두 482개다. 지난해 3월의 436개에 비해 1년여 동안 46개나 늘었다. 시장의 승리다. 북한 생산·유통망의 축이 ‘국가→국영 상점→인민’에서 ‘민간기업(돈주)→시장→소비자’로 무게를 옮겼다.

2010년대 들어서는 크고 작은 돈주들이 물류, 무역, 금융 심지어 부동산 개발업에까지 진출하면서 시장화를 역전 불가능한 추세로 만들었다.

북한 가구 수입의 63%는 시장에서 나온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물류의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원자재와 완성재의 흐름이 국영기업-국영 상점으로 제한되어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국영기업 이외에도 수많은 민간기업들이 다양한 상품을 생산·판매하는 환경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물자 관련 정보를 빨리 얻고 신속하게 수송하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돈주들이 중국 등에서 수입한 트럭을 물류에 투입하면서 짭짤한 재미를 누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구입한 버스나 택시를 시·도 인민위원회 자산으로 등록해놓고 운송업을 영위하기도 한다. 새로운 관련 업종이 나타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북한경제 리뷰> 2018년 2월호에 따르면, 최근 북한에서는 주유소와 세차장이 증가하고 있다. 활발한 물류로 차량 운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돈주들이 전문 세차원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손 세차장’이 인기다. 업계 내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손님을 끌기 위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경쟁까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개인 택시업자들은 ‘몰이꾼’을 채용해 고객을 모셔오는 방법까지 동원한다.

돈주들은 민간 차원의 금융 서비스가 없는 북한에서 초기 단계의 금융업을 창출하기도 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아무래도 북한에서 돈주의 위상을 가장 역력히 보여주는 것은 부동산 개발업인 듯하다. 원칙적으로 북한에서는 정부가 주택 건설을 계획·공급하도록 되어 있다. “올해는 평양에 300채 공급” 하는 식이다. 문제는, 정부 당국이 주택 건설에 필요한 철근·콘크리트 등 자재를 조달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돈주가 나선다. 자신들이 200채를 지어 그중 20채 정도를 국가에 헌납하는 대신 분양을 허용해달라는 조건이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돈주 건설업자가 주택을 공공연히 팔 수는 없다. 법률상으로 주택은 국가 소유이고, 어떤 주택에 누가 입주했는지 공문서에 등록해야 한다. 다만 주택 담당 관공서에서 입주자 명부를 바꾸는 데 동의한다면 사실상 매매가 이뤄질 수 있다. 신축뿐 아니라 기존 주택들에 대해서도 관공서를 낀 거래가 불법이지만 시세가 형성될 정도로 공공연히 이뤄진다. ‘평양, 청진 등 대도시의 고급 아파트 시세가 2013년 1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30만 달러로 치솟았다’라거나 ‘신의주 집값이 30% 폭락했다’라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AP Photo최근 북한에는 주유소와 세차장이 증가하고 있다. 위는 평양에 있는 한 주유소의 모습.


이처럼 북한의 시장경제는 비공식적으로 당국의 묵인 내지 협력을 받아 성장해온 셈이다. 계획 부문과 시장 부문의 경계가 이미 흐릿해진 느낌까지 준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가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북한 가구가 벌어들인 수입의 63%가 시장에서 나온다. 또한 북한 가구들은 식량의 60%와 소비재의 67%를 시장에서 구입한다. KDI <북한경제 리뷰> 2018년 4월호에 따르면, 2013~2015년 탈북자들의 경우, 시장경제 부문에서 얻는 비공식 수입이 계획경제 부문 공식 수입의 20배에 달했다. 현재의 시스템을 원론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라고 부를 수는 없다.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의 시장화를 되돌릴 수 없는 추세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시장경제가 인민들의 생산·소비에서 압도적 지위를 점유 중인 상황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킨답시고 시장을 탄압하면,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더욱 악화되며 체제의 정당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밑에서부터 솟구치는 ‘자생적 시장경제’를 공식적 제도 내로 흡수해서 체제 안정 및 발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좀 더 안전한 선택이다. 이미 2012년에 친시장적 요소를 대폭 채택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내놓은 것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사고방식을 짐작해볼 수 있다(38쪽 상자 기사 참조).

더욱이 경제 건설에는 대외 개방이 필요하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의 국가에는 기계설비 같은 자본재가 부족하다. 자력으로 기계를 만들 수 있기 전까진 해외 선진국의 자본재를 사와야 한다. 그러려면 외환이 필요하다.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철광석·납·섬유·수산물 등을 해외에 팔아 외환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이런 경로가 거의 모두 경제제재로 차단되었다. 올해 초부터는 북한 무역의 90% 정도를 점유해온 중국마저 경제제재에 본격 동참했다. 이로 인한 경기침체 및 소득 저하는, 이미 인민들의 경제생활에서 중심축이 되어버린 시장에도 엄청난 충격을 줄 터였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더욱 강대한 핵·미사일 능력을 국제사회에 입증한 뒤 협상에 나서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박한 경제위기를 피하고 나아가 경제개발을 본격화하려면 한국 및 미국과의 연쇄적 정상회담과 핵·미사일에 대한 적절한 조치로 대외 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가 절실했다.

그가 대외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가장 먼저 ‘총력을 집중’해야 하는 과업은 ‘공공연한 불법’인 시장경제를 합법화해서 현실과 제도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일일 것이다. 우선 사유재산을 법률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으면 이윤을 위한 생산이 더 활성화되기는 힘들다. 음성적인 금융산업을 합법화하고 육성해야 한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법률이 없다면 시장이 발전할 수 없다. 개인들이 부동산을 활용할 수 있어야 국가 경제가 발전한다. 북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에게만 ‘50년 토지 이용권(사실상의 소유권이다)’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북한은 2009년 내국인에게도 토지 이용권을 부여하는 부동산관리법을 제정했지만 아직 본격적 시행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런 친시장 제도를 확립해야 외국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사유재산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거액을 투자할 외국인은 없다. 국가가 임의대로 내·외국인의 재산을 박탈하거나 심지어 인신마저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구금하거나 처형할 수 있다면, 그 나라에서 사업하려는 기업가는 없을 것이다. 친시장 제도들은 인권 향상에도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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