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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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의 삼성 걱정 2탄
- 삼성 등 기술 유출, 5년간 96건...중국으로 유출되는 경쟁력/삼성과 한국경제㊦(닛케이 3.26 전자판 07:31)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서울 근교 수원. 이 도시의 지방법원 402호 법정에서 한국 산업계가 주목하는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삼성은 기술 보호 조치를 어떻게 진행했습니까?" 2월 28일 법정에서 검사가 조용히 물었다.
증인석에 선 삼성 정보보호센터 차장급 남성은 "보호조치에 수천억 원을 투자했지만, 기밀자료가 유출된 것 같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삼성 반도체 부문 전 상무(66) 등이 반도체 공장 도면 자료를 입수해 중국으로 유출했다. 검찰은 2023년 6월 전 상무 등 7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전 상무는 삼성 퇴직 후 경쟁사인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로 자리를 옮겨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지낸 인물이다.
중국 산시(陝西)성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대만 훙하이(鴻海)정밀공업으로부터 8천억엔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200여 명의 한국인 기술자를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가 미중 대립의 초점이 되면서 훙하이가 자금 출자를 포기하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중국에 대만 자본의 삼성 카피 공장이 가동됐을 가능성도 있다.
3월 20일 9차 공판까지 피고인들은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재판의 향방은 불투명하다. 국가가 기술자의 해외 취업을 제한할 수 있느냐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은 기술 유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내 복합기에서 사용하는 인쇄용지에 특수 금속박을 내장해 정보를 인쇄해 외부로 반출하려 하면 게이트에서 감지기가 작동한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기술직의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직자 등을 통한 기술 유출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 정부 주도로 대(對)중국 포위망이 좁아지면서 정공법으로 기술 축적이 어려워진 중국 기업들이 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3년까지 최근 5년간 반도체, 배터리, OLED 패널, 조선 분야 등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건수는 96건에 달했다. 이 중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16건), 자동차(9건)가 뒤를 이었다. 유출처는 대부분 중국이다.
소속 기업에서 승진 경쟁에서 밀린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간다. 액정 패널 세계 1위인 BOE는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재직하며 OLED 패널 기술 개발을 담당했다. 이번에 적발된 기술 유출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산업부 관계자)고 한다.
한국이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디스플레이, 조선, 석유화학, 배터리, 철강 등 다양한 산업에서 중국 기업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가 주도로 규모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 제조업과 같은 무대에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한국의 무역 통계는 장기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은 23년 1248억 달러(약 19조엔)로 전년 대비 20% 감소해 역대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반도체 불황과 중국 경기 침체라는 요인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 철강, 화학 등에서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높여 한국 제품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구조적 변화를 간과할 수 없다.
신민영 홍익대 교수는 "중국이 질적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한-중은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모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한 문재인 전 정권에서 법제화된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일에 대한 태도, 일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일할 의욕이 있는 젊은 층은 퇴근을 독려해야 하고, 정시 퇴근에 익숙해져 '시간을 회사에 팔아먹는다'는 의식도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과거 출세경쟁을 벌이던 '맹렬 문화'는 달라졌다.
수출산업이 많은 재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한국 경제도 둔화된다. 23년 국내총생산(GDP, 실질기준) 성장률은 1.4%에 그쳐 25년 만에 일본 성장률(IMF 추산 1.9%)을 밑돌았다.
1970년대부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도 1~2%대 성장률의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보다 저출산-고령화가 더 심한 5천170만 명의 내수는 힘이 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2020년 명목 GDP 세계 10위를 정점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K-POP이 선봉장, 제조업 중심에서 전환의 싹을 틔우다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 산업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K-POP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산업이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는 21세기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며 여러 대학에 콘텐츠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정부 기관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음악 프로듀서, 영화감독 등 인재 양성에 투자해 왔다.
산업 창출 단계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온라인 유통의 보급을 통해 세계로 날개를 달았다.
대표격인 방탄소년단(BTS)은 동영상을 무료로 배포해 팬층을 넓혔다. 자체 플랫폼을 통해 라이브를 생중계하고 굿즈를 판매한다. 그들의 말은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아미'(BTS 팬)를 퍼뜨렸다.
경북대 경영학부 이장우 명예교수는 "K-POP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 명작의 계보를 이어받아 한국이 독자적으로 진화시켰다. 인터넷의 확산력을 얻어 대성공을 거뒀다"고 분석한다.
드라마나 영화도 미국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 올라타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회사의 테드 사란더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콘텐츠 산업과의 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그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콘텐츠 산업의 파급 효과는 크다. 화장품, 식품 등 소비재 판매 증가에 기여하고,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등 '국가 브랜드'의 침투로 이어지고 있다.
사업 환경 변화의 물결을 포착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한국 기업의 강점이 살아났다. 시가총액 기준 한국의 30%를 차지하는 삼성이 사업 쇄신을 서두르는 등 제조업이 주도해온 한국 산업계는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교수의 댓글 = "머지않아 한국의 제조업은 모두 중국의 추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통한 기술 정보는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나도 일본을 상대로 그렇게 해왔으니 불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하드웨어 지향, 대규모 제조업에 대한 집착입니다. 다행히 콘텐츠 산업은 관치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벌써 20년 전, 게임에서 콘텐츠 산업으로 관심을 돌린 한국 사업가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다른 성격의 콘텐츠 산업의 진화와 발전은 막막한 한국 경제의 소중한 숨구멍이 되고 있지만, 좀처럼 구멍이 넓어지지 않는 것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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