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8

[CJ Kang 방북기32]만경대협동농장 문화주택을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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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Kang 방북기32]만경대협동농장 문화주택을 방문하다

[CJ Kang 방북기32]만경대협동농장 문화주택을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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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만경대협동농장의 문화회관을 둘러보면서 북부조국이 해방 후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지주를 없애고 모든 농가가 넓은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농사를 짓게 된 것과, 이후 개인농에서 협동농장으로 진행되어진 과정을 알아보았다. 벽에 전시된 나머지 도표들을 통하여 북의 농촌이 협동농장으로 된 이후의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문화회관을 나오면서 만경대협동농장에서 벼 외에 어떤 작물을 생산하는지를 노길남 박사님이 김태현 생활구현농장에게 물어보니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남새(채소류)들을 생산한다고 알려준다. 대략 쌀을 생산하고 부식으로 김치의 재료가 되는 배추 정도를 생산하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와는 다른 대답이었다. 역시 이곳은 남새전문농장이라는 명칭이 붙을 만한 곳이다.
내가 모두 받아 적지는 못하였는데 이곳에서 생산하는 품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봄에는 강동배추, 냉산통배추(양배추인 듯), 시금치, 오이, 토마토, 수박, 고추, 파, 옥파(양파) 등을 심는다고 했다. 여름에는 가지, 근대, 파, 여름오이 등을 재배하고, 가을에는 풋배추와 김장배추를 기르고, 겨울철엔 농한기로 약간의 온실재배를 하면서 퇴비생산을 한다고 했다. 
광장 인근엔 3층짜리 농장원들의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건물로 보인다. 우리가 찾아본 농가는 그런 아파트가 아니고 제법 오래전에 지어진 동네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원래 이 동네는 60년대에 6칸짜리 문화주택을 지었던 곳인데 85년에 지금의 한옥으로 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이 이런 집을 지었겠지 하고 여길 수 있지만 이 마을 전체를 국가에서 무상으로 건설해주었다고 한다. 
내가 이 집을 방문한 당시만 해도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느끼는 점이 참으로 크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의식주 가운데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갖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곳 만경대협동농장의 깔끔한 주택들은 이곳 농장원들이 농사를 지어서 번 돈으로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기술자들과 재료를 보내서 농민들을 위하여 무상으로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북에서는 주택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농촌의 주택까지도 국가에서 직접 전문가들을 보내어서 무료로 지어준다는 것은 그냥 흘려서 들을 소리가 아니다. 당장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자신이 소유한 집이 없거나 매달 집세를 내거나 은행융자금을 갚아나가야 하는 경우에 나라에서 내가 살아갈 집을 무상으로 지어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 되겠는가? 
우리가 방문한 집은 수십 채의 비슷하게 생긴 기와집 농가들 가운데 첫번째 집이었다. 조선식 건물이면서도 현대식 외관에 기와를 올린 아주 예쁜 집이다. 지붕에는 <태양열 물 가열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 장치는 현재 조선에서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여름에는 섭씨 98도, 겨울에는 80도까지 물을 데울 수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한다. 그러니까 집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더운 물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 것이다.
이곳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5년에 방문한 곳이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아마 당시에 새로 주택들을 완공한 이곳을 현지지도차 찾아 둘러본 것이리라. 
방문한 집에서 막 이웃집에 나들이 갔다가 돌아온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신다. 이 집이 지어진 후 바로 입주해서 살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딸과 사위와 함께 산다고 하셨다. 결혼한 딸과 함께 사는 것이 북에서도 이제는 흔한 일인지 모르겠다. 딸은 유치원 교양원으로 일한다고 하였고, 사위는 이곳 농장의 농장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80년대에 지어진 조선식 집으로 방 세 개에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이 집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안락하게 꾸며놓은 공간에 비해서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지만 30년 전에 국가에서 무상으로 이런 집을 인민을 위하여 지었다는 점을 내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는 밖으로 나오니 집 주위엔 아주 잘 가꿔진 텃밭이 있고 과일나무들이 즐비하다. 김 주석의 교시 가운데 농촌의 집집마다 과일나무 5그루를 심도록 한 것을 잘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옆집들과는 적당한 거리와 울을 사이에 두면서 정원은 텃밭으로 남새들을 아주 잘 기르고 있다. 온 동네가 잘 어울리도록 집들이 배치되어 있고 이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이제는 우리 모두 북을 바로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북을 바로 알아야 한다. 북의 정책이 나쁘다는 전제하에 종북이라고 민중을 매도한다면 그 정책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려서 나쁜 것인지 아닌지를 민중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CJ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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